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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9. 8. 19.~20.(무박2일)
●산행지: 낙동정맥 7구간 (한티재-아화고개)
●산행코스: 한티재-블랫재-운주산-이리재-봉좌산-도덕산-오룡고개-삼성산-시티재(안강휴게소)-호국봉-어림산-마치재-남사봉-한무당재-관산-애기재-만불산-아화고개
●먹거리: 생수3.5리터, 햇반300g, 볶음김치, 크림빵2, 빅쏘시지4, 샌드 약간, 사탕, 케찹9gx5
●준비물: 충전지, 수건, 팔토시, 스틱, 헤드랜턴, 부채, 우의, 점멸등, 경보기, 여벌옷, 양말
●거리: 약 53.85Km
●소요시간: 약 25.2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고속버스31,200, 식사7,000, 시티재 자판기3,000, 애기지음료2,700, 목욕3,000, 상행KTX46,800
●날씨: 20~32도, 바람 살랑살랑
●산행경과:
- 12:54 : 한티재
- 14:04 : 블랫재
- 15:47 : 운주산 (806.4m)
- 17:30~17:40 : 이리재
- 18:43 : 봉좌산
- 20:19 : 도덕산 삼거리
- 21:00 : 오룡고개
- 23:25~03:42 : 안강휴게소 노숙
- 04:24 : 호국봉 (383)
- 07:31 : 어림산 (510)
- 08:11 : 마치재
- 08:57 : 남사봉 (468)
- 09:47~10:13 : 한무당재
- 12:13 : 관산 (394)
- 13:41 : 만불산 (275)
- 14:12 : 아화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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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티재-안강휴게소 26.7km
한티터널입구(232m) → (0.5km) → 한티재(266m) → (1.6km) → 545봉 → (1.8km) → 불랫재(300m) → (1.9km) → 423봉 → (2.2km) → 운주산삼거리 → (0.3km) →운주산(雲柱山/806.2m) → (0.3km) → 운주산삼거리 → (3.2km) → 625봉/돌탑 → (1.4km) → 이리재(伊洞/295m) → (1.3km) → 봉좌산삼거리(613m) → (2.5km) → 임도갈림길 → (0.8km) → 천장산갈림길 → (0.8km) → 도덕산,오룡고개 갈림길(658m) → (0.5km) → 도덕산(道德山/685.1m) → (0.5km) → 도덕산갈림길(658m) → (1.9km) → 오룡고개(250m) → (2.0km) → 삼성산갈림길(520m) → (3.2km) → 삼성산재단석 → 시티재(안강휴게소/195m)
6-1구간: 한티재-안강휴게소 26.7km
- 한티재~이리재 13.2km
- 이리재~시티재 13.5km
6-2구간: 시티재-아화고개 25.4km
- 시티재~한무당재 14km
- 한무당재~아화고개 13.5km
♤시티재- 아화고개 25.4km
시티재(安康休憩所/195m) → (1.7km) → 호국봉(護國峰/340m) → (3.8km) → 야수골갈림길 → (1.3km) → 철탑(195번송전탑) → (1.3km) → 어림산(御臨山/510m) → (1.7km) → 마치재(馬峴/904번지방도) → (1.6km) → 남사봉(南莎峰/470m) → (2.8km) → 한무당재(211m) → (0.9km) → 316.4봉 → (5.0km) → 관산(冠山/삼각점/394m) → (3.5km) → 애기재(220m) → (0.3km) → 만불산(萬佛山/275m) → (1.5km) → 아화고개(阿火峙/4번국도/144m)
※ 사전정보
- 운주산 200m전 이리재 우회로
- 봉좌산 두번째 갈림길 우회로
- 안강휴게소 영업 마감 19:40, 자판기
- 한무당재 보레슈퍼 폐업
- 애기재휴게소 05~21시 영업
※ 포항-죽장행 버스
- 퐝고속터미널에서 죽도시장 방향 확인하고 101번 버스로 2~3정거장 가서 죽도시장 하차, 건너편 농협포항중앙회 앞에서 죽장행 11:50분, 1시간 소요. (문의: 054-232-0707), 감곡정류소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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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폭 들었다 나왔습니다. 운행중에 산행하는 분을 한분도 만나지 못했어요.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븥고 시콤한 땀냄새에 초파리들이... 거미와 초파리...ㅠㅠ
쐐기에 쏘이고 발목에 따끔한 봉침도 한대 맞았습니다. 쐐기, 땅벌 ㅠㅠ
이번구간은 포항을 벗어나 경주와 영천의 경계를 타고 내려갑니다. 호국봉과 어림산, 인근 비학산은 6.25 낙동강 방어선 기계-안강지구전투 전적지입니다.
