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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4. 4. 12.~13.(금,토) - 음력(3. 4.~5.), 일출 06:05~일몰 19:03
●산행지: 철성지맥 1구간 졸업
●산행코스: 꽃무릇공원 주차장-용천사-용봉(307m)-용천봉(352.5m, 지맥분기점)-438지방도-당재-오두재-281.9m봉-송산고개-262.1m봉-341.5m봉-깡초고개-287.6m봉/병풍산분기점-318.7m봉-285.2m봉-258.4m봉-260.1m봉-236.3m봉-24번국도-154.4m봉-155.1m봉-법음사-철성산(265.5m)-오석고치(2차선도로)-122.2m봉-삵재-166.1m봉-내동치-130.4m봉-137m봉-128.8m봉-서당치-1번국도/영산로-143.1m봉-151.8m봉-113.9m봉-135.9m봉-속금산(173.1m)-마산(80.5m)-이별바우산(107.1m)-함평군 학교면 월호리(영산강합수점)
●먹거리: 생수3,000cc, 튀김건빵, 빵4, 케찹3, 사탕7
●준비물: 얇은우모, 바람막이, 매트리스, 텐트, 담요, 반팔2, 긴팔, 바지, 팔토시, 스패츠, 반장갑, 스틱, 헤드랜턴, 충전지2, 충전짹, 전지가위, 휴지, 물티슈,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양말, 띠지10
●거리: 약 36.2Km
●소요시간: 2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아침9,800, 광주송정ktx46,800, 택시11,600, 직행4,500, 택시28,200, 함평역 기차36,300, 음료3,500, 뒤풀이16,000
●날씨: 10~22
●산행경과:
* 4. 12.(금) 17.6km
- 11:39 : 용천사(꽃무릇공원)
- 12:05 : 철성지맥 분기점/ 용봉/ 군계/ 영광군 - 함평군
- 12:35 : 838번지방도/ 진실화해발굴지표석
- 12:51 : 당재(205m)
- 13:07~28 : 오두재(175m)
- 13:45 : 281.9m봉
- 13:54 : 송산고개(195m)
- 14:38 : 341.5m봉/ 철성지맥최고봉/ 면계/ 해보면 - 나산면
- 14:57 : 깡초고개 임도
- 15:39 : 287.6m봉
- 16:05 : 329m/ 삼면봉(함평군 나산면, 해보면 → 대동면)/ 병풍산분기점
- 16:11 : 331m봉
- 16:35 : 318.7m봉
- 16:55 : 285.2m봉
- 17:32 : 258.4m봉
- 18:05 : 260.1m봉
- 18:09 : 고산봉갈림길
- 18:26 : 236.3m봉
- 18:55 : 24번국도/ 함장로
- 19:22~35 : 155.1m봉/ 면계/ 나산면 → 대동면
- 19:50 : 법음사
* 4. 13.(토) 18.6km
- 06:12 : 출발
- 06:35~42: 철성산(265.5m)
- 07:05 : 오석고치
- 07:28 : 122.2m봉
- 07:44 : 삵재(75m)
- 07:57 : 166.1m봉/ 소일치
- 08:05 : 나비터널 전 갈림삼거리/ 면계/ 대동면 - 학교면
- 08:19 : 금적고개/ 백호길
- 08:53~58 : 내동치/ 경주이씨세장산
- 09:10 : 130.4m봉
- 09:19 : 마당실고개/ 양회임도/ 면계/ (대동면 → 학교면)
- 09:30 : 137m봉
- 09:52 : 128.8m봉
- 09:57 : 서당치
- 10:28 : 1번국도/ 호암고개/ 호남선철도
- 10:40 : 80m봉
- 11:15 : 143.1m봉
- 11:35 : 151.8m봉
- 11:52 : 113.9m봉
- 12:31 : 솔마재/ 금송리고개/ 4.5km
- 13:12 : 135.9m봉
- 13:28~33 : 속금산(173.1m)
- 13:40~55 : 정자
- 14:07~23: 전망대
- 14:32 : 마산(80.5m)
- 14:41 : 기동고개/ 월호길/ 중천포로/ 삼거리
- 15:15 : 이별바우산(107.1m)
- 15:41 : 중천포나루/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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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성지맥(鐵城枝脈)이란...
철성지맥은 영산기맥 불갑산(518m) 서쪽 용천사 뒤쪽의 용봉(307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서쪽은 함평천을, 동쪽은 고막원천을 경계 지으면서 341.5m봉, 철성산(鐵城山, 265.5m), 선암산(151.8m), 속금산(173.1m), 이별바우산(107.1m)을 거쳐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중천포에서 영산강에 그 맥을 다하는 31.2km되는 산줄기다. 이 산줄기는 신산경표 개정증보판에서도 길이 30km 이상 되고 강 유역면적이 200㎢ 이상 되는 151개 지맥에서 제외 되어 있었는데 그후 측정, 기타 오류 수정으로 강 기준이 200㎢ 이상으로 분류되고, 산줄기 길이가 30km 이상으로 분류되어 157개 지맥 반열에 합류된 6개 지맥(분적, 철성, 봉화, 쇠치, 오토, 청명) 중의 하나로 최신 산줄기 지도에는 올라 있다.
♤ 철성지맥 개념도
♤ 철성지맥을 지나는 동네
* 영광군(靈光郡)
전남 북서부에 있는 군으로 굴비의 산지로 유명하며, 쌀·누에고치·소금·눈이 많은 곳이라 하여 예로부터 4백(四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인구감소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으로 군내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는 낙월면의 인구는 1천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홍농읍에는 1980년대에 건립된 국내 서남지역의 유일한 원자력발전소인 한빛원자력발전소(구 영광원자력발전소)가 있다. 행정구역은 영광읍·백수읍·홍농읍·대마면·묘량면·불갑면·군서면·군남면·염산면·법성면·낙월면 등 3개읍 8개면 127개 동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영광읍 중앙로이다.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郡)인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무령군(武靈郡)으로 개칭했다. 이때 영현으로 장사현(長沙縣: 고창군 무장면 일대)·무송현(茂松縣: 고창군 성송면 일대)·고창현을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오늘날의 이름인 영광군으로 바꾸었으며, 속군으로 장성군(長城郡)·압해군(壓海郡: 신안군 압해면 일대)을, 속현으로 함풍현(咸豊縣: 함평)·모평현(牟平縣: 함평)·장사현(長沙縣)·무송현·해제현(海際縣: 무안군 해제면 일대)·삼계현(森溪縣: 장성군 삼계면·삼서면 일대)·임치현(臨淄縣: 영광군 염산면·백수읍 일대)·육창현(六昌縣: 영광군 군남면 일대)을 거느린 대읍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영광군을 유지했으나, 1629~38, 1755~64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영광의 별호는 기성·정주(靜州)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영광군, 1896년에 전라남도 영광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정리로 비입지인 망운면·진하산면·다경포를 무안군으로 이관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홍농면·불갑면·위도면·낙월면은 그대로, 진량면을 법성면으로, 동부면·도내면이 영광면으로, 남부면·남죽면·관산면이 군서면으로, 금마면·봉산면이 백수면으로, 원산면·염소면이 염산면으로, 마산면·외간면·육창면이 군남면으로, 묘장면·황량면이 묘량면으로, 대안면·마촌면이 대마면으로 통합되었다. 현내면·내동면·삼북면은 삼계면으로, 삼남면·외서면은 삼서면으로 통합, 장성군으로 이관되었다. 1955년에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63년에 위도면이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백수면이, 1985년에 홍농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함평군(咸平郡)
전남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남쪽은 무안군, 북쪽은 영광군·장성군, 서쪽은 황해에 면해 있다. 호남정맥의 여맥이 수지상(樹枝狀)으로 뻗어내려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그 사이를 영산강 지류들이 흘러 비교적 평탄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북부에는 불갑산(佛甲山, 516m)·모악산(母嶽山, 348m)·군유산(君遊山, 403m) 등 노령산맥의 봉우리가 영광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중앙부에는 발봉산(鉢峰山, 179m)·천주봉(天柱峰, 376m)·고산봉(高山峰, 359m)·기산봉(箕山峰, 148m) 등 잔구들이 발달해 있다. 기산봉은 함평읍의 진산으로 산정에는 기산산성이 있으며, 산 아래로 함평천이 흐르고 고산봉이 보인다. 남서부에는 감악산(紺嶽山, 258m)이 무안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은 나산천(羅山川)과 고막천(古幕川)이 동부를 남류하여 영산강에 합류하며, 함평천(咸平川)이 중앙을 남류하여 영산강에 합류한다. 영산강은 영암군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류하며, 엄다면과 학교면을 흐르는 중류는 사호(沙湖)라고도 한다. 토양은 대부분 이토층 및 점질토이며, 해안의 일부 토양은 염기성을 띠고 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치는 유물은 나산면·월야면·학교면 일대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그리고 월야면을 중심으로 전 군에 걸쳐 23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삼한시대에는 이 지역에 정치조직체가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고인돌이나 학교면·나산면·월야면에 분포되어 있는 옹관묘·석실분으로부터 확인되나, 그 소국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굴내현(屈乃縣)과 다지현(多只縣)이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후 경덕왕 때에 굴내현은 함풍현(咸豊縣)으로, 다지현은 다기현(多岐縣)으로 각각 개칭되어 모두 무안군에 속하였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대동면에 철성산성(鐵城山城)터가 남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에 주둔하면서 파군교(破軍橋)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중요한 싸움터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에 함풍현이 영광군의 속현으로 편입되었고, 다기현은 모평현(牟平縣)으로 개칭되어 역시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는 함풍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273년(원종 14)에 고승 고막대사가 도술로써 세웠다는 돌다리가 학교면 고막리에 있다. 1409년(태종 9) 함풍현과 모평현이 합쳐져 함평현(咸平縣)으로 개칭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당시 함평현의 호수는 315호, 인구는 남자가 1,608인이다. 