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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사우디 학생 클럽'
A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4 23:35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라." 고등학교 때 배우는 고려 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구절이다. 노래는 "이 말이 바깥에 소문나면 조그만 새끼 광대 너 때문인 줄 알리라"고 이어진다. 고려 여인에게 수작을 건 '회회아비'는 대식국(大食國), 곧 아라비아 상인이다.
▶한국이 '코리아'라고 불리는 것은 고려 왕조가 어느 시대보다 활짝 문 열고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데서 비롯됐다. 수도 개성(開城) 코앞에 있던 예성강의 벽란도는 중국 송(宋), 거란, 일본, 동남아, 아라비아 상인들이 북적이던 국제 무역항이었다. 많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왕실에 특산물을 바치고 답례로 금과 비단을 받아갔다. 그들은 이를 '카울레(고려의 중국식 발음인 가오리에서 온 것) 보물'이라고 했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조정은 무슬림들에게 성(姓)과 관직을 주고 자기네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했으나, 그 후 조선은 문 닫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올 2월 미국 위스콘신주(州) 인구 3200명의 소도시 윌슨에서 이슬람교도 만수르 미르자씨는 작은 모스크(mosque)를 지으려고 마을 주민 회의에 신청했다. 미르자는 지역 병원 의사로 5년 넘게 일하며 마을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온 터라 어려움 없이 허가가 나올 걸로 기대했다.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평소 친절하기만 하던 이웃들이 이슬람을 '기독교의 적' '증오의 종교'라며 반대했다. 3억 넘는 미국 인구 중 250만명이 이슬람이다. 이들을 위한 모스크가 미국 전체에 1900곳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대가 캠퍼스 내에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들을 위한 기도실 '사우디 학생 클럽'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국민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이 80명으로 국내 대학 중 가장 많다. 그동안 건물 계단, 옥상 등에서 자리 깔고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했던 유학생들이 불편을 덜게 됐다.
▶9·11테러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왕따 대상이다. 그러나 테러나 대량실업은 정치·경제의 문제이지 이슬람 문화 자체의 탓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슬람 문화가 흘러들어오면 한국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반(反)이슬람 선동이 인터넷을 통해 간혹 드러난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속 좁은 생각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의 쇠퇴를 재촉한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만물상] 서울 토박이말
A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23:32
"우리 집에서는 '지령'이라고 하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간장'이라 했고, '젓무'를 딴 아이들은 '깍두기'라 했다." 서울 토박이 국어학자 정양완은 초등학생 때 지방 사투리를 처음 들었다. 요즘엔 '간장'과 '깍두기'를 아무도 사투리라고 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1988년 표준어 규정을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했다. 국어원은 '이전의 서울 토박이말에 여러 지역의 말이 섞여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염상섭은 서울서 태어나 서울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장편 '삼대'는 1930년대 서울 토박이말과 생활 풍속을 듬뿍 담고 있다. '그댓말'(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 '켯속'(일이 되어가는 속사정), '질번질번하다'(넉넉하다) 같은 서울 사투리가 감칠맛 나게 쓰였다.
▶해방둥이 작가 최인호는 "4대문 안에서도 가장 중심지인 중구에서 태어난 서울깍쟁이"라면서도 서울 토박이말로 글을 쓰진 않는다. '가면서'를 '가면서럼'이라고 하거나 '하니까' 대신 '하니까는'으로 쓰진 않는다. '도시 감수성'을 다룬 작가가 굳이 서울 사투리를 쓸 까닭이 없었다. 서울 사투리는 오늘날 신세대 '서울깍쟁이'에겐 다른 지방 사투리와 같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2010년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가 열렸다. 서울 토박이 스물한 사람이 스스럼없는 사투리로 어린 때를 돌이켰다. '쨍아'(잠자리) '즘심'(점심) '맹들다'(만들다) 같은 서울말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서울 토박이말 특징은 '아'를 '어'로, '어'를 '으'로 발음한다. 된소리, 거센소리가 없는 서울말을 처음 듣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깍쟁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서울이 고향인 시인 윤석산은 '깍쟁이'의 설움을 노래했다. '갱상도 전라도 모두 한두 차례씩 세상을 뒤잡고 흔들 때/ 대통령도 한 번 못낸 서울, 서울 사람들/ 그래설라문에/ 겉똑똑이 속미련이 서울사람은/ 정말로 깍쟁이도/ 못 된답니다.' 염상섭 이후 서울말을 잘 살린 소설은 찾기 어렵다. 지역 문인들은 제각각 사투리로 맛깔나게 우리말을 살리는데 서울에선 그런 일이 드물다. 서울 토박이 어르신들이 아직 살아계실 때 '서울내기'들이 사투리를 지키고 전하는 일에 힘써 나서야 한다. '깍쟁이'처럼 뒤로 빼다간 언젠가 표준어 사전에서 서울 토박이말은 가뭇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박해현 논설위원 hhpark@chosun.com]
[만물상] 에이즈 외국인 추방
A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6 23:31 | 최종수정 2010-11-17 17:15
1988년 서울올림픽 다이빙 경기에 나선 그렉 루가니스가 3m 스프링보드에서 뛰어내리다 뜀판에 머리를 부딪혔다. 루가니스는 머리가 피범벅이 된 채 물속에 빠졌다. 그는 대회 참가 직전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판정을 받았다. 관중은 루가니스를 걱정했지만 그는 "내 피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에이즈에 걸릴까 걱정돼 패닉(공황) 상태였다"고 자서전에 썼다.
▶에이즈에 걸린 미 프로농구 스타 매직 존슨에게 기자가 "에이즈가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느냐"고 물었다. 존슨은 "그냥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외출도 하고 춤도 춘다. 약 먹는 일 말고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는 91년 에이즈에 걸려 코트를 떠난 뒤 '매직 존슨 자선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2007년 한 중국 동포가 한국 국적을 얻은 어머니와 함께 살려고 서울에 왔다가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당국은 그를 출입국사무소 독방에 격리했다가 "일주일 안에 출국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풀어줬다. 그는 "추방되지 않게 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전염병 예방이라는 공익을 앞세워 가족과 함께 살 권리를 빼앗는 건 안 된다"고 그의 손을 들어줬다.
▶얼마 전 방한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김황식 총리를 만나 "법으로 외국인 에이즈 환자를 규제하는 건 인권을 존중하고 G20 의장국을 맡은 나라로선 부끄러운 일"이라며 폐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에이즈예방법령과 출입국관리법령은 취업 등의 목적으로 비자를 받아 들어오는 외국인에 대한 강제 에이즈 검사, 에이즈 보균자의 입국 거부나 추방을 규정하고 있다.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일자 법무부는 올 초 되도록 이런 조치들을 않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는 계속 의무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학생 건강을 염려한 교육부와 학부모단체의 요구 때문이다.
▶한때 에이즈는 '불치의 천형(天刑)'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고혈압·당뇨처럼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병으로 여겨진다. 성관계, 수혈, 주삿바늘로 옮겨질 뿐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접촉으론 전염되지 않는다. 우리처럼 외국인 에이즈 환자를 엄하게 규제하는 나라는 유엔 가입국 중 11개국 정도라고 한다. 인권과 평등,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 이런 보편적 가치와 국민 건강권이 빚어낸 마찰이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신효섭 논설위원 bomnal@chosun.com]
[만물상] 매사냥
A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23:16
"잠을 재우지 않으면 매는 성질이 아주 사나워져서 사냥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냥 전에 놈을 굶기는 것은 매란 놈이 배가 고플 때가 아니면 꿩이나 토끼 같은 것을 잘 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이청준은 단편 '매잡이'(1969년)에서 사라져 가던 전통 매사냥을 다뤘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못한 매사냥꾼 이야기였다. 작가는 산업화와 함께 '풍속이 사라진 시대'에 장인(匠人)이 '유민(流民)'으로 굴러떨어지는 현실을 담담히 그렸다.
▶매사냥은 4000년 전부터 고대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선 매사냥꾼을 새긴 유물도 나왔다. 몽골 사람들은 매를 '구원의 새'로 여겼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쿠빌라이 황제가 사냥터로 떠날 때 갖가지 매 500마리가 동원됐다"고 적었다.
▶우리 매사냥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나타난다. '삼국사기'에선 '신라 진평왕이 매를 놓아 사냥하기를 즐겼다'고 했다. '일본서기'는 백제사람 주군(酒君)이 매를 가져왔다고 했다. 고려 충렬왕은 몽골에 바칠 매를 잡는 관청인 응방(鷹坊)을 세웠다. 매 부리는 사람은 응사(鷹師), 매 임자를 알리기 위해 꽁지 깃털에 묶은 쇠뿔은 시치미라고 했다. 딴 사람이 그걸 떼고 모른 척하는 것에서 '시치미 뗀다'는 말이 나왔다.
▶1983년 매가 천연기념물이 되면서부터는 매사냥 기능보유자만 매를 잡아 기를 수 있다. 대전과 전북에는 지방 무형문화재 박용순·박정오 응사가 있다.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매사냥꾼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두 응사는 해마다 매사냥 시연회를 연다. 주로 겨울에 하는 전통 매사냥을 가르칠 시설이 따로 없어서 두 사람 집으로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사냥법을 전할 뿐이다.
