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판, 사이비도편수들의 난장판
설계실 실장님 말씀이 ‘설계쟁이는 예술가’란다.
1년 중 단 하루 - 5월1일, 근로자의 날만 빼고.
근로기준법? 노동3권?
난 그런 ‘법 없이도 잘 사는’ 그냥 도면생산공장의 기계부품에 불과할 뿐
몸뚱이는 혹사 당하면서도 머리만은 꽃사슴이고 싶은 허깨비 예술가였다.
창밖에 수많은 노동조합 깃발이 물결을 이루고, 노동해방을 외치거나 말거나.
길가에 진달래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지고, 흰 눈이 낙엽처럼 흩날리거나 말거나.
쌓여가는 스텐레쓰로 얼굴은 창백하고,
빨래판 같은 가슴패기에 소화불량으로 불룩한 아랫배는 이티를 닮아갔다.
그게 다 십여 년 낮으로 밤으로 하루 10시간이 넘는 줄기찬 도면생산예술(?) 덕분이었지.
늘야근 또철야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그렇게 몸과 마음이 멍들어가는 동안
한쪽에선 고고하신 순수공간종합예술 ‘거장’들께서 뇌물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부(문화관광부)가 지정한 ‘건축문화의 해’에 말이다.
“시공社선정 뇌물심사 ○○○서울대교수 기소 ([문화일보] 1999-04-01(사회)사설27면03판) /
뇌물수뢰 교수 기소 ([세계일보] 1999-04-02(사회)뉴스27면45판) /
조경공사 입찰심사관련 수뢰 ([대한매일] 1999-04-02(사회)뉴스21면05판) /
정부발주 공사 ‘입찰심사 로비’실태 ([조선일보] 1999-05-09(종합)기획.연재04면45판)
- 골프접대는 기본…돈봉투 공세 심의위원에 공사비 입찰 전후 ‘인사’; 업체들 로비 부인; 자문-연구비 명목 /
입찰비리 교수 46명 적발 ([세계일보] 1999-11-29(사회)뉴스23면40판)” ㆍㆍㆍ
이런 ‘개××들’을 봤나... -_-
“ ‘삶의 터전 문화의 바탕’이라는 슬로건 아래 건축의 인간화, 전통의 재창조, 시민과 호흡하는 건축, 건축자산의 정리와 해석,
환경에 대한 대안모색”이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회’ 주요 사업이란다.
저 거창한 슬로건과 주요사업이 뇌물교수들에겐 무슨 의미일까?
내 나쁜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다... -_-
▲ 자료출처: 토건부패를 해부한다. 경향과 경실련
http://blog.daum.net/kimhd/18308762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 블로그)
2000년 1월 서울 강남 관세청사거리 건설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WTO 체제에 대비한 건축교육 및 건축사제도 개선 공청회 (대한건축학회 주최).
내용이 뭐 그리 거창하고 복잡하던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론은,
건축교육을 4년제에서 5년제로 바꾸고 무슨무슨 인증원에 무슨무슨 등록원을 세우는 것만이
설계시장개방의 유일한 대안이라 했다.
그들의 의도대로 ‘꿈(★)은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어떤가?
교수들의 밥그릇이 튼튼해진 대신, 학생들은 학업을 포기한 채 생업에 매달리기도 하고
또 한 켠에선 등록금을 비관하여 목숨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도 생겼다.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공청회 2부 - 질의응답시간에 방청석의 어느 학생이 물었다.
“4년제에서 5년제로 바뀌면 학생들의 (경제적)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닌가...”
그러자 발표자로 나온 모 대학의 ○○○교수 (이 자는 언젠가 T.V.에 나와, 박정희 군사반란 정권 아래서
‘행정수도이전 백지계획’에 참여했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인터뷰 했다.)라는 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부담되면 등록금 싼 나라 가서 배워라...”
발표자로 앞에 나와 앉은 자들은 저희들끼리 일제히 구역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들이 누구의 피땀으로 저 자리에 앉아 당당하게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나?
2000년 늦은 봄, 설계노조(서울경기지역설계노동조합-지금은 해산하여 깃발이 사라지고 없는)에
임금체불 상담이 들어왔다. 경력5년차의 어느 여성설계노동자.
이미 잘 알려진 설계사무소의 저임금ㆍ장시간 노동은 그렇다 치고,
그나마 쥐꼬리만한 월급과 근로기준법을 비웃는 불법적인 야근비 마저도 5개월째 체불하고 있다고.
같은 사무실에 함께 다니는 신랑도 마찬가지 상황에, 소장은 그 부부의 대학교 선배였다.
선배라는 이유로 차마 법적 절차까지는 밟지 못한 채 마냥 몇 개월을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갓난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또 얼마를 고민하며 기다리다가 설계노조를 찾아왔노라고.
아이엄마는 끝내 눈물을 쏟았고, 상담하던 노동조합 상근자는 그 황당함과 치 떨리는 울분에 그만 함께 울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설계사무소 사용자(소장)는 건축언론과 건축단체는 물론이고 일부 중앙언론과 T.V.에도 가끔 나오던,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제법 알려져 있는 ‘건축가’님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출신대학에선 또다시 착취할 예비대상-예비거장들을 상대로 교수님 행세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담을 다녀간 몇 달 뒤 그 사무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모의(?)하다가 결국 이러저러한 압력과
인간적 배신감에 모두 퇴사해버렸다고 했다.
안(제 설계사무소)에선 후배들을 상대로 노동갈취와 노조(결성)탄압을 하면서
바깥(학교)에선 인자하신 교수님 행세에, 능력과 진정성이 있는 건축가 행세를 하는 자가 건축판에 어디 한두 인간인가.
우째 이런 일이 건축판에서 가능한 걸까? ...
건축판에도 과거사 청산의 날이 올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