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위임권위와 절대권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13장 1~7절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4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5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6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의 수도인 도시 로마에 사는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아무런 조건도 붙어있지 않습니다. ‘통치자가 부당한 통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라든가, ‘치안관들이 폭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이런 조건들이 전혀 붙어있지 않고, 그냥 복종하라고만 말합니다.
이 본문과 관련해서, 저의 어렸을 적 기억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69년 어느 날, 박정희 정부가 3선 개헌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연히 거센 반대운동이 일어났지요. 그런데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정부를 믿어달라고, TV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1학년의 어린 나이였는데요. 저 높은 사람이 왜 저렇게 국민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본문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 전제는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하나의 전제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권력을 쥐고 있는 위정자들이 먼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그러니까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는 이 본문은, 원론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말씀이지만,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이 두 번째 전제가 빠져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그 중요한 전제를 빠뜨린 것일까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 철학에 능통하다고 스스로 자부한 사도 바울입니다. 당연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도 충분히 읽고 이해했을 바울이 그 중요한 전제를 달지 않은 것은, 놓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뺐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제 막 태동한 교회의 힘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밉보였다가는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바울은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교회의 안녕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의 애절한 마음은 읽지 못하고,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으니 무조건 국가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재자의 대변자들이 우리 한국 교회 강단에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통치자가 올바른 길로 간다면, 정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어 제 역할을 다한다면,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본문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독재자나 그의 하수인이 함부로 입에 올려도 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더구나 독재자가 요구한다고 해서, 설교자가 강단에서 그대로 반복해도 좋은 말씀은 더더욱 아닙니다.
통치자가 가진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임권위고, 절대권위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에, 위임권위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절대권위자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위임권위자를 몰아낼 정당한 권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란의 수괴 윤석열이 부당한 명령을 내렸을 때, 국회로 달려간 국민이 자랑스럽고,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우리 장병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철수하면서 국민들을 향해 ‘죄송합니다’ 하고 몇 번이고 고개 숙이던 어느 장병이 떠오르고, 시민들과 대치하는 부하들에게 ‘가만히 있어, 아무 것도 하지 마!’ 하고 명령한 어느 지휘관도 생각납니다.
내란을 일으킨 독재자와 하수인들의 범죄행위가 이제 낱낱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로마제국의 칼날이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교회를 향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저 순종하며 살라고 권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도 바울의 연약함과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국회로, 검찰로, 공수처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독재자의 하수인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들도,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에 겪게 될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가족들 얼굴이 생각나고, 부하들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 못된 사람만 만나지 않았다면, 별을 둘 또는 셋이나 단 장군으로, 대한민국의 치안을 담당하는 총책임자로, 사회와 이웃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갔을 사람들인데, 최고통치자의 무리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죄로 저렇게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구나, 라는 연민의 정이 드는 것이지요.
순진한 생각이라구요? 독재자와 한통속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꿈에 부풀어 기꺼이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른 거라구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런데요,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나라면 단호히 거부했을 것이다, 라는 장담은 차마 하지 못하겠네요.
아무튼, 이 사건이 교훈이 되어,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최고의 권좌에 오르더라도, 그건 하늘과 국민이 위탁한 위임권위이지 제 마음대로 해도 좋은 절대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민의 군대와 경찰력을 제 멋대로 동원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짓밟은 자가, 비상계엄령은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여전히 변명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해야 될 것 같아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내란이 속히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2024년 12월 28일에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