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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0. 5. 31.~6. 1.(일,월) - 음력(4. 9.~10.), 일몰 19:48, 일출 05:08
●산행지: 한북정맥 1구간(수피령-노채고개)
●산행코스: 수피령-복계산삼거리-복계산-칼바위-복주산-하오현-회목현-상해봉갈림길-상해봉-광덕산-명성지맥분기점-광덕고개-백운산-삼각봉-도마치봉-도마봉-신로령-국망봉-견치봉-민드기산-도성고개-강씨봉-한나무봉-오뚜기령-명지지맥갈림길-청계산-길매재-길매봉-노채고개
●먹거리: 생수1,500cc, 땅콩샌드2, 샤브레, 다이제, 사탕30, 자유시간2, 게비스콘2
●준비물: 외투1, 스틱, 충전지2, 연결선, 헤드랜턴1, 구급약, 경광점멸등, 손수건, 머리띠, 휴지, 물티슈, 예비양말, 부직반창고, 팔토시, 무릎보호대, 마스크
●거리: 약 54.72km
●소요시간: 19.17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아침6,000, 버스12,400, 택시17,540, 광덕현 식사9,000, 편의점8,400, 야식12,000, 산이야기모텔30,000, 뒤풀이11,000, 버스7,400
●날씨: 16~27도
●산행경과:
- 09:10 : 수피령 (740m)
- 09:53 : 복계산 (1,057.2m)
- ??:55 : 칼바위 (920m)
- 13:21 : 복주산 (1152m)
- 13:56 : 하오현 (780m)
- 14:52 : 회목봉 (1,025.8m)
- 15:27 : 회목현(815m)
- 15:55 : 상해봉(1,010m)갈림길
- 16:38 : 광덕산(1,046.3m)/천문대/명성지맥분기점
- 17:26~07:00 : 광덕고개(625m), 식사, 숙박
- 08:11 : 백운산 (903.1m)
- 08:31 : 삼각봉
- 08:53 : 도마치봉 (925.1m)
- 09:01~09:17 : 약수터
- 09:28 : 도마봉 (883m)
- 10:26 : 신로봉 (999m)
- 11:25~11:58 : 국망봉 (1,168.1m)
- 12:23 : 견치봉 (1,102m)
- 13:00 : 민둥산/민드기봉 (1,008.5m)
- 13:51 : 도성고개 (631m)
- 14:23 : 강씨봉 (830.2m)
- 15:30 : 오뚜기령 (690m)
- 15:37 : 한나무봉
- 16:13 : 귀목봉갈림길/명지지맥분기점
- 17:13~17:30 : 청계산 (849.1m)
- 17:58 : 길매재 (595m)
- 18:22 : 길매봉 (735m)
- 19:14 : 노채고개 (3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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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북정맥: 236km (추가령~장명산)
* 한북정맥: 160km (수피령~장명산)
* 신한북정맥: 224km (추가령~오두산)
* 신한북정맥: 148km (수피령~오두산)
* 한북오두지맥: 40km
- 도봉지맥: 54.2km
- 수피령~오뚜기령 45.33km
- 수피령~광덕고개 23.5km
-.수피령~복주산 12.2km
-.광덕산~광덕고개 2.44km
- 광덕고개~노채고개 32km
- 광덕고개~도성고개 20.5km
-. 광덕고개~도마치봉 5.2km
-.도마치봉~신로령 4.8km
-.도마봉~국망봉 5.6km
-.민둥산~오뚜기령 6.6km
- 도성고개~화현고개 23.5km
-. 도성고개~노채고개 11.7km
-. 노채고개~화현고개 12km
- 오뚜기령~큰넉고개 36km
-. 오뚜기고개~노채고개 7.3km
-. 오뚜기령~청계산 3.7km
-. 청계산~노채고개 4.3km
* 사전정보(식수 보충지)
- 복계산: 왕복 19분 소요
- 상해봉: 왕복 20분 소요
- 광덕고개: 식당, 마트, 모텔
- 도마치봉: 샘물
- 노채고개: 약수터, 400m
- 일동택시: 031-532-4070
* 서울에서 수피령 가는길:
- 동서울터미널~사창리: 06:50, 1.50h, 12,700
- 동서울~와수리: 07:10, 1.50h, 12,400
* 노채고개에서 서울 오는 길
- 노채고개~일동, 택시
- 일동~동서울, 직행버스, 막차20:35, 1,10h, 7,400
- 일동~의정부행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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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13정맥 중 남쪽에 9정맥이 있고, 그중 한북 하나만 남겨두었습니다. 13년전 대간 졸업기념으로 한북을 시작해 송추 노고산에서 멈춘적이 있는데 이번엔 도봉지맥이 아닌 오두지맥으로 한북을 종주하기로 했습니다. 한북이 임진강과 한강의 수계를 나누는데 도봉지맥은 한강의 지류인 곡릉천 아래에 있고, 오두지맥이 정확하게 수계를 구획할 뿐아니라 지류에 스미는 장명산보다 조강에 합수하는 오두산이 입해처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한북정맥은 그 묵직함에 걸맞게 저명한 산객들에 의해 너무 많은 논문이 나와 있어서 정리하기 쉬웠습니다. 선배산우님들의 업적에 감사드립니다. 한북은 역시 장중하고 선이 굵습니다. 서울 이북으로 휴전선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특징도 있고요. 내심 축석령까지 생각하고 택일을 한건데요. 광덕고개 도착해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며 예보를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웬일? 한밤중에 비가 들었네요. 날씨를 충분히 살피고 왔는데 갑자기 바뀌다니 -.-,,, 일단 고심을 안할 수 없었고 주변 숙박업소에서 자고 낼아침 이어가는 걸로 결론 냈습니다. 창밖에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잘한 결정이라고 아침에 비가 그치는 대로 가는 데까지 가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쉬었습니다. 만일 5시에 출발하여 운악산을 넘어 절고개에서 현등사로 끊었더라면 청량리에서 한방에 대기도 좋고 어프로치도 가깝고 좋지않겠나 싶기도 했지만 후반부 어렵사리 드는 힘으로 운악산을 오르느니 시작에 나는 힘으로 잡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탁월한 결정을 뛰어넘어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지 뭔가가 있지 않고서는 오늘 같은 날씨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려 풀나무가 깨끗하고 바람도 씽씽 불어줘 그닥 땀도 흘리지 않고, 시계도 멀리 나가고,,, 청계산에서 북쪽으로 오성산을 볼 수 있었고 서쪽으로 수도 서울 북한산이 보였습니다. 마지막 구간 여유를 두기위해 첫구간을 길게 빼볼까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다음 구간엔 첫날 샘내고개까지 목표를 잡고 의정부로 나가 찜질방 신세를 지고 새벽 일찍 이어가볼까하는데 마지막 구간은 서울로 복귀는 임진강에 전철이 있으니 걱정이 없고, 하루에 끝낼 것인지 1박2일로 할 것인지 공동묘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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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경표의 한북정맥(漢北正脈)과 신한북정맥과의 관계 이해
한북정맥은《산경표》에서 규정한 1대간 1정간 13정맥중의 하나로 한강의 북쪽 산줄기를 말한다. 한강 수역의 북쪽 한계를 이루고 있는 동시에 임진강 수역의 남쪽 한계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한북정맥은 백두간상의 추가령(752)에서 시작하여 백암산(1,111m)을 거쳐 남하 하다가 적근산(1,073m)에 이르러 남한땅으로 넘어와 대성산(1,174m), 수피령(740m), 복주산(1,152m), 광덕산(1,046m), 백운산(907m), 국망봉(1,168m), 강씨봉(840m), 청계산(849m), 운악산(936m), 죽엽산(601m), 도봉산(740m), 노고산(495.7m), 장명산(102m)으로 이어진 뒤 서해로 잠긴다. 백두대간 백산분기점(1,120m)봉에서 파주군 교하면 장명산까지 이르는 한북정맥의 총 길이는 도상거리 220.2km, 실제거리는 294km이다. 현재 국토 분단 때문에 북한 구간은 물론 적근산 - 대성산에 이르는 남한 구간도 출입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한북정맥 또한 백두대간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어서 남한쪽 답사는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 경계에 있는 수피령(740m)에서부터 장명산에 이르는 약 175km 구간에서 이루어진다.《신 산경표》(저자 박성태)에는 한강봉에서 도봉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말머리고개로 내려가 수리봉, 계명산, 박달산, 월롱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면서 한강과 임진강의 경계를 이루는 파주의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한북정맥이라 규정한다.
