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5/19 22:00 신도림 출발 5/20 03:10 구절재 출발 04:50 소장봉(428봉) 05:00 사적골재 4.5km -연화정사,석탄사 06:00 476봉 (옥촉봉) 2.0km 06:30 노적봉(553봉) 07:00 (아침식사 후 출발) 07:20 굴재 2.5km 08:00 고당산 1.2km 08:45 개운재 1.5km 09:30 망대봉 1.0km 10:00 두들재 1.2km 10:45 여시목 11:10 435봉 2.8km 11:40 복용재 12:30 추령봉(송곳바위) 13:10 추령 3.2km 10시간 19.9km (5월의 찔레꽃, 벌들..)
(5/19 22:00) 토요일 저녁을 흥분시키며 자유인 8기 대간 종주팀들은 오후 8:00에 5산(불수사도삼)종주를 출발했다.응원팀 외에 15명..대단한 의지의 도담산우들에게 무사 완주를 기원한다.맑은 날씨의 밤하늘에 일찍 나온 초생달이 벌써 사라지려 한다. 정읍으로 떠나는 발길이 4주연속 종주의 피곤함도 잊은 채 역사 의 발자욱들을 되새김에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가슴에 다가오며 수학여행 떠나는 소년의 기분으로 우장 산 아래 보금자리를 나선다. 늘 그렇듯이 물푸레는 항상 걱정스런 얼굴로 철 없는 산꾼에게 혀를 찬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머리곰 비취오시라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 져재 녀러신고요 정맥길에 가 계신가요? 즌데랄 드되욜세라 위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느데다 노코시라 어느 곳에나 (배낭을) 놓으십시오. 내 가논데 졈그랄셰라 우리 가는 길 저물어 어두울까봐 (물푸레 井邑詞)
일찍 도착한 구절재 마루턱에서 1시간 남짓 단잠을 청하며 예쁜 꽃밭이 가득한 꿈도 꾼다. 날씨가 더울 것을 예상하고 만만찮은 거리를 고려하여 출발을 서두른다.(03:00) 인적드문 구절재 고개도 잘 정비되고 개량되어 두세번의 꺾임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차도로 변했다. 밤길을 바삐 달리는 승용차의 불빛이 옥 정 호반 쪽으로 향한다. 어디 새벽 낚시라도 가는걸까..달님 없는 하늘엔 별만이 총총하다.
(사적골의 새벽..멀리 옥정호반에는 운무가 서리고..)
(5/20 03:10) 평지의 풀밭을 가로 지나는 들머리에서 힘들지 않게 천천히 숲 속으로 빨려든다. 일단 첫 출 발의 느낌은 매우 한가롭고 편한 걸음이다. 가끔 이렇게 산책 코스를 만나면 얼마나 좋은지..두어개의 낮은 봉우리를 편하게 넘어 설 동안 오른쪽 산외면 마을들의 불빛이 아름답게 동행한다. 왼쪽 허궁실 마 을은 숲에 가려진 채로 숨바꼭질 한다. 저리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불빛 처마 속에서 지난 날의 아픈 역사 들일랑 잊어버리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농촌의 노부부는 서울로 떠나간 자식들의 양념거리 준비로 바쁜 하루의 일손을 뙤약볕 밭에서 보냈으리라..
