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지맥 4구간 2009.05.02 (토) 산길 : 안심산온천~봉화산~힛도 거리 : 22.7km 심곡~1.7~안심산~4.6~비봉산~4.9~안양산~5.4~고봉산~1.2~봉화산~4.9~힛도....22.7km Cartographic Length = 26.2 km / Total Time = 11:30
백호산 들머리에서 전혜자님의 술고문(?)을 두어시간 받은 다음에야 방면이 되어, 백야청년회 사무실 앞에 텐트를 펴고 잤다. 아스팔트 도로변이긴 하지만 교통량이 거의 없어 소음 방해없이 긴밤을 곤히 보낼 수 있었다. 새벽 4시반에 기상하고, 어제 마친 심곡마을 안심산 입구에 도착하고보니 차를 대기도 마땅찮아 시동 걸린김에 유심온천까지 올라갔다. 유심온천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등산로 따라 올라간다. 어제도 그랬지만 한 구간으로 마무리하기엔 사실 벅찬 거리였다. 순전히 내일 비가 올거라는 기상예보 때문에 조금 무리하더라도 비 맞는거 보다야 낫다는 판단에 그리했는데, 한방에 조지려다보니(!) 마음은 더 급해지고 시간 단축할 궁리만 하게 된다. 안양산 조망바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화양고등학교와 화동마을 들판의 지형지세를 손바닥 훑듯이 들여다보며 지맥마루금 우측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밟아보자고, 자연스럽게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화동마을에서 고봉산 아래 임도까지, 임도를 타면서 시간을 그만큼 줄이고도 11시간 반이 걸린 거리이니 제대로 산길 꼼꼼히 밟았더라면 해지기 전에 마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간표) 06:08 유심온천 06:27 안심산 07:23 사방산 08:13 22번 도로 (창무) 09:18 비봉산 09:58 상촌도로 11:02 도로(화양중학교 위) 12:14 안양산 ×327m 13:30 화양고등학교 14:30 산전마을 15:25 고봉산 16:00 봉화산 17:40 백야대교 안심산온천 죽림저수지 옆으로 올라가는 안심온천과 안심사 진입로 양편으로 연등이 길게 걸려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초파일 부처님오신 날이구나. 오늘 같은날 마루금 근처에 절이 하나 있으면 뭔가 잘 얻어먹을 만도 하겠는데, 비봉산 아래 용문사가 있다만 잠깐 들여다볼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보니 여수지맥에는 절보다는 교회가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크리스마스를 택해서 올걸 그랬나. 연유야 알 수 없지만 지역적인 특색이 되겠다. 안심산 등산안내도 간판이 있는 돌판으로 바닥을 깐 반반한 길을 5분 오르니 지맥 마루금이다. [←부영여고1.5 →정상0.5km]이정표가 있다. 계속해서 길은 넓고 통나무로 계단을 받쳐놓은 길이다. 구름이 넓게 덮혀 일출은 없다만 선선한 바람과 넓게 펼쳐지는 바다풍경에 몸도 눈도 시원해진다.
(안심산)
(안심산에서 돌아본 지맥.......유심온천, 죽림지, 무선산)
안심산 (安心山 △347.8m) 지붕까지 설치된 쉼터와 산불초소가 있다. 삼각점 같이 생긴게 두 개나 있는데 국토지리원삼각점은 아니다. 사방 막힘없는 조망이다. 지나온 지맥길과 소호동 일대와 가막만에 섬들이 여기저기 떠있다. 서쪽으로 내려서다가 능선 끝봉 이르기전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남서쪽 멀리 곧 올라야할 비봉산이 사뭇 겁을 주는듯하다. ‘또 얼반 죽었구나...’ 복창이 절로 나온다. 왼쪽 소호제가 있는 안부에 내려서니 순식간에 고도 200m 이상을 떨궜다. 안부 왼편 묘터를 통해서 올라가고 야트막한 봉우리 넘은 다음 안부에는 돌로 쌓은 성벽이 남아있다. 지형도에 ‘창무성지’다. 성벽을 타넘어 우측으로 가는길을 따라 100여m 들어갔다가 묘터에서 막혀 되돌아 나오고, 돌담 왼쪽을 살펴보니 멀쩡한 길이 방실거린다. 잠시나마 묘터에서 가위질하며 길을 뚫으려 했었는데, 하마터면 엄청난 고생을 자초할 뻔 했다. 사방산 오름길 역시 반질반질할 정도로 뚜렷하게 열려있는 것을,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는가. 무조건 힘으로 들이밀 일이 아니다. 사방산 (×252) 이곳 역시 수암산처럼 지리원 지형도에는 표기지명이 없고 랜덤, 영진지도에 사방산 표기가 있다. 동쪽으로 시원하게 조망이 트여 넓은 바다와 소호동 바닷가에 호텔같은 건물이 내려다보인다.