실제로 장명산을 답사해 보면 한강 하구에서 한북정맥 챌봉이 발원지인 공릉천(恭陵川)을 타고 한참 내륙으로 들어온 곳 공릉천변 남쪽에 있는 산이다. 입해처로 향해야할 정맥이 강도 아니고 지천에 스며들다니 이는 그 당시 수도를 지키는 수호신격인 도봉산·삼각산(북한산)을 산경표에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 고려와 생활권을 가르는 사회적 고려가 있었다. 낙남정맥과 금남정맥도 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정맥의 끝이 입해처가 아닌 옛 고도로 향하였고, 금북정맥의 끝 또한 생활권을 고려해 백월산에서 내포문화권으로 향하였다. 정맥의 끝이 입해처로 향해야 하는 산경표의 원리대로 라면 도봉산 오기 전 한강봉과 챌봉 사이에서 서진하는 산줄기를 따라 고령산(앵무봉), 개명산, 박달산 어깨 월롱산, 기간봉을 지나 바다에 닿는 조강이 흐르는 오두산(鰲頭山) 통일전망대에서 끝나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산경표에서도 장명산은 교하 동쪽 3리에 있는 산이라 표기하고, 오두산은 교하 서쪽 7리이고 한수단강합기하(漢水江合其下)라고 표기하고 있다. 즉 장명산은 교하마을에서 동쪽 즉 내륙으로 3리(1리는 약 0.54km, 1.62km) 떨어져 있고 오두산은 교하마을에서 서쪽으로, 즉 바닷가로 7리(3.78km) 떨어진 곳에 한강물이 여울지는 두 강(임진강과 한강)과 합쳐지는 그 아래에 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임진강을 한강의 지류로 보지 않고 원류로 본다면 오두산으로 가는 산줄기가 온전한 한강의 북쪽 울타리가 될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박성태 선생이 <신 산경표>를 집필할 때 이 오두산으로 가는 산줄기를 신한북정맥으로 발표했다. 신한북정맥에 의하면 도상거리 224km로 한북정맥보다 약 12km 짧으며, 종주 가능한 산줄기는 약 148km이다. 이후 도봉지맥은 챌봉, 사패산, 도봉산, 삼각산(상장봉), 노고산, 1번국도, 숫돌고개를 지나 비산비야 신도시를 관통하며 흘러 한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장명산까지 전부 공릉천으로 유입되어 드넓은 평야지대인 양주, 고양, 파주시의 젖줄이 되어 흐르다가 한강하구 파주시 송촌동에서 한강물이 된다. 그외 한북정맥에서 분기된 지맥들이 만들어낸 간파천, 노리천이 적성 파평을 살찌우고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한북정맥(오두지맥) 꾀꼬리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신한북정맥의 산줄기를 따라가 보면 고령산(앵무봉)에서 월롱산 어름까지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전부 문산천으로 흘러든다. 이 물은 광적, 법원, 광탄, 파주, 월롱, 문산 들판을 가로지르며 임진강으로 스며들고, 이후 오두산까지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작은 개울들을 이루며 탄현 들판을 일구고 임진강으로 합류해 한강이 된다. 한북정맥 꾀꼬리봉에서 서진하는 진정한 한강의 북쪽 울타리인 신한북정맥을 따라가면 그 끝인 오두산까지 남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수많은 개울을 만들며 전부 공릉천으로 흘러들어 오두산에서 한강물이 된다. 고로 정리해 보면 한북정맥의 북쪽으로 뚜렷한 산줄기는 한탄강이 중심이 되어 그 유역에 김화, 철원, 양주, 포천이 기대어 수많은 민초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후 비산비야 신도시를 달리는 한북정맥은 원형이 훼손되어 정확한 맥이 어딘지는 모르나, 임진강 하류에 고양, 파주시가 기대어 민초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북정맥에서 북쪽으로 위치한 지역은 극명하게 대조되는 2부류의 산줄기 흐름이 2개의 강줄기를 경계로 산악지대와 신도시지역을 구분해 주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전자에도 언급했지만 산경표에 의한 한북정맥은 온전한 한강의 북쪽 울타리를 치지 못하고 삼각산으로 왔다. 실제로 한강의 북쪽 울타리로 치는 신한북정맥의 흐름을 보려면 5만 분의1 지형도 문산·서울·개성 3장을 준비하면 된다. 한북정맥 한강봉과 챌봉의 중간 꾀꼬리봉에서 서쪽으로 양주시 백석읍과 장흥면의 경계를 따라 고령산(앵무봉)어깨 개명산, 367번지방도로, 됫박고개, 박달산어깨, 미륵당도로를 지나 파주시 조리읍과 광탄면의 경계를 따른다. 이후 조리읍과 월롱면의 경계를 거쳐 월롱면내로 들어가 경의선철로, 1번국도, 다락고개, 월롱산에서 다시 경계를 따라 기간봉, 21번군도, 359번지방도로, 바구니고개, 보현산, 통일동산 자유로를 건너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강과 한강을 만나 이마를 맞대고 바다로 잠수하는 약 40km의 산줄기를 걸으며 신한북정맥을 종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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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군(華川郡)
화천군(華川郡)은 대한민국 강원도 서북부의 군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6·25전쟁 때 수복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산악지형이고, 북한강이 군의 중남부로 흘러 파로호로 흐른다. 군청 소재지는 화천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4면이다. 화천군은 서울 동북방 132 km, 휴전선남방 22 km 지점의 강원도 서북부에 위치한 산악지대로서 동쪽은 양구군, 서북쪽은 철원군, 남쪽은 춘천시, 서쪽은 경기도 포천군 및 가평군과 접하고 있어 5개 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이 군 전역에 영향을 미쳐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남부를 제외한 동부·서부·북부에는 높이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연이어 솟아 있어 다른 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성산(1,175m)·복주산(1,152m)·화악산(1,468m) 등이 서쪽 경계를, 적근산(1,073m)·흰바우산(1,179m) 등이 북쪽 경계를, 사명산(1,198m)이 동쪽 경계를 이루는데, 동부 내륙에는 재안산(1,071m)·일산이 남북으로 솟아 있어 산세가 험준하다. 그밖에 남부에는 죽엽산(859m)·용화산(878m)·토보산(589m) 등이 동서로 솟아 있어 춘천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강원도의 영서지방 중북부, 북쪽에서 백두대간이 서사면을 차지하며 서북경의 한남정맥에는 백암산·대성산 등이 솟아 있고, 남경 도솔지맥에는 간곡산·죽엽산 등이 솟아 있다. 북한강이 이 감입곡류하며 그 사이를 흐르고 구만리 부근에는 화력발전소의 파로호가 구축되었다. 지류 서옥천·동림천·원천 등이 모이는 간동면에 분지가 발달하였다. 군의 북동쪽으로 흘러들어온 북한강은 인제군·양구군을 거쳐 서류하는 서천과 합류한 후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춘천시로 흘러간다. 그러나 지금은 화천 댐 등의 건설로 인해 거대한 인공호수(파로호)가 조성되어 하천활동이 많이 약화되고 안정되었다. 군내의 모든 하천은 북한강으로 유입하여 북한강 수계를 형성하는데, 북부 적근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화천읍을 지나 북한강에 유입하는 화천천과 서쪽 광덕산(1,046m)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는 사내천이 대표적이다. 화천천을 비롯한 하천 양안의 하곡평야와 간동면 오음리, 사내면 사창리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평지가 거의 없다. 파로호는 1944년 5월에 5월에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이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제는 대륙침략을 지원하는 군수산업을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와 용호리의 북한강 협곡을 막아 화천댐을 축조하였다. 파로호는 이 때 생긴 인공호수이다. 평화의댐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따라 2005년 10월 19일 완공한 대응댐이다. 총저수량, 26.3억톤, 총길이 601m, 높이 125m의 대규모 댐이다. 삼국시대에 먼저 고구려의 세력에 들어 야시매군이 설치되었는데, 신라가 생천군으로 개칭했으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낭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춘주(춘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06년(예종 1)에 감무가 설치되어 양구를 함께 다스렸다. 조선시대 태조대에 양구가 분리되고, 1413년(태종 13)에 낭천현이 되어 조선시대에 유지되었으나, 1644~53년에 김화에 병합되기도 했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낭천군이 되었다가 1902년에 화천군으로 개칭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춘천부 낭천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강원도 낭천군이 되었다. 1902년에 낭천군을 화천군으로 개칭하여 군의 이름이 바뀌었다.
