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영감
남 진 원
<1>
개나리 꽃나무가 노랑 별꽃을 피우던 봄날이었습니다.
“이 녀석들아, 나 죽는다. 좀 살살 내려놓아라.”
쇠영감은 오래 된 난로입니다. 그 쇠영감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쇠영감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개구쟁이들은 쇠영감을 창고 앞에다 ‘콰당탕!’하고 내동댕이쳤습니다.
“아이구, 아파라.”
쇠영감은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도 겨우 냈습니다. 개구쟁이들은 저희끼리 히히덕대더니 이내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학교 아저씨의 손에 의해 쇠영감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갇혔습니다.
‘찰그락!‘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는 마치 창고 안의 어둠마저 꽁꽁 묶어놓는 것 같습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침묵이 어둠 속에 떠 있습니다.
“아휴, 또 얼마나 갑갑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
벌써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습니다.
쇠영감은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랜 경험으로 느꼈습니다. 지금부터는 잠을 자야 합니다. 아니 꿈을 꾼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창고 문이 열려지려면 알록달록 산을 수놓은 단풍잎이 떨어지고 첫눈이 올 때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며 쇠영감은 깊고 깊은 꿈나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2>
쇠영감의 눈앞엔 힘들었던 일과 신나고 즐겁던 시절이 나사못처럼 뱅글뱅글 풀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반들반들 윤나는 몸매로 처음 이곳에 오던 날. 그날은 첫눈이 담뿍담뿍 내리고 있었습니다. 참 고운 눈발이 반가운 손님처럼 들판에, 학교 운동장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젊은 몸을 자랑하며 쇠영감이 교실 한가운데에 떡 버티고 앉자,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들었습니다.
“야, 난로가 참 멋있다.”
나무를 넣자 곧 불꽃이 타오릅니다.
“이렇게 불이 잘 피는 난로는 처음이네.”
“정말 정말 신기하다.”
아이들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가 봅니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얼마 안 있어 곧 자두 빛 얼굴로 변했습니다. 손을 호호 불며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으면 사과 볼이 된 아이는 얼른 자리를 비워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쇠영감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쁨의 날들이었습니다.
쇠영감은 난로공장에 처음 들어오던 날 자신이 무엇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점차 자신의 몸뚱이가 불에 달구어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멋진 난로가 될 거야!”
“암, 아이들이 좋아할 거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쇠난로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실망에 잠겼습니다.
‘내가 겨우 코흘리개 아이들 교실의 난로로 쓰여지다니….’
쇠영감은 자신이 적어도 큰 회사의 기둥이나 사무용 집기로 쓰여지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공장에서 이글거리는 불에 달구어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을 때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속으로 삼켰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 받고 나서 겨우 꼬맹이들을 위한 난로가 되다니….’ 생각할수록 억울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몸이 탄생될 때의 아픈 기억을 오히려 자랑거리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클수록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믿었습니다. 쇠영감은 자신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어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쇠영감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기에 항상 행복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3>
아이들은 학교에 먼저 오는 경쟁이 붙었습니다. 모두들 먼저 와서 불을 피우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린 발을 굴리며 제일 먼저 문을 연 아이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개선장군처럼 쇠영감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야, 아무도 안 왔군. 내가 제일 먼저 왔다!”
아이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넘쳐흐릅니다.
이윽고 광솔에 불을 붙인 아이는 쇠영감의 몸을 달구기 시작합니다. 교실에는 나무 타는 냄새가 슬금슬금 번져나기 시작합니다. 그 뒤를 따라 따뜻한 기운이 곰실곰실 교실 안에 떠돌아다닙니다. 이따금 불꽃이 튀며 나무 타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마른 나무가 타는 냄새는 기분을 좋게 해 주는 향기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침 교실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되어 갑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모두 환한 웃음을 담고 있습니다. 겨울바람에 얼은 햇살도 유리창 안으로 들어와 쇠영감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쇠영감은 그들에게 더운 불기운을 나누어 주기 위해 더욱 열심히 불꽃을 피웠습니다.