진행방향에서 왼쪽길은 송소마을 하산길이고 지맥은 능선따라 직진한다. 잠시 능선을 따르다가 -우측으로 꺾일 장면인데 계속 직진 하길래- 섣부른 판단을 하고 우측으로 길도 없는 비탈을 치고 내려갔다. 마루금에서 다소 벗어나긴 해도 좀더 따라 내려갔더라면 조은길로 점잖게 내려갈 수 있었는데. 다행히 나무숲이 그런대로 틈이 있고 내리막이라 큰 고생은 면했다. 숲이 터지는 묘터에 내려서고 보니 건너편 납골당에 고문님과 무심이님이 손을 흔든다. 사방산에서는 정면(남쪽) 길흔적따라 계속 내려가면 우측으로 꺾이면서 시멘트길을 만나고 안부로 쉽게 내려올수 있다. 납골묘 화교동에서 올라온 시멘트길 임도를 건너고, 전주이씨 성녕대군파 숭모당에서 모두 만났다. 계백님이 주시는 바나나 하나 물고 납골당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성녕대군은 조선태종의 넷째아들이다. 바나나 덕인지 뒤쪽 ×131봉은 부드럽게 올라간다. 정상부에는 큰 바위하나 있다. 22번 도로 교통량이 꽤 분주한 2차선 아스팔트인 22번 지방도로인데, 해발고도가 10m 정도다.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앉은 셈이다. 저 높은 비봉산을 언제 다 올라갈꼬 걱정이 태산이다만 우측 주유소로 눈길이 간다. SK명신주유소 물도 좀 얻어먹고 혹시 커피 자판기라도 있을까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주인양반 의외로 친절하다. 사무실에 들어가 봉지커피 한잔씩 (무심이님은 2잔) 타먹고, 화장하고 물마시고, 기름 넣으면 주는 화장지까지 챙겨준다. 봉두마을 이장님 견학 한번 시켜야겠다. 길 건너 [창무] 버스정류장 옆에 [창무옻닭] 간판이 있는데, 이 옻닭집을 찾아가면 된다. 비봉산을 바라보고 마루금을 그어보면 밭을 가로지를 수밖에 없다. 밭마다 일손이 분주한데 마루금 좋아하다가 욕들을 일이 뻔하다. 시멘트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고 물탱크에서 왼쪽으로 틀어 올라가면 창무옻닭집이다. 창무옻닭 옻닭집 우측으로 돌아가니 식당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산행 그만하고 ‘닭 한 마리 잡아놓고 고스톱이나 치며 놀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람도 넷이라 한사람 광 팔고 조가 딱 맞다. 솔직히 농담10%에 진담90%였는데 아무도 호응을 안 해준다. “아흐~ 독한 님들...” 옻닭집 뒤로 나 있는 뚜렷한 길은 왼쪽 사면으로 자꾸 벗어나더니 물길마저 건넌다. 그렇지만 정면으로는 길도 없고 뚫을 수도 없는 두터운 잡목덤불이다. 돌아설 때 돌아서더라도 가는데까지 가보자하며 꾸준히 따라가니 용문사로 내려가는 지능선 묘터에서 비로소 우측으로 U턴 하듯이 꺾어 올라간다. 비봉산 등산로가 맞다. 비탈길 15분 오르면 북으로 트인 멋진 조망대가 있다. 조망바위 등로에서 우측으로 나앉은 조망바위인데 낡았지만 통나무 벤취도 있다. 지나온 안심산 사방산 명신주유소까지 훤하게 보인다. 다시 계백님의 배낭에서 오렌지가 나오는데, 어제 종일 지고 다니며 열어보지도 못한거란다. 10분 정도 올라가면 지맥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일단은 눈도장 찍어놓고 그대로 올라가면 헬기장이고, 다시 200m 직진하면 비봉산 정상이다.
