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강해 8
서철원 교수
제8강 종말론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지난 시간에 천년전기 중에서 세대론과 역사적 천년전기와 공통점을 이야기 하다가 다 못하고 중단을 했습니다. 이제 제일 주의 재림을 열심히 기다리는 분들이 소위 천년전기의 종말론을 취한 분들이고 또 그중에도 특히 미국의 천년전기인 세대론을 주창하는 분들이 가장 열심히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년기론에 대해 비판을 하기 전에 우선 천년기 내용을 이야기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가장 발달된 체계로 천년기를 주창한 사람은 2세기의 신학자인 이레니우스 였습니다. 이레니우스였고 그 후에 터툴리안도 천년기를 주장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천년기를 주장한 사람의 수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초기부터 주장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천년기론자들은 천년기가 가장 오래된 교회의 종말론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 때는 아직 정식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확정되지 못할 때입니다. 그리고 온갖 이론이 참으로 많았을 때죠. 아직 교회가 천년기에 관해서 까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내용들을 숙고해서 신조형식으로 믿음의 고백으로 믿음의 조목으로 결정할 만큼은 아직 못됐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천년기를 가장 비판하기 시작한 사람이 3세기의 오리게네스였고 그리고 천년기론을 교회에서 완전히 추방한 사람이 4세기 중엽서부터 5세기 초엽까지 살았던 소위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중에 교부라고 할 아우구스티누스 였습니다. 너무나 강력하게 천년기론을 주창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 천년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단지 소수의 보수파들에게 가령 도나티스트라든지 몬타누스주의파, 몬타누스주의자 오래 못갔지만 이런 파들에게 두 파들에게 조금씩 남아 있었고 16세기에 들어와서 재세례파에 의해서 이 천년기가 다시 수납되기 시작했습니다마는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다 이것들을 이단으로 배척을 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소위 달비에 의해서 이 이론이 체계화 되기 시작한 후로 전세계의 복음주의 교회에 세대론이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이것이 가장 성경적인 바른 견해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고 한국교회도 백년동안 세대론적 천년종말도식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 아니면 다른 것들은 이단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도 공교회가 종말론에 관해서 도식을 신앙고백 신경으로 결정할 때에 다 전통적인 주의 재림, 한번의 재림, 한번의 부활, 한번의 보편심판, 그리고 정화로 신천신지가 이루어지며 이 종말도식이 교회의 표준적인 종말도식으로 정식 수납 채택되었고 종교개혁 때도 이 종말도식이 교회의 가장 바른 신앙으로 수납되고 채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렇게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성경에 드러나있는 여러가지 계시록에 있는 비슷한 내용들이 우리 사회에 진행되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천년전기 특히 세대론이 성하게 되었습니다. 달비가 이 천년전기를 세우고 또 어빙파도 세우고 그리고 또 재림제칠일안식교도 이것을 열렬히 받아들여서 특히 그 교단의 교파에서 여선지자라고 할 실질적인 창시자 엘렌 G 화이트 여사가 아주 이 이론을 강력하게 주창을 해서 안식교회 퍼짐과 함께 세대론의 퍼짐도 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달비 이후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블랙스톤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블랙스톤 그전엔 브룩스 또 지금도 생존해 있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성서사전의 편집자로 있는 게벨라인 있지만 또 스페리체이프 또 우리나라에 설교논문으로 소개했는데 윌우드 또 ( )신학교 교장으로 메킨타이어, 미국에서도 소위 ( )신학교 메킨타이어가 지금 교장인데 메킨타이어가 그 교단 ?고 달라스 신학교와 그 계통 또 많은 침례교회들이 다 세대론을 주창하고 가장 바른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천년전기와 현대 천년기론인 세대론, 역사적인 천년전기는 아마 대변인이 이레니우스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천년기론에 의하면 세대론이든지 역사적인 천년전기든 간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때까지 현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는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무엇이냐면 왕 없이 나라는 성립하지 않는다. No Kingdom without king. 지금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왕으로 다스리지 않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니까 현 역사 진행상 왕 없이 하나님 나라는 성립하지도 않고 진행되지 않는다.
언제 그러냐? 주님 오셔서 메시야 왕국을 세울 때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 그러면 복음은 뭣하는거냐? 복음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하는 믿게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전파될 그와 같은 역사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28장 마지막에도 증거하라는 말씀이 있듯이 증거하라 그래서 모든 민족들에게 이와 같은 복음의 도가 있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의 수단이 이제 꼭 모든 사람들을 다 예수 믿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 백성이 되게하는 그와 같은 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의 선포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복음선포라 그러면 증거만 되고 예수 믿게 하는 일은 없느냐? 택한 백성들을 모아들이는 역할은 한다. 대부분의 천년기론자들 세대론자들의 설교에는 그러니까 이 복음의 도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 때 이것이 심판의 구실을 하는 정죄꺼리로만 항상 선포되는 일을 해요. 그 다음, 복음이 실질적으로 증거놀음만 하기 때문에 사람의 일부 택한 백성만 모아 들이는 일을 하지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이방인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주님이 오셔서 천년기간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 이방인들이 대거 하나님 나라에 편입할 것이니까 지금 꼭 구태여 선교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거죠. 그러니 이 복음의 도가 가서 개인만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도 변화시키고 애쓸 필요가 없는거죠. 지금 우리 한국사회도 예수 믿는 교회는 많이 늘어나도 이 사회를 바꾸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별 필요가 없는거죠. 우리야 천국갈 사람들이니, 교회안에 방주 안에만 들어오면 되고, 또 밖에야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가 수천명씩, 수만명씩 늘어나는 교회가 많아도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 의해서 그가 사는 사회가 복음의 권세에 변화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다 이 세대론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한국교회에 아직도 많이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복음의 도가 전파는 되고 증거의 목적으로 전파는 되고 또 그 증거를 통해서 택하신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방인 전체를 변화시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갈수록 세상이 악해진다.
