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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부 구성임
제1시조집을 맨 끝에 배치하였으므로 편집은 역순으로 됨
낙동강 연작시조 400수 선집
낙동강 푸른 물길
서태수
호 : 운경韻耕 / 닉네임 : 서낙동강
‘낙동강 시조시인’으로 불린다.
서낙동강 지류의 지천 대청천 발원지 대청마을에서 태어났다(1948).
평생 낙동강 하류를 맴돌면서 낙동강 연작시조를 짓고, 향토문학 창달에 애를 쓰고 있다.
부산대학교(국문학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현대문학, 석사)에서 공부했다.
1975년 「강」을 시작으로 낙동강 연작시조 약 600편을 창작하였다.
문학 서정과 이론의 균형을 위해 수필, 평론도 겸하고 있다.
서낙동강 끝자락에 살고 있다.
《시조문학》 천료(‘91), 《문학도시》 수필(‘05), <한국교육신문> 수필 당선(’06)으로 등단하였다.
저서는 낙동강 연작시조집 6권, 절장시조집, 수필집 3권, 평론집 4권, 논술 지도서 등이 있다.
차례
<펴내는 말> 강만 강이 아니라 흐르는 모든 것은 강이다
제1부 강의 언어 독해법(제7집)
제2부 당신의 강(제6집)
제3부 강江이 쓰는 시詩(제5집)
제4부 강마을 불청객들(제4집)
제5부 사는 게 시들한 날은 강으로 나가보자(제3집)
제6부 강江, 물이 되다(제2집)
제7부 물길 흘러 아리랑(제1집)
<작가 소개> 역류하는 샛강 붕어
펴내는 말
강만 강이 아니라 흐르는 모든 것은 강이다
드디어 나도 선집을 엮는다. 젊은 시절 등단을 외면하고, 시집도 평생 한 권만 낼 거라고 고집부리던 내가 가소롭게 되었다.
연작시조 기획은 1975년 첫 작품을 쓰고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천착해 왔다. 국외자의 생각과 달리 <낙동강> 제재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서정은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지천, 지류, 주변의 역사 문화적 요소는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시정은 낙동강 하류를 맴돌고 있을 뿐 구포 저 너머 중상류의 시정에는 접근 못하고 있다.
시적 대상 활용은 <소재주의 – 외연 확장 – 내포 강화 – 원형적 상징>에 이르기까지 서정 천착이 가능하다. 제재 천착은 시인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외연이 확장되고 내포가 강화될 수 있다. 나는 낙동강 문학의 개념을‘범향토문학적 성격’으로 수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다.
<낙동강 문학의 개념>
(탑재 : 2014. 11. 29. daum 카페 ‘낙동강문학 연구회’)
1. 낙동강(지천, 지류 포함)의 지정학적 요소를 제재나 배경으로 한 작품
2. 낙동강의 역사적 요소를 제재로 한 작품
3. 낙동강 주변 민중의 삶을 수용한 작품
4. 낙동강 주변 동식물 등 생명체의 생태를 수용한 작품
5. 낙동강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 변용한 작품
6. 낙동강의 흐름을 확산하여 다른 강, 혹은 사물에 변주한 작품
7. 강의 흐름과 동행하는 만상의 원리를 작가가 개성적으로 변주한 작품
*작가의 개성에 따라 형상화 기법은 다양하겠지만 어떤 경우든 강 혹은 물의 이미지가 작품 속에 유목적적으로 스며 있어야 한다.
위에서 <1, 2>는 소재주의의 작품, <3, 4, 5, 6>은 제재의 외연 확장과 내포를 강화한 작품, <7>은 제재의 원형적 이미지를 변주한 작품을 생성하게 된다. 나의 시조 유형은 내가 연구한 고시조의 다채로운 형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선집에 나의 낙동강 연작시 400편을 묶었다. 순서는 시조집의 발간 역순으로 하였다. 제1집은 세상을 향한 조심스러운 시형을, 제2집은 다채로운 변격적 시형까지 담았다. 제3, 4집에서 동물 제재에 특이한 변주를 구사하여 장연시조로 엮은 것은 나의 명랑한 물길 위에 강바닥까지 뒤집혔던 인생 소용돌이의 부산물이다. 해학과 풍자의 폭포수 애증愛憎 사설은 당시 격정의 자연발생적 소산이었으나 엄격한 정형 구사로 폭발하는 내 시정 품격의 일탈을 통제하고자 했다. 제5, 6집은 내 서정과 유형을 세상에 구애받지 않았다. 미구에 발간 예정인 제7집 표제는 『강의 언어 독해법』, 마지막 표제는 『낙동강의 부유물』로 정해 두었다.