대굴포(지금의 학교면 곡창리)에 전라우수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우수영이 1440년(세종 22)에 해남으로 옮겨갈 때까지 함평은 전라도 수군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정유재란 때에 향교가 소각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때 의병장으로 정운길(鄭雲吉)·정충량(鄭忠良)·이극성(李克誠)·김수연(金壽淵) 등 많은 사람들이 활약하였다. 또한, 정호인(鄭好仁)·정경득(鄭慶得)·정희득(鄭希得)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와서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정유피란기(丁酉避亂記)』·『만사록(萬死錄)』·『해상록(海上錄)』 등을 각각 남겨 정유재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함평현에서 나주부 함평군으로 되었다가, 다음해에 다시 전남 함평군으로 고쳐졌다. 1906년 5개 면이 더 편입되어 19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가 해제면과 다경면이 무안군에 이속되었고 동현내면과 서현내면이 합쳐져 기성면으로 개명되어 16개 면 482개 리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면으로 통합되어 대개 현재와 같은 윤곽이 갖추어졌고, 1932년에 다시 식지면(食知面)과 평릉면(平陵面)이 합쳐져 나산면으로 개명되어 모두 9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근대 인물로는 한말에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태원(金泰元)·김률(金聿) 형제와 심수택(沈守澤) 등이 유명하다. 특히 심수택의 의병활동은 그의 저술인 『진지록 盡知錄』에 잘 전해지고 있다. 1963년 7월 1일에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학교면의 상옥리·금곡리·뱃호리·월송리가 대동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에 학교면 사가리 일부와 함평읍 성남리 일부가 엄다면에 편입되어 1읍 8면의 행정체계를 갖추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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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철성지맥분기점-1.5km-838도로-12.1km-24번국도-2.6km-철성산-1.3km-오석고치-4.2km-내동치-3.4km-1번국도-3.5km-솔마재-1.8km-속금산-2.2km-별바우산-0.7km-중천포나루터
* 구간거리
- 접속: 함평 용천사 ~ 지맥 분기점 0.7km
- 용봉(307m) ~ 오석고치(2차선도로) 19.5km
-. 용천사 ~ 법음사: 17.6km
- 법음사 ~ 중천포 나루터 합수점 18.6km
-. 오석고치 ~ 1번국도 7.5km
-. 1번국도 ~ 영산강 중천나루 8.2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오두고개, 송천고개: 고개아래 마을 물보충 가능
- 24번국도: 인가 물보충 가능
- 법음사: 식수보충 가능
- 대동택시: 061)323-6878
- 해보면: 리즈모텔(35,000원)
- 함평읍: 기각사거리 모아모텔061)324-4848, 호텔펠리스061)323-1200
- 내동치: 경주이씨세장산비 물보충 가능
- 솔마재: 인가(개사육장), 공장에서 물보충 가능
- 학교면 택시: 061)322-6317
- 함평콜 택시: 010-3628-1217, 061)324-2010
- 다시면 택시: 010-9696-0036
- 기동마을 다사랑교회: 수돗물 가능
* 서울에서 철성지맥 분기점 내려가는 길
- 센트럴시티 ~ 함평: 16:40, 4.20h, 35,900원
- 센트럴시티터미널 ~ 광주유스퀘어: 05:30, 05:40, 06:15, 07, 07:10, 07:20, 07:30, 07:55, 08, 08:05, 08:10, 08:15,08:20, 08:25, 08:28,~ 22, 22:10, 22:20, 23, 23:20, 23:40, 23:50, 00:45, 01, 3.20h, 20,800~33,800원
- 광주유스퀘어 ~ 함평: 07:10, 07:25, 07:55, 09시, 10시, 11시 ~ 18시, 18:40, 20:05, 1.05h, 4,500원
- 용산역 ~ 광주송정역: 05:07, 05:47, 06:28, 07:21, 07:37, 07:46, 08:19, ~, 2h, 46,800원
- 광주송정역 역전 앞 시외버스 타는 곳: 무안, 함평, 영광....
- 광주송정역 ~ 유스퀘어터미널: 택시11,600원, 0.20h, 지하철 화정역 버스연계
- 용산역 ~ 함평역: 07:33, 09:46, 12:02, 16:54 19:10, 4.06~4.51h, 24,400~36,300원
- 함평공용버스터미널 ~ 용천사행 미니버스 100번: 06:25, 09:25 0.26h, 1,000원
- 꽃무릇공원: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406
- 함평역 ~ 용천사 택시: 0.22h, 28,200원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중천포나루터 ~ 함평터미널: 택시 18,000원
- 중천포나루터 ~ 함평역 택시: 0.12h, 15,000원
- 2차선 도로따라 학교면 월호리버스정류장으로 이동 100번버스 ~ 학교면, 함평역: 0.25h, 1,500원
- 다시터미널 ~ 광주유스퀘어 직행: 07:55, 10:10, 10:30, 11:55, 13:25, 15:25, 18, 20:25, 0.50h, 5700원
- 함평공용버스터미널 ~ 유스퀘어: 07:15, 08, ~ 18:10, 18:40, 20:20, 1.05h, 4,500원
- 함평공용버스터미널 ~ 서울 센트럴시티: 10:35, 4.20h, 32,500~35,900원,
- 함평역 ~ 용산역: 07:40, 10:53, 11:28, 16:46, 18, 04.12~04.51h, 24,400~36,300원
- 광주유스퀘어터미널 ~ 동서울: 12:40, 13:20, 14, 14:50, 17, 19:10, 19:50, 3.30h, 22,500~33,300원
- 광주유스퀘어터미널 ~ 센트럴: 19:45, 20, 20:10, 20:20, 21, 22:30, 23:20, 24, 3.20h, 30,800~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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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성지맥은 영광과의 경계인 모악산에서 시작해 함평군을 남으로 가로질러 나주와 접경인 영산강에서 끝을 맺는 한개의 지맥이 한개의 면만을 지나는 희귀한 경우이다. 삼면봉 하나에 산 이름은 철성산(265.5m), 속금산(173.1m), 이별바우산(107.1m)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무명봉을 지키는 산패 확인이다. 최고봉이 341.5m 정도로 낮은 산을 반복하여 오르내리는 수준이나 지맥에 늦게 합류한 벌칙으로 가시잡목 길이 험하기로는 그 어느 지맥에 빠지지 않는데 후반부 끝부분에 들어선 속금산, 이별바우산에서 태청지맥 끝자락과 영산강, 옥룡지맥을 둘러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고도가 낮아 전반적인 난도는 떨어지나 가시잡목 명성 만큼은 대단하다. 지맥의 끝 지점이 합수점과 무관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현장 교범이기도 하다. 지맥에 합수점을 주장하는 분들은 함평천과 영산강의 합수점인 동강교로 가야할테고, 이별바우에서는 억지로 진례들을 걸어 태청지맥의 석관정 이별바위와 마주보는 고막원천까지 걸어야 한다. 162개 지맥 중에 합수점으로 향하는 지맥은 고작 30개 내외인데 그걸 두고 원칙을 말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정맥은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원칙에 의해 입해처로 향하는게 원칙이나 산경표의 산줄기를 세분화한 지맥이 합수점을 향해야 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산자분수령원칙은 입해처를 말하는 것이지 합수점을 말하는게 아니다. 머리로 이해하면 되는 강이름을 굳이 중복해서 내세울 필요가 있는지 지맥꾼들의 분열을 낳은 최초 지맥에 유레카 합수점을 외치신 분들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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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면 주차장에서 약 15분 걸어야 하고 택시는 사천왕문 바로 아래까지 올라갑니다.
♤ 용천사 주차장 출발
새로 단장한 용천사 일주문을 통해 천년고찰 용천사로 들어서서 유명한 용천 샘물을 한잔 마시고 출발한다.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 용천산/대웅전
대웅전 층계 밑에 있는 사방 1.2m가량의 샘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으며, 용천 옆에 지은 절이라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등산로로 오른다. 모악산 일대(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에는 9월 중순경에 꽃무릇축제가 열린다. 꽃무릇(석산화)은 꽃이 시든 후에 잎이 피어나고 잎이 시든 후에 꽃이 피기 때문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여 상사화(相思化)라고 하는 애틋한 이름도 붙여졌다.
해보면과 바다와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해보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찾을 수가 없군요.