* 철원군(鐵原郡)
강원도 북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으로 화천군, 서쪽으로 연천군·포천시, 남쪽으로 포천시, 북쪽으로 평강군·김화군과 접하고 있다. 6·25전쟁의 격전지였다. 1954년부터 민간인 거주가 허용되었으며 군의 북쪽에는 군사분계선과 접한다. 군부대가 입지해 있어 군인들과 면회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업이 활발한 편이다. 직탕폭포·삼부연폭포·고석정·순담 같은 명승지가 많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서울에서 원산에 이르는 추가령열곡을 서쪽으로 바라보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들과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이 지역에서 다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생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철원군(鐵圓郡) 또는 모을동비(毛乙冬非)라 하였으며,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 때 철성군(鐵城郡)으로 개칭되었다. 901년(효공왕 5)송악(松嶽 : 開城)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弓裔)가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다음해에는 지금의 철원읍 홍원리로 도읍을 옮겼으며, 911년 국호를 다시 태봉으로 고치고 918년까지 통치하였다. 918년에 왕건(王建)이 고려를 세우고 이듬해 송악으로 천도하면서 이 지역을 동주(東州)라 하였다. 995년(성종 14)에는 단련사(團練使)가 파견되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혁파되었고, 1018년(현종 9)부터는 지주사(知州事)가 파견되었다. 김화군(金化郡)과 삭녕현(朔寧縣)·평강현(平康縣)·장주현(漳州縣)·승령현(僧嶺縣)·이천현(伊川縣)·안협현(安峽縣)·동음현(洞陰縣) 등 1개 군 7개 현을 속현(屬縣)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 5도·양계(兩界)의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교주도(交州道)에 속하였다. 1254년(고종 41)에 직제가 떨어져 동주현(東州縣)으로 불렸다가 뒤에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낮추어져 철원부(鐵原府)로 개명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경기(京畿)가 확장됨에 따라 교주도에서 경기좌도로 이속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태조 3)한양천도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경기의 영역이 재조정될 때에도 역시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규례에 따라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434년(세종 16)에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1746년(영조 22)에는 춘천부(春川府)에 있던 강원도병마방어사부(江原道兵馬防禦使府)가 옮겨와 춘천·회양(淮陽)·이천(伊川) 등 3개 도호부와 금성(金城)·김화(金化)·낭천(狼川)·양구(楊口)·평강(平康)·안협(安峽) 등 6개 현을 진관(鎭管)하였다. 1895년(고종 32) 부제(府制)의 실시에 따라 춘천부 철원군으로 되었다가 다음해에 다시 도제(道制)로 환원되면서 강원도 철원군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31년철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41년 10월 1일에는 경기도 삭녕군 내문면(乃文面)·인목면(寅目面)·마장면(馬場面)이 철원군으로 편입되어 1개 읍 9개 면의 행정구역을 이루게 되었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38선을 경계로 철원군 전 지역이 공산치하에 예속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지역은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특히 1952년 10월의 백마고지전투와 철의 삼각지대 저격능선전투에 참여했던 장병들의 애국적인 투지는 온 겨레의 거울이 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철원은 국군의 북진으로 수복되어 군정(軍政)이 실시되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으로 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이 인수되어 이북지역의 6개 면을 제외한 3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63년에는 옛 김화군 중 8개 면이 철원군에 편입되었고, 신서면이 경기도 연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72년 12월 28일철원군 북면 유정리·홍원리와 내문면 독검리가 철원읍에 편입되었다. 또한 전 평강군 남면 정연리가 갈말면에 편입되었고 1973년에는 서면 청량리와 도창리가 김화읍에 편입되었다. 1975년철원 북방 13㎞ 지점에서 북한이 파놓은 땅굴이 발견되었다. 1979년 5월 1일갈말면이 읍으로, 1980년 12월 1일에는 동송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다. 1990년 6월 12일에 옛 김화군의 방통리·금곡리·율목리·노동리·진현리·수동리가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1992년 4월 30일동송읍 이평리 일부가 철원읍 화지리로 편입되었다.
* 가평군(加平郡)
가평군은 대한민국 경기도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강원도 춘천시·홍천군, 서쪽은 포천시·남양주시, 남쪽은 양평군, 북쪽은 포천시와 강원도 화천군에 접하고 있다. 군의 북동부에서 남서방향으로 한북정맥이 뻗어 있으며, 북한강의 동쪽에는 화악지맥이 있다. 군내에는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명지산(1,267m)·국망봉(1,168m)·가덕산(858m)·계관산(655m)·원통산(567m)·중미산(834m) 등의 산들이 솟아 있다. 지형적으로 군의 대부분이 험한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점차 낮아진다. 북한강이 가평읍 대곡리에서 강원도 춘천시와의 경계를 따라 남류하다가 청평호를 이루면서 군의 남부를 가로지르며, 북면 적목리에서 발원한 가평천과 하면 신판리에서 발원한 조종천이 각각 가평읍과 청평리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북한강은 골짜기가 좁아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지 못하고 약간의 분지와 곡저지가 주요 지류와의 합류점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가평읍 마장리 야철주거지(冶鐵住居址)가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민무늬토기·석기·김해토기·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지방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시대 북방 부족사회이던 맥국(貊國)이 북한강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가평은 그 지배를 받아왔다고 믿어진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자, 가평은 고구려 근평군(斤平郡, 또는 竝平郡)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에는 가평군(嘉平郡, 또는 加平郡)으로 개칭되었다. 속현으로는 조종현(朝宗縣)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구려 때에 심천(深川)·복사매(伏射買)라 불렸고, 신라시대에는 준수(浚水)라 일컬어졌다. 1018년(현종 9)가평은 춘주부(春州府)에 예속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북면 적목리에 성을 축조하여 난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도성재’라고 하는 곳에 성곽의 흔적이 있다. 공민왕이 산 정상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1413년(태종 13)에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어 현감이 두어졌다. 1507년(중종 2)에 임금의 태(胎)가 봉안된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가릉군(嘉陵郡)이라고 개명되었다. 1599년(선조 33)에는 명필 한호가 가평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인·묵객과 학자들이 산수 좋은 이곳을 찾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광해군 때에 김육(金堉)이 이곳에 와서 대동법(大同法)과 시헌력(時憲曆)을 연구하였으며, 그 아들 김좌명(金佐明)·김우명(金佑明)도 이곳 출신이다. 1697년(숙종 23) 역신 이영창사건(李榮昌事件)으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0년 뒤에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양주목(楊州牧) 관할에 있던 가평군은 1888년(고종 25) 강원도에 편입되었고, 1895년에는 경기도 포천군에 일시 편입되었다가 1년 후 가평군으로 독립되었다. 1942년 양평군 설악면이 가평군으로 편입되었고, 내서면·남면은 가평면으로 통합되었다. 1950년 6·25 때 가평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청년들이 반공산악동지회·임산의혈대·학도의용대 등 결사대를 조직해 싸웠다. 6·25 때 이 지방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958년 3월 15일 가평읍 읍내리에 가평지구 전투전적비를 세웠다. 또, 읍내리에는 6·25전쟁 때 참전했던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영국 등 영연방(英聯邦) 4개국의 전공을 빛내기 위해 1967년 9월 30일 세운 영연방참전기념비가 서 있으며, 북면 이곡리에는 1975년 11월 7일 세운 캐나다군 참전기념비가, 북면 목동리에는 1967년 9월 30일 세운 호주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1963년 일부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외서면의 입석리·내방리·외방리가 양주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에는 가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웃 양평군의 서종면 삼회리가 외서면으로, 노문리 일부가 설악면으로 편입되었다. 2004년에는 외서면이 청평면으로 개칭되었다. 2015년에는 하면(下面)이 조종면(朝宗面)으로 개칭되었다.
* 포천시(抱川市)
경기도 북동부에 있는 시로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에 접해 있다. 서울특별시와 강원도 북서부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으며, 인접한 가평군과 함께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2003년포천읍을 폐지하고 포천시로 승격하였다. 지금의 포천시는 옛 포천현과 영평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시의 북부는 옛 영평군 지역이고, 남부는 옛 포천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포천현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으며,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의 마홀현(馬忽縣) 또는 명지성(命旨城:臂城)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견성군(堅城郡)으로 개칭, 한주(漢州:廣州)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다시 포주(抱州)로 개칭했으며, 995년(성종 14)에 단련사를 파견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했다. 1018년(현종 9)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어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어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포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한성부 포천군, 1896년에 경기도 포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양주의 두입지인 산내면과 청송면이 편입되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평군이 폐지되어 포천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포천군의 서면은 그대로, 청량면(일부)·군내면이 군내면으로, 청량면(일부)·가산면이 가산면으로, 내동면·동촌면이 내촌면으로, 외소면·내소면이 소흘면으로, 외북면·내북면이 신북면으로, 청송면·산내면이 청산면으로 통합되었다. 