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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감춰진 보석이자 강원 내륙 전망대
산소처럼 맑은 숲의 연속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신록은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제 막 꽃봉오리 맺힌 철쭉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상큼했다. 신록의 산은 싱그러운 모습으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5월의 햇살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백이산(伯夷山·971m)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동강의 상류를 이루는 동남천변에 솟구친 이 산은 울창한 숲에 덮여 있으면서도 멋진 조망을 보여주었다. 북으로 가리왕산이 둥근 달처럼 솟아 있고, 두타·청옥산에서 매봉을 거쳐 함백산과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강원 내륙을 감싸안고 있었다.
“정상은 아직 멀었어요. 저기 보이는 세 번째 봉이 정상이에요.”
무명봉 두 개를 넘어 정상에 올라선 것은 오전 11시50분. 숲속에 불쑥 튀어나온 정상은 지명 유래가 그렇듯 배가 걸릴 만큼 우뚝 솟구친 봉이었다. 백이산 정상은 옛날 큰 홍수가 나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산꼭대기가 감투만큼 물 위에 튀어나와 있었다 하여 ‘감투봉’이라 하고, 그 봉우리에 배가 걸렸다 하여 ‘배이산’이라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백이숙제(伯夷叔齊)와 얽힌 얘기도 전하고 있다.
5월의 산은 우리를 신록에 취하게 한다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 얘기 아시죠?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주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행위가 인의에 위배된다 하며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 캐어 먹고 지내다 굶어 죽었다는 형제 얘기 말이에요. 고려의 마지막 충신 7명도 태조 이성계를 피해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합니다. 그만큼 예로부터 산세가 깊고 비범한 산이었단 얘기겠지요. 백이숙제가 즐겨 먹은 고사리는 아니더라도 산나물은 정말 많이 나는 산이랍니다.”
백이산의 지명 유래에 관해 나병기씨의 얘기를 들으며 주변 산봉을 둘러보는 사이 아침 6시 반 서울을 출발해 10시경부터 산행에 나선 안내등산회 회원들이 도착했다. 잠시 뒤 정상 너머 잘룩이에서 점심을 먹는 사이 등산로가 아닌 산사면에서 사람들이 올라왔다. 손에 색이나 비닐 봉지를 들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나물 산행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