시詩도 환경 인식의 산물이다. 강가에 처음 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시퍼런 물만 보이지만, 10년쯤 살면 물길이 보이고 20년쯤 지나면 강이 보인다. 30년쯤 살면 강과 더불어 흐르는 만상萬象을 보게 되고 40년쯤 살면 강이 되어 흐르는 만상이 보인다. 마지막에는 하구河口를 지나는 강이 다시 물이 되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게 낙동강이란 흘러가는 모든 존재들이다. 강만 강이 아니라 흐르는 모든 것은 강이다. 흐르는 것들의 묵언黙言의 몸짓! 풍랑으로 보든, 시로 읽든 강물은 흐르면서 온몸으로 시를 쓴다.
나는 낙동강 시조시인으로 남고 싶다.
2024. 봄. 청락헌聽洛軒에서
서태수
7. 강의 언어 독해법(제7집)
윤슬
-낙동강․568
굽잇길 강물 위에 쉼 없이 바람 불어
삶의 굴곡으로 일렁이던 유리 조각
그 상처
곱게 아물어
반짝이는 흉터 자국
강의 언어 독해법
-낙동강․563
강의 언어는 동사로만 말을 한다
음운을 버린 묵음默音
초중종성 조합 없고
문자를 뛰어넘은 상징, 풍랑으로 새긴다
수식어를 두지 않는 명령형 종결어미
주어는 바로 당신
온 세상이 목적어라
불후의 신성문자神聖文字를 채칼 총총 썰었다
선사先史의 아우성과 발자국도 새긴 강물
한 필의 무한 사서無限史書
굴곡을 읽으려면
깊은 밤 눈과 귀 닫고 점자點字로 더듬으라
직진하는 물살이 곡선의 길을 만든다
-낙동강․576
물은 흐르면서 직진의 꿈을 꾼다
정正과 직直 한데 묶은 미완의 수평 바라기
살여울 쇠촉이 되어 맨몸으로 부딪는다
타협을 거부하는 직진의 푸른 뼈대
휘어진 세상 향해 나노nano로 저민 충돌
산화한 물의 시체들
소용도는 물거품
디지털 휘몰이의 유연한 아날로그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지는데
세상은 곡선만 보고 물 흐르듯 하란다
문콕 물길
-낙동강․575
문을 연다는 건 그림자 섞이는 일
한강물과 낙동강물은 부대낄 일 전혀 없지
가까워
찍고 찍히는
문콕 물길 인간사
탯줄 끊기
-낙동강․542
인연은 여기까지
모질게 끊어야 한다
억겁 돌고 돌아 수맥 따라 솟은 샘물
도래샘 맴도는 순간 그대 물길 아니려니
물방울 떠난 둠벙
배꼽자리 허전해도
한 톨 방울꽃이 강줄기로 자라느니
샘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도도한 새 물길
참나무 뿌리 끝에
도토리 흔적 없듯
원천의 동심원은 잊혀야 할 젖꽃판
탯줄을 댕강, 끊어야 강이 되어 흐르려니
밀물 썰물
-낙동강․544
누가 밀어내고
누가 당기는지
밀어서 들물 되고 당겨서 날물 되는
평행의 강둑길에선 알 수 없는 역발상
밀물 들고 썰물 나는 하구에 섰노라면
백사장 모래톱에 일고 잦는 사념들
물마루 밀고 당기는 먼 입김은 무엇일까
수평선만 알고 있는 물너울 달빛 상징
새기고 또 지우는 모래성 발자취는
강둑이 사라질 즈음 눈에 뵈는 숨은 뜻
어머니 아내
-낙동강․545
어머니가 낳았어도 엄마는 내게 없다
