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誌디지 玄檃현은 檀君朝鮮단군조선 檀君時代단군시대의 彊域강역은 攷據고거(헤아릴근거)가 無무하나 古史고사에 云운호대 檀君단군은 堯요로 幷立병립하신 神聖신성이라 하고 書서에 曰말호대 舜순이 十三州십삼주를 肇조할새(기초를만들때)幽유 幷병營영三州삼주는 東北동북에 在재한(있는)地땅이라 하니 旣曰기왈(이미말한바) 肇조라하면 三州삼주가 堯時요임금시에는 未有미유함(있지않음)이 明確명확 할뿐 不是불시(아니)라. 舜순임금이 諸馮제풍에셔 生생하야 東夷人동이인이라 稱칭하얏시니 然則연즉(그런즉) 諸馮제풍은 遼瀋等地요동심양등지에 接近접근(근접)하고 遼瀋等地요심등지는 朝鮮舊彊조선구강(옛강역)이 無疑무의하도다(의심할여지가없다). 故고로(그런까닭에) 安順福綱目안정복강목에 曰말호대檀君疆域단군강역은 可攷가고(올바르게고찰)가 無무하나 箕子기자ㅣ 檀君단군을 代대하야(대신해서) 遼瀋等地요동등지를 統治통치하얏신즉 檀君時단군시에도 同然동연할(마찬가지) 것시오. 後후에 檀君子孫단군자손이 箕子기자를 避피하야 北遷북천하고 舊疆구강(옛강역)은 箕子版圖기자판도에 入입하다(들어갔다) 하니 檀君子孫단군자손의 北遷북천하얏든 北扶餘북부여는 遼東요동의 北북 千餘里천여리에 在재한즉 遼瀋等地요동등지가 檀君疆域단군강역에 屬속함은 明確명확하도다. (1908년 04월 25일 대한협회회보 제1호)
箕子朝鮮기자조선 殷道旣衰은나라의 도가 이미쇠함에 箕子기자ㅣ 殷人은나라사람 五千오천을 率인솔하시고 東渡遼水(동으로 요수를넘어)하야 避入朝鮮(조선으로피난하여들어옴)하샤 平壤평양에 定都정도하시니 其그 彊域강역은 漢水한수 以北이북으로 遼河以東요하이동을 包含포함한지라. 故고로 唐書당서에 溫彦博온언박이曰왈 遼東요동은 本본래 箕子國기자국이라하고 裴矩배구ㅣ曰왈 高麗고구리국本본래 孤竹國고죽국으로 箕子기자ㅣ 以爲朝鮮이위조선(조선을다스리다)이라 하고 遼金史요금사에 曰왈 遼東요동 廣寧광녕은 皆箕子古地(모두기자의옛땅)라하고 涵虛子함허자의 天運紹統천운소통에 曰왈 朝鮮조선은 在安東國之東(안동국의동에있으니)하니 古肅愼氏地(옛숙신씨땅)라하고 文獻通攷문헌통고에曰왈 咸平路함평로는 古箕子地고기자지라 하고 盛京誌성경지에 曰왈 瀋陽심양 奉天府봉천부와 義州의주 廣寧等地광녕등지가 皆朝鮮界(모두조선경계)라하고 廣寧城광녕성 北五里地북오리지에 箕子井기자정이 有유하니 井傍정방에 箕子廟기자묘가 有유하야 冔冠후관(면류관)을 戴재하신(머리에 이고있는) 塑像소상으로 奉安봉안하얏더니 我明宗朝時명종조때〔明國명나라 嘉靖年間가정년간〕에 爲兵火所燒(병화로 불탔다)하니라. 然則연즉 遼東요동의 太半태반이 箕子 疆域기자강역은 明確명확하거늘 後孫후손이 驕虐無道(교만포학무도)하기로 燕人연나라사람 秦開진개의 侵奪침탈을 被피하야 西界千餘里서쪽경계천여리를 失실하고 滿潘汗만번한으로 爲界위계(나라의경계)를삼으니 朝鮮조선이 遂弱수약하니라(마침내약해짐이라). ( 1908년 05월 25일 제2호) ◆ 裴矩 547년 ~ 627년)는 중국 수나라의 정치가로, 자(字)는 홍대(弘大)이며 하동군(河東郡) 문희현(聞喜縣) 사람이다.