옛 영평군 지역의 일동면·이동면은 그대로, 읍내면·군내면이 영중면으로, 하리면·남면·서면이 창수면으로, 북면이 영북면으로 통합 또는 개칭되어 포천군에 편입되었다. 1937년에 서면이 포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으로 38˚선 이북에 속하는 군의 북부가 북한지역에 편입되었다가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6·25전쟁 후 모두 수복되었다. 1979년에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에는 연천군에서 관인면이 편입된 대신 청산면이 연천군으로 이관되고,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되었다.(→ 영평군) 해방 이후 북부지역이 북한지역에 속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모두 수복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단지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2003년 10월 19일 도농복합시로 승격되면서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되었으며, 창수면 일부지역(신흥리, 고소성리 일부)은 군 작전상 입주를 허용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업이 중심 산업이었으나 최근 공장들이 이전해 오면서 공업의 비중이 커졌다. 백운산을 비롯하여 광릉수목원·산정호수 등의 관광지가 인기있다. 한북정맥의 주맥이 시의 동북에서 남동방향으로 뻗어 있어 남부 중앙에 자리한 포천분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높은 산지로 되어 있다.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동부산지에는 백운산(白雲山:904m)·국망봉(國望峰:1,168m)·강씨봉(姜氏峰:830m)·청계산(淸溪山:849m)·원통산(圓通山:567m)·현등산(懸燈山:936m) 등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솟아 있다. 북부에는 고남산(古南山:644m)·박달봉(朴達峰:800m)·광덕산(廣德山:1,046m)·각흘봉(角屹峰:838m) 등이 솟아 있으며, 천보산맥(天寶山脈)으로도 불리는 서부산지에는 지장봉(地藏峰:877m)·삼형제암(三兄第巖:715m)·향로봉(香爐峰:605m)·종자산(種子山:643m)·종현산(鍾懸山:589m)·국사봉(國師峰:754m)·왕방산(旺方山:737m) 등이 솟아 연천군·동두천시·양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남부 의정부시·남양주시와의 경계에는 용암산(龍巖山:477m)·운악산(雲岳山:235m)·주금산(鑄錦山:814m)이 솟아 있다. 포천천은 시의 주천으로 남부산지에서 발원하여 군의 중앙부를 북류하고 영중면 양문리에서 영평천과 합류한다. 영평천은 동북단 광덕산에서 발원하여 북부 중앙부를 서류하고 창수면에서 한탄강에 유입된다. 한탄강은 북부를 서류하여 연천군, 강원도 철원군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데, 일대의 현무암 용암대지를 침식하여 수직절벽과 협곡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형은 군사적 요충지 및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 하천과 주요지류의 합류지점에는 포천분지를 비롯한 분지와 곡저지가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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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령(780m) → (1.2km) → 복계산 삼거리/촛대봉(1010m) → (0.9km) → 칼바위(990m) → (1.5 km) → 950봉 → (1.9km) → 945봉 → (2.2km) → 950봉/헬기장 → (1.8km) → 1082봉/벙커봉 → (2.7km) → 복주산(1152m) → (1.8km) → 하오현(800m) → (1.1km) → 회목봉(1025m) → (1.2km) → 회목현 → (1.6km) → 상해봉갈림길 → (2.6km) → 광덕산(1046m)
광덕산(1046m) → (2.5km) → 광덕고개(650m) → (3.20km) → 백운산(903.1m) → (0.93km) → 삼각봉(918m) → (1.17km) → 도마치봉(925.1m) → (1.62km) → 도마봉(883m)
도마봉(883m) → (3.10km) → 신로령(950m) → (2.20km) → 국망봉(1168.1m) → (1.40km) → 견치봉(1102m) → (1.80km) → 민둥산(1008.5m) → (2.50km) → 도성고개(631m) → (1.58km) → 강씨봉(姜氏峰/830m) → (2.7km) → 오뚜기고개(768.1m) → (1.4km) → 귀목봉갈림길 → (2.1km) → 청계산(淸溪山/849.1m) → (1.44km) → 길매봉(735m) → (2.3km) → (신)노채고개(36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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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의 흐름은 강원도 땅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를 넘는 56번국도 수피령에서 서쪽으로 군계를 따라가며 1,000고지 이상 솟구친 봉우리들이 계속된다. 복계산 어깨 복주산, 하오현, 회목봉, 회목현, 상해봉 어깨 광덕산에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따르며 고도를 낮추어 광덕현, 백운산, 도마치봉에서 경기도내로 들어가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따라간다. 신로령, 국망봉, 민둥산, 도성고개를 지나 800m급 봉우리로 낮아진다. 강씨봉, 한나무봉, 오뚜기고개, 청계산, 길마고개, 길마봉, 노채고개로 떨어졌다가, 원통산, 운악산, 봉수고개로 내려와서는 명덕봉을 밀어 올린 후 더욱 힘을 주어 600m급 봉우리들을 빚는다. 이후 수원산, 국사봉, 큰넉고개, 작은넉고개로 자지러졌다가 다시 600m급인 죽엽산을 솟구쳤다가 힘에 부쳐 비득재로 뚝 떨어진다. 그런 뒤 좀처럼 고도를 높이지 못하고 200m급 산줄기를 형성하면서 고모루산성, 43번국도, 축석령, 백석이고개를 지나 100m급으로 낮아져 양주시 주내 들판 고읍지구신도시를 관통한다.
한북정맥은 북쪽구간은 물론 적근산과 대성산도 민통선 지역에 속하여 출입을 할 수 없으므로 일반적으로 한북정맥의 출발점을 대성산과 복계산(1,057m) 사이에 있는 수피령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 수피령(水皮嶺,780m)
수피령은 위도상 백두대간 미시령과 비슷한 북위 38도 윗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대성산이 위치하고 있다. 한북정맥 남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개로 56번 국도가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철원군 근남면 와수리로 통한다. 우측으로 한탄강의(남대천, 임진강)의 수계이고, 좌측으로는 북한강(봉우천, 지존천, 가평천 등)의 수계이다.
1구간을 마치고 오니 호국보훈의달 6월입니다. 전방지구, 끊어진 정맥을 잇는 맥꾼의 마음이 아리고 저렸습니다.
♤ 대성산지구 전적비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겨울 일기예보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을 꼽을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될 정도로 춥고 산세가 험한 대성산 전적지는 철원의 백마고지, 양구 펀치볼, 도솔산 전적지와 함께 6.25전쟁 3대 격전지로 꼽힐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전적비 앞 안내판에는,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17연대가, 대성산 1042고지에서 활동 중인 중공군 제58사단 177연대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서 공격을 시작, 1042고지와 시월동 및 865고지를 탈환한 후, 연이어 6월 14일까지 승암고개, 삼진봉, 바조봉 일대까지 적의 공격기세를 분쇄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적 사살 453명, 생포 19명, 55점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아군 피해는 전사 38명, 전상 123명으로 불후의 전공을 세웠다. 육군 제15사단에서는 대성산지구 전투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공을 높이 찬양하고, 조국수호를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그 위훈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1980년 8월 15일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복계산을 알바로 갔습니다.ㅋㅋ 사실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나 싶어 다녀올 계획이었지만 가다보니 복계산이더군요. 갈림길을 그냥 지나쳐 복계산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복계산갈림길 이정표입니다.
근남면 잠곡리와 육단리에 있는 복계산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설잠 김시습이 은거했던 곳이라 매월대도 있고 매월대폭포도 있고 매월대암장도 있고, 정상에 바둑을 두던 바둑판도 있다고 들었는데 바빠서 확인까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ㅎㅎ
♤ 복계산(福桂山, 1057.2m)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한북정맥을 타기 위해 오르는 첫 번째 봉우리가 복주산인데 그곳을 오르기 위해 산행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복계산이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서 민간인이 오를 수 있으면서 비무장지대와 가장 가까운 최북단의 산이다. 5세 신동으로도 유명하고 생육신 중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비분해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곳 복계산 일대 산마을에서 은거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후 그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며 바둑을 뒀다는 암봉은 그의 호를 따서 매월대라고 했고, 그래서 복계산에 있는 시원한 폭포의 이름도 매월대폭포다. 복계산 정상에서는 경기도의 명산인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 등을 조망할 수 있고, 복주산 방향으로 시원한 한북정맥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민통선 안에 있는 한북정맥의 최북단 봉우리인 대성산도 맨눈으로 바로 볼 수 있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 중의 하나인 김시습은 출세 가도가 보장된 엘리트 학자였지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 사육신의 죽음을 접하고는 3일간 통곡을 하다가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유랑을 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세상을 등지고자 했던 그를 보듬은 것은, 결국 산골 깊고 깊은 복계산이었던 것이다. 한북정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수피령, 복주산, 회목봉, 상해봉, 광덕산 명성지맥까지 남대천으로 흘러들어 김화들판을 적시며 한탄강으로 합류된다. 이 물이 강원도 제1평야인 철원평야를 아우르니 과연 궁예가 옛도읍지로 정할 만하다. 광덕현, 백운산, 국망봉, 도성고개 북쪽의 물은 직접 영평천으로 흘러들어 포천군 이동 들판을 살찌운다. 강씨봉, 청계산까지는 수입천으로 흘러들어 포천군 일동 들판을 적신다. 운악산, 수원산까지는 명덕천을 이루며 흐르다가 화현 들판을 적시고 포천천으로 흘러든다. 국사봉, 죽엽산, 축석령 왕방지맥까지 포천천으로 흘러들어 드넓은 포천 들판을 적시며 영평천으로 합수한다. 한북정맥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복주산 전 무명봉까지 전부 화천천으로 흘러들어 북한강에 합수하며 비목의 고향 화천을 이루었고 도마치봉까지는 사내천으로 흘러들어 북한강으로 흡수된다. 바로 그 도마치봉에서 분기한 화악지맥이 가평천을 구분지어 주고 동쪽으로 호반의 도시 춘천분지를 살찌운다. 오뚜기령까지 이골 저골로 흘러들어 가평천으로 합수되고 북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잣의 고장’ 가평을 이루었다. 이후 명지지맥분기점에서 수원산까지 조종천으로 흘러들어 낭만의 도시 청평을 만들고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복주산에서 바라본 상해봉과 광덕산입니다. 앞쪽은 회목봉이겠죠.