(비봉산 오름길에 돌아 본 안심산, 사방산, 창무리)
(비봉산 헬기장) 비봉산(飛鳳山 ×311m) 나무가 둘러싸 조망은 별로이고 돌무더기 하나 있다. 우측으로 나앉은 봉우리에 준희님의 팻말은 되돌아가라는 뜻으로 화살표가 뒤로 그려져 있다. 비봉산은 전위봉인 헬기장이 훨씬 조망이 좋아 헬기장을 정상으로 삼는게 더 좋겠다. 그리고보니 어제 오늘 정상석을 하나도 못봤는데... 아니, 전 구간을 걸쳐 앵무산 외에는 정상석을 못봤다. 그 앵무산도 제대로 된 정상석이 아니었고..., 여수지맥 또 하나의 특징. “여수지맥에는 정상석이 없다~!” 다시 헬기장으로 되돌아오고, 지맥길로 내려간다. 왼편에서 은은하게 불경소리가 들리기는 하나 용문사가 보이지는 않는다.
상촌도로 우측에 상촌마을이 있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간다. 비탈에 앉아 쉬고 있는데 시내버스가 지나간다. 이번 구간은 연속적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고, 그 도로마다 시내버스가 지나다니는걸 볼 수 있다. ×199봉 역시 왼편으로 제법 휘돌아 오르게 된다. 묘를 만나 우측으로 꺾으면 ×199봉인데 암봉이라 정상부 왼편 암릉사면으로 지나치게 되는데 화양중학교 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이며 한줄기 광풍이 불어 제치니 깊숙한 곳 쌍방울까지 시원해진다. 이어지는 ×219 오름길에도 암릉이 자주 나온다. 길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데 잔가지의 절단면을 보면 최근에 벌목을 한듯하다. 마치 우리가 올줄 알고 준비한 것처럼... 착각에서 깨는데는 몇분 안걸린다. 조은길은 ×219봉에서 그대로 (우) 넘어가고 지맥은 왼쪽으로 꺾어 내리는데 잡목이 사정없이 긁어댄다. 스티로폼과 폐자재가 버려진 안부를 지나 더 내려서면 다시 아스팔트 도로다.
화양중학교 도로 사전에 지도를 보고는 화양중학교가 있으니 잘하면 중국집이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산길을 넘어가는 고개일 뿐, 건너편에 [제일타조농장] 간판만 서있다. 건너편 들머리는 푸른색 카펫(플라스틱 바닥깔개)이 깔려있다. 묘터 들어가는 길이다만, 카펫 깔린 지맥길은 처음이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벗어나는 듯 하지만 이런 장면에 이미 익숙하다. 끝까지 카펫을 밟으며 따라가면 밀양박공 묘터로 안내가 된다. 조상님 산소 가는 길바닥에 깔개를 다 깔았으니 대단한 후손임에 틀림없다. 묘 뒤쪽으로 올라서면 수렛길이 반긴다.
나진공동묘지 앞봉우리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수렛길따라 내려가면 나진공동묘지 안부다. 이어 우측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6-7분 가다가 왼쪽 능선으로 붙는 수렛길로 올라가니 ×288봉 안부인데 고사리와 취나물이 가득담긴 봉지가 있고 사람소리도 들린다. ×288 오름중에 나물캐던 아저씨와 만났는데 뭘 그리 꼬치꼬치 묻는지 모르겠다. 자기동네라서 여수지맥은 알고 있는데 부산사람이 여수지맥을 어찌알고 왔느냐, 백두대간은 했느냐, 며칠이나 걸렸느냐... 288봉 정상부는 암릉이 섞여있다. 정상부를 조금 지나치면 파묘가 있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조은길이 있다. 내림길에 파묘가 연이어 나오는데, 관 크기만큼만 봉분을 잘라내고는 흔적을 지우지도 않고 관만 쏙 빼내갔다.