▶한국을 비롯한 11개국 매사냥이 그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미국에선 워싱턴과 하와이를 빼고 모든 주에서 매사냥 면허증을 내준다. 필기시험을 거치고 적어도 2년은 매사냥꾼 밑에서 훈련을 받아야 면허를 딸 수 있다. 우리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맞아 매사냥을 '겨울 민속 스포츠'로 키울 만하다. 야생매는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하더라도, 전통 매사냥법을 잇는 교육시설을 만들고 면허제를 도입할 방안을 생각해 볼 때다. 우리 매사냥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마당에 대(代)가 끊길지도 모를 처지에 놓인 매사냥 전통을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박해현 논설위원 hhpark@chosun.com]
[분수대] 별점과 체벌
39면3단| 기사입력 2010-11-13 00:32
[중앙일보 박종권]
자습 안 하면 1점, 수업시간에 떠들면 2점,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않아도 2점, 선생님 지시를 어기면 3점, 컴퓨터 게임을 하다 적발되면 5점…. 학생 법정을 운영하고 있는 민족사관고교의 벌점 항목이다. 벌점이 쌓여 한 학기에 15점이 넘으면 추천서와 장학생 대상에서 제외된다. 40점을 넘기면 교내봉사, 60점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80점이면 권고 퇴학이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벌점 관리'가 필수항목이란다. 다행히 벌점을 상쇄할 수 있는 '상점(賞點)'이 있지만, 이는 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체벌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 전시품에 '교편(敎鞭)'이 있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을 다스리던 훈장의 회초리다. 교사가 되는 것을 '교편을 잡는다'고 하는 연유다. 한자 풀이로 보면 원래 채찍이었던 것이 가르치고 가리키기에 용이하게 나뭇가지로 바뀐 듯하다. 회초리의 재질은 교육용과 징벌용이 다르다. 교육용 회초리는 뽕나무로 만든다. 뽕나무는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아물기 때문이다. 잘못한 자녀에게 다른 나무도 아니고 “뽕나무 가지를 꺾어 오라”고 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징벌용은 물푸레나무다. 단단하면서 탄력이 좋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태형(笞刑)을 집행할 때 쓰는 회초리가 바로 물푸레나무 재질이다. 한번 맞으면 평생 흉터가 남는다고 한다.
학교 체벌이 금지되고 벌점이 도입되면서 곳곳에서 볼멘소리다. “교편을 던지라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교사,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겠다”는 학생들로 아우성이다. 반면 “체벌은 폭력이고, 학교에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것을 가르치는 격 아니었나” 하며 반기는 목소리도 크다.
문제는 감정이다. 회초리에 사사로운 감정이 담기면 '사적 제재'다. 공공의 감정이 담기면 태형이다. 회초리가 법적 징벌 수단으로 남아 있는 나라는 극소수다. 동남아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나이지리아·짐바브웨 정도다. 국제사면위원회는 회초리 형벌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랑의 매'는 과연 가능할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때린 사람이 맞은 사람보다 더 아프면 사랑의 매다. 아니라면 폭력일 뿐이다. 태형은 볼기에 상처를 남기지만, 체벌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탤런트 김혜자씨의 아프리카 기행 수필집 제목을 빌어 표현하자면, 더 아플 자신이 없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박종권 논설위원
[분수대] 음주면접
39면3단| 기사입력 2010-11-15 00:32
[중앙일보 김남중]
술 잘 마시는 게 미덕일 때도 있다. 센 주량(酒量)이 자리를 얻거나 보존하는 데 유용한 경우가 그렇다. 북한 사람들도 한민족 아니랄까 봐 술고래가 제법 있는 모양이다. 남북 정상회담 북측 경호원 출신으로 남한에 귀순한 호혜일이 저서 『북한 요지경』에서 전하는 일화 한 토막. “북한 정부 예하 기관에 '술꾼 간부'가 있었다. 한 번에 인삼주 8병(주정 40%, 750mL)을 마신다. 독주 6L를 앉은 자리에서 마시고도 멀쩡했다. 이 간부는 술 실력 덕분에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대사로 파견된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인 그 나라 대통령이 주량을 기준으로 각국 대사를 대우하는 걸 감안한 조치였다.” 대사가 된 그의 일성은 “당에서 바란다면 이 몸이 죽는 순간까지 마시겠다”였다고 한다.
옛날 술고래 왕을 모시던 신하들은 어지간히 술을 하지 못하고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터다. 중국 오대십국시대 민나라 왕 왕연희(王延羲)는 술을 엄청나게 마셔 신하들이 함께 마시면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소연을 하거나 그만 마시는 신하는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태종도 연회에서 자기보다 먼저 취해 떨어지는 자는 관직을 내놔야 한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술을 못하는 신하들도 술잔을 들고 버텨야 했다고 한다.
예부터 대음(大飮)의 사례는 숱하다. 두보(杜甫)는 당나라 현종 때 신하 이적의 주량을 “마치 큰 고래가 수백 개의 강물을 들이켜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조선시대 학자 정철조도 멋진 술꾼이었다. 가난했던 그는 소주를 얻게 되면 막걸리를 사다 한데 섞고 커다란 자기를 술잔 삼아 마셨다고 한다. 그 술을 혼돈주(混沌酒)라고 불렀는데, 지금으로 치면 폭탄주다.
그러나 술은 주량을 알고 마시는 게 중요하다. 전통 성년식에서 술을 따라주는 초례의식의 가르침도 그거다. “술은 향기로우나 과음하면 몸을 망치기 쉬우니 항상 분수를 지켜 몸에 알맞게 마셔야 한다”는 주문에 “일생 동안 명심하겠다”고 서약하고 술을 입에 대는 것이다.
요즘 중국 인터넷에선 음주면접 뒤 길바닥에 쓰러진 대학생들 사진이 화제다. 충칭(重慶)의 한 기업 영업사원 면접시험에서 주량 테스트를 받다 과음으로 인사불성이 된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지원자의 인성·자기관리 능력·잠재 역량을 볼 수 있다며 음주면접을 늘리는 추세다. 주량 약한 구직자들에겐 음주면접이 공포의 대상일 게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 따로 없겠다.
김남중 논설위원
[분수대] 서울 사투리
39면3단| 기사입력 2010-11-16 00:05
[중앙일보 고대훈]
조선 시대에는 서울(한양)의 4대문 밖만 나서면 시골로 쳤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경인(京人)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은 향인(鄕人)으로 불렸다. 향인도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경인이 됐다. 근대에 들어 경인은 '서울내기'로, 향인은 '시골뜨기'로 변천했다. 서울은 '세련' '현대'라는 의미로 통했다. 표준어 정책에도 반영됐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했다. 88년 표준어 고시(告示)에서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했다.
서울말이라고 모두 표준어는 아니다. “어딜 싸돌아 댕기다 이제 오냐….”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40~50대가 부모에게서 흔히 듣던 말이다. '댕기다'는 '다니다'의 서울 사투리로 분류된다. 표준어에서 '댕기다'는 '불이 옮아 붙다'라는 뜻의 완전히 다른 말이다. 개와집(기와집), 삼춘(삼촌), 가우(가위), 구녕(구멍), 낭구(나무), 겨란(계란) 등도 서울 사투리에 속한다. “밥도 먹구, 영화도 보구…”처럼 표준어의 'ㅗ'가 아직도 서울식 표현의 'ㅜ'로 곧잘 쓰인다.
서울말도 전라도나 경상도 말처럼 서울 토박이가 사용하는 방언(方言)에 불과하다. 언어학적으로 토박이는 3대째 이상 한곳에서 거주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다. 압축적인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 유입이 가속화하면서 서울 토박이는 퇴조하고 있다. 서울 방언 중 70%는 표준말에 편입됐지만 나머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국어문화원 등이 후원해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는 서울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서울 토박이 20여 명이 나와 '쨍아(잠자리)' '중신(중매)' '-했걸랑' 등 토속적 냄새가 나는 서울 사투리를 풀어냈다. 박목월은 시 '사투리'에서 '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베라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고 했다. 오빠를 오라베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불러야 제맛이 있다는 뜻이리라. 사투리가 주는 정감이 그런 거다.
서울은 예전의 서울이 더 이상 아니다. 자신이 시골뜨기라도 그의 2세, 3세는 서울내기로 변하고 있다. 사투리에는 한 시대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지방 방언과 함께 사라져가는 서울 방언을 되살리는 데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고대훈 논설위원
[분수대] 치파오 도우미
35면3단| 기사입력 2010-11-18 00:14 | 최종수정 2010-11-18 09:59
[중앙일보 박종권]
한·중·일 3국은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아마도 기후 때문이다. 숙소를 보자. 중국은 반점(飯店)이다. 먹고 잔다.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지역에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불어 '기름기'는 피부를 보호한다. 로션이 없던 시대에 생존을 위해 씻지 않았던 거다. 일본의 료칸(旅館)에는 목욕조가 있다. 습하면서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해 자주 씻어야 한다. 물수건의 세계화에는 처절한 생존본능이 깔려 있는 것이다. 사시사철이 뚜렷한 한국은 주막(酒幕)이다. 한 잔 술에 자연과 합일하고, 두 잔 술에 너와 내가 동무가 된다.
중국에선 상담(商談)도 만한전석(滿漢全席)이 으뜸이다. 먹으며 대화한다. 일본은 목욕탕이다. 수년 전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규슈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당시 '목간통' 회담이 기획됐다. 그런데 탕의(湯衣)에 새겨진 벚꽃 문양이 문제가 됐다. 자칫 “사쿠라 옷 걸친 한국 대통령'이 될 판이다. 갑작스레 취소된 배경이다. '주막'의 전통이 면면한 한국은 술이다. 한 잔 술에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된다.
정원도 다르다. 중국 쑤저우의 졸정원(拙政園)과 상하이 예원은 대표적인 남방 정원이다. 특징은 아름다운 산수를 담장 안에 구현했다. 돌은 태호석, 소나무는 황산의 노송(老松)을 아예 옮겨 놓는다. 일본은 함축과 상징이다. 바위와 자갈을 깔고는 지구와 우주를 본단다. 자르고 비튼 나무에서 아름다움을 구하는 것이 분재(盆栽)일 것이다. 행복의 극한과 고통의 극한이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한국은 자연으로 들어간다. 정자 하나 세우고 관조하는 동시에 그 일부분이 된다. 합일(合一)의 경지다.
