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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길잡이 |
작품 제목을 상징하는 '광장'은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충족을 제공해 주는 심리적 공간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처음에는 이 '광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으로서의 '광장'과 '밀실'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광장'은 공식적인 의견 교류가 이루어지는 상식적 합의의 공간이다.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공간인 이 '광장'은 완전한 일치를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 '광장'이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면 개인적 사고와 행동의 공간인 '밀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명준이 '광장'과 '밀실'을 대비시키면서 주장하는 것은 '광장'과 '밀실'이 불완전하게나마 보장되거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는 개인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치와 보람을 느끼며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해방기의 남한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있다. 미국의 구호 물자를 암거래하고' 정치적 담합을 주로 하며,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경찰권의 아래에 놓여 있는 남한의 모습이 이명준의 비판적 자세와 사유, 대화를 통해 제시된다. 이명준은 북한에 영주한 아버지에 대한 연좌로 잡혀 들어가 고문을 당하는데, 경찰서에서 피투성이로 나와도 어떠한 항의도 소용없는 남한 사회에 허무감을 느끼며 애인의 집에서 칩거하다가 북한으로 넘어간다.
북한은 그 반대로 '밀실'없는 '광장'이다. 혁명의 구호와 교조화된 마르크시즘에 의해서 개인의 의견, 역사적 발전은 획일적으로 경직되어 있다. 이명준은 매일 자아 비판과 사상 점검이 지속되며 개인의 열정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사회에 실망하고, 동굴로 상징되는 '밀실'에서 애인인 은혜와 함께 개인의 '광장'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이 역시 전쟁 중 은혜가 죽음으로써 다시는 바랄 수 없는 과거의 공간이 되고 만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실'에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최소한의 '광장'도 보장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실상을 통해 검증된다. 남한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북한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각각 미국과 소련의 선진 이론을 배운 것이다. 그러나 그 기반이 없었음으로 해서 이는 결국 '풍문'에 지나지 않고, 그러한 이론의 기반이 되는 '광장'과 '밀실'의 조화 없는 경직된 사유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이데올로기의 최대 목표이자 최소한의 조건인 '광장'을 허용하지 못하는 역사를 가진 사회로 나타난다.
이명준은 중립국 선택에 이어 제3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자살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경직성과 자신의 갊에 대한 애정의 딜레마에서 나타난 선택이다. 중립국 선택에 있어서 그를 회유하려는 북한과 남한의 설득자들에게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허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지만, 진정한 삶이 타국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괴로움이 이명준의 마음속에 잔존하고 주었지만, 진정한 삶이 타국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괴로움이 이명준의 마음속에서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념과 관념을 넘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를 질문하고, 그 질문을 대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데 작품의 의의가 있다.(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 작품의 창작 배경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는4월 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새로운 민주화가 시도되던 때로, 이 작품은 자유당 정권 하에서 금기시되던 남북 문제를 어느 정도 객관화하여 접근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광장과 밀실의 통일이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다루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광장과 밀실의 통일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임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남북 분단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본격적인 장편소설이라는 점이다. 작자는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이 4.19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4.19에 의해 남북 분단을 정면으로 다룰 수 없었던 금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작자는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3의 중립국을 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패배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망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어 남북한을 단순히 양자 택일적인 것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은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밀실이 필요한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대한 진실한 추구보다는 자신의 관념적이고 폐쇄된 밀실에 기울어져 있다.
▣ '갈매기'와 '바다'의 상징성
이 작품 전체를 통하여 갈매기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활용된다. 우선 이명준이 항해하는 내내 동행해 오던 갈매기는 이명준이 자살해 버림으로써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서 갈매기는 이명준의 의식이 투사된 대상이 된다. 또한 이명준은 두 마리의 갈매기에서 죽은 은혜와 죽은 자신의 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이명준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끝끝내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갈매기는 이명준에 있어서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 삶의 한 흔적이다. 자신이 탄 배를 끝까지 따라다니는 갈매기를 통해 이명준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을 만나고, 그런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한편 이 소설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원형 상징의 의미로 쓰인다. 이명준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은혜와 그 아기에 대한 사랑의 희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인공은 인간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랑을 구한다. 여기서 자살은 가치 있는 삶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 '밀실'과 '광장'의 관념적 의미
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이다.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란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의 상호 관계와 작용 속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 사회의 역사적 조건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갈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영위하는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의 '밀실'이라는 두 개념을 통해 남과 북의 당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남한에는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와 밀실만이, 북한에는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와 신념 없는 광장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광장과 밀실이 단절되어 있는 남북한의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은 한국 전쟁이라는 광장을 거쳐 또 다른 밀실인 중립국을 선택하지만,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통해 이데올로기 선택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자는 이러한 광장과 밀실이 서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