그건 인정하고 그리고 그 면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교회의 종말도식인 무천년론과 마찬가지죠. 악이 점점 무성해진다. 주님 재림전에! 그런데 이 악이 극단화 되어서 환란이 임한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그것에 대해서 역사적 천년전기하고 세대론하고 구분됩니다. 거기까지만 하구요, 그 다음에 악이 점점 배도의 때가 온다고 합니다. 마침내 악이 점점 성해지고 그래서 마침내 전반적인 보편적인 배교가 이루어질 것이라. 그것은 전통적인 교회의 종말도식에 의해서도 이 일이 바른 것으로 인정이 되고 고백되어 왔습니다.
점점 더 역사의 악이 심해질수록 심해지기 때문에 저 악이 성해지고 또 우리가 계산불능으로 항상 더 심한 악들이 진행되는거죠. 또 항상 정치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마성이 들어있어요. 마성! 사탄적인 세력이 들어 있다고요. 권세는! 그러니까 이 권세 가진 자들이 못하는게 없는거죠. 그리고 현대에 와서 갈수록 민주화 되니까 권력들이 더 약화될 것 같아도 민주화는 되면서도 권력은 더 강해지고 어느 나라든지 강력해졌습니다.
그래 레이건이 8년간 집권하면서 루즈벨트, 프랭크 루즈밸트 이전에 연방정부 형태로 가능한 축소시켜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 할려고 하는 그와 같은 시도로 그가 정권을 잡고 일을 했지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권력이 선과 악을 결정하고 또 진실과 허위도 결정하는 때가 됐기 때문에 이 악이 권력을 잡고 못할게 없습니다. 그러니 요새 전두환씨 국회 와서 청문회 증언하다고 그러니까 전두환씨가! 그러고 보니 지금도 전두환씨가 머리가 좋은 것 같애요.
그렇게 어려움 당하고 있으면서도 6.29선언 네가 했다고 네가 왕노릇하고 날 골탕먹일려고 그러는데 그건 내가 하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네가 대통령 된 것 다 내가 정치자금 얻어가지고 해서 했지 뭐 네가 했느냐? 한번 해봐라. 신문에 퍼트리니까 전대통령 전전대통령, 국회 청문회에 나가지 않도록 지시를 내리지 않았어요? 지금 조용하게 별일 없이 진행된 것 같아도 권력을 잡으면 못할 것이 없어집니다. 지지세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좀 곁길로 갔습니다만 이 정치권력에 의한 악의 진행! 이건 보통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항상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것은 주님이 오시되 공중에 오시고 공중까지만 오시고, 또 비밀리에 오시기 때문에 주님이 오신걸 아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성도들과 그리고 이미 죽은 성도들 뿐이라. 그래서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공중재림 그때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서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을 공중에서 만나뵙는다. 그것이 휴거입니다. 이때 오심을, 오심은 비밀리에 오심이어서 여기 파루시아를 붙여요. 천년기론에 의하면 주님이 공중에 오심이 파루시아다. 파루시아란 말은 웃시아, 계심, 파라 옆에,파루시아란 바른 성경에 재림이라 쓰여지지 않고 파루시아로 되어 있는데 이 본래 파루시아의 뜻이 오셔서 함께 계심을 말해요. 본래 파루시아의 뜻은 하나님의 도래에 파루시아를 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써 하나님으로 이렇게 단번에 오실 때 파루시아로 씁니다. 비밀리에 오시죠. 휴거라! 그때에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해서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맞으러 하늘로 올라가는데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그걸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찾고 다니는거죠. 남편은 아내를 찾고 다니고 아들들은 어머니를 찾고 다니고 찾고 다니는 일이 많아요. 다음 공중휴거가 끝나면 세대론에 가면 7년동안 혼인잔치가 있죠. 저도 어려서 주일학교 다닐 적에 이 세대론의 종말도식을 노래로 해가지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언제 이 노래를 그치게 되냐면 특히 이성봉 목사님이 전국으로 다니며 부흥회를 하시고 말라빠진 교리만 붙들고 있고 예수 생명 없다고 하는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고요. 그런데 조동진 목사님의 부친되시는 조현성 장로님이 옛날에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이제 장로가 되신 후에 전도사가 되어가지고 열심히 시골로 다니시며 전도를 하셨는데 저희 모교회에도 오셔서 전도사님으로 일을 하셨어요. 그때 들어보니까 성결교 노래 말라빠진 교리만 붙들고 예수님 없는 노래 부르니까 주일학교 다닐 때 당장 돌아다니며 이 노래 부르면 안된다. 부르지 마라.