야심차게 당고개까지 가볼까했지만 역시나 배낭이 무거워 속력을 내기 여의치않아 아화고개까지로 계획을 수정하니 그때부터 한결 여유로왔습니다.
일욜 야근하며 눈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수면유도제 두알 먹고 출발해 버스에서 두시간반 잔게 전부인지라 컨디션이 묵직했거든요.
죽장 가는 버스가 퐝에서 11:50분이었습니다. 거기에 맞춰 강남에서 7시 차를 타고가 식사를 해도 충분했는데 6시 첫차를 타고 갔네요.
관산 오름이 힘들다하던데 천천히 달래가며 올르니 그닥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무당재에서 보레슈퍼에 내려갔더니 1년전에 가게 문 닫았다네요. 다행히 물 얻고, 옆에 복숭아 파는 노점이 있어 파지 세개도 얻었습니다.^^
시티재 수돗물은 물맛이 영~
아화고개 가게에서 귀인을 만나 건천에 나가다가 오봉산 주사암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분 샤워후에도 신경주역까지 데려다 주시네요.^^
파계승같던데 테라칸 중고 인수해서 시험운행 중이라며 (사기꾼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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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한티재(266m)
현위치 한티재 해발 266m표지판이 이곳이 옛 한티재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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퐝에서 한티재를 찾아 달리는 국도변 창문으로 예사스럽지않은 날선 산봉우리가 올려다 보입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봉좌산이구나 직감이 들더군요. 버스가 한티터널을 지나자마자 감곡정류소에 내리고 들머리 입구를 찾아갑니다. 어! 그런데 방향감각이 전에 야밤에 분명 오른쪽으로 올라갔는데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갑니다. 아마도 터널반대방향에서 올랐던가 봅니다.^^
♤ 한티재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과 기계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국도 제31호선이 통과한다. 고개 정상에는 길이 200m 의 한티터널이 있다. 포항방향으로 인근 고개 너머에 한티 부락이 있어 한티재라 명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야흐르 정맥길이 포항을 뚫고나와 영천 접경에 붙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천과 포항의 경계를 타고 운주산을 넘어갑니다.
♤ 545m봉 (삼면봉)
포항시 죽장면,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이른바 삼면봉...
고개 아래에 마을이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 블랫재(300m)
불랫재는 포항시 기계면 남계리와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를 잇는 고개입니다. 불랫재는 포항시 남계리에서 영천시 도일리로 넘어 가는 고개인데 고개 아래 남계리에 불랫골이 있습니다. 불랫재는 불래재인데 발음상 불랫재가 된 것이며, 그 語原에 대해선 몇가지 설이 있더군요. 남계리 계곡 절터골에 신라시대부터 절이 있어 부처님이 오신다는 뜻 [佛來]와, 재를 넘어가면 도적이나 범과 같은 야수의 피해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不來]와, 영천 쪽에서 불을 내면 강한 서풍을 타고 잘룩한 불랫재를 넘어 남계리로 "불이 내려 온다"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의 화령현(火嶺峴) 아래 있는 고개인데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20여년전 영천시에 있는 "영천호"에서 "포항종합제철"로 보내는 송수관을 이 고개 밑으로 뚫어 설치하니 지하수맥이 끊어져 마을 샘물이 말라 이 고개 아래에 살던 사람들은 물이 없어 모두 떠나 버리고 지금은 인가가 없다고 합니다.
운주산 정상 700m 전에서 가방을 놓고 정상을 다녀온다 생각하면 알바입니다.
