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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2)
바울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두 개의 짐이 있었는데, 하나는 제1차 전도여행을 다녀온 남부 갈라디아(오늘날 터키지역)교회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행15:36)― 을 돌아보는 것과 두 번째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찾아가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였습니다.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섬으로 바나바는 마가와 바울은 실라와 제2차 전도여행을 오르게 됩니다.
16장(1-40) 빌립보에서 전도
로마의 첫 관문인 빌립보 성
사도행전 기록에 여러 지방 제도들이 아주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사도행전 16:12절의 마게도냐 지경 첫 성,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 16:20-21절의 상관, 로마사람, 풍속, 16:37-39절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둠. 아전과 상관, 17:6절의 데살로니가의 읍장, 17:19절의 아덴의 아레오바고 등 빌립보 사람들은 자기들의 도시가 로마 시민의 ‘식민지’라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는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세한 성경 내용이 그 당시 이 성들의 비문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설립(바울, 실라, 디모데)
마가 문제로 인해 한 전도 팀이 두 개의 전도 팀으로 여행을 하게 됩니다. 바나바의 특성의 남을 잘 격려하는 은사로 말미암아 어린 조카인 마가 요한은 전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의 저자로 선택되었음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으며, 훗날 바울에게도 인정을 받아 함께 사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딤후4:11).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실라(실루아노)는 예루살렘 회의의 가결된 편지를 이방교회에게 전한 대리자로서(15:22) 그는 바울처럼 로마시민이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베뢰아까지 동행했고(17:14), 고린도에서 다시 바울과 합류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루스드라에 이르러 거기서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되며, 하나님의 일군으로 전도여행에 동참시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부친은 헬라인임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됨은 그를 유대인으로서 그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취한 결정입니다. 바울은 소심한 면이 있는 디모데를 그의 충직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진 영적 아들로, 동역자로, 후계자로 삼고 장성시킵니다(3절; 딤전1:2,4:12).
성령께서 바울의 전도사역에 간섭하심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7절).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철저하게 바울을 사용하시는 것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 깨닫게 합니다.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이 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9절)고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로 가게 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확장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됩니다.
누가의 등장은 사도행전 16:17에 처음 등장합니다. 누가의 특징에서 살펴보건대 마게도냐 사람이환상에 등장하는데 그 사람이 누가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자기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본문 17절에서 “우리”라는 인칭대명사 속에 그가 이미 바울의 전도여행에 일행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다양한 신분의 개종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안식일에 기도처(회당 회원이 남자 10명이 모여야 예배드림)를 찾다가 문밖 강가에서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를 전도하게 되고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고, 그 집에서 유하게 됩니다. 또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전도된 간수와 그 권속들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사랑과 신실한 지원과 변함없는 관심을 보냄으로써 계속해서 바울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빌1:1-5,4:14). 빌립보는 의학의 중심지였으며, 의사 누가는 거기 남게 되며,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떠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전도
바울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을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던 은혜나 믿음이나 사랑이나 지혜나 담대함이나 인내나 전도의 사명은 절대로 가둘 수 없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최악의 조건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주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오히려 감옥이라는 환경을 은혜의 공간으로, 또 성령 충만한 장소로 바꾸었습니다. 즉 빌립보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은혜의 찬송을 고할 때 하나님의 손이 임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빌4:6).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손은 나타나지 않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 속에서도 전도하고자 감사 기도하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함으로 하나님께서 간수의 마음을 움직여 준비시켰고, 바울은 말씀을 증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한 영혼과 그 가정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는 전도생활은 그의 삶이였고 그의 본분이였고, 그가 존재하는 이유였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릇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최악의 환경이 그 앞에 있다 할지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구원의 역사가 간수와 간수의 가정에 일어났으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인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히11:38). 우리의 최고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그를 마음에 모시면 불가능이 없는 모든 것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17장(1-34)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덴 전도
데살로니가교회 설립(1-9)
데살로니가는 항구도시이며 마게도냐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규례대로 거기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에 성경을 강론하며 뜻을 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실 것을 증명함으로 야손과 형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경건한 헬라인(유대교에 호감을 갖는 자)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아 좇았으나 유대인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냅니다(10절). 바울은 편지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게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살전1:7-8).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의 강림을 기다리는 종말적인 신앙생활을 함은 택함 받은 자라고 증거 합니다(살전1:9-10).
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베뢰아교회 설립(10-15)
바울의 복음 전도는 생명을 주님께 다 맡기고 의탁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뢰아는 마케도냐 남서부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은 회당에서 가르칠 때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이곳 베뢰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성경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11절). 이들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게 믿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에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 소동케 함으로 형제들이 바울을 바다 건너 아덴까지 인도합니다(15절). 바울과 함께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일행 중에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행20:4).
