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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23) - 노창수 시인
“산야에 전쟁이 꽃피고 있었다 서릿발도 마다 않고 저리 곱게...”
“고통이 환히 켜진 표정의 신호에도/피난행 열차는 늘 멈추지 않았다”
향토적 서정성 바탕 서민적 애환 역사의식으로
삶의 의지·끈끈함등 전라도 기질 재생의 공간화
오염된 현실세계 극복할 정의의'단단한 시'갈망
2003. 10.08(수) 00:00
노창수(56, 광주시교육청 장학관, 전남대․조선대 겸임교수)시인은 시인이자 시조시인, 그리고 평론가로 이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교육자이다. 그의 작품 특성은 향토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서민적 애환이 역사의식으로 용해돼 있다. 그는 시를 통해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이 겪은 인간적 고통의 과거 체험을 민족사적 견지로 확장하여 해석하고 형상화한다.
그의 시는 끈끈한 전라도 기질과 향토성이 짙은 시적 서정에 정서적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고, 자아에 대한 성찰을 소외된 자의 아픔을 대신해 아파하는 자세를 견지하기도 한다. 또한 그동안 꺾여지고 훼손된 역사의식을 함께 걱정하며 대안을 찾는 시쓰기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그의 시를 보면 시적 자아에 대한 성찰을 기저로 한 따뜻한 정감이 느껴진다. 그의 관심의 대상은 농민, 봉급생활자, 장애인과 같은 일상적인 삶의 군상들이다. 노시인은 그들의 아픔에 대해 먼저 아파하고, 늦게까지 아파하며, 그것에 눈 돌리려는 자들에게 아픈 상처를 들쑤셔 낸다. 그는 못 가진 자의 아픔과 괴로움을 미리 알고 그 시적 해결을 시도한다. 시 속에 나오는 군상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이처럼 그는 아파하는 여러 군상들을 자신이 겪은 고통이나 불행처럼 차분하게 정리해 드러내고 누가 보아도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도록 형상화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삶의 의지, 끈끈함, 토착어에 의한 전라도의 기질이 그대로 개성적인 그의 시세계에 잘 반영돼 나타난다. 전라도 기질뿐만 아니라 그가 작품 세계로 선택하고 있는 무대나 배경 또한 전라도 공간이며, 이 공간은 현실과 역사 깊숙이 투입돼 있는 재생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서사적인 무대로 환치되고 있는 ‘들국화’나 ‘겨울 학다리역에서’는 물론, ‘겨울 고성리에서’ 또는 ‘무등의 맥으로’ 등 어느 작품을 끌어와도 그것은 전라도의 공간이며, 전라도적 삶의 모습과 현장이다. 그는 이 현장 속에 깊이 침잠하고 투입되어서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거나 절망과 고독에 갇혀서 한줄기 빛을 구하고 있다.
“산야에 전쟁이 꽃피고 있었다./꽃을 꺾어 병사들은/수통에 제각기 고향 한 묶음을 꽂고/핏빛 맴도는 노을 눈을 들었다./불현 듯 스치는 포성의 아픈 신호/끈적거린 등 뒤론 기억이 묻어 왔다./개나리 울타리 그리도 흐드러진/고향의 짙은 색깔 몸살로 부대끼며/노을 실한 삶의 의욕 앞에/빽빽한 그 기도 한 손모음을/허공에서 듬성듬성 솎아내고 있었다./피아골 기슭에 놓아 두었던/한 자루 무기와의 작별의 후퇴/고통들은 산야마다 울부짖어 울부짖어/혼자 오래 숨어들고/세월 몰래 눈물로 뜨겁게 깨어나/서릿발도 마다 않고 저리 곱게 피었다.”(‘들국화’전문)
이처럼 그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은 역사의 수난장인 피아골이다. 피아골에서 만난 들국화야말로 전우들 함성에 뜨겁게 깨어나 서릿발도 마다 않고 저리 곱게 핀, 새로운 시대의 밭이며 그가 절망에서 끌어 올린 시적 구원의 대상이다. 이 대상을 그는 인간적인 고뇌와 의지, 끈끈한 애정으로 상징화 시킨다.
“부러져 넘어진 아버지의 다리는/적을 향해 떨며 절뚝이다/깊이 솟아난 삶을 이루고 있었디./고통이 환히 켜진 표정의 신호에도/피난행 열차는 늘 멈추지 않았다./총 소린 돌탑의 둥근 물탱크를 돌아와/슬플 것 하나 없는 기다림의 시간에/새로이 땅땅땅 반향하며/새벽의 바늘귀 꿰는 누나의 수틀에 남아 있었다./개짖는 소리 가까이 훔쳐와/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고/낡은 이정표 표지 걸린 대합실벽에 박히며/전쟁 열차는 아버질 저 세상으로 운반하였다.”(‘겨울 학다리역에서.3’)
위 작품에서는 나와의 상관적 대상에서 아버지의 세대가 어떠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시인의 출발점이 바로 그 어느 곳도 아닌 겨울 학다리 역사의 자리며, 이 자리에서 절망과 고독을 지고 일어서는 의지와 끈끈함 또는 전라도적 기질이 용출하는 자리다. 이는 곧 노창수 시인의 믿음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신뢰성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선따라 줄긋기’에는 그가 교직현장에서 특수학교 아이들과의 경험을 묘사한 시들이 많이 보인다. ‘휠체어와 함께’와 ‘우리 한 몸이 되어’, ‘선따라 줄긋기‘가 바로 그것이다.