편백나무 숲과 붉은 벽돌로 쌓은 이상한 형태의 여산 송씨 묘소를 지나 작은 오르내림 후에 머리재에서 남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간다.(04;00) 송전탑을 지나고 짧은 된 오름도 잠시 맛본 후 에 삼각점이 있는 336.7봉에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추기고 첫 휴식을 취한다.(04:25)긴 풀섶과 잡목 가지 들로 앞을 가리는 한 밤중 산행길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다행히 급격한 고도차를 보이지 않는 능선길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마주 보이는 소장봉(428봉)을 향해 20여분 잡목 오르막 길을 헤쳐 나간다.오른쪽 반곡리 마을의 불빛이 매우 가깝게 따라 붙는다.소장봉을 지나 소나무 밭의 편한 내림으로 연화정사가 있는 사적골재 시멘트 포장길에 내려선다.(05:00)
석탄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꾸불거리며 두어차례 만나는 마루금을 지나면서 벌목지대의 오르막 마루 금을 올라 서니 등뒤의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며 산마루를 여명으로 붉게 물들인다. 짙은 녹음에 가 려진 채 낮은 봉우리에서 조망이 좋질 않아 오늘 일출을 담기엔 썩 좋질 않다. 479봉에서 왼쪽 내림길을 바로 밟는다.(05:20) 오른쪽 석탄사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다. 긴 세월 속에서 숱한 난을 거치면서 수차 례 화염을 맛보고 중건 되었다는 石灘寺의 기록을 살피니, 반곡리 칠보산 사자봉 아래로 그 자리를 일러 준다. 그렇다면 고당산을 칠보산으로 칭했을 수도 있고, 이 봉우리가 사자봉인지도...아무튼 동학의 은신 처로 자리할 만큼 직벽 절벽 위에서 훌륭한 기를 담은 채 좋은 敎養處로 남아 있다.
(굴재-오룡마을 천주교 성지)
산죽 군락의 봉우리와 묘소들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516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용전재 작은 고개를 넘어 오르니 국사봉 갈림길인 476봉을 쉽게 지난다. 왼쪽 능선으로 동쪽을 향하면 사실재 넘어 회 문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해방 후 쌍치면 남부군의 주요 보급로이기도 하다.(06:05) 오른쪽으로 방향 을 이어가 편한 걸음의 능선을 거쳐 고로쇠 수액 채취용 플라스틱 통들이 호스에 연결되어 있는 오른쪽 오르막을 올라 짧은 산죽 급경사를 딛고 노적봉(553봉) 좁은 정상에 올라서서 이른 아침 식사를 펼친다. (06:25-07:00)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한 탓인지 허기가 일찍 느껴온다. 새벽 봄바람에 땀이 빨리 식는다.
굴재 내림길은 비교적 완만하여 식사 후 진행에 큰 무리가 없다.보우리 왼쪽 사면을 타고 내리다, 묘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편한 걸음으로 소나무 밭을 지나면서 마을이 가까워짐을 느끼고 많은 묘지를 거친 후 배추밭으로 지도에 표기된 복분자 밭을 지나 굴재에 내려 선다. 왼쪽 오룡동 마을은 병인 양요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 살던 성지로 안내되어 있다.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순창까 지 큰 길에 연결되어 승어실 마을과 함께 국사봉 철쭉제의 종점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07:20)
(쌍치면 국사봉-철쭉으로 유명하다.)
굴재에서 마주 보이는 고당산 등자락이 매우 높아 보이며 300여 미터 고도를 갑자기 높이기 시작하니,찔 레꽃 가시덤불이 앞을 가리는 잡목지대를 뚫고 오르기가 여간 만만치 않다. 묘지를 지나고 벌목지대를 지나면서 저수지가 아침 햇살에 눈부신 학선 마을을 내려다 본다. 조금씩 가파르게 오르는 산죽지대에서 잠시 급경사도 맞이하나 크게 힘이 들 정도는 아니다. 잠시 다리 쉼도 해가면서 여유로운 오름을 맛본다. 지금쯤 강북 5산 종주팀들은 영봉에 올랐을까..부디 무사히 완주하여 스스로의 고된 구도자의 길에 영광 스런 자신감을 느낄 수 있기를..긴시간 대간 종주를 통해 다져온 협력과 인내들이 좋은 결과를 안겨다 줄 것이다. 산죽 밭을 헤치고 고당산 정상에 오르니 사면이 확 트여 좋은 아침을 선사한다.(08:00)
고당산(639.7) 정상에서 대원들이 함께 모여 기록 사진도 남기고 주위를 조망하며 10여분 휴식을 취한다. 지나온 동쪽의 쌍치면 국사봉 능선길은 깊은 산골 마을들을 골골이 감싸 안은 채 맑은 5월의 풍성함을 보 여 주지만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마루금 탐사객의 눈에는 그 옛날 장군의 걸음이 멈추었던 피로마을이 하얀 베적삼을 입은 영혼들과 함께 아스라이 다가온다. 근대의 시작을 일제의 속박 속에서 시작한 이후 로 역사를 띄어 넘는 이념의 혼돈을 맞이 하고, 해방후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경험해야 했던 쌍치면의 아픈 기억들이 전설처럼 하얗게 파도치며 밀려든다. 잠시 한 수 싯귀를 그려 본다.
