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누구를 가장 먼저 구조해야 되는지 알고 있다.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등과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을 먼저 구하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마주친 우리 사회에서 이 상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어떠했는가?] - 본문 내용 중, p249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상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주민, 장애인, 노동자, 아동, 여성 등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추방당할까 두려워하고 스스로 살아 남아야 했고
위험은떠 넘겨졌고, 시간은 박탈당했고,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이주민에게는 ‘국민’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다.
초반에는 기업 사장들을 걱정하여 감내했고 정보에서 소외되어 두려워하였고
재난지원금, 마스크 지급, 검사와 백신 등은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전수검사 대상으로 인권침해를 당했고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하였고
추방당하지는 않을까라는 염려속에서 홀로 방역을 해야됐다.
장애인은 코호트 겪리속에서 외부와 소통하지 못했고
예방적 코호트 격리는 사회와 단절, 사회적 낙인을 강화했고
돌봄의 공백이 빈곤으로, 참사로 이어지는 등 스스로 살아 남아야 했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픈데 쉬지 못하고, 아픈데 참고 일하고
청소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업무량은 늘었고
가스 검침원은 외부에서 압박을 받고
요양보호사들은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지원과 보호가 부족한 가운데
노동의 가치까지 인정받지 못했고
콜센터 직원은 입원한 와중에도 노트북으로 게속 일해야 했고
노동자의 일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닌 감염된 노동자를 비난하였다.
아동은 순응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놀 권리, 건강하고 성장할 권리, 결정할 권리 등
4대 권리가 침해 혹은 후퇴하였다.
돌봄의 최 전선에 있었던 여성은
가정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에서 충격 완충 장치역할을 위해
그들의 삶을 일부 포기했다.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와 균은 사람을 사람을 가리지 않았지만,
감염병 재난으로 인하는 피해는 차별적이었다.
즉, 동시대적인 사건과 사고에 대한 경험을 했더라도 피해와 고통은 달랐을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했다.
그들이 느끼고 경험한 고통과 상처가 미래를 바꾸고 있을까?
본문 중에서 ‘미래는 과거의 축적이 만들어 낸 현재가 밀고 나가는 세계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거가 반복되지 않고 대응하고 밝은 미래를 희망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근무하던 나,
그 때는 사스와 메르스 등처럼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3년이나 넘게 지속되었다.
현장에서 내가 한 일은 기존에 했던 일들의 정상화였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조금 더 면밀히, 섬세하게 생각하고 들여다 봤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용자들의 삶을 조금 더 신경써서, 관심있게 봤을 것인가?
단지, 표면적으로 나타난 욕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아쉬움과 후회와 더불어, 나의 능력이 미비함을 자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