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규 시선.hwp
어머님의 새벽
어머님의 새벽은
못난 아들과의 데이트로 열린다.
매일 4시면 일어나
문을 나서시는
어머님..
무릎 꿇고 엎드려
통곡하듯 간구해온
어머님의 세월...
어둠이 잔뜩 쌓여있는 골목길을
훠이훠이 가시는
아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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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삶
어머님은 토끼띠로 올해 78세가 되셨다.
천남에서 태어나 고래미에서 자랐고, 열여섯에 송학으로 시집와 열여덟에 누나를 낳고, 스무 살에 나를 보셨다.
첫아들이요 장손인 나를 두고 시어머님이신 할머니께서는 며느리에게 말씀하셨다. "장손은 외아들 만드는 거 아녀..."
나 어린 며늘아기 어머님은 "예 어머님"하고 순종하였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나...내리 딸을 낳아 결국 8남매가 되었다.
그렇게 주렁주렁 달린 아이들을 등에 업고 양손에 잡고 머리에 봇짐을 이고 억척스레 사셨다. 어지간한 강골이시니 견디셨지, 보통사람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셨다.
어머님은 평생 그런 것처럼, 지금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
친구 삼은 주변 분들이, 무릎 아프고 허리 아파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며, 이리저리 가자는 대로 차를 몰고 다니며 동무노릇 해주신다.
낡아빠진 모닝을 몰고 노인 분들의 발이 되어주시는 재미로 사신다는 거다.
새벽마다 '에구구, 에구구'하며 어렵사리 일어나시는 어머님은, 주일이면 교회에서 중증장애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 온종일을 보내신다.
"어머님도 힘드신데 좀 쉬시는 게 낫지 않아요?" 맏아들의 염려스런 말에 어머님은 늘 같은 말씀이시다.
"내가 그래도 움직거릴 수 있을 때 남을 도와야지. 이 나이에 내 몸뚱아리가 짐이 되지 않는 거만해도 얼마나 감사하냐.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마음도 즐겁고 되레 기쁘다."
갑자기 초롱초롱한 소녀의 눈빛이 되더니,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말을 마치신 어머님은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장애 아이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끙끙거리며 교회 언덕길을 오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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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면
시장에 가면
사람사는 내음이
가슴을 두드린다.
엉망진창인 세태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땀흘려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다.
시장에 가면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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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
정방에서 보는
월악의 붉은 노을은...
여명을 기다리는
새벽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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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어느새 60을 목전에 둔 원로가수 반열에 있으신데요...
국민가수라 그런지 이름자를 부르게 되네요.
'인순이 샘'이라 해야 할 텐데요...
이번에 두만강축제에 가시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중국 조선족사회에서는 '대형가수 인순이'가 마음을 나누며
두만강에서 함께 하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같은 민족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이 산을 넘어가듯...평안한 마음으로 혼신을 다하는 거죠...
우리네 인생이란 무대에 오른 '인순이' 같아서...
이왕 하는 거 ...이왕 사는 거 마음껏 불사르는 거예요"
여느 때처럼 무심하게 던진 내말은 놀라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맞습니다...이왕 왔다 가는 거...몇 억겁의 시간 뒤에 또 올지 못 올지도 모르는데..... 해 보는 거죠^^ ㅎㅎ"
'인순이'의 감동어린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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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손승호 애련2리 이장...
백운면 애련2리에서 음력 1956년 12월 29일에 태어나 지금껏 한마을에서만 살아왔다.
21살 때, 처음 태어난 산아래 집에서 50m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 집에서 아버님을 여의고 장가도 들었다.
신부는 경상도 상주출신으로 이름은 김후남이다. 딸만 있어 뒤로는 남동생만 보라는 뜻으로 '후남(後男) '이라 했는데, 실제로 남자동생을 둘이나 두었다. 이름 덕을 보았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했었다.
그 후 또 100m 떨어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와 23년째 살고 있다. 어머님은 지금 집에서 몇 해 전 세상을 뜨셨다.
남자답게 훤칠하게 잘생긴 손이장은 슬하에 딸만 4명을 두었다.
요즈음은 색소폰에 빠져, 제법 경로잔치에서 연주할만한 정도까지 되었다. 한평생을 참 성실하게 일만하며 자기의 땅을 지켜온 애련2리의 토종 마을사람이다.
"결국, 태어나서 60평생 동안에 150m를 옮기며 살아온 것이 전부다"며 혼잣말처럼 쓸쓸해 하신다.
“아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진실되게 열심히 살고 있는 손이장이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었다.
애련의 사람 사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