운주산을 200m 남겨둔 곳에 또 이정표가 있는데 거기가 이리재로 갈리는 삼거리입니다.
제가 꼭 알바했다는 것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운주산 정상에 섰지만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지는 구름속에 들어있어 전망은 꽝이었습니다.
♤ 운주산(雲柱山/雲柱山/806.2m)
경북 영천시 임고면, 자양면과 포항시 기계면에 걸쳐 있는 운주산(雲住山)은 낙동정맥에 있는 산으로, 팔공산(八公山)·보현산(普賢山)과 함께 영천의 삼산(三山)으로 불리고 있다. 고스락부는 항상 구름이 머문다고 하여 운주산(雲住山)이라고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지만 안내판에는 "雲柱山"이라 표기해 두었으며 설명 또한 멀리서 보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같이 보인다고 적혀있다.
기룡산과 함께 영천호를 안고 있으며 보현산에서 경주를 향해 내려오다 운주산이 솟아 오르고 남으로 내리 뻗어 어래산과 도덕산-자옥산-삼성산-천장산을 한 줄기를 형성한다. 운주산 줄기는 대체적으로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으나 운주산 만은 험학하게 생겼다. 서쪽으로 안국사가 자리잡고 있다. 山勢 덕에 외적을 방어하기 좋아 임진왜란때 김백암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기도 하였고 1910년에는 산남의진(山南義陣) 항일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알려져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일제에 의한 방화로 불타 없어졌다. 임고면 수성리라는 지명도 김백암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해 守成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산 중턱에는 박쥐구멍이라는 굴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10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곳으로 임진왜란과 6.25 때 주민의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상석 옆에 행사용 성화채화 시설같기도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보였습니다.
♤ 영장공 정시심장군의 묘소
숙종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과 전주영장을 역임하였고 본관은 오천으로 정시심(鄭時諶) 혹은 정시담으로 읽기도 한다. 정시심은 1661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충무위 대호군(조선시대 종3품 무관)에 이르렀으며 전주영장(전주 일대의 최고군사령관)을 역임했다. 묘소를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으로 정한 일화가 있는데 정시심은 생전에 아주 친하게 지낸 최씨 성을 가진 친구이자 풍수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정시심은 최씨 친구에게 "자네는 산에도 많이 다니니,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묘터는 자네가 하고 그 다음으로 좋은 명당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자 최씨 친구가 웃으며 "제일 좋은 명당을 하나 봐 둔 곳이 있기는 한데 내가 묻히기엔 좀 어려워 자네에게 추천함세"라고 화답하고는 그 곳으로 정시심을 직접 데리고 가서 보여주었다. 명당터를 직접 본 정시심은 친구에게 "이 좋은 자리를 자네가 하지 왜 나한테 주느냐"고 묻자 최씨 친구가 " 이 곳은 그냥 시신을 묻어서는 명당이 될 수 없고 송진을 바닥에 깔고 시신을 묻어야만 명당이 되니... 나 역시 이 자리가 욕심은 있으나 사는게 가난하니 어려워. 이 자리의 주인은 바로 자네라네"라고 대답하였다. 이 후 정시심이 별세하자, 아들 정석달을 비롯한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의논하여 풍수인 최씨 친구의 말대로 기계, 청송지역에서 송진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송진량만큼의 소금을 주리라고 소문을 내여 송진 1가마니를 모아 넣고 묘를 썼다고 전해온다. 묘지 양쪽에 석상까지 세우고 명망있는 장군의 묘소이다.
터널입구에서 사납게 자동차를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리재로 내려섭니다.
도덕산 산행을 마치고 친구 자가용으로 차를 회수하러 온 아주머니에게 남은 물도 구합니다.
