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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9: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파 죽겠는 상황에서도 할 말이 너무 많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네 입이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죽지는 않겠구나"
■(욥 9: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나도 잘 안다. 나쁜 사람에겐 벌이 임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한다는 것쯤은.
인생들이 창조주 신 앞에 의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욥 9: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사람이 신 앞에 이러쿵 저러쿵 변론할지라도
신 앞에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한다.
■(욥 9: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신은 지혜로우시고 강한 분이시라 사람 스스로가 완악하게
행동하고도 형통할 자가 없다는 것도 욥은 알고 있다.
자기는 그렇게 완악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욥 9: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욥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 아픈 와중에도 그런 것을 밝히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이런 대화를 하고 살았었다.
그렇게 신에 대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항상 토론을
일삼으면서 남들에게 가르치고 살았어도, 그래서 신을
많이 아는 것 같고 신과 아주 친한 것 같아도 막상
그 말씀대로 내게 사건이 닥치고 나니 나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신의 뜻을.
나는 무슨 잘못을 그리 크게 했기에 이런 징계가 임했는지를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저 친구들도 나랑 평상시에 신에
대해서 토론했던 사람들인데 신은 왜 저 사람들은 멀쩡하게
나두고 나한테만 그러시는지 도대체가 모르겠다.
신에 대해서 많이 아는 척 할수록 더 혼나는 것 같다.
■(욥 9: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욥도 신이 어떤 분이신지 공부를 많이 해서 잘 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신께서 지진도 일으키신다. 천재지변을 일으키신다.
■(욥 9: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창조주 신께서 우주를 관리하신다.
신께서 명령 하시면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뜨던 해도
못뜨게 하시며 별도 보이지 않게 하실 수 있으시다.
■(욥 9: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욥 9: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욥 9: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우리는 신에 대해서 이 정도도 하실까? 이런 것도 하실까?
이런 것은 안 하시고 못 하실거야? 하면서 자기 생각에 울타리를
쳐 놓고 신을 그 안에 가두고 꼼짝하지 마시라고 하고 있다.
신의 전능하심은 사람으론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고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다.
성경에 있는 이야기?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성경은 그냥 인간들을 관리하시기 위한 법전 정도에 불과하다.
창세기 이전의 창조주 신의 모든 것은 상상조차 못한다.
주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 끝없이 펼쳐지는 은하계의 수없는
별들과 태양계와 아담부터 해서 현재까지, 아니 알 수도 없는
미래 인간까지 숫자와, 무한하신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단번에 알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신께서 사시는 처소가 아니고 인간들을 두기 위한
하나의 펜션 같은 것 뿐인데 말이다.
■(욥 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도 신께서 내 앞이나 옆에서 오고 가시면서 움직이시지만
인간인 나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 것을 안다는
것은 그동안 살면서 신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느낌을 지금 현재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배워서 다 귀신이라고 치부한다.
귀신이든 아니든 영의세계 존재가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 느끼게 되면 머리털 솜털 다 일어나고 무섭다.
그래서 귀신인줄 안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욥은 그 분이 창조주 신이시라는 것을 안다.
사람에게로 귀신이 왔다가 창조주 신이 왔다가
귀신이 와서 사람을 놀래키고 괴롭히고 넘어뜨리고,
창조신은 오셔서 우시면서 그런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하시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창조주 신이
아니시다.
사람도 그런 시스템을 쓰지 않는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신께서 귀신과
협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탄과의 전쟁?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전지전능
이라는 말을 빼자.
그냥 수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어라.
그 중에 하나님은 '1인자' 라고.
우리 눈에 당장 무서워 보여서 그렇지, 그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까불고 떠들고 낄낄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좋아 죽겠어서 떠드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죄값이 그렇게 떠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부흥회 때는 귀신을 쫓는 행사였나본데,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믿음도 좋다고 하는 교인들도
부흥강사라 머라고 귀에다 대고 방언으로 하니
그 교인들도 방언인지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하는 것을 보았다.
저 사람도 귀신이 들었다는 건가? 했다. 그때는.
누구나 자기 죄값은 항상 있는데 좀 크냐 작냐,
상계됐냐 안됐냐 그런 차이는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죄값의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안 드러내고
하는 것도 다 창조주 신의 뜻이다.
'영의세계'는 아주 복잡하다.
창조주 신 본체께서 계시는 영의세계 본부가 있다.
이 곳에는 아담부터 해서 현재의 나나,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모든 존재들의 영체가 같이 있다.
이 곳을 보고 온 자는 아무도 없다.
이 땅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것 없이
완전 죽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곳이다.