초승달 아래 마루금 이어 걷네
내장산 말굽 동녘 쌍치면 장군의 길을 찾아
초승달 따라 마루금 이어 가네 (5.18에 부쳐...도연)
(고당산-칠보산으로도 불리운다.)
고당산 내림길을 5분여 산죽과 싸리나무의 잡목을 헤치고 다시 올라 선 헬기장에서 나아갈 망대봉 통신 시설을 조망해 본다. 개운치로의 급한 내리막을 감지하며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남쪽 내림길을 택한다. 오른쪽 리본이 붙은 서쪽 길은 지도상의 칠보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인듯 하다.일명 정읍지맥이라 했던가 .. 잠시 혼돈을 일으킨다.키 높은 산죽 길을 헤치며 급경사 내리막도 경험한다.30여분의 가시덤불 찔레 꽃밭을 지나며 고려시대 貢女의 슬픈 전설을 떠올린다. 달래와 찔레의 애틋한 자매의 정을 담은 큰잎 찔 레꽃이 다소 성가시지만 그리 밉질 않다.대나무 숲을 지나 개운치 21,29번 도로에 내려선다.(08:45)
정읍에서 남으로 천치재 넘어 담양을 향하는 29번 도로..지난 주 내장-추월 구간을 미리 종주하면서 하룻 밤을 보낸 오정자재 아래 추월산 가마골로 이어진다. 가장 힘들고 치열했던 해방 후의 비극의 골짜기엔 이젠 붉고 하얀 철쭉이 함께 피었다. 또한 쌍갈마재에서 갈라진 21번 도로는 피로마을에서 걸음 멈춘 장 군의 호송길로 이어져 순창으로 향한다. 다음 구간 강천산 길이 바로 담양과 순창을 가르며 남으로 남으 로 이어져 남도의 땅으로 들어서겠지..빨리 영암 어귀에 닿아 K군을 만나고 하루 저녁 술도가 옆에서 인 삼 더덕 향내 진한 생막걸리로 밤을 새고 싶다.
개운치 도로를 지나 망대봉 오름길 들머리에 죽순이 밭을 이루고 지천이다. 봄물 오른 보드라운 죽순 몇 개 뽑아 나물 무침이라도 기대해 본다. 억새 밭과 잡목 숲을 지난 후 갑자기 20여분 고도를 높이며 경사 를 이루는 사면을 치고 오르니 헬기장에 올라 선다.(09:10) 왼쪽 방산리 마을이 맑은 햇살 아래 평화롭게 졸고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작은 봉우리를 올라서니 통신중계소 철망으로 끊어진 마루금을 만나고 잠시 머뭇거린다. 왼쪽 우회길을 살피니 이건 길이 아니라, 통신소 철망을 따라 곡예하는 위험하 기 짝이 없는 피난 길이다.