딱 엄명을 내리시니까 그때부터 저희들은 안부르게 됐고 그전에는 하여튼 7년환란이 오기전에 나는 간다라든지 그런 노래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제 휴거후에 주님이 땅에 재림하셨을 때가 진짜 재림인데 그때 7년환란이 닥치는데 환란전이나 환란기간에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옵니다. 이 천년기론에 의하면 환란전이나 환란기간에 모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후에 재림, 여기에 휴거 때 첫번 휴거 있지요. 주님 이 땅에 내려 오실 때 그 때에 내려오시게 되면 불신자나 신자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이 오신 것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고 그때에 주님 재림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의 메시야를 보고 전체적으로 회심을 해서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주님이 오실 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특히 바벨론 포로 이후서 부터서 수백년동안 그렇게도 간절히 그 메시야가 그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자기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 민족적 회심기,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이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환란기간에 살해된 성도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 때는 주로 부활에 이를 자들은 불신 이방인들 중에서 뽑아온 자들이 아니고 이스라엘 유대 백성들 중에서 이 환란 기간동안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재림과 동시에 또 적그리스도가 그의 세력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쳐부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건국자들 특히 벤구리온 같은 사람도 아마겟돈 전쟁이 글자 그대로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만만이라고 돼있잖아요? 이만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올 수 있는 나라는 어디냐? 11억이 되는 중공일 것이다. 오늘 그렇게 얘기하죠. 2억의 군대를 몰고와서 아마겟돈에서 전쟁을 한다. 이 아마겟돈이 어딥니까? 그러니까 소위 요시아왕이 애굽의 느보가 바벨론을 치기 위해서 갈그미스로 올라왔을 때 요시아가 와서 막았다. 그 자리가 아마겟돈 입니다. 그 땅에 2억이 모여서 전쟁을 한다. 밴구리온과 초대 이스라엘의 건국자들도 합당하지 못할 걸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를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리스도가 그의 대적을 쳐부순다. 주의 재림 때! 그리고 메시야 왕국을 이때 설립을 합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그리고 여기서 추상적이고 가시적인 메시야 왕국을 세워서 전세계를 통치하게 됩니다. 그때에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내각에 들어가게 되고 그리고 바울사도가 일부 세대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울사도가 국무총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메시야 왕국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특별한 위치를 갖고 특권적인 자리에 처하며 이방족속들은 종속된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라.
물론 이전에도 심판이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휴거 때! 성도들에게 심판이 행해지는데 이때는 이미 심판이 아니라 영생의 상급에 이를 자들이므로 이들은 상급을 받죠. 휴거 때! 그리고 재림하시므로 적그리스도를 멸할 뿐만 아니라 이방족속들을 심판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메시야 왕국을 세우면 전체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의와 평화와 번영의 때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완전히 악이 제거된 건 아니지만 그러나 의가 지배를 하고 죄와 죽음이 역사해도 전세계적으로 생명이 지배를 해서 백살에 죽은 사람은 어린 아이로 죽는 것 같은 일이 진행이 될 것입니다.
이때 오실 메시야는 다시 살아온 메시야라. 다윗이 다시 다스리는거죠. 다윗의 왕권이 정식으로 시작돼서 천년간 진행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와 같이 저주가 자연에서 제거되니까 말할 수 없이 풍성한 생산을 넘치게 해서 풍요가 넘치게 되어 굶주림과 고통이 다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짐승들도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서 그 악한 성질이 생겼기 때문에 짐승의 악한 성질들이 맹수들에서 탈취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어린아이가 독사 구멍에...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경륜에 있어서 마련하신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세계를 구원하심이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한 민족으로 존속하게 하심은 바로 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출생하게 하는 준비로 그 모태로 태반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그 존재의 목적이 있게 하신 것이지 세상적인 영화를 보는 그 나라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산헤드린 공회로 부터 심문받아서 배척받은 근본이유도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이 성립할려면 이 유대교의 사고방식이 그들의 신학에 의하면 메시야가 오시면 메시야 왕국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강력한 철권정치아래 놓여있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을 가져와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메시야 주장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헤드린 공회에 보면 예수가 죽은 죄목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던 참람죄 때문에 죽은 걸로 돼있는데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죄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내가 그 예수 일대기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보셨겠죠. 왕중 왕 그 영화는 아니고 내가 고난주간에 본 그 영화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회의가 예수를 심문할 때에 성전을 헐고 다시 짓는다고 하는 죄목 갖고도 성립하지 않으니까 마침내 대제사장이 일어났다.
그때 안소니 퀸이 대제사장 역할을 했습니다. 안소니 퀸이 묻기를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 찬송받을 자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러니까 ‘내가 그라’ 그러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제사장의 옷을 찢으면서 참람하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살려줄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죄목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죄목이지만 그 말 했다고 예수가 죽은게 아닙니다. 그 말 했어도 그 말과 함께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서 메시야 왕국만 선포했으면 죽지 않습니다.