“연필을 꼭 잡아/이렇게 꼭/다음 동그랗게 돌리고/옆으로 쭉 그어가/자 이젠 밑으로/어때 됐지?//선을 따라 따라가다가/문득 곡예사가 된다./하이얀 종이/넓은 공중으로/높이 걸린 가느다란 줄//휘청휘청 연필 외다리/헛디딜까 넘너질까/아슬아슬 걸려서/구슬땀 흠씬 흘리고 있다.”(‘선따라 줄긋기’전문)
그는 위 시에서 시인에게 있어 외적 체험이 어떻게 내적 경험으로 이동해 한 편의 시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외적 체험을 모른 상태에서 이 시를 대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가 지체장애아의 특수학교의 교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위 시의 의미를 되새길 수가 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힘없는 손으로 연필을 쥐고 글쓰기를 배우는 그들에게서 선생님인 시인의 모습이 정겹게 드러나 보인다.
또한 외줄에 생명을 걸고 한 발자국씩 발을 떼어 놓는 곡예사처럼 시적 자아는 외줄위에서 피할 수 없는 공간에 직면한다. 장애아들과의 수업시간, 거기서 그는 곡예사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동작 하나하나 그들을 위해 온 정신을 쏟아 붓는 교육자의 모습이 진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노창수 시인의 시적 추구의 목표는 한 마디로 ‘단단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시관이며 나아가 시작(詩作)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명으로도 보인다. ‘단단한 시’란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불의, 부정, 부패, 불합리 등의 오염된 현실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순수와 정의의 지향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단단한 시’를 갈망하고 그리워한다.
그의 ‘단단한 시’의 심연에는 유년시절의 농촌체험과 그 체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의 정신과 이미지가 들어 있다. 그런데 그의 심연에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현실 극복 의지는 직설적 저항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극복하려는 방식을 취한다.
“처마가 둥글다/가난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지붕 아래는 참 둥글다.”(‘꿈꾸는 가을 밭’중에서)
“그래 세간 살림 옆구리에 되살아오는/열망의 빛 하나하나에/수줍음을 켜고/소망을 되쏘이는 거울 위에도/종소리처럼 둥글게/둥글게 헤엄치기.”(‘걸레‘중에서)
“허기가 깊던 산자락 어딘가/줄기찬 채찍으로/이 삶의 모진 근육을 받치고/뜨거워 명치 끝에 사는 기(氣)를/오늘 침 묻힌 손바닥에/둥글게 둥글게 그려낸다.”(‘괭이질’중에서)
세상을 모나게 보지 않고 둥글게 보는 시선이다. 시 ‘꿈꾸는 가을 밭’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모여 사는 모습을 둥글게 파악하고, ‘걸레’에서도 더러움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걸레질의 행위를 결국 둥글게 보고 있다. 그리고 ‘괭이질’에서도 허기를 극복하면서 줄기차게 살아온 모진 삶도 둥글게 그릴 수 있는 경지를 그는 터득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단단한 시는 부정한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 아니다. 그는 세계의 모나고 거친 부분을 모두 둥글게 만듬으로써 이를 극복하는 승화된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그의 시에서는 형식적으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서술시 형태를 취하는 경우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향토적 공간 설정과 어울리는 향토성이 짙은 전라도 방언 혹은 농사와 관련된 시어들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모심기', '마산리의 여름 1', '마산리의 여름 2', '전라도식 투정', '쟁기질' 등의 작품에 이러한 특성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내면 의식을 은유화하거나 상징적 기법을 동원하여 형상화하는 다음과 같은 작품도 평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뜬/물기 촉촉히 묻은/고독 하나 응시한다.//푸른 꽃들이 타는/목마른 소설 속에/그는 고개 숙여 걷고/어느덧/불로 태어난다.//세월이 돋는 하는가/죄의식의 옷을 걸치면/가까이/바람이 인다./거울 앞/알 수 없는 바람으로 인하여/자꾸만 날린다./자꾸 발가벗겨진다 나는.”('거울 앞에서' 전문)
'고독'은 거울 속에 들어있는 화자 자신의 은유적 표현이다. 그 고독은 '불'로, 다시 '죄의식의 옷'으로 변환된다. '바람'은 화자의 내면의식의 잠재적 양심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 바람으로 인하여 허위의식은 발가벗겨지고 결국 화자는 '진실'을 지향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한성우는 시 '월평'(한국시, 1999.4)에서 이 작품을 두고 현대시에 있어서 '의식'을 미학적 장치로 차용한 대표적인 시로 평가하면서, "시인의 의식 속에서 외적 현실이나 사물 등이 해체되어, 주체적 의지와 사상 속에 재구성되거나 변신된 사물이나 세계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의 뜻일까/지저귀는 산중살이//소 모는 고삐 손에/노을 한 장 감겨 들고//속가슴 내민 기다림/소슬바람에 퉁겨본다.”('창호지' 전문)
“넘을 듯 쏠린 허리/자진모리 밀올리며//까마득히 부려라/타오른 오르가즘//휘어져/이승의 발이/미친 듯이 웃는다.”('바람과 갈대' 중에서)
