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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5월 27일 월요일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다며 즐거워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는 훌륭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달려와 …… 무릎을 꿇고” 질문할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이었고,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 도덕성에도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대견히 여기시며, 그를 더욱 성숙한 삶으로 이끄시고자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라고 하십니다.
신앙의 완성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추는 데에 있지 않고, 온전한 자유로 그분을 따르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 자유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놓을 때에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부와 권력은 본디 하느님의 것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허락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의 자리에 놓게 될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무겁고 불편해집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돈과 권력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야만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이 나를 전능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들고 거짓 행복에 빠지게 한다면, 부자가 되고 권력을 쥐는 것보다 더한 구원의 악조건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한 것입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애야, 오늘 나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부자 청년과 관련된 복음 말씀을 들으시고 나서 고민이 큰 분들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비결이자 전제 조건으로 모세를 통해 건네주신 십계명에 대한 준수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계명에 대한 충실한 준수 외에 또 한 가지가 더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소유한 부를 혼자 독식하지 말고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라는 권고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다들 살짝 혼동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권고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권고라기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을 향한 권고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하고 오랜 기간 더 챙겨야 할 여우 같은 부인과 토끼 같은 자녀들이 있는 경우, 말씀 그대로 실천하다가는 결론은 패가망신입니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부를 창출하고 절약하고, 재정 관리를 잘해서 가족들을 잘 챙기셔야 마땅합니다. 자선을 베풀더라도 현실을 잘 파악한 후에 적정선에서의 자선을 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큰 뜻을 품고 삶을 대대적으로 전환하고 싶은 분들, 이제 달릴 곳을 원 없이 달리시고, 인생에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분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셔도 무방합니다.
혹시 나는 여유로운 재물이라든지 풍족함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역시 오늘 복음과 나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기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 세상에 나눌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물이라는 표현은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비록 재물이 부족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얼마나 좋은 일들을 많이 할수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돈보다 훨씬 소중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 측은지심, 기도, 희생, 미소...베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주님께서는 질문 하나를 던지십니다.
“애야, 오늘 나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린아이에게 다이아몬드와 과자를 주고 선택하라고 하면 다이아몬드보다는 과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먹을 수 없지만, 과자는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에게 다이아몬드와 과자를 주고 선택하라고 하면 과자보다는 다이아몬드를 선택할 것입니다. 과자는 먹으면 곧 없어지지만, 다이아몬드는 빛나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부유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축복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난민촌으로 봉사 갈 수도 있고, 유럽으로 여행 갈 수도 있습니다.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 어떤 사람은 유럽 여행을 선택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니 떠나라’라는 말처럼 휴가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는 보상입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일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난민촌 봉사를 선택할 것입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난민촌 봉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도 난민촌 봉사를 선택하였습니다. 부모님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게 가능하면 말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따님은 좋은 몫을 택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모님도 나중에는 딸의 선택을 축복해 주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동창 신부님 중에 ‘도시 빈민 사목’을 선택한 신부님들이 있습니다. 삼양동, 금호동, 장위동, 봉천동(중앙동)에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교구에서 신부님들이 거처할 집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 집이 성당이 되었고, 그 집이 회합실이 되었고, 그 집이 친교실이 되었고, 그 집이 식당이 되었고, 그 집이 사제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창 신부님들은 20년이 넘게 도시 빈민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용산의 철거민들의 모임에, 세월호 유족들의 모임에, 이태원 유족들의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들 무심코 지나가는데 한 친구는 걸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내어놓고 사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희생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제 인사의 권한은 교구장님에게 있다며, 제게 주어지는 소임에 만족했습니다. 2018년 성소국을 마치면서 처음으로 주교님께 저의 의견을 말하였습니다. 본당 사목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교구는 인사 적체로 인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교구청에서 일했기에 그 사정을 잘 알았습니다. 주교님은 저의 의견을 받아 주셨습니다. 저의 선택으로 저는 뜻하지 않게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신문사에서 5년 있었고, 지금은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선택한 신앙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선택한 신앙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재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 보존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신앙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그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넘어지는 유혹은 ‘재물’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 유혹이 너무도 강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
오늘 제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불로 단련을 받는 아름다운 금을 봅니다. 아름다움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들에 감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한 시간은 아름다운 과거가 될 것이고, 최선을 다할 시간은 희망찬 미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 은총의 빛으로 순간을 충실하게 살면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오늘의 성인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e)
신분 : 선교사, 대주교
활동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 +604/605년
같은이름 :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오스틴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이나 청소년 시절 혹은 교육과정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Roma)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595년 그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듬해에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앵글로 색슨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40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성 베다(Beda, 5월 25일)에 의하면 그는 이미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주교로 승품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를(Arles)의 대주교에 의해 주교 수품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597년 봄에 프랑크 왕국의 도움으로 영국 켄트(Kent) 왕국의 해안가 타네트(Thanet) 섬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선교사들과 켄트의 왕인 성 에텔베르트(Ethelbert, 2월 26일)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선교활동에 장애가 많았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켄트의 수도인 캔터베리에 주교좌를 정하고 활동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개종자들이 탄생했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과 신하들이 597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왕이 하사한 땅 위에 주교좌 성당을 세우고 도시 외곽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수도원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켈트(Celtic) 전례를 고수하려는 주교들이 로마 전례의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여생을 켄트에서 보내면서 런던(London)과 로체스터(Rochester) 교구를 설정하고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는 캔터베리의 첫 번째 대주교이자 '영국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오스틴(Austi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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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나셀라 (Monacella)
활동년도 : +590년경
신분 : 동정녀
지역
같은 이름 : 멜란젤라, 모나첼라
멜란젤라(Melangella)로도 불리는 성녀 모나셀라의 부친은 아일랜드의 왕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결혼 강요를 뿌리치고 웨일스 중동부의 포이스(Powys) 지방으로 도주하여 15년 동안이나 하느님만 의지하며 숨은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포이스의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기도하고 있는 성녀 모나셀라가 있는 곳으로 토끼를 추격해갔다. 그 토끼는 그녀의 옷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왕자는 성녀를 위해 '영원한 피난처와 거룩한 장소'를 제공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곳에서 37년을 지내면서 큰 공동체로 발전했을 때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