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함은혜 기자가 쓴 인터뷰 기사입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승자, '가난한 시인' 함민복
"자본주의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외곽에서 ‘무숙자’의 삶을 살았던 시인이 자본주의의 중심을 공격했다. 그의 전투가 도덕적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궁핍과 결핍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얼마간은 현재 수준의 가난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웅이 거대 자본가나 대중문화의 스타가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정한 승자는 오직 ‘가난한 시인’이다."
-이문재 시인('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샐러리맨 예찬> 중에서)
프롤로그
가난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란 무능력의 표상이며 불행의 원흉이다.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이는, 자본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우울함을 달랠 뿐이다. 이런 와중에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세상 이들은 자기변명이라 폄하할까?
작금을 "행복과 희망이 가득한/절망이 꽃 피는(<광고의 나라>)" "정서의 겉절이 시대(<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라며 자본주의의 폭력성, 그로 인해 몰살된 인간성의 비극을 노래했던 시인 함민복. 그가 최근 <눈물은 왜 짠가>라는 산문집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선천성 그리움'을 실어 나르고 있다.
부가 곧 행복이라면 시인 함민복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다. 가난은 그의 글 곳곳에 베어 있다. 그러나 시인은 가난과 고단한 삶을 그대로 끌어안으며 이게 삶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삶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고 말한다.
<눈물은 왜 짠가>는 빚더미에 쫓겨 갈 곳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 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들른 설렁탕집에서의 짧은 일화이다. 어머니는 국물이 짜다며 주인에게 국물을 더 달라고 한다. 주인이 갖다 준 국물을 어머니는 얼른 아들의 국에 부어준다. 산문 속 한 대목을 옮겨 본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행복하지 않은 부자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불행하지 않은 빈자(貧者)인 시인은 강화도에 한 버려진 농가를 수습해 살고 있다. "푸덕이는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제비야 네가 옳다"고 중얼거리면서.
1.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을 찾아 강화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종점인 강화읍에서 내린 후 시인이 알려준 대로 택시를 타고 바닷가 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이윽고 광활한 갯벌이 시야에 들어왔고 바다마을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얼굴에 검은 개흙을 잔뜩 묻힌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이 여기가 도시가 아님을 깨우쳐 주는 듯했다. 시인의 집은 -그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대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저 멀리 기러기도 보인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 나가보면 수십, 수백 마리의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 우는 글자. 장관이다."(<천둥소리> 중에서)
시인의 집과 바다 사이에는 경계선 마냥 차도가 나 있었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음이 제법 귀를 찌른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다 시끄럽죠 뭐. 그래도 새벽엔 좀 잠잠해요." 시인의 집과 아스팔트 그리고 바다의 경계에는 과연 어떤 꽃이 필까.
2. 시인의 집
소주 3병과 라면 2개 오징어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안에 들어섰다. 빨간 양철지붕의 안채(자금성), 파란 양철지붕의 행랑채(청와대), 흰 슬레이트 지붕의 화장실(백악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금성과 청와대와 백악관은 시인이 붙인 별명이다. 왜 화장실이 백악관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함 시인이 술상을 꾸리기 위해 라면 끓일 냄비와 그릇들을 챙기러 행랑채와 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동안 기자는 시인의 방 친구들을 만났다. "온 몸이 입인" 라디오도 만났고 "말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티브이도 만났다. "인사성이 가장 밝은 친구"인 전기 스탠드를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방 안에서 인사성이 가장 밝은 친구는 전기 스탠드입니다. 늘 소녀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리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도 밝고 환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새소리와 그림자와 외출하던 어느 날> 중에서)
3. 꿈
"제 이름이 말이죠. 재빠를 민(敏)자에 되돌릴 복(復)자입니다. '회복'할 때 쓰는 그 '복'자이죠. 즉 빨리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가세가 많이 기울었거든요, 그래서 빨리 집안을 일으키라는 뜻인가 보다 했는데 세월 지나면서 이게 아니더라고요. 술을 워낙 많이 먹으니깐 술 먹고 빨리 회복하라는 뜻이더라고요."