아덴교회 설립(16-34)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사업의 전략가였습니다. 그는 로마 세계의 대도시들에서 조직적으로 전도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회당, 아레오바고, 무역로, 항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전개합니다. 오늘날 그리스인 아덴은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민주주의의 발상지요, 소크라테스의 고향입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 있었고, 철학(스토아 학파-자족과 금욕을 행복으로 여기는 합리론자, 에피쿠로스 학파-쾌락 추구를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는 유물론자)과 문학과 과학과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뿌리기에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예수와 부활(헬, 아나스타시스)를 함께 전했기 때문에 아덴 사람들은 이것을 어떤 이방 신을 선전하는 자들이라고 착각합니다. 당시 여러 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육체 부활 사상은 아주 미련한 생각으로 여겼습니다(32절).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 곧 당시 최고의 법정으로 큰 명성을 얻었으며, 공립 교육을 맡았던 장소로 데리고 갑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에 서서 우주 만물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증거하며, 그가 보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으므로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이 되는 말씀을 증거함으로 그 중에 몇몇이 듣고 복음을 믿게 됩니다(30-34절).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길리기아 다소 성에 살았고 헬라문화의 토양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복음을 전파할 때 이미 아덴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욕구를 쉽게 간파함으로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적인 관점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으로 접근하여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각 사람에 맞춘 맞춤식 교육 방법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에서 적용하여 장소와 사람에 따라 복음을 전달하는 수단을 활용한 것처럼, 마지막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에 맞는 전도방법과 양육 방법을 터득하여 보다 효과적인 알곡 추수를 거두는 지혜에 대해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실례로 바울은 28절에서 “너희 시인 중에”와 “신의 소생” 이라는 그 당시 그레데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다. 전설에 그가 아덴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게 하는 신’에 대한 제단을 세우도록 종용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복음에 접목을 시켜 전파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현 교회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은 초대교회가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 즉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함께한 동역자의 사역을 바울이나 사도들이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역, 즉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한영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요17:21-22).
복음 전도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자 성령을 받은 주의 종들의 일이며, 모든 성도들의 일입니다. 고로 교회는 전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해야 하고 철저한 헌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준행하였습니다(창6:22;롬6장)
회개의 메시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절)
바울은 회개에 대한 문제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신적 존재와 창조물인 사람의 관계로 이끌면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바울은 주 예수께서 전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날 뜨겁지도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교회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회개’라는 말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긴다 하셨으며(계2:5), 주께서 입의 검으로 싸우신다 하셨고(계2:16),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그 자녀를 죽인다 하셨고(계2:22-23), 도적같이 임하신다 하셨고(계3:3), 주의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하셨습니다.
회개(헬, 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는 죄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향 전환으로 마음과 몸의 습관화된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에 의하여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죄에 대한 확신, 곧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로 자신을 확인하고 죄로부터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와 죄를 향한 자세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회개는 죄를 포기하는 것이며, 거룩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로 회개는 구원의 필수조건입니다. 예수께서는 회개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였고, 바울과 베드로는 회개를 진정한 구원과 동일시하였습니다(행20:21;벧후3:9).
기도의 메시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시27:8).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 즉 마음을 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대하7:16). 성경은 수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고 하십니다(시105:4).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그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할 때 하나님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6장 5-18절에서 기도에 대해 자세하게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분하여 외식기도, 중언부언기도, 골방기도, 주기도문, 용서기도, 금식기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중심의 뜻을 역대하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범죄한 자가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그 죄를 사하고 땅(자녀)을 새롭게 변화시켜 거듭나게 하시고, 죄를 소멸시키고 온전한 자로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심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호흡을 멈추면 죽는 것과 같이 영적 호흡인 기도를 멈추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평안과 모든 성령의 열매들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면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각자의 묵은땅을 갈아야 합니다(렘4:3). 이 뜻은 죄가 몸의 체질화, 곧 습관이 되어버린 죄의 마음을 묵은 땅이라고 하며 갈아야 한다는 것은 철저히 통회 자복해야 함을 말합니다. 참된 회개를 하지 않는 자의 마음에 말씀을 뿌려도 그 마음에는 가시와 엉겅퀴만 날 뿐입니다(히6:8).
참된 회개는 구원받은 자나 구원 받지 못한 자, 곧 거듭난 자나 거듭나지 못한 자나 다 참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4-5;행2:37-38;행17:29-30). 참된 회개는 그 회개의 열매로 아는데 마21:29-30과 눅15:11-24에 나오며 결국 죄에 몸이 십자가에 못박힌 성령의 불로 죄의 뿌리가 소멸됨으로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의 의를 위하여 살게 됩니다(롬8:10).
회개하기에 앞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먼저 죄에 대한 인식과 죄의 자각입니다. 죄를 인식하지 않는 자는 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며, 영적으로 죄에게 마음을 지배당하고 있으며, 악의 영에 미혹당하여 죄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짓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죄를 미워하여 죄와 피흘리기까지 결단하고 죄에 대항해야 됩니다. 거부하지 않으면 죄는 결단코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얼굴(마음)을 구하고 간청해야 합니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간구하고 새사람이 되게 해달고 눈물로 간구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를 하게 하심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출34:6).
회개기도가 응답이 되면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통곡하며 죄를 고백하게 되고 감사가 터지며, 찬송이 터져 나오며,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실 때 이러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며 그 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거듭남과 회개와 믿음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나는 영적인 새사람으로 출생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새 마음, 새 생각으로 변화된 새 피조물로서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죄를 짓지 않는 자로 그리스도의 형상(성품)으로 성숙하여 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겔36:25-28;고후5:7;엡4:24;골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