메시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에 해방이 없는 것을 유대교에서는 성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메시야가 오면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메시야이든지 그냥 다윗의 후손으로써 메시야이든지 메시야가 오면은 이스라엘이 그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메시야 왕국을 세우고 전세계를 지배하는 그와 같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있어서 로마나 유대나라나 동일하게 추구하는 것은 정책이 목표였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야 왕국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 이 속죄를 선포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배척받고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될 것은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출생하기 위한 모태로써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소명되고 조성됐고 유지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해서 메시야 사역을 다 이루고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물론 정치적인 단위는 아니었지만 민족적 단위로 존속할 이유가 더이상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디도 장군의 손을 통해서 예루살렘성을 다 헐고 그 이후에 또 135년 바 코크바 전쟁 때 바 코크바가 메시야로 추대됐습니다. 그때 한낱 랍비로 그 마지막 봉기를 한게 아니예요. 메시야로 추대돼 가지고 로마에 대해서 항쟁을 한 것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서 전부 다 쓸어내 버리게 하셨습니다. 특히 더이상 민족적 단위로도 존속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조성하시고 유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에게서 메시야가 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피흘려 모든 세상을 구속하시게 됐기 때문에 더이상 이스라엘이 존속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배척받아 죽으시게 되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그렇다고 그냥 가실 수 없기 때문에 교회라고 하는 간주곡을 따로 세우셨습니다. 세대론에 의하면!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알지 못하는 그런 실체였습니다. 구약에 교회라는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도 대부분까지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까지가 율법시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까지가 율법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교회가 세워지기 이후부터가 은혜시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이건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 왕국이 해당되는 책부분이고 실질적으로 복음서 중에서 일부분만이 교회에 타당합니다.
그런데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성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것과 같은 간주곡입니다. 그냥 가실 수 없으니까 교회라고 하는 것을 대신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목표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목표하셨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이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목표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시대는 완전히 율법으로만 구원에 이르고 은혜시대만이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나오는 산상수훈의 그 법도들도 지금 신약의 교회에 타당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 왕국 때에 타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간은 은혜의 기간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만 완전히 은혜의 도로 구원에 이르고 율법은 성도들의 신자들의 생활규범으로 아무런 자리를 갖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에 이르지만 율법은 구원얻은 백성의 생활규범인 세대론에 의하면 전적으로 율법은 지금 신약, 은혜의 시대에는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승천하셨죠. 이 교회기간에는 하나님의 그 소위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주가 중단됩니다. 계산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메시야가 지상에 없기 때문에 승천 때 부터서 재림 휴거하는 비밀리에 오시는 그때까지 그 기간이 70주 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휴거 때 부터 다시 70주가 시작돼요. 그 기간에는 메시야가 안계시니까 시간계산이 안된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뉴욕에서 콜로라도 덴보까지 가는데 요새 그 한동안 달라스가 성할 때는 텍사스가 유명했는데 지금은 다이제스트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다이제스트에 나옵니까? AFKN에!
다이제스트에는 콜로라도 덴보가 주 활동무대 아닙니까? 뉴욕에서 덴보까지 가는데 길이가 얼마냐? 70마일이라. 70마일을 다가도 덴보가 안나온다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된 것이냐? 그런게 아니고 앞으로 2,000마일을 더 가야 되는데 70마일은 덴보에서 ( )산에서 70마일을 말하는 것이고 그 선에는 2,000마일이 더 들어있다. 그런식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이 계산이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주가 주님이 승천해 가시고 난 후에는 메시야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연대계산이 시간의 달력에 70주가 중단해요. 그러다가 하늘 휴거 때 그때 다시 70주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린양과 신부와의 혼인잔치가 시작됩니다. 이 시간이 7년기간입니다. 이건 공중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때에 대환란이 시작됩니다. 왜 환란이 시작되느냐? 세대론자의 설명에 의하면 로케트를 운전하던 운전사도 주님 맞으러 공중으로 가버리고, 비행기를 내버리고, 운전하던 운전사도 운전하다가는 변화되어 하늘로 가버리고, 지하철 운전사도 운전하다 말고 다 공중으로 가니까 그냥 북경에서 이루어지는 혼란 정도가 아니고 대회적인 혼란이 진행되는거죠.
그래서 그냥 비행기가 떨어지고 로케트가 떨어지고 그러니까 세상이 뒤죽박죽 시작하는게 그때 이때부터 환란이 시작되는데 이 환란전에 혹은 환란기간동안에 이스라엘이 전세계에서 자기의 본토로 돌아오는데 이때에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이 연합을 맺습니다. 그래가지고 잘 지내다가 그것이 3년 반입니다. 지나다가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미혹하게 됨으로 대환란이 시작됩니다. 그때 많은 유대인들이 환란을 당해서 환란 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 환란기간에 이것도 왔다갔다 말이 많은데 이 환란기간에 유대인들이 144,000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왕국복음을 선포합니다. 빠졌는데 이때 교회가 하늘로 휴거하면 성령도, 교회안에 계신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늘로 가시기 때문에 지상에는 성령이 완전히 철수해 버립니다. 그런데 144,000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왕국복음을 선포해요. 그런데 이 왕국복음을 받아들인다.
성령이 계시지 않아도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왕국복음을 듣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온다.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성령의 역사 없이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내신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길인데 이 십자가와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의 왕국복음을 선포해요. 메시야 왕국! 그래 두 복음이 있다고요. 십자가의 피의 복음, 은혜의 복음하고 그리고 왕국복음 두 복음이 있어요.