복주산이 광덕고개까지의 중간지점쯤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 복주산(伏主山, 1152m)
강원 화천군 상서면(上西面)·사내면(史內面)과 철원군 근남면(近南面)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위에 대성산(大成山, 1175m)·복계산(福桂山, 1057m)·광덕산(廣德山, 1046m)·명성산(鳴聲山, 923m) 등이 이어져 있다. 전사면이 비교적 가파른 편이다. 남서사면에서 발원하는 수계는 한탄강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들고, 남쪽 기슭으로 발원하는 수계는 광덕리에서 용담천(龍潭川)의 지류가 발원하여 사내천으로 흘러든다. 복주는 ‘복주께’라고 하는 이름에서 딴 것인데, ‘복주께’주발을 뜻한단다. 예전에 하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온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이 산의 끝머리 봉우리가 그 물위에 주발만큼 남았다는 것이다. 원래의 뜻보다 여기서는 ‘매우 조금’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 하나 '화천 지명'에 따르면 옛날 조물주가 세상을 심판할 때, 온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이 산(山)만은 꼭대기에 '복주감투(중이나 노인이 추위를 막기위해 쓰는 모자로 바가지 비숫하게 만들되 양 옆을 접어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만든다)' 만큼 물에 잠기지 않고 남아 있어서 복주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정상 봉우리 부분이 뾰족해서인지 그런 유래를 가지게 되었다. 남서쪽 기슭의 하오현(荷吳峴)과 북동쪽 기슭의 수피령(水皮嶺)은 예로부터 철원과 화천을 이어주는 주요고개이다. 복자는 엎드릴 복자이다.
말머리고개, 말고개, 말죽거리, 말목재, 말골재, 마두령... 다른점은 무얼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하오고개도 여기저기 많은 이름인데 수긍이 가는 정확한 해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 하오현(荷吳峴, 780m)
광덕산과 복주산 사이에 있는 하오현은 예로부터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에서 철원군 금화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고개가 길어서 말고개라고도 한다. 지금은 고개 밑으로 하오현터널이 뜷려서 고개로서의 기능은 정지된 상태이다.
하오고개에서 올라서서 광덕산을 내려설 때까지 유해발굴지역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1,027봉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거기가 회목봉 정상 봉우리같던데 올라보니 아무것도 없던데요.
♤ 회목봉(檜木峰, 1027m)/ 강원 화천 사내면과 철원 근남면 경계
회목봉"은 화천군 사내면과 철원군 근남면 경계를 이루며 한북정맥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줄기를 같이하는 광덕산과 상해봉의 동쪽에 있다. 한때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노송군락으로 뒤덮였으나 일제강점기의 도벌과 6·25전쟁 때 참호 조성 때문에 많은 나무들이 사라졌다. 능선을 따라 희귀한 모양의 암릉과 암봉, 바위지대가 많다.
♤ 회목현
방화리에서 올라오는 3사단 수색대 행군훈련 코습니다.
상해봉 지역에서만 113위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정상석을 이동용으로 세워두었는데 산에 딱 붙여 놓으면 거센 바람에 산까지 다 뒤집어질까봐서 따로 떼어 놓았답니다.^^ 한밤중에 정상석이 뛰어다닌다나 뭐라나...
광덕산 천문대에 와서 바라본 상해봉의 모습입니다. 젤 뒤편에 흐릿한게 대성산입니다.
지나온 능선이 잘 보입니다. 상해봉은 한북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0.4km 정도...
♤ 상해봉(上海峰/ 1,010m) 정상
강원도 철원군 서면·근남면과 화천군 사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회목현(檜木峴)고개와 광덕산(1,046m)을 잇는 한북정맥으로부터 북쪽으로 갈라진 지맥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주변 산들이 대개 육산(肉山)인데 비하여 상해봉 정상만은 바위봉으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끌지만 1.5km 거리를 두고 이웃한 광덕산의 명성에 가리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해봉이라는 이름은 정상의 바위지대가 마치 망망대해에 떠있는 암초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었다거나 먼 옛날에는 바다였는데 지금은 봉우리가 되었기에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외양간을 뛰쳐나간 소를 찾아 나섰다가 상해봉 서쪽 자등리의 어느 계곡 숲속에서 99간 청기와 집을 발견하였다거나 산꼭대기에 배가 매여 있다는 전설 등이 전해진다. 정상에서는 대성산, 수피령, 복주산, 복계산과 휴전선 너머 오성산(1,062m)까지 보이며 광덕산과 사이에 있는 상해계곡은 여름철 휴양지로 이름이 높다.
상해봉에서 바라본 건너편 광덕산 천문대와 기상관측소 모습입니다.
상해봉 가는 갈림길 들머리에 안보공원을 조성해 두었습니다.
광덕산 정상의 산악기상관측소 모습입니다.
광덕산 조경철박사 천문대입니다. 이용객이 계시던데 건물 안쪽에 화장실이나 식수를 마실 수 있는지 궁금해서 살펴볼려다 가야할 길이 바빠서리...
이곳 광덕산에서 명성지맥이 분기한다. 이정목의 '백운계곡 주차장' 방향으로 명성지맥이 분기하여 이어진다.
♤ 광덕산(廣德山, 1046.3m)/ 기상레이더/ 삼군봉/ 조경철천문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철원군 서면과 경기도 포천 이동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금강산·무등산·가칠봉·백암산·적근산·대성산·복주산·화악산·명지산 등의 큰 봉우리로 이어지는 내륙 중심의 대들보로서 중부지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산이다. 북으로는 상해봉(1,010m), 서남으로는 박달봉(800m)으로 이어져 있다. 복주산(伏主山)·석룡산(石龍山)·가리산(加里山) 등과 함께 백두대간에서 갈라지는 한북정맥의 일부가 된다. 북한강 수계와 한탄강 수계의 분수계에 위치하여, 두 하천의 지류들이 발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조가 이곳에서 사냥을 한 역사적인 사실이 남아 있다. 한편, 이곳에 있는 광덕계곡은 사내면 광덕리(廣德里)에 위치한 계곡이다. 광덕리는 사내면 지역으로 광덕산 밑이 되므로 광덕골 또는 광덕동(廣德洞)이라고 하였다. 광덕계곡은 광덕산에서 화악산(1,468m)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북한강으로 흐르는 사내천 상류에 있다. 계곡물을 따라 암반과 절벽, 작은 폭포와 소 등이 있다. 광덕산은 수피령에서 출발해 촛대봉과 복주산을 거쳐 정상을 밟은 뒤 하오현과 하오터널을 지나 광덕계곡으로 내려오면 산행 코스는 약 17km로 총 7~9시간 정도 소요된다.
♤ 명성지맥(鳴聲枝脈)이란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대성산 수피령에서 남진해 내려오다가, 광덕산(1046 m)에서 남서진하여, 광덕산에서 972봉을 지나서 860봉(박달봉 갈림길)에서 북서진해 자등현으로 내려가다 다시 솟구쳐 각흘산(838m), 약사령, 명성산(923m), 삼각봉(906m), 안덕재, 여우봉(730m), 여우고개를 통과해, 사향산(750m), 낭유고개, 관음산(733m), 610봉, 도내지고개를 지나, 불무산(669m), 642봉, 방골고개, 운산리고개, 보장산(555m)을 거쳐, 350봉, 260봉, 658봉을 통과하여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의 아우라지(한탄강과 영평천의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2.2km 산줄기를 말하며 우리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원래는 보장산(555m)에서 247.5m봉과 194m봉을 넘어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수되는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 아우라지에서 그 맥을 다하지만 보장산(555m) 이후 군부대가 마루금을 가로막고 있어 대부분의 산꾼들은 군부대를 우회하여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배모루(영평천)에서 마무리하고 있다.
♤ 명성지맥 개념도
대득지맥은 다소 생소한 지맥이름입니다. 그 끝머리도 이견이 있는건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건지 두 군데로 향하는것 같습니다.
♤ 대득지맥이란
한북정맥 상해봉 지나 삼면봉인 광덕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명성지맥이 철원군과 포천시의 경계를 따라 박달봉과 자등현을 지나 서북쪽으로 재분기한 대득지맥은 철원 갈말읍, 서면, 포천시 이동면의 삼면봉인 각흘산(838.2m) 직전 헬기장에서 지맥은 서쪽으로 흐르고 한 줄기를 북쪽으로 분기하여 철원군 갈말읍과 서면의 경계를 따라 752.2m봉-795.5m봉-악희봉(710m)-542.9m봉-565.4m봉-513m봉-대득봉(628m)-511m봉-태봉(560.1m봉)-570m봉-456m봉-577m봉-588.7m봉을 지나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하토동 남대천(우)과 한탄강이 만나는 약 32.2km의 산줄기를 말하며 철원 지역의 마루금으로 좌우측으로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흐르게 한다.
♤ 대득지맥 개념도
광덕고개 정상에 사는 반달곰입니다.
건물 있는 쪽이 강원도 화천군 광덕리이고 앞쪽 방치된 주차장이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입니다.
팬션은 5만원이고 산이야기 모텔이 제일 저렴하네요. 3만원입니다. 뒤편에 주차장이 있는데 화장실도 아주 깨끗합니다.
