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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구간 산행일시: 2021. 7. 13.(화) - 음력(6. 4.), 일출 05:10~일몰 19:54
● 3구간 산행일시: 2021. 7. 22.(목) - 음력(6. 13.), 일출 05:23~일몰 19:40
●산행지: 덕산지맥 2,3구간 졸업(위동재-건능골고개-합수점)
●산행코스: 위동재-396.6m봉-위골재-뱃티재-개간지 농원-삼각점봉(374m)-철조망 우회-금댕이재-과수원임도-399m봉-368.3m봉-282.3m봉-땅골재/임당고개-239.9m봉-273m봉-277.4m봉-274m봉253.8m봉-건능골고개-275.9m봉-새마을고개-265.5m봉-비리실고개/광산고개-사브란재-294m봉-322m봉-수명고개-삼각점봉(381.6m)/산불초소-375.8m봉/전망대-당나무골재-337.1m봉-임도-관재/가티-삼거리이정표-300.9m봉/운동시설-332.6m봉/1등삼각점-무협산-326m봉(산불감시초소)-휴그린골프장-임도삼거리-도로-식물원-큰무덤-리첼호텔-안동문화관광단지-241.8m봉-안동타워전망대-물레방아매점-252.6m봉/활인심방-개미골고개/성곡고개-평화사-199m봉-법흥교-안동호반나들이길-합수점
●먹거리: 생수2.5리터, 빵2(호떡빵), 양갱, 단백질바2, 미니자유시간6, 땅콩그래, 홀스2, 사탕5, 알마겔3
●준비물: 식수3리터, 모기장텐트, 스틱, 헤드랜턴, 전지가위,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비닐우의, 은박매트, 안대, 귀마개, 머리띠, 양말, 여분의류, 띠지20
●거리: 약 39km
●소요시간: 14.35h
●누구랑: 나홀로
●경비: 13일 - 아침8,000, 무궁화15,400, 시외버스8,800, 점심8,000, 택시20,000, 택시8,900, 고속버스22,200
22일 - 무궁화15,400, 아점8,000, 하회마을5,000, 찜닭23,000, 모텔25,000, 아침5,500, 휴매점7,000, 싸우나5,500, 뒤풀8,500, 도산서원1,500, 고속버스22,200
●날씨: 23~32, 22~32 습하고 무더움.
●산행경과:
* 7. 13.(화)
- 10:50 : 위동재
- 11:51 : 396.6m봉/ 면계(임동면, 예안면 → 임동면)
- 12:?0 : 위골재
- 13:12 : 뱃티재
- 14:10 : 금댕이재 30분 직전 농장 철망
- 14:45 : 삼각점봉(374m)
- 15:08 : 금댕이재
- 15:24 : 399m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
- 17:11 : 땅골재
- 17:?0 : 273m봉/ 면계(임동면 → 임동면-임하면)
- 17:?5 : 274m봉/ 면계(임동면-임하면 → 임하면)
- 18:15 : 건능골고개/ 컨테이너농막 수도 물보충
* 7. 22.(목)
- 07:09 : 건능골종점
- 07:19~28 : 건능골고개
- 07:53 : 새마을고개
- 08:18 : 광산재/ 비리실고개
- 08:30 : 사브란재
- 09:05 : 322m봉/ 면계(임하면 → 임하면-송천동)
- 09:11 : 수명고개
- 09:43 : 당나무골재
- 09:52 : 337.1m봉/ 삼면봉(송천동, 임하면 → 석동동)
- 10:13 : 관재/ 가티고개/ 수도 물보충
- 10:37~43 : 사각정자
- 10:49~11:22 : 감성골삼거리(335.2m)/ 삼면봉(석동동, 송천동 → 송곡동)
- 10:52 : 332.6m봉/ 1등삼각점
- 11:07 : 무협산
- 11:47~51 : 휴매점
- 11:56 : 241.8m봉
- 11:58 : 안동타워
- 12:13~20 : 매점, 화장실
- 12:41 : 성곡고개
- 12:54 : 개미골고개
- 13:16 : 평화사 삼거리
- 13:21: 199m봉/ 면계(성곡동-용상동)
- 13:30 : 안동호반나들이길
- 13:50~14:05 : 법흥교 합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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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위동재-6.1km-뱃티재-3.8km-금댕이재-4km-땅골재-6.4km-광산재-7.1km-관재-7.2km-반변천(좌)
* 구간거리
- 위동재~광산재/비리실재 20.3km
-. 위동재~금댕이재 9.9km
- 금댕이재~합수점 24.7km
-. 금댕이재~비리실고개/광산재 10.4km
-. 비리실고개/광산재~낙동강 두물머리 14.4km
* 식수보충 및 기타 정보
- 금댕이재: 과수원 농막, 수도
- 금댕이재: 임동면 탈출 20분,
- 임동면 개인택시: 010-5502-8883, 산그림모텔(054-822-4055), 식당, 하나로마트 18시까지.
- 건능골고개: 컨테이너 농막 수도
- 관재/ 가티고개: 금강바이오건물 수도
- 332.6m봉: 1등삼각점, 왕복 530m, 약 10분 소요
- 무협산: 1.1km, 왕복 약 30분 소요
- 안동문화관광단지: 매점 2개소
- 안동콜택시: 054-852-8282
- 임동파출소: 054-822-4112
- 용상파출소: 054-821-3303
* 서울에서 위동재 가는길
- 청량리역~안동역: 06시, 06:50, 09시~19시, 02.04h~02.45h, 15,400~25,100~30,100
- 서울경부~안동: 06:10, 07:40, 08:10, 09시, 09:40, 10:10, 11시~17시, 18:40, 19:30, 20:10, 22시, 2.40h, 17,000~22,200
- 안동~임동: 08:55, 09:45, 10:45, 11:35~18:30, 20:45, 21:55, 040h, 3,800
* 건능골 상세노선정보
- 건능골행 : 06:40(교보생명 출발), 13시(아이파크아파트 출발)
- 노선 : 천전2리,건능골~천전리,새마을~광산~비리실~임하보조댐~임하불거리입구~백령사~개운사~포진~농업기술센터~안동대인문학관앞~법흥교~교보생명
- 동춘여객:054-821-2102, 054-821-2118
* 안동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안동역~청량리역: 15:06, 16:30, 18:18, 19시, 21:25, 02.05h~02.37h, 15,400~25,100
- 안동고속~서울: 15:50, 16:30, 17:10, 18:40,~20시, 20:10, 2.40h, 17,000~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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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간이지만 날씨가 예사롭지 않게 덥네요. 동대문길거리표라 패션이랄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타이지에 반바지 차림으로 해봅니다. 여벌로 칠부 하나 챙겨가고요. 거리가 짧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나무재나 가티고개에서 식수 보충이 가능하면 한결 나을텐데 선답자 후기에서는 식수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야근 마치고 내려가는 건데 만약 피곤하지 않다면 야간산행으로 진행하여 새벽에 끝내고 싶습니다. 이미 선답자님들의 후기와 사진으로 어느 지점에서 임하호와 안동호가 조망이 되는지는 알고 있고, 가티고개 이후로는 특별히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요. 오히려 안동문화휴양관광단지에 도착하여 한두 시간 휴식을 취하고 전망대에 올라보는 방법도 괜찮을듯 합니다.
덕산을 졸업하고 주왕에 들려합니다.
강원도 고지대라 그나마 공기가 시원하고 바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여름에는 주왕과 영월에서 놀아보겠습니다.
금댕이재에서 경북소방학교에 내려가 2.5리터만 확보해도 유교랜드까지 갈 수 있을텐데.... 과수원 옆 농막에서 물을 구할 수 있을지, 당나무재와 가티재에서 물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3일, 덕산지맥 졸업하러 안동에 내려갔다가 산길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나 졸업장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위동재에서 11:30분 출발하여 금댕이재를 15:20에 통과했습니다. 날은 더워 몸에서 육수가 뿜어져 나왔지만 풍물시장에서 2,000원에 구입한 우산 모자를 쓰니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어 한결 낫더군요.
땅골재 17:11분 통과하고 등로에 잡목들을 휴대용 전지가위로 제거하며 열심히 잘 가다가 너무 신바람이 난건지 그만 전지가위에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잘 접어두고 조심스럽게 써야하건만 갈길이 바쁘다보니 덜렁거리다 빚은 참사였습니다.
피를 커피잔으로 두컵은 흘렸어요.
마스크로 상처를 감싸고, 손목을 스틱 카바로 지혈하고 약 2km를 더 진행하여 건능골고개에 도착, 119도움으로 안동병원으로 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꿔매는게 나을거 같아 상경, 한대병원에서 여덟 바늘 봉합했네요.
어둡기 전에 비리실고개/광산고개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고, 철야로 진행하여 새벽에 안동문화휴양관광단지에 도착해 잠깐 쉴려는 계획이었는데 그만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인대는 건들지 않아 잘 아물것 같습니다.
반변천과 낙동강합수점에서 덕산을 졸업하고 인근 임청각과 구안동역 그리고 제비원을 찾아보고자 했는데 다음 기회로 넘어갑니다.^^
일찍 서두를려 해도 날씨를 감안해야 하고 기왕 쉬어가는거 하루 일찍 가서 안동 관광에 나서기로 합니다.
거리가 짧으니 배낭도 가볍고 끝 무렵에 매점도 있다니 물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겠네요.
도산서원, 하회마을 그리고 제비원과 임청각이 계획 안에 들어왔습니다. 구안동역은 저절로 지나네요.
일단 안동역에서 시내방향으로 들어가, 구안동역 옆에 교보생명 버스터미널이 도산서원 가는 567번 버슬 타는 곳입니다. 1시간 10분이 걸리고 10:40분 차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회마을은 246번 버스를 타고 경북도청을 걸쳐 들어가는데 약 50분 정도 걸린다네요. 조금 늦더라도 제비원 솔씨공원에 다녀올려는 계획인데 대중교통으로는 차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2안으로,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만 다녀오는 것도 참작을 합니다.