♤ 함평군 해보면(海保面)
해보면은 함평군 동북방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부의 불갑산 일대를 제외한 서부는 대체로 3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동부는 100m 이하의 저평한 산지와 평야를 이루고 있다. 광주광역시 및 상무대 인근지역으로 미래 지향적인 개발여건이 좋은 지역이다. 백제시대에는 다지현에 속했고 신라시대에는 다기현 고려와 조선초에는 모평현에 속했으며 1409년 함풍현과 모평현이 합해져 함평현이 되면서 함평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능면 공정일부지역이 대창리에 월악면 용천일부가 용산리에 편입되었고 편출된 지역으로는 성대와 계동일부지역이 나산면 우치리로 성산일부 지역이 월야면 용월리와 양정리로 문암이 월야면 정산리로 대수는 영광군 묘량리로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른다. 예부터 문장시장 등 5일시장이 발달하여 외지에서 이주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고 정서적으로 농촌보다는 도시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볼거리 용천사 계곡에 군락을 이루는 꽃무릇(일명 상사화)은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온 산을 붉은 빛으로 물들여 한국 자연백경 가운데 하나로 선정될 만큼 일품이다.
철성지맥에 최초 설치된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점차 수명이 다해 준희선생님 산패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부뜰이운영자님 부부가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으며 또한 지맥 반열에 늦게 합류하여 길없는 잡목가시 숲에 고생하며 길을 터주신 앞서가신 선배 산꾼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첫발을 디딥니다.
♤ 철성지맥분기점/(용봉, 307m)/ 군면리계/ 영광군 불갑면 -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에서 등산로를 따르자면 정자와 이정표(용천사 0.3km, 모악산 0.5km, 용천사 2.5km, 연실봉 1.95km)가 있는 곳에서 왼쪽 방향으로 분기점을 향한다. 용봉 이정표(구수재 0.4km, 용천봉 0.4km)에서 왼편으로 약20m 운동시설이 있는 밋밋한 봉이 철성지맥 분기봉이다며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은 여기서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로 들어선다. 이를 너머 조금 내려서면 정자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10분여 더가면 임도에 내려선다. 이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가면 구수재 아래가 나오고 오른쪽은 용천사이다. 분기점에서 영산기맥을 따라 좀 더 오르면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와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의 경계인 352.5m봉/ 4등삼각점(나주 404/ 1984 재설)이 실질적인 함평의 모악산이다. 용천봉이라고 부르고 일부 지도에는 또 다른 불갑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여기를 찍고 철성지맥을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불갑산 수도암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 불갑산(佛甲山, 516m)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와 함평군 해보면에 있는 불갑산이 주봉은 연실봉이다. 원래는 아늑한 산의 형상이 어머니와 같아서 산들의 어머니 라는 뜻으로 모악산이라고 불렀는데, 백제시대에 불교의 불(佛)자와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甲)자를 딴 불갑사가 지어지면서 산이름도 불갑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숲이 울찰하고 산세가 아늑하며 참식나무와 상사초 같은 희귀식물들이 자생군락을 이루고 있다. 2019년 1월에 불갑산 일대인 불갑면과 묘량면 일원이 도립공원으로 지정, 고시된 바 있다. 불갑산 아래의 불갑사의 창건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중국의 승려 마라난타가 서해를 건너서 맨 처음 도착한 법성포와 가까운 이 산에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불교와깊은 인연 때문인지 산은 그리 크지 않아도 암자가 7~8개나 된다고 한다. 불갑산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유격대 전남총사령부 산하 불갑지구사령부가 들어섰던 곳으로 그만큼 민간인들의 피해 또한 컸다.
♤ 838번지방도/ 2차선도로/ 정자/ 리계(해보면 광암리 - 산내리)
정수장에서 뒤쪽으로 좌틀하여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변에 6각 정자와 진실과 화해 위원회 시신 발굴지 표석이 있다. 정자 뒤로 올라간다.
♤ 호남지역 군경토벌 중 학살 사건과 백야사 토벌작전 中 발췌
과거사 청산은 근대 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과거사 청산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로써 왜곡․은폐된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역사는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진실은 공식 기록으로 표기되고, 교육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망각과의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 의문사, 고문에 의한 조작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 11사단 20연대의 작전지역은 전남과 전북 일부지역(고창, 순창)이었다. 20연대 1대대가 담당한 지역은 전남 담양과 곡성, 전북 순창 등이었는데, 1951년 3월에는 3대대와 함께 화순 백아산 빨치산 토벌작전에도 참여했다. 2대대는 장성을 중심으로 전남 함평과 영광, 전북 고창 등지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2대대 5중대가 함평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으켰다. 이런 작전 방식은 백야사의 ‘견벽청야’ 작전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빨치산 치하 지역의 주민들을 적과 동일하게 간주하여 사살한 것이다. 당시 불갑산 용천사에는 당조직과 전남인민유격대 불갑산지구가 있어서 당간부들과 좌익단체 관련자들과 상당수 은거해 있었다. 거기다가 한국군에 의한 수복작전이 시작된 이래 2대대 5중대의 무차별적인 학살에 두려움을 느낀 주민들도 대거 산으로 들어와 있었다. 주민들 가운데는 좌익관련 가족들도 있었지만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과 군경의 무차별적인 살상을 피해 어쩔 수 없이 피신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불갑산 토벌작전은 1951년 2월 19일 밤 11시경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작전은 다음날 새벽 2~5시 사이에 전개되었다. 이날의 작전에는 2대대 4개 중대와 연대 중포중대, 대전차중포중대, 수색소대가 동시에 투입되었다. 군인들은 작전이 끝난 뒤 용천사 인근에서 붙잡힌 일부 민간인들을 오두재 근처에 파놓았던 방공호로 몰아넣고 총살했으며, 확인사살까지 감행하였다. 현장에서 총살되지 않은 민간인은 불갑지서로 연행되었는데, 이들 중 15세 이상의 주민들은 ‘총살’로 분류, 2월 25일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옴팍골에서 살해되었다.
♤ 235m봉
야트막한 정상에 산패는 없고 띠지만 몇 개 휘날린다. 무난하게 지나가는 봉우리로 지맥은 급좌틀한다.
♤ 당재
한옥마을 삼거리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 묘지가 있다. 당재 내려설 때 가시잡목을 피해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내린다. 당치, 당고개, 땅재, 땅고개 고개 마루에 서낭당이 있었던 슷비슷비한 용어이다. 편백나무 숲으로 오른다.
♤ 231m봉/ 삼리봉(해보면 산내리, 광암리 → 대각리)
당재에서 오두재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지나치는 무명봉에서 지맥의 왼쪽이 광암리에서 대각리로 바뀐다. 한옥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넘어져 있다.
출발하며 미처 물을 준비하지 못해 오두마을로 내려가 물을 3리터 보충해서 올라왔습니다.
♤ 오두재(烏頭峙)/ 리계(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 대각리)
잡목 속에 오두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쓰러져 있다. 예전에 등산로를 개발한 모양인데 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등로는 희미하다. 오른쪽에 희미하게 대각리 오두마을로 하산길이 있고 왼쪽은 임도이다. 1789 호구총수 지명에,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지형이 까마귀 머리형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오두치라고 했다한다. 지맥은 직진이다.
♤ 281.9m봉/ 삼리봉(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금계리 → 산내리)
오름길에 맨발대선배님의 "칠성지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힘힘 내세요!" 산패가 있다. 돌무더기 함몰지도 있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좌틀로 꺽어서 내려선다. 아카시아나무가 무성했는데 많이 정리가 되어 수월하다. 선답자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난다. 281.9m봉을 내려서며 지맥의 왼쪽이 금계리에서 산내리로 바뀐다.
♤ 송산(松山)고개/ 리계(해보면 산내리 - 대각리)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와 대각리를 넘나드는 묵은 비포장 임도길이 지나가는 고개로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송산 골짜기에 4~50여 기의 고인돌이 늘어서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산골짜기에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1789 호구총수 지명에, 소나무가 울창한 곳에 들어선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송산이라 하였다 한다. 임산물채취금지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산을 개간하고 두릅을 심었으나 관리를 하지 않아 잡목만 무성하다.
♤ 262.1m봉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는데 산패를 놓쳤다. 우틀하여 내려서면 벌목지에 두룹나무가 심어져 있다. 등로를 오르며 뒤돌아보면 영산기맥 불갑산 연실봉이 우뚝 바라보인다.
해보면을 지나온 지맥이 나산면과 만나 경계를 따릅니다. 태청지맥 벌레고개 위 삼광시군봉에서도 태청지맥과 접하는 나산면입니다. 나산그룹도 잠깐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 341.5m봉/ 4등삼각점(함평 446/ 1984 재설)/ 철성지맥 최고봉/ 면계/ 삼리봉(해보면 대각리, 산내리 → 나산면 원선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왼쪽은 깡초고개고 지맥은 직진하여 산죽밭으로 내려서는데 양회임도로 내려서기까지 잡목과 가시가 섞여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편하게 외약고개 임도와 만나는 깡초고개로 내려서서 대각리 상하각궁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우틀하기도 한다. 깡초고개는 차가 올라올 수 있는 임도이다.