♤ 이리재(伊洞/295m)
기계터널 이리재는 포항쪽 기계면 봉계리와 영천쪽 임고면 수성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포항시 기계면과 영천시 임고면 경계에 있는 '이리재'는 옛부터 나무꾼들이 주로 이용하던 고갯길이다. 기계에서 출발한 한 나뭇꾼이 앞선 나무꾼 무리를 뒤따라 '이리재'로 올라가다 영천에서 넘어오던 길손에게 앞서간 나뭇꾼들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그 길손이 고갯마루를 가르키며 "이리로 넘어갔다."고 하였는데 그때부터 고갯마루를 '이리재'로 부르고 있다고 전해 온다. 이리재는 대구~포항간 고속도로와 921번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이곳에서 금호강으로 흐르는 물과 기계천으로 흐르는 물이 나누어 진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의 옛 지명이 "이동" 이어서 그 사이를 잇는 고개라 해서 "이리재"로 불렀다고 한다. 윤씨(尹氏)들 집성촌이어서 부른 윤동(尹洞)은 차츰 타성이 이주해와 인자(人字)를 더하여 이동(伊洞)이라 고쳤다.
이리재에서 잠깐 오르니 봉좌산가는 삼거리입니다.
어느 분은 여기서 기계면 소재지와 감포항을 조망한다는데... 역시나 기대난망, 어둡기 전에 이 봉우리에 올른게 다행입니다.
♤ 봉좌산(鳳座山/600m)
경북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한티재쪽에서 내려오는 낙동정맥이 운주산 옆을 지나 이리재로 내려선 후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서 약 0.6km 정도 벗어나 있다. 맥은 계속 이어져 안강과 기계면의 경계를 가르며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봉좌산 정상에는 鳳座岩이라는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포항시내에서 가까운 관계로 포항/경주의 근교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을 잇는 아기자기한 능선코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낙동트레일 쉬어가는 정자와 두번 만납니다.
포은 정몽주선생을 배향한 임고서원이 있는 임고는 영천의 옛지명 이름입니다. 이제 고경면으로 넘어가는군요.
♤ 임고서원
경상북도 시도기념물 제62호인 '임고서원(臨皐書院)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으로 임고(臨皐)는 신라 경덕왕 때 영천군의 이름이며, 고려 말의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553년(명종 8)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창건하여 1554년 사액된 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1603년(선조 36)에 다시 지었으며, 이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643년(인조 21)에는 장현광(張顯光), 1727년(영조 3)에는 황보인(皇甫仁)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복원하였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묘우 표충사, 내삼문 유정문, 강당 흥문당, 정몽주신도비, 유물보호각 삼진각, 문루 영광루, 서재 함육재, 동재 수성재 등이 들어서 있다.
도덕산 직전 천장산(695m) 갈림길입니다.
나그네 갈길은 멀고, 해는 저물고, 똥은 마렵고, 누렁이는 도망가고...
멀리 영일만 포항제철도 보인다는 도덕산 전망을 뒤로하고 그렇다고 안강읍 야경을 기대하기도 그렇고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 도덕산(道德山/702m)
도덕산은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702.6m의 아담한 산으로 신라 선덕왕(780년) 때 당나라의 첨의사인 백우경이 참소(讒訴)되어 자옥산에 숨어 살면서 지금의 정혜사지에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다. 선덕왕이 이곳을 방문한 뒤로 이 산을 두득산(斗德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1533년에 옥산리에 오면서 이 산을 도덕산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산언저리에는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과 조선시대 회재 이언적이 말년을 보낸 독락당(보물 413호), 그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 등 역사적인 의미가 깊이 녹아있는 유물과 유적지도 있다.
이른바 "자도봉어"라 일컫는,,, 도덕산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자옥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봉좌산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어래산이 솟아있어 남쪽을 향해 말발굽형태를 하고 있으며 네산이 포근히 품은 품안에 옥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영천시와 포항시를 잇는 28번 국도변의 옥산리 입구에는 옥산서원이란 화강암 팻말을 지나 버스종점에서 약 200m 지점의 도덕산 남녘자락에 특이한 모습의 석탑이 있는 곳에서 산오름을 시작한다.