♤ 광덕고개(660m, 한북정맥 1구간 산행의 날입목)/케러멜고개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에 있는 광덕고개는, 일명 '캐러멜 고개'라고도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광덕고개를 지날 때면 급경사의 구불구불 산길이 위험해 차량 사고가 유독 많아서 미군이 지프 운전병에게 광덕고개를 오를 때 졸지 말고 운전 잘 하라며 카라멜을 주었다고 하여 그리 불리우게 되었다고도 하고 고개가 캐멀(낙타)의 등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비가 그친지 얼마 지나지않아 신발에 비닐을 쒸우고 스틱으로 물방울을 털며 진행했습니다.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남 광양을 비롯하여 경남 함양, 경기 양평, 강원 원주 등 전국 각지에 모두 합치면 50여 군데나 된다. 뜻을 풀이하면 ‘하얀 구름’이 되는 백운은 불가의 탈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으면 거의 이같은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밝'사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 백운산(白雲山/903.1m)
백운산(白雲山)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강원도 북부지방에서 뻗어온 한북정맥은 광덕산에서 남쪽으로 계속 뻗어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백운산은 광덕산에서 내려온 산맥이 캐러멜고개(광덕고개)에서 주춤하다가 다시 백운산-도마치봉-국망봉-개이빨산-강씨봉-청계산-운악산으로 연면히 뻗어 가는 능선상의 한 봉우리이다. 광덕산(1,046m), 국망봉(1,168m), 박달봉(800m)등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백운산은 799m의 박달봉과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1,246m의 광덕산 등 크고 작은 연봉들의 절경이 있으며 포천의 특산물인 이동막걸리와 이동갈비의 별미를 즐길 수 있고 최상의 등산로가 산을 찾는 모든 이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백운계곡으로 내려 흥룡사 가는 중간에 태산가를 지은 봉래 양사언선생이 머물렀다는 봉래굴이 있습니다. 흥룡사에는 고 장준하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기도 하고, 일제시대 사이비종교인 백백교 교주의 머리가 수사연구원 지하실에 오랫동안 보관되어져 있다가 화장되어 안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 백운계곡
백운산의 정상은 육산이나 올라가는 코스(계곡길과 능선길) 곳곳에 화강암 바위며 단애(깍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가 있고 계곡은 화강암 계곡 특유의 둥근 바위가 개울 안에 가득하며 옥수 같은 맑은 계류가 곳곳에 소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저기 너럭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산사면에는 바위와 어울리는 소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운치가 뛰어나다. 산의 높이에 비해 상당히 긴 백운계곡은 정상부근까지 깊게 패여 있고 길이도 길지만 계곡 좌우를 따라 뻗은 능선은 야트막하면서 아름답고 수목이 울창하여 백운계곡은 여름엔 더할 나위 없는 피서지가 된다. 계곡 부근에는 신경통에 좋다는 약수가 있으며 물이 맑고 암반이 많은 수도권 근교의 계곡 중에서는 가장 깨끗한 곳으로 백운계곡은 약 5㎞의 구간에 펼쳐져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와 큰 바위들이 경관을 이루어 한여름에도 섭씨 20도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 삼각봉(918m)
한북정맥의 삼각봉은 멀리서 산의 모양을 보면 △ 이런 모습의 전경을 보이기 때문에 삼각봉이라고 한다고 추정을 해 볼수가 있다.
흥룡봉을 두고 좌우로 백운계곡과 도마치계곡이있습니다.
광덕고개에서 여기까지 500cc면 충분했고 여기서 간식을 흡입하고 3,000cc를 준비했습니다.
♤ 도마치봉(道馬峙峰)
구정동과 도평리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태봉국왕 궁예가 패하여 도망갈 때 이곳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산길이 너무 험난하여 이곳에서 말을 내려 끌며 갔다고 해서 도마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와 강원도, 도 경계가 마주친다는 의미의 도마치고개 상단입니다.
♤ 도마봉/ 화악지맥 갈림봉
넓직한 헬기장 가장자리에, 인근 봉우리의 정상석과는 다르게 오석으로 된 정상석이 서 있고 '국망봉 6.09km, 도마치 1.67km' 이정표가 있다. 여기까지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포천시의 경계를 이루던 마루금이 왼쪽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바톤을 넘긴다. 동남쪽 화악지맥을 78번국도가 넘는 도마치고개가 1.5km로 가까와서 한북정맥꾼들이 이곳 도마봉에서 한구간을 끊는 경우도 많다.
화악지맥의 맹주 화악산의 모습입니다. 응봉과 매봉 두 봉우리 사이가 회운현이고 화천 삼일리계곡으로 떨어집니다.
♤ 화악지맥이란
도마치를 넘어 경기의 최고봉 화악산(1,468m)으로 가는 화악지맥은 한북정맥 도마봉에서 분기한 능선이 도마치를 지나며 남동진하며 석룡산-화악산-매봉-촛대봉을 거치다 남서진하며 가일고개를 넘어 물안산-보납산을 거쳐 가평천과 합수되는 북한강에 이른다.
♤ 화악지맥 개념도
신로령 위 봉우리 신로봉입니다. 가리산 줄기의 최상단이기도 하지요.
한북정맥 최고봉임에도 불구하고 봉이라니,,, 해서 망국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북쪽으로 지나온 능선이 보이는데요. 상해봉과 광덕산의 탁구공도 환하게 보였습니다.
포성소리가 펑펑 울리는 곳, 명성산 아래 훈련장입니다. 명성산의 명성에 걸맞게 현재에도 포성이 울리고 있다는게 아니러니합니다.^^
국망봉에서 바라보이는 동쪽방향의 화악산입니다.
♤ 국망봉(國望峰, 1168.1m)
국망봉은 화악산(1468), 명지산(1267)에 이은 경기 3번째 고봉으로, 국망봉의 규암석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깨끗하여, 이 물로 빚은 막걸리가 유명한 이동막걸리다. 국망봉은 그 높이에 비해 산세는 비교적 단순하다. 북쪽으로 신로봉과 가리산의 암봉 너머 백운산, 광덕산, 상해봉, 복주산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한북정맥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남으로는 견치봉, 귀목봉, 청계산으로 이어가는 유장한 한북정맥 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덩치 큰 화악산과 석룡산이 가까운데, 서쪽으로는 이동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에 사향산(736m)과 명성산이 있다. 궁예가 말년에 자기를 산 미륵불이라고 하며 남의 마음을 읽는다(讀心術)고 할 정도로 자기를 신격화하여, 신하들에게 "네가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지?" 하며 다구쳤을 때, 이를 수긍하고 용서를 빌면 자기의 독심술이 용하다고 자만하며 부하를 용서하고, 역심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면 죽였다고 할 정도로 돌았다고 한다. 그 무렵 부인을 의심하고(의처증) 자식도 친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여 이 곳에 유폐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나 부인과 그 아들은 궁예의 의심이 풀리기를 빌며 고국 땅인 철원이 그리워 한없이 바라보았다는 국망봉(國望峰), 또는 나라가 하루 빨리 망하기를 빌었다는(國亡峰), 그리고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國祀)를 올리는 (성황)당 고개가 있었다고 하여 이 고개를 국사당 고개로 부르다가 후에 국수당 고개로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렇게 높은 ‘峰’이 자신을 낮추어 산이 아닌 ‘봉’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조선시대 말까지 望國山으로 불리다가 봉으로 격하돼 國望峰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포천 이동이 내려다 보입니다. 관모봉 사향산.... 왼편 뒤쪽으로 지장산과 그 위로 고대산과 금학산까지 보였습니다.
포천 영평은 오늘날 일동면, 이동면 등 포천시 북부지역의 옛 이름입니다. 영평에는 예부터 맑은 계곡과 빼어난 풍치가 많았는데, 특히 화적연과 와룡암, 선유담, 금수정, 백로주, 창옥병, 청학동, 낙귀정지 등 여덞 곳의 경치가 뛰어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하여 이들 명소를 묶어 ‘영평 8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영평8경
제1경과 제2경, 화적연과 금수정
영평 8경 중 1경인 화적연은 큰 바위와 깊은 연못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의 풍경을 이른다. 마치 볏짚 단을 쌓아 올린 것 같은 형상이어서 화적(禾積)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연못은 매우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으며, 강물과 주변 석벽, 자연식생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도 있었다 한다. 화적연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많은 그림과 이야기들 또한 이 연못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가 된다. 제2경인 금수정은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에 있다. 이 정자는 본래 우두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처음 정자를 지은 김 씨는 자신의 사위인 봉래 양사언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는데, 양사언이 이 정자의 이름을 금수정이라 하였다 하며 금수정에서는 지금도 양사언의 시조비 현판을 볼 수 있다. 금수정에 오르면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함께 눈에 들어오니, 이 아름다운 정자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제3경과 제4경, 창옥병과 낙귀정지
금수정과 마찬가지로 오가리 영평천에 있는 창옥병은 그 이름과 같이 병풍의 모양을 한 푸른 빛깔의 기암이다. 폭이 수백여 미터, 높이가 십여 미터에 달하는 창옥병에는 야생화와 소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어 정취를 더해 준다. 창옥병에는 명필 한석봉이 쓴 글씨가 암각되어 있기도 하다. 제 4경인 낙귀정은 영중면 거사리에 있던 작은 정자의 이름으로, 이 정자의 터를 낙귀정지라 이른다. 낙귀정지에는 영의정이었던 황 씨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 이야기는 한시 작품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제5경과 제6경, 선유담과 와룡암
암벽에 선유담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백운동 계곡의 선유담은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백운산 기슭을 끼고 돌며 굽이치는 영평천 상류계곡은 노니는 신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물에 잠긴 깎아지른 암벽그림자도 좋거니와 암벽에 반사되는 물빛도 아름답다. 제6경인 와룡암은 바위만큼 주위 풍경도 뛰어나다. 누워있는 용처럼 생겨 와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위는 상체는 수면 위로 떠 있고, 꼬리에 해당되는 바위 길이는 오십여 미터에 달한다. 이 바위에 와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려시대의 일로 추정되니, 바위의 아름다움이 전해져 내려온 지 아주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할 수 있겠다.