여기도 어쨌든 문제가 있는 것이 이제 이것도 의견이 나뉘는데 교회는 하늘로 가서 영구히 하늘에 있고 이스라엘은 영원히 지상에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둘이 별개의 두 백성으로 남아요. 이 7년 환란후에 대대적인 살해와 어려움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7년 환란후에 주님이 지상으로 내려 오시는데 그 중에는 계시라. 왜? 주님이 오심을 다 알게 되기 때문이죠.
이 7년 기간동안에 두 여인이 맷돌을 갈다가 한여인은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하고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하고 그러니까 참 생각해보면 구구절절 맞는데가 많아요. 안그렇습니까? 그러니 휴거 후에 교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경건한 교회는 대다수의 성도들이 안보이는데 일부만 있다. 경건하지 못한 교회는 몇몇 사람들만 자리가 비고 대부분 그대로 모여 있어요.
목사님도 나아가서 그 사람들을 찾습니다. 사방으로 찾으러 다녀요. 아버지도 가서 자기 아내를 찾으러 다녀요. 아이들도 어머니를 찾으러 다닙니다. 누나를 찾으러 다닙니다. 오빠를 찾으러 다닙니다. 그래도 만나지를 못하는거죠. 그래 대소동이 나는거죠. 그러다 얼마만큼 지나서는 다시 채워져요. 그 자리가 다시 도로 채워지고 없는대로 살까? 잘한 사람은 혹시 그 기간에 재혼할 수도 있지마는 그대로 또 사는거죠.
그리고 오실 때에 천사들과 함께 오시고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오시고 천사장의 나팔로 오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때 오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자기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입니다. 메시야를 보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로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메시야가 오신 것을 보고 그 영광에 의해 압도돼서 이스라엘이 대대적으로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법은 꼭 십자가의 피의 복음만이 아니죠. 세대론은 7세대 나누고 8번 언약으로 해가지고 언약으로 해서 나누기 때문에 그 세대마다 다 구원얻는 길이 다른데 굳이 예수믿어야 구원얻는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예수의 영광을 바라보고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개종을 한다고 하는 것은 복음의 길로가 아니고 물리적인 세력에 의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맞는 발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땅에 오실 때 그때에 7년 환란에 환란 때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들에 의해서 살해받은 유대인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두번째 부활이죠. 주님이 내려오시면서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들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다 쳐부숩니다. 전쟁을 통해서! 그런데 이것도 내 눈에는 이게 안맞는 것이 주님이 신적인 권세로 직접 그의 신적인 권세로 창조주로 심판주로 오시는데 육을 가진 군대와 주님이 세상적인 전쟁을 해가지고 싸워 이긴다. 전혀 안맞는 얘기죠.
하나님이 직접적인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오시는데 그 적그리스도와 그의 대적들을 멸하기 위해서 세상에 그들이 하는 꼭같은 무기를 동원해서 싸운다. 그래 에스겔서에 보면 7개월동안 거기서 싸운 그 무기들을 회수해서 불을 땐다고 돼있지 않습니까? 7개월동안! 그때에는 핵무기가 없어지고 재래식 무기로 싸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핵이 얼마나 많아요. 내가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지구를 50번인가 이상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지구상에 저장돼 있다.
그런데 마지막 대전쟁이 터지는데 재래식 소총과 자동화기로 싸울지요? 그리고 주님이 신적권세로써 하나님으로써 지금 통치권을 행사하시기 위해서 오시는데 재래적인 방식으로 적대세력을 쳐부신다. 이게 안맞는 이야기죠.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가장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것 같애도 인간의 사변과 인간의 픽션을 가장 많이 집어넣은 책입니다. 그것은 유대주의 사고방식이지 이게 성경적인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맞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나라가 세워진 후에 얼마나 고통의 연속입니까? 이스라엘 민족만큼 이제까지 살아남은 민족들 중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어려움 당한 백성이 어디 있어요.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에게 호의호식을 해주고 영광을 보게 해주는 그런 일이 필요할 것 같긴 하죠. 인간적인 동정심을 발동을 하면은 저도 한동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스라엘이 얼마나 고통의 연속이고 수난받는 백성입니까? 한번 원을 씻어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한번 세상에 이런 찬란한 왕국을 세워가지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세계에 왕노릇하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 한번씩 생각도 해봐요. 이때부터 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집니다. 그 천년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12제자들이 그외 내각 캐빈을 들고 그리고 12제자에 들지못한 바울사도가 수상이 되고 그래서 예루살렘에 다시 여기서도 의견이 두 가지입니다.
주님은 지상에서 이렇게 왕국을 세워놓으시고 다시 하늘로 다시 가신다고 그래요. 그렇게 하고 또 땅에서 직접 다스린다. 그래 두 가지예요. 의견이 어느 것이 진짜라고 해야 좋을지... 땅에서 직접 다스리는 것이 바른 형태 아니겠어요? 그때는 다 예루살렘으로 여행가기 위해서, 지금 많이 가지만 그땐 나도 비행기표를 사는 사람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세계의 모든 크리스챤과 불신자들이 다 주님 왕을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 순례에 오기 때문에 예수님 하고 악수하고 얼굴을 뵈올 때 일초씩 배분해줄지 이초씩 배분해줄지...