도덕산 꼭대기는 큰바위로 쌓아올린 멋진 산정은 동쪽과 서쪽으로 까마득 절벽을 내린 두 개의 전망대를 세운 참으로 멋진 정수리다. 북녘능선을 계속 이으면 선장산 또는 봉좌산 어래산을 이어갈 수 있다. 하산은 동녘의 도덕안 쪽으로 한다. 정상에서 조금 남녘으로 되돌아와서 왼쪽 능선길을 내린다. 뚜렷한 산길을 20여분 내리면 도덕암 산령각에 닿는다.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 때 이미 세운 천이백년 고찰 도덕암은 절벽 병풍을 둘러치고 넓은 반석 위에 세운 참으로 명당 절터다.
정상의 넓은 반석들에 올라서면 안강벌판과 포항 그리고 멀리 동해바다 및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덕산(斗德山)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 산은 산세야 그리 빼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아담하고 조망이 시원한 정겨운 산이다. 남쪽의 자옥산(紫玉山·569.9m)과는 능선을 맞대고 이웃해 있으며, 산기슭에는 볼 만한 문화유적도 많다. 동쪽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옥산천(玉山川)의 자연과 어우러진 독락당과 옥산서원을 비롯해 주변에 산재한 문화유적들이 있다.
도덕산에서 가파른 내리막으로 오룡고개에 내려섭니다. 마을이 양옆으로 가까이에 있네요.
풀숲을 헤쳐 오르다 지도를 보고 좌능선쪽으로 올라붙습니다.
♤ 오룡고개(미룡고개/갈구목/250m)
영천시 고경면에 오룡리와 영천시 고경면에 석계리를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인 오룡고개에 이르게 된다. 오룡리는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해서 미용(美龍)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에 강제로 미농(彌農)으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오룡(五龍)으로 개칭하였다.
삼성산 제단이 있다던데 눈에 띄지 않네요. 안강휴게소에 내려 자판기에서 콜라와 암바사 하나씩 빼먹고 식당 처마밑에서 노숙을 준비합니다. 시티재에는 웬 트레일러인지 덤프도 휙휙 지나고 소음이 심합니다. 귀마개를 꽂고 안대를 하고, 엉덩이매트를 깔고 우의를 뒤집어 쓰고 양말을 신고, 3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을 청합니다.
♤ 안강읍(安康邑)
원래 안강은 무인 하천 지역이었으나 칠평천 유수의 변천으로 민가가 형성되었고 신라 경덕왕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이라 칭하게 되었다. 안강읍(安康邑)은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경주시 북서쪽에 있는 읍 소재지이다. 안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지역으로, 곳곳에 많은 문화재가 산재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27점의 지정 문화재와 동방 오현 회재 이언적 선생의 옥산서원과 재실, 국보 40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안강의 자랑거리이다.
♤ 시티재(安康/195m)
식량과 상품을 운반하는 마소의 등에 실린 시티다발에 유래한 이름이며, 안강~영천으로 통하는 4차선 국도로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시티재는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조선지형도』에 한자로 시령현(柴嶺峴)으로 적고 그 옆에 일본어 가타카나로 '시티재'라 부기해 두었다. 시령현의 시자는 섶시 또는 검불나무시자로 이 고개에는 동해에서 부는 바람이 많아 큰 나무가 적고, 왜소한 검불나무가 많이 있어 이름을 시령현(柴嶺峴)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지방행정관청에서 여현(礪峴, 숫돌고개)이라고도 부른다. 안강은 원래 무인하천지역이었으나 칠평천 유수의 변천으로 민가가 형성되었고, 신라 경덕왕 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安康)이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식당 내부를 살피는 경비업체 차량 소리에 잠을 설치고 3시에 일어나 볶음김치에 햇반을 먹고 출발, 중앙분리대 없는 곳으로 무단횡단을 하여 반대편으로 낙석방지시설 끝까지 가지만 들머리는 영천 쪽으로 더 가야했나봅니다. 지도를 보고 우측으로 달라붙는다는 생각으로 낙석방지시설 끝부분에서 올라갑니다.
♤ 국립영천호국원(國立永川護國院)
국립영천호국원은 조국수호와 세계의 자유평화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공적을 기리고, 호국정신 고취를 위한 추모와 안보의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 국민들과 후세들에게 호국정신의 귀감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2001년 설립되었다.