(망대봉 통신시설)
어떤 이유에서든지 고지 정상을 차지하고 통신을 원할히 할 만한 까닭이야 이해 하지만, 비단 대간 정맥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가와 기관의 시설 이전에 생겨난 인류의 발자국에 의한 산길도 분명 인간 삶의 필요에 의한 영혼의 소통로임을 왜 모르는가.. 그렇다면 어떤 시설을 하더라도 영혼이 깃든 이 길을 이어 가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왜 좀 더 안전하고 편한 정맥의 길을 확보해 주는 책임과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소인들의 2중 3중 철조망이 과연 영혼의 큰 걸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철망을 스치며 돌아드는 언덕에 축축히 젖어드는 하수의 오염이 걱정 된다.
망대봉 정상을 차지한 통신소 정문 앞 도로를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추령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 넘 어 내장산 북릉과 내장지 큰 저수지를 조망한다.(09:30) 국도가 지나는 쌍치면 서부의 좁은 논밭 길옆에 옹기 종기 마을을 가꾼 삶들이 숱한 사연들을 잊은 채 고단한 논물막기 삽질을 하며 오월의 한낮을 가꾼 다. 멀리 남쪽에 장군봉과 추령봉이 대문 처럼 솟아 있다. 마지막 이슬이 한잔으로 원기를 북돋우며 10여 분 휴식을 취한 뒤 포장된 통신소 오름 길 도로를 따라 꾸불거리니 두들재 갈림길에 내려선다.(10:00)
두들재 오른쪽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 비포장 임도에서 오른쪽 비탈을 올라선다.작은 봉우리와 잡목지 대를 스치며 왼쪽으로 크게 감아 돌면서 평탄한 잡목 숲을 헤쳐 나간다. 잡초에 묻힌 헬기장과 수많은 묘 소들을 지나서 철망이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을 따른다. 그리 울타리를 쳐 놓아야 할 만큼 중요한 재배 지는 아닌 것 같고 이미 철거를 해야 될 만큼 무용지물인데..그냥 방치되어 있으니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길섶이다. 왼쪽 사기점 마을이 성긴 숲속에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쌍치면 서부 마을-장군봉과 추령봉이 마주한다.)
낙엽송과 소나무밭을 번갈은 후 마주보는 작은 봉우리(468봉)를 왼쪽으로 직진하는 삼거리에서 잠시 머 뭇거린다. 오른쪽으로 묘지를 끼고 사면을 올라치니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 힘겹게 올라선다.(10:40) 468봉에서 왼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바꾸면서 크게 5분여 돌아 내리니 여시목 정자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두와 만나서 잠시 숨을 고른다. 밤길엔 여우라도 만날 만큼 깊은 잡목 숲을 이루고 마루금 오른쪽 저동마을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이후 복용재로 향하는 능선은 첫 오름으로 509봉 바위전망대에 올라 선 이후로 작은 내림길을 밟으며 왼 쪽 장군봉을 향하면서 남쪽길로 이어진다.왼쪽 오도실 마을의 목장이 시작되면서 3가닥의 철선이 어지럽 게 길을 안내한다.국립공원 경계 표지도 시작되면서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내 리며 복용재 직전 묘소에서 다시 휴식을 취한다. 조금씩 지쳐오는 느낌이다. 건네주는 이슬이 한 잔에 또 다시 원기를 북돋우고 마주하는 추령봉 송곳바위가 매우 가파르게 느껴진다.(11:40)
왼쪽 복흥터널 공사장이 바로 보이는 복용재 안부에서 철망문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철근 기둥 두어개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20여분의 힘든 된오름을 마지막으로 맛본다. 곧은 낙엽송 나무와 산죽오르막을 힘 겹게 올라서니 왼쪽 중안재로 이어지는 갈림길 능선에 오른다.(12:00) 오른쪽 내림길을 택하여 산죽길을 벗어난 후 추령봉을 마주하는 벌목지대 오름길에서 더덕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아예 더덕 밭을 이루고 있다. 큰뿌리 몇 개 수확하여 하산주를 꿈꾼다. 다시 이어지는 산죽 오름길을 지나니 추령봉 송곳바위가 눈 앞을 가로 막는다. 왼쪽 우회 길에 리본도 보이고 길은 선명하지만, 오늘의 마지막 전망처를 그냥 돌 아 가기엔 아쉬움이 크다. 직벽 암반이 그리 미끄럽진 않으나, 거의 90도에 가까운 넓은 사면에 크랙을 잘 택해야 할 만큼 아슬하다. 눈 비가 오는 날은 절대 위험하니 피할 곳이다. (추령봉에서 내려다 본 내장산 관광단지, 내장저수지, 정읍시..)