각 사람들의 '죄 값'의 영의세계가 있다.
또 다른 영의세계는 영상과도 같은 것인데, 나 개인의
'상 값'과 '죄 값'을 상계시키는 영의세계가 있고,
가족, 종교, 사회, 지역, 나라 등의 '상 값'과 '죄 값'을
상계시키는 영의세계도 있고, 다른 영의세계들도 있다.
어떤 영의세계를 보고 온 사람 중에, 지금 현재 살아서
살고 있는데도 그 사람을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던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던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 형상세계와 '죄의 법' 형상세계를
보고 온 것이다.
각 사람마다 '선함'의 계산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법'
세계와, 각 사람마다 '악함'의 계산으로 이루어진 '죄의 법'
세계인 것이다.
이곳은 '그 사람'의 상 값과 죄 값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형상'으로 보여진다.
그 사람이 한번 하나님의 법 세계에 있었다고 해서 끝까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한번 죄의 법 세계에 있었다고
해서 끝까지 있는 것도 아니다.
계속 상계시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 갈 것
같다가도 내일 되면 지옥 갈 것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누굴 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 죄가 형상화 된 '죄의 법'형상 자체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는 것이다.
욥은 주께서 하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마귀다 귀신이다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죽고 나서 계산하느라고 바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면서 실시간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의세계의 고통의 모습이 육의 세계에서의 나에게는
일이 안 되고, 엉키고, 망하고, 사고 나고, 병들고, 죽기까지
하는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고집불통에다 못된 행실을 일삼고
인색하자면 2등이 서러울 정도인 ‘구두쇠 영감 스크루우지’
할아버지의 과거, 현재, 미래를 크리스마스 세 유령들과
떠나면서 못된 할아버지의 생각을 변하게 만들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볼 줄 알게 된, 그야말로 개과천선한
‘스크루우지’ 이야기를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표적으로 말한 것인데,
불신자들만 이런 유령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에게나 있다.
이것은 스크루우지 영감 자신의 ‘죄의 법’ 세상을 보고 온 것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원성을 사고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고 사는 사람들, 특히 한이 맺히도록 사는 사람의 크기는 더
강하고 크다.
자기의 ‘죄의 법’ 세상에서 얼마나 쫓기고 도망 다니고, 고통스럽고,
어디를 도망가도 피할 길도 없고, 너무 괴로운 것을 경험하고 오니
개과천선하게 된다.
이때 반성하고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화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남이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온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죄의 법’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본인이 직접 그것을 보고 경험하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남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오는데
그것은 그 남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스크루우지 같이 ‘자신이 고통 하는 것’을 보고 오는 사람이 거의
진짜 라고 할 수 있다. 신은 나의 잔소리로 남을 변화시키시는
분이 아니시다.
남의 ‘죄의 법’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너는 올바른데 그녀석이 악하게
살아서 걱정이구나"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나의 행실로 남을 변화
시키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무언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그 본인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며, 그 본인을 위함인 것이다.
자기의 죄의 법 세계를 보고 처절하게 깨닫고 반성하고 뉘우치고
돌이키고 회개하는, 개과천선하는 삶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 영의세계를 본 사람들 중에 “참 내!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죄의 법 세계를 봤다는 것이냐?” “어디서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고 할지 모르겠지만, ‘욥’ 이 그랬던 것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러세요 신님!”
“그럼, 저 사람들은 죄가 없다는 것이예요?”
“저 같이 산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예요,
제가 도둑질을 했어요, 제가 간음죄를 졌어요,
제가 살인을 했어요, 제가 사기를 쳤어요,
저는 그야 말로 남에게 돈도 꾸지도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살았는데요”
“얼마나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요”
라고 따질 것이다.
하지만 신의 계산 법은 사람의 계산 법과 다르시다.
나의 머리털 숫자는 고사하고 온 몸의 솜털 숫자까지 아신다.
그러니 누구든 속 마음의 죄, 양심이 죄까지 계산된
'죄의 법'이 쌓이고 더 큰 형상을 이루기 전에 빨리
빨리 반성하고 뉘우치고 돌이키고 회개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신께 징계를 덜 받는다.
하나님의 징계도구들의 영의세계
어떤 사람은 공중에 무리를 지어서 바쁘게 움직이고 하는 마귀들을
보았는데, '전쟁마귀'나 그 밑으로 무슨 '마귀' '악령' 해가면서 등급이
있는 것을 본 것은, 하나님의 징계도구들을 보고 온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무조건 다 형상으로 움직이고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 형상화되어 움직인다.