마흔 줄 지병 속의 아슬한 출산 후에
강둑길 마파람에도 넘어질 듯 걷던 노인
늦가을 넝쿨 속의 꽃맺이 애호박은
어머니 떠나신 후 얼굴도 까마득한데
아내의 여린 뒤태에 어머니가 비친다
성성한 머릿결에 구부정한 허리하며
이것저것 챙겨 쌓는 근심 어린 잔소리들
나 이제 늙은 나이에 여태 젊은 엄마를 본다
강마을 여름밤 서사
-낙동강․546
해거름 보개산이 깃을 접는 다저녁은
강둑길 멍석자리 모깃불 연기 피고
박꽃은 울타리 너머 삼이웃을 다 불렀지
금정산 조각달도 강 너머로 기웃대면
일렁이는 별싸라기 꽁지에 총총 달아
갈대밭 반딧불이는 아이들을 모으고
두런두런 왁자지껄 어른, 아이 모꼬지에
칠백 리 전설 실은 심심한 앞강물도
슬며시 오지랖을 펴 밤 깊도록 어울렸지
기수역에서
-낙동강․548
지니지 못할 것을
애써 부여잡고
두 주먹 움켜쥔 채 굽어내린 나의 강물
낙동강 하구에 서면 손바닥이 허허롭다
온몸 휘어지도록 진종일 애태우며
춘하추동 비바람에 일고 잦던 천삼백 리
누려 온 부귀영광도 내려놓는 강물이다
민물 짠물 맞부딪는 기수역汽水域에 서서 보면
긴 세월 부대낀 강
바다로 섞여 들 듯
나 또한 저 난바다에 물빛으로 스밀 것을
내 가죽이 찢어졌다
-낙동강․549
아차! 한눈팔다
낫에 발등 찍혔다
찢어진 피부 사이 붉은 피 흐를 즈음
깨닫네, 내 몸뚱이도 한 통짜리 가죽부대
낙동강 맑은 물에 살과 뼈 버무려서
손발가락 이목구비 솔기솔기 숨뜨기로
바느질 솜씨도 좋아 실밥 하나 보이잖네
팽팽 부풀린 가죽, 곤두세운 솜털 촉각
만만치 않은 세상 거친 풍랑 헤치느라
진창에 미끄러지고 칼파도에 베이고
이제는 바람 빠져 뒹굴 일도 바이없어
노 젓던 미련 끊고 두둥실 배로 뜬 강
뜬구름 그림자 되어 허위허위 흐르라네
흐르는 강이 되자
-낙동강․550
우리가 물이라면 흐르는 강이 되자
혼자 웅크려서
가라앉는 늪보다는
강마을 휘돌아 감돌아 물길 함께 엮어가자
흘러, 한생애를
파도로 어깨 겯고
뿌리마다 눈길 적신 푸르른 강이 되어
점점이 끊어진 세상 한 물길로 이어가자
모래톱 날갯짓
-낙동강․551
저 파도, 암만 봐도 참말로 부질없다
천릿길 달렸으면 바다로 들 일이지
육지에 무슨 미련 남아 강어귀를 맴도는가
강은, 흐르는 강은 뒤돌아보지 않느니
그대 두 눈길로 촉촉 적신 옛 들판엔
산골짝 맑은 새 물길 밀려오고 있느니
뭍을 향한 아쉬움에 파도로 펼친 날개
허연 물거품에 모래톱만 쌓이려니
강둑에 알뜰히 새긴 전설로만 머무시게
뱃길 지우기
-낙동강․552
강물은 뱃길을 위해 제 등짝을 내놓지만
배 달린 뒷자국을 말끔히 지우는 건
길이란 다음 사람도 가야 하기 때문이래
배 떠난 꽁무니에 깊게 패인 발자국
짙푸른 물길 위의 아름다운 물이랑도
뒤따라 오는 이에겐 걸림돌이 된다는군
삶이란 뱃길 따라 꽃씨를 뿌리는 일
배 닿은 강마을에 꽃향기 자욱하리니
발자국 다 지운다고 섭섭히는 생각 말래
물꽃부리
-낙동강․560
바람도 잦아들어 뜬구름 잠긴 수면
꼼짝 않는 갈댓잎에 그리움 돌돌 말아
조약돌
퐁당! 던지면
피어나는
한 송이 꽃
*물꽃부리 : 필자의 신조어
물꽃판
-낙동강․561
퐁당!