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隋), 당(唐)의 4왕조에서 7명의 군주를 섬김,저서로는 《서역도기((西域圖記)》 3권 등이 있다(인용 위키백과) ◆ 涵虛子 영헌왕 주권(寧獻王 朱權, 1378년 5월 27일 ~ 1448년 10월 12일)은 중국 명나라의 황족 종실 겸 극작가이며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서자이다. 생전에 황족 종실, 군인, 정치인, 녹차 음미 전문가, 고금 연주가, 음악이론가, 음악평론가, 극작가, 낭만주의자, 봉건주의자, 역사가, 희곡이론가, 문학평론가로 활약한 그는 명나라 초기에 명 황실에서는 보기 드문 그야말로 다재다능했던 팔방미남이라 일컬어진 낭만주의자이자 봉건주의자였다. 1391년에 부황 홍무제(洪武帝)로부터 영왕(寧王)에 책봉되었다. 이후 홍무제가 붕어하고 이복 조카 건문제(建文帝)가 등극하였다가 정난의 변으로 인하여 건문제가 폐위 축출되고 이복 서형 영락제(永樂帝)가 등극한 이후 1403년 남창왕(南昌王)에 개봉되었다. ◆ 箕子井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이 말하였다. 이정(李靖)과 두우(杜佑)는 모두 정전(井田)이 황제(黃帝)에게서 시작된 제도(制度)라고 하였다.그렇지만 경서(經書)에 근거하지 않은 설(說)이다. 기자전(箕子田)만이 지금도 경계(經界)가 완연하여 맹자(孟子)가 이른바“은인(殷人)은 칠십 묘(畝)”라고 한 말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또 정(井)자로 밭을 나누는 것은 고대의 제도가 아니고 실제로는 주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이 말하였다. 정전(井田)이 평양(平壤) 남문(南門) 밖에 있는데, 밭 가운데 우물이 있으니 ‘기자정(箕子井)’이라고 이름한다.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이 그 제도를 궁구하고자 은나라와 주나라의 보수(步數)의 차이와 척촌(尺寸)의 길이를상고하여 묘마다 나누어 계산하여 그 구획(區劃)을 분변하니 매 칠십 묘마다 각각 작은 경계가 되어 세로 가로로 모두 여덟이니, 통털어 계산하면 예순 네 개의 구획이 하나의 큰 경계가 되어 반듯반듯하게 논길이 몇 리에 뻗친다. 함구문(含毬門)과 정양문(正陽門) 사이가 가장 분명하다하여 이에 “정전설(井田說)”을 지어 은나라와 주나라의 토지제도가 동일하지 않음을 밝히니 그가 호고(好古옛것을즐김)에 독실함이 이러하였다. 인용 송남잡지 농정류
평양지도(平壤地圖) 8폭 병풍, 각 폭 107.6 × 37.5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19세기 말 평양지도(平壤地圖) 8폭 병풍 中 7-8폭 기자묘와 정전 평양성도(平壤城圖) 10폭 병풍, 면본채색, 163.5 x 377.5cm, 국립중앙박물관 평양성도(平壤城圖) 中 1-2폭 부분 부벽루 와 앞에 기암괴석 평양성도(平壤城圖) 中 3-4폭 청류벽 과 백은탄 3폭 中 용신당 과 청류벽 윤유(尹游)가 편찬한 『평양속지(平壤續志)』에 수록된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 1730년 김부식은 평양의 형세를 “북쪽은 산을 등지고 3면이 물에 막혀 있다” 해동지도(海東地圖- 평양부(平壤府) 평양명승 대동강반의 청류벽 부벽루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영명사와 부벽루 1930 부벽루 김홍도 관서십경도中 평양부벽루 국립중앙박물관 한반도에만들어진 초라한 모습 ㅡ그러나 평양기성도의 웅장한성벽 과 부벽루앞 기암괴석 그리고 이어진 기암괴석으로된청류벽 김홍도작품으로전해지는 그림에도 부벽루앞 기암괴석