여인의 옷도 특색이 있다. 일본의 '기모노(着物)'는 '감춤의 미학'이다. 맨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채로운 문양을 자랑한다. 특징은 '오비'인데, 뒤쪽에 감아 배면미(背面美)를 강조한다. 뒤쪽을 흘깃거리는 그들 남정네의 취향을 감안한 것일까. 한복은 '선의 미학'이다. 하늘을 향한 도련의 곡선, 동정의 날카로운 직선이 조화를 이룬다. 늘어뜨린 옷고름은 바람에 실려 '흐르는 선'을 나타낸다. 중국의 '치파오(旗袍)'는 원래 만주족 여인의 복식이다. 몸의 굴곡을 보이면서 천부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시대에 따라 길이와 활동성을 위한 '옆 트임'의 위치가 오르락내리락 했다. 아시안게임 시상식에서 치파오 차림의 도우미가 화제다. 문화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박종권 논설위원
[한마당-최정욱] 한·미 FTA 유감
26면2단| 기사입력 2010-11-14 17:46
광고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19세기 아메리카 인디언 ‘붉은 구름’이 남긴 이 말은 미국의 서부개척사를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 이후 북아메리카에 밀려든 이민자들은 토착민인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백인들은 서부개척 초기 주로 대평원의 들소 가죽을 얻기 위해, 이후엔 금을 캐기 위해 인디언들을 내몰았다. 처음 채굴권 보장 시 보상을 약속한 우호적 협상은 곧 척박한 정착지로 이주를 명하는 강압적 요구로 바뀌었고, 거부하면 무력보복이 이어졌다.
미국의 쇠고기 전면 수입허용 요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결렬됐다. 하지만 이는 미국 측이 자동차 부문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지난 13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자동차가 쇠고기보다 더 걱정거리”라면서 “미국에는 (연간) 40만대의 한국차가 들어오지만 한국에는 (미국차) 수천대가 수입되는 게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1∼10월 7만3000여대가 팔린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차 점유율은 8.4%로 유럽차(65.9%)나 일본차(25.7%)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수입차 판매량 10대 브랜드에도 미국은 포드만이 7위(3413대)에 겨우 이름을 올렸다. 차종이 다양한 독일 등 유럽차와 일본차에 비해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차량은 대형차 위주라서 선택 폭이 좁고 연비나 편의사양도 국산차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차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행 8%의 관세가 사라지고 세제 변경으로 자동차 가격이 지금보다 10% 이상 내려가는 게 확정된 상황이다. 포드 토러스(3500㏄)의 경우 국산 고급 중형차(2400㏄)와 배기량이 큼에도 가격은 비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추가협상에서 2015년까지 미국차의 연비 규제 등을 면제해 주기로 해 소형차 등보다 다양한 차종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양보한 셈이 됐다.
이번 한·미 FTA 추가협상은 일단 결렬됐다. 하지만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빅3의 이익을 대변한 미국 정부의 추가 양보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낙관적 기대만으론 국내 시장을 지켜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
[한마당-염성덕] 무상급식의 추억
22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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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옥수수빵을 나눠줬다. 요즘 식빵보다 퍽퍽한 빵이었다. 보통 1개씩 주고, 청소 당번이나 숙제를 잘한 학생, 고아들에게는 1개씩 더 줬다. 지역에 따라 옥수수죽을 끓여서 주기도 했다. 매일 빵을 준 것은 아니었다.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들뜬 학생들은 빵을 책가방에 넣거나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내달리곤 했다. 양지바른 곳에서 동생들과 빵을 나눠먹거나 일부는 어머니에게 주기도 했다. 자녀로부터 빵을 받은 어머니들은 시래기를 넣은 옥수수죽을 끓여 자식들의 허기를 달랬다. 하루 두 끼 먹기도 쉽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도 서울시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은 시설 개선비를 볼모로 잡고 무상급식을 늘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 무상급식 예산을 올해 132억원에서 내년 1162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서울시가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지 않아도 초등학교 1∼3학년생에게는 공짜 점심을 주겠다는 것이다.
반면 학교 신설, 교실 증축, 교실·화장실 개보수 등 시설 개선비는 올해 6835억원에서 내년 4985억원으로 1850억원 줄였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부터 관내 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할 방침이지만 10여개 기초자치단체가 재정 사정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효율적 배분을 해야 한정된 예산 집행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건 당연한 상식. 시교육청의 예산 편성은 이러한 상식을 저버린 행위일 뿐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전체 학생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예산을 짜야 한다.
서울시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교육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 안전(31.7%), 사교육 줄이기(19.9%), 학교 시설 개선(13.9%), 친환경 무상급식(13.6%) 순으로 나타났다. 6·2지방선거에서 득표율 34.34%로 어렵게 당선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유권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부터 기울여야 한다.
서울시는 급식 지원 대상을 올해 소득 하위 11%에서 내년 16%로 늘리기 위해 278억원을 배정하고,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추진하는 친환경 전면 무상급식 예산은 편성하지 않았다. 시가 선심성 정책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잘한 처사다. 시의회는 내달 15일까지 시 예산안을 심의·의결한다. 어떻게 예산을 짜는 것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하기 바란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한마당-문일] 광화문 유감
22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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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2년(1865) 9월 17일조에 ‘영건도감(營建都監)에서 서사관(書寫官) 명단을 적어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건될 경복궁 전(殿) 당(堂) 문(門)의 현판을 쓸 사람들이다. 광화문 훈련대장 임태영, 건춘문 금위대장 이경하, 영추문 어영대장 허계, 신무문 총융사 이현직. 모두 무관이다. 반면 궁 안 전과 당의 서사관은 모두 문관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중건은 이씨 왕가의 숙원이었다. 세도정치를 물리치고 왕권을 회복하려 한 대원군은 서사관으로 명필이 아니라 최고위 무관들을 택했다. 무인의 거센 필세(筆勢)로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임태영이 영건도감 제조로서 경복궁 중건 책임자이므로 광화문 현판을 썼다는 말은 잘못됐다. 4대문 서사관이 모두 영건도감 제조를 겸직했으며 군 지휘관으로서 공사 질서를 감독하라는 뜻이다. 영건도감 총책임자는 도제조(都提調)로 영의정 조두순과 좌의정 김병학이었다.
어린 고종 대신 수렴청정을 한 조 대비가 특별히 챙긴 쓴 곳은 왕비 침전인 교태전이었다. 여기에 당대 명필 조석원을 배치했다. 정조 때 명필 조윤형의 손자로 당시 이조참의였다. 정조 때부터 후사(後嗣) 문제로 골치를 썩인 만큼 왕비 침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지 않았는가 싶다. 교태전은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나온 말로 천지의 좋은 기운을 받아 만물이 융통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공 들인 경복궁은 이어(移御) 8년 만인 고종 13년(1876) 대화재로 전각 830여간이 잿더미가 됐다. 광화문 복원 석 달 만에 갈라진 현판과 논란을 보면서 경복궁 수난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 현판은 목재 갈라진 것만 따질 일이 아니다. 광화문은 복원이지만 현판은 불완전한 복제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복원해야 할 원(元)이 온전하지 않다. 유리원판 사진에서 디지털 기술로 살려낸 것은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아무리 오래 현판을 바라봐도 광훈(光?을 느낄 수 없는 까닭이다.
발터 벤야민은 복제기술에 의한 생산물에는 아우라(Aura)가 없다고 했다. 예술가가 신이나 자연을 최초로 모방했을 때만 아우라가 깃든다는 것이다. 추사(秋史)가 절필(絶筆)인 봉은사 판전(板殿)을 쓸 때 나이 70세. 임태영이 서사관으로 명 받았을 때는 74세. 나무 갈라진 것보다 노장(老將)의 아우라가 사라진 광화문 현판을 보는 게 더 우울하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한마당-임순만] 왕실문화재
| 기사입력 2010-11-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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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로 반환될 일본 궁내청(宮內廳) 소장 한국도서와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도서의 목록과 내용이 알려지면서 찬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왕실행사를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긴 의궤는 언론에 소개된 일부만 보더라도 세밀한 그림, 선명한 글씨, 미려한 종이의 질과 꼼꼼한 장정 등 조선 서책문화의 품격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반환을 약속한 직후 여성 사서들이 돌려주기 아깝다고 울고불고 하는 통에 반환이 어려워졌다는 말이 아주 낭설은 아닌 듯하다.
왕실 문화재는 각 왕조 절정의 문화적 성취를 담은 걸작이 대부분이다. 고대의 정복자들은 문화를 빼앗지 못하면 나라를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도서관들이 오래된 정복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멸실됐다. 성경에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함락시켰을 당시 약탈해간 품목이 기록돼 있다. 특히 예레미야 52장에는 약탈해간 성전의 기둥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는데, 손가락 네개 두께의 기둥 표면에 석류 96개를 새겨 넣은 솔로몬 왕조의 찬란한 건축문화가 선연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터키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는 불타는 왕실의 서책들에 대한 뛰어난 묘사가 나온다. 왕조의 서책을 완성하기 위해 밤새도록 촛불 밑에서 글을 쓴 필경사가 새벽 첨탑에 올라가 눈을 쉬는 동안 정복자들이 입성해 칼리프를 처형한다. 여자들은 능욕을 당하고 수만권의 책은 티그리스 강으로 던져진다. 이윽고 강은 책에서 번져나온 잉크 때문에 붉게 물든다. 책의 불멸을 믿었던 당대 최고의 필경사 이븐 샤키르는 그 후 영원히 글을 쓰지 않았다 한다.
200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꼽혔다. 세계 최고 문화의 힘을 과시한 것도 엘리자베스조(朝)라는 평가다. 지난 5월 고급 필기구 브랜드 몽블랑이 역사적인 예술후원자를 기리는 ‘리미티드 에디션 펜’(한정본 만년필)으로 ‘엘리자베스 1세’를 선보였다. 펜 뚜껑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좌우명인 ‘진실을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Video et Taceo)’라는 글귀를 새겼다. 봤더라도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고급 문화의 규범. 프랑스와 일본은 우리 왕실문화재를 약탈해 갔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화재의 가치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머지 문화재도 있던 곳에 되돌려줘야 한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
[여적]이순신 동상
30면2단| 기사입력 2010-11-14 21:50
이순신 장군이 서울 광화문을 잠시 비웠다. 1968년 4월27일 동상이 섰으니 42년 만이다. 동상은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져 보수작업을 받은 뒤 약 40일 후에 돌아온다. 40여년 동안 길 한복판에서 매연과 풍우에 시달렸으니 온몸이 성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균열과 부식만이 그간의 상처는 아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도 상당하다. 동상을 둘러싼 온갖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광화문 사거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의문은 대충 이렇게 모아진다.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인가?” “오른손에 쥔 칼은 일본도가 아닌가?” “장군은 왜 고개를 숙이고 있나?” “동상의 얼굴은 왜 영정과 다르나?”
