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2호
“퇴장하는 태양의 붉은 옷깃을 놓으며”
따스한 봄바람 불어 설레게 하던 때가 엊그제 같더니 그 뜨겁던 여름은 간데없고 풍성한 가을열매, 들에는 황금물결이더니 벼 그루터기만 쓸쓸한 들판을 지키고 있다. 동녘은 어느새 새해 맞이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다시 내려와야 할 높은 산에는 이미 마음 비운 사람들에게 조용히 정상을 내어준다. 거리엔 성탄의 달아올랐던 캐럴송이 잦아들고 시린 바람사이로 밤은 깊어가고 하나둘 짝을 지어 송년의 밤을 수많은 이야깃거리로 수놓는다. 보내기 싫어도 보내야하고 어떤 이에게는 속히 보내고 싶은 날들도 있었으리라.
그 어느 추운 날이 오면 더욱 추워 떠는 사람이 있겠지. 부는 바람보다 잃어버린 뜨거운 심장의 고동소리가 여전히 들리는듯하여 아직 다 보내지 못한 마음을 달래는 사람도 있으리라. 쓰라린 가슴을 안고 2월을 맞았다. 그 달 어느 저녁시간 베트남 선교사님이 귀국해서 만나려고 수원으로 가던 중 정말 얘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탑동지하도로 내려가는데 스타렉스차가 마치 망아지가 뛰듯이 좌우로 튀어 올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이대로 천국에 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차가 운전자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가는데, 아! 정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단 몇 초였을 텐데……. 참 멀쩡한 정신으로 사고를 알고 죽음의 순간을 직면해야 했다. 차는 전복되었으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은 살아남았다. 지하도 분리대를 부딪쳐 다행히 2차 사고는 없었다. 사고 후 차는 폐차 시켰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사고 순간 “하나님이여! 왜 이러 십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가 4월을 잔인하다고 했나? 돌아가시기 얼마 전 청송 탁구회원들이 안양성심병원에 고 전 회장을 병문안 갔었다. 당시만 해도 아주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고 가슴에 가는 호스를 끼고 있었다. 이것만 빼면 당장 나갈 수 있는데 하며 너털웃음을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의 부고를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우리를 전송하던 모습은 전혀 저 천국에 미리 갈 모습이 아니었다. 알았더라면 천국에 잘 가시라고 인사라도 하고 올 걸 하고 지금도 생각한다. 아니 아직도 먼저 가신 일이 믿어지지 않고 본오3동 사무소에 가면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것만 같다. 세월은 무심한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 잘 있으라는 인사도 건네지 않고 가기도 잘도 간다. 내가 먼저 인사 건네고 눈인사라도 해야만 하겠다. 무심하다는 말을 기억하기 싫으니 지나는 바람결에도 마음을 실어 보내고 방긋 웃는 꽃들의 인사에 반가이 맞아주고 그 향기 마음에 새겨 보리라.
서서히 서산해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무대를 퇴장하려든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있으나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은 주님의 은혜를 빼놓고는 얘기 할 수 없다. 시간과 역사의 무대의 주인이신 조물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얘기치 못한 사고로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치유 그리고 평강과 소망 있기를 기도한다.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미련의 끈을 붙잡고 있다면 이제는 서서히 잡았던 2013년의 끈을 놓아 드리자. 그리고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어김없이 소망의 태양을 떠올리는 은혜의 태양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맞추자.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하루하루가 잇대어 일생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보내는 2013년의 하루도 헛되지 않고 다가오는 새해의 하루하루도 소중하리라. 다시 옷깃을 여미고 다가올 날에 마음 열어 나 자신을 내어 놓는다.
주후 2013년 12월 22일
- 김영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