그래서 메시야 왕국을 세우게 되면 이때는 유대인들의 왕국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아주 특권을 갖는 특별한 위치에 세워지고 이방인들은 종속된 위치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보다 높은 위치에 이르지 못하고 낮은 위치에 속하게 되죠. 그리고 천년기간에 예루살렘에서 진행됐던 피제사가 복귀되고 절기가 복귀되고 그리고 경절이 복귀되고 그렇게 되는데 이 피제사의 복귀는 단지 옛날 있었던 제사의 개념만이 아니라 이 피제사로 화해와 속죄가 이루어진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제사가 하나님이 마련하신 유일한 제사여서 히브리서는 그 이전의 제사를 다 이 실체에 대해서 다 그림자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세상이 속죄되어 구원에 이르지 않고 옛날 피제사가 복귀되어서 다시 그 피제사로 죄가 용서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헛되이 흘려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온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유일한 구원의 길로 십자가를 세우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신구약 전체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하나님이 그의 영원한 지혜로 마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의 어리석은 것이 십자가인데 하나님이 그의 영원하신 지혜로 이룩하신 세상구원의 유일한 길이 십자가의 구원인데 이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헌다. 그런 면에서 이 세대론의 천년도식이 사탄적이라 해야 맞습니다. 피제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거부, 그것은 사탄이 궁극적으로 없앨려고 하는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상을 구원한 유일한 제사로 삼으셨고 유일한 속죄의 길로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제사 더 큰 구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이 종말론적이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구원이 앞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어디서 그런 소리를 알고 하는지 구약을 다시 기록해야 한다 신약성경을 다시 기록해야 한다 그말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것을 근본에서 허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주의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사람이 용서받고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허는 것 아닙니까?
불트만도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무슨 마력이 있어서 죄를 씻느냐?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대를 위해서 마지막 하신 말이라 회개하고 돌아오면은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하나의 마지막 말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피 자체로 죄가 용서되고 그런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불트만을 신학자가 아니라고 합니까? 십자가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말이라 한다.
그러니까 불트만을 신학자라 한다고요. 이제까지 그같이 과격한 비평한 신학자가 아직 없지마는,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라. 이 길로만이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죄과를 소멸하시고 죄와 사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내서 하나님께로 돌리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다른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피제사를 다시 복귀해요.
그리고 성도들과 부활해서 영체가 된 사람들도, 육체를 가진 사람들하고 죄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요. 억제되어 잠재되어 있는 것 뿐이지 죄가 소멸되고 악이 없어진게 아닙니다. 그것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느냐? 한쪽은 영체가 돼 있는데 한쪽은 먹고자고 결혼하고 그리고 자녀를 생산한다. 천년기간에 결혼해서 자녀를 생산하는 일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자녀를 생산하고 그때 살아있는 자들은 자녀를 생산하는데 이에 죽었던 자들 부활한 성도들은 자녀를 생산하는 일을 못해요.
마치 여기서 영혼 결혼이라는게 더러 있죠. 박보위 딸하고 문선명이 죽은 아들하고 영혼결혼을 하지 않아요! 마치 부활한 영체하고 죄악이 아직도 있는데 죄악이 있는 세상이예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통치를 하실 때 같이 섞여 사는 것이나 마치 영혼하고 함께 하는 그런 형태죠.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는거죠. 요한계시록 20장을 다룰려고 그럽니다마는 요한계시록과 에스겔서와 이런 것들이 상징적인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직도 확실하게 연구를 못해서 그렇습니다마는 에스겔서를 보고 해결못하는 것은 에스겔이 환상중에 예루살렘에 진행된 일을 다 봤는지 아니면 그의 영혼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봤는지 내가 아직 판명을 못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적인 언어로 돼있는데 과도히 상징적인 언어로 문자화하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영해해 가지고 갖다 붙인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세대론적인 도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환란기가 빠졌는데 세대론에 의하면 요한계시록 4-19장까지가 7년 환란기간에 해당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까지가 교회기간에 해당하고 거기서부터 19장까지가 7년환란에 해당되는 내용이예요. 그러니까 미래의 사건은 한번도 이루어진게 아닙니다. 여기에 ( )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7년 환란기간에 다 이루어진 일들이예요. 4-19장까지가 그래 20장부터가 천년왕국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천년기간에 완전히 죄가 다 없어지고 악이 소멸된게 아니고 그대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철권정치 때문에 그들이 반항을 못하는거죠. 우리가 부활하면 우리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거할 이 땅도 이 창조도 함께 변화돼서 영체가 살 수 있는 것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세대론에 의하면 이건 형상은 그대로 두고 동결된 상태죠. 동결된 상태내에서 천년왕국은 진행됩니다. 그 기간에 아직도 죄와 죽음이 역사해서 죽는 자가 있게 됩니다. 신자들도 죽게 됩니다.
천년기론을 하면서 요한계시록 20장을 다룰려고 합니다마는 여기 20장은 문자대로 해석을 하면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천사가 하늘로부터 가지고 내려오는데 제일 강한 쇠를 가지고 오겠죠. 문자대로 본다면! 무슨 쇠가 제일 강합니까? 녜? 첫 해에 와서 83년도에 와서 종말론을 가르칠 때 반에서 얘기를 시켜보니까 스텐이 제일 강하다고 얘기하더군요. 스텐이 불에 제일 강하다. 그러면 숫자만 문자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여기 나온걸 다 문자대로 해석을 해야죠.