충무공이 오른손에 칼을 쥔 것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한다.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세중의 기념사업회는 “동상에서 오른손은 그 인물의 의지를 대변한다”며 “조국수호의 충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 것은 국민들과 시선을 맞추려는 제작자의 의도라고 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일부에서 항장(降將)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비난인 셈이다. 그런데 장군의 칼은 일본도가 맞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에 끌려갔던 도장(刀匠)들이 일본도를 제작해 장군에게 바쳤다. 보물 326호인 이 칼은 길이가 197.5㎝로, 동상에서는 예술적 비례를 고려해 이를 축소했다고 한다.
동상과 영정이 안 닮았다는 것은 공연한 지적일 수도 있다. 장군의 진영(眞影)은 전해오는 게 없으며,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은 동상 제막 5년 후인 1973년에야 지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얼굴이 너무 무섭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장군의 풍모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이 단아하여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가슴에는 담력이 있었다.” 얼굴 논란에 대해 김세중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술은 한 거목에게서 무한한 내면을 찾는 것이다. 조각가로서 사진과 같은 영정을 만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실제 모습보다는 무인(武人) 충무공의 강인한 내면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제 그간의 상처를 치료한다. 보이지 않는 상처도 말끔히 털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태관 논설위원>
[여적]권력과 언론의 야합
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21:41
엊그제 MBC <뉴스데스크>가 희한한 사건을 보도했다. MBC는 박철환 전남 해남군수가 호화 관사를 구입했다는 제보를 받아 취재 중이었다. 박 군수는 이 취재팀을 가로막고 한사코 어디론가 끌고가려 갔다. 알고 보니 목적지는 군수가 취임 전까지 살았다는 허름한 집이었다. 기자는 그가 청렴함을 과시하려는 뜻이었다고 해석했다. 이 과정에서 군수한테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야, 신문기자 너희들도 좀 따라와. ○○신문 기자들도!” 말투만 보면 기자들은 부하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어느 주재기자는 취재팀에게 전화까지 걸어와 군수를 옹호했다고 한다.
사건 자체는 흔하디 흔한 지방자치단체장 비리 의혹이다. 따라서 희한한 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취재 중 기자가 겪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따지고 보면 희귀한 일이라 할 수도 없다. 지방신문 기자들과 취재원의 유착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른바 사이비 기자들이 이권에 개입하거나 허위 기사 등 비리를 저질러 사법처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번 사안은 경미하다. 군수의 부하 노릇을 했든, 변호를 자청했든 낯뜨겁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불법, 비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보도가 눈길을 끈 이유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날것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공을 쏟았기에 군수가 기자들을 부하 부리듯 할까, 상상력도 발동한다.
그러나 이런 건 권언유착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도 쑥스러운 ‘애교’ 수준이다. 지금 중앙에서 목도되는 권력과 언론의 거대한 야합과 비교할 때 그렇다. 권력과 언론은 밀월일 때도 있지만 대립·긴장관계가 ‘숙명’이다. 권력과 언론의 워치독(감시견) 역할은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때로는 권력이 언론에 손을 내민다. 연전에 청와대 행정관이 용산참사 물타기를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홍보하는 전략을 세우고 방송들이 호응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진짜 거대한 권언유착은 이른바 보수신문들과 이 정권 사이의 종합편성채널 거래다. 정권은 미디어 산업을 재편한다는 구실로 보수신문들에 종편을 선물하려 하고 있다. 보수신문들은 종편 진출을 위해 어느 때보다 정권 홍보에 신경을 쏟는 모습이다. 모든 야합이 그렇듯 이 야합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무슨 가치나 이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이다.
<김철웅 논설실장>
[여적]흉년 단상
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6 22:40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삭풍이 분다. 벌판은 길게 누워 있지만 그 풍경이 그리 쓸쓸하지 않다. 다시 생명을 품는 비움이기 때문이다. 바람 불고, 눈 오고, 별빛이 내리고, 다시 바람이 불 것이다. 겨울은 동물과 나무들만 잠드는 것이 아니다. 대지도 꿈을 꾼다. 논은 살아 있는 최고(最古)의 유물이다. 농사는 늙고 볼품없는 땅에서 해마다 생명을 피워올리는 경이로운 역사(役事)였다. 햇빛과 바람과 물에 인간의 땀을 섞는 심오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마땅한 다른 벌이가 없는 농투성이의 한 해 살림살이는 논농사의 풍과 흉에 달렸다.
벼농사가 올해는 흉작이다. 쌀 생산량이 30년 만에 최악이다.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기상 악화로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흉년임에도 모두 걱정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나라의 재앙이었지만 언론조차도 이를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현지 쌀값도 오르지 않는다. 재고가 쌓여 벼를 저장할 창고가 모자랄 지경이니 오를 턱이 없다. 남녘에서는 농민들의 탄식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벼를 논에다 산 채로 갈아엎고, 벼를 쌓아 길을 막고 있다. 그래도 빈 술병만 쌓일 뿐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다.
몇 해 전 영천에 내려가 농부 시인 이중기씨를 만났다. 그의 시집 속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온통 농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농업 만년설이 녹아내린다’는 시는 이렇다. “아버지는 잘못된 역사 발전에 백의종군하느라/ 궁상 한번 없이 죽어라 땅만 파던 땅강아지였다./ 나달나달해진 경전, 내게 논밭을 물려주신/ 아버지 무덤에 1인 시위하러 간다.” 논밭을 물려준 아버지 무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시인. 이제 농업은 나라경제의 걸림돌이고, 농민은 천덕꾸러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밥의 힘으로 역사를 지켜왔다. 쌀은 흔했지만 진정 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쌀이 남아 돌고, 농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꾼들이 도시로 빠져나가자 들녘에서는 신바람과 설렘이 사라졌다. 농사를 짓는 것은 경건한 일이었다. 벼는 논에서 키우는 ‘한해살이 자식’이었다. 그런데 남아도는 쌀을 동물의 사료로 먹이자는 무엄한 시대가 도래했다. 농민들의 핏빛 구호는 허공을 맴돌고, 지금 농촌은 점점이 흩어져 외딴 섬이 되어가고 있다. 그 속의 농민들은 시대에 버림받은 난민들이다. 농촌이 멀어지고, 농민들이 잊혀지고 있다.
<김택근 논설위원>
[여적]시치미
30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21:37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불거진 이른바 ‘대포폰’ 얘기를 들으면서 종종 ‘시치미’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청와대가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에 지급했다는 타인 명의 휴대폰이 청와대와 민간인 불법사찰의 연관성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물인데도 불구하고 청와대나 검찰은 시치미를 떼고 연관성을 부인한다.
어디 민간인 불법사찰뿐인가. 현 정부 들어 박연차 게이트를 비롯해 최근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가공 비자금 사건까지 대형 권력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 중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이름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거기까지가 전부다. 검찰은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불러들이려는 노력은 별반 하지 않고 있다.
다른 작은 권력들도 무슨 혐의만 나오면 버릇처럼 일단 부인부터 한다. 힘센 사람들의 부인 속에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공권력은 허공을 헤매고 진실은 안갯속으로 도망을 가고 만다. 국민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하면서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치 우리가 시치미 떼기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시치미란 말은 매 사냥이 유행하던 고려시대 때 주인이 자신의 매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적어 꽁지털 속에 매어둔 네모꼴 모양의 소뿔을 가리킨다. ‘시치미 떼다’라는 말이 지금도 유행하는 것을 보면 옛날에도 남의 값비싼 매를 가로채기 위해 시치미를 떼버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나 보다. 시치미 떼기가 민족의 습성과 관련있는 것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해본다.
몇 년 전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이 시인 윤제림의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를 읽고 ‘시치미 떼는 시’라고 평했다고 한다. 짧은 글 속에서 직접 설명하거나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시치미 떼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구체적 실감을 느끼도록 만든 시인의 능력에 대한 찬사다. 하지만 그것은 문학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현실세계에서 시치미 떼기는 칭찬받기 어렵다. 특히 권력과 결합했을 때는 범죄와 관련되기 일쑤다.
우리의 매 사냥이 몽골, 프랑스, 벨기에,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10개국의 맹금류 수렵술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그제 등재됐다. 다른 나라에도 시치미 떼기가 우리처럼 일반화해 있는지 궁금하다.
<이승철 논설위원>
[여적]‘애플’로 들어간 비틀스
| 기사입력 2010-11-18 21:40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은 1966년 3월 폭탄선언을 했다. “우리는 이제 예수보다 더 유명해졌습니다. 로큰롤과 기독교…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지 모르지요.” 비난 여론이 들끓자 이내 사과했지만 당시 비틀스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비틀스는 대중음악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결성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비틀스와 견줄 만한 창조적인 대중음악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무장한 더벅머리 4인은 이미 전설이다. 수많은 록밴드가 결성되어 그들을 따라했다. 국내에서도 ‘그룹사운드’가 수없이 나타나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대중음악 후예들은 오늘도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들기며 비틀스의 아성을 기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미끄러져 가슴을 친다. 비틀스의 음악세계는 그만큼 깊고도 높다. 만일 1960년대 비틀스가 없었다면 인류의 대중음악은 어디로 흘러갔을 것인가. 비틀스는 로큰롤을 모든 세대와 계층이 즐기는 전 지구적 장르로 만들었다. 단순한 젊은이들의 외침이 아니라 품격이 있었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천재 뮤지션이었다. ‘존과 폴’이란 파트너는 팝 음악에 불멸할 것이다. 그들의 도전과 실험은 늘 새로웠다. 곡 마다 향기가 배어 있다. 대표곡 중의 하나인 ‘예스터데이’는 서정성 짙은 발라드로 클래식에 가깝다.