돌을 던져
순간의 꽃 피고 지면
잎잎이 스민 꽃향
촉촉 젖은 그리운 맘
파문을 겹겹 새기며
번져나는 동심원
*물꽃판 : 필자의 신조어
미워하면 지는 거다
-낙동강․562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아니지, 희망이지
빈부귀천 세상사에 부러운 일 한둘이랴
부러워 애타는 맘에 새싹 하나 움트느니
진정 지는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야
희로애락 인간사에 미운 일 없으랴만
미워서 속끓는 맘엔 가시만 자라느니
도도히 흘러가는 강줄기 바라보면
부러워 어화둥둥 함께 엮인 물길이라
미움의 가시 물길은 늪이 되어 허덕일 뿐
사람 사는 일도 흐르는 물과 같아
부귀흥망 강약성쇠 뜬구름 같으려니
엎치락 또 뒤치락 해도 미워하면 제 늪이야
풀등
-낙동강․565
너도 그렇구나
모난돌이 정을 맞지
허허로운 강 복판에 외로 선 풀 한 포기
정 맞아 깨어지면서 물길 방향 비틀지
급류에 쓰러지고 파도에 뭉개지고
미움받고 눈총받고 손가락질 당하면서
세상의 바람에 맞서 예감하는 초록 깃발
시류에 휩쓸리는 여울목 모래알들
뿌리 박은 강바닥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
물안개 치마폭 펼친 그런 섬을 꿈꾸지
묵은지 –낙동강․566
오래 사귄 사람들은 묵은지 맛이 난다
골짝물 올올 엮은 하류의 강물처럼
함께한 굴곡 파도에 그 세월의 정이 깊다
단풍잎 그리움의 빛도 향도 바랜 몸피
청청한 옛 모습은 풍상이 배었지만
군내가 스며 있어도 낯이 익어 정겹다
시공을 묵힌 숙성 눈빛 속에 은근하고
주름진 이랑이랑 윤슬로 반짝이고
오가는 섬유질 입담 아삭한 맛도 난다
긴 강에 펼쳐 놓은 진양조 잿빛 물길
끈끈한 인연줄의 여운 깊은 사람들은
긴 세월 함께 흘러온 옹기 속의 묵은지다
물수저의 독백
-낙동강․569
내리막 굽잇길에 원동쯤 지날 무렵
기찻길 바라보면 부러운 것 하나 있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저 행로는 참 좋겠다
물맛이 낯설다고 침 뱉는 이도 없고
빛깔이 다르다고 돌 던지는 이도 없고
출신이 개천이라는 손가락질 한번 없고
뒹굴 일 자빠질 일, 떨어질 일 바이 없고
맞바람에 멱살 잡혀 제 살 저밀 일도 없고
폭우에 강둑과 싸워 옆구리 터질 일도 없고
행여나 탈선할까 평행으로 놓인 철로
쇠붙이로 태어나서 탄탄대로 달려온 길
한 생애 상처 하나 없는 저 기차가 참 부럽다
*물수저 : 필자의 신조어
불면
-낙동강․504
초가를 허물고는
기왓집을 지어보고
뭉게구름 먹구름을
뒤죽박죽 섞으면서
꼬리가 생각을 물고
구백리를 흐르는 강
문풍낙엽
-낙동강․570
바람에 휩쓸리는 신발들 어지럽다
청홍靑紅으로 쫙, 갈라진 계절의 빈 껍질들
우루루 추풍낙엽秋風落葉 되어 파도로 휩쓸린다
가지에서 쏟아지는 리모컨 무선통신
오가는 주파수에 뭉쳤다 흩어지고
낄끼리 떼바람 몰아 정처 없이 뒹구는 강