다음날 06:40분 교보생명에서 건능골 들어가는 첫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임청각은 시간을 고려하여 덕산을 졸업하고 다녀와도 되겠더군요.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덕산지맥을 아주 길게 다녀왔습니다.^^
21일, 청량리발 무궁화 06:50분 차로 출발하여 하루는 관광을 했습니다. 구안동역, 병산서원, 하회마을에서 탈춤을 관람하고 다시 안동으로 나와 임청각과 제비원을 둘러보고 신시장을 통해 구시장 찜닭골목으로 이동하여 찜닭으로 저녁을 먹었네요.
22일, 06:40분 교보생명에서 출발하는 건능골행 버스를 이용해 오후 14시경 지맥을 졸업하고, 합수점에서 교보생명으로 걸어나와 마지막 일정으로 도산서원에 다녀왔습니다. 관광후기는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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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면 택시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이용할 수 없더군요. 육교 아래로 내려가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고 주인아저씨께 사정을 말했더니 다른 차를 소개해 주시네요. 2만원에 임동재에 도착했습니다.
♤ 위동재(312.2m)/ 935번 지방도로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찰앞시골 마을과 임동면 위리의 경계로 935번 2차선도로가 지난다. 고갯마루는 삼거리로, 마루금은 임도에서 조금 멀어졌다가까웠다 하지만 맞은편 도로 건너 계곡리로 들어가는 임도를 따라가다 임도가 좌로 휘어지는 고개마루 근처에서 우측 산길로 진입한다. 우측편에 시그널이 다량 달려있다.
- 사월큰길 도로 표지판 아래에 수준점(312m)이 있다. 들머리는 임도를 따른다.
-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찰앞시골까지 1.5km거리이며, 예안면과 임동면을 잇는 대중교통은 오전, 오후 하루 2회 건너편 구룡마을까지 운행한다.
♤ 396.6m봉/ 면계(임동면-예안면 → 임동면)
이 봉에서 임동면과 예안면을 가르는 면계는 우측 서쪽으로 보내고, 덕산지맥은 좌틀로 남향하여 온전히 임동면 안으로 들어서서 안동호와 임하호를 가르며 금댕이재 이후까지 이어진다.
- 정상이랄 것도 없고 산패도 없으며 선답자 표지기만 몇 개 걸려있다, 좌틀로 내려서면 5분 이내 임도에 닿는다.
♤ 위골재(281m)
수레길은 중간 중간 나무가 넘어져 차량은 다닐 수 없으며 좁은 길로 바뀌고 좌우로 희미한 길 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난다. 좌측 아래에 임하로 물머리에 위치한 위골 마을이 있으니 위골재로 부른다. 323.3m봉에 이어 파묘지가 있는 봉에 올라서면 멀리 왼편으로 임하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 위골재 내려서기 전에 가야할 방향 임동교 뒤로 영등지맥의 아기산이 보인다.
♤ 임동면 위리
위리는 임동면 북쪽에 위치하며 예안면과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위리는 원래 임하현에 속하였으며 마을이 위쪽에 있다고 하여 윗골, 위곡, 위동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위리 앞으로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는데 현재의 대곡천이다. 대곡천이라 하기 전에는 위천, 위수라고 하였는데 수원이 풍부한 위수가 흐르는 마을이라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현재 위리는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된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새로 형성한 1리 상산마을과 수몰 전 윗골이 있었던 자리에 뒷산의 터를 잡은 것이다. 수몰되기 전의 윗골은 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위리의 본동이었다. 위리란 행정명칭도 이 마을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며 상산마을은 위수와 인접한 상산골이라는 곳에 터를 잡아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임하호(臨河湖)/ 지례예술촌
안동은 예부터 ‘두 물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으로 영가(永嘉)라 불렀다. 두 물〔永〕은 낙동강과 반변천이다. 하지만 안동으로 이어진 물길은 강이라는 이름을 잠시 접고 호수로 남았다. 안동댐과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안동호와 임하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하댐 또는 임하 다목적댐은 경북 안동시 반변천에 낙동강 유역 수자원 수자원 종합개발을 위하여 1984년 12월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완성된 댐이다.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준공한 다목적댐이다. 댐 축조는 1990년 완료하였다. 1991년 발전설비를 갖추고, 그해 12월 담수를 개시하였다. 92년 임하댐 관리사무소로 전환하고, 준공기념식과 상업 발전을 시작했다. 연간 5억 9200만m3의 용수를 공급하며, 연간 발전량은 9670만kWh이다. 총저수량은 595백만t으로서 유효저수량은 424백만t이나 만수위저수량은 548백만t에 이른다. 임하호는 생활 및 공업·농업 용수의 공급과 전력생산, 홍수조절을 위한 목적으로 1992년 5월 임하면 임하리와 임동면 망천리 사이의 반변천 협곡에 높이 73m, 길이 515m의 임하댐을 건설함으로써 등장된 다목적 인공호이다. 호수면 수위는 만수위때 해발 163m이고 저수위 137m이다. 임하호의 조성으로 안동시는 물론 인근의 대구·구미 등 경북 내륙공업도시 생활 및 공업 용수 와 낙동강 하천 유지 용수 등 연간 592백만t의 용수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앞으로 포항, 경주 등지의 생·공용수 및 금호강 하천유지를 위한 용수까지도 공급하게 된다. 임하호는 주변에 백운정·동암정·봉황사 등의 명승지와 고찰이 있어 인접한 안동호와 함께 국민 위락지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안동호가 예끼마을과 월영교를 만들었다면, 지례예술촌은 임하호가 만들었다. 1984년 임하댐을 착공하면서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례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안동 지촌종택과 지촌제청, 지산서당 등을 마을 뒷산 골짜기에 차례로 옮기고, 1989년 지례예술촌을 열었다. 지례예술촌은 가는 길이 험하다. 수곡교가 있는 곳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12km(약 20분)나 달려야 한다. 이런 불편함에도 지례예술촌을 찾는 이유는 대문과 행랑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임하호의 풍경이 ‘인생 사진’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에서 안동 시내가 훤히 보인다. 일몰이나 안동 시내 야경을 만끽해도 좋다. 지례예술촌 가는 길에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1894년 갑오 의병부터 광복 때까지 경북 사람들의 국내외 독립운동 역사가 담긴 독립관, 안동 독립운동의 뿌리가 된 전통 마을의 항일투쟁을 전시한 의열관으로 나뉜다. 전시물 중에 권오설 철관이 있다. 권오설은 1926년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는데, 당시 일본은 권오설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모일 것을 두려워해 시신을 철관에 넣고 납땜했다. 권오설의 아버지가 지은 제문이 3m에 이르러,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만휴정(경북문화재자료 173호)은 보백당 김계행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다. 보백당 김계행은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有淸白)”라며 청렴함을 보물로 삼은 분이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만휴정의 풍광이 압권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한 뒤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계류, 폭포, 산림 경관이 어우러진 만휴정 원림(명승 82호)도 아름답다. 김계행의 흔적은 묵계서원과 안동김씨묵계종택(경북민속문화재 19호)으로 이어진다.
♤ 아기산(鵝岐山, 591m)/ 봉황산
영등지맥 상의 산이다. 경북 안동시(安東市) 임동면(臨東面) 수곡리(水谷里)에 있는 높이 591m의 산으로 봉황새가 날아가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봉황산이라고도 한다. 정상 부근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 조망이 좋으며 임하호의 맑은 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의 북쪽 자락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봉황사(鳳凰寺)가 있다. 아기산(峨岐山)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태백산 지맥인 일월산이 뻗어내려 여기 남쪽에 우뚝 솟은 아기산은 임동에서 가장 높은 면(面)의 진산이다. 산의 이름은 한자로 아기산(鵝岐山) 또는 아기산(峨岐山)으로도 쓰이며 한발이 심할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영험이 많아 반드시 비를 내렸다고 한다. 산자락 북에는 봉황사(鳳凰寺)(뒤에 와서 황산사(黃算寺)라고 했음)란 신라의 유명한 고찰이 자리하며 서쪽에는 전주류씨 집성촌이 있다. 조선조(宣祖-光海)에 이조참판(吏曹參判) 유복기(柳復起) 선생은 이 산을 호(號)로 삼아 기봉(岐峰)이라 하였는데 그의 후손들은 이곳을 무실마을의 당산(堂山)으로 모시고 매년 정월 보름날 아기당(峨岐堂)에서 고사(告祀)를 올린다.
♤ 벳티재/ 성현
베티는 임동면 사월리의 끝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산에는 절과 미륵부처가 있었는데 손님이 찾아오면 절의 스님이 손님 수만큼 주문을 외우면 국수가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미륵불이 없어지고 국수가 나오는 영험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성현이 변했다고 해서 별티라고 불렀다가 음이 변하여 벼티로, 또 베티로 되었다고 한다. 고개 오른쪽에 큰 당산나무와 소나무가 지키고 서있다. 좌측편(동쪽)으로 임하호 상류가 있고, 우측으로 임동면 사월리 웃배티 마을과 별티마을을 지나 안동호로 연결된다. 아래베티는 수몰되어 이전한 주민들이 형성한 마을이며 윗베티는 원래 있었던 마을이라고 한다.
- 당산목 두 그루가 서 있다. 이후 길은 좋아진다.
♤ 임동면 사월리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는 마을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강에 모래가 많아서 사월(沙月)·사드레·사들·사월천·사평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 새마을, 베티 중벵이, 금댕이, 낙싯골, 보매골등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금댕이 마을이름을 따서 금댕이재로 부르고 있고, 금댕이재 좌측은 중평리이다. 금댕이재에서 1분쯤 내려가면 2차선 차도를 만난다.
뱃티재 이후 약 50분 진행하면, 금댕이재 30분 직전에 철망이 설치된 사유지 농장을 만난다. 안에 수도도 보이건만 울타리가 너무 견고하다.