20여미터 높이의 직벽 암반을 다행히 표면이 거칠어 미끄럼은 없이 한발씩 디뎌 오른다. 왼쪽으로 잘 못 방향을 잡으면 위험하다. 다시 내려 오기가 더욱 위험하기 때문에 꼭 암반 오른쪽 가장자리를 택해야 한 다. 왼쪽 부처손 큰 이끼들은 잡거나 디디면 미끄럼의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될 일이다. 가까스로 긁 어 오른 송곳바위 정상에서 내장산을 마주하며 정읍을 내려다 보는 기분으로 조금 전의 힘든 곡예를 잊 어 버린다.(12;30) 추령으로 이어지는 꾸불거리는 49번 도로와 내장사로 통하는 포장도로가 녹음의 천지 간에 인간이 함께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왼쪽으로 내림길 암릉을 밟아 내리니 다시 추령봉 국립공원 표지석이 있는 바위 전망대를 만나 잠시 휴 식을 취하며 내장산 9봉능선을 조망한다. 왼쪽 내림길에서 우회길을 만난뒤에 90도 오른쪽으로 꺾어 암 벽지대가 번갈아 이어지는 내림 길을 조심스레 밟아 내린다. 군데 군데 도근점 표지가 설치되어 있고, 작 은 바위전망대에서 지나 온 추령봉을 다시 한 번 배경을 삼아 본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른쪽으로 우회하 며 천천히 추령으로 내림 길을 밟으니 추령 마을 직전 내림 길에서 여러개의 묘지를 거친 후 마을길로의 왼쪽 내림을 버리고 오른쪽 언덕을 넘어선다. 추령 도로가 보이는 언덕에서 친절한 팻말을 만난다. "탐방로 아님"...이미 탐방을 끝내고 내려 왔는데..어쩌라고...(13:10)
(추령봉을 내려 와서..)
추령 고개 49번 국도(정읍/복흥)에 지나는 차량마저 뜸하고, 한낮을 데우는 봄볕만이 따사롭다. 몸이 시 릴 정도의 찬물로 땀을 씻고, 길가 대나무 평상 자락에 앉아 정맥 길 어귀에서 얻은 더덕 한 뿌리 갈아 넣 은 막걸리 한 잔을 따르니 이 세상 푸른 산천초목이 다 내 것이로고...정읍 땅 어귀에서 떠오르는 가락과 함께.. 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 엇더한고. 녯 사람 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까. 天地間 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山林에 뭇쳐 이셔 至樂을 마랄 것가. 갓 괴여 닉은 술을 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和風이 건듯 부러 綠水를 건너오니, 淸香은 잔에 지고, 落紅은 옷새 진다. ----- (賞春曲-不憂軒 丁克仁)
문득 학창 시절, 고전가요를 강의하시던 정병욱 선생님이 떠오르고.. 졸업도 못한 학생신분으로 결혼하는 한심한 제자 주례 서주시고, 몇년 후 돌아가신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구나.. 선생님, 결국 저는 님이 바라시던 그 길을 포기하고 말았읍니다. 어느새 저희들도 사위 며느리 보는 결혼식장을 다니고 있읍니다.. (내장산 9봉능선을 바라보며)
5/21 道然 배슈맑 |
출처: 뮌네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道然 배슈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