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한’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인도 거침없이 저지르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인물을 묘사할 때 쓰는 말입니다. 가끔 저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실수와 오판을 막을 수 있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감정 때문에 해야 할 일은 하기가 싫어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러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항상 옆에 데리고 다니던 애완동물이 죽어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며, 생일선물을 받아도 그다지 기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기쁨과 슬픔은 물론 분노, 회한, 미련, 기대, 흥분 등등의 단어들은 모두 그와 관련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도, 이 사람들은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주위의 과잉반응에 어리둥절합니다.
아마도 영화에 나오는 살인 청부업자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실제 생활에서도 외과 의사나 주식 중개인같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하는 직업인 중에 이런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만을 줄 뿐이며, 정신의학에서는 신체화 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영어로는 Alexithymia라고 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보니 원어민도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lexi’는 영어의 ‘word’ 즉 단어라는 뜻을, ‘thym’은 ‘soul’ 즉 영혼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영어에서 앞에 ‘a’가 붙으면 부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결국 ‘영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호칭은 정신분석가인 피터 시프너스(Peter Sifneos)가 1970년대에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신체화 장애의 기전을 연구하던 중에 도입된 개념입니다.
신체화 장애란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환자가 아무런 신체적 이상 없이 만성요통, 근육통, 위장질환, 알레르기질환 등을 호소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환자는 아프다고 호소하는데, 아무리 검사를 해도 이상이 나오질 않으니 의사도 당황스럽고 환자도 고통스러운 그런 질환입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이론이 바로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의 부족, 즉 감정표현 불능증입니다.
이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감정에 따른 신체적 반응까지 없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이를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기쁨으로 흥분하면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 심박 수가 증가하며, 뺨엔 기분 좋은 홍조가 돋습니다. 물론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역시 피가 머리로 솟구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두 상태가 일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사람들은 전자를 ‘흥겹다’, 후자를 ‘열 받는다’라고 정확히 구분해냅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윤리적, 도덕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장면을 보았을 때 비위가 상하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우리는 ‘역겹다’라고 표현합니다.
만약 이렇듯 자신의 신체반응을 분류하여 적절한 이름표를 붙이는 능력이 갖춰지지 못했다고 상상해봅시다. 상황에 따라 신체에선 여전히 갖가지 느낌과 반응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데, 아마도 이를 이해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억제하는 등의 방어기제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저 내 몸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의아해하고, 이런 현상이 잦아지면 신체적 질병이 아닐까 겁을 집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신체반응을 감정과 연결시키는 능력은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나기보다는,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익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신체반응에 적절한 감정적 이름표를 붙이는 데는, 고도의 인지적 처리과정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섀처(Stanley Schachter)와 제롬 싱어(Jerome Singer)는 이를 ‘감정의 이원 이론(Two-factor theory of emoti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섀처와 싱어는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피험자에게 교감신경 자극물질인 에피네프린을 주사한 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끼리만 지내게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미리 두 종류의 실험 보조자들을 준비시켰는데, 첫 번째 실험 보조자들은 주사를 맞은 피험자 그룹 A에 다가가서는 괜히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나 농구 경기를 하면서 기분 좋은 행동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 실험 보조자들은 그룹 B에 다가가선 화를 내고 문을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피험자에게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를 평가해보라고 했는데, 그룹 A의 피험자들은 즐겁고 흥분되었다고 답한 반면, 그룹 B의 피험자들은 화가 나고 불쾌했다고 답했습니다.
섀처와 싱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이를 분류할 때에는 생리적 반응과 함께 이에 대한 인지적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원인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주위의 가용한 힌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감정 상태를 유추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가용한 힌트로는 자신이 처한 객관적 상황도 있겠지만, 주위 사람들의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을 배울 때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엄마의 반응이 이러한 힌트로 작용합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벌레 때문에 아이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는 스스로도 크게 놀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 아가 얼마나 깜짝 놀랐니”라며 달랩니다. 이렇듯 엄마는 아이의 내적 상태를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아이가 향후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감정에 적절한 이름표를 붙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백 개의 단어들은 이렇듯 부모를 통해서, 선생님을 통해서, 그리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익혀나간 것입니다.
이렇듯 단어와 내적 생리반응이 결합되면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능력을 획득합니다. 따라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보다는, 자기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이를 정확히 인식하여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건강하며, 사회생활에도 성공적일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상큼하다, 짜릿하다, 평온하다, 흡족하다’ 또는 ‘먹먹하다, 아련하다, 침통하다, 당혹스럽다’ 등등 이렇게 많은 단어들 중에 여러분은 평소에 몇 가지나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감정적 섬세함을 예술적 차원으로 추구하는 작가가 아닐지라도, 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해 예민한 감식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절대로 틀리지 않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감정표현 불능증 [Alexithymia] - 감정 없는 냉혈한은 더 건강할까?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2011. 10. 20., 케이엔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