♤ 개간지 임도
지맥 능선 마루를 온통 파헤쳐 개간을 하고 있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여야 한다. 울타리 안쪽으로 과수원 농막이 있고, 마루금 능선길이 좋은데 사유지라며 철망펜스로 길을 막아 놓아 우측 울타리 밖으로는 어렵사리 가야한다. 철망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묵밭으로 가면 수월하다.
♤ 삼각점봉(374m)
개간지 농장을 만나 우측 울타리를 따라 사유지를 벗어난 마지막 봉우리이다. 전면은 급경사라 우측으로 비켜 임도로 올라서고, 임도를 따라 우회하여 오른다.
- 3등삼각점 (예안 314)/ 2004 재설이 있다.
금댕이재에서 이동통신송출기를 지나 좌틀하여 임동면으로 내려서서 보급을 합니다. 소방학교 교정안으로 임동면으로 내려서는 계단길이 있습니다.
♤ 금댕이재/ 2차선 포장도로
금댕이재는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위치한 고개로, 남동쪽(좌측)의 임동면 소재지인 중평리에서 북서쪽의 금댕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금댕이/금당마을은 사월리 남쪽에 있는 자연마을로 처음에 마을이 발전하지 않고 줄어든다고 하여 오그랭이라고 불리었으나 마을안에 아름다운 못이 있고, 또 발전하라는 뜻으로 금당이라고 했다.
- 금댕이재에 내려서서 다음 맥길은 과수원으로 연결된다. 개가 지키고 있는 과수원 농막에 수도가 있다.
♤ 임동면 중평리
중평리는 임동면의 소재지이다.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중평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으로 두 하천이 합쳐지는 중간 지역이라 하여 중드루, 또는 중평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편기리, 신평, 구마골을 병합하여 중평동(리)이라 하였다. 그 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옛터는 모두 수몰되고 현재의 신단지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자연마을은 사라지고 단지 행정명칭인 중평 1리와 2리가 있다. 현재 중평리는 임동면에서 가장 큰 곳으로 211가구에 604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몰되기 전 중평리에는 챗거리, 웃챗거리, 말뚝소, 굴매골, 새들, 쑥쟁이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 과수원임도/ 농가 막사
이동통신 중계탑 방향으로 나가 좌측편 임하호를 조망하고 과수원 철망 좌측 옆길 양회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대형 저수조 탱크 뒤로 진행이다. 좌측으로 임하호와 수곡리로 이어지는 수곡교와 영등지맥의 아기산이 조망된다. 수곡교 건너편에는 임하댐 건설로 현재 위치로 이주한 '수곡단지'와 함께 전주류씨 무실종택(全州柳氏務實宗宅)과 수애당(水涯堂)이 위치하고 있다.
♤ 396.3m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지맥길이 임하호와 안동호를 가르며 그 사이로 진행한다. 좌측 산불 피해지역으로 임하호가 조망되고,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안동호가 조망된다.
- 지맥길은 물탱크를 넘어서서 진행한다.
♤ 안동호(安東湖)/ 예끼마을
1971년 10월 와룡면 중가구리로 흐르는 낙동강의 협곡에 높이 83m, 길이 612m의 다목적 댐인 안동댐이 건설됨으로써 낙동강 수계의 최대 인공 저수지가 되었다. 안동댐이 1976년 10월 28일 준공됨으로써 안동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안동호의 총저수량은 125억 톤에 달하며 하류 지역의 연례적인 홍수피해를 줄이고 생활 및 농·공업 용수 공급과 전력 생산을 위해 조성된 안동호는 연간 9억 2,600만t에 달하는 각종 용수를 공급함으로써 구미·대구·창원·부산·울산 등지에 그 혜택이 널리 미치게 되었다. 연안 일대의 도산 서원을 비롯하여 석빙고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하고 주변의 깊은 계곡과 함께 경관이 빼어나 호반 관광 명소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청량산을 휘감고 내려오던 낙동강 물길은 도산서원을 거쳐 한 굽이 지나면 예끼마을과 만난다. 안동댐 건설로 예안면이 대부분 물에 잠기자, 서부리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예끼마을이 조성됐다.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한 이주민의 서글프고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사업’에 이어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끼마을이라 했다. 예끼마을을 대표하는 선성수상길은 잔잔한 안동호에 폭 2.75m, 길이 1km로 놓인 부교다. 안동호와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선성수상길 중간쯤 수몰 전 예안국민학교 자리에 풍금과 학교의 옛 사진이 있다. 선성수상길 입구에는 선성현역사관을 비롯해 동헌, 객사, 내아 등 선성현 관아의 옛 모습을 재현한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쌍벽루에 오르면 안동호의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선성현한옥체험관도 갖춰 체류형 관광지로 손색없다. 안동호 보조댐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387m 월영교(月暎橋)가 2003년 5월에 개통되었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이전하여, 안동호를 가로지르는 중앙에 팔각정을 비롯한 난간 분수대가 설치되었다. 안동호를 중심으로 주변에 월영교와 더불어 물박물관·공예문화전시관·KBS드라마촬영장·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2008년 월영교는 다리 상판과 난간 보수공사를 마치고 2009년 통행이 재개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관광객들의 많은 방문을 비롯하여, 영화와 드라마의 야외촬영장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진성이씨묘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내려서면 가느레이설길 땅골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박지로도 제격입니다.
♤ 땅골재/ 임당고개
임당마을은 마을 개척당시 숲이 우거지고 연못이 있었다고 하여 임당, 숲당, 숲댕이라고 하였다. 이 마을에 당집이 있었는데 옛날 하늘에서 쌍방울이 날아와 지금의 당집 자리에 앉아서 신기하게 여겨 이곳에 당집을 짓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삼거리 좌측(남쪽)은 임당마을과 임하호의 망천교로 이어지고, 우측(북쪽)은 절골, 못골로 이어지는 군도인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난다.
♤ 임동면 망천리
임하댐 건설로 원래 마을은 수몰되고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으나 마을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 명칭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고려말에 염흥방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사병을 길러 세력이 막강하자 약탈을 일삼았다. 나라에서 관군을 보내 마을 앞 반변천에서 토벌하니 그 사병들이 이곳에서 전멸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망지내라 칭하였다. 그러나 후에 망자가 있어 좋지않다고 하여 망천으로 고쳤다.
♤ 273m봉/ 면계(임동면 → 임동면-임하면)
이제까지 임동면 안을 이어오던 맥길은 이 봉에서 임하면을 만나, 남쪽으로 급좌향하여 임하면과 임동면으로 면계로 이어진다.
- 좌측 아래로 임도가 따라오고 조그만 저수지도 보인다. 우측(북쪽)으로는 안동호가 가까이 조망된다.
277.4m봉을 지나 10분여 오르내리다 274m봉에 올라섭니다.
♤ 274m봉/ 면계(임동면-임하면 → 임하면)
이 봉우리에서 임동면과 임하면 경계 능선은 좌측(남서향)으로 내려보내고, 지맥길은 온전히 임하면으로 들어서서 남향으로 이어가게 된다.
2구간은 여기까지입니다. 농막에서 물 한잔 얻어마시고 119를 불러 안동병원으로 실려갔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대병원에서 여덟 바늘 봉합했습니다.
♤ 건능골고개/ 양회임도 삼거리
좌측(남쪽) 임하호반 망천리와 우측 아래에 노산리쪽 건능골 마을을 잇는 임도 고갯마루이다. 건능골마을이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건능골은 옛날 이 마을 앞 큰 도로가 있었으므로 안마 길건너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가족묘지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내려가 맞은편 도로 축대를 올라서서 가파른 절개지를 바로 치고 오르는데 미끄러워 매우 위험하다. 왼쪽으로 임도를 200m 휘돌아 우회하여 올르기도 한다.
- 살짝 우회하는 임도 좌측으로 콘테이너 농막이 보인다. 분당 미금 사시는 분으로 내장기관이 안좋아 혼자 요양중이시란다.
♤ 새마을고개/ 양회임도
좌측은 모실골, 우측(서쪽)에 천전리 안동호 상류의 새마을 마을이 있다.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새로 생긴 마을이다. 서낭댕이는 수몰되기 전 사드레 마을에 있는 산이다. 옛날 성황당이 있었다는 서낭댕이골 기슭에 새마을을 개척하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임도를 가로질러 반대편 능선 숲길로 오른다.
♤ 임하면 천전리(川前里)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마을로 임하면 북동쪽에 있다. 안동 시내에서 청송 방면인 동쪽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 14㎞가량 가서 임하보조댐이 있는 곳에서부터 천전리가 시작된다. 마을 앞으로 반변천(半邊川)이 흐르고 있어 내앞 또는 천전(川前)이라 하였다. 내앞이라는 지명은 주로 천전1리를 지칭한다. 천전1리·천전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서녁(西惄)·장구날[일명 장고(長皐)]·빗골[雨谷]·구목골[일명 운곡(雲谷)]·모실(茅室)[ 일명 모곡(茅谷)]·광산(廣山)·두무골[豆茂谷]·반시(半市)[일명 점리(店里)] 등이 있다. 동쪽으로 임동면 망천리와 임하호 일부, 서쪽으로 송천동, 남쪽으로 반변천을 경계로 신덕리·임하리, 북쪽으로 노산리와 이웃하고 있다. 의성김씨 청계파(靑溪派)의 동성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국도 34호선이 지나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 비리실고개/ 광산고개/ 2차선도로
이 고개는 좌측(남쪽) 반변천이 흐르는 임하면 비리실 마을에서 우측(북쪽) 안동호 상류의 천전리 광산마을을 잇는 왕복 2차선의 군도가 넘나드는 고개로, 네이버 지도상에 비리실재로, 선답자 산행기에는 광산재로 표시하고 있다. 베네실고개로도 불린다.
