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아는 분의 초대로 크리스토퍼 박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박은 리차드 용재 오닐과 조수미 독일 가곡 음반의 반주자로 활약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독일인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한국-독일계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데뷔 음반(russian transcription)도 러시아 곡들 위주였고, 이번 독주회도 러시아 곡들이 메인이었습니다.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더군요.
프로그램은,
1부
니콜라이 카푸스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리스트: 단테 소나타
베토벤: 열정 소나타
2부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중 3개의 소품(머큐시오, 몬태규가와 케플릿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별)
라흐마니노프: 데이지(Op.38 No.3), 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
스트라빈스키: 페트로슈카에 의한 세 개의 악장(러시아춤, 페트로슈카의 방, 축제)
1987년생의 어린 피아니스트 답게 일단 여성팬들한테 먹어줄만한 외모였고(근래 본 음악가들 중엔 스테판 재키브와 쌍벽을 이루는 듯?), 쇼맨십도 있어서 참 귀여웠습니다(특히 디토 좋아하시는 팬들이 좋아할만한 듯). ^^*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곡은 곡 자체가 상당히 jazzy한 감이 있었는데 역시 젊어서 그런지 그런 groove한 감을 잘 살려 내더군요. (들으면서 재즈 피아노 했어도 되겠네~?하고 느꼈습니다). 첫 곡부터 상당히 자신만만하게 쇼피스적인 곡을 쳐내더군요. (손가락 돌아가는 거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더라는..;;) 단테 소나타는...음...한 30~40년 후에 치면 잘 치겠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기교는 딱히 흠 잡을 만한 곳이 없었지만, 단테 소나타의 그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연은 아직 젊은 그릇이 담아내기엔 많이 모자란 것 아닌가, 언제 들어도 이 곡은 고단한 인생역경을 헤치고 다시 피아노 앞에 선 노대가가 칠 만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토벤 '열정'은 제 취향이 아니었던 연주였긴 했지만 시원~하고 호탕하게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좋아할만하더군요(갠적인 취향은 섬세하고 슴슴한 연주 쪽이라..;;).
그래서 1부를 그냥 그렇게 시큰둥하게(?) 보냈는데, 2부 들어오면서는 연주자도, 저도 분위기가 확~바뀌었습니다. 연주자는 비로소 자신의 장기인 러시안 레퍼토리가 나오니 피아노를 대한 태도가 훨씬 자신만만해졌고, 저도 자세를 고쳐 앉고(?) 곡에 빠져 들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살짝 배배꼬인듯한 리듬의 머큐시오, 뮤지컬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몬태규가와 케플릿가(번스타인의 west side story가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인지요! ㅎ), 젊은 연인들의 영원한 이별을 그려낸 로미오와 줄리엣이 젊은 연주자의 감성과 잘 맞는 수연이었고, 라흐마니노프의 '데이지'에서 한 숨 돌린 후, 그 악명 높은 '사랑의 기쁨'도 단숨에 쳐내더군요. (들을 때 마다 라흐마니노프가 날씬한 아가씨를 뚱뚱보 아줌마로 바꿔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지만요 ^^;;;) 아무래도 체력이 받쳐주다보니...;;
그리고 '페트로슈카에 의한 세 개의 악장'..제가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해서 발레(동영상)로도 보고 음반도 가지고 있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작품을 그야말로 '꿰고' 있더군요. 같이 간 일행 분들 중엔 처음 페트로슈카를 접한다는 분도 있었는데, 그 분께서도 무척 흥미롭고 재밌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연주 끝나자마자 커튼콜 많이 안 받고 거의 연달아 앵콜을 해주었는데, 인심이 후했는지 아니면 이제 갓 데뷔한 신예로서 국내팬들한테 잘 보일려고 어필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앵콜도 난이도 있는 곡으로 세 곡씩이나 해주더군요(3부였습니다..ㅎㅎ). 특히 모짜르트 곡을 아주 재미있게 쳐서 많은 환호를 받았습니다. ㅎㅎ (금붕어 아이큐라 곡명은 기억이 안납니다...;ㅁ;)
주된 레퍼토리가 아직 러시아쪽에만 국한 되어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아직 젊고 잘 생긴 외모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장점도 있고, 국내에 그 나이대에 경쟁할 피아니스트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마리솔은 후기도 참 맛깔스럽게 잘 쓰네요..좋은 시간 이였던것 같아요..고마웠어요..암만봐도 영화 마리솔의 주인공을 많이 닮은 것 같아..ㅎㅎ
음 저도 크리스토퍼 박 연주 듣고 왔는데요.. 전 직접 표를 구입하였지요 ㅎ 저도 1부는 좀 시큰둥하였으나, 2부에서 푹 빠졌습니다 ~ 특히 스트라빈스키 대단하던데요! 모차르트 소나타(일명 터키행진곡)도 즐거웠고, 제가 좋아하는 브람스 인터메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박의 라시이틀은 함께 즐기고 온 기분이 듭니다^^
전.. 1부 마지막 곡이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이 좋았어요.
백건우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때의 열정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산빡한 느낌!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