비틀스 음악이 마침내 인터넷 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17일부터 음원 판매 사이트인 애플의 아이튠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비틀스 멤버와 유족들은 팬들과 음반사의 요청에도 온라인 디지털 음원 판매를 거부해왔다. 비틀스를 사랑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감격해서 말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먼길이었다. 10년 전 아이튠스를 선 보일 때 품었던 꿈을 이뤘다.”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를 고집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아날로그의 전설을 믿기에 허전하다.
마침 올해는 존 레넌이 살해당한 지 30년이 된다. 그는 80년 12월8일 팬이 쏜 총을 맞고 숨졌다. 저 세상의 존 레넌은 디지털 음원 판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 전 그의 부인 오노 요코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지금 존이 살아있다면 컴퓨터 음악에 빠져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흔쾌히 수락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인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아날로그 세상을 더 그리워했을지 모른다. 팀 해체 후 만든 ‘신(God)’이라는 노래에서도 ‘비틀스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김택근 논설위원>
[다산칼럼] G20회의 후 한국의 과제
38면4단| 기사입력 2010-11-14 18:32 | 최종수정 2010-11-15 04:06
'개발의제' 채택 성과이자 부담
민간 투자로 성장 동력 만들어야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세계적으로 거둔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회의였지만,한국의 입장에서는 얻은 것이 많았다. G20회의를 기존 G8 이외 국가로서 처음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성과다. 나아가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의제'를 채택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을 세계의 모델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G20회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것을 실감케 하는 이벤트였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 경제는 당장 나쁘지 않다. 작년 대다수 선진국이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중에 한국은 그것을 면했고,올해도 6% 가까이 성장하리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한국이 작년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높은 환율 덕분이었는데,그것은 역설적으로 2008년에 외환위기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올해 성장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여전히 높은 환율에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덕분인데,거기에는 말 많은 4대강 사업도 포함돼 있다.
단기적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추세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전 경제 '기적'의 여위(餘威) 때문 아닌가. 위기 후의 성과를 보면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평균 4.1% 늘어났지만,한국인에게 돌아가는 진짜 소득인 국민총소득은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것은 주로 높은 무역 의존도 하에서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총소득 계산에는 중요한 요소가 누락돼 있다. 위기 후 활짝 열린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이 거둔 이득 중 배당금이나 이자를 받아 나간 것은 계상하지만,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차익은 계상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외국인의 차익이 1년에 수백억달러에 달하고,그 중 상당 부분이 실제로 빠져나갔다. 한국인이 해외투자에서 거둔 차익도 있지만,외국인의 차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1998년 이후 한국의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3%에 미달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선진국도 아니면서 2%대로 성장하는 나라가 경제발전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제부터는 수출보다 내수를 키우지 않으면 성장이 어려울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재정 지출이 아니라 민간 투자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외환위기가 너무 쉽게 일어나고 외국인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금융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그리고 물론 떨어지는 출산율,늘어나는 국가채무로 인한 성장 잠재력 약화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과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위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숙제'다. 세계 경제가 70여년 만의 위기에 끌려들어간 지난 2년여 동안 전 세계가 위기 극복에 매달렸고,그 과정에서 G20 회의가 만들어졌다. 한국은 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을 뿐 아니라,G20 회의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그것이 위기 전부터의 숙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의제를 통과시킴으로써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한국이 과거의 경제 '기적'을 계속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는 십수년 전의 과거사보다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해 나가는가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계속 위상을 높여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될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다산칼럼] 존재하지 않는 보수정당
38면4단| 기사입력 2010-11-16 18:31 | 최종수정 2010-11-17 03:44
표심 노린 중도 개혁 지지층 잃어
시류 영합 않는 대안세력 나올때
최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70% 복지시대를 열겠다"며 여당을 '중도-개혁정당'으로 전환시킬 것임을 천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에는 메이저 보수정당이 없는 것인가.
원래 보수는 처세에 능하고 시류를 잘 좇는 무리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한나라당처럼 보수정당이 집권 도중 당의 정체성을 뒤바꾸는 경우는 세계 정당 역사상 희귀할 것이다. 세계 어떤 보수정당에나 그 존재가치와 철학,이를 지키려는 정신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당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선거 여론조사밖에 없는 모양이다. 따라서 작금 서민정치 행보와 더불어 국정 지지율이 50% 이상 오르자 크게 고무됐고,이참에 과거 조강지처처럼 충실했던 보수고객을 버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나라당의 이번 노선 변경은 여야 접경지대의 표심을 얻자는 것이다. 그러나 잃는 것도 계산해야 한다. 이제 이 당은 기존 지지자들로부터 의심,외면에 배신까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노 · 장년층은 과거처럼 투표소를 찾지 않을 것이다. 보수의 정통적 가치 회복에 목마른 골수 보수층은 새로운 대안을 희구할 것이며,이에 필연적으로 새 보수 세력의 부상,보수 표밭의 분열이 따를 것을 예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 때 몸을 던져 노무현 정권 매도에 앞장섰던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을 잃을 것이다. 이 정권은 이 우군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가를 잊은 지 오랜 것 같다. 이들은 그간 소외받아 사라졌거나 좌절에 분노하고 있다. 그 중 남은 활동가들은 지금 이 정부의 신념과 지조 부족,반시장정책 비판에 열정을 쏟고 있다. 2012 대선이 닥치면 누가 이들을 대신해 싸워 줄 것인가. 당의 새 고객인 서민계층의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한나라당을 대변해 주기를 설마 기대하는가.
필자는 금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오직 서민정치 덕이라고 보지 않는다. 2년반 전 광우병 촛불난동 이래 계속된 야당과 좌파집단의 거짓,선동,반민주주의 작태는 이제 그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정권은 안정기에 들어서고 법치질서도 자리잡고 있다. 삼성 현대 등 우리 기업 활동이 눈부시고 이명박 정부는 원전을 수주하고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성과를 연일 칭찬하고 우리 국민의 콧대는 올라갔다. 우리 국민이 이 정도도 평가 못하는가.
그런데 한나라당의 이번 탈보수 선언에서는 그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뜨내기손님만 상대하는 얄팍한 상인의 모습밖에 연상되는 것이 없다. 여론은 바람과 같을 게다. 내년 G20 선풍이 가시고 선거가 닥쳐오면 어떤 이슈로 여론이 흔들릴지,MB정부 지지율이 어떻게 부침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책임 보수정당이라면 이런 시류에 사사건건 영합하기보다 무소의 뿔처럼 굳건히 정도(正道)를 진군함이 믿음직하지 않은가.
보수정당의 정책이슈란 무엇인가. 지금 한국 경제의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그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외국 투자는 오지 않고 국내 기업 투자는 부진하고 외국으로 탈출한다. 궂은 일은 안하고,떼쓰고 투정하는 국민은 늘어난다. 이 국민에게 30년 뒤에도 고용과 복지를 제공하는 길이 무엇인가. 복지비용 재정적자 국가채무 국민담세율은 향후 어찌될 것인가. 사회통합과 복지만 강조한 유럽 복지사회 모델은 지금 어떤 지경인가.
보수정당의 서민정책은 최소한 이런 정책이슈를 통찰하고 그 지식과 자신감의 바탕 위에 펼쳐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이 이런 공력(功力)을 갖춘 친시장 정당이라면 보수 유권자들은 지금 뜻이 꺾이더라도 차기에 권토중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나라당이 이 역할을 거부하겠다면 한국의 건전한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지금 대안의 보수정당을 키울 싹이 심어져야 한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
[다산칼럼] 'MB 물가관리'의 추억
| 기사입력 2010-11-18 18:32
정부개입 가격감시 실패로 끝나
韓銀 통한 유동성 조절이 正道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선보인 '첫 작품'은 행정지도를 통해 통신요금을 내리고 52개 품목의 가격관리로 생활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의 정책 사고는 '반(反)시장적'이었다. 행정지도는 법령에 의하지 않은 불량규제의 전형이며,가격관리는 사실상 가격규제를 의미한다. 첫 작품은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새 정부의 상징이 돼 버렸다.
'MB 물가관리'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정책 수명'이랄 것도 없이 이내 정책시야에서 사라졌다. 정책 콘텐츠를 갖지 못한 나머지 그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MB 물가관리는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추억'이란 이름으로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해 온 집단이 있다. 바로 정부 조직이다. 추억은 부활하게 마련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물가안정 차원에서 '가격 중점 감시 품목' 48개를 선정, 발표했다. 기준은 국민 생활과의 관련성,산업집중도,그리고 국내외 가격차 등 세 가지다. 그 중 국내외 가격차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국내외 품목별 시장규모와 업계 현황,유통구조,관세,소비세제 등을 비교한 뒤 '시장 환율'과 '구매력지수(PPP) 환율'을 적용해 외국보다 국내가격이 높은 품목을 특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물가안정 대책은 이들 품목의 가격동향을 감시하고 국내외 가격 차이를 비교해 '비정상적'인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은 실패할 개연성이 크다. 정책의지만 앞섰지 정책인식이 냉정하지 않고 정책접근도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기업이 국내외 가격차이에 안주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심증일 뿐이다. 만약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수입을 확대하고 담합 등의 공동행위를 처벌하면 된다.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촉진하면 된다. 이처럼 '일반 원칙'에 의거한 시장적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따라서 가격감시 품목이 굳이 '48개'일 이유는 없다. 국내외 가격차는 오히려 당연하다. 그래서 무역이 생겨난 것 아닌가. "부당한 가격 인상에 대해서 가격 인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만큼 '반시장적'인 것도 드물다.
'구매력지수 환율'은 화폐의 구매력에 기초한다. 3500원 하는 빅맥이 미국에서는 3.71달러이기 때문에 구매력환율은 달러당 943원이다. 하지만 이달 17일 현재 시장환율은 달러당 1144.90원이다. 구매력환율을 기준으로 보면 원화 가치는 상당 정도 '저평가'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2010년 구매력환율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에 근접한 데 반해,시장환율 기준 1인당 GDP가 2만달러에 지나지 않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매력환율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상품은 한 방향으로 상대국의 재화에 비해 비싸진다. 따라서 구매력환율에 기초한 국내외 상품가격 비교가 갖는 의미는 반감(半減)될 수밖에 없다.