衛滿朝鮮위만조선 箕子二十五世孫 기자25세손哀王애왕〔準준〕時때에 燕人연나라인 衛滿위만이 聚黨취당(무리를모아)千餘人천여인하야 藩屛번병(울타리)되기를 求구하거늘王왕이 信신하야 博士박사를 拜배하고 百里백리의 地지로 封봉하야 西鄙서곽(서쪽외곽)를 守수(지키게)케 하얏더니 哀王 二十八年애왕28년 丁未정미년에 滿만이 王왕에게 詐告사고(거짓으로 고)하되 漢한〔惠帝時혜제때〕兵병사이 十道십도로 來侵래침하니 請入宿衛청입수위(들어가 지키게해달라청함)라 하고 襲擊습격하거늘 哀王애왕이 戰전하야 不敵대적하지못함으로 國人국인 數千수천을 率솔하고 浮海南遷부해남천하야 馬韓地마한땅에 居거하니라. 衛滿위만이 箕氏기씨 舊邦구방(옛강역)을 誘奪유탈(유인탈취)하야 朝鮮王조선왕이라 自稱자칭하고 平壤평양에 都도읍하니其 彊域그강역은 西北서북으로 滿潘汗만번한에 至지하고(다다르고) 其 傍그방에 在재한 眞蕃진번 臨屯임둔 等 地등지를 侵幷침병(침입하여병합)하니 今지금에 東北塞外동북새외와 關北嶺東관북령동이 皆모두 其그 版圖판도이오 南남으로 漢水한수에 至지하야 三韓심힌〔馬韓마한 辰韓진한 卞韓변한〕으로 接壤접양( 다른 구역(區域)의 땅과 서로 맞닿음 )하야 地方지방이 數千里수천리러니 其그 孫후손 右渠우거가 恃强驕橫시강교횡(힘을믿고 교만횡포)하다가 漢武帝한무제에게 滅멸한바 되고 其그地땅에 四郡사군을 分寘분치(나누어 설치)하니라. 濊國 예국濊예或혹 作獩작예며 或혹 作薉작예하고 又또 名명은 蘂國예국이라 鐵國철국이라 하니 今지금에 江陵郡강릉군이 是이것이니라. 按江陵郡강릉군 東동에 濊時所築(예때만든)의 古城遺址고성유지가 尙存상존하고 古史고사에 云운호대 新羅신라 南解王時남해왕때에 溟州명주〔江陵강릉〕人인이 耕田경전하다(밭을갈다)가 濊王예왕 印인장을 得獻득헌하다 하고 三國史삼국사에 曰왈 東暆동이〔江陵강릉〕는 濊國예국의 都도읍지이라 하고 後漢書에후한서 曰왈 濊國예국은 南남으로 辰韓진한과接접하고 東동은 大海대해에 窮궁하고(다다르고) 西서으로 樂浪낙랑에 至지하다 하고 賈耽가탐의 古今郡國志고금군국지에 曰왈 新羅北界신라북계는 古옛날 濊國예국이라 하니라. 貊國맥국 貊國맥국의 都도는 春川郡춘천군 北十三里북13리 昭陽江北소양강북에 在재하니라(있나니라). 按貊國始末맥국의시말은 文獻문헌이 無考무고하야 昭詳소상치(자세하지) 못하거니와 高麗史고리사 地理志지리지에 曰왈 春州춘주〔春川춘천〕는 本貊國본래맥국이라 하고 韻會운회에 曰왈 濊貊예맥은 東夷國名동이국명이라 하고 貨殖傳화식전에 曰왈 東동으로 濊貊朝鮮 예맥 조선을 綰축함(통제함)은 眞蕃진번의 利이로움이라 하며 又또 曰말하길 濊貊예맥은 朝鮮조선과 連界연계한 國名국명이니 國나라은 异이(다르다)하니라. 沃沮옥저 東沃沮동옥저는 今지듬의 咸鏡道함경도이오 北沃沮북옥저의 一名일명(다른이름)은 置溝婁치구루니 南남으로 南沃沮 남옥저 와 相距상거(서로간 거리) 八百餘里백여리오 南沃沮남옥저의 彊域강역은 文獻문헌이 無무하니라. 