외피를 겹겹 두른 밑둥 굵은 가로수는
땅 깊이 뿌리 박고 새 잎눈을 품었는데
구멍 난 신발 조각들 문풍낙엽聞風落葉 물길이다
세상의 사연들
-낙동강․571
쫓고 또 쫓기는 초원의 동물 세계
젖 마른 어미 표범 가젤 사냥 성공인데
어쩌나, 저 가젤 또한 새끼 딸린 어미였네
벼랑에 떨어지고 바람에 미어져도
강물은 늘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물길 속 숨은 사연은 생각하지 않았지
우리 사는 세상도 속사정 알 수 없어
혈육 사이 이웃 사이, 어쩌면 혼자 앓는
애틋한 사연 하나쯤 짊어지고 가는 것을
황지
-낙동강․558
흘러
일천삼백 리
을숙도를 감도는 물
강마을 촉촉 적신 젖내를 톺아가면
태백의 가슴에 맺힌
낙동강의
젖꼭지
상주
-낙동강․559
태백산 젖꼭지에 몽글몽글 솟은 물길
졸졸졸 낭창낭창 육백 리쯤 흘러가면
낙동강 거룩한 이름 옛 본향本鄕을 만나느니
그대, 아시는가. 어머니 탯줄 자리
황지의 젖줄 인연 깊숙이 새겨두고
칠백 리 새길을 여는
낙동강의 배꼽 상주尙州
구지봉 환상곡
-낙동강․557
거북아 거북아, 니 머리를 내놓거라
세상을 구한다는 자줏빛 그 얼굴을
오늘은 꼭 봐야겠다 얼른 목을 내놔라
이 땅 곳곳 나토샸던 하늘뜻 거북님들
가야, 백제, 신라, 고려
거북 머리 다 잘리고
충무공 거북선마저 바다 깊이 갈앉았다
동강 난 한반도에 자칭 타칭 거북 후예後裔
조각탈 뒤집어쓰고 화평세상 외치건만
파도로 새긴 갑골문甲骨文 그 뜻조차 모르네
역사의 푸른 강은 눈을 뜬 채 흐르나니
그 강물 뒤집히면
춤추던 어진 백성
니 목을 댕강 잘라서 꾸바 묵어 뿔끼다
선암강 뱃놀이
-낙동강․554
삼차강三叉江 옛 물길은 고금이 한 빛이다
돛단배 두둥실 띄워 구지봉을 우러르니
불모산 신어산 정기 불암강佛岩江에 그윽하다
불암나루 닻을 풀어 대사나루 가는 길에
초선대 잠시 들어 벗들 소식 듣자 하니
신선은 바둑 한판 두려 칠점산에 갔다 하네
아차, 정신 차려 사공을 재촉하니
장어집 젊은 주인 고개 갸웃 혀를 차며
강물 위 선암다리 건너 택시 타고 가란다
*삼차강, 불암강, 선암강 : 황산강(낙동강) 하류의 샛강 이름들
장유
-낙동강․555
오래 정진하면
불멸로 사는가 보다
아유타국 허보옥이
천명으로 일군 옥토
장유長遊가 장유長有로 남아
달로 날로 새 빛이네
불국토 염원 실어
뱃길로 든 만리타향
장유사 서린 불심
‘놀 유遊’자 깊은 뜻을
폭포는 ‘있을 유有’로 새겨
만 리 뱃길 돌아가네
*필자 출생지인 불모산佛母山 대청 폭포가 있는 장유면長有面은 ‘장유長遊’에서 유래함
칠점산 가는 길
-낙동강․556
어화둥둥 배 띄워라, 추구월 바람 좋다
노적봉 닻을 풀어 서낙동강 거슬러가
옛 물길 흐른 길목에 옛 추억도 더듬자
남실남실 태야강에 낭창낭창 노를 저어
범방대 외로 돌아 조만강을 하직하니
오봉산 산자락 아래 불암강이 반기누나
초선대야 잘 있더냐, 벗님네들 무탈한가
바둑판 삼매경에 먼발치로 안부 묻고
삼차수 물길을 돌자 평강강이 맴도네
상앗대 길게 밀어 칠점천에 닻을 내려