10월 소비자물가는 4.1% 급등했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시급하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기 때문에 유동성 조절을 통해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도다. 그동안 금리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환율 변수가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환율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줄어든 만큼 금리정책이 운신할 여지가 넓어졌다.
물가안정은 통화정책을 통한 한국은행의 몫이다. 정부가 '가격감시'라는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할 이유는 없다. 인수위 시절 'MB 물가관리'가 성공적이었는지를 뒤돌아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진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지평선/11월 15일] 배리어 프리
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4 21:03
지방대 출신으로 동네 간판이나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만에 기발한 옥외광고로 뉴욕원쇼페스티벌 최우수상, 클리오어워드 동상, 애디어워드 금상 등 무려 29개의 국제광고제 메달을 휩쓴 이제석(28)씨. 책 <광고 천재 이제석>까지 낸 그의 옥외광고에 이런 것이 있다. 지하도 계단 전체에 높은 산을 그려놓고는 그 밑에 "For Some, It's Mt. Everest."라는 카피를 넣었다. 불과 몇 개 안 되는 계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물론 장애인들이다. 팔순 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우리 동네(서울 송파구 문정동) 성당에서는 4년 전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지체장애우 미사가 열린다. 근처 장애인아파트가 있어 주임신부가 특별히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늘 30여명이 참석한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석의 계단'까지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불과 높이 5㎝ 현관 턱이 '에베레스트'였다. 그것을 다 부수고 경사를 없애 휠체어의 길을 만들고, 경사를 없애고, 성당 안의 의자를 빼 통로를 넓히고, 앞쪽에 넓은 공간을 마련한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곳곳에 산은 있었다. 화장실에도, 식당에도.
■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한마디로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편한 사회를 위해 건물, 도로, 공공시설에 턱을 없애자는 운동이다. 1974년 유엔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디자인'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시작했다. 일등 복지국가답게 스웨덴은 이듬해부터 바로 법을 고쳐 새로 짓는 집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도 불편이 없게 만들었다. 배리어 프리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역시 최장수 국가인 일본이다. 1995년 '복지마을 만들기 적합증 제도'를 도입했고, 2006년 12월 연면적 2,000㎡이상 건물에 배리어 프리를 의무화 했다.
■ 우리나라도 많이 달라지긴 했다. 육교를 없앴고, 서울 도심 간선도로에까지 횡단보도를 만들었다. 옛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2007년부터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54만8,239㎡ 규모의 문정지구는 처음으로 1등급 예비인증을 받아 '무(無)장애 보행 네트워크'로 조성된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차량 진입을 막으려 서울 도로에만 3만7,000여개의 볼라드가 있는 등 배리어가 한 둘이 아니다. 없애고 고쳐야 한다. 장애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80, 90세를 사는 우리의 '에베레스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지평선/11월 16일] 늦가을
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21:15
주말에 고향에 다녀왔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시제를 지내지만 요 몇 년 사정이 있어 빠졌다. 모처럼 두 형과 장조카와 함께 조상의 산소를 돌며 간단히 주과포(酒果脯)로 제를 올리고 산신제도 지냈다. 산소는 고향을 지키고 사는 삼종숙이 정성껏 벌초를 했는데도 세월과 함께 퇴락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잔디가 거의 죽었고, 그 자리에 억새를 비롯한 잡초와 잡목이 뿌리를 내렸다. 봉분과 주변에서 유기질 흙이 계속 쓸려 내려간 결과라서, 좋은 흙으로 가토(加土)를 하고, 잔디를 새로 깔고, 주위의 나무들을 베어내는 게 해결책이다.
■ 형들과 의논한 끝에 가토나 석축 정비, 잔디 깔기 등을 일절 안 하기로 했다. 비용이야 형제들이 나누어 감당하면 그만이지만, 간단한 가토 작업에도 이런저런 시비가 뒤따라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무엇보다 여기저기 산소가 흩어져 있는 상태로는 어차피 장기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주변 경관과 가족사의 상징성을 따져 가장 좋은 산소를 하나 택해서, 그 앞에 합동 묘를 하나 만들어 나머지 산소의 유골을 모두 화장해서 옮기기로 했다. 그래야 산소를 제대로 다듬어 둘 수 있고, 후대의 부담도 덜 수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 잠시 아쉬움이 느껴졌다. 가장 큰 아쉬움은 산소가 가진 크고 작은 이야기의 소멸이다. 어떤 산소는 <택리지>에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의 기운을 해친다는 반대에 부닥쳐 아예 절 문을 닫게 하고 만들었고, 어떤 산소는 구한말에 다른 문중과의 송사를 빚어 옥고와 패가를 불렀다. 딸린 전답과 임야 문제로 문중 내부 갈등을 빚은 곳도 있다. 합동 묘에서는 현장감을 갖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고쳐 생각하니, 들어도 무슨 소리인 줄 모르고, 알아도 감흥이 없을 아이들에게 굳이 전승할 이유도 없다.
■ 더욱이 가슴 속에 자리잡은 기억은 굳이 구체적 매개물을 통하지 않더라도 생생하다. 봄날 증조모 산소 옆에 피었던 할미꽃처럼 한번 뇌리에 박힌 기억은 색 바랠 일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대야산 용추계곡에 들렀다. 아내가 결혼 전 고향 집에 놀러 와 부모님과 함께 십리 넘게 걸어서 찾았던 인적이 드물었던 곳이다. 지금은 북적거리는 관광명소로 바뀌었지만, 30년 전 그 너럭바위 위에서 낮잠을 즐기던 아버지는 거기 그대로 계셨다. 서울로 차를 몰면서 그 30년 동안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를 내내 생각했지만, 눈만 뿌옇게 흐려질 뿐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어느새 가을도 끝물이다.
[지평선/11월 17일] 핏불 테리어
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6 21:21
2005년 8월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다. 피해지역에서 주인을 잃고 굶주린 맹견 2마리가 자기보다 몇 십 배나 커 보이는 황소를 공격하는 사진이 한 웹사이트에 소개돼 충격을 주었다. 이 맹견의 품종은 핏불(pit bull) 테리어. 말 그대로 황소를 물어 뜯는 개다. 원래 1800년대 미국에서 소 도살에 이용할 목적으로 영국산 불독과 테리어 종을 교배해 태어난 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핏불 테리어에 의한 소 도살이 금지된 후에는 투견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 도베르만 핀셔, 로트와일러, 저먼 셰퍼드, 도사견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맹견들이 많지만 사납기로는 핏불 테리어가 한 수 위다. 체구는 다른 맹견에 비해 작으나 한 번 물면 야구방망이로 내려쳐도 놓지 않고, 싸움 중에 살 가죽이 찢어져도 도망가지 않는다. 2차 대전 때 미국 해병이 독일군의 경비견인 도베르만 때문에 진지 접근을 못하자 핏불 테리어를 투입해 제압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는 핏불 테리어다. 외국에서는 도둑들이 핏불 테리어를 키우는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국내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는 비밀 투견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핏불 테리어가 등장한다. 도사견과 진돗개, 풍산개도 종종 투견판에 출전하지만 승률이 높은 핏불 테리어가 가장 보편적인 투견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핏불 테리어는 동물들만 보면 물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어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개 1위로 꼽힌다. 그러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도 있어 잘 훈련시킬 경우 사람에게는 매우 순한 편이라고 한다. 사납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핏불 테리어도 훈련시키기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13일자)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핏불 테리어에 빗댄 칼럼을 실었다. '김정일은 중국의 핏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이 핏불 테리어처럼 호전적이고 사나운 김정일 체제를 일본 견제에 이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필자는 그 근거로 얼마 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해상충돌 후 북한의 대일본 비난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막강한 대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라도 북한의 호전성과 사나움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핏불 테리어'를 이용할 생각을 버리고, 함께 길들일 생각을 해야 한다.
[지평선/11월 18일] 유대인의 체벌
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21:12
유대인만큼 아이들 교육에 체벌을 적극 활용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벌주는 일을 주저하다가 나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보다는 체벌이 더 교육적이라고 믿는다. 이런 태도에는 체벌의 필요성을 언급한 <구약성서>의 영향이 크다. '매를 아끼는 이는 자식을 미워하는 자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주 체벌을 가하며, 그러면 아이는 그의 기쁨으로 자랄 수 있다.' '회초리와 꾸짖음은 지혜를 가져오지만, 내버려진 아이는 제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
■ 유대인의 체벌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아이들을 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신발끈으로만 때리라'는 유대 격언에 따라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손으로 엉덩이나 팔 다리 등을 때리되, 지혜의 원천인 머리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도록 한다. 빗자루 등의 도구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른손으로 벌하고 왼손으로 안아주라'는 격언도 있다.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주로 아버지가 체벌을 가하는 '악역'을 맡는다. 어머니는 벌을 받은 아이가 잠들기 전에 자애로운 손길과 다정한 말로써 기분을 풀어준다.
■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성경을 근거로 아이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부모와 교사도 많다. 현대 히브리 시인인 하임 나흐만 비알릭은 초등학교 때의 체벌 경험을 이렇게 회상한다. "교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주먹이나 팔꿈치, 방망이 등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어느 교사는 답변이 틀릴 때마다 내 목을 잡곤 했다. 그는 더러운 손톱으로 내 눈알을 도려낼 것 같은 공포심을 조장했고, 이런 공포심은 내 정신을 마비시켜 전날 배운 어떤 것도 기억해낼 수 없게 만들었다."
■ 내게도 체벌의 기억은 끔찍하다. 중ㆍ고교 시절 수업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몽둥이찜질을 하거나 뺨을 후려갈기는 교사가 드물지 않았다. 체벌에 일관성도 없었다. 비슷한 잘못에 누구는 흠씬 두들겨 맞았고 고관대작의 아들은 그냥 넘어갔다. 교사가 기분이 울적할 때 걸리면 반죽음이다. 감정적으로 휘두르는 매질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결과, 국민 3명 중 2명이 '체벌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체벌 전면금지를 시행한 지 이제 불과 보름이다. 뿌리 깊은 체벌 관습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체벌 없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찾는 데 열중해야 할 때다.
