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7일, 필자는 땅굴을 찾는 기술자들 3명과 함께 하루 종일 전방 지역에 분산돼 있는 몇 개의 땅굴 지역을 돌아보았다. 땅굴 작업을 했던 여러 곳을 돌아보니 그 동안 민간 탐사자들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를, 그리고 땅굴의 존재가 얼마나 현실감 있는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을 지난 13년간 계속해온 골수 탐사자들의 얼굴이 정말로 거룩하게까지 보였다. 정지용씨는 13년간 땅굴에 매달렸다. 집을 팔고, 두 대의 차를 팔고, 독지가들로부터 수억원을 얻어 땅굴 탐사 작업에 인생을 묻었다. 그 과정에서 치렀던 고생, 수없이 당했던 탄압, 감금, 납치위기의 극적인 모면 등, 끔직한 일들로 채워진 그의 역정은 눈물 없이 듣지 못할 가시밭이었다.
남굴사가 이번의 절개작업 장소로 가장 역점을 두었던 25사단 지역을 가보니 예전에는 없었던 철조망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야지에 불과했던 그 지점에 느닷없이 이중 철조망이 설치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에는 그 지점 옆에 무허가 건물 한 채만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얼씬거리자, 여러 마리의 개가 동시에 짖어댔다. 우리가 보기엔 감시자였다.
1992년, 15m 정도의 깊이에서 땅굴을 발견했던 장소였다. 당시 사단장은 의협심을 가지고 신변보호까지 해주면서 민간 탐사자들과 땅굴 절개 작업을 공동으로 실시했다.
그런데 실제 15m 깊이에서 제1호 땅굴과 똑같은 형태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자, 웬일인지 사단장이 작업정지를 명령하고 민간 탐사자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 후 무허가 건물이 들어서고 개들이 짖어대더니 이제는 아예 철조망이 들어선다. 갈수록 땅굴에 대한 방해작전이 심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행이 장거리 이동을 하는 동안 정지용씨가 아슬아슬했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당시 서울에는 의협심이 강한 2성 장군이 있었다. 그는 서울에 근무하면서도 동두천 땅굴 의심 지역을 방문하여 당시 작업 인부들로부터 실감나는 땅굴 징후를 전해 듣고 정지용씨를 불러 동두천에서 절개작업을 하도록 자금을 주선해 주었다.
94.4.13일, 정지용씨는 동두천 광암동 소재 분지에서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절개작업을 시작했다. 예정 지역을 포크레인으로 파들어 가는데 아침 7시에 업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광암동 동사무소 사무장이 현장을 다녀갔다. 그가 가고 불과 몇 시간 후에 깡마른 소령이 병사 2명을 대동하고 작업과정을 들여다봤다.
통상 땅굴현장에는 장교만 나타나고 병사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또한 장교가 현장에 오면 짚차를 현장에 가까지 주차한다. 하지만 이번 소령은 짚차를 멀리 보일락 말락한 곳에 세우고 걸어 올라왔다. 느낌이 이상하여 사방을 보니 갖가지 옷차림을 한 장정 20여명이 산의 여기저기를 에워싸고 있었다.광암동 동사무소 사무장이 간첩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차! 이제는 죽는구나" 자포자기 상태였다. 4명의 인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작업만 계속했다. 달아날 방법은 없었고 사방에서는 음산한 기운은 점점 더 압박해 왔다.
바로 이 때, 천우신조로 광암동 파출소 김경장이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허리를 보니 권총과 실탄이 많이 달려 있었다. 김경장은 이런 저런 헛소리를 하면서 소령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소령의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것이 목격됐다. 그 소령은 김경장에게 당황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26사단 연대정보주임입니다. 이곳에서 땅굴이 나올것을 대비해서 산에 병력을 배치해놓고 박격포까지 배치했습니다".
묻지도 않는 말을 해댔다. 이는 "우리 숫자가 많으니 허튼 짓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었다. 또한 연대 정보주임은 정지용씨와 만난적이 있는데 그 소령은 자기가 정보주임이라며 거짓말을 했다.
거기에 더 머무르다가는 납치될 게 뻔했다. 김경장에게 총이 있다해도 중과부적이었다.
정지용씨는 인부들을 다급하게 불렀다. 인부들이 영문을 몰라하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정지용씨가 다급한 표정으로 이리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표정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인부들이 다가왔다. 정지용씨가 김경장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이 차 타고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어요".
모두가 날래 김경장 차에 올랐다. 순식간에 차를 몰고 탈출하자, 어구에 대놓고 있던 6대의 차량이 뒤따라 왔다. 봉고차, 집차, 트럭, 승용차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자, 우람찬 덩치가 따라 올랐다. 위기를 직감하고 정지용씨가 광암동 파출소로 뛰어들었다. 덩치가 파출소 앞까지 따라왔다. 정지용씨가 파출소로 들어가자, 그 덩치큰 사내는 파출소 부근을 서성거렸다.
그런데 늘 정지용씨에게 친절하게 대하던 파출소 소장의 얼굴이 그날은 정지용씨를 보자마자, 주춤하고 놀래며 벌레씹은 얼굴을 했다.
이상하게 여긴 김경장이 덩치 큰 사내를 불렀다. "어, 당신 이리 와봐. 당신 아까부터 우리 차를 왜 뒤쫓았어? 엉?" 덩치가 부인했다.
"뭐가 아냐, 내 눈으로 똑바로 봤는데 거짓 말을 해? 당신 이리 와봐, 어디 살아, 신분증 내놔봐" 덩치는 신분증이 없다고 했다. "어, 이 사람 아주 수상하구만, 어이, 이순경, 이 친구가 타고 온 저 무쏘 차, 차적 좀 확인 해봐". 차적이 없는 차량이었다. "어, 이 친구, 아주 수상하구먼, 이리 와봐, 조사 좀 해야겠어".
바로 이때, 자신의 책상에서 타이핑 치는 척 하던 파출소장이 끼어 들었다. "여보, 당신 어디 살아,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거야", "의정부에서 주유소를 하고 있는데 이지역에서도 주유소를 차려 볼까 하고 장소를 물색하러 왔습니다".
"아, 그래? 의정부 그 XX 주유소 그 친구 나하고 잘아는데, 영업은 잘되나? " . "예, 그분이 저의 삼촌입니다. "아, 그래, 우리관내에 주유소가 없는데 앞으로 잘 협조합시다.
이렇게 해서 수상한 덩치큰 사내는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정지용씨는 그때 상황으로 볼 때 파출소장이 영락없는 간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파출소 소장은 퇴임하여 그 지역 케이블 TV사 전무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
이 이야기를 구태여 여기에 하는 이유는 정지용씨가 그 동안 당했던 일이 얼마나 끔직한 일인가를 소개하는 데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다음의 사실을 인식하자는 데 있다.
남한에는 비단 황장엽 비서가 말했던 대로 정부의 깊숙한 요직에만 간첩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동사무소 직원, 파출소장, 무허가 집주인, 산에 배치됐던 행동대원 등 상층과 하층에 많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짙은 개연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