♤ 전남 함평군 나산면(羅山面)
함평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맞닿아 있다. 본래 식지면(食知面)과 평릉면(平陵面)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32년에 두 면이 합해져 나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쪽과 서쪽에 호남정맥의 여맥이 뻗어 있어 천주봉·승두봉·구절봉·옥녀봉 등 수많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나주시와의 경계에 국사봉(國士峰)이 있다. 나산천·구산천·해보천이 면의 중앙을 흐르며, 이들 하천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쌀과 보리가 생산되며, 양파·당근·딸기·완초 등도 많이 생산된다. 산지에서는 목재 생산이 많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용두리의 돗자리는 특산물로 유명하다. 그 밖에 방울토마토·동충하초·메주딸기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평∼장성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이문리와 송암리에 조선시대의 자기 가마터가 있으며, 삼축리 상축마을 뒷산에 평릉(平陵)이라는 고분군이 있다. 8, 90년대 한때 잘 나가던 자수성가형 나산그룹의 창업주 안병균 사장의 고향이 나산리 대정마을이다. 극장식 식당, 무랑루즈, 초원의집, 홀리데이인서울을 운영하고 유통, 건설, 방송, 금융까지 야심차게 진출했으나 부도로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함평군 나산면 원선리(元仙里)
원선리 원선(元仙)이 마을이 형성된 시기와 연대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는 알 수가 없으나 약 400여 년 전의 터로 본다. 함평이씨와 김해김씨가 주류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유촌(柳村), 원선(元仙), 월랑(月郞) 등이 있다. 나산면의 다른 마을에 비해 면적은 넓으나 산이 많은 오지이다. 천주봉이 주봉을 이루고 남쪽으로 구산리 북쪽으로 월봉리와 인접하고 있다. 마을 뒤에 철마산이라는 명산이 있고 쌍령재라는 두개의 재가 있으며 조선시대에 국도가 지나던 곳이다. 고을 원님이 쌍령재에 이르러서는 잠시 쉬어가게 되면서부터 가장 신선한 지역이라 칭했던 까닭에 원선(元仙)이란 마을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 307m봉
잡목 등로를 힘들게 올라선 무명의 바위 봉우리이다. 정상에 산패는 없고 걸어서하늘까지선배님 띠지가 암봉 정상을 지키고 있다. 좌틀로 내려선다.
♤ 287.6m봉/ 논골봉
편백나무 사이로 오른 봉우리로 조망은 없고 편백나무가 많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곧바로 시누대 숲을 통과한다. 서래야대선배님 논골봉 코팅지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지맥이 해보면과 헤어지고 대동면과 만나는 삼면봉입니다. 산패는 따로 없고 띠지만 달려 있습니다.
♤ 삼면봉(320m, 함평군 나산면, 해보면 → 대동면)/ 병풍산갈림길
함평군 나산면, 해보면, 대동면이 만나는 삼면봉이다. 병풍산(=옥풍산, 329.2m)으로 가는 오른쪽에 삼각점봉(351.8m)이 있어 다녀오기도 한다. 지맥은 좌틀이다. 지맥의 오른쪽이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에서 대동면 서호리로 바뀌는 삼면봉으로 지맥은 여기서 해보면과 헤어지고 이제부터 대동면과 나산면의 경계를 따른다. 불갑산 연실봉에서 분기점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능선이 바라보인다.
♤ 함평군 대동면(大洞面)
대동면은 이름과는 달리 함평군에서 면적이나 인구가 가장 작은 면으로 현 덕산리, 용성리, 운교리, 금산리, 서호리, 연암리의 6개리로 시작했으나 1914년에 기성면(현 함평읍)에 속해있던 향교리와 강운리가 편입되고 1973년 7월에 학교면의 상옥, 월송, 금곡, 백호의 4개리가 편입되어 법정리가 12개로 불어나 군내에서 면적이 가장 큰 면이 되어 이름 그대로 대동(大洞=큰고을)이 되었다. 함평군 중심부에 위치하고 환경이 잘 보존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멸종위기동물 1호인 황금박쥐,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인 먹황새, 검독수리, 수달이 서식하고 팽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의 줄나무(제108호)가 있으며 금산리방대형고분, 금성산성, 고인돌군락지, 함평향교, 월산사 등 많은 문화유적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친환경적인 지역이다. 특산품으로는 단호박, 쌈채소, 양파, 마늘, 딸기, 감, 거베라꽃 등이 있으며 친환경농법과 철저한 품질관리 및 인증으로 맛과 질이 뛰어나다.
♤ 318.7m봉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조망이 트여 원선저수지 뒤로 나산면의 천주봉이 보인다.
♤ 천주봉(天柱峰, 378.3m)
함평군의 동부 나산면의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함평군의 산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산이며, 모악산, 군유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 그대로 육중함을 느낄 수 있다. 평릉천(입석에 면소제지 옛지명)과 월봉천의 발원지이면서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조선 전기의 지리지에는 지명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함평군읍지』에 천주봉은 "함평군 동쪽 30리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도 평릉면 월평리에 천주봉(天柱峰)의 기록이 있다. 『조선지형도』(나주)에 천주봉으로 기재되어 있고 『함평군지』에 천주봉(天柱峰)은 "나산면에 있고, 위에는 화암(畵岩)이 있고, 아래는 용추(龍湫)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 285.2m봉/ 삼리봉(함평군 대동면 서호리, 나산면 원선리 → 구산리)
급경사 오름으로 조망은 없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은 우틀한다. 쌍봉을 내려서면서 지맥의 왼쪽이 나산면 원선리에서 구산리로 바뀐다. 암봉을 내려서 오른쪽으로 산 아래가 도장골이고 바로 앞에 구산 저수지가 보인다. 묘지길을 따라 임도로 내려선다.
오른쪽에 있는 관측장비가 잘 보이지 않는게 흠입니다. 어디로 가야하나 빙빙 돌다가 발견했네요.
♤ 임도삼거리/ 산악기상관측장비
직진으로 2011년도에 설치한 작업임도를 따라 양회임도길로 100m 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관측장비가 있다. 우틀로 확 꺽어 관측소 앞 임도로 진행한다.
♤ 258.4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봉우리 전후로 잡목이 심하다. 오른쪽에 대동저수지가 보인다. 지맥은 좌틀로 진행한다.
♤ 260.1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조그만 바위 봉우리로 조망봉에 오르니 왼쪽은 나산면 구산리 구산저수지, 오른쪽은 대동면 강운리 강운저수지이다. 고산봉과 가야할 철성산을 바라보고 잡목 능선을 내려선다.
♤ 고산봉갈림길/ 면계/ 삼리봉(함평군 나산면 구산리, 대동면 서호리 → 강운리)
고산봉은 직진, 지맥은 고산봉 분기점에서 좌틀로 진행한다. 지맥의 오른쪽이 대동면 서호리에서 강운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강운저수지 건너편에 고산봉이 보인다.
♤ 고산봉(高山峰, 361.8m)
함평군 대동면 덕산리 중앙부에 있는 대동면에서 가장 높은 면의 진산이다. 영산강의 큰 지류인 고막원천과 함평천의 분수령에 해당하고 산의 북서부에 함평에서 가장 큰 대동천을 막은 대동저수지가 있으며 황금박쥐 서석지이기도 하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마치 붓끝처럼 솟았기에 필봉(筆峰)이라고도 하고 향교리 골짜기 중턱에는 고려시대 고산사터에 마애불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 후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 불순분자의 잔당들이 불갑산 산속으로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이용한 주 이동로이다. 빨치산들이 대동향교 등 인접마을과 함평읍, 학교면 지역 민가까지 내려와 주요시설을 습격하고 방화, 민간인 납치, 생필품 약탈 등 갖은 만행을 저지르다 국군과 경찰에 쫓겨 달아날 때 지역의 무고한 양민들을 강제로 잡아갔다. 이 양민들은 약탈한 식량과 생필품을 운반하는 부역자가 되어 향교저수지에서 계곡을 따라 이동하여 이곳으로 올라와 고산봉을 지나 불갑산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좌우 갈림길 양편으로 띠지가 매달려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서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저는 오른쪽으로 향해 길이 없는 비탈로 내려섰습니다.
♤ 236.3m봉
맨발 대선배님 산패가 소나무에 높이 매어져 있었는데 사라진 모양이다. 법광대선배님 띠지에 수기로 적힌 고도를 확인한다. 강운저수지 뒤로 고산봉을 확인하고 24번국도 건너편으로 철성산이 보인다. 벧엘수산 오리농장이 있는 24번국도로 내려서는데 230m봉에서 오른쪽이 맥길이지만 대부분 좌틀하여 면계를 따라 내려선다. 묘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면 마지막에 찔레나무가 가시를 들이대고, 밭으로 내려서면 묘지 주변으로 밭주인이 통과하지 못하게 막아 요리저리 피해서 내려서야 한다.
약 14.7km 지점입니다.
♤ 24번국도/ 함장로/ 2차선도로
함평군 대동면 소재지에서 나산면을 잇는 2차선 국도로 함평군 대동면/ 나산면 표지판과 산불조심 깃발이 있다. 구간을 잘라 숙박업소가 있는 함평읍으로 탈출하기 좋은 지점이다. 오른쪽은 공장이고 도로 건너 밭두렁으로 묘지로 올라 좌틀하여 민가쪽으로 향하고 마지막 민가 뒤쪽 밭을 지나 산으로 진입하여 길없는 가시밭길을 헤치며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을 땀나게 오를 때까지 민가에서 개쒜이들이 엄청나게 짖어댄다.