오르막길이 그리 길지않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 무난하게 산행을 이어갑니다.
국립영천호국원 위에 위치한 호국봉입니다.
영천에서 북한 의용군에 강제징집되지 않으려고 안강으로 도망간 장정들이 많았다지요.
형산강 줄기를 두고 마지막 낙동방어선을 고착했던 625전투전적지입니다.
♤ 호국봉(護國峰/340m)
호국봉이라 쓰인 하얀 기둥이 삼각점 모양인 땅에 꽂혀있다. 호국봉은 625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기계-안강지구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한국전쟁 초기 1950년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국군수도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을 포위 격멸한 곳이라고 하는데, 조국수호와 세계의 자유평화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설립된 `국립영천호국원`이 호국봉 서쪽 아래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에 자리하고 있다.
호국봉에서 어림산까지는 지루할 정도로 길었습니다. 중간에 철조망울타리를 길게 따라 걷는데요. 풍산금속 화력시험장(탄약처리장)으로 쓰였던 부지랍니다.
어림산에 떨어져 있는 무영객님 표지기를 다시 걸어둡니다. 유용하게 적당한 곳에 걸어두어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 어림산(御臨山/510m)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현곡면 내태리와 영천시 고경면 논실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10m이다. 신라 경순왕이 둘러보고 간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북쪽에는 무학산(舞鶴山)이 있고, 동쪽으로 내태리 고갯길을 넘어 금곡산(金谷山)이 이어진다. 6·25전쟁 때 국군과 북한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다. 남쪽 산자락에 남사지(南莎池), 내태지(來台池) 등의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어림산에서 내려서니 경주 현곡면과 영천 고경면 사이를 넘나드는 마치재입니다.
♤ 마치재(馬峴/904번 지방도)
황수탕으로 유명한 덕정리 청석(靑石)마을과 경주시 현곡면의 남사리로 연결하는 고개로서 904번 지방도로와 연결된 도로가 있으며, 남사 고개라고도 불리우며 이곳의 지형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 하여 마치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마치재(말팃재) - 서쪽으로 서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골 북쪽에서 영천군 고경면 덕정리 황물탕으로 넘어가는데 옛날 이 곳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여 서낭재, 당기미 라고도하며, 지형이 말의 형상으로 생겼다고 하여 말티재 또는 馬峴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도를 지나 무난하게 남사봉에 오릅니다. 지도와 표지기를 보고 여기서 90도 우틀합니다.
♤ 남사봉(南莎峰/470m)
남사봉은 남쪽 자락에 있는 남사리(南莎里)마을에서 따온 이름인데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남사라 했고 이곳은 좌로는 어림산(御臨山/510m)이 우측에는 어림산 줄기인 이내산(389m)등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世居之地의 명소라 일컬어 졌다.
할미당재에 내려서 가게에 가서 콜라라도 사갈까하고 400m 떨어져 있다는 슈퍼를 찾아 내려갑니다.
♤ 한무당재(909번 지방도/211m)
옛날 무당 할미를 모신 서낭당이 있었다고 해서 한무당재(일명 할미당재)이다. 혹은 근처 골짜기에 靑石이 많고 산적이 출몰했다 해서 청석골재라고 불려지기도 하는데 한무당재로 909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관산오름이 힘들다던데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오르니 금새 오릅니다. 정상에 비석도 없는 묘지가 있는데 더 이상한건 봉분옆구리에 삼각점을 박아놓았습니다.
♤ 관산(冠山/394m)
관산은 금호강과 형산강 유역의 분수계역할을 하며 산 정상부가 사모관을 쓴 모습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관산을 넘어와 양계장 가는 임도에서 뒤돌아보앗습니다.
시멘트길 임도를 따라 계속 걸으면 애기재에 도착합니다.
♤ 애기재(220m)
경북 경주시 서면 아화리의 시메골과 경북 영천시 북안면 신촌리를 잇는 길이다.
산같지도 않은데 뱃지가 들어옵니다.
정신없이 지나서인지 만불산 대불이 있다던데 구경도 못하고 아화고개로 내려설즈음 무슨 공장인지 꽤나 시끄럽게 돌아가네요.