위 두 작품은 그의 시조 작품이다. 최근 들어 그는 시조 창작에 더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시’, ‘시조문학’ 등의 각종 문예지에 의욕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평자들은 그의 시조 작품을 매번 월평에서 문제작으로 주목하고 있다. 시인 이기반은 시조 '창호지'를 "시적 상상의 세계를 고도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전원 생활의 서경적 묘사 속에 스민 민감한 감촉이 중장에서 두드러졌거니와 종장에서 매듭짓는 야무진 솜씨에서 이 시조가 지니는 매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인 조주환도 시조 '바람과 갈대'를 두고 "바람부는 날, 일몰주변 바람에 쏠리고 휘어져 우는 갈대의 모습을 새로운 각도로 참신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일몰의 시적 상상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며, 일몰의 붉은 놀을 '끓는 피'와 '타오르는 오르가즘'에 각각 비유함은 참신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시조는 시적 긴장을 견지한 탄탄한 언어적 직조, 탁월한 이미지 생성의 기법, 비유의 참신함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처럼 그는 시와 시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의 시적 치열성은 나이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끊임없는 그의 문학적 열정은 한 곳에 고정돼 있지 않는 세계 곳곳의 시선을 투시한다. 그리고 반성하고 또다시 도전한다.
그는 말한다. “시의 싱싱한 줄기들을 꺾고 싶다. 꺾은 다발을 내 언어의 꽃병에 꽂고 싶다. 요새같이 오염되고 지난한 세상에 자연의 감각과 어울리는 시의 방을 꾸미면 얼마나 좋을까. 시가 생활 속에 꿈틀거렸으면 좋겠다. 지치고 짜증스런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적 삶의 시가 아쉽다.”라고.
또 그의 시적 근저에서 발견되는 것은 평화다. 그는 평화를 사랑한다. 평화를 꿈꾸는 곳, 그곳은 시의 정서가 새둥지처럼 따스하게 둥지를 튼다. 그 따스함 속에는 그가 한때 보냈던 극락강의 음유적 노래가 은은히 숨쉬고 있다. 시가 인간 정서를 표현하는데 경제적 가치를 발휘하는 최상의 서정적 형식이지만, 그가 복잡한 감정과 그들의 궤적에 대한 서사적 논의를 유보한 채 감정의 축약과 단순한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평화로움에 있는 것이다. 그는 때로 지루한 평화가 지속되더라도 시 속에서 반격을 시도한다. 시를 사랑하는 자체가 바로 평화의 소속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삼십대를 보낸 이른 새벽, 아침 둑길이 새로웠던 극락강 시절처럼, 그 평화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73년 현대시학에 시 추천돼 문단등단
노창수 시인은 1948년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에서 출생해 목포교육대학을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1987년 조선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1989년 8월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9년 조선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해 1994년 2월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찍이 197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개시했다. 그 후 1979년 전남일보(지금의 ’광주일보‘전신) 신춘문예에 ’일출‘당선과, 1990년 월간 ’한국시‘ 신인상에 그의 시 ’피리소리‘외 4편이 각각 당선됐다. 그리고 시조분야에선 1991년 계간 ’시조문학‘에 시조 ’빨래‘와 ’운남리에서‘가 추천 완료되었다. 한편, 1990년 ’표현문학‘ 신인상 평론부문에 ’현대시의 사조와 화자‘가 당선한 데 이어서 1992년 5월 ’한글문학‘ 제15집에 평론 ’현대시의 화자에 따른 작품 분석‘이 당선돼 문학평론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시집 ‘푸른 삶’(1984, 공저), ‘거울 記憶祭’(1990, 예원), ‘선따라 줄긋기’(2003, 고려문화사), ‘배설의 하이테크 보리개떡‘(2003, 미래문화사)가 있으며, 그는 국어교육 전문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바, 이 분야의 논문과 저서도 많다. ‘글짓기지도의 이론과 실제’(1982), ‘독서지도의 실제’(1985), ‘언어훈련의 실제’(1985), ‘국어과 수준별 토의수업의 실제’(1998) 등의 논문과 평론으로 ‘한국현대시의 화자연구’‘시적 체험 끌어내기’‘사물시조 접근을 통한 생활시조 쓰기’등 3백여편이 있다.
주요 문단활동 경력은 1990년 ‘시조문예상 본상’(시조), 1994년 ‘한글문학상’(평론), 1998년 ‘한국비평문학상’(평론)을 수상했으며, 현재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류문학회 회장, 광주.전남 시조시인협회 지도위원, 광주시 문인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1971년 3월 교직에 투신한 이래 14년간 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사를 거쳐 광주교원연수원 교육연구사, 광주광역시교육청 역임하고 현재는 광주광역시 교육청 중등교육과와 장학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남대와 조선대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글 = 이재창 문화부장 겸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