♤ 154.4m봉/ 사랑봉 이정표(인애봉 0.3km/ 승리봉 0.5km/ 소망봉 0.4km, 월광비젼타운 0.3km)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이정표 옆에 사각 석곽묘에서 왼쪽 소망봉 방향으로 꺾어간다. 등로는 희미하지만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 있다.
지맥이 완전하게 대동면으로 진입하여 소일치를 지나 나비터널 전 갈림삼거리에서 학교면과 만날 때까지 대동면 내안을 지납니다.
♤ 155.1m/ 면계/ 삼리봉(대동면 강운리, 나산면 구산리 → 대동면 상옥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국가지점번호판이 있고 이정표상 소망봉이다. 오른쪽으로 고산봉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로는 월광기독학교 함평캠퍼스가 있는데 인애, 소망, 승리는 여기에서 세운 이정표로 보인다. 155.1m봉 직전에서 지맥의 왼쪽이 나산면 구산리에서 대동면 상옥리로 바뀌며 지맥의 좌우가 완전하게 대동면으로 진입한다. 측백나무 끝나는 곳에서 산패를 확인하고 우틀로 휘어 가시밭길로 들어선다.
♤ 갈림길/ 삼리경계면(대동면 상옥리, 강운리 → 월송리)
인애봉, 소망봉, 승리봉, 한새봉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사각나무계단을 내려서서 직진하다 왼쪽 숲길로 들어서서 묘지 있는 곳에서 밭을 건너 법음사로 내려선다. 직진하면 160.5m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법음사로 내려서며 지맥의 오른쪽이 대동면 강운리에서 월송리로 바뀐다.
♤ 법음사
태고종 사찰인 법음사에서 식수보충이 가능하고 아스팔트 도로가 닿아있어 탈출도 용이하고 주차장에 정자가 두개 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면 정자 뒤쪽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중간쯤 하수관거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떨어진다. 법음사는 참여정부에서 행안부장관과 건교부장관을 역임했던 이용섭국회의원이 고시를 공부했던 암자이다. 70년대 말까지 철성산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평지로 이전한 상태이다.
♤ 대동길/ 사각정자/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 - 상옥리
포장도로가 올라와 있는 법음사에서 물을 보충하고 비포장 임도에서 오른쪽 산길로 오르면 정규등산로와 만나고 정상까지 등로는 비교적 양호하다. 오름길에 뒤돌아보며 지나온 방향으로 고산봉, 천주봉 등의 조망을 감상하는 선답자님들이 손꼽는 조망 맛집이다. 8부능선 오른쪽으로 묘지가 있는 곳을 추천한다.
철성이라는 산과 금곡이라는 지명은 철광석과 공통 분모가 닿는듯 합니다.
♤ 철성산(鐵城山, 265.5m)/ 팔각정/ 쉼터/ 우틀/ 삼리봉(대동면 월송리, 상옥리 → 금곡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함평군 대동면 남서부인 금곡리에 위치한 산이다. 정상석이 있는 큰 돌탑 세개가 있고, 통나무의자와 팔각정이 있는 쉼터로 이정표(나막마을 1km)가 서 있다. 철성을 쌓았던 성터라서 철성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산은 천주봉 혈맥이 뻗어내려 이룬 산으로, 산은 낮으나 기암괴석이 많아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며 고막원천과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으로 웅장하며 운치를 더해준다. 철성산 주변은 대체로 산악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동쪽만은 나산천과 고막천이 흐르고 있어 이 하천 주변에는 계곡 평야가 형성돼 있다. 산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과 백제 때 쌓았다고 전해오는 500여m의 테뫼식 석성이 있다. 또 철성산성 북쪽에서는 월야면 월악리에 소재하고 있는 태청지맥의 월악산성이 잘 조망된다. 이 철성산성과 월악산성은 산성이 입지한 지형뿐만 아니라 축성법에 있어서도 서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함평군지』에 "철성산이 학교면에 있으며, 승두봉의 맥이 이어져 높게 솟고, 위에 성곽이 있고, 남쪽에 석수굴(石水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옥리 쪽 중봉에 석수암(石水庵)이란 이름은 석벽 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장마나 가뭄 때 한결같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기이함을 보여 주는 돌샘이 있다 하여 석수암이라 하였다. 약수는 영험이 있다 하여 병자들이 찾아와서 병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 함평군 대동면 금곡리 나막/금곡마을
금곡 마을 뒷산의 명칭이 금곡산(金谷山)이며 산 아래 서쪽 마을을 금적골(金積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 동쪽마을을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이라 부르다가 금적골(金迪洞 1912년 행정구역 개편명)과 금곡(金谷 1912지명)으로 나누어졌으며 1914년에는 금곡을 월곡으로 바꾸었고 그 후 금적골과 월곡을 합해 금곡(金谷)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은 지명 그대로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금을 캐는 광산이 여럿이었고 금곡리 430번지 일대가 금을 정선하던 곳이었다. 나막 마을 바로 앞 도로변에 27기의 고인돌이 있고 마을 서쪽 200m 지점의 동암으로 통하는 도로 고갯마루에 백제 돌널무덤 2기가 있는 등 주위의 문화유적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을 안고 있는 뒷산 철성산의 암벽이 비단 병풍을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나막(羅幕 1789년 호구총수 지명도에도 동일하게 표기)이라고 했다 하는데 한일 합방 후 일인들이 남악(南岳 1912 행정구역 개편 지명)이라 표기하였으나 지금은 옛 표기 羅幕으로 쓰고 있다. 나막이란 지명은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을 것 같으나 제시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아직 없다. 나막의 동남쪽 1.5km 지점에 같은 금곡리에 속하는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마을이 있다. 철성산성 동쪽에 있는 막사여서 東幕이라고 했다면 羅幕 또한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철성산과 오석고치가 거리상으로 얼추 철성지맥의 중간 정도가 되는것 같습니다.
♤ 철성산성(鐵城山城)
철성산성이 위치한 월송리 일대는 본래 무안현 금동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 개편으로 함평군 학교면으로 이관되었고, 다시 1973년 행정 개편으로 인하여 지금의 대동면 지역으로 편입 되었다. 따라서 철성산성에 관한 기록은 무안현 지리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동지지’무안현 성지조에는 “성은 동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돼 성(城)의 존재와 치소와의 거리만이 언급돼 있다. 이 점은 여타의 읍지류에서도 마찬가지 실정이다. 다만 일제시대 조사기록인 ‘조선 보물고적 조사자료’에는 학교면 동암리에 소재하는 성으로 보고되어 있으며 “둘레 300간(540m)의 석축으로 높이 1간(1.8m), 폭 4간(7.2m)이며, 곳곳이 붕괴되었다”고 조사돼 있다. 철성산성의 축조와 폐성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뿐만 아니라, 수습 유물 또한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군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성내 면적이 좁아 삼국시대 이후에는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추측된다.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 해발 220m의 철성산 서쪽 봉우리의 산세는 대체로 북쪽과 동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형(北高南底型)으로, 남쪽의 남악 마을 쪽으로는 계곡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성터에서 우틀(남서방향)로 등산로입구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능선을 따라 약 300m 내려서다 이정표를 지나 왼쪽 비탈로 내려서면서부터 길이 흐리고 사납다. 묘가 있는 곳까지 길이 없는 사면길을 내려서야 한다.
♤ 오석고치(五石高峙)/ 월송리고개/ 대동로/ 2차선차도/ 리계(함평군 대동면 월송리 - 금곡리)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와 금곡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이다. 글자그대로의 해석은 다섯개의 바위가 있는 높은재이다. 오석고치 건너편은 함평에서 최대 규모의 베르힐C.C. 건설 공사로 인해 예전에 잘 조성된 묘지도 이장되고, 공사 중이었는데 다행히 옛길이 다시 나왔다. 산죽 능선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오른 빼곡한 무명봉(95m봉)에서 급우틀하여 임도삼거리로 내려서서 골프장 가운데 길로 오른다.
전지가위가 없으면 청미래넝쿨과 찔레가시 때문에 진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 122.2m봉/ 삼리봉(대동면 금곡리, 월송리 → 백호리)
임도를 따르다 숲으로 올라서니 참나무에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매어 있다. 전후로 지독한 잡목숲이다. 갈림길에서 좌틀로 꺽어간다. 지맥의 오른쪽이 대동면 월송리에서 백호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삵재/ 리계(함평군 대동면 금곡리 - 백호리)
준희선생님 "여기가 삵재입니다" 산패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좌우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묵은 안부이다. 삵이 많이 출몰하여 삵고개라고 했다는데 삵은 살쾡이라고도 부르는 고양이과 멸종위기종 동물이다. 옛날에는 스라소니와 함께 동네 어귀에 많이 살았다.
♤ 166.1m봉/ 소일치(消日峙)
사람이 넘나드는 고개가 아닌 해가 넘나드는 도상 소일치(消日峙)를 지나 166.1m봉에 오른다. 굵은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는 조망 없는 잡목봉이다. 소일치는 한문 뜻대로 해석한다면 동서가 트여 한 장소에서 일출과 석양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름대로 라면 영산기맥과 태청지맥이 양쪽으로 조망되는 해가 사라지는 언덕이라는 멋진 이름이다. 조금 진행하니 차소리가 들리며 나무 사이로 멀리 무안-광주고속도로가 보인다. 함평나비터널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거다. 찔레나무 가시가 밭을 이뤄 반기는 지역이다.