안양산 (×327m) 편백나무 울창한 안부를 지나 고도 80정도 올리면 안양산인데 억새만 무성한 헬기장이다. 안양산 역시 지리원지형도에는 없는 이름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만 앉을 형편이 못되어 그대로 내려간다. 안양산에서 5분정도 내려서니 우측에 여러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어 점심상을 편다. 나는 준비해온 밥이 없어 ‘십시일반~!’ 주문을 외니 빈도시락이 금방 찬다. 원래 얻어먹는 사람이 제일 많이 먹게되는 법이다. 간간히 빗방울이 한두방울 날리지만 그 뿐이다. (12:20~12:55) 밥을 먹는 동안 넓게 펼쳐진 화동마을을 내려다보며, 가야할 마루금을 짚어보는데 그 우측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눈길을 끈다. 흙이 드러난 도로는 우측으로 살짝 넘어 산전저수지 옆으로 해서 고봉산까지 올라간다. 가차없이 방송이 나온다. “임도행~!!”, “오늘 임도 한번 제대로 타보자...”
(안양산에서 보는, 화양고등학교에서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마루금을 외면하게 한다...)
내려선 안부에서 우측으로 가는 임도를 기웃거리다가 아닌 것 같아 정면길로 들어간다. 봉우리 하나 살짝 넘어 내려가니 아래위로 문인석을 양쪽에 세운 경주정공이고 다시 오르막이다.
×232 (△229.4) 준희님 팻말은 [229.4m]로 되어 있고 삼각점은 정상부 조금 아래 금녕김공 묘 상석 옆에 반은 깨진채 있다. 화동농공단지와 화양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고, 화양고등학교 이후의 도로가 훤히 들어온다. ×227봉 우측으로 새로 개설된 도로와 산전저수지 왼쪽으로 해서 고봉산까지 올라가는 도로다. 맨 뒤쪽은 고봉산과 봉화산 능선이다. 잠깐씩 해가 나오기도 한다. 화양고등학교 학교 왼쪽으로 내려서 정문으로 간다. 정문 앞에는 화동리 화동고인돌 유적지다. 고문님 일행은 학교를 방문해 물을 보충하는데, 나는 온통 수퍼 냉장고에 들어있을 사이다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우측 도로따라 내려가니 작은 구멍가게가 있다. 1.5리터 사이다 한병을 따서 막걸리 사발에 나눠 마셨다. 여기도 시내버스가 지나간다. 마루금은 학교정문 맞은편인데 집이고 밭이다. 그 다음봉엔 이동통신 철탑이 있음을 눈으로만 확인하고 우리는 마을 농로따라 들판을 건너 비탈로 올라가니 지도에는 표기없는 공사중인 도로다. 조만간에 포장이 덮힐 모양이다.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니 산전저수지 옆길이고 이 길은 고봉산 아래 산전마을 까지 올라간다. 버스도 다니는 모양이라 정류장 팻말이 있다. ×227, ×280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산전마을을 지나 마루금에 복귀가 된다.