- 좁은 포장도로이고 오른쪽에 농가주택이 한 채 있다. 고갯마루 4~5십미터 못 미친 좌측으로 샛가지를 친 임도가 들머리다.
♤ 사빈서원(泗濱書院)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위치한 사빈서원은 조선 명종, 선조시대 교육자이자 경세가로 이름난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선생과 다섯 아들, 6부자의 덕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조선 숙종 36년(1710)에 사림과 후손들의 공의로 건립했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14년 뒤인 고종 19년(1882)에 영남 사림이 중건에 나섰으나 강당(講堂)과 주사(廚舍)만 되살리는 데 그쳤으며 현대에 들어선 2011년에야 재사(齋舍)와 사당(祠堂), 전사청(典祀廳) 등 원래 모습을 갖춘 복원사업이 마무리됐다. 이 서원에 배향된 인물 가운데는 청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학봉 김성일이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6부자가 한 서원에 배향되는 명예를 누리고 있으며 올곧게 살다 간 선비들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도량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1989년 임하댐 건설로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로 이건했다가 2007년 다시 지금의 임하면 천전2리로 옮겼다. 1985년 8월 5일 경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 39호로 지정됐다.
♤ 사브란재
넓은 임도를 따라 나가서 275m봉에 올라 좌측을 보면, 반변천 너머 임하면 소재지와 그 너머 뾰족한 삼각형의 구암지맥 상의 약산(582.5m)이 가늠된다. 우틀로 내려선 패인 잘록이 안부가 안동호반 광산골과 반대쪽 고개너머로 남쪽 반변천께 분개골을 잇는 지도상 사부란재다.
- 준희선생님 산패가 달렸고 양방향으로 묵은 임도가 지난다.
♤ 294m봉
294m봉을 향하는 묘지지대에서 멀리 안동의 진산 학가산(882m)이 조망된다. 좌측으로는 반변천 건너 임하면 소재지가 있는 신덕리와 산허리에 적벽돌 건물들이 보이는데 이 적벽돌 건물들은 '김재규공무원기숙학원'이라 한다. 과거 안동공업전문대가 건동대학교였다가 2012년 폐교됨에 따라 김재규 공무원 학원 안동 캠퍼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노량진에 간판이 큰 그 김재규학원 지방 캠퍼스인 셈이다.
- 잘록이 재로 내렸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우측에 농가가 있다.
♤ 322m봉/ 면계(임하면 → 임하면-송천동)
굽은 소나무가 밀집해 있다. 지금까지 임하면 안으로 진행해 오던 맥길이 이 봉에 올라서기 약 2분 전쯤의 능선에서 안동시 송천동을 만나 송천동과 임하면으로 행정계를 가르며 서쪽으로 이어진다.
♤ 수명고개/ 양회임도
우측으로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 큰노골에 수명마을이 있다. 좌측 송천동 살밭골 34번국도로 이어지는 양회임도가 지나는 수명재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잠시 나가면 보이는 좌측 수레길로 올라서야 한다.
수명고개에서 10여분 빡시게 올라선다.
♤ 산불초소봉(381.6m)/ 삼각점봉
북쪽(우측)으로 안동호가 펼쳐져 보이고 남쪽으로 구암지맥의 약산(583m)과 그 우측으로 갈라지맥 마루금도 보인다.
- 준·희선생님 정상 표지판이 산불초소 철기둥에 붙어있고 3등삼각점(예안 311) / 2004 복구가 있다.
♤ 375.5.m봉/ 전망대
안동호와 임하호가 함께 보이는 조망대이지만 잡목에 가려 좀체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 삼거리 갈림봉으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좌측 삼거리방향으로 진행한다.
♤ 당나무골재(393m)/ 성황당고개/ 새터고개
안동대학교로 내려서는 이정표 삼거리에서 지맥길은 우측 당나무골로 내려선다. 안동호반의 새터골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남쪽의 안동시 송천동 방면 사이를 잇는 등하행 산길이 넘나드는 서낭당 고갯길, 새터고개다. 서낭당 안부로 여러 갈래로 뻗은 거대한 당산목이 당나무골재를 지키고 있다. 당나무골재의 우측 마을은 임하면 노산리 새터마을이다.
- 우측 아래로 차량이 오를 수 있고 인가도 보인다. 라디오 앰프소리가 시끄럽다.
♤ 337.1m봉/ 삼면봉(송천동, 임하면 → 석동동)
새터고개를 뒤로하고 한 차례 비탈길을 올라치면 엉성한 돌탑이 있는 봉우리가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와 안동시 석동동, 송천동이 만나는 삼면봉이다. 지맥길은 여기에서 임하면과 헤어지고 석동동과 송천동의 행정경계를 따라 우틀로 이어가며 안동 시내권역으로 들어선다.
임도에서 가티고개로 내려가는 등로 우측으로 안동시 석동동 마을이 보입니다.
♤ 안동시 석동동 관재/ 가티고개
다시 양회임도로 내려서서 좌틀하여 도라지와 참마를 가공하는 농업 법인 회사인 금강 바이오 앞을 지나서 약간 오르면 관재에 올라선다. 안동시 반변천께 안동대학교가 있는 송천동과 고개넘어 안동호반 방면으로 석동동을 넘나드는 포장 2차선의 노천길이 지나가는 고개로 좌우측에 덕산지맥 들날머리가 있다. 들머리는 좌측이다. 도로 건너 다라골 표석이 있는 윗길로 진행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위로 임도로 올라서는 다라골 입구다.
- 관재를 지나며 찐빵과 만두를 업다운하며 차츰 고도를 높여, 산불초소봉(326m)까지 오르게 되는데, 다라골입구에서 3분여 동안 우측 편으로 이어지는 지맥 능선을 두고 알기 쉽게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 안동시 석동동
경북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다. 조선 후기 안동군 동후면(東後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석실 또는 석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성동·마일·다리골·사일·원당실 등을 통합하여 석동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되면서 월곡면이 폐지됨에 따라 나머지 지역은 임하면(臨河面)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석동동이 되었다. 관재, 잿골고개 등의 고개가 있다.
♤ 송천향교 삼거리이정표
좌측은 송천동 안동향교 방향이고, 지맥길은 현대아파트방향으로 직진한다.
♤ 300.9m봉/ 사각정자, 운동시설
300.9m봉은 사면길 우측에 있다. 조망은 없다. 그 곳을 넘어서면 운동기구들이 있는 사각정자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체육시설이 있는 정자를 우측으로 지나자마자 갈림길을 만나는데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진등산과 무협산이 남쪽으로 있다.
벤치에 배낭을 놓아두고 가볍게 진등산과 무산을 다니러 갑니다.
♤ 335.2m봉/ 무협산-석동동 감성골갈림길/ 삼면봉(석동동, 송천동 → 송곡동)
정자가 있는 곳을 지나 5분여 진행하면 335.2봉이다. 이곳이 무협산 갈림길 삼거리로 이정표(← 정상 1120m, ↑ 산불초소 감성골 2500m, 안동대학교뒷산 석동가티 1680m →)도 서있다. 무협산 갈림 능선에서 우측으로 맥길이 이어진다. 직진 방향은 무협산 정상 방향이고, 지맥길은 우측 산불초소 석동동 감성골 방향이다. 무협산을 다녀올려면 왼편의 정상방향으로 진행한다.
♤ 진등산(332.6m봉) 1등삼각점/ 왕복 530m이고 약 15분 소요된다.
사각정자에서 3분여 지난 이후, 좌측 용상동으로 가는 삼거리갈림길 이정표에서 1등삼각점봉에 다녀온다. 맥길에서 약 250m 벗어나 있다. 무성한 잡목속에 숨어있는 진등산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하고 약간 되돌아나와 남쪽방향으로 무협산으로 향한다.
- 1등삼각점 예안 11이 있다. 잡목숲이라 조망은 없다.
임청각 관광해설사도 무산이라고 알려주던데, 무협지를 많이 읽은 분이 낙동강을 협곡으로 보고 무협산이라 했나봅니다.
♤ 무협산(巫峽山, 355m)/ 선어대(仙漁臺)/ (왕복 30분 소요)
임청각의 뒷산 영남산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무산은, 용상동 선어대 뒷편에 위치한 산으로 고려문신 백문보(白文寶)는 영호루금방기(映湖樓金榜記)애서 巫峽이 좌청룡이요 城山은 우백호인데, 무협산 아래 선어대는 반변천이 절벽을 휘돌아 흐르는 곳에 형성된 넓고 깊은 소(沼)와 주변의 언덕을 가리킨다. 임하룡과 선어대용의 싸움에서 이겨서 승천한 선어대 용이 마씨총각에게 보답으로 땅을 주어 마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며, 안동팔경의 제1경으로 仙漁暮帆(저문날의 돛단배)를 말하며, 仙漁臺下銀魚肥(선어대 아래 은어가 살찐다)으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명주 실꾸리 하나를 풀 정도로 깊다는 등 이야기들이 전하나 지금은 소는 거의 없어지고 늪으로 형성되어 있고 남선으로 줄을 메어서 건너다니던 나룻배도 도로확장과 개발로 이용객이 없어 끊어져 버렸다.
- 잠시 진행하면 송천동 하리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고 4분여 뒤 왼쪽으로 반변천과 안동대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처도 지난다. 철탑을 지나면 체육시설이 있는 오석의 정상이 세워진 곳이 무협산 정상이다. 이곳 무협산은 덕산지맥에서 왼편으로 약1.1km 벗어나 있으나 정상석이 있는 봉이다. 사면길로 지나치기 쉬운 좌측편 봉우리이다. 정상 주위에는 나무의자가 빙 둘러 놓여 있다. 반변천이 흐르는 곳에 선어대를 확인해 보지만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임동면으로, 비리실마을로 버스로 들어가며 선어대를 확인할 수 있다.
무협산을 다녀와 다시 맥길에 복귀하여 산불감시초소 방향으로 향하고, 초소에서 좌틀로 내려서서 사면길에 합류합니다.