뭍으로 막힌 물길 묻고 물어 만난 마을
허름한 삿갓을 쓰고 표지석이 웅크렸다
어깨너머 둘러봐도 찾을 길 없는 칠점산
낙동강 신선들도 시절 따라 노니는지
뭉개진 바위 저 너머 비행기만 오간다
*칠점산 관련 가락국 신선 전설에서 차용
오봉산 국군묘지에서
-낙동강․541
충혼 영령 고이 모신 오봉산 푸른 능선
표지석 쓰다듬는 추모객 어깨 위에
오늘도 청솔바람 속 산새들 우지짖네
20년 남짓한 삶
흙에 묻힌 70 성상星霜
젊은 목숨 바친 사연
남은 혈육 아픈 사연
유월에 한 철 피는 꽃
저 조화는 삭혀 줄까
측백나무 울 너머엔 임자 모른 공동묘지
유명 용사 무명 용사 그 사연들 모두 안고
낙동강 푸른 물길만 천년 세월 기약하네
금강초롱 강물 섞기
-낙동강․577
근 백 년 따로 흘러 제 뼈대로 단단한 강
한강 물 대동강 물 함께 섞어 궁글리면
그 물길 자줏빛 되어 옛 사연이 애틋할까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척추로 굳건한 백두대간 중간 즈음의 금강산. 전설 속 오누이의 우애는 금강초롱 꽃잎으로 선연한데. 지도를 펼쳐 놓고는 아무리 살펴봐도 가로로 동강 날 이유가 없이 허리 잘린 반도의 땅. 반만년 이어내린 고려, 조선의 한반도. 한북정맥, 한남정맥이 가른 것도 아닌. 한강이 가른 것은 더더구나 아닌. 세계 최장 안데스산맥이 가른 것도 아닌.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산맥이 막은 것도 아닌. 세계 최악의 모질이 땅. 오도 가도 못하고. 듯도 보도 못하고. 알아도 말 못 하는 남의 강. 한강 물, 대동강 물 함께 섞여 뒹굴면. 그 물빛 물맛 어떨까.
언제까지 이럴까. 너무나 궁금한데. 답을 알 길 없어 헤매던 중. 혜성처럼 등장한 최첨단 만능 해결사. 쳇 지피티(Chat GPT), 바드(Bard), 빙(Bing) 삼자를 회동시켜 AI로 답해 보라니. --- 3초 후,
백두대간 막내 자락 지리산 상상봉에
낙남정맥 호남정맥 동서東西로 마주 올라
낙동강 영산강 물이나 먼저 섞어 보거라!
천성진 옛터에서
-낙동강․553
푸르른 그 달빛이 한산섬만 비췄으랴
칼날 위 반짝이는 수군들 눈빛 향해
장군의 호령을 새긴 초요기招搖旗가 펄럭인다
장졸將卒들은 들으라! 오늘 전함 74척, 협선 92척의 연합함대를 이끌고 부산포로 진격한다.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 조방장 정걸, 거북선 돌격대장 이언량, 우부장 녹도만호 정운,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를 명하노니,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이라. 불퇴전의 정신으로 장사진長蛇陣 진격하라!
함성으로 일렁이는 천성포구 맑은 파도
임진년 시월 초닷새 부산포 그 대첩을
역사는 ‘부산시민의 날’로 만경창파에 새기다
강은 눈을 쌓아두지 않는다
-낙동강․547
눈!