按東史會網동사회강에 曰왈 東沃沮동옥저는今지금 咸鏡道함경도라하고 後漢魏書후한위서에 曰왈 東沃沮동옥저는 高句麗國 고구리국蓋〔音合〕馬大山개마대산의 東동, 東海濱동해물가에 在재호대東西동서 狹협소하고 南北남북은 長장하야(길어서) 北북으로 挹婁읍루扶餘부여와 接접하고 南남으로 濊貊예맥과 界계하다 하고 三韓會土記삼한회토기에 曰왈 本國山脈 본국산맥이 蒙羅骨嶺몽라골령으로셔 長嶺山장령산이 되고 頭里山두리산이 되고 白頭山백두산이 되고 蓋馬山개마산이 되니 其그下아래에 東沃沮동옥저가 有유하다(있다) 하고 又또 云운호대 蓋馬山脈개마산맥은 回회하야(돌아서) 鐵嶺철령이 되고 西南脈서남맥이 劍池山검지산으로 松嶽송악이 되야시니 今지금에 咸鏡함경 平安평안 兩道間양도간에 嶺賚령뇌이 數百里수백리를 連亘연긍한(길게뻗은) 者것이ㅣ 蓋馬山개마산이라 하니 今에 咸鏡道함경도가 東沃沮동옥저 彊域강역이 됨은 無疑무의(의심의여지가없고)하고 魏書위서에 曰왈毋丘儉모구검이 高句麗고구리를 討토벌함에王왕〔東川王동천왕〕이 南沃沮남옥저로 奔분하거늘(빠르게) 進擊大破진격대파하니 王왕이 北沃沮북옥저로 又또 奔분하다(빠르게) 하고 又 云호대 北沃沮북옥저의 一名일명은 置溝婁치구루니 南沃沮남옥저와 相距상거 八百餘里팔백여리라하고 高句麗고구리 本記본기에 曰왈東明王동명왕 十年10년에 扶慰厭(부위염)을 命명하야 沃沮옥저를 滅멸하고 其그 地땅에 城邑성읍을 寘전하니(두니) 今에 咸鏡北道함경북도에 在재하다 하고 南沃沮남옥저의 彊域강역은 可攷가고(전고)가 無무하니라. 扶餘부여 東北동북兩扶餘양부여의 稱칭이 有유하니 遼東요동의 北북에 在재하니라. 按安鼎福 綱目안정복강목에 曰왈 北扶餘북부여 遼東요동의 北千餘里북 천여리에 在재하니 檀君단군이 世衰세쇠(세력이쇠퇴)함에子孫자손이 北遷북천하다하고 三韓古記삼한고기에 曰왈 檀君단군의 後孫후손이 箕子기자를 避피하야 扶餘부여에 立國립국하고 (나라를세우고)北扶餘북부여라 號호(이름)하얏다가 後후에 迦葉原가섭원으로 徙사하야(옮겨서) 東扶餘동부여라 稱칭하다 하고 後漢書후한서에 曰왈 扶餘부여는 玄菟현토의 北千里북천리에 在재하니 南남은 高句麗고구리오 東동은 挹婁읍루오 西서는 鮮卑선비로 接界접계하다 하니라. 1908년 06월 25일 제3호 ◆ 賈耽가탐 중국(中國) 당나라(唐--)의 정치가(政治家)ㆍ지리학자(地理學者)(730~805). 자(字)는 돈시(敦詩). 지도(地圖) <해내화이도(海內華夷圖)>를 제작(製作)하였고 지지(地誌) ≪고금군국도현사이술(古今郡國道縣四夷述)≫을 저술(著述)
四郡사군 馬韓마한 孝王효왕(亨형)六年6년 癸酉계유년에 漢武帝한무제가 衛右渠위우거를 滅멸하고 其 그地땅를 分분하야(나누어서) 四郡사군을 寘전하니(두니)一曰일왈 樂浪낙랑이니 郡治군치는 朝鮮縣조선현(今금 平壤평양)에 在재하야 二十五縣25현을 領령하고 一曰일왈 臨屯임둔이니 郡治군치는(다스리는 군) 東暆縣동이현(今금 江陵강릉)에 在재하야 十五縣15현을 領령하고 一曰일왈 玄菟현토니 郡治군치는東沃沮城동옥저성(今금 咸興함흥)에 在재하야 三縣3현을 領령하고 一曰일왈 眞蕃진번이니 郡治군치는 霅縣잡현今금 遼東地요동땅로되 確據확실한근거)가 無무하고 金崙김륜이 曰왈 寧古塔近處영고탑근처가 似是사시<이와비슷하다> 하니라)에 在재하야 十五縣15현을 領령하니라. 