[지평선/11월 19일] 수능, 잊어라
| 기사입력 2010-11-18 21:18
직장 다니는 딸아이가 지난 주 대학원 시험을 봤던 모양이다. 시험 친 사실을 고백하려 했던 게 아니라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얘기하느라 발설했던 것이다. 논술과목에 'G20의 의미'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마지막 결론으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국제대회가 되어야 한다'고 썼다는데, 답안지를 내면서 보니 '…유명무실(有名無實)한…'이라고 돼 있었다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완전히 거꾸로 썼다며 반은 울고 반은 웃으며 얘기했다. '입술을 떠난 말을 마구 손을 뻗어 잡아들이고 싶은 경우'로 비유하며 "잊어라"고 위로해 주었다.
■ 시험이란 다 그런 것이다. 고교입시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다음 중 지구의 모습과 가장 닮은 그림은? ①완전한 원 ②약간 타원형, ③ ④는 전혀 다른 모양. ②를 선택하고 나오는데 순간 생각하니 답은 ①이었다. 그 때의 황당함과 회한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있다. 그 흔한 우주에서 본 지구모습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 어린 마음에 당혹하고 불안했던 심정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거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 실점을 당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실점을 당하는 상황이 흔한 게 시험이다. 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 어제 71만 예비대학생의 수능시험이 끝났다. 직계가족만 해도 거의 300만에 가까운 국민이 애를 태웠다. 결코 잊기 어려운 실점에 당혹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어디 수험생뿐이겠는가. '어제 아침 10분만 일찍 아이를 깨웠어야 했는데, 점심으로 밥 대신 샌드위치를 싸줬어야 했는데' 등은 그렇다 치자. 사흘 전에 했던 잔소리에 후회가 생기고, 지난 주에 먹였던 쇠고기가 수입산이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지나간 일에 '이프(if)'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잘 알지만 그저 '이프'에 매달리고 그것에 붙잡혀 창창한 현재와 미래를 허비하는 게 삶이다.
■ ①대신 ②를 적어내고 나와 죽을 상을 짓고 있었더니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선친께서 말씀하셨다. "야 임마, 실제 지구는 타원형이니 네 생각도 틀리지 않았어, 잊어버려." 그 충고를 흉내 내어 딸아이에게 말했다. "야 임마, 명실상부든 유명무실이든 G20의 의미는 적어냈으니 됐어."라고. ②와 ①과 같은 과오를 그 날 이후 별로 저지른 기억이 없다. 수험생 본인이나 주변의 '이프'가 없을 수 없다. 스스로 깊고도 오랫동안 새겨져 남아있을 터이다. 그러나 잊어버리라고 서로 얘기하자. 앞으로 남은 시간, 지금부터 새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횡설수설/권순택]충무공 앞에 부끄러운 후예
A30면2단| 기사입력 2010-11-13 03:40 | 최종수정 2010-11-13 03:48
[동아일보]
10일 밤 제주항 인근에서 156t급 해군 고속정 참수리 295호가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고 탑승원 3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사고는 G20 정상회의 개막 전날 우리 군이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어났다. 해군의 기강 해이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야간에 일어난 사고라지만 가시(可視)거리가 5.4km나 됐는데 견시병(見視兵)들은 뭘 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고성능이라는 함정 레이더는 왜 무용지물이 됐는지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보고를 받은 함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국민은 올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줬다. 그러나 우리 군의 각종 허위보고와 경계 작전 소홀 및 기강 해이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시하는 국민이 많았다. 국방부는 최원일 함장 등 지휘관 4명을 군 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지만 최근 형사 처벌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방부는 군의 사기와 단결을 위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보면 언제든지 북한이 도발하면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군기(軍紀)는 엉망이고 전투력도 형편없는 군대를 흔히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이진삼 국회의원(자유선진당)은 우리 군의 기강 해이를 질타하면서 “이대로 가면 군이 옛날 당나라 군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최악의 조건에서도 신출귀몰한 전술 전략으로 ‘23전 23승’의 불패 신화를 이뤄냈다. 지금 같은 해군이라면 충무공의 후예라는 말을 꺼낼 자격조차 없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5월 4일 전군(全軍)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군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정신무장을 하라고 촉구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며 정신 재무장을 다짐했지만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국민은 군을 신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군은 국민을 거듭 배반하고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횡설수설/권순택]북한의 아웅산 수치
A38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03:20
[동아일보]
미얀마(버마)는 북한과 함께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가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다. 1948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얀마는 한때 필리핀과 함께 잘나가던 동남아 부국이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정권이 ‘버마식 사회주의’를 목표로 장기 집권한 결과 북한을 닮은 최악의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미얀마는 1975년 남북한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북한과는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때문에 단교했다가 2007년 관계를 복원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얀마는 48년 동안 군부독재정권이, 북한은 62년 동안 김일성 김정일 부자 세습 정권이 선군정치로 장기집권하고 있다. 북한은 미얀마에 무기를 수출하고 식량 등을 제공받는다. 지난해 10월 미국 하원에서는 북한이 미얀마를 무기 거래의 중간 기지로 활용하고 미얀마는 북한에서 핵 프로그램에 이용될 기술을 구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얀마는 2005년 수도를 양곤에서 깊은 산악지대로 비밀리에 옮겨 세상의 놀림감이 됐다.
▷1962년 군부 집권 이후 28년 만인 1990년 실시된 첫 총선에서는 아웅산 수치 여사(65)가 이끄는 야당이 압승했지만 군정은 선거를 무효화하고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그로부터 20년 만인 7일 야당 주요 인사들의 출마가 원천 봉쇄된 가운데 치러진 총선에선 군정이 지원하는 정당이 이겼지만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68년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1972년 결혼한 수치 여사는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는 지난 21년 동안 무려 15년을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13일 연금이 해제됐다.
▷북한에는 수치 여사 같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없다. 중국의 류샤오보 같은 반체제 인사도 없다. 북한은 민주화 인권운동의 싹이 터 거목으로 자랄 때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차 없이 죽이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보낸다. 설사 류샤오보 같은 인물이 민주화 요구를 담은 선언을 발표해도 언론 활동이 철저히 통제돼 북한 내부와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는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지금도 민주화운동가들이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횡설수설/홍권희]코레일의 無쟁의 교섭타결
A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20:04
광고
[동아일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허준영 사장과 김기태 노조위원장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임금을 동결하고 노조전임자 수를 64명에서 14명으로 줄이는 내용의 임금협약서에 어제 서명했다. 2005년 공사 출범 이후 노조가 파업이나 태업 없이 협상을 끝낸 것은 처음이다. 김 노조위원장은 “정부의 반(反)노조 분위기와 현실 여건을 감안해 노조가 숙제를 떠안았다”고 말했다. 노조가 강경 투쟁을 계속 할 경우 투쟁보다 조합원은 물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관측이다.
▷올해 초부터 15일까지 발생한 파업은 7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감소했다.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54만 여일에서 44만 여일로 19% 줄었다. 아직도 주요 선진국 평균치의 5배 수준이지만 감소세가 뚜렷하다. 이달 들어서는 5년 이상 된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해고자 농성사태와 동희오토의 사내하청업체 해고자 문제가 일단락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폭발했던 강성노동 운동이 합리적으로 연착륙을 하려는 징후가 보이는 것 같다.
▷최근 노조는 집단행동 대신에 노동위원회 제소를 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말까지 노동위에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1만49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늘었다. ‘투쟁’ 대신 ‘상생’을 선택하는 노조도 늘었다. 노사의 화합 선언은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280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투쟁지향적인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 나온 상생선언이 이 기간 중 19건에서 48건으로 2.5배로 늘었다.
▷노사 분규가 줄어든 현상에 대해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국민 여론이 노조의 불법 폭력투쟁은 물론이고 강경노선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경기 침체 이후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중시하게 됐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던 이전 정부와는 달리 현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어 노조가 무리한 투쟁을 삼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노조가 국민 눈높이에 맞춰 ‘누울 자리를 봐가며 다리를 뻗는다’는 얘기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총파업 계획을 축소하고 발전노조가 파업을 취소한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크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횡설수설/정성희]宗家의 紋章
A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03:38
[동아일보]
문장(紋章)은 유럽의 군주나 귀족들이 가문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려고 만든 상징이다. 유럽에서 문장이 발달한 이유는 투구 때문이었다. 기사가 얼굴을 뒤덮은 투구를 착용하면서 전투나 기마경기 중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게 되자 방패에 문양을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대부분의 문장은 테두리가 방패 모양이다. 프랑스 국왕은 백합 문양을, 영국 국왕은 사자 문양을 쓴다. 영국 랭커스터 가문과 튜더 가문이 왕위를 놓고 벌인 전쟁을 ‘장미 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각각 붉은 장미,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무사(武士·사무라이)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문장이 꽃을 피웠다. 메이지 일왕(日王)이 왕권 강화에 기여한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하사한 국화 문장,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이묘인 사타케 요시노부에게 준 부채 문장이 유명하다. 일본의 문장은 오동나무 해바라기 등나무 등 식물을 많이 채택한다. 유럽에 비해 디자인이 단순하고 색채도 수수하다. 이런 문장은 현대로 이어져 다카시마야 백화점, 스미토모사(社) 등이 설립자 가문의 문장을 회사의 로고로 사용한다.