전지가위가 없이는 온몸에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는 철성입니다. 청미래덩쿨을 제거하는데 요긴하게 쓰였고 길을 가로막는 노간주나무 가지도 잘라 길을 넓게 터주었습니다.
♤ 나비터널전 갈림삼거리/ 면계/ 삼리봉(대동면 백호리, 금곡리 → 학교면 복천리)
우틀로 꺽어서야 하는데 칡넝쿨과 찔레나무 밭 가시잡목으로 내려서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대동면 내안을 지나온 지맥이 학교면과 만나 잠시 경계를 따른다.
♤ 함평군 학교면(鶴橋面)
함평군의 남동쪽이며 광주-목포 간 중간지점에 위치한 평야지대로 호남선철도와 국도 1호, 23호선 2개의 노선이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나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속금산이 있고, 공업적 입지조건 등이 좋은 곳으로 학교농공단지와 투자요충지인 동함평산단이 있다. 주요 특산물로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팽이버섯, 부추, 맛과 육질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무화과 등이 있다. 1914년까지 지금의 무안군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금동, 진례, 좌촌면을 통합하여 학교면을 신설하여 함평군으로 편입되었다. 금동면은 지금의 고막, 복천, 마산, 월송, 백호, 금곡, 상옥리였으며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의해 월송, 백호, 금곡, 상옥의 4개리가 대동면으로 편입되었다. 진례면은 지금의 곡창, 월호, 금송, 석정리가 관할구역이였고, 좌촌면은 학교, 월산, 사거, 죽정리가 관할구역이었다.
함평역이 예전에는 학교역이었더군요. 역 앞에 있는 예전 학다리고교가 지금은 골프고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 함평군 학교면 학다리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라고 하는 곳에 옛적부터 학다리라고 불리를 들판과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배를 놓았던 닻배기(지금의 달배기)와 조세를 받았다는 동창(東倉)이라는 동명과 동창 뒤에 있는 창테산이라는 산명과 어선이 떠날 때 고기의 풍획을 빌기위하여 제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당코배기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들판이 바다였던 것을 알 수 있고, 들판에는 조수의 간만으로 인하여 물이 빠지면 많은 개울에 널려있는 조개류를 주워 먹기 위하여 많은 학들이 모여 들었고, 물이 들면 망망대해가 되어 어선의 왕래가 빈번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은 향교이고, 이십리쯤 떨어진 곳은 무안 상동이다. 향교와 상동에는 지금도 수백쌍의 학이 서식한다. 이외에도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활약하며 웅지를 키웠던 곳으로 태조께서 후백제가 왜구 일본과 국교를 맺음을 막기위하여 애쓰던 곳이요, 그 후예들이 고려를 세움에 필요한 역량과 포부를 다졌던 곳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 112.6m봉
터널 위에 있는 칡넝쿨봉과 가시잡목이 쩔은 112.6m봉에서 좌틀하여 내려서고 칡넝쿨지대를 벗어나면 버려진 묵묘같은 묘지가 너댓개 있는 곳에서 지맥은 다시 우틀로 꺽어 내려선다. 절개지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시멘트 계단이 나온다.
왼쪽으로 전주이씨세장산을 관리하는 가막사가 있습니다. 수돗물은 나오지 않지만 여름에 방화수 물이라도 필요하다면 들려야겠지요.
♤ 금적고개/ 백호길/ 면리계(학교면 복천리 - 대동면 백호리)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와 함평군 대동면 백호리를 잇는 금적고개에 내려선다. 나비터널 입구로 향하는 2차선 두개가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도로건너 옹벽을 넘어 산으로 올라선다.
♤ 100m봉/ 산치봉
특징없이 지나는 봉우리이다. 삼거리에서 1m정도 옹벽을 올라 동물길 흔적을 따르다가 마루금 능선에 붙는다. 작은봉에서 왼편에서 오는 묘지길이 있어 이 길을 따라 오른쪽 묘로 가면 좋은 길은 끝나고 가시나무 숲을 지나 내려서면 양회임도가 지나는 내동치다.
내동치를 그냥 내동댕이 치고 가면 안됩니다. 시원한 물을 구할 수 있답니다.
♤ 내동치(內洞峙)/ 내동(內洞) 마을/ 면리계(학교면 복천리 - 대동면 백호리)/ 경주이씨 제각
내동마을에서 올라서는 고개로 대동면 백호리와 학교면 내동마을을 잇는 양회임도이다. 도로 건너로 수레길이 보이지만 잠시 고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경주이씨세장산이 있는 제각이고 제실 건너편으로 오른다. 제실 앞에 묘를 관리하는 가건물이 있어 시원한 물을 구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안쪽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내동마을은 학교면 복천리의 자연 마을 중 하나로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남향이라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500여 년 전 마을이 형성되었다. 내동마을 입구에는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130.4m봉을 내려서며 완전하게 학교면 내안으로 들어섭니다. 묘지 아래에서 아주머니 두분이 나물을 뜯고 계시네요.
♤ 130.4m봉/ 면리계(대동면 백호리 - 학교면 복천리)
오름길에 잠깐 묘지길로 나서며 오른쪽 멀리 빌딩건물이 솟아있는 함평시내가 보인다. 내동치에서 올라선 무명봉으로 심한 가시잡목 지대라 여름엔 힘들겠다. 급우틀하여 학교면 복천리로 들어서서 137m봉으로 오른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130.4m봉에서 무안박씨 평장묘가 조성되어 있는 마당실고개로 내려서며 오른쪽에서 대동면 백호리 → 학교면 마산리로 바뀌는 경계와 만나 완전하게 학교면 내안으로 접어들어 내동마을에서 왼쪽으로 돌아온 양회임도 삼거리와 만나고 오른쪽 비포장 임도로 오른다.
묘지로 내려서고 왼쪽 산길로 들어서 철망울타리에 가시잡목을 따라 올라섭니다.
♤ 137m봉/ 삼리봉(학교면 복천리, 마산리 → 죽정리)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준희선생님 산패로 교체되어 소나무에 매어 있다는데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수렛길을 버리고 지독한 가시잡목을 헤치며 능선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사유지인듯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는 무명봉이다. 오른쪽은 옥마산(122.7m)가는 갈림길이고 지맥은 좌틀로 꺽어서 내려선다.
가시잡목이 심하지만 대부분 봉우리가 가파르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 128.8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가시잡목 지대이고 오른쪽으로 3분여 내려서면 서당치이다.
♤ 서당치(書堂峙)/ 삼리봉(학교면 죽정리, 복천리 → 고막리)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좌우로 흐릿한 옛길이 있는 안부로 지맥의 왼쪽이 학교면 복천리에서 고막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한문이 전해지니 서당으로 오가는 등굣길이 아니었을까. 길이 잠시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사나운 잡목이다. 함평노공 묘지가 있는 둔덕봉에서 조망이 트이고 호암고개를 지나는 1번도로와 호남선 철로가 보인다. 죽정리 호암(虎岩) 마을은 마을 뒷산에 범(虎) 형상을 하고 있는 범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고막리가 고향인 분의 말에 따르면 고막리에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한 흔적이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지 못해 아쉽네요.
♤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古幕里)
고막리의 지명은 고막원이 있었으므로 원몰, 고막 또는 고막원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원고막, 신촌, 광진, 송암, 재생원 마을이 있다. 원고막(元古幕)마을의 지명에 원자가 붙은 것은 고려와 조선조 때 이 곳에 원(院)이 있었기 때문이며 고막이란 이름은 고막대사(古幕大師)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약 700여 년 전에 도술로 마을 앞에 돌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신촌(新村) 마을은 원래 원고막에서 살았던 사람이 새로운 촌락을 형성하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광진(廣津) 마을은 마을 앞이 바다였으므로 나룻배가 왕래하여 나루터가 있었는데 나루터의 명칭인 광나루터에서 유래되어 마을 이름을 광진(廣津)이라고 하였다. 송암(松岩) 마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지형으로 보아 마을 뒷산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송암(松岩)이라고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재생원(再生院) 마을은 군내 각지를 떠돌던 음성 나환자를 정착시켜 재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하에 정착했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재생원이라 하였다.
약 25km 지점입니다. 지맥이 후반부로 접어드네요. 왼쪽이 함평역, 오른쪽이 고막원역입니다.
♤ 호암(虎岩) 고개/ 1번국도/ 4차선도로/ 영산로/ 호남선철도
수레길을 따르다 왼쪽 숲으로 내려서며,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가 가파른 절개지를 토사유실방지용 철망을 붙잡고 내려선다. 지맥을 절단한 1번 국도 좌우 어딜 봐도 마땅히 건널 방법이 없어 차량 통행이 뜸한 틈을 타 중앙분리대를 넘어 무단횡단한다. 바로 옆에 호남선철도는 다행히 다리(호암2교)로 건넌다.
호남선 철로를 건너 오른쪽 수렛길을 따르면 편하지만 왼쪽 명감나무와 간벌목이 혼합된 가시밭길로 들어서서 해발고도 80m 정도를 오르니 용처 궁금한 시멘트 구조물이 여러개 보이고 왼쪽에 쌍묘도 보입니다.