산전마을 화동리 산전마을 버스종점이고 [청량리 산전노인정] 앞이다. 현판에 청량리는 뭔말인지 모르겠다. 아스팔트 도로 따라 걷는것도 쉬운일은 아니라 배낭 내리고 다리쉼을 한다. 화양고등학교에서 한 시간 걸렸다. 지맥마루금 복귀 산전마을에서 도로는 끝나고 뒤편 밭을 지나 올라서니 돌담 둘러친 밭과 노송한그루 있는 안부다. 우측으로 나가니 시멘트 포장된 임도가 나오는데 승용차가 올라와 있다. [←원포리사무소 →산전,화동/ ↑봉화산정상1900m]이정표가 있다. 흑염소를 방목한다는 산전마을 노인과 한참동안 얘기를 나눴다. 산전 마을 일대 대부분의 땅을 통일교에서 사들이고 있단다. 그들의 왕국을 지을 모양이다 이정표 뒷길로 올라서고 15분후 다시 임도를 만난다. 지형도를 보면 우측 산전쪽으로 휘돌아 올라오고 봉화산까지 이어지는 임도다. 고봉산이 지척인데 오르는 길이 없다. 우측으로 이동하여 임도 곡각지점에서 마루금을 찾으니 몇몇 리본이 보인다. 선답자의 리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보나 길 흔적은 잠깐 보이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래도 거리가 얼마되지 않으므로 부지런히 가위질 해대며 올라간다.
(고봉산에서 만난 아저씨)
고봉산 (363.7m △여수306) 정상부 다 올라서니 왼쪽 봉화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뚜렷하게 나있다. 조망은 사방으로 열려있고 비로소 백야대교와 백야도가 보인다. 지나온 안양산부터도 훤하게 보인다. 잠시 조망에 젖었다가 봉화산으로 향한다. 고봉산부터 봉화산은 뚜렷한 길이 열려있다. 5분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나 임도따라 간다. 우측으로 활공장처럼 훤히 트인 공터에서 임도는 왼쪽으로 가고 산길로 간다. 의자와 평상도 있다. 우측 아래로 장수리의 옴폭한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봉화산이 머리위로 보이고 암릉을 왼쪽으로 돌아간다. 백야도가 점점 뚜렷해진다. 왼쪽 임도에서 나무계단길이 올라오고 우측 장동마을 쪽으로도 길이 나있다.
봉화산 (×372m) 오늘의 최고봉이자 여수지맥 대미를 장식하는 봉우리다. 삼각점도 정상석도 없지만 봉수대가 우뚝솟아 있어 그 위로 올라서면 여수 앞바다가 다 보인다. 백야도를 가운데 놓고 좌로는 가막만이고 우로는 여자만이다. [백야곶봉수대]에는 ‘東으로는 돌산의 방답진봉수대와, 西로는 고흥 팔영산 봉수대와 응한다’고 되어 있고, 여수 고흥 연륙교 조감도가 있는데 이 다리가 완공되면 돌산도-화태도-월호도-개도-제도-백야도-조발도-낭도-적금도-고흥반도로 남쪽에 보이는 모든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는 그림이다. 봉수대 위에 올라서 시원한 조망을 원없이 둘러본다. 바로 아래쪽 봉우리에 골프장 공사로 벌겋게 파헤쳐 놓은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멀리로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봉화산)
(백야대교와 백야도)
여수는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본영이었고 거북선을 건조한 선소가 있는, 한마디로 이순신장군의 주 근무지이자 활동지였다. 장군께서 바로 이 자리에서 가막만과 여자만을 내려다보며 작전을 구상하고, 지휘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경 그리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에 쓴 亂中日記(난중일기) 한편을 보자.
임진년 2월19일 (양력 1592.4.1) 맑다. 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 백야도)의 감독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 권준(權俊)이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왔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저물어서야 이목구미(여천군 화양면 이목리)에 이르러 배를 타고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 이르니 영주(고흥)현감(裵興立)과 여도 권관(黃玉千)이 마중했다. 방비를 검열하는데 흥양현감은 내일 제사가 있다고 먼저 갔다.
현재 우리 산꾼들의 산행일기나 크게 다르지 않고 제사가 있다고 모임에서 빠지는 거는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여수시청홈에 [거북선의 고향 여수]를 보면 바로 여기 봉화산에서 보이는 모든 섬들이 임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음을 알 수가 있는데 백야도 우측 뒤로 상화도와 하화도가 보인다. 상화도, 하화도를 위꽃섬, 아래꽃섬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병사들에게 여자옷을 입혀 가지고 유인하면 둔병도, 조발도에서 기습해서 잡았다. 조선성에서 왜놈들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데 거기서 빨간 옷, 파란 옷, 색깔을 바꿔가며 돌았다. 색색으로 나오니까 수 천 명 같이 보여 왜놈들이 당황했다.