제7경과 제8경, 백로주와 청학동
거사리 한내천 하류의 백로주는 전체가 바위로 형성되어 그 모양이 마치 백로가 물속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경기관찰사 동강이 바위에 삼산발락청천외 이수중분백로주(三山發落靑川外, 二水中分白鷺州)라는 시를 새겨 놓은 것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지금은 북쪽의 하천 부지에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청학동은 영평 8경 중 제 8경으로 영중면 금주리에 위치하고 있다. 맑은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암벽의 낭떠러지에는 청학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며, 아버지의 산소 자리를 찾아 헤매던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바위봉우리가 비스듬하게 누워 연속되는 경우로 멀리서 보면 톱날처럼 보인다는 개이빨산입니다.
♤ 견치봉(犬齒峰, 1102m)/개이빨산
비스듬히 솟은 날카로운 바위봉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영낙없이 개이빨이 연상 되어진다. 견치봉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적목리 용수목(3.3km)를 가르키고 있다.
민드기봉이라고도 하고요.
도성고개로 내려가다가 본 좌측 봉우리 강씨봉입니다. 우측 뾰족한 부분이 청계산이고요.
♤ 민둥산, 민드기봉(1,008.5m)
민둥산 주변에는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귀목봉 등 산세가 아름다운 산들이 모여 있다. 현지 사람들은 민덕산이라고도 하며 적설량이 많은 산으로 알려져 겨울에 능선을 종주하는 산행이 인상적이다.
아름드리 잣나무숲이 있어 백패킹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 도성고개(631m)
가평군 북면 적목리 논남기와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 조침이, 이동면 연곡리 제비울을 연결하는 높은 고개로 민둥산(민드기봉, 포천시)과 강씨봉 사이에 있다. 가평군이 토성현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궁예부인이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 때, 쌓은 성을 도성이라 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도성고개에는 널찍한 헬기장이 있고 동쪽 논남기 쪽에는 샘터와 잣나무숲 속에 쉼터가 있다.
바람도 시원하고 깨끗하고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트였습니다.
지나온 능선입니다. 국망봉에서 견치봉-민드기봉-도성고개로 내려오는 정맥길이 좌측능선으로 뚜렷이 보입니다.
강씨봉에서 바라본 화악산입니다.
명지산(3봉)과 귀목봉 줄기입니다.
좌측이 명성지맥의 끝머리 보장산인가요. 우측 멀리 보이는 산은 고대산인듯 합니다. 국망봉과 강씨봉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다 올려드리지 못합니다.
♤ 강씨봉(姜氏峯, 830m)/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과 가평군 북면 경계에 있는 산
한북정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명지산·청계산·귀목봉 등이 있다. 강씨봉은 강씨 성을 가진 이에게서 유래한다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오뚜기고개 부근에 강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유래한다는 설이며 둘째는 궁예 부인 강씨에게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태봉국(泰封國) 왕 궁예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폭정이 계속되자 그의 둘째 부인인 강씨(姜氏)가 직언을 하다가 강씨봉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왕건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궁예가 강씨봉(姜氏峰)을 찾아 갔으나 이미 강씨는 죽고 없어 국망봉에 올라 태봉국을 바라보며 후회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씨봉이란 이름과 국망봉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사방이 급경사를 이루며 가평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산저에서 뻗은 능선의 모습과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조화를 이루며 진달래·단풍 등이 철따라 아름다움을 더한다. 화대리 한나무골-강씨봉-서쪽능선-밸말-왼부리와 도성삼거리-강씨봉고개-산정-한나무골-사기막-일동에 이르는 등산로가 잘 알려져 있다. 서쪽·남쪽으로 국도와 포천군 일동면에서 갈라진 간선도로가 지나며, 주변에 산정호수·청계산 등이 있다. 포천2동 막걸리와 포천 갈비가 유명하다. 가평읍에서 적목리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오뚜기부대 부대장이 군사도로로 뚫었다고 자랑질을 해놨습니다.
논남으로 탈출한다 해도 7km 1시간30분이 걸립니다. 강씨마을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물을 구할 수 있다는데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강씨마을 사람들은 세가지 덕을 먹고 살았는데 하나는 송이버섯의 송덕, 또 하나는 지붕을 잇는데 썼던 억새의 새덕, 그리고 더덕이랍니다.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저 정상석은 세워진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 오뚜기령
8사단 오뚜기 부대가 도로를 개설하고 오뚜기령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오뚜기령은 고유지명은 아니고 이 길을 만든 부대이름에서 따온건데 좌측으로 내려가면 예전에는 강씨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 조차 찾기도 어렵다.
오뚜기령에서 한 깔딱 올라서야 합니다. 가평환종주 할 때 반대로 내려서면서 그런 걱정을 했었드랬는데....
생태보전지역이라는데 보전하는게 무슨 생태인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귀목봉의 모습입니다. 40분이면 왕복하고 길도 비교적 유순하고 좋습니다.
♤ 귀목봉 갈림길(890m)/ 명지지맥 갈림길/ 삼면봉(가평군 북면-하면, 포천시 화현면)
귀목은 고개의 생김새가 사람의 귀처럼 오목하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귀목봉 갈림길은 명지지맥의 분기점인데, 명지지맥은 귀목봉을 지나 귀목고개로 내려섰다가, 명지산3봉(1,199m)을 지나고, 부드럽게 솟구치는 연인산(1,068m)을 따라 우정봉(906m), 대금산(706m)으로 이어져 불기산을 지나서 북한강변 호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명지지맥을 연인지맥이라고도 하는데 명지산群이 대부분이고 연인산은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산이름이기에 명지지맥으로 부르는게 맞다고 합니다.
♤ 명지지맥이란
강씨봉(830.2m)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오뚜기고개를 지나 청계산(849.1m)으로 향하는 한북정맥 산줄기상에 위치한 약 890봉/귀목봉갈림길에서 분기하여 잠시 동진하다 지맥에서 약간 벗어나 위치해 있는 명지산(1,253m)의 서쪽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어 남진을 하여 연인산-매봉-깃대봉-대금산-불기산-빗고개-주발봉을 거치고 호명산을 마지막으로 조종천이 북한강과 합수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1km의 산줄기이다. 산줄기의 최고봉인 명지산은 지맥 갈림길에서 마루금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비켜나 있지만 지맥의 많은 부분이 명지산군에 속하고 있어 명지지맥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1991년 10월 9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3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산세가 웅장한 명산이다. 일부에서는 연인산의 주능선을 지나고 있어 연인지맥(戀人枝脈)이라고도 부르는데 연인산은 1999년 3월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가평8경의 하나인 용추구곡의 발원지가 되는 최고봉인데도 이름이 없어 인위적으로 붙인 산 이름이므로 지맥에 이를 붙인다는 것은 다소 어색하므로 비록 정상은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더라도 명지지맥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명지지맥개념도
포천 일동 청계저수지에 들머리가 있는 까칠한 청계산입니다. 정상이 좁습니다.
귀목마을 연인산입니다. 바로 아래는 수기사 포병부대 107여단 훈련장이라나...
길매봉에서 내려서다 잡아본 길매봉과 청계산 봉우리입니다.
청계산 등산 코스는 청계저수지를 기점으로 해서 길매고개를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동북쪽으로 뻗은 계곡을 통해 다시 청계저수지로 하산하는 것이다. 상판리 거접이마을에서 길매고개로 오르는 코스는 군부대가 있어 산행이 불가능하다.
♤ 청계산(淸溪山, 849.1m)/ 포천시 일동면과 가평군 하면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산
청계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수도권 일대에 세 곳이 있다. 과천에 있는 청계산(618m)과 양평군의 청계산(658m), 그리고 포천군에 있는 청계산(849m)이다. 이 산을 청계산이라 하게 된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과거 청계산 정상에 있었다 한다. 그에 의하면 ‘옛날 청계의 의미는 닭장을 마굿간에 짓는다는 의미였으며, 일동에서 볼때 동쪽에 위치한 청계산은 오행(五行)에서 동쪽을 뜻하는 청룡(靑龍)을 말하는 것으로, 푸른 닭이라는 의미인 靑鷄라고 한 것이 맑은 시내라는 뜻으로 잘못 전해오고 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산은 광덕산 - 백운산 - 국망봉 - 청계산 -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상의 봉우리로 산세가 우람하고 청계산 정상에서 길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암봉과 암릉이 있어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정상에 서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는데, 남쪽으로 운악산, 북동쪽으로는 귀목봉과 명지산, 동쪽은 연인산 등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매우 좋다. 청계산의 등산기점은 포천 청계저수지 입구와 가평군 상판리가 대표적인 기점인데 상판리에서 길마재로 오르는길은 군사격장이 있어 입산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판리쪽은 교통이 좋지않아 포천쪽에서 오르는 것이 좋고 강씨봉이나 귀목봉으로 연결하여 산행 할수도 있다.