그러면 물론 천사들이 있으니까 그냥 없이도 만들 수 있지만 거기도 제철소가 있어야죠. 하늘에도! 포항제철소 보다는 더 좋은 제철소가 하늘에 있죠. 그리고 이렇게 쇠사슬 쇠자물쇠를 가지고 영물을 묶을 수 있느냐? 영물을 묶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귀신은 아직 사람몸을 입고 있어도 쇠사슬로! 그때야 지금보다 약했겠지마는 그땐 아직 쇠가 많이 발달하지 않을 때니까, 귀신은 육체를 입고 있어도 쇠로 묶어놔도 두드둑 하면 다 떨어져 버리는데 사탄은 왕이 이 영물들 중에 왕 아니예요? 그런 영체를 쇠사슬로 묶을 수 있습니까?
또 무저갱이면 이 끝에도 구덩이, 끝이, 굴 坑자 끝이 밑바닥이 없는 굴 아닙니까? 지구상 어디에 그런 굴이 있습니까? 그런데 아직 다 탐사를 못해서 굴이 없는데가 있을지 모르지마는 직격이 6,400K 뿐이 안됩니다. 6,800인가... 물론 옛날사람 눈으로는 몇백 미터를 내려다 봐도 끝이 아물아물 하는데 6,700Km 위에 올라가서 보면 끝이 보이겠어요? 무저갱이라 할 수 있죠. 어떻게 무저갱이 있을 수 있느냐? 우선 거기까지 하고요 비판을 최종적으로 하기 전에 왜 이와 같은 도식이 생길 수 있었느냐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백성들하고도 언약을 맺지 않으셨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하고만 언약을 맺으셨어요. 그리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특별하게 뺀 백성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이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는 약속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결국 모든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들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세계 지배의 약속도 하셨기 때문에 이들의 끝에 가면은 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계를 만드셨다는 귀결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때 해방해 내시고 유월절을 제정하시므로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큰 구원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가장 강력한 로마, 세계제국인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내는 일은 아무도 할 수 없는 불가능이었는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 하나 들려서 해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구원해 내시므로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이 더 큰 구원으로 이루어 가도록 하는 약속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통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것은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그래 유월절 경축을 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역사 과거에 왔던 그 큰 구원을 이루신 이가 언젠가는 다시 오셔서 이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 경축을 할 때마다 그들은 문은 항상 열려져 있었습니다. 다시 구원자가 오셔서 이미 시작한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에 늘 문을 열어놓고 이 유월절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실 구원자가 다시 오셔서 이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라. 그 구원자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400년 동안 사사시대에 있으면서 압제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후에 그 압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왕을 요구해서 사울을 세웠습니다. 40년, 다윗에 의해서 대적들을 다 복수시켰습니다. 40-80, 솔로몬에 의해서 평화가 계속됐습니다. 120년이 정상적인 나라로서 평화를 유지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40년의 평화기간이 우리가 보기에는 황홀하고 찬란한 것만 같애도 성경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그 솔로몬이 그렇게 호화를 극하며 살기 때문에 물론 금은보화가 외국에서 많이 왔지만 그것 가지고 다 안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많은 백성들에게서 말할 수 없는 착취를 중세의 극을 진행했습니다. 외국에서 물물교환으로 해서 들어오는 그것가지고도 솔로몬의 그 영화와 넘치는 생활을 사치의 생활을 다 담당할 수 없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12지파를 지파별로 했는데 열왕기 읽어보십시오. 거기 보면, 왕실의 식량을 부담하기 위해서 지역별로 재편성을 했습니다. 전체를 그렇다고 해서 12지파가 없어진건 아니지만 지역별로 재편성을 해가지고 왕실의 생활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솔로몬의 압제 아래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했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황홀하고 찬란해도 그것은 외적인 것이요 오죽 감당하기 힘들면 세금을 감해달라 하는 요구가 르호보암이 왕이 되느냐 안되느냐 결정되는 요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내 새끼 손가락 하나가 내 아버지 허리보다 굵을 것이고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으면 나는 전갈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 그래 솔로몬의 그 압제를 이기지 못해서 르호보암에게 세금과 부역을 감해 달라는 요구가 응해지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그 요구가 응해지기는 커녕 솔로몬보다 극심한 압제를 가하게 되니까 그러면 내 집이나 지켜라 하고 우리는 더이상 분깃이 없다 하고 쪼개가지고 이스라엘을 열 지파를 세웠다. 그때부터 어려움이 시작된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772년 앗수르에서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그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으로 흩어져가지고 넓은 지역으로 완전히 흩어졌습니다. 다 흩어버렸습니다. 그래서 772년 이스라엘의 북 지파의 10 지파는 완전히 끊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소산되어 사라지고 없어질 민족이 되었습니다. 10 지파가 다시 회생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남은 것이 유다 지파하고 조그마한 베냐민 지파, 베냐민 지파야 유다 지파 위에 있죠. 그러니까 베냐민 지파는 실은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가야 할 지파인 베냐민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는 유다에게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586년 바벨론이 와서 그 나라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로 완전히 흩어져서 자취가 없어져 버렸죠. 바벨론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왜 그랬는지 몰라도 이들은 겟토에 모여 살게 했다. 그들의 민족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시 돌아갈 귀환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70년이 지나서 귀환되고 5세기 후엽 4세기 초엽에 귀환운동이 대대적으로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귀환 백성이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돌아간 수는 내가 계산한 4만 정도 밖에 안됩니다.