♤ 산불감시초소봉(326m)
산불초소봉에서 좌틀로 내려서 능선 길을 가다보면, 좌측으로 휴그린 골프장이 보이고, 우측으로 낙동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서면 왼편으로 우회길과 만나고 왼편으로 휴그린CC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이어 좋은 길로 연결되고 오른쪽에서 올라온 임도를 만나면서 이정표(↓ 정상/무협산입구 1920m, 문화관광단지 800m →)가 세워져 있는 안동문화관광단지가 시작된다.
♤ 안동문화휴양관광단지/ 안동시 성곡동
경상북도관광공사가 안동 북부지역에 개발하여 안동시 성곡동 일대에 조성된 안동문화관광단지는 경북북부지역의 유교문화권 체류형 복합휴양단지다. 다변화된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하고자 조성되었다. 인근에 안동댐, 민속촌과 민속박물관, 세계 물문화관 등이 있어 관광과 휴양을 함께 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안동문화관광단지는 두개의 호텔과 식물원(온뜨레피움), 유교랜드, 전망대(안동타워), 골프장(휴그린), 권태호음악관 등이 입지하고 있으며, 아직 완공 되지 못한 미완성의 관광단지이지만 공사가 완공되면 경북 북부지방을 대표하는 종합관광단지가 될 것이다. 유교문화 컨셉을 바탕으로 산과 물과 문화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관광단지로 거듭날 것이다. 공기가 맑고 안동댐의 넓은 수변 전망을 즐기는 패키지 관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산책코스로 아주 좋다. 드라이브와 산책으로 가족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경주 보문단지처럼 경북을 대표하는 관광단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좌측으로 식물원도 보이고 큰 무덤을 지나 도로를 따르면 리첼호텔이 보인다. 리첼호텔 지나자마자 도로 아래 경상북도 문화관광공사 북부지사 입구에 휴매점이 있다.
♤ 유교랜드
유교문화자원 전시.체험시설인 유교랜드, 힐링 식물 체험시설 온뜨레피움, 대규모 야외 골프장과 2개소의 관광호텔이 들어서 있다. 유교랜드는 안동문화관광단지의 핵심시설로서 한국정신문화의 뿌리인 유교문화를 중심주제로 하는 테마 파크형 체험센터이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즐기면서 배우는 에듀테인먼트(교육+놀이) 공간을 창출하여 어려운 유교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 241.8m봉
산책로 우측에 있는 241.8m봉에 올르고 전망대로 휀스를 넘어선다. 계단길따라 좌측으로 내려 전면에 보이는 산으로 향해간다.
♤ 보나베띠 안동타워점 전망대
문화관광단지 갈림길을 지나고 안동 그랜드호텔, 리첼호텔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전망대가는길로 향한다. 유교랜드와 전망대 사이 241.8m봉을 직진하면 전망대 휀스를 넘어선다. 전망대는 31m 높이로 안동호 및 관광단지 전체를 조망할수 있으며 건축 연면적 : 615.40㎡(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1층, 2층(일부) 관망탑은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찾는 관광객 편의공간으로 무료 개방, 3층은 일반 음식점으로 운영 중에 있으나 코로나 여파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전망대에서 산책길로 내려서면 멀리 문수지맥상 학가산이 보인다.
- 안동타워 2층 전망대에 올라가 안동호와 타워 주변을 조망, 전망대 앞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산책로로 내려선다. 지맥 능선은 우측 얕은 야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나, 대단위 택지 개발로 인한 유휴지로 진행하기가 곤란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유교랜드 정문을 지나 도로를 따라 나간다. 산책로로 직진하여 도로로 내려서도 무관하다.
물레방아매점의 물레방아 뒤쪽의 급경사 능선을 올라 숲길로 들어섭니다.
♤ 물레방아 휴게소, 매점
도로에서 대구, 남안동IC 방향으로 좌틀하여 휴게소 매점 건물과 주차장, 축구장이 있는 곳을 지나면 물레방아 돌아가는 곳을 만나고, 지맥은 봄나들이(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작곡가 권태호음악관을 지나고, 안동문화관광단지 일주문을 나서서 구름에 리조트 방향으로 올라간다. 물레방아매점 뒤 지맥길을 따르면 권태호음악관과 일주문은 우회길에 있어 만나지 못한다. 짧고 별다른 의미가 없어 도로를 따르는 경우도 많다.
고개 아래에 기와집이 한채 보이던데 용도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성곡고개
성곡마을이 있는 고개이다. 새로운 고개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넘어간다. 우측 묵밭으로 오르면 저수장 물탱크가 나온다.
♤ 안동시 성곡동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상동(龍上洞)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용상동 일부를 분할하여 성곡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성곡동이 되었다. 성곡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용상동 관할하에 있다. 성곡이란 지명은 기산성 밑에 있다는데 연유한다. 개미골(일명 의곡), 남산(南山), 당밭골, 압시골, 엄달골, 자두골(일명 척후곡), 황새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개미골마을은 지형이 개미처럼, 황새골마을은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는데 명칭이 연유하며, 자두골마을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옥척형(玉尺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의 시인인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의 시비 육사시비가 있으며, 박물관으로는 안동민속박물관이 있는데 규모는 부지 17만 2630㎡이다. 유적으로는 묘인 옥척형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안동 석빙고(보물 305), 선성현객사(경북유형문화재 29), 월영대(경북유형문화재 22), 안동 사월동 초가토담집(경북민속자료 14), 안동 의촌동 초가도토마리집(경북민속자료 6) 등이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한국수자원공사 안동권관리단이 있으며, 사찰로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관음사(觀音寺), 평화사(平和寺) 등이 있다.
♤ 252.6m봉
성곡고개에서 우측으로 올라 물탱크에서 잠깐 비탈을 올라치면, 벤치와 탁자가 있는 납주그레한 봉우리이다.
♤ 활인심방 체험장
활인심방중 도인법 설명판이 벤치와 함께 봉우리를 빙 둘러 세워져 있다. 퇴계 이황이 중국 명나라 시조 주원장의 열일곱째 아들인 주권이 지은 양생서인 구선활인심법(購仙活人心法)을 필사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추가하고, 의문나는 글자는 바꾸기도 하면서 만든 서적이 활인심방(活人心方)이다. 활인심방에는 중화탕(中和湯), 화기환(和氣丸), 양생지법(養生之法), 치심(治心), 도인법(導引法), 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 양오장법(養五臟法), 보양정신(保養精神), 보양음식(保養飮食)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 이황께선 잔병이 많고 병약하였지만, 활인심방을 열심히 수련해서 당시로는 드물게 70세까지 장수하며 빛나는 업적들을 남길 수 있었다.
- 252.6m봉에서 북쪽 동산서원 방향으로 넓은 능선길이 나 있지만 지맥길 서쪽 방향으로 열려있다.
♤ 개미골고개
안동시 성곡동 잿골에서 북서쪽 0.5㎞ 지점에 위치하는 마을로 지형이 개미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개미골이라 부르고 있다. 개미의 머리 부분을 웃개미골, 허리 아랫부분을 아랫개미골이라고 한다. 252.6m봉에서 몇 걸음 내려서면 왼편으로 개미골로 내려가는 이정표(← 성곡동, ↑ 민속촌, ↓ 개미골, 안동댐 →)가 서있는 네거리가 나온다. 성곡동으로 잠시 진행하면 평상과 그곳 주위로 빙 둘러쳐진 ‘활인심방’이란 건강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어 왼편으로 개미골마을의 농가와 전답이 보이는 개미골 고개에 닿는다.
♤불노정
불노정이라는 육각정자도 만난다. 정자쉼터를 뒤로하고 나면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을 곁에 두고 있는 해발243.2m봉이다.
물이 충분하니 굳이 절에 들릴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 안동시 성곡동 평화사(平和寺)
왼편 아래로 대한불교 미타종 소속 평화사란 절이 보인다. 1987년 최사불이 창건하였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쪽 능선 길로 간다.
평화사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정자가 있는 용신각 갈색 건물 곁을 지납니다.
♤ 선왕데이/ 성황데이
이 마을은 신비의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는 평화사(平和寺)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고려 공민왕이 피난을 왔을 때 이곳에서 궁녀와 마부가 죽자 그 후 안동에 역질과 흉년이 돌아 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리니 변고(變故)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 한집 두집 사당 주변에 집을 짓고 살면서 선왕데이라는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당 주변에 토성(土城)을 쌓아 동?서?남문을 매고 토성 윗부분에 말 다섯 필이 달릴 수 있게 오마도(五馬道)를 내었다고 전해지며 높은 봉 위에는 깃발을 꽂아 강 건너 안동부에 연락을 취했다는 깃대봉도 있다. 그 후 사당을 큰 호랑이 두 마리가 지키고 있었으나 산림이 황폐해지자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당 주변에 기왓장이나 질그릇 조각이 보이고 있으며 사당은 1800년대에 중수(重修)했다. 지금도 동민들이 음력 대보름날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또 이 성황당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만나 남하(南下) 파천(播遷)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이때 왕이 한 여랑(女娘)을 데리고 와서 늘 귀여워하여 가까이 두게 되었다. 왕은 이곳에 성을 쌓고 홍건적과 싸움을 했다. 여랑과 함께 싸움터를 둘러보러 나섰다가 홍건적의 복병이 왕을 향해 쏜 화살을 여랑이 대신 맞고 쓰러지게 되었다. 왕은 간호에 힘썼지만 여랑은 홍건적을 물리치고 성을 지키는 신이 되겠다고 유언한 뒤 마치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싸움은 평정되어 왕은 다시 환도하게 되었지만 여랑을 잃은 슬픔에 이곳에 당집을 짓고 여랑신사(女娘神祠)라 하고 안동부사로 하여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 199m봉/ 성곡동-용상동 경계
성곡동과 용상동의 경계인 199m봉이다.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 보면, 정면으로 등로가 선명한 지점에서 우측으로 시그널이 달려있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는 편이 좋다. 왼편으로 내려가는 좋은 길이 보이나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좌측 등로로 이어가면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서 가정집이 있는 마을 뒷길로 내려서게 되어 민폐를 끼친다. 빨간 기와지붕 뒤로 법흥교가 내려다 보이는 용상동에 도착한다.
