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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2:1-5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워싱턴 상원의원이신
신호범 장로님의 자서전 [사랑하며 섬기며]라는 책에 쓰신 글을
어느 목사님이 정리한 글이 있어서 읽고 제게 너무 은혜가 되어 먼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미국이민 100년사에 가장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뽑힌 사람이
미국 상원의 신호범 박사님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뛰어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자신을 이끌었고...목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답니다.
신호범 박사님이 워싱턴주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0.4%의 표차이로 낙선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낙선하고 난뒤에 자신이 주지사가 안 된 것 보다는
한인 교포들에게 안겨준 상실감에 도저히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을 치듯 떠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망을 치고 싶은데...
자신이 도망가서 숨을 만한 공산은 세상 어디에도 없더랍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겁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박사님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화려하고 복잡한 곳은 인간을 더 외롭게 만듭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흩어져 고통 속에 사는 우리 민족이 있는 곳을 한번 둘러봅시다.”
그러기에...신장로님이 그곳이 어디입니까? 라고 하니까...
목사님이 제안한 곳이 우주베키스탄이더랍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박사님의 도전은 우리의 도전입니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경쟁에서 떨어져봐야 이기는 법과 붙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목사님의 조언을 받은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목사님 말씀은 고맙습니다..그러나 나는 더 이상 우리 한인교포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주 하원으로 있을 때 연방하원에 도전했다가 떨어졌고..
다시 워싱턴 주지시에 도전했다가 또 떨어졌으니 동포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을 안고 눈쌓인 우주베키스탄의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북적대는데 난방이 되지 않아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조선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신박사님에게 저...밑에서 끓어 오르는 뭔가 있었답니다.
그것이 민족애더라는 겁니다.
우주베키스탄에 1937년 스탈린이 연해주에 살던
우리 조선인 16만명을 열차 화물칸에 태워 강제 이주시킨 지역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굶어 죽기도 했지만
더더욱 어려웠던 것이 그곳에서
조선인이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엄청난 탄압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사람들에게 유색인종이라는 차별대우를 받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났고 신박사님의 마음속에 다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기시작했답니다.
거기서 다시 목적이 정해졌고...목적이 정해지니 포기해서 안된다는 확신이 생기고
마침내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재선까지 이루어
지금은 미국의 한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셨다는 겁니다.
제가 오늘 신호범장로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분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으니까
거기에 다다르는 장애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전체는 중풍병자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겁니다.
중풍병이란 어떤 병입니까?
뇌의 어느 부분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어들거나
뇌내출혈이 일어나 뇌가 손상되어 일어나는 일종의 신경장애라고 합니다.
이 병이 오게 되면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입과 얼굴이 삐뚤어지고 몸의 한쪽을 못쓰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양쪽다 마비가 와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암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병이 중풍병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이시대에도 중풍병을 사전에 예방은 할 수 있지만 완치는 힘들다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예수님 시대에는
난치병이나 다름이 없는 병이 중풍병이니까
이 사람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거기다 이 사람은 한쪽에 풍이 온게 아니라 전신마비자인가봅니다.
자기 스스로 나온 것도 누구의 부축을 받아서 온 것도 아니라
네 사람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서 예수님이 계신곳 까지 온 것을 보아서
아마도 이 사람은 전신마비가 온 심각한 상황이었던가봅니다.
이렇게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때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제가 이 말씀을 처음 들을 때에
이런 제목의 설교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네 친구의 믿음....네 친구의 사랑....네 친구의 헌신....
아마도 여러분들도 이런 제목의 설교를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제가 주일학생을 가르칠 때에 그림까지 그려서
내 친구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했던 적이 있어더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본문을 읽고
제 성경은 간단한 주석까지 달려 있는 성경이라
동일한 내용의 성경구절을 위에다 같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오늘 막2:1-12절까지의 동일한 내용이 마9:1-8에도 기록되어 있고
또한 눅5:17-26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궁금해서 이 3군데의 성경을 다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고 제가 느낀게...아...네 친구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되었다는 겁니다.
성경을 찾아봅시다....
마9:1-2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리라....
눅5:18절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그리고 오늘 3절을 다시 봅시다
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제가 말씀을 다 찾아서 읽어보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게 두가지를 찾았습니다.
1) 네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 어디에도 친구라는 말이 없다는 겁니다.
2) 네 사람의 수고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 네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 한 중풍병자를 /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 예수께로 올새...
오늘 3절을 보시면 네 사람이 자원해서 메고 왔다기 보다는
주위의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사례를 줬는지 어떤 도움을 요청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이....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왔다는 겁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핵심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즉 네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모셔오게 하였다는 겁니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네 사람의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네 친구의 믿음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합니다.
몇 명인지 이들이 가족인지 친구인지 동네 사람인지...
아니면 사업상 만난 동역자인지...알수 없지만
그들의 믿음을 예수님에 보셨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동일하게...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누가복음에도 동일하게...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던 그들이 누구인지는 성경이 말씀하지 않으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한가지는 예수님이 이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보신 이들의 믿음이 어떤 것이냐는 겁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 봅시다.
1절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1:29절에 나타난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신 것으로 주석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은 그 집에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임에도
그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셨다는 겁니다
3절은 이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왔다는 것이고
4-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더라...라고 합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예수의 소문을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 소문은 예수님이 시몬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각색병도...나병도...
거기다 귀신까지 쫓아 낸다는 소문을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이라면 능히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집안에 사람들이 가득차서 발디딜 틈이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늘은 안되겠다...다음에 다시 오자...이러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에게 중풍병자를 메고오게한 사람들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붕위로 올라가자...지붕을 뜯자...
그리고 중풍병자를 예수님이 계신 곳에 달아내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이 사람들은
길이 막혀도...문제가 있어도....장애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참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포기하지 않으면 믿음입니까? 그건 아니지요
불의한 일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믿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을 믿는게 믿음입니다.
좀 쉽게 말씀을 드려본다면....
예수님의 병고침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 은혜를 포기하지 않음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마15:22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5장에 보시면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소리를 지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나이다”라고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들은 척 만척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이 여인이 고함을 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나이다”라고합니다
예수님의 무반응과 가나안 여인의 고성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여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그때서야 말씀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나는 너하고 도무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다시 간청을 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주님이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난 희망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자 주님이 다시 말하기를 더 심한 말을 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무슨 말입니까?
개 취급을 합니다....넌 개다...자녀가 먹을 떡을 어떻게 개에게 주냐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합니다.
난 개라도 좋습니다....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그 부스러기 사랑이라도 자기와 딸에게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딸이 나으니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과 마15장의 내용이 주는
중요한 교훈이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는 겁니다.
가나안 여인도...오늘 본문의 중풍병자를 모셔온 사람들도...
그들은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있었는데.... 그들에게 장애가 있었고..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진짜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어떤 장애물이나 문제가 있을찌라도
그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들도 가나안 여인도...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은혜만 베푸신다면...능치 못함이 없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세상 것을 얻기 위하여 포기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사모함을 포기 하지 않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약2:26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이들의 행위가 믿음이었다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한결같은 믿음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오늘 이들에게 문제가 있고 장애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다니엘...바울...에스라 등등
그들에게 다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오직 그들은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년을 살고 돌아보면...믿음의 여정들이 엉망징창일겁니다.
갈지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돌아간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뱅글뱅글 돌아다녔을 때도 있을 겁니다.
믿음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오직 한길을 가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그때 그때 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한결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갑시다...오직 주님만 바라봅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