▷문장은 왕권이 약하고 귀족과 막부의 세력이 강했던 봉건제도를 배경으로 번성했다.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가진 조선 왕조나 중국 왕조에서 문장 문화가 없었던 이유다.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는 문장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왕과 황제에 대한 불경(不敬)이 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종가(宗家)가 가장 많이 있는 경상북도가 도내 종가들에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어 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문장 제작을 의뢰받은 서울대 조형연구소는 해당 가문의 가보나 사연 등을 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문장의 테두리는 대중을 향해 열린 종택(宗宅)의 대문을 상징하는 세로줄로 통일했다. 영주 연복군 종택 문장에 들어 있는 소나무, 눈, 꽃은 연복군의 아호인 송설헌(松雪軒)을 이미지화했다. 시인 조지훈 생가인 영양 한양 조씨 종택 문장에는 매가 들어 있다. 매가 내려앉은 곳에 집터를 정했다는 일화에서 따왔다. 새로 만드는 문장이 잊혀지고 있는 종가와 선비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횡설수설/이정훈]장마당의 분노
A34면2단| 기사입력 2010-11-18 03:32 | 최종수정 2010-11-18 07:58
[동아일보]
북한의 장마당은 1990년대 중후반 배급제가 무너지고 수백만 명이 굶어죽으면서 생겨났다. 살아남기 위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하기 시작하다가 화폐를 매개로 하는 매매로 발전했다. 지금은 중국을 거쳐 들어온 한국 제품의 상표를 적당히 지워서 팔아 제법 큰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 상표를 완전히 지우면 제값을 못 받는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시장이 만들던 부(富)를 권력이 빼앗으려는 시도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이 시장을 토대로 자력갱생했다면 북한 권력은 해외원조에 기대 연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급제가 붕괴된 시기에 북한 권력은 개입정책을 펼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와 햇볕정책을 펼친 한국 정부를 상대했다. 핵과 미사일을 들고 위협해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중유를, 한국 정부로부터는 돈과 쌀을 받아냈다. 이 시기 북한의 민간 경제는 다양한 시장을 창출했다. 2001년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은 1000만 원이었다. 2만 탈북자 시대가 열린 지금은 100만 원대로 떨어졌다. 탈북자 빼내기 사업에 뛰어든 브로커의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세금을 내지만, 북한 시장에는 세금이 없다. 규제와 세금이 없다 보니 부의 축적이 빨랐다. 눈치 빠른 관료들도 시장에 뛰어들어 권력을 배경으로 돈을 벌었다. 1,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유엔 제재,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퍼주기’의 중단으로 밖에서 들어오던 돈줄이 마르자, 북한 권력은 시장이 창출하는 부를 뺏기 위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새 화폐로 바꿔줄 수 있는 금액을 한정해 장마당 사람들이 재산을 날린 반면 권력은 손쉽게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화폐개혁 후 심각한 인플레가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지자 북한 권력은 천안함 사건을 일으켜 위기를 조성했다는 얘기도 있다. 군과 경찰을 앞세워 위압적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민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민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시장을 짓누르려는 김정일 정권의 폭압이 언제까지 먹혀들지 두고 볼 일이다. 시장을 체험한 주민은 북한의 세습 정권에 위협적 존재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매경춘추] 대학과 혁신
A37면2단| 기사입력 2010-11-14 18:00
오늘날 모든 명문 대학들이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이 앞장서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기보다는 혁신을 뒤쫓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생 조직들이 빠른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 e-러닝, 웹 기반 강의, 유연한 고용방식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과연 역사와 전통, 풍부한 재정으로 뒷받침되는 명문 교육기관들은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인가.
대학교육(특히 경영학의 경우)은 글로벌화, 기술 및 역동적인 사회적 지형 변화로 인해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존의 틀에서 시도한 개선만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확신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도전에 대해 응전으로 답하고 미래를 끌기 위해 대학들(특히 비즈니스 스쿨)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만큼 역동적이어야 한다.
학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우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회들이 학생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대학들은 현재의 정의를 뛰어넘는 일을 하고, 또 예측 불가한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콘텐츠 소비를 계량적으로 측정함으로써 정확한 광고비 산출이 미디어 업계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와튼스쿨은 ESPN과 함께 2010 FIFA 월드컵의 미디어 콘텐츠가 TV 및 라디오 외에도 인터넷, 모바일, 스트리밍 비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연구했다. 이는 기존의 현상을 뒤쫓고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 시장이 원하는 지표를 개발했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학생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는 의미 외에도 지식을 창출하여 세계와 공유하는 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리더로서의 자질을 연마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외에도 대학들은 글로벌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위해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자기 혁신을 하고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오늘날 대학들이 가져야 하는 믿음이다.
[토머스 로버트슨 와튼스쿨 학장]
[매경춘추] 아! 옛날이여
A37면2단| 기사입력 2010-11-15 17:28
작년 여름 모처럼 시간을 내 가족사진을 찍었다. 셔터를 막 누르려는 순간 큰아들 녀석이 안경 광고하는 사진 찍느냐면서 자신은 안경을 벗고 찍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를 비롯하여 네 식구가 모두 '안경잡이'였다. 어쩌다 온 가족이 안경을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니 나와 아내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두 아들 녀석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안경을 친구로 삼고 있다.
2009년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생 중 절반에 가까운 46.2%가 안경을 착용하고 있거나 착용해야 할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2008년에 실시된 어느 한 조사에서는 안경을 쓰는 학생 비율이 초등학생 20.8%, 중학생 42.2%, 고등학생 55.0%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농촌과 도시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력을 비교한 결과 도시 아이보다는 농촌 아이들의 시력이, 그리고 여학생보다는 남학생들의 시력이 더 좋다고 한다.
왜 그럴까? 옛날에 비해 요즘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만을 보는 근거리 작업을 주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을 뒤돌아보면 쉬는 시간 종소리를 듣자마자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 하늘로 '뻥' 차올려진 축구공을 쫓아 달리고, 30분 정도 등하굣길도 걸어 다니며 날아가는 새도 보고 먼 산의 단풍도 보곤 했다.
요즘의 아이들은 서너 살이 넘어서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 그림책을 비롯한 온갖 익혀야 할 것을 담아 놓은 책들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고 틈새 시간이 조금이라도 날라치면 전자게임기, TV, 컴퓨터, 휴대폰 등이 아이들의 눈을 순식간에 잡아챈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학원으로 또는 인터넷 강의 등으로 내몰리어 바깥 활동을 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큰 젊은 엄마들에게 감히 이렇게 권한다면 귀에 많이 거슬릴까? 이제 엄마들이 내 아이의 눈 건강을 챙겨주는 것도 중요한 몫이 아닐까 싶어 잔소리를 늘어본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눈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바깥 놀이를 할 시간을 제발 주소서."
[문정일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장]
[매경춘추] 걸그룹의 이면
A37면2단| 기사입력 2010-11-17 17:33
얼마 전 우연히 '일본을 강타한 한국 걸그룹 열풍'이라는 타이틀의 TV 프로그램을 봤다. NHK는 우리 걸그룹의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하고, 일본 여성들 사이에는 한국 걸그룹 따라하기가 유행이라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 화려함 이면의 걸그룹 양성 과정이었다. 엄선된 어린 멤버들은 몇 년간 혹독한 연습 끝에 비로소 데뷔하고 작곡가, 안무가, 스타일리스트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과 투자를 받는다고 했다. 세계 각국 유명 작곡가들로부터 이미 받은 대기곡이 6000곡이 넘으며, 매주 신규로 50곡에서 200곡이 들어오고 있다니 그 관심의 수준도 가공할 만하다.
필자는 글로벌 종합금융회사의 경쟁력과 우리 자본시장의 냉정한 현주소를 학생들에게 지적해 주던 금융법 강의시간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세계 정상 걸그룹의 창조신화(?)를 떠올리면 우리 금융 인력들이 교육기관, 금융회사, 감독기관으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와 지원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선진금융강국을 모델로 금융회사의 겸업화ㆍ대형화 작업의 기초로 자본시장법을 제정ㆍ시행 한 후에도 아직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출현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얼마 전 터키 원전 수출 관련 협상에서 일본은 "돈 걱정 말라"며 접근한 데 반해 우리는 취약한 금융경쟁력을 드러내면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시아 경제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중국이나 일본 수준의 국부는 없다. 그러나 이보다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문 금융인력의 부족이 아닐까? 금융과 산업의 융합 및 균형발전,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급 금융인력 양성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업계에는 대원칙이 있다. "금융을 모르는 자는 아는 자에게 반드시 당한다"는 것.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금융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고급 금융정보 및 금융네트워크에 접근 가능성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고, 우리 국민과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통해 그 역량을 결집한 '금융허브강국-한국계 글로벌 대형투자은행'들이 세계 각국에서 활약을 할 날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남유선 국민대 법대 교수]
[매경춘추] 가을에 하는 사랑
| 기사입력 2010-11-18 17:58
필자는 매년 가을 이맘때만 되면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사랑을 듬뿍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사랑이란 서로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제일인데 어느 한 쪽의 짝사랑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아 해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주 하반기 신규 채용 최종 면접을 했다. 일주간 하루에 10시간씩 면접을 하니 온몸의 진이 다 빠져 열병을 앓고 난 다음처럼 허공에 붕 뜬 기분이다. 다들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인재들이니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애를 썼다. 무엇보다도 지원자들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 만큼 최선을 다해 판단해야 하겠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채용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주로 지원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입장이지만 일단 합격자 발표가 난 이후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합격자에 대한 회사의 적극적인 구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상당수 지원자들이 타사와 중복 합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자가 서로 원해서 입사를 하는 것을 결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학생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세대라 아니할 수 없다. 대학생활 내내 학점 올리랴, 어학연수가랴, 동아리 활동하랴, 소위 스펙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고도 취업문이 좁아 실패한 학생들은 취업 재수, 삼수를 하는 실정이니 일단 경제는 성장을 하고 볼 일이다. 면접관들 간에 우리는 지금 같으면 감히 취업은 엄두도 못 냈을 거라고 안도의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4년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가물에 콩 나듯 한다. 기본이 5~6년이다. 대부분 토익 공부, 자격증 따기, 면접 준비 등 취업준비를 한다고 하는데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그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가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20대 중반의 시간과 돈을 그렇게 허비하는 게 국가 전체적으로도 낭비가 아닐까 싶다. 젊은이들이 알찬 학창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큰 꿈을 펼칠 수 있게 취업의 문호를 넓혀 주는 게 우리의 의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이 매년 가을이면 앓는 열병인 사랑의 결실을 맺는 길이기도 하고.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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