♤ 만불산(萬佛山/275m)
히말라야산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영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흔히 히말라야산을 ‘설산(雪山)’이라고 지칭한다. 이처럼 백두산은 설산(히말라야산)과 상통하는 신령한 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만불산 또한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이룬 히말라야(설산)의 정기가 서린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다. 만불산(萬佛山)은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산이다. 《삼국유사》탑상(塔像) 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에 보면 ‘만불산’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신라 경덕왕은 당 대종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는 사방 한 치, 작게는 8~9푼에 불과한 만 분의 부처님을 모신 1장(丈, 약 3m) 높이의 가산(假山)을 만들어 보냈다. 이 만불산은 바위와 동굴로 각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 안에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모습과 온갖 나라의 산천을 조성했다고 한다. 또 누각과 전각, 종각 등을 조성해 놓았는데,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고 1,000여 명의 스님상이 모두 엎드려 절하도록 장치했다고 한다. 만불산을 전해 받은 당 대종은 그 정교함에 놀라 “신라의 교묘한 기술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 사람의 기술이 아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종은 만불산을 내도량(內道場)에서 봉안한 뒤 스님들에게 예배토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만불산은 신라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깊은 신앙심을 상징하는 산이었다. 경덕왕이 당 대종에게 보낸 ‘만불산’에 1만 부처님이 모셔진 것과 같이 영천 만불산에는 20만 분 이상의 부처님이 봉안돼 불자들의 찬탄과 예배, 신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불산은 경북 영천 북안면 고지리(庫旨里)에 위치해 있으며, 만불산은 산이름이 결코 아니다. 만불회라는 한 불교단체의 종교적 성지(聖地) 내지 본산 역할을 하는 일종의 사역(寺域 )이다.
불과 1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이 영천 만불산을 필두로 하여 경기도 안성에도 또 하나의 만불산이 조성될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만불산이 고유명사로 불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듣기로는 출가한 비구승과 비구니승 뿐 아니라 재가 남·여 신도들을 포함하는, 이른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현대적인 불교활동으로 포교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불교성지를 뜻하기 위해 ‘산’이라는 명호를 썼다고 한다. 만불산의 형국은 상서롭기 그지없는 노루 모양이며, 경주의 남산과 오봉산, 영천의 사룡산과 구룡산, 그리고 채약산 등 5대 명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또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세가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와불(臥佛)상이니 사찰이 서야할 자리임이 틀림없다. 만불산의 방향은 계좌(癸坐)향이니, 계좌란 하늘의 문(天門)이 열리는 터로 풍수에서 가장 길한 방향으로 여긴다.”
♤ 사리(舍利)
인도 고대의 말인 '사리라'의 술어적 명사로서 사리(舍利)는 한자로 음역된 말이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신골(身骨), 유골(遺骨), 영골(靈骨)이라 번역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 하셨을 때 그의 제자 아난 등이 석가 세존의 육신을 화장(다비)하니 타고 남은 뼈가 오색구슬 같았고, 그 빛이 옥색 같이 맑고 깨끗했으며 또 견고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사리'라 하고 탑을 쌓고 그 속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만불산은 1993년 페라헤라 행사시 스리랑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운 받아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가 모셔진 적멸보궁이다. 사리를 모시는 뜻은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행이 목적이며 자신의 묵은 업장소멸은 물론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이에게는 크나 큰 축복이다. 만불사의 아미타대불상,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대구 동화사의 약사여래대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불로서 높이가 33m나 되는 "아미타불"상이다.
♤ 지경재=아화고개(阿火峙/4번국도/144m)
아화고개의 지역은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였으며, 하절기에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재해가 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탓다하여 아화라 칭하였다 한다.
경주일보에 아화(阿火)는 넓은 벌판과 언덕을 끼고 있는 마을로 본래 아불(阿弗), 아울(阿鬱), 아을 이라고 불러오다가 불을 화(火)로 표기하면서 아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아화의 옛 이름은 아불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권 제30 동이전 진한조에는 아화는 '우리마을'이라는 뜻이 있다고 적고 있다.
