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24-33>
1. 시작하는 말
여러분, 중요한 일이나, 긴요한 일이나, 값진 일에 하나님께 얼마나 쓰임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공인받게 하시려고 환상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긴요하고 중차대한 일을 위해 아무에게나 환상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편견과 편파 없는 구제에 힘쓰고, 항상 기도하는 이방인 고넬료에게 보이셨고; 예루살렘 모교회의 수뇌이나, 아직 복음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환상을 본 고넬료 백부장은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고, 환상의 계시가 뭔가 고민하던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좇아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일어나 욥바의 두어 믿음의 형제를 대동하고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2.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한 고넬료
“욥바”(Ἰόππῃ)는 예루살렘에서 약 60㎞ 떨어진 옛 항구 도시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와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 제 이 성전 건축 때의 재목이 욥바항으로 운반됐습니다. 초대 교회 때의 욥바는 유대적 요소가 강했고, 기독교의 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욥바의 교인들 여섯 명과 고넬료 백부장이 보낸 세 사람 그리고 베드로 모두 열 명이 고넬료의 집에 가기 위해 이튿날에 가이사랴로 간 것입니다. “가이사랴”(Καισάρειαν)는 로마 황제를 기념하여 명명한 지명이며, 팔레스틴의 지중해안의 항구 도시입니다. 본래 후미 곧 휘어서 굽어진 곳이었던 이 항구를 확장하고 대 방파제를 축조하여 그 지역 제일가는 안전한 항구로 만든 사람이 헤롯 대왕입니다. 이 항구 도시에서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베드로 일행이 도착했을 때, 고넬료 백부장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천사의 고지를 들었기 때문에,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통해 구원받을 말씀을 들을 것을 알았습니다. 현세와 내세의 구원의 복음을 들을 절호의 기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케 하느라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불러모아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은 것입니다. 실로, 고넬료 백부장은 훌륭한 구도자인 동시에 열정적인 전도자이었습니다. 그 고넬료로 인해 가이사랴에 교회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1873년에 태어난, 고랑포 초대 교인 이덕수(~1909년)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싸움도 잘하는 말썽꾼이었습니다. 아내를 구타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고을 관원들조차 그가 나타나면 도망칠 정도로 마을에서는 기피 인물이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던 전도인의 전도를 받고, 그가 준 성경책을 읽으면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술과 도박과 싸움질을 끊어 버리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서 팔아 생활하는 교인으로 변했습니다. 지게를 지고 가면서도 성경책을 읽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1907년 대 부흥 운동을 거치면서 전도 열기가 한창 고조될 때,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들은 강원도 선교 거점을 춘천에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중대한 일을 위해 무스(J. R. Moose) 선교사 가족과 함께 춘천으로 들어가 전도해서 10여 명의 결실을 얻어 춘천읍교회(현 춘천중앙교회)를 세운 사람이 바로 이덕수입니다. 우리는 주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기다리기는 합니까? 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설교를 온 영을 다해 기다립니까? 말씀을 심비에 새겨 순종하며 전도합니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베드로를 기다리던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올 때, 그를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했습니다.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고넬료가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자로 믿고, 경외심과 기쁨을 겸손하게 표현했다는 뜻입니다. 세상적 관점으로는, 고넬료는 백부장이고, 베드로는 그냥 서민입니다.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하고 기도에 힘쓰는 종교인다운 고넬료입니다. 텃세가 심한 어느 시골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터줏대감인 임원이 대표 기도만 하면 죽겠는 겁니다. “어린 종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어린 종의 혈기를 죽여주시고……어린 종이 경험이 없어서 어쩌고저쩌고, 어린 종 이러쿵저러쿵……그 터줏대감이 신앙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목사님 말씀마따나 목사가 하나님의 종이지, 이 사람 저 사람이 흔들어 대도 좋은 동네 종이 아닙니다. 물론, 목사가 마치 하나님이나 되는 것처럼 교인들 위에 군림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발 앞에 엎드려 절하는 고넬료 백부장을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믿는 제자답게 분에 넘치는 대접을 안 받아들이고, 서둘러 고넬료 백부장을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밝혔습니다. 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권자나 권력자나 각종 지도자는 무리의 환호와 갈채와 경외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부족하고 유한한 사람임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우상화나 자기 신격화라는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초월한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 백부장과 말하면서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라고 했습니다. 엄격한 유대인은 이방에서 수입한 식료품도 먹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욥바에서 본 환상의 계시를 깨달은 말을 한 것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은 환상을 본 것을 설명했습니다. 나흘 전 그맘때까지 집에서 구시인 오후 3시경까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 곧 천사가 앞에 서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제 행위를 기억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사람을 욥바에 보내서 바닷가에 있는 피색장인 시몬의 집에 우거하는 시몬 베드로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환상의 계시를 설명한 고넬료 백부장은 즉시 순종한 결과로 베드로가 온 것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감사했습니다. “잘”의 헬라어 칼로스(καλώς)는 ‘훌륭하고도 멋지고 매력적이며 올바르고 아름답다’라는 뜻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은 모두의 각오를 피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제”에 대해 렌스키(R. C. H. Lenski)는 “모든 초자연적 교제로 인도되는 가장 위대한 순간을 지시한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듣고자”의 헬라어 아쿠사이(ἀκούσαι)는 단순히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듣고 그대로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이르는 말대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청종하고자’라고 번역했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학생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성도는 목사의 설교를 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들어야 하고, 목사는 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정해 놓고 곡해하거나, 왜곡하거나, 엉뚱하거나, 무관한 만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고넬료 백부장이 피력한바 베드로를 맞는 그들의 각오가 뭡니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는, 대단히 놀라운 청종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이 명하신 복음을 선포하거나 가르치는 설교자를 대할 때,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온 영을 기울여 듣고 순종할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헤혠(E. Haenchen)은 “사도가 등장해서 말하는 곳에서 그의 청중은 ‘하느님 앞에’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을 보면, 바울 사도는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거나 선포하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호기심 충족이나 단순한 들음이 아니라 순종을 위한 것입니다.
3. 맺음말
환상을 본 고넬료 백부장은 관련된 다른 환상을 본 베드로에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드로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집약은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성도는 온 영을 기울여 설교자의 설교를 잘 청종해야 하고, 목사는 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청종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정해 놓고 곡해하거나, 왜곡하거나, 엉뚱하거나, 무관한 만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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