<4>
사회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는 분들에 대해 공부해 볼까요?”
“저요? 저요?”
아이들은 제각기 일어서서 우체부 아저씨, 경찰관 아저씨, 국군아저씨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장자리에 앉았던 바우가 불쑥 일어서더니
“선생님, 쇠영감이어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바우를 쳐다보았습니다. 바우가 말하는 ‘쇠영감’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궁금했습니다.
“바우야, 쇠영감이 누구지?”
“여기 우리를 따듯하게 해 주시는 난로 영감입니다.”
바우의 목소리는 엄숙하기까지 했지만 아이들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한바탕 웃음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웃음이 그치자 엄숙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바우는 아주 대견스런 생각을 해냈군요.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는 분은 사람만은 아니어요. 공기나 물, 태양처럼, 여기 있는 난로 영감님도 고마운 분이지요. 자, 우리 모두 쇠영감님께 박수!” 교실은 요란한 박수 소리로 꽉 찼습니다.
쇠영감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기뻤던 날은 바로 이 날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면서 해맑은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데 대해 또 다시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5>
그러나 어느 틈에 녹이 붉게 슬어버린 자신의 몸을 생각하고 슬픔에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지난겨울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은 자꾸 땅 속으로 꺼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쇠영감은 어느 젊은 선생님이 담임을 한 아이들의 교실에 배정 받았습니다.
“아니, 다 썩은 고물을 누가 여기에 가지고 왔니? 가서 다시 새것으로 바꾸어 와!”
젊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학교 아저씨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 아저씨는 젊은 선생님의 교실로 들어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난로는 오래되긴 했지만 아주 나무가 잘 탑니다. 우리 학교의 보물입니다.”
“보물 좋아하시네. 고물상에나 가야 할 이런 낡은 걸로 어떻게 불을 피워요? 아저씨, 제발 좀 새 것으로 바꾸어주세요.”
선생님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책임질 테니 올해만 써 보세요. 수업 시간도 많고 하여서 다른 학년에 드릴까 하다가 특별히 배정한 것입니다.
특별히 배정했다는 아저씨의 말에 젊은 선생님은 마지못해 수그러지긴 하였지만 쇠영감의 슬픔은 너무 컸습니다.
“나는 아직도 힘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나를 믿지 못할까?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지. 암 나의 능력을 꼭 보여주어야지. 꼭 보여 주고말고. 암, 암.”
쇠영감은 불꽃을 활활 피웠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꽃잎처럼 붉게 물들어갑니다.
- “나는 이렇게 일할 수 있어. 암, 있구 말구! 아직까지 젊었다구? 앞으로도 십년은 새 난로 못지않게 일할 수 있어.” -
<6>
“이 봐, 쇠영감. 무슨 잠꼬대가 그리 심한가? 어서 일어나게.”
쇠영감은 친구들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습니다.
쇠영감은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이에 벌써 겨울이 왔던 것입니다.
쇠영감은 잠에서 덜 깨어서 그런지 꿈에서 보던 밀감 빛 아이들의 얼굴이 회색빛 콩크리트 건물 사이로 어른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가 어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긴, 이 친구야. 그 젊은 선생 말처럼 고물상에 가는 거지.”
쇠영감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엔 쇠영감과 친구들은 덜커덩거리는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입니다.
쇠영감은 눈을 스르르 감았습니다.
그때 하얀 천사가 내려왔어요.
그날처럼 첫눈이 방글방글 내리고 있었답니다.
쇠영감은 친구들과 함께 눈처럼 하얀 꿈을 꾸며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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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53년 강원도 정선 문래리에서 출생하여 강릉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함 .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교육학 석사)
1977년 2월 아동문예 동시로 등단
저서: 『톨스토이태교동시』외 많음. 관동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