'징계마귀'들의 특징은 "사랑이 없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막대기들로
쓰임 받는 마귀들은 절대적으로 사랑이라고는 1%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에게 징계를 내리칠 때나, 불을 떨어뜨리고, 불살라 버리고,
욥의 종들을 죽여야 하고, 가축을 죽여야 하고, 욥의 자녀 10명을 순식간에
죽여야 하고, 적을 보내서 칼로 점멸해 버리고, 아이들을 부모가 보는 앞에서
내동댕이 쳐야 하고, 적의 나라 부녀자들을 성폭행 하고 죽여버려야 하고,
땅이 꺼지게 하고, 화산이 터지게 하고, 해일이 일어나게 하고, 폭풍과 태풍이
몰아치게 해야 하고, 병에 걸리게 해야 하고, 사고 나게 해야 하고, 가난하게
해야 하고, 사람들을 이모양 저 모양으로 죽이고 징계를 해야 하는
무리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신께서 어떤 사람에 대한 재판을 하시고 형을 선포하시면 징계 천사가
도구를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데 그 천사조차도 사랑이 없다.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하는 징계천사가 사람을 동정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가지고야 어떻게 형을 집행할 수 있나?
그 총알이 징계도구 마귀이다.
누군가 징계마귀들의 대장을 보았다면 그 징계천사를 본 것이다.
이 성품은 신께서 사람을 심판하실 때의 무서우신 성품이다.
지금 우리로 보자면 영화에서 사람들이 총 쏴죽이고, 때려 죽이고,
교통사고로 죽어나가고, 비행기나 기차에서 떨어져 터져나가고 할 때,
땅이 꺼져 사람이 빠져 죽을 때,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릴 때,
산사태 눈사태, 폭탄이 터져 죽을 때, 아무 불쌍함이 없고, 아무 동정이
없는 것과 같다.
사람도 그저 내 일 아니라고 즐겁게 손뼉을 치면서 보고 있다.
이런 영화를 보아야 속이 후련하고 뭔가 스트레스가 풀리고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만드는 영화 조차도 사람을 죽일 때는 아무 사랑도 없이,
나무 부러뜨리듯이, 나무 던져버리듯이, 나무 태우듯이, 나무 자르듯이,
나무 버리듯이 하고 있다.
그런 징계의 영의세계도 그렇다. 동정도 없고 긍휼도 없고 연민도 없고
사랑도 없다. 아무 감정이 없다. 막대기는 감정이 없다.
'징계도구 마귀'들의 특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람에게 겁주고, 사람들을 약 올리고,
놀리고, 때리고, 잡아가고, 죽이고 하는 행위들을 1%도 못한다.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스스로 못한다.
딱 신의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사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각 사람들의 성격들의 영의세계
사람에게는 좋은 성품과 나쁜 성품들이 골고루 다 있다.
누구나 그렇다. 어떤 것을 더 드러내고 덜 드러내고 하냐이다.
이런 성품들의 형상들이 한 사람당 영의세계에 수 없이 있는데
각 성품들은 자기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본분을 다한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체의 세계가 개인별로
존재하는데 서로 부딪히지는 않는다.
육의세계와 영의세계가 맞물려 존재하는 것을 본 사람도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어디든지 커다란 악령들이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자기의 할 일을 하느라고 바쁘게 다니고,
지저분하고 음흉스럽고 못생긴 더러운 귀신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면
간음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본 것은, 사람들의 '성격 죄성마귀'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고 다니는 영의세계를 본 것이다.
분을 일으키는 담당 마귀, 폭행을 하게 하는 담당 마귀, 이성간에 눈이
맞게 하는 마귀, 험담 담당 마귀, 이간질 담당 마귀, 사기 담당 마귀,
갈취 담당 마귀 등 수를 셀 수 없는 마귀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 수를 셀 수 없는 마귀는 '나' 한 사람에 해당하는 마귀들 양이고,
전 세계적으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이렇게 수를 셀 수
없는 성격 마귀들이 본분을 담당하고 있는 영의세계가 있다.
이들은 영상과 같기 때문에 서로 부닥치고 혼선을 빚고, 잘못되고,
오류나고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없다. 이 절대적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절대성이다. 완전 자동 시스템이다.
이 '성격'들은 좋은 것부터 시작해서 나쁜 것까지 형상화 되어 있는데,
좋은 성격은 좋은 모습으로 되있고, 사람들 입장에서 기분만 나쁠 뿐이지
괜찮다고 생각하는 성격은 그런대로 괜찮게 생겼고, 추잡스럽고 더럽고
음흉스럽고 혐오스럽고 하는 성격의 형상들은 '꼴 값 한다'는 말처럼
그렇게 자기 '이름 값' 대로 생겼다.