♤ 안동시 용상동 법흥교(法興橋)
임청각을 마주보는 어느 집 대문 앞으로 내려서면 앞쪽으로 낙동강과 법흥교가 보이고, 강변도로로 내려서서 좌틀하여 두물머리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도로 우측 아래에는 데크다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안동 호반 나들이길 표지석 옆 우측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 따라 내려서서 우측으로 '호반 나들이길' 데크 다리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좌측 법흥교 방향으로 진행해 나간다. 법흥교 다리 밑을 통과하여, 용상 체육공원으로 들어서서 우측 강변로를 따라 두물머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반변천로가 지나는 다리를 지나 낙천보 하상보호공을 지나면 반변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두물머리 앞이다. 임청각 부근에 신라 때 지은 법흥사(法興寺)가 있어서 이 일대를 법흥이라 하였다. 지금의 화랑로는 법흥동 일대를 지나는 길이므로 신라의 상징인 화랑의 이름을 따서 화랑로라 부르고 있다. 오른쪽으로 안동댐을 지나 유유히 낙동강이 흐르는 안동호반 나들이길이다.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7백리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안동댐 보조호수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맑은 물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월영교~법흥교, 거리 2,080m) 입니다’라고 되어있다. 이곳에서 월영교는 안동댐 아래인 안동 석빙고 앞쪽의 다리이다.
- 덕산지맥의 합수점은 이 법흥교의 교각 아래를 통과하는 둔치지구 산책로를 따라 5~6백 미터 발품이 더 필요하다. 임하호라는 거대한 물그릇을 거친 반변천이 방금 안동호를 지나온 낙동강과 합류를 서두르게 되는 합수머리는 용상제방의 둑방길까지다.
법흥교 다리 건너편으로 우측에 '안동 임청각과 군자정(보물 제182호)'이 보입니다.
♤ 임청각(安東 臨淸閣)/ 보물 제182호
임청각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낸 바 있는 고성이씨 이명이 1515년(중종 10년)에 건립한 주택이며, 상하이 주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의 집이기도 하다. 이 집은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 지형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임청각이라는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등장하는 "동쪽 언덕에 올라가서 휘파람을 길게 불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지으리라."(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등동고이서소, 임청류이부시))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군자정 지붕 너머로 낙동강이 보인다. 중앙선 철도부설 때 50여간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길에서 보면 맞담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행랑채가 이 집이 소위 말하는 99칸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두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임청각에서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제 관헌이 1942년에 집 앞마당과 집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현재는 규모가 70칸 정도로 축소된 채 낙동강 풍경과도 단절되어 있다. "경북 안동에 임청각(臨淸閣)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개한 임청각 사연이다. 문화재청장이 임청각을 둘러보고 관계자들과 복원을 논의했다. 임청각이 풍수사(史)에서 등장한 것은 1931년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이 펴낸 '조선의 풍수'에서였다. '3명의 정승을 낳게 될 영실(靈室)이 있는 (…) 이상룡의 집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그 조상이 (…) 이 땅을 점쳐 지은 99칸짜리 건물이다. 집의 평면도는 동쪽에서 볼 때 용자형(用字形)이다.' 용(用)자는 日과 月을 붙여 놓은 모양으로서 해와 달의 기운을 땅으로 불러들여 이른바 천지의 정기를 합치도록 하기에 풍수상 길하다는 것이 무라야마의 설명이다. 그가 이 책을 출간한 1931년은 석주 이상룡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때였다(1932년 작고). 무라야마도 임청각의 실소유주가 석주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이 책은 조선왕조 500년의 풍수를 이해하고 집필한 800쪽 넘는 대작이다.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는 식민지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함을 전제로 한다. 이 책의 발행 목적이다. 출간되자 그 어떤 책보다 많이 팔렸다. 풍수술사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까지 구해 읽었고, 해방 이후 출간된 많은 풍수 서적과 논문도 이 책의 덕을 보았다. 문자 그대로 '풍수 입문 고전'이다. 최근 임청각 관련 기행문과 논문이 나오고 있지만 역시 '조선의 풍수'가 소개한 내용을 변용하거나 옮겨 적는 수준이다. 대통령이 말한 '임청각에 대한 일제의 보복'은 사실일까?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려 할 즈음 '조선의 풍수'가 긴급 '수배'되었다. 도로를 내면서 잘리게 될 수많은 산맥으로 인한 재앙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도 그랬는데 1930년대는 오죽했을까? 중앙선은 1936년 착공해 1942년 완공된다. 그때 임청각 앞에 펼쳐지는 낙동강 푸른 물과 하얀 백사장, 빼어난 경관도 파괴되었다.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는 임청각을 흔들어댔고 귀를 먹먹하게 했다.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소문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이 아니다. 토지 측량을 위해 박은 삼각점을 쇠말뚝으로 오해한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임청각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곳으로 철로를 낼 수 있었다. 이곳을 고집한 것은 석주 가문을 모욕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였다. 임청각 복원은 철로 철거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옆의 자동찻길 역시 지중화하거나 우회시켜서 '옛날 그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 '옛날 그 모습'은 18세기를 살았던 임청각의 주인 이종악(1726~1773·석주의 직계 선조)의 그림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는 이곳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임청각은 산을 등지고 물을 대하고 있다. 평평한 모래밭이 아래로 뻗어 있는데 안개와 노을을 칠해 놓은 듯하고, 수많은 해오라기와 황새가 떼를 지어 노는 것만 보일 뿐이다. 저잣거리가 가까이 있어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이곳 산수의 아름다움이 영남에 이름났다."
♤ 안동호반나들이길
안동댐 하류에 있는 월영교는 폭 3.6m, 길이 387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다리 이름은 주민 응모작 중 달골〔月谷〕, 월영교 건너편 엄달골 등 달과 관련된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했다. 1998년 택지 개발로 고성 이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무연고 묘에서 400년이 훨씬 넘은 편지와 미투리가 발견됐다. 죽은 남편에게 한글로 쓴 편지와 남편의 쾌차를 빌며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감동과 여운을 남겼는데, 그 미투리를 모티프로 월영교를 세웠다. 월영교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법흥교까지 2km 이어진 안동호반나들이길과 원이엄마테마길이 조성돼 애절한 사랑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다. 월영교는 산세와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다리 중간에 월영정이 있어 기둥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도 기대 이상이다. 해가 질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호수와 하늘의 색, 월영교의 야경과 호수의 반영은 더욱 매력적이다. 월영교 건너편 산 중턱에 빛을 발하는 건물은 예끼마을의 전신인 예안면에 있던 선성현 객사(경북유형문화재 29호)로, 안동 석빙고(보물 305호)와 함께 이곳에 옮겼다. 월영교 건너 왼쪽으로 가면 안동시립민속박물관을 만난다. 안동의 민속 문화를 자세히 보여주는 곳으로, 지난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관돼 고향으로 돌아온 안동 하회탈과 병산탈(국보 121호)을 전시하니 꼭 들러보자.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서 낙강물길공원이 지척이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정원을 닮아 ‘한국의 지베르니’라 불리는 곳이다.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 숲, 연못과 폭포, 숲속정원 등이 어울린다. 징검다리가 있는 연못은 사진 촬영 명소다. 낙강물길공원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안동루에 닿는다. 안동댐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물길 풍경이 압권이다.
♤ 합수점
당연히 지맥은 용상안동병원 앞의 뚝방 길이지만 강변을 따라 걸어가면 체육공원과 주차장을 지나 합수점에 도착한다. 오른쪽은 안동댐을 지나 낙동강이 흘러왔고 왼쪽은 임하댐을 지나 반변천이 흘러와 두 물이 만나는 곳이다. 합수점 건너편은 갈라지맥의 끝지점이다.
- 낙천교를 건너가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현대스파벨리에서 땀을 씻을 수 있다.
♤ 반변천(半邊川)
반변천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길안면·임하면 일대를 흐르는 109.4km의 하천이다. 영양군 일월면 일월산 뿌리샘에서 발원하여 영양읍과 입암면을 지나 청송군 진보면 서쪽으로 흘러 임하호로 들어간다. 청송군 파천면 임하호 상류에서부터 국가하천이 되고 임하댐을 지나 안동시 용상동 서쪽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옛날에 영양에서는 대천(大川) 혹은 한천(漢川)이라고 불렀다. 모두 영양에서 제일 큰 강이란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또 진보의 옛 문헌에는 '신한천(神漢川)'이란 명칭으로, 안동의 문헌에는 '와부탄(瓦釜灘)'이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안동)에 "와부탄은 부의 동쪽 3리에 있고 진보현 신한천, 청송부 남천(南川), 임하현 금소천(琴召川)의 하류이다."라는 기사가 있다. 청송부의 남천은 지금의 용전천을, 임하현의 금소천은 지금의 길안천을 각각 가리킨다. 반변천 명칭이 기록된 조선시대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지형도』에는 반변천(半邊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영양 읍내를 흐를 때 강변이 반으로 줄어들어 반변천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 공사관계자가 물가에 있다가 쫒아올라와 뭐라뭐라 하길래 항행의 자유가 있잖냐고 대한민국 어디를 못가느냐고 했더니 공사현장이고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다고 어떻게 들어왔냐고, 들어와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답니다. 공사장을 찍는게 아니고 합수점을 찍는 거다. 합수점이 먼저고 공사현장이 나중에 생기지 않았느냐 하며 신경전을 조금 벌였습니다. ㅋㅋ^^
엊그제도 경찰을 불러 쫒아냈다며 경찰을 부른다 하길래 내발로 걸어나가면 되지 경찰 부를 필요가 있겠느냐 안전때문에 그러는거 아니냐 알았다고 나가면 되는거 아니냐며 걸어나왔습니다.