이게 웬 개그인가. 함 시인은 소주잔을 맛있게 비우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때 그는 친한 친구와 함께 개그 작가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의 꿈을 어렴풋이 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에서조차 새겨져 있는 가난. 젊은 시절 시인은 이 가난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모두가 다 가난합니다. 부자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가난을 가난이라고 여기는 순간 불행해 지는 것이겠죠."
4. 시
"시는 쉬운 거예요."
시가 뭐냐는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함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시인은 번역가입니다. 삶을 옮기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그는 시란 쉬운 것임을 강조하였다. 시가 삶인데, 삶이 곧 시인데 어려울 게 무어에 있겠냐는 말이다. 함 시인은 "사람을 급히 구할 수가 없어서… 공고 나온 처남이 좀 도와주게" 라는 부탁에 한달 간 공장에서 지낸 적이 있다. 기계소음 속에서 동고동락한 공장장과 기사는 시인과 헤어지면서 좋은 시 많이 쓰라며 만년필과 연필을 건넨다. 시인은 생각한다.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써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엮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소젖 짜는 기계 만드는 공장에서> 중에서)
6. 자연보호
"이기적인 인간이 없는 세상입니다. 남을 위해 빵을 팔고, 남을 위해 자동차를 팔고, 남의 돈을 위해 은행을 만들고, 남의 개발을 위해 댐을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남을 위해 빌붙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남을 위해 만든 모든 것들이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터전인 환경을,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그 파괴물에 인간은 빌붙어 살고 있다.
"생명을 위한다면 인류가 멸망해야 합니다. 인류가 멸망해야 생명이 산다면 그렇게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그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했다.
7. 일상
함 시인은 자신의 일상을 '삼한사온(三寒四溫)'에 빗대어 설명한다. 3일은 안양예고와 김포대학 등에 강의를 나가고 4일은 강화도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낚시도 하고, 동네의 이런 일 저런 일에 참견도 하고, 손님도 맞이하면서 보낸다. 세상적인 일을 '삼한'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노동이 그의 체질에 맞지 않기는 않나 보다.
함 시인은 요즘 컴퓨터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중이다. 그런데 이놈이 여간해서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학교의 짓궂은 제자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아 이놈들이 첨부파일로 보내면 내가 못 보는 거 알고 일부러 첨부파일로 보냅니다."
그러면서 과제물 제출을 하루하루 연기하는 것.
8. '벤뎅이'
"경민이 엄마 벤뎅이 있시꺄?"
"뭐라?"
"서울서 손님이 왔시다. 근데 안주가 없시다. 안주할 만한 거 뭐 없시꺄? 망둥이라도 있시꺄?"
"벤뎅이 있냐고?"
"경민 아빠, 어디 갔시꺄?"
"벤뎅이 없시닷."
"망둥이 있냐니깐?"
선문답도 아니고. 휴대폰 사이로 걸쭉한 강화도 사투리가 한참을 오갔다. 함 시인은 멀리 서울서 온 손님에게 변변한 안주 하나 내놓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지 애꿎은 경민 엄마한데만 뭐라 한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온다.
에필로그
엉뚱하게도 강화읍으로 가는 막차를 잡기 위해 냅다 뛰느라 함 시인과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낚아채듯 잡아탄 버스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자기 무게를 못이기는 듯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렸다. 술에 취한 탓인지, 차체의 요동 때문인지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그렇게 강화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대낮부터 웬 술이냐는 핀잔에 12시를 넘겼으니 낮술이 아니고 황혼주라고 넉살 좋게 응수하던 시인 함민복. 그의 맑은 미소가 벌써 그리워진다. 아∼ 선천성 그리움이여.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만찬(晩餐)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