사람들의 '죄성 성격 마귀'들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의 사고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이성이
올바르냐 올바르지 않냐에 따라, 그 사람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에 따라,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에 따라, 그에 합당한 성격들이
본분을 다하게 된다.
"그 사람은 성격이 그래" "내 성격은 이래"
"그 사람 성격 괜찮아" "그 사람 성격 못됐어"
그러니 그것은 그 사람 책임이다.
■(욥 9: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심판주께서 뺏으시는데, 주인이 달라하시는데,
사람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하나님!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것이예요?"
"하나님! 무슨 재판이 그러세요!" "왜 가져가시는 거예요!"
할수 있나?
■(욥 9: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신의 심판은 무섭다. 그 징계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같이 도와서 일어나보겠다고 덤볐다가는 같이 망한다.
■(욥 9: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신 앞에서 감히 대답도 못한다. 유구무언이다.
■(욥 9: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심판주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의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상감마마의 윤허를 바랄 뿐이다.
■ (욥 9: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내가 뭐라고 한들 신께서 들으시겠냐?
그 때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이 신을 불러도
신은 대답도 없으시고, 아무리 영의세계에서 신께서 대답을
하셨어도 사람은 듣지도 못한다.
■ (욥 9: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신께서 자기를 이렇게 때리시는 것은 알겠는데 까닭이 없는
징계라고 생각한다. 징계와 환난은 신께로부터 악한 자에게
임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자기가 그 징계를 받아야
하는 지를 전혀 모르겠다.
■ (욥 9: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신의 징계로 말미암아 나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괴롭다.
참 당연한 징계라 해도 신이 너무 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슨 잘못이 얼마나 크기에 그렇게 숨구멍을 막고 몸을
괴롭게 하실까.
■(욥 9: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힘으로 말하면 사람이 신과 겨룰수 있을까.
우리 인간들은 신께 심판을 받을 존재지만 신을 심판하자고
뎀빌 자가 없다.
■(욥 9: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이 땅의 범죄소탕기관은 막가파식으로 고문을 하거나 회유시켜서
범죄자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도록
협조하면 감형시켜 준다거나 빼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유도해서 ‘OK’ 사인을 받아 엉뚱한 가해자로 만들어 놓고,
일단 사인 받고 나면 끝이라고 한다.
언제 봤냐면서 재판 받고 형 받고.
신도 그러신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하지만 욥은 그런 심정이다. 자기는 죄가 없는데 자기보다 힘이
세시고 심판자의 권세로 욥을 소환했는데, 작고 작은 사람이 이를
어떻게 이기겠느냐. 그냥 내가 할 수 없이 져야지.
신의 이유 없는 고문에 의해 자기는 죄인 아닌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욥 9: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나는 참 제대로 살았는데 이런 경제적인 손해도 보고 자식도
잃고 나도 죽게 생겼구나. 나는 온전한데 살아날 길은 없다.
■(욥 9: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아무 이유도 없이 잘하는 자나 못하는 자나 똑 같은 삶을 살고,
똑 같이 멸망당하거나 똑 같이 죽거나 한다면 다 죽어야 하고
다 살아야 한다. 다 똑 같이 살아야 한다.
인생의 다양한 삶이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것은 자기의 행위 값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으로 수를 셀 수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욥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나는 옳게 살았는데 온전하게 살았는데 내가 이렇게 악인이 받아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니, 신의 심판은 옳지 않으신 것이다.
잘 못하시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나 악한 자나 같은 멸망을 시키시다니.
■(욥 9: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재난이라는 것이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똑같이 임한다.
나는 무죄한데 이렇게 죽을지경이니 신은 나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는 것이 무죄한 자가 받는 벌이 아닌 것인데,
아직도 욥은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는
자기의 이 비참한 처지를 비웃으신다고 생각한다.
■(욥 9: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악한자가 죽이고 살리기도 하는 세상이 왔구나
신도 정의를 돌아보지 않으시니 그게 신의 뜻이로구나.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관점에서다.
네가 어느 날 나의 악인 될 수 있고 내가 어느 날 너의 악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 영의세계의 계산법이다.
신께서 말씀하시는 악인은 내가 남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로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고, 내 맘대로 하고, 돈을 꾸고 갚지
않는 것도 악인이고, 가축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도 악인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하는 상대적으로 나쁘게 하는 것을
악인이라고 하신다.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마음이 상당히 나쁜 것.
