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15.11.14. 날씨 흐리고 약간 비
☞동행: 문치성(산악회장), 오희영, 이춘길, 김영도, 박효균, 백종희, 오언진, 윤여찬, 박종관, 박주언,
김도훈 ........ 이상 11명 (직급 생략)
☞구간: 빼재 ~ 덕산재 (약 16 km)
☞일정: 빼재(신풍령) 9:30 ~ 된새미기재 10:15 ~ 호절골재 10:55 ~ (덕유)삼봉산 11:15 ~
소사마을 13:00 (점심식사) ~ 초점산(삼도봉) 15:30 ~ 대덕산 16:20 ~ 덕산재 17:55
[총 8시간 25분 ]
“따르르릉~, 따르르릉~”
“오빠, 일어나~ 오늘 산에 가야지, 얼른 !”
달콤한 주말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러대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겨우 눈을 떴다. 오전 4시 30분. 졸린 눈을 비벼 뜨며 후딱 머리를 감으니 비로소 잠이 깨는 듯 하다. 오늘은 한 달에 한번 있는 회사 산악회 백두대간 산행을 가는 날. 항상 우리 집 근처에서 카풀을 해주시는 김영도 소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별로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여 살짝 걱정이 되긴 하였다. 다들 이런 걱정들을 하여서일까. 삼성동 본사 사옥 앞에 도착해보니 여느 때보다 산행 멤버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총 11명. 겨우 두자리수를 넘긴 셈이다.
오늘 산행은 당초 계획과는 달리 산불방지통제구간에 속해 있지 않은 곳을 찾아 저 멀리 경남 거창군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일명 ‘빼재 ~ 부항령’ 구간.
평소보다 많은 거리를 달린 탓에 신풍령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전 9:25. 평소보다 산행 출발시간이 늦었다. 이슬비가 조금씩 떨어지는 가운데 산악회장님의 인솔로 지체없이 오늘의 첫 산행길을 시작하였다.
빼재.
일명 수령(秀嶺)이라고도 불리며, ‘빼재’라고 불리는 데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 내려온다.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하여 ‘빼어날 수’의 앞 글자를 따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옛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이 곳을 두고 많은 전투를 벌이면서 전사한 많은 사람들의 뼈를 묻으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뼈(骨)’의 경상도 사투리가 ‘빼’로 발음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과거의 스토리와는 관계없이 오늘 눈 앞에 펼쳐지는 빼재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적당한 안개가 산 봉오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고즈넉한 가을 산 풍경이 마치 우리가 한 폭의 산수화 속 일부가 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된새미기재’와 ‘호절골재’를 지나, 어느덧 첫 번째 목적지인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에 도착하였다. 오전 11:15. 특이한 것은, 삼봉산 정상 표지석이 맛 좋은 사과 모양이라는 것. 마치 이 곳 삼봉산은 사과로 유명한 경남 거창에 속한 곳이니 이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듯 했다. 아름다운 안개 위로 불쑥 솟은 듯한 삼봉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지상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 곳 삼봉산이 신선이 노니는 저 위의 선계(仙界)와 저 아래 인간세상(俗世)을 구분짓는 바로 그 경계가 되는 것처럼.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우리 대원들은 다음 목적지인 소사마을로 향했다. 삼봉산 정상이 해발 1,255m, 소사마을은 약 600m정도이니 계속 내리막 길이 펼쳐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갈 길이 멀어 조금은 속도를 내어 내려갔다. 약 30분 쯤 내려갔을까. 길이 좀 미끄럽다는 느낌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있던 찰나, 일행 선두 쪽에서 갑자기 ‘으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습기 찬 덕유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짧고도 날카로운 소리. 흡사 단말마의 비명 소리 같았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대역 없는 한 편의 액션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행 맨 앞 쪽의 이춘길 고문이 미끄러운 흙바닥에 발을 헛디디면서 옆으로 한번 회전하더니만, 그대로 산길 아래 10여 미터 경사로를 구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번, 두 번, 세 번을 구르더니 급기야 바위에 등을 부딪치고서야 겨우 멈추었다. 순간 대원들은 모두 정지화면처럼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이춘길 고문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럴 때에는 다친 사람을 경솔하게 일으켜 세우려 하면 안 된다. 그냥 그대로 두면서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 좋다. 조금 후에 박효균 부장이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니 어디 부러진 데가 있지는 않은 듯 했다. 다행히 그 구르는 와중에 순발력으로 옆에 있는 밧줄을 잡았고, 배낭을 맨 등 쪽으로 부딪쳐 그나마 큰 충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마터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춘길 고문이 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는데, 순간 이 고문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부부는 일심동체,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이고문의 부인이었다. 그리고는 이 고문에게 뭔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나중에 알았지만).
지금 남편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난감해 하는 이고문의 표정을 보면서, 대원들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일순간 코미디로 바뀌는 반전 드라마와 같은 순간이었다.