♤ 143.1m봉/ 삼리봉(학교면 죽정리, 고막리 → 금송리)
벌목지 잡목과 간벌목이 가로막는 능선을 약 25분 진행하여 156.9m봉 분기점(128m봉)에서 좌틀로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를 따르다가 곡각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빡시게 올라선 잡목 봉우리이다.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우틀로 휘어져 내려서는데 잡목지라 길찾기가 애매하다. 지맥의 왼쪽이 학교면 고막리에서 금송리로 바뀐다.
♤ 선암산(151.8m)/ 2등삼각점(나주 25/ 1990 복구)
소나무 지역이다.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잡목과 전쟁을 치르며 진행한다. 정상 오른쪽 조망바위에서 학교면 남서쪽과 지맥의 끝자락 속금산, 이별바우산, 골프장, 영산강까지 환하게 보인다. 철성지맥을 내려오며 오른쪽으로 서해바다로 갈래치는 봉대지맥이 보일진데 함평의 서쪽은 영산기맥에 양보하고 철성지맥은 동쪽으로 치우쳐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영산, 태청, 옥룡을 끝냈으니 주변이 눈먼 장님은 아니다.
♤ 113.9m봉
오른쪽으로 임도가 이어지지만 선답자 띠지를 따라 오른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 학교면 죽정리마을
가시잡목 구간을 헤쳐 힘들게 죽정리 마을로 내려서니 개사육장 옆 울타리에 난 개구멍을 통과한다. 야밤이라면 개구멍을 발견 못하고 가옥 울타리를 우회하느라 조금 힘들것 같다. 개 우리에 도사견이 잔뜩하고 대형 냉동고가 몇 개 있다. 중천포로를 따라 우틀하여 솔마재로 양회임도로 내려서기도 하고 정상에 묘지가 세개 있는 앞에 작은 봉우리를 올랐다가 묘지길로 내려오기도 한다.
길 건너 농막에 가끔 주인이 들리는지 개가 몇 마리 묶여 있고 엉성한 대문이 잠겨 있는데 대문을 넘어서 들어가야 산으로 가는 넓은 임도를 만납니다.
♤ 솔마재/ 금송리고개/ 중천포로/ 2차선도로/ 이동통신중계탑/ 리계(함평군 학교면 금송리 - 죽정리)
솔마재는 진례지역에 들어오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로 학교면 소재지 쪽에서 손님이 오면 이곳 고개까지 마중을 나와서 손님을 맞이했다 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고개 손맞이재가 변해서 된 말이라고 한다. 주변으로 상여집이 많고 밤에 돼지고기를 가지고 고개를 넘으면 귀신이 나온다고 전해오는 무서운 곳이었다고도 하며 과거에는 주막도 있었고 민가도 몇 채 있었다고 전한다. 버스정류장에 솔마재라고 적혀 있고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있다. 10번 군도가 지나는 도로를 건너 견공들의 떼창을 뒤로하고 오른쪽 민가 뒤의 넓은 임도를 따라 산으로 오른다. 음나무단지를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함평다이너스C.C.에서 라운딩하는 골퍼들이 보인다. 음나무를 일부 지방에서는 엄나무라 부르며 어린잎은 개두릅이라고 한다. 줄기에 가시가 많아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잡귀를 물리친다 하여 대문에 걸어놓기도 하였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한약명으로 줄기는 해동피, 뿌리껍질을 해동수근이라 하여 신경통이나 관절염에 사용되어 왔다.
새순이 파란 넓은 두릅밭을 한컷 잡았어야 했는데 밧데리를 충전시키느라 배낭에 잠시 넣어두어 꺼내지를 못했네요.
♤ 동강교삼거리갈림봉/ 삼리봉(학교면 금송리, 죽정리 → 월호리)
솔마재에서 약 15분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함평엘리체C.C.가 보이고, 관리가 잘 되고있는 넓은 음나무 단지로 들어서는데 음나무 밭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고 좌틀하여 내려서는 지점에서 지맥은 계속 엄나무밭 옆 비포장 임도를 따르고, 오른쪽으로는 함평천과 영산강의 합수점인 학교면 곡창리 사포마을 사포나루 동강교로 가는 산줄기가 갈라진다. 여기서부터 합수점까지 금송리와 월호리의 경계를 따른다. 박성태선생님이 처음 철성지맥을 지정할 때 오른쪽 무명봉으로 이어가 함평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하였다가 중간에 거대한 함평 엘리체C.C.골프장이 가로막혀 진행이 어렵고 속금산과 이별바우산이 산줄기로서 더 뚜렷하고 확실하여 차후 변경되었다고 전해지는 지점이다.
이제 합수점까지 약 4km, 100분 남았네요. 힘을 내봅니다.
♤ 135.9m봉/ 전망바위봉/ 의자
오름에 준희선생님 힘힘힘 격려표지판을 지나고 정상에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정표(곡창임도 3.5km, 속금산 0.4km, 금송이 0.4km)가 서 있다. 이별바우산, 속금산을 바라보는 바위봉이다. 조망이 좋다. 엘리체골프장에서 함평천과 영산강의 합수점인 사포마을 동강교로 분기하는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속금산을 내려서니 태청지맥 마지막 이별바위가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정자가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신발도 털어내고, 윗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다가 내려섭니다.
♤ 속금산(束金山, 173.1m)/ 용금산(湧金山)/ 4등삼각점(영암 408/ 1999 재설)/ 산불감시초소
지맥의 처음과 끝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진 곳이고 오르내리는 길도 무난한 편에 속한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함평군 최남단에 있는 학교면 금산마을 뒷산으로 영산강을 굽어보고 있다. 장군 형상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주위에 옥마봉(말), 투구봉, 칼재 등으로 불리는 산을 거느리고 있고 산 남쪽에 위치한 월호리 망월동 구릉에서 옹관묘군이 발견된 바 있으며 금이 많이 나오는 산이라 하여 속금산 또는 용금산이라고도 부른다. 함평다이너스티 골프장이 있고, 태청지맥과 철성지맥의 끝으로, 그 가운데 영산강에 합류하는 고막원천을 바라본다. 동여도(전라도)에 속금산(束金山)이 고막원과 함께 영산강 본류 주변에 표기되어 있고 광여도(무안)에 진례면 서쪽 영산강 본류변 가까이 속금산이 보이며 군세일반(함평)의 지도에 속금산(束琴山)으로 함평군지에는 속금산(束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주, 광주에서의 왕건과 견훤의 역사를 떠올리며 왼쪽 멀리 보이는 나주시에서부터 중간 옥룡지맥과 오른쪽으로 영산기맥이 흘러가는 무안군 몽탄면을 좌우로 넓게 흝어 본다.
합수점에서 월호리 삼거리 기동고개를 지나 속금산 아래 금산, 금송리를 지나 학교면까지 약 5km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까짓 그 정도 쯤이야 걸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 금산(錦山) 마을/ 함평군 학교면 금송리
마을 앞에 고인돌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마을의 정착년대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입증한다. 여러 성씨가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속금산이라는 마을 뒷산의 명칭을 따서 마을 이름을 금산(錦山)이라고 하였다고 하며(1789년 호구총수 지명 束錦山) 속금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속금산은 원래 용금산이라 했는데 그 이름처럼 금광이 많이 있다.
♤ 마산(80.5m)/ 조망봉/ 나주김씨세장산비
대숲에서 망월동으로 가는 오른쪽 좋은 길을 놔누고 왼쪽 희미한 길로 내려서면 대나무 숲을 지나서 밭을 건너 올라선 잡목봉이다. 띠지가 잔뜩한 갈림봉에 올라 왼쪽에 있는 조망봉을 먼저 다녀오는데 약 20분 소요된다. 80.5m봉 정상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영진 5만지도에 마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마산은 암봉이다. 좌틀하여 가시넝쿨을 헤치며 마지막 고개로 내려선다.
지맥을 마치고 중천포나루 합수점에서 학교로 나가는 버스를 탈려면 기동마을 앞 도로를 걸어서 여기로 다시 나와야 합니다.
♤ 기동고개/ 망월고개/ 중천포로/ 리계(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 금송리)/ 삼거리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와 금송리를 잇는 2차선 도로인 망월고개/기동고개에 내려서서 길건너로 올라선다. 마루금에 절개지가 생겨 묘지 뒤로 간벌목과 시누대와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오른다. 급경사이지만 마지막이니깐 오를만 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이별바우산으로 가며 월호리 칼봉(60.6m)과 영산강 너머 옥룡지맥 산줄기를 바라본다. 곡창리 학교마을 학교천과 영산강의 합수점 동강교도 찾아본다. 동강교 뒤로 영산기맥이 흘러가는 곳이 무안 초당대가 있는 연징산 정도가 되는가 보다.
강건너로 옥룡지맥 구수봉에서 분기한 수학산 능선이 석관정으로 다가오고, 공산면 신곡리 들을 지나 오른쪽으론 동강리 고문산과 망해산의 산줄기가 비춥니다. 눈썰미 좋은 분은 옥룡산의 철탑을 찾아볼 수도 있구요.