꼭 우리가 보는 범죄나 도둑이나 간음이나 살인이나
그런 것만 악인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아주 사소한 것도 안 된다.
그런데 욥은 자기는 악인이 아닌데 이런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재판관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욥 9:25)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나의 삶의 날수가 빨리 단축되어버리니 더이상 복을 받을
시간이 없구나.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추진하는 어떤 것보다 빨리 지나가 버리니
나머지 열매를 어떻게 거두는지를 볼 수 없게 된다.
■(욥 9:26)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인생은 빨리도 지나가는구나.
(욥 9: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내가 내 형편에 대한 불평 불만을 그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자
■(욥 9: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것은 여전할 것이다. 신께서 나를 여전히
죄인이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에
■ (욥 9:29)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그래도 내가 죄인이라고 정죄를 당할 것인데 뭐하려고
마음을 고쳐 먹냐? 그런 것은 다 헛짓 하는 것이다.
욥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고쳐져도 자기는 악인이라고
정죄를 받을 것이니 내가 뭐하려고 고칠까?
그런 수고는 헛 것이라는 것이다.
■(욥 9: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내가 냉수로 목욕하는 공을 들인들, 회개한다고 한들…
욥은 정말 바르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형벌이 온다면
내가 뭐하려고 착하게 바르게 정직하게 온전하게 남들
도와가면서 살겠느냐는 말이다.
정말 사람을 재판하시는 신이 없다면 사람이 뭐하려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까? 도덕공부는 왜 할까?
바른생활 공부는 왜 할까?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공부라는 것을 모르고 법이라는 것을
모를 때에는 아무렇게나 살았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면서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은
"백성들아 글을 배우고 공부를 해서, 죄가 죄인 줄 알아서
관가에 잡혀오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죄를 피할 수 없는
형편에 들어가지 말라" 고 하셨다.
그 때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산 것이다(로마서 5:13).
그런데 오래 살면서 겪어보니 이럴 때는 복을 받는 것 같고,
이럴 때는 환난이 닥치는 것 같고, 이럴 때는 서로 싸우는 것
같고, 이럴 때는 뺏고 뺏기고 하는 것 같고, 이럴 때는 얻는 것
같고, 이럴 때는 잃는 것 같고 경험이 쌓이게 된다.
이럴 때는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을 보니 남들도 나쁘겠구나.
그러면 나도 하지말아야 하고, 남도 하지 못하게 해야겠구나.
나의 자녀들에게도 잘 가르쳐야겠구나 하면서 도덕공부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고, 농사를 짓고 옷도 만들고, 생필품도
만들고, 필요한 것들을 만들면서 더 지식적인 과학공부로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내가 당장 몰라서 그렇지 무언가 혼났을 때는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 하고 얼렁 나의 잘못을 찾는 것이 잘 살고
오래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잘못 살아도 혼나지 않고, 악함을 고치나 마나일 것 같으면,
개나 소나 다 뺏고 사기치고 죽이고 악하게 살지.
■(욥 9: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혹여 잘못을 고치더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함부로 개천에 빠지게 하실 것인데, 옷은 갈아 입으면
뭐할 것인가? 자꾸 갈아입힘을 당하는 그 옷이라는 것도
나를 싫어하겠다.
내가 아무리 바른생활로 고쳐먹어도 다칠 것 다 다치고,
당할 것 다 당하고, 엉킬 것 다 엉킬 것인데 헛 수고일 뿐이다.
■(욥 9: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 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신과 다시 재판을 하고 싶다. 무엇을 죄로 여기셨는지.
신은 사람이 아니니, 내가 아무리 신께 말을 한다 해도
신이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들으실 수도 없고,
신이 무어라고 말씀하셔도 사람인 나는 들을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한 재판인 것이다.
(욥 9: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신과 나 사이에 중계역할을 할 자가 없다"
신들이 많다면 이럴 때 다른 신이 와서 중계역할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창조주 신 혼자이기 때문에 인간 재판에 중간
역할할 자가 없다.
(욥 9: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교육 받아서
하나님을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무언가 징계를 받아도
의로운 고난이라고 참는다.
욥은 자기가 믿는 신을 엄청 무서워 했다.
신의 위엄을 느끼며 두려움에 살았다.
그래서 자식들의 잔치가 끝나면 죄를 지었을까봐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하면 이뻐해주시지 않을까...
■(욥 9: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신께서 그 징계 막대기를 치우시면, 나를 두렵게 하시지 않으시면,
때리시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두려움 없이 내가 나에 대해서 신께
말씀을 드리겠다.
나는 본래는 신이 두렵고 무서워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신이 무서워서 무슨 말도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