'낙상(落傷)' 이춘길 고문의 아찔한(?) 스턴트 액션을 뒤로 하고, 하산길 같은 내리막 코스를 가다보니 저멀리 터널 공사구간이 눈에 띄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산줄기가 끊기고 도로가 지나간 지점에 터널을 설치하고 그 위로 흙을 복토하여 단절된 산줄기를 잇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국에 이러한 백두대간 복원 공사들이 현재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소사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13:00. 서둘러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번 산행의 점심식사는 김도훈 사장이 버너와 냄비를 준비해 온 덕분에 맛있는 라면과 함께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짐들을 챙겨오느라 배낭도 꽤 무거웠을 터인데 우리 대원들을 위해 배려의 마음을 가져 준 김사장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13:45, 다음 목적지인 초점산(三道峰)을 향해 대원들은 길을 떠났다. 맛있는 점심이라 조금 과식했던 탓일까. 배가 빵빵하게 불러와 오르막 길을 가는데 조금 힘이 들었다. 삼도봉까지 2.4 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오전과 같은 페이스라면 1시간이면 충분할 듯 하였으나, 막상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며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실제로는 1시간 45분이 걸려서야 삼도봉에 도착했다. 시각은 15:30. 경사로가 짧지 않은 꽤 힘든 구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도봉. 경상남, 북도와 전라북도를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는 해발 1,248m이다. 산 아래쪽으로 안개가 여전히 자욱했다. 우리는 여전히 신선계(神仙界)를 벗어나지 않은 듯 했다.
해가 많이 짧아진 탓에 오후 5시면 해가 떨어지므로,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체력도 이젠 조금씩 소진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속히 대덕산 방향으로 출발해야 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아까 사고를 당한 이춘길 고문이 어느새 평소대로 속도를 다시 회복하였다는 것. 정말이지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이다.
우리 대원들은 이춘길 고문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산길을 걸어 대덕산(大德山)에 도착하였다. 시각은 어느새 16:20. 해발 1,290m로 삼도봉과 비슷한 높이에 있어 거의 능선을 따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곳 대덕산 지점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데, 백패커(Back-Packer:배낭 캠핑족) 2명이 거기에서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인용 텐트와 창고용 천막 등 숙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득 우리 HDC 산악회도 언젠가 날을 잡아 이렇게 1박2일로 대간산행을 떠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수년간 보이스카웃 생활을 하면서 전국의 명산들로 캠핑을 많이 가보았던 터라, 더욱 그러한 추억이 갖고 싶어졌다. 그 때는 지금 같이 오토캠핑장 같은 시설 개념도 없었고, 따라서 싸갖고 가는 부식을 제외하고는 현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산속에서 한겨울에도 텐트에서 난로 없이 잠을 잤었다. 모닥불에 덥혀진 돌을 수건에 돌돌 말아 침낭 속에 품고 자면 그럭저럭 새벽까지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 그 때가 내가 중고등학생 때이니, 벌써 30년 가까이 된 추억의 이야기이다.
이제 덕산재(德山재)로 출발해야 한다. 어느새 오늘 산행도 종반부를 향해가고 있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오니 어느새 산속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함께 가던 박효균 부장이 성능 좋은 랜턴을 꺼내 들었다. 낙상불패(落傷不敗) 이춘길 고문의 헤드랜턴 또한 어두운 산길을 환희 비추었다. 이제는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이러한 상황이 이제는 즐겁다.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비가 내리면 비가 오는 대로, 그 상황 자체를 즐기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것 같다. 그동안 백두대간 산행을 한 코스, 한 코스 완주해내면서 생긴 변화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게 되었다. 예전보다 얼굴에 미소도 늘은 것 같고 마음도 긍정 마인드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 모두가 자연과 소통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천금 같은 내 재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산행이 좋다. 내가 바뀌니 세상 전체가 바뀌더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이윽고, 17:55, 오늘 최종 목적지인 덕산재(德山재)에 도착하였다. 비록 당초 목표했던 부항령(釜項嶺)까지는 못 갔지만 그래도 우리 대원들은 최선을 다했고, 큰 부상을 당한 사람도 없이 무사히 산행을 끝냈다. 참으로 다행이다.
산악회장님이 미리 알아보신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무주IC 휴게소에 있는 중화요리집. 시장이 반찬이었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요리가 상당히 맛있었다. 짬뽕과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무사히 산행을 끝내고, 맛있는 저녁을 들고, 그리고 소주도 한 잔. 버스 안에서 피곤함이 몰려오긴 하였으나, 그 기분은 잔잔한 행복감 그 자체였다. 오늘 하루, 또 하나의 대간산행 코스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성취감과 즐거움이었다.
우리 HDC산악회는 오늘도 36개 조각들로 이루어진 큰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추었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는 대원들 개인마다 각각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원은 가족의 행복을 염원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또 어떤 대원에게는 자기 개인의 발전과 미래를 설계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어떠한 의미가 되었든 간에, 그것은 가치 있고 소중한 의미일 것이다. 직접 본인의 두 다리와 몸을 이끌고 꼬박 하루 동안 오로지 자연과 하나 되어 함께 땀 흘리고 호흡하며 얻은, 때 묻지 않은 사색(思索)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이 사회 속에서, 어찌 보면 판에 박은 듯 비슷한 도시인의 삶을 살면서 우리는 이러한 사색의 시간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아, 다음에 있을 산행이 기다려진다. 그 산행은 또 어떤 의미로 우리 대원들 한명 한명에게 다가오게 될지, 그 ‘퍼즐의 조각’이 품고 있을 무궁무진하고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번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
HDC 산악회 가족 여러분, 이번 제 9차 백두대간 산행에서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함께 땀 흘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다음 달에 또 만나 뵙겠습니다. 백~두 !!
2015. 11. 30. 윤 여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