아주 극히 일부만이 돌아왔습니다. 늘 그러고도 평화가 계속된게 아니죠. 아직도 돌아와도 페르시아 왕국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유화정책을 써서 그들의 제사를 다 복귀하게 하고 포로로 잡아왔던 그들을 본토로 다시 돌아가게 하고 이스라엘만 돌아온게 아니죠. 다 다른나라들은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유한 종교를 다시 부활해서 지키게 했습니다. 유화정책을 함으로 페르시아가 고대 중동에 나타난 나라중에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였고 가장 오래 지탱한 나라였다. 300년을 지탱한 나라였다.
그러다가 4세기 말엽 322년경에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서 정복을 당해서 페르시아가 멸망합니다. 그것이 동양인이 건설한 마지막 세계대제국입니다. 세계의 주도권이 서양으로 넘어옵니다. 알렉산더에 의해서 희랍인들에게로 희랍인들에게 가서 로마인들에게로 그 후에는 유럽인들에게로! 그렇게 돌아와서도 페르시아 밑에서 계속해서 압제로 있죠. 페르시아 압제가 끝나고 헬라가 왔습니다.
지금은 별로 안 그러겠지만 그때는 남녀간에 대부분 옷을 벗고 경기를 하는 그와 같은 완전히 옷을 벗고 하는 경기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제사를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그에 대한 항쟁으로 일어난 것이 마카비 왕 가문의 기원전 2세기 초엽의 항쟁, 그것이 게릴라 전쟁을 통해서 결국은 시리아 군대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중심해서 소위 마카비 유대왕국을 세웠습니다. B.C 160년경에! 그래가지고 내려오다가 로마가 등장하고 내분이 생겼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때 마카비 왕가가 왕권만 잡은 것이 아니라 제사장직도 함께 잡았습니다. 왕권과 제사권을 함께 겸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솔로몬 시대 때서부터 사독계 제사장인 후손들만이 제사장을 계속해 왔는데 사독계 후손이 아닌 자들이 하나님 제사장인 사독계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가문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제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항쟁으로 일어난 것이 소위 시몬 선생을 중심한 쿰란학파, ( )파가 소위 세속화돼 완전히 돈으로 매수해 가지고 하죠. 제사장직을! 그래 보통 시몬 2세를 ( )선생이라 그럽니다.
B.C 200년경에 나타난, 그래가지고 마카비 왕가가 100여년을 지배했는데 내분이 생겼습니다. 헬라화를 반대해 가지고 제우스신을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 지성소에 달고 신상을 달고 독수리상을 달고 그래서 제사를 지낸 것을 돼지피를 섞어가지고 오염화 시킨 것을 다 소제하고 다시 예루살렘 피제사를 복귀해 가지고 마카비 왕가를 세웠는데 헬라화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정책으로 마카비가 생겼는데 마지막에는 정권이 위태하게 되니까 마카비가 다시 헬라화 정책을 도입했더랬습니다.
그러고는 결국 왕권이 이어지는 것 때문에 내분이 생겼어요. 그때 서로 로마에 가서 B.C 64년경 서로 왕자리를 차지할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진주해가지고 원로원이 소위 마카비 가문의 후손의 왕좌를 인정하면서 에돔의 후손인 헤롯에게 세금을 걷는 징세권을 주어 버렸습니다. 이론상으로는 마카비 가문이 왕은 가졌는데 세금 징세권이 없는데 무슨 권력을 행사합니까? 헤롯이 왕가문, 로마의 원로원하고 황실하고 잘해가지고 뒤바꾸어 가서 왕까지 다 되어버렸습니다.
로마의 지배아래 들어간거죠. 그때부터 이렇게 수난의 역사 이런 것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건 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 다스리시면 우리가 다시 다윗의 영화를 회복하고 그 영광을 맛보리라! 그것이 소위 후기 묵시문학들이 갖는 근본사상이었습니다. 그때 왕이 와서 다스리신다. 메시야만 오시면은 우리가 해방되고 전세계를 지배하는 전세계 지배민족이 되고 다윗 때의 그 영화를 재판하게 될 것이라.
그런데 마카비 가문 때문만 아니라 그후 다 돈주고 대제사장직을 샀죠. 여기는 소위 문서적인 증서가 있습니까? 소위 후기 유대교 외경들 중에 후기 문헌들 읽으시면 될 것입니다. 성경에 실린 그 이후에, 지금 우리는 구약에서 외경을 갖고 있지 않지만 로마교회는 외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 교회사적인 것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그 외경 구약 70인경에 외경이 들어있기 때문에 로마교회가 함께 외경을 성경으로 갖고 있는데 거기도 그런게 나타나 있지마는 그 이후에 진행된 많은 묵시문학책들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어대조로 되어있는 70인경에도 다 실려 있습니다. 참고해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책들이라고 말하기 어려워도... 다른 질문 없으면 기도하고 마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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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심플 라이프 원문보기 글쓴이: 심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