♤ 애기지 휴게소(131m) - 낙동정맥길은 아니지만 식당이 있다. 아화고개 4번국도에서 굴다리를 지나 구길로 약100m 정도 걷는다.
터널을 지나 정맥길은 우틀하지만 좌측으로 애기지휴게소 입간판이 보입니다.
05시21시 영업 라면, 콩국수, 막걸리, 음료... 간단한 식사도 되는 모양입니다.
큰 알바없이 무난하게 잘 왔습니다.
평속 3km도 나오지 않았군요. 잠이 모자라 약간 졸린듯 걸었습니다.
팀으로 갈때는 머리속에 잡념이 들으면 금새 거리가 벌어졌는데 혼자가니 사유하는 자유도 맘껏 누립니다.
대웅전 뒤편이 부처님 얼굴모양이라는 주사산이 바로 오봉산의 정상입니다.
애기재휴게소 앞에 서있는 테라칸주인을 따라 건천으로 나가다 표지판을 보고 주사암을 오릅니다.
이분 포항 운제산에 기거하는 과거 불국사소속 승려였다는데 참지 못하고 내려왔답니다.
이곳 저곳 유람하는 모양인데 주사암 간판을 보더니 함 가보잡니다. 저야 시간도 널널하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저~
김유신장군의 일화가 있는 지맥석이라는 마당바위에 서서 건너편 낙동정맥의 거대한 산군을 바라봅니다. 우측 끄트머리 사룡산과 생식마을, 좌측 약간 가라앉은 산능선을 타고 부산과 성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이지 않지만 맨 좌측으로 멀리 단석산도 보입니다.
세상에나~
건천으로 나가는 길에 봉우리 네개가 열을 지어있는 산이 보이던데 저게 바로 사룡산이로구나 직감했습니다.
오봉산 꼭대기는 차량 내 해발 고도가 600m를 가르킵니다. 꼬부라진 길을 간신히 펴고 넓혀 차량으로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
신라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부산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사암 마당바위에 오르니 김유신 장군이 화랑과 어울려 보리로 술을 빚어 함께 즐겼다는 지맥석 건너편으로 다음 구간 걸어야할 부산성 초원이 건너다 보입니다. 신라 선덕여왕의 설화 여근곡도 이 오봉산에 있고....
건천 읍사무소에 볼일이 있다는 그분은 샤워를 마치고 전화를 하라해 기어코 이 신경주역까지 데려다 주십니다. 덩그렇게 놓여진 신경주역 주변은 한참 개발이 준비중입니다.
건천에서 신경주역 오는 길에 금척 고분군도 지나네요. 명함을 두장이나 건네고 서울가면 꼭 연락하겠다 하니 훗날을 기약하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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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다나십니다 고생만으셧어요
감사합니다. 즐겁게 재미있게 했습니다.^^
벌침이야 약이 된다지만 약도 안되는 쐬기에 쏘이면 엄청 쓰라리고 오래가던데 고생하셨네요.
마지막에는 귀인을만나 관광도 즐기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넵, 부뜰이운영자님!^^
한무당재에서 관산가는데 무덤옆을 지나다...
벌이 한방 쏘인게 아니고 동시에 두세방 쏘였어요. 발목이 퉁퉁 부었습니다.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는데 왼쪽이 더 두껍네요.^^
연이틀 동안 한티재~시티재~아화고개 구간을 진행하셨네요.
어느덧 포항지나 경주권역으로 접어듭니다.
운주산, 자.도.봉.어, 그리고 관산 모습은 예나 변함없네요.
시티재의 안강휴게소를 보니 제가 진행할때 마중나오셨던 고인이 되신 뫼향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미인박명이라고~ 사진작가 수준의 명품 산행기로 자자했던 멋진 분이셨는데...
무더위에 목표산행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아! 시티재에서 10년 전에 뫼향님과의 추억이 계셨군요.
저는 방장님이 서계신 수돗가옆 처마밑에서 잤습니다.
조금만 더 더웠으면 수도를 뒤집어쓰고 샤워를 하는건데 그러지못한게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