二府이부 馬韓마한 孝王효왕(亨)三十二年32년 己亥기해년에 漢昭帝한소제가 四郡사군은 遐遠難治하원난치하다(아득히먼곳은다스리기 어렵다) 하고 平那평나(卽즉 眞蕃진번)玄菟현토 等등 郡군을 合합하야 平州都督府평주도독부를 高句麗縣고구리현(淸統志청통지에 云운호대 咸興府함흥부 東北동북에 在재하니 西南서남으로 洛陽낙양과 相距상거 四千里4천리라 하니라)에 寘전하고(두고) 臨屯임둔 樂浪낙랑 等등 郡군을 合합하야 東部都督府동부도독부를 不耐城불내성(淸統志청통지에 云운호대咸興府함흥부 北북에在재하니 西南서남으로 洛陽낙양과 相距상거 五千里 5천리 라 하니라)에 寘전하얏다가 馬韓元王마한원왕 箕勳기훈 二十二年22년 甲申걉신년(漢元帝한원제 建昭건소 二年2년)에 高句麗고쿠리 東明王동명왕 高朱蒙고주몽이 二府이부의 地땅를 幷奪병탈하니라(탈취하여병합하니라). 馬韓마한 朝鮮 哀王조선애왕(箕準기준)二十八年28년 丁未정미년에 王왕이 衛滿위만을 避피하야 南남으로 金馬渚금마저(今 益山익산)에 至지하야 都도를 定정한 後후에 國號국호를 馬韓마한이라 하고 五十四國54국을 統治통치하더니 稽王계왕(箕貞기정)四十一年 41년己巳기사년에 百濟백제 溫祚王온조왕에게 滅멸한바 되니라. 按益山郡익산군 龍華山용화산(一名일명 彌勒山미륵산)에 石城석성이 有유호대 周廻주회(둘레)가 三千九百尺3900척이니 世傳세전(세상에전해지길)호대 箕準기준의 築축한바라 하고 古史고사에 曰 왈馬韓마한의 統治통치한 五十四國54국이니 爰襄國과 牟水國과 桑外國과 小石索國과 大石索國과 優休牟涿國과 臣濆活國과 伯濟國과 速盧不斯國과 日華國과 古誕者國과 古離國과 怒藍國과 月支國과 咨離牟盧國과 素謂乾國과 古爰國과 莫盧國과 卑離國과 占卑離國과 臣釁國과 支侵國과 狗盧國과 卑彌國과 監奚俾離國과 古蒲國과 致利鞠國과 冉路國과 兒林國과 駟盧國과 內卑離國과 感奚國과 萬盧國과 辟卑離國과 舊斯烏朝國과 一離國과 不離國과 支半國과 狗素國과 捷盧國과 牟盧卑離國과 臣蘇塗國과 古臘國과 臨索半國과 臣雲新國과 如來卑離國과 楚山塗卑離國과 一難國과 狗奚國과 不斯濆邪國과 爰池國과 乾馬國과 楚離國과 不雲國이라 하니라. 1908년 07월 25일 4호
辰韓진한 秦人진나라인이 苦役고역을 避피하야 馬韓마한에 入입하거날 馬韓마한이 其그 東界地동계지를 割與할여(떼어서줌)하야 馬韓마한으로 同時동시 立國립국하니 慶州경주에 都도읍를 定정하고 十二國12국을 統治통치하더니 馬韓마한 元王원왕(箕勳기훈)二年2년 甲子갑자에 新羅신라 赫居世혁거세에게 有유한바되니라. 按輿地勝覽여지승람에 曰왈 朝鮮遺民조선유민이 山谷間산곡간에 分居분거하야 六村6촌을 成성하니(이루니) 一曰일왈 閼用楊山村알용(천)양산촌이오 二曰이왈 突山高墟村돌산고허촌이오 三曰삼왈 茂山大樹村무산대수촌이오 四曰사왈 觜山珍支村취산(혹 자산)진지촌이오 五曰오왈 金山加里村금산가리촌이오 六曰육왈 明活山高耶村명활산고야촌이니 此차(이것)를 辰韓六部진한육부라 하고 同文廣考동문광고에 曰왈初초의 朝鮮王조선왕 右渠우거가 未敗미패할 時시에(패하기 전에) 其그 相歷谿卿상력계경이 諫言간언을 不用불용함에(쓰지않음)故고로 東동으로 辰國진국에 入입하니(들어가니) 人民인민의 隨去수거한 者자(따라간자)ㅣ 二千餘戶2천여호라 하고 杜佑通典두우통전에 曰왈 辰韓地마한땅에 六國6국이 始有시유하야 楊山양산과 高墟고허와 珍支진지와 大樹대수와 加利가리와 高耶고야로 辰韓六部진한육부라 稱칭하더니 後후에 稍稍益分초초(점점)익분하야 十二國12국이 되다 하고 魏書위서에 曰왈 辰韓진한의 王왕은 自立자립치 못하고 馬韓人마한인으로 世世相繼세세상계함은 流寓유우한(떠돌아다니는) 人(사람)인 故고로 馬韓마한의 節制절제한바되다 하고 古史고사에 曰왈 辰韓진한의 統治통치한 十二國12국이니 己秖國과 不斯國과 弁辰彌離彌凍國과 弁辰接塗國과 勤耆國과 難彌離彌凍國과 弁辰古資彌凍國과 弁辰古淳是國과 弁辰半路國과 冉奚國과 弁樂奴國과 軍彌國이라 하니라. 