봉화산을 뒤로하고 능선따라 10여분 내려가니 왼쪽 아래로 시멘트 임도가 급하게 휘돈다. 절개지 위에 배낭 내리고 남은 음식 떨이를 하고, 다시 10분 후 임도에 내려서니, 정면으로 공사장이 나온다. 여기도 골프장을 만드는 중이다. [위험 발파중 화양지구 골프아일랜드 조성공사] 정면의 ×198봉에는 굴삭기가 여러대 움직인다. 봉우리 오를 수도 없어 그대로 임도를 따라가면 넓은 공사장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절개지 사면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198봉을 포함하여 왼쪽 산자락 전체가 파헤쳐진 채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이로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혹시나 공사장에서 제지나 하지 않을까 부지런히 움직여 공사장을 벗어난다.
공사장 끝. 파헤쳐진 공사장 영역이 끝나고 마지막 봉은 돌담으로 둘러싼 묘가 있다. 이장해 간 파묘다. 묘 왼쪽 아래로 수레길이 내려가는데 그대로 따라갈 일이다. 돌담 둘러싼 묘 직전에 우측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길을 보긴 했는데 어디로 떨어질는지 알 수 없고, 수렛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루금 왼편 능선을 타고 국도로 떨어진다. 정확한 마루금을 찾으려 우측으로 내려가 봤으나 묵은 밭이 나오고 더 이상은 진입이 되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수렛길따라 내려가니 몇몇 아는 리본이 걸려있다. 다들 이리로 내려간 모양이라. 밭 상단부에서 도로를 내려다봐도 역시 마루금 한칸 건너 능선이다만 어쩔 도리가 없다. 77번 국도 세포마을 국도에 내려 우측 고갯마루로 올라간다. 건너편 축사 뒤로 오른 봉우리 (약 55m) 밭에 아주머니가 파종하고 있다가 여기를 뭐하러 올라왔냐 나무란다. 그대로 넘어가니 통훈대부김해김공이고 앞쪽은 양파 밭이 넓게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어 농로를 따라 내려간다.
세포교회 다시 77번 국도다. 여기부터는 마루금이 도로와 거의 나란히 가므로 차로 이동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세포교회 뒷 봉우리에 마지막 삼각점이 있었다. 현 지형도에 ×80으로 표기된 곳인데 구 지형도의 72.5봉으로 △여수421 2002년재설 삼각점이다. [남경수산] 앞에서 마지막 봉우리는 두발로 밟기 위해 올라간다. 임도로 올라가니 [광주이동통신 기지국] 시설물이 울타리 안에 있고, 임도는 우측으로 올라간다. 지형도상 마지막 봉우리인 ×76봉은 펑퍼짐한 억새밭이다. 임도따라 내려오니 77번 국도이고 [힛도마을] 팻말이 있다. 힛도마을은 왼쪽이고, 우측 백야대교로 간다. 화양면 안포리 힛도 마을이름이 좀 특이하게 들려 안포리 이장님께 여쭈어 보니 원래 흰색 돌이 많아(백야도와 마찬가지로) 흰백(白)字 백도라 했고, 희다고 힛도가 되었다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백야대교 힛도마을로 내려가든 백야도로 가든 그거야 가는 사람 마음이다. 더구나 강의 하구로 가는 산줄기가 아니라 어디로 가든 바다로 떨어지는 지맥임에야 굳이 여기다 저기다 할 형편이 아닌 것이고, 나는 백야대교 구경하러 그쪽으로 갔을 뿐이고~! 그리 길지 않은 지맥이지만 성급하게 끝내려 하다보니 짧은다리 길게 벌린다고 욕봤다. 그래도 조고문님 일행에 묻혀서 수월케 마무리했다. 함께한 고문님과 무심이님 계백님께 감사드린다.
(백야대교)
여수지맥의 끝 |
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