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淸麴醬)과 낫도(納豆)
콩(soybean)은 20세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과 이용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신데렐라 작물로 부상하였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밀레니엄 식품이다. 세계적인 식품인 콩은 1,000여 가지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을 삼국(三國)시대부터 재배하였다.
콩은 단백질 35-40%, 지방 15-20%, 탄수화물 30%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또한 콩에는 파이토에스트로겐(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아이소플라본(isoflavon)이 함유되어 있다. 콩을 날 것으로 먹으면 거의 소화가 되지 않으나 익혀 먹으면 65% 정도 소화ㆍ흡수가 된다. 우리가 자주 먹는 콩 제품인 두부는 95%, 된장은 80% 정도 소화ㆍ흡수가 된다.
세계 장수촌(長壽村) 중 하나인 남미(南美) 에콰도르의 작은 마을 빌카밤바(Vilcabamba) 지역 장수(長壽) 노인들의 건강 묘약은 ‘콩’이다. 모든 주민들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을 주식으로 먹는다. 원광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우리나라 장수마을을 조사한 결과 콩과 마늘 수확량이 많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부터 콩을 발효(醱酵)시켜 만든 청국장(淸麴醬ㆍfermented soybeans)은 귀한 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신라(新羅)시대에는 왕가에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보내는 예물에 포함되었으며, 고려(高麗)시대에는 자연재해 등으로 백성이 궁핍할 때 임금이 내리는 구황(救荒)식품으로, 그리고 조선(朝鮮)시대에는 전쟁 시 군량(軍糧)이나 비상식량으로 사용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신문왕 3년, 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보낸 예물 중 ‘시(豉)’, 즉 메주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1760년(영조 36년) 유중림(柳重臨)에 의해 보강된 ‘증보산림경제’에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즉, “햇콩 한 말을 가려서 삶은 뒤 가마니 등에 쟁이고, 온돌에서 3일 간 띄워 실(絲)이 생기면 따로 콩 닷 되를 볶아 껍질을 벗겨 가루 내고 이를 소금물에 혼합하여 절구에 찧는데 때때로 맛을 보며 소금을 가감한다. 너무 짜면 다시 꺼내어 오이, 동아, 무 등을 사이사이에 넣고 입구를 봉하여 독을 묻어 일주일이 지나면 먹어도 된다.”고 하였다.
청국장은 일반적으로 콩을 수확하기 시작하는 초겨울에 담는다. 보통 물에 불려 찌거나 삶은 대두(大豆)를 식기 전에 그릇에 담고 볏짚을 넣고 섭씨 40도 정도의 따뜻한 곳에 2-3일간 두면 납두균(納豆菌)이 번식하여 끈끈한 발효(醱酵)물질로 변한다. 청국장이 다 뜨면 끈끈이 실을 내는데, 이 실은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이 여러 개 합친 것과 과당의 중합물인 프락탄이 엉겨서 된 것이다. 청국장은 된장, 고추장 등 다른 장류(漿類)에 비해 비교적 만들기 쉬우며, 만드는 법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바실러스(bacillus)균은 공기 중에도 있지만 볏짚에 많이 들어 있으므로 청국장을 띄울 때 콩 사이사이 볏짚을 넣으면 잘 뜬다. 바실러스균이 증식하면 단백질 분해효소가 만들어지며, 대두의 단백질을 분해해 아미노산으로 만든다. 아미노산이 분해 되면 암모니아 가스가 발생하며, 암모니아 가스가 청국장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낸다. 암모니아 냄새는 잡균(雜菌)의 증식을 억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국장을 다 띄운 뒤에 마늘, 생강, 고춧가루, 소금 등을 넣어 끓여 먹는데 청국장과 두부는 잘 어울린다. 납두에는 두뇌의 영양이라고 말하는 레시틴(lecithin)이 풍부하다. 레시틴은 체내에 흡수된 후 분해 되어 뇌세포간의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원료가 된다.
청국장의 포자는 찌개로 끓였을 경우에도 10분 이상 생존한다. 혈전(血栓) 제거 효과를 기대한다면 생으로 먹는 것이 좋으나, 여의치 않으면 모든 재료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청국장을 넣고 1-2분 정도 살짝 끓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청국장이 일반 콩보다 건강에 이로운 이유는 대두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본래 갖고 있던 영양소에 새로운 물질, 즉 항암효과가 있는 점질물질, 면역증강 효과가 있는 고분자 핵산, 항산화물질, 혈전용해 효과가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 폴리글루타메이트(polyglutamate) 등이 생겨난다. 청국장은 콩 발효식품류 중 가장 짧은 기간(2-3일)에 만들 수 있으며, 콩을 영양학적으로 가장 잘 이용한 식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청국장 효능에는 항암(抗癌)작용을 비롯하여 당뇨병 치매 뇌졸중 고혈압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되며, 피부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청국장에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 제니스틴은 유방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직장암 등에 효과 있으며,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전, 콜레스테롤 등을 녹이므로 뇌졸중(腦卒中) 예방에 도움이 된다. 청국장에 들어있는 유익균은 정장(整腸)효과가 있어 변비와 설사에 좋다.
호서대 자연과학부 김한복 교수팀은 ‘바이오인포매틱스(생물정보학)’ 기법을 이용해 청국장 성분이 체내 염증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켜 유방암(乳房癌) 세포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연구논문은 국제학술지 ‘영양과 암(Nutrition and Cancer)’ 2011년 5월호에 실렸다.
일본은 대표적인 장수(長壽)국가이며, 장수 비법으로 발효된 음식을 즐겨 먹으며 또 강한 양념을 쓰지 않고 식품 재료(食品材料) 그대로의 맛을 내는 조리법도 건강 식습관의 하나다. 일본인 식탁에 빠지지 않는 식품이 ‘낫도(納豆ㆍnattou)’이다.
삶은 콩을 발효시킨 낫도는 일본 관동지방에서 많이 먹었으나 낫도의 성분이 장수건강식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식품이 되었다. 1905년 동경대학교 자와무라 교수가 청국장에서 유효한 균을 분리해 이것으로 냄새가 없고 영양이 풍부하며 위생적인 ‘낫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낫도는 우리나라 청국장과 비슷한 형태이긴 하지만 된장이 되기 전까지 발효시킨 음식으로 대두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발효로 인해 끈적거린다. 한국의 청국장은 대개 끓여서 먹지만, 일본의 낫도는 조미를 약간하여 날로 먹는 점이 다르다. 뜨거운 밥에 낫도를 얹고 날달걀을 풀어 비벼먹는 것이 일반적이 방법이다.
낫도는 바실러스균을 배양하여 만든 낫도균만을 사용하여 발효시킴으로써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한 낫도키나아제 및 바실러스균이 빽빽이 살아 움직이는 콩 발효식품을 날로 먹으므로 낫도균을 죽이지 않고 체내에 흡수할 수 있다.
낫도는 골다공증 예방, 변비, 다이어트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낫도에는 혈전 용해력을 갖고 있는 ‘낫도키나아제’라는 효소가 혈전증 및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낫도와 함께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우메보시’는 매실(梅實)을 소금에 절인 다음 차조기 잎을 넣어 만든 ‘매실장아찌’다. 알카리성 식품인 우메보시는 식욕을 북돋우고 배탈을 막아주며 피로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글/ 靑松 박명윤(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국식품영양재단 감사)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