弁韓 변한一名일명은 卞韓변한이니 馬韓마한 辰韓진한으로 同時동시 立國립국하야 金海郡境김해군경에 都도읍를 定정하고 十三國13국을 統治통치하다 하나 其그 區域구역은 未詳미상하고(확실하지않고) 百濟元王백제원왕(箕勳)二十年12년壬午임오년에 新羅신라에 降(항복)하니라. 按唐書당서에 曰왈 弁韓변한은 樂浪地낙랑지에 在재하다 하고 許穆허목이 曰왈 弁韓변한은 樂浪낙랑의 苗裔묘예(먼후손)라 하니 兩說양설(두가지 견해)에는 四郡사군의 樂浪낙랑으로 皆(모두) 稱칭하야시나 慶州郡경주군의 古號고호(옛이름)가 樂浪낙랑인즉 確言확언키(확실하게 말하기) 難난하고(어렵고) 古史고사에 曰왈 弁韓변한의統治통치는 十三國13국이니 弁軍彌國변군미국과 弁辰彌島邪馬國변진미도사마국과 如湛國여담국과 弁辰甘露國과 州鮮國주선국과 戶路國호로국과 馬延國과 弁辰狗邪國과 弁辰走漕馬國과 弁辰安邪國과 弁辰瀆廬國과 斯盧國사로국과 優中國우중국이라 하니라. 右우의 見한 바 馬韓마한 辰韓진한 弁韓변한을 三韓삼한이라 稱칭하나니 大抵대저(대체로 보아서) 三朝鮮時삼조선시에는 漢水以南한수이남에 無數무수한 部落부락이 有유호대大者대자(큰무리)는 萬戶만호와 小者소자(작은무리)는 六七百戶육,칠백호로 城郭성곽이 無무하고 山海間산해간에 散處산처(흩어져서 거처)하야 各其각기渠帥거수(우두머리)의 稱號칭호가 不同부동하니(같지않으니) 大者(큰무리) 臣智신지라 하며 其그 次차(다음)는 險側험측이라 하며 其 次는 焚濊번예라 하며 其 次는 殺奚살계라 하며 其 次는 邑次읍차라 하고 統率통솔하는 君長군장이 無무하더니 哀王箕準애왕기준이 南遷남천한 後후로 三韓삼한이 鼎峙정치(정립)하야 七十九國79국을 分割統治분할통치하고 三韓삼한 外외에도 諸小邑제소읍(모두 작은읍)이 又또 有유하야 渠帥거수(무리의 우두머리)가 各각 據거하니라.徐居正서거정이 曰왈 三韓삼한에 統통한 바 七十餘國70여국이 陳壽三國誌진수삼국지에 見견하얏신 즉 必是鑿空필시착공(헛된공론)한 造語조어(만든말)가 아니로대 東史동사에 失傳실전하야 可考가고가(헤아리기가) 無무하다 하고 新羅신라 崔致遠최치원이 曰왈 馬韓마한은 今지금의 高句麗고구리오 辰韓변한은 今금의 新羅신라오 弁韓변한은 今의 百濟백제라하고 魏書위서에 曰왈 諸韓제한(모두 한)은 帶方郡대방군의 南남 在재하니 東西동서는 海해를 距거하고(떨어져있고) 南남은 倭왜를 接접하야 地方지방이 四千里사천리오 馬韓 辰韓 弁韓의 三國삼국이 有유하니 馬韓마한은 箕準기준의 故國고국이오 辰韓진한은 帶方대방의 辰方진방(동쪽방향)에 在재한故로 名稱명칭이오 或혹은 曰왈 秦時亡人진시망인(진나라가망할때사람들)이 來居래거한(와서 거처한) 故고로 秦韓진한이라. 亦역시 稱칭하니 大抵(대체로) 馬韓마한은 西서에 在재하고 辰韓진한은 東동에 在재하거니와 弁韓변한은 兩韓間양한간에 介개하야(사이에 끼어서) 辰韓진한과 雜處잡처하다하나 其그 區域구역은 莫知막지(모르다)라 하니라. 1908년 08월 25일 제5호 ◆杜佑(두우):당나라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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