♤ 이별바우산(別巖山, 107.1m)/ 철성지맥 마지막 봉우리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고 정상에 증통정대부호조참의 전주최공 합장묘가 묵혀 있다. 정상에서 8분여 가면 지맥의 마지막 바위봉으로 나라에 변고가 있어 부름을 받은 장정들이 황포돛배에 오를 때, 강변을 따라오던 가족들과 아내들은 이별바위 부근에 이르러 더는 배를 쫒지 못하고 이 봉우리에 올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 장소로 그 뒤로 이별 바우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이별바위에서 강 건너로 구수봉에서 고문산, 망해봉까지 옥룡지맥을 이어본다. 왼쪽 아래로는 고막원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두물머리 석관정이 바라다 보인다. 합수점을 쫒는다면 저곳에서 태청지맥과 마주보며 끝나야 하겠지만 산자락은 영산강 중천포에서 끝난다. 지맥에서 합수점은 의미가 없다. 162개 지맥 전체가 모두 합수점으로 향해야 원칙인 것이지 일부 30개 내외가 합수점으로 향하는 것을 두고 원칙이라 억지를 쓰긴 어렵다. 산경표 산자분수령원칙에 의해 정맥이 입해처로 향하는 것처럼 우연 내지는 변형으로 신산경표의 일부 지맥이 합수점으로 향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암봉에서 40m 되돌아 나가 오른쪽 서남방향으로 내려서서 시누대군락지로 내려선다.
♤ 영산강/ 중천포 나루터
중천포는 영산강으로 연결되는 나루터로서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로 건너가는 나룻배가 있었으며 배가 드나들 때는 번창하였던 곳으로 교통편에 큰 몫을 하였다. 지금은 나루가 없어지면서 1983년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으로 이 지역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이 건립되어 가동 중이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정도로 번화 했으나 지금은 단 몇 호의 가옥이 남아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로 풍경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영산강을 따라 목포와 무안을 가는 826번 강변도로가 신설되었다. 철성지맥의 실질적 종착점인 중천포 나루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택시를 불러 함평역으로 이동한다. 학교에는 서울로 가는 버스는 없고 가까운 함평역에서 기차를 이용한다.
♤ 에필로그
하루걸러 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어느 정도 올라왔습니다. 만추와 청명의 10도는 같은 10도라도 초승달과 그믐달의 차이가 납니다. 어느덧 벚꽃이 지고 있는데 설악산 대청에는 아직도 흰눈이 쌓여있으니 봄이 올해는 지각생이라도 된듯 하네요. 지맥 반열에 늦게 뛰어든 새내기라 인적이 닿지 않아 그 원시림을 다듬기까지 12성상의 세월을 보낸 지금에 와서도 철성을 사납다고 한다면 선답자님들께 면구한 엄살이 되겠지요. 다만 새순이 사나워지기 이전에 철성을 건너보려는데 함평 내려가는 대중교통 부터가 고비로군요. 하루 치 거리이지만 오가는 교통편 때문에 하루에 끝내기는 어려워 무박으로 하는 분들이 많은 지맥입니다. 서울에서 첫차로 광주를 걸쳐 09:30분에 함평에 도착하면 딱 5분전에 용천사 가는 미니버스가 출발하네요. 광주송정역 역전에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도 모르고 택시를 타고 유스퀘어로 들어가 함평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광주송정에서 유스퀘어까지는 지하철로 화정역까지 가면 버스도 있고 택시비도 줄일 수 있군요. 또한 광주송정역에서 영광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문장에서 내려 문장택시를 이용하면 용천사까지 보다 가깝게 갈 수 있습니다. 12시에 출발하여 첫날 24번국도나 법음사까지 간다면 선방이고 철성산을 넘어 오석고치까지 간다면 성공입니다. 철성산 정자에 8시에 도착해 비박을 할까도 싶었습니다. 야간에 내려가서 철야로 한방에 가는 방법도 있겠으나 철성은 길이 사나우니 철야산행은 다음 지맥부터 고려해볼까 합니다. 전지가위가 없이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지맥이었습니다. 영산강에서 지맥을 끝내고 학교면까지 걸어나기기로 하고 금송리를 지나 방우동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석정리에서 나오는 조적공사를 한다는 부부가 차량을 멈춰 함평역까지 태워다 주십니다. 목포로 가신다더군요. 공사차량이라 누추하다 연신 말씀하시는데 편의점에 내려주시면 음료수라도 사드리고 싶다고 하니 외려 내릴 때 얼음박스에서 음료수까지 꺼내주시네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뜨거운 날씨에 가시잡목숲 뚫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세한 산행기 덕에 지역의 잊혀져가는 이야기 거리도 알게 되네요.
함평골프고는 구) 함평농고가 전신이고, 학다리고는 과거에 나름 지역의 명문 사학이었습니다.
학다리고가 면단위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자 명맥을 잇기 위해 학교재단은 큰 결단을 하였습니다.
공립으로 전환하여 함평여고, 나산고와 통합하여 '함평학다리고등학교'가 되었고, 함평읍에 있던 함평골프고와 부지를 서로 맞바꾸어 함평읍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네, 봉화동천선배님!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영산기맥에 버스로 함평을 지나며 김원기레슬링고등학교도 본 기억이 있네요.
처음에는 함평역전 앞에 군부대 막사인지 알았는데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골프고라고 하시더군요.
날씨가 갑자기 더웠습니다만 벌써 덥다고 하면 안되겠죠.아직은 진행할 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철성 졸업 축하드립니다.
졸업하는날 눈물 흘렸지요..?? 아니면 졸업 의미가 없는건데..
야간근무 수고 넘 하시었어요...이젠 주간근무로 전환해 줄만도 한데....
고문님!
철성은 전지가위 없이 그냥 갔다간 뒤로 물러설 뻔 했습니다.
청미래넝쿨이 왜그리 많은지요. 찔레나무 밭도 가끔씩 펼쳐졌습니다.
암튼 영산기맥 할 때도 함평을 지나며 치를 떨었는데 역시나 함평이네요.
경수, 장암, 변산은 지역적인 연관이 있으니 한꺼번에 하고,
진도는 나중에 섬지맥을 하며 한꺼번에 할려고요.
호남에서 힘들다는 지맥은 이제 사자만 남겨두었는데 겨울철에 할려고 합니다.
다음엔 장령, 식장, 금적, 팔음, 팔봉 인데요.
거리도 꽤 되고 한여름에 할려니 배낭 가볍게 하고 철야로 진행할려고요.
상배성님이 팔음은 물이 있어 여름에 하기 괜찮다고 알려주시네요.
철성지맥 원샷으로 마무리 하셨네요
장도를 길을 걸었네요
예전 우리도 웟샷으로 진행했는데 2월이라 해가 짧아서 어둠속에 내려 왔지요
그때 마지막 별바우산은 오르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 근처까지 갔던 기억이 남니다
이지맥에도 두릅이 많던 기억도 있고 예전 묵억님 연송님 세명서 했습니다
그때 우리 기록은 34.15km 11시간 54분 걸렸습니다
지나온 구간이라 다시 기억이 새롭고 홀산으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와룡산선배님!
선배님 후기는 당연 다 숙지하고 출발했습니다.^^
기록은 대단히 빠르셨어요. 겨울에 추위도 있고 속도있게 가신듯 합니다.
저는 오룩스 기록이 34.47km, 28.16분 나왔습니다.
몇 걸음 더 가서 껏으니 거리는 똑 같아요.
비박 10시간 정도를 뺀다고 해도 제가 빠른 속도는 아니네요.^^
짐도 있고 여유있게 갔습니다.
전지가위가 있어 얼마나 수월하게 갔는지 모릅니다.
우회 한 곳도 없고, 특별히 알바를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럭시는 작지만 꽉찬 느낌이 드는 당찬 지맥이었네요.
너무 늦지않게 가서 다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틀간에 걸친 철성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날씨도 맑아 함평 쪽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영산갈 날머리의 나룻배와 주변정경이 운치있네요.
36km나 되는 거리를 하루 꼬박걸려 마무리하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산길도 안전하고 멋진 추억되시길 기대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힘들다는 철성지맥을 끝내서 시원합니다.
가다보니 못 갈건 아니던데 전지가위가 없다면 장담을 못하겠어요.
태청지맥을 자주 바라보지 못했구요.
천주봉도 고산봉도 제대로 음미를 못했습니다.
속금산처름 봉우리가 뾰족하다던가 하는 특징이 없더군요.
천주봉이 보이는 쪽으로 월악산이 있을텐데 찾아보질 못했구요.
고산봉은 조그만 했습니다.
151.8m봉을 선암봉이라 하던데 아래가 학교면 죽정리 선암마을이라 그런가봐요.
거기부터 조망다운 조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1/4분기 계획에 들어가는데 벌써 여름이 왔네요. 걱정입니다.^^
저보다 하루 앞서 가셨습니다
전 토요일 철성지맥 진행입니다
잡목숲을 헤치고 진행 철성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세르파대장님!
이제 얼마 안 남으셨죠? 카운터다운 해야는거 아닙니까~
요즘 부쩍 마무리 들어가신듯 더 열정적이시네요. 곧 마칠실것 같아요.
어떻게 우연이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제 트랙을 가지고 따라 오신건 아니지만 앞선 이의 흔적은 많이 보셨을것 같군요.
세르파대장님의 철성 후기도 얼른 올려주셔야죠, 우선 먼저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