2년전 침수되었던 곳으로 한라건설에서 안동시에서 발주한 하천공원을 조성중이랍니다. 공사는 내년까지 예정이라네요. 공사는 내년에 끝나지만 덕산지맥 졸업행렬은 그 이후까지 계속된다고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ㅋ
경상도에서 최상류라는 선에서 만족하면 좋으련만 황지에서 발원하는 물이 '낙강'이고 일월산에서 발원하는 반변천이 '동강'이라 합쳐서 낙동강이며 여기가 낙동강의 발원지라는데 영 어거지 같습니다.^^
♤ 낙동공원에 세워진 폭 3.8m, 높이 1.9m의 억지 '낙동강 시발지' 표지석
안동시는 2016년 12월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낙동공원을 조성하고, 이곳이 ‘낙동강의 시발지’임을 알리는 폭 3.8m, 높이 1.9m의 화강암 표지석을 세웠다. 비문에는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강(洛江)과 영양 일월산에서 시작된 동강東江(반변천半邊川) 두 물길이 합류해 낙동강의 본류를 이루는 곳으로, 이에 표지석을 세워 안동의 지명유래를 밝히고, 향토지인 ‘영가지’의 기록과 국토부의 ‘낙동강 종합개발계획’ 보고서의 '낙동강 시발지는 '낙강'과 반변천이 합류되는 이곳에서 비롯된다'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낙강과 반변천이 합류되는 이곳이 ‘낙동강의 시발지’임을 밝혀 시민들과 그 참된 의미를 공유하고자 건립됐다.
♤ 안동 제비원(燕飛院)/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安東 泥川洞 磨崖如來立像)/ 제비원미륵불(보물 제115호)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령이다. 성조(成造) 혹은 상량신(上樑神)이라고도 한다. 집안의 으뜸가는 신으로 대들보에 붙어 한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리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집을 새로 짓거나 옮긴 뒤에 필히 성주를 모셨다. 으레 깨끗한 한지를 여러 겹으로 접은 뒤 그 속에 왕돈(둘레가 큰 엽전) 한 푼을 넣어 성주의 육신으로 삼았다. 항아리에 곡식을 넣어 받들기도 했다. 성주를 두는 장소는 집안의 중심이 되는 대청이나 안방 문 위쪽이었다. 성주신은 안동에서 왔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구전되는 무가(巫歌)인 ‘성주풀이’는 우리나라 집들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다. ‘성주의 근본이 어데메냐 경상도 안동 땅의 제비원이 본이로다. 제비원의 솔씨를 받아 소평(小坪) 대평(大坪) 던졌더니 그 솔씨 점점 자라 대부동이 되었구나. 대부동이 점점 자라 청장목이 되고 황장목이 되고 도리기둥 되었구나.’ 이 노래대로 라면 민초들의 누옥도 임금의 구중궁궐도 결국은 동향(同鄕)인 셈이다. 안동에서 영주 방면 5번 국도로 3㎞ 가량을 달리면 한티재에 이르고 제비원 휴게소가 나온다. 2㎞를 더 가면 오른편으로 이천동(泥川洞) 석불상이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부처님의 머리를 얹은 보물 제115호다. 암벽의 높이는 12.38미터이며 너비는 7.2미터다. 불두(佛頭)의 높이는 2.43미터 남짓. 크기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이스크림 위에 박힌 별사탕처럼 생경하다. 불상 자체만을 두고 감상하면 문화재적 가치는 녹록치 않은 편이다. 가로로 부드럽게 뻗은 눈매에 입술이 두텁고 미소가 은은하다. 안동 사람들은 대대로 ‘제비원 미륵불’이라고 불렀다. 안동은 영남대로의 길목이었고 제비원(院)은 나라에서 마련한 여관이었다. 전국을 떠도는 장사치들과 출장을 나온 벼슬아치들을 먹이고 재웠다. 제비원은 여관 이전에 사찰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 명덕스님이 연자루(燕子樓)라는 전각을 짓고 연구사(燕口寺)를 창건했다. 안동의 명물인 이천동 석불상도 이때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말 그대로 모양이 제비를 닮았다는 연자루는 본래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었다. 지금도 불두(佛頭)가 놓인 바위에는 주춧돌을 놓았던 홈이 선명하다.
첫댓글 피를 내어 무사산행 기원제 까지 하시고..
무더운 날씨에 수고 넘 많이 하시었습니다.
조위원장님!^^
안동이 그냥 덕산만 쏙 빼먹고 가지 말랍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인연으로 하루 더 투자를 했드랬습니다.^^
상해에서도 3일째 되니까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임시정부도 찾아가고 했는데,
안동에서 하룻밤 묵으니 웅부, 영가라는 동네가 더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덕산지맥 졸업을
촉하 축하드립니다
에름날씨에 너무 무리 하지마시고
쉬엄쉬엄 다니셔요
무리하시면 득보다 실이 크옵니다
운영자님의 산행기을 보자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더우날씨 안.줄산 하셔요
법광선배님!
선배님도 손가락에 이상이 있으신가요? ㅋㅋㅋ
선배님은 덕산을 몇 년도에 어느 계절에 하셨는지 함 찾아봐야겠네요.^^
땀을 짜내며 진행하는데 그나마 빨리 끝내서 다행이었습니다.
휴매점에서 캔맥주 생각이 간절하여 나도 모르게 집어들었다가 아참! 했답니다.^^
이제 강원도로 갈 생각을 하니 더위도 한풀 꺽이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덕산지맥 일월지맥 19년도 8월13~16일에 다녀왔습니다
네! 선배님 완주보고서 봤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날때 다녀오셨구나 하고 확인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병원가서 실밥 풀었답니다.^^
덕산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부상이 심합니다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응원 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낙동정맥 시작점 보았으니 낙동정맥 끝지점 몰운대가 생각납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세요 ~~~~
감사합니다. 세르파선배님!
상처는 누애꼬치 안에서 잘 익어가고 있습니다.
27일에는 실밥을 빼도 되겠다는군요. 절반 이상 나았습니다.
날이 무지 덥습니다만 오늘부터 한 20일만 참으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위먹지 마시고 몸조리 잘 하세요.^^
네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읽어봐도 머리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걸 보니 경력탓인가 봅니다. 길도 잘 나있지 않은 곳도 많았을법 한데 대단하십니다. 전 감히 엄두도 못냅니다.
그나저나 더워서 덧나기도 쉬운 때니 상처 잘 관리하시고 나으시길!
이슬하선배님!
덧나지 않도록 물에 닿지않게 조심했더니 거은 아물었고요..
한쪽 손으로 머릴 감을려니 안쓰던 근육이 땡긴다는게 잠시 불편했습니다.^^
덕산은 가시잡목이 없어 길이 좋은 편에 속하는데 특히 전반부 보다 후반부가 더 좋답니다.
저의 경우 가급적 주변의 역사, 문화, 인물 등을 함께 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짜투리39km 덕산을 여유롭게 진행하셨네요
우리 같으면 죽을똥 살똥 걸어야 할 거린데 말이죠.
여기저기 둘러보시며 관광까지 겸하신 덕분에 볼거리가 많아 좋기는 합니다.
다친 손가락을보니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그것도 좀 쉬시라는 하늘의 뜻인거 같으니 이번 주말에는 편안히 텔레비나 보시기 바람니다.
덕산지맥 두구간으로 졸업하심을 축하합니다.
네, 부뜰운영자님!
39km를 피치못할 사정으로 두 구간으로 나눠서 하게 되었네요.
너무 여유가 넘쳐 가욋 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벌어진 불상사이기도 하고요.
덕산지맥이 넘 가벼운것 같아 두툼하게 살을 붙여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명품지맥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만 의욕이 넘친 부분도 있구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덕분에 안동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상처는 이미 다 나은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혼자 산행하면서 손가락 상처가 커서 위급했었네요.
저도 홀대모 카페에서 전지가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구입해서 유용하게 쓰다 가윗날에 살짝 베여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이후 조심해서 사용하고 산행중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것도 넘어질 경우 크게 다칠수도 있을것 같아 이제는 꼭 배낭에 넣고 다닙니다.
빨리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
봉화동천선배님도 그런 경험이 계셨군요.
생각지 못했는데 아주 위험한 물건이네요.
사용에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하겠더라고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랄 틈도 없었습니다.^^
피가 너무 많이 흐르니까,,
옛날 효자가 손가락을 깨물어 부모님 입에 피를 떨어뜨린다던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던 사극에서 보는 단지가 생각났습니다.
옛날 전쟁터에서 칼에 베여 부상을 당하다 과다출혈로 죽었을 많은 분들도 떠올랐구요.
그런가 하면 무덤 옆을 지남서는 피가 돌고 살가죽이 붙어있는건 아주 잠깐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전지가위가 다소 굵은 나무도 너무 싹둑싹둑 잘 잘린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 잡을것 같은 그런 싸한 기분이 들었던게 사실인데 순간적으로 방심했습니다.
커버(뚜껑)를 같이 팔았으면 싶네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전지가위가 손가락을 가해를 했나요? 당장 전지 가위를 형사고발 하시기 바랍니다..산행에 전지가위를 왜 가져다니시나요?
주옥 같은 산행기에 피를 봤으니 산행기 망쳤습니다...
공사현장 소장에게는 ㅈ이곳이 덕산지맥 합수점이니 유도로를 만들어 놓으라고 교육을 시키놓으시지. 그냥 오셨나요?
도깨비선배님!
