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방울토마토/임윤빈
누구에게나 어머니란 존재는 늘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촉촉이 젖게 한다. 나이가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어도 그리고 또 팔십이 되고 구십이 된 후에도... . 금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어머니 날! 아이들이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 꽃을 보며 잠시 윤 자, 정 자, 순 자, 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삼년간의 피나는 육이오 전쟁으로 온 나라가 파괴되고 온 국민이 어려웠던 시절. 겨울밤 골목마다 외치며 다니는 찹쌀떡 장사의 찹쌀떡 몇개, 메밀묵 장사의 메밀묵 한 접시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행복했던 시절. 그 시절 두 손을 호호 불며 찬물로 그 많은 식구들의 거친 빨래를 하고, 풀 먹이고, 발로 밟고, 다듬이질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밤늦도록 빨갛게 핀 무쇠 숯불 다리미로 삶의 주름들을 하나하나 펴기라도 하듯 다림질을 하시던 어머니, 또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어머니 사랑을 반찬 삼아 오 남매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시던 어머니, 그런 바쁜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온 가족의 털 스웨터와 머플러, 모자와 장갑 등을 어머니의 정성으로 한올 한올 엮어 짜주시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웃음보다는 눈물이, 기쁨보다는 한탄이 더 많았을 시절을 사시며, 자칫하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웠을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나의 어머니는 늘 단정하셨고 고우셨다. 내가 어렸을 적이나 청년이 되었을 적에도 나는 어머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지아비의 아내로서, 오남매의 어머니로서, 한 여성으로서, 언제나 우아한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 나중에 얻으신 두 며느리에게도 자신의 몸 하나 가꿀 줄 모르는 여자는 삶의 의욕도 진취성도 없다 하시며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멋과 화장을 늘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겨울 모진 추위를 이기고 봄볕에 활짝 핀 백목련처럼, 붉게 핀 철쭉꽃처럼, 때로는 거친 들판에서도 해맑게 미소 짖는 민들레꽃처럼 어머니는 늘 그렇게 고우셨고 강인하셨다.
그러셨던 어머니가 급성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황급히 올라탄 비행기는 그 날따라 어찌 그리도 느리던지... . 병실 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섰을 때, 어머니는 예쁜 옷 대신에 하늘색 환자복을 입으시고 힘없이 웃으시며 나를 맞아 주셨다.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 병마 앞에서 어머니는 하루하루 무너져 가셨다. 고통 중에서도 정신만은 잃지 않으시려 무척 애를 쓰셨지만 죽음의 거친 풍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으시던 어머니도 하루하루, 시간시간이 다르게 마른 낙엽처럼 말라가며 퇴색되어 가셨다. 죽이라도 좀 드시면 좋으련만 죽 마저도 넘기기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어했던 것은 방울토마토였다. 그거라도 잘 드시면 좋으련만 작은 것 하나를 골라 입에 넣어드리니 힘들게 힘들게 겨우 넘기셨다. 그리고는 한 개가 너무 크니 반으로 잘라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반개도 크다 하시며 또 반으로 잘라 달라고 하시더니, 끝내 그것마저 입에 넣지를 못 하시자 어머니는 기도하듯 조용히 눈을 감고 마셨다.
아! 어머니께 받은 사랑이 얼마인데 그 작은 방울토마토 한 개, 아니 반개, 아니 그 반의 반개도 잡수시게 못하다니... . 삶과 죽음의 차이가 겨우 이 작은 방울토마토 사분의 일에 달렸다니... . 중년이 넘은 나의 눈에 어찌 그리도 눈물이 많던지. 방울 토마토만한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 나왔다.
지금도 방울토마토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차마 한입에 성큼 깨물어 먹지를 못하고 입안에서 한참을 굴리며 어머니의 모습과 사랑을 되씹어 보곤 한다. 그리고 해마다 어머니 날 부르는 "어머님 노래"를 부를 때에는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소리없이 울먹이곤 한다. 오 남매 중 오직 나 혼자만 일찍이 먼 카나다로 이민을 와서 어머니를 자주 가까이 모시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기에 특히 어머님 노래 2절을 부를 때에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
전인평작곡 "어머님 노래" 2절 4절을 잠시 옮겨본다.
2절: 내 항상 거스려도 다 용서하시고
날 웃게 하시려고 어머님 우시네
집 떠나 먼 곳에서 내 방황하여도
어머님 기도 음성 귓가에 들리네
4절: 어머님 크신 사랑 뉘 감히 알리요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르는 것이요
갚는다 장담해도 못 갚을 것이니
내 평생 기도 중에 어머님 부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