청계산과 길매봉 중간에 질마의 다른말이 길매입니다. 소 잔등에 얹어 사용하는 질마(안장)처럼 양 봉우리 사이 푹 들어간 안부를 말합니다.
길매산으로 오르다가 뒤돌아 바라본 청계산입니다. 저길 내려서는데도 힘이 드는데 반대로 올라가기엔 더 힘이들듯 합니다. 예전에 통과했다지만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청수산악회에서 경기 포천 일대 정상석을 대거 신경쓴 모양입니다. 수고하셨네요.
♤ 길매봉(735m)/ 경기 포천시 일동면, 가평군 하면
갈매봉은 청계산과 운악산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주능선과 지능선 상에 암릉지대가 많고 주능선 북사면 하단부 높이 10m, 중단부 10m, 상단부 20m나 되는 복계폭포가 있다. 산행기점은 나산골프장에서 1.2km 떨어져 있는 청계산장에서 시작한다. 갈매재, 바위능선을 거쳐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 서면 시계가 확트이고 시원한 조망에 청계산, 명지산 등이 시야에 들어 온다. 남으로는 조종천계곡, 그 오른쪽으로는 운악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하산은 서릉을 탄다. 안부삼거리에서 복계폭포 쪽으로 내려가거나 서봉으로 올라 청계산장으로 내려간다.
내려선 곳 반대편이 다음구간 이어지는 원통산 올라서는 입구입니다.
물이 1,000cc 정도 남아서 그늘진 풀숲에 잘 숨겨두었습니다. 급하신 분 우선 목이라도 축이라고....
가평 조종면과 포천 일동을 통하는 신생 지방도로입니다. 여기 공사할때 지났던 기억입니다. 진짜 예전의 노채고개는 원통산 지난 이후에 만납니다.
♤ 노채고개(爐埰峴)/ 예전에 비포장 고갯마루였으나 널찍한 387번 지방도로가 뚫렸다.
신노채고개는 청계저수지 우측 약수터를 지나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와 가평군 하면 하판리를 잇는 387번 도로가 넘는 고개로, 남쪽 아랫쪽 하판리에 노채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이름인 화로 노(爐), 영지 채(埰)에서 따온 이름으로, 구 노채고개 옛길은 따로 만난다. 이곳에 옛날 이조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터가 있고, 이 요(窯)는 관에 납품하던 관급요(官給窯)였다. 다른 일설로는 이 고개 맞은편에 금반옥배형(金盤玉盃形), 즉 술상과 술잔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주를 집어먹는 놋쇠젓가락 즉 놋저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포천군지 지명유래(포천 문화원)에서 보면, 이 고개 골짜기에는 산나물이 무척이나 많았다고 한다. 포천시 일동면, 화현면 주민들이 일을 하다가 산에 나물을 채취하러 갈 정도로 산나물이 많았으며, 길가에 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노채(路菜) 고개라 불렀다고도 한다.
약수터도 확인할겸 포천쪽으로 에코브릿지를 통과해 걸어보았습니다.
에코브릿지 100m 정도 지난 곳 우측으로 바위를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립니다. 갈수기는 물이 없습니다.
4~500m 내려오면 포천 일동면 기산리 일동약수터 청계약수입니다. 저 한문은 못 읽겠습니다.
한북 1구간 대성산 아래 수피령에서 운악산 직전 노채고개까지 걸었습니다.
산줄기가 굵직하다는 것이지 바닥부터 오르내리는건 아니기에 충분히 걸을만 합니다.
알바는 거의 없었으니 실거리는 정확합니다. 어느 분이 포천 일동까지 1시간에 걸어나오셨다길래 저도 천천히 걸어나오는 중에 젊은 군인들이 차를 태워줘 삼거리까지 금새 나왔구요.^^ 뒤풀이겸 저녁으로 순대국 한그륵 하고 막차를 타고 동서울로 복귀했습니다. 아! 막걸리 한병 시켜 두잔 마시고 남지기는 집에 와서 땅콩조림 안주로 마저 마셨는데 그 바람에 강변역에 스틱 놓고와 전화로 챙겨달라 하고는 다음 날에 찾으러 다녀왔다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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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맥중 하나 남은 한북정맥을 마침내 출발하셨네요.
출발을 축하드려요.~
저는 이 구간 지나면서 광덕현에서 한번 끊고, 노채고개까지 진행하면서 어둠에 내려서던 기억이 납니다.
청정 한북의 장쾌함은 최고봉인 국망봉 전후가 제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날씨도 좋아서 조망도 시원스레 드러납니다.
이어지는 운악산, 노고산 구간도 기대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어제 영광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시간에 쫒겨 선배님들께 간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두번째 구간 조만간 출발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불로그 찾아다니며 공부하느라 바빠 죽겠습니다.^^
퐁라라님!!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어제 만나 뵈 너무 좋았습니다. 이후 가시는 산행길 늘, 안산 기원드립니다..
풍산님! 저도 어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별 붙이지마시고 살살 다니십시요.^^
즐감합니다
힘내세요~~
줄기가 위용찬 한북입니다.
이동의 산들이 너무 잘 알려져 있고 군부대 면회객으로 익숙한 지명들이 많습니다.
지맥과 단맥, 분맥까지 탈탈 털고 계신 선배님들이 많으시네요.^^
지금쯤이면 국망봉 가는길과 도성고개 내려서는길이
수풀로 가득차서 진행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홀산으로 대단하신 걸음을 하고 계시네요.
9정맥중 하나남은 한북정맥 날머리 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걸음 하시라고 화이팅 보내 드립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다류대장님!
망종 이전이라선지 아직은 다닐만 했습니다. 밤에 지났더라면 아까웠을 능선이고요.
우의도 챙기지 못했는데 00~06시 비록 1~5미리 적은 비였다지만 홀로 뚫고 갔더라면 중탈 내지는 사고로 이어질 아찔할 상황이었습니다.^^
먼저 지난 수요일 모임에서 만나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한북정맥 장거리 장시간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젊음의 파워산행이 부럽습니다. 시나브로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넵! 금호동 무쇠막 산과계곡대선배님!^^
동네 어르신이라 어느 분이실까 궁금했는데 직접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제사 정맥을 끝내는 신참이고 162지맥까지 다 마치시고 분맥, 단맥을 찾아 다니시는 선배님의 녹슬지 않은 청춘이 더 부럽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길 희망하고 조언도 구하겠습니다. 많이 이끌어 주십시요.^^
저는 정맥시작을 한북정맥부터 했는데 퐁라라님께서는 마지막에 하시네요.
첫구간 비박텐트 가지고 수피령 인근에서 일박하려다 추위에 한숨 못자고 거의 매번 멧돼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힘든구간 한번에 많이도 걸으셨네요
늘 안산즐산 하세요^^
포근한빛님!
첫구간 굳이 비박으로 한다면 광덕고개 산이야기모텔 뒤편 주차장 화장실 강춥니다.^^
도심지는 숙박업소나 찜질방을 이용하고 짐을 가볍게 꾸려 장거리로 가는 방법이 나을것 같습니다.
낙동이라면 비박장비로 가야겠지만요.^^
여건을 살펴서 최적의 방법을 선택하는데 여름에 비박장비는 땀범벅으로 비춥니다.^^
매번 이곳에만 오면 저절로 움츠려듭니다
박식한 지식과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들로 인해 우리같은 일반인들은...그냥 눈으로도 음찔음찔합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과 색깔이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그냥 박수쳐드리며 대리만족합니다
멋집니다~ ㅎㅎ
부리나케님!
산행기는 미리 준비합니다. 다녀와서 추가하거나 수정하거나 그렇게 합니다.^^
제가 쓰는게 아니고 선답자님들 산행기에서 하나씩 가져와 모듬으로 만드는 겁니다.
오늘은 노채고개-말머리고개 한북2차 다녀왔습니다.
수정할거 수정하고 이른 시간내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한 9정맥중 마지막정맥에 입문하셨네요.
신산경표에 의한 오두산으로 계획을 잡으셨구요.
무더위에 장거리산행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구보니 명성지맥할 때 생각이 납니다.
그날 주말이아닌 평일에 진행을했는데 명성산을 앞두고 포성이 울리더군요.
헬기까지 뛰우고. 아니나 다를까 약사령에 내려서니 초병 두명이 지키고있더군요.
어디가냐구해서 명성산을 넘을거라 했더니 지금훈련중이라 안된다구 합니다.
훈련이 언제 끝나냐니까 12시까지라고 하면서 훈련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던가 하산을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시간을 기다려서 산행을한적이 있습니다.
넵 부뜰이운영자님! 감사합니다.
그곳 훈련장에서 한미 합동훈련도 하고 전차부대 훈련도 하고 훈련의 규모가 큰가 봅니다.
명성지맥은 명성산, 각흘산, 약사령만도 따로 산행하는 분들도 계신데 한북정맥에 딸린 지맥 중에 제일 가고 싶은 곳입니다.^^
내일 수피령 첫 한북정맥 가려고 합니다.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가 되어 다행입니다. pador님!^^
저는 산과계곡님 요즘 초토화 시키고 계시는 토보분맥 분기점을 모르고 지나왔는데 복주산 전에 칼바위가 분기점인지? 꼭 토보줄기에 눈을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에 무엇보다 안전한 산행 되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확인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