먼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길을 막고 서있는 각종 가시나무나 미역줄나무, 칡넝쿨, 청미래 넝쿨, 딸기나무 등을 온몸으로 밀며 진행하기 보다는 전지가위로 절단하는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시간이 다소 쳐지고 귀찮은 일입니다만 선두 대여섯 명이 길을 뚫으면 최소 5년은 유지가 된다고 가정할 때 뒤에 오는 후답자까지 생각한다면 남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취급 부주의입니다.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접어두어야 하는데 날을 벌린 상태로 좌우로 흔들다 손가락이 날에 스치게 된 것이죠.
복거지계라고 있잖습니까..
제가 먼저 피를 봄으로써 많은 분들이 주의를 하게 된다면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고 애써 자위를 해보네요.^^
공사 관계자에게는 알아들을 만큼 충분하게 뜻을 전달했습니다.
지맥 개념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구요.
아직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투철한 젊은이였기에 어느 만큼은 제가 이해하고 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려야 되는데 송구하옵게도 준희선생님이 아침에 전활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본인은 갈 날만 기다린다고 하시며 아낌없이 후배들에게 산에서 얻은 경험과 정을 나누려 하십니다.
일부 준희선생님을 가까이 하고 친한 척 해서 빛을 보려는 여우같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합니다만
준희선생님은 구분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마음을 터보이며 모두를 감싸 안아 주시네요.
그만하면 대처를 참 잘했느니라..
꿰맨 사진을 보고 가슴이 많이 아프더라..
그럴 땐 지혈에 쑥이 최고라며 입으로 질겅질겅 씹어 상처를 감싸면 도움이 크다고 말씀주셨습니다.
퐁라라는 건강하니 헌혈한 셈 치면 된다면서도....
박성태 선생님도 사금지맥 하며 손가락을 다쳐 불구가 된 이야기 하며 지인 분들이 뜻밖에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죽 말씀 주시네요.
운땜 했으니 이제부터 좋은 일만 있을끼라며 덕담도 주셨습니다.
이제 병원 치료 받으러 다니기도 벅차다시며 끝까지 코로나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네요.
행여 노망이란 말 들을까봐 신중을 기하기도 하고, 힘도 들고, 만사가 귀찮고...
나이가 들면 아래 사람과 흉금을 터놓고 교제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2구간, 3구간 산행을 연결해 하나의 산행기로 잘 마무리하셨네요.
글 구조상으로 매끄러운 걸 보니 문학적 소양이 다분하십니다.
동대문 길거리표 패션(타이지에 반바지)이 어떨까,
올라온 사진이 없어서 궁금증만 늘어납니다.
건능골고개 사진. 시멘트길 위의 마르지 않은 물기가
흘리신 피로 생각되어 마음이 아프고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마스크와 스틱카바, 119로 이어지는 초기대응이 훌륭해서
그나마 상처가 잘 아무는 듯하여 놀란 가슴 다소 안심이 됩니다.
산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립니다. 부디 자신을 아끼시길....
퐁라라님의 산행기를 통해 많은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예끼마을, 肯構堂의 의미, 임청각의 유래 등등....
앞으로, 맑은 물가에 이르면 임청각 이상룡 선생의 정신을 기려야겠습니다.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대동여지도>를 종합해 볼 때
낙동강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는 게 정설이지요.
옛가야 터전(고령,상주,합천,의령)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에 위치합니다.
참고로, 상주시에는 낙동면 낙동리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벌써 주왕 쪽에 마음이 가 있으실 퐁라라님, 덕산지맥 수고하셨고, 즐감했습니다.
범산선배님!
역시 정곡과 핵심을 찌르는 정보를 알려주십니다.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기에 낙동강이란 말이잖아요.
어쩐지 안동의 영가라는 지명에서 끌어들인 낙강과 동강은 어거지 같았습니다.^^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는 중동면과 더불어 보현, 팔공지맥에서 만나야할 운명이겠구요.
예끼마을은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란 뜻인데,
도산서원 다녀오는 길에 예안면을 지나며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좌우로 풍경을 스캔하다가 김방경이라는 고려말 장군의 묘소를 가르키는 안내판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진도와 탐라에서 삼별초 토벌임무를 맡고 선봉에 선 장군이며,
원나라군과 함께 일본정벌에도 두 차례 참여하였으나 태풍과 전염병으로 후퇴하였더군요.
진도지맥을 하며 자세히 포스팅을 해야만 할 인물입니다.
안동의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그리고 임청각, 도산서원...
성주풀이로 유명한 제비원도 다녀왔습니다. 역시 웅부라는 말이 맞더군요,
길거리 광고판, 버스정류장 이정표 등에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글이 눈에 많이 띄었고요.
다녀온 곳, 관광 포스팅 후기를 작성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빠른 쾌유 바랍니다. 걱정이 되네요.
이번 기회에 더위도 식힐겸 쉬어 가시기 바랍니다.
천천히,천천히 안산 하시기 바랍니다.
대길형님!
말씀대로 조금씩, 천천히 애껴서 가란 계시 같은데 발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네요.^^
마음은 폴씨 주왕지맥 접산을 넘어 합수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불볕더위를 최고로 즐길 수 있는 무더위 테마산길인데 적시를 놓치면 안될 성 싶습니다.
남들은 해수욕장이나 강수욕장을 간다는데 맥꾼들은 산수욕장을 가니 연목구어가 따로 없네요.^^
부산에도 코로나 파고가 심상찮은데 성님도 산수욕장으로 가셔야죠~
조심 또 조심해서 진행하도록 신경을 바짝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 어디가나 지금은 잡목 가시들이 가장 왕성한 계절 입니다
그렇다고 지맥을 멈추지는 못하고 다치시고 손가락이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인것 같은데 열정이 대단 하십니다
홀산시 늘 안전이 걱정 대지만 부득이하게 홀산을 하기 때문에 불상사가 없어야 하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어 버린 모습이 안따까운 모습 이네요
그래도 풍라라님 열정을 누가 감히 말리겠습니까?
늘 안산 즐산 하시기를 빌어 봅니다
저희들도 토욜 금적지맥 첫구간 초죽음으로 마무리 했네요
와룡산선배님!
아직 바빠서 금적 후기는 못 읽었습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다녀오는데 와룡면을 지나던데요.^^
와룡면에서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과의 싸움인 고창 병산전투가 현재 안동이라는 지명을 낳게 했다는군요.
토욜 무지 더웠는데 대구지맥 대원들 다 무사하신지...ㅜㅜ
하지만 대구가 대프리카잖아요. 더위에는 훈련이 되어있는 분들이 아닐까요^^
손가락은 이제 지맥에 다녀올 정도로 다 아물었어요.
아직 술은 먹지 않고 있습니다. 엊그제 퇴근하며 딱 한잔 먹었는데 진로 하얀색 약한거로 먹었네요. ㅋ~
걱정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강원도로 떠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름에 가위같은 것에 베이면 덧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큰병원에가서 꿰매고 치료를하여 뒤탈은 없나보네요.
나도 1년전에 암벽타러갔다가 바위에 손을 다쳐 손가락 5바늘 꿰맨적이 있었는데...
더욱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악산형님^^
이제는 지난 추억으로 자리메김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부상도 받았는걸요. 감사합니다.^^
덕산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또 하나의 산줄기를 마무리하면서 만감도 교차하고 허전함도 공존하리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심한 상처로 맘 고생까지 심하셨으니 잊지 못하시겠군요.
홀로 산행에서는 항시 안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불편한 부위도 얼른 쾌유하시고 멋진 마루금 답사 여정이어지시길 기대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오늘 병원가서 실밥 뽑고 밴드 붙였어요.
14일 00시에서 01사이에 꿰맸으니 12일 만이네요.
물에 불으면 벌어질 수도 있으니 1~2일만 조심하랍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님..
우선 덕산지맥 완성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저번에 손가락 부상으로 마무리 하지 못하신 덕산지맥
이번참에 마무리 하고 오셨네요.
요 위에 사진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꼬매신 상처는 많이
좋아진듯 하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더 조심하시면 좋지 않을까 하구요..
산행기도 연결해서 마무리 잘 하셨네요 ^^
날머리 합수점에 공사 현장은 저번에도 그러더니 퐁라라님 한테도
사진은 왜 찍냐 하며 따져 물은듯 합니다.
저도 날머리 가서 인증 하고 있는데 공사현장에서 올라오더니
왜?
공사현장을 찍느냐..
뭐하는 사람들이냐 꼬치꼬치 묻더라구요.
그래서 우린 공사현장 찍은적 없다..
공사현장 관심도 없고 우린 산행하는 사람들인데 여기 날머리 합수점
인증하는 중이다 하고 보냈습니다. ㅎㅎ
요즘 더위가 기승이네요.
홀산으로 다니시다 보면 더위와 깊이 우거진 풀들 과 잡목 러셀 해야 할때가
많은데 건강 챙기시며 조심히 산행 이어 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류대장님!
덕분에 상처는 잘 아물었습니다.
덕산지맥 옹골지게 제대로 했네요.
지맥 하나하나가 이런식으로 이름을 남기려 들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텐데요.^^
지금 잔뜩 벼르고 있는 주왕은,
마음 편하게 벽파령에서 두번에 끊어보자 하는데도 한쪽 귀퉁이에서 자꾸 밤치까지 가라고 꼬드기네요.
설상가상으로 운두령가는 시외버스가 끊겨 이승복기념관으로 시내버슬 이용해야 합니다.
여름철임을 감안해 잡목과 날씨를 보고 현지에서 결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지가위를 전부 압수해야겠는데 홀대모 쫄병이라 사용 주의만 당부하네요!
제발 좀 다치지 마세요.
그나저나 이곳 산행기를 읽다보면
점차 산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벅차게 느껴지니...
산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은 슬슬 뒷걸음치려드니 ㅠ
항상 사고 조심하시고 즐산되시길!
이슬하선배님!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번 산행에 또 그놈을 지참하고 갑니다.
미역줄나무가 많다고 해서요.
한밤중엔 배낭속에 그놈이 갑툭튀 할까봐 무서울것도 같습니다.^^
산길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현지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 상황에 따른 판단을 최고로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