▒ 마야력(曆) 2012년. 남미에 존재했던 마야문명이 후세에 남긴 특산품은 달력인 것 같다. 아주 정교하면서도 독특한 역법을 사용한 달력이다. 근래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2012년 종말론 스토리는 마야력(曆)에서 유래된 이야기이다. 달력은 심오한 것이다. 캘린더를 의미하는 '역(曆)'은 주역의 '역(易)'과 역사의 '역(歷)'과도 상통한다. 달력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달력이 모아지면 역사가 된다. 달력이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달력은 1주일은 7일, 한 달 30일, 1년 12달의 규칙적인 반복주기를 갖고 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의 장점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1년 중에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 그리고 동지와 하지를 예측할 수 있다. 달력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회귀(回歸)'의 사상이다. 그래서 달력을 보고 언제 회귀가 이루어질 것인지, 언제 같은 사이클이 반복될 것인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회귀본능)
동양에서 육십갑자로 구성된 만세력(萬歲曆)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한자 문화권의 역사주기는 소강절이 정립한 원회운세(元會運世) 개념이다. 1원(元)은 12만9600년 주기이고, 1회(會)는 1만800년, 1운(運)은 360년, 1세(世)는 30년 주기이다. 한자권에서는 가장 큰 주기가 12만9600년마다 오는 것이다.
마야력은 360일을 1툰(tun), 7200일을 1카툰(katun) 이라 하고, 14만4000일이 1박툰(baktun)이다. 13박툰에 해당하는 187만2000일(5125.36년)을 하나의 거대한 주기로 간주했다. 마야력 전문가들에 의하면 기원전 3114년 8월 11일부터 제1박툰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월드쇼크 2012', 155쪽). 그리하여 13박툰이 끝나는 날이 2012년 12월 21일이라는 것이다. 187만2000일, 즉 13박툰이라는 마야력의 거대한 주기가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고 보았다. 인구에 회자되는 2012년 종말론은 바로 이 계산법에서 나왔다.
그러나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우주관에서 볼 때 종말은 없다. 한 주기의 끝은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회갑(回甲)이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인가? 회갑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아니던가. 12월 말일 다음에는 새해 첫날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달력이 주는 가르침이다. ('09) ※ 조선일보 조용헌 칼럼
▒ 지구는 세차(歲差) 운동을 한다. 마치 팽이가 돌아갈 때 약간 떨면서 돌아가듯이 지구도 자전을 하면서 약간 떤다. 이 떨림을 세차운동이라고 하고, 72년마다 1도씩 춘분점이 이동한다. 이 춘분점의 이동을 나경에서는 '도수(度數)의 변화'라고 부르며, 그 이동을 28수에다 표현해 놓은 것이다.
춘분점이 72년마다 1도씩 움직여서 360도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만5920년이다. 약간의 오차를 감안하면 대략 2만6000년으로 본다. 고대 이집트나 인도의 베다문명, 그리고 남미의 마야문명에서는 이 대주기를 알았던 모양이다. 특히 마야력에서는 2012년 동지(冬至)가 이 2만6000년 대주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동지에는 은하계의 중심과, 태양,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인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자기장(磁氣場)에 큰 변화가 와서 인류의 정신적인 각성이 촉진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 종말론은 늘 있어 왔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개의 종말론은 종교적 신념이나 점성술, 문명 비관론에서 비롯한다. 올해 종말론은 남미의 고대 마야 문명이 남긴 달력이 근거다. 마야력은 서양력으로 기원전 3114년 8월에 시작해 2012년 12월21일 동지에서 5125년의 시간이 끝난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마야 달력에 ‘왕권 강화’라는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는 주장을 소개했다.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출신의 문화천문학자인 알론소 멘데스는 마야 달력이 고대 마야제국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영적 산물이라고 해석했다.
마야력으로 올해는 13번째 박툰의 마지막 해다. 박툰은 마야문명의 시간 단위로, 1박툰은 약 394년 3개월이다. 마야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 만물의 창조 주기가 13박툰이다. 그러므로 마야 달력의 2012년은 ‘종말에 대한 묵시록적 암시’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 단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그럼 왜 창조 주기가 13박툰일까?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하늘의 달력’ 프로젝트 팀원이기도 한 멘데스는 마야 문명의 최전성기를 이끈 키니치 하나브 파칼 1세(서기 603~683)가 자신의 생년월일에 맞춰 우주의 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멘데스는 “마야인들이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말할 수 있게 고안된 달력을 창조했다”며 “파칼 대왕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신격화하기 위해 마야의 창조신화를 손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야 문명은 오리온좌의 움직임을 정밀관측했을 만큼 천문학이 뛰어났다. 치아파스주 팔렌케 지역의 마야 문명 유적에 새겨진 “새집을 짓는 데 13박툰이 걸린다”는 구절도 ‘우주의 재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란다. 이런 점에서 파칼 대왕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이스를 자신의 선조로 삼았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와 다를 게 없다고 멘데스는 촌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