저 순백의 환상
그 아래 묻힌 실체
꽃잎
그리고 흉터
그 또한 역사라며
낱낱의 증거를 새겨
물비늘로 일렁인다
이슬방울
-낙동강․503
먼 길 흐르지 않고
동그랗게 매달려도
해 뜨고
달 이울고
꽃 피고
열매 맺어
세상을 둥글게 담아
되비치는 볼록거울
천상의 꽃
-낙동강․578
점점이 떨어지는 방울방울 꽃봉오리
수면에 피어나는 투명한 꽃잎 꽃잎
순간에 일고 잦는 꽃
천상의 꿈 물꽃부리
동심원 물꽃판이 서로 어깨를 겯고
둘이 하나 되고 또 넷이 하나 되어
너와 나, 그리고 우리
파동지는 물향기
*물꽃부리, 물꽃판, 물향기 : 필자의 신조어
물꽃부리 한 송이
-낙동강․580
잔잔한 강물 위에 조약돌 툭, 던진다
퐁당, 작은 무게
응집하는 표면장력
순간에 피고 지는 꽃 물꽃부리 한 송이
영롱한 물방울에 청람빛 물향 실어
물꽃판 파문으로 번져나는 동심원
세상은 돌 하나로도 일렁일 수 있으련
*물꽃부리, 물꽃판 : 필자 신조어
물결 인연
-낙동강․579
낙동강 물굽이는 어드메로 드는 걸까
골 첩첩疊疊 흘러내린 물 층층層層 깊은 연을
첨버덩, 잉어 한 마리 꽃부리로 피어나네
물꽃부리 잦아들어 번져나는 물꽃판
동심원 손길 따라 파문 이는 물길 위에
바람도 마음을 얹어 꽃잎 윤슬 보태고
저 선율旋律 새겨두면 팽팽하게 이어질까
일고 잦는 굽잇길에 끊고 맺는 물결 인연
언제적 그림이냐며 강은 그새 눈을 감네
*물꽃부리, 물꽃판 : 필자 신조어
낙엽3
-낙동강․567
보아라
저 반짝이는
늦가을 금빛 윤슬
계절이 벗어던진
영혼의 얇은 껍질
텅 비워
꽉 채운 허공
일렁이는 푸른 강
강의 끝
-낙동강․584
흘러온 강의 끝이
이리 넓고 깊구나
저 산은 울지 마라, 들도 울지 마라
강둑에 내 심어 놓은 풀꽃 너도 울지 마라
살여울 휘몰아쳐 벼랑길 떨어져도
유유한 굽잇길에 어화둥둥 출렁이다
나 이제 수평선 찾아 물이 되어 돌아가네
해도 달도 별도 없고 바람도 없는 심연
산도 들도 강도 없어 인因도 연緣도 없는 그곳
아늑한 해미로 스며 물마루에 잠기리라
울지마라 눈물로
저 물이면 충분하리
시작도 끝도 없어 나 있어도 나 없는 곳
흙 내음 풋풋이 배인 강물 너도 울지마라
제2부 당신의 강(제6집)
<2020. ㈜북랩)
땡처리 시정
-낙동강․467
내 읊는 낙동강 시도
전립선염 앓나 보다
물줄기도 시원찮고 양도 변변찮아
강인 척 축 늘어져서 밭고랑만 더럽힌다
새 물도 솟지 않고 고인 물도 탁해진 강
땡처리 마음먹고 강둑까지 헐었는데
바닥은 마르지 않고 찌적찌적 물 고이네
박수칠 때 붓 놓으면 품절品切 걸작 남겠지만
마른 강도 강이랍시고 찔끔, 찔끔, 솟는 맹물
펜으로 바닥물 찍어 땡처리를 하고 있다
꽃이 얄밉다
-낙동강․523
꽃은 참 얄밉다
너무 예뻐 얄밉다
뻣뻣한 가지 끝에 생뚱맞게 아름다워
해마다 다시 피다니 그것이 또 얄밉다
해 저무는 황혼 무렵 강가에 서서 보니
유구한 물굽이도 한 번 가면 못 오는 길
그 물 위 동동 떠가는 저 꽃잎은 더 얄밉다
통나무 의자
-낙동강․486
세상의 외진 길에 의자 하나 놓여 있다
엉덩이 걸터앉자 피돌기가 시작되는지
물무늬 나뭇결 따라 온기가 살아난다
물을 자아올리는 뿌리의 기억 따라
팽팽한 물길 당겨 상류로 올라가니
저만치 옹이로 아문 옛 상처도 박혔다
살아온 한 생애가 이리도 따뜻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흠뻑 적시는 푸른 온기
얼마쯤 자아올리면 이런 의자 하나 될까
을숙도 물길
-낙동강․514
노인네 발걸음은
저리도 더디다
천릿길 무거운 짐들 모두 다 부렸어도
관절은 마디마디 녹아 걸음걸음 절뚝인다
송백, 천자, 명지, 신호 숱한 섬들 쌓아 놓고
을숙, 진우, 장자, 신자 땅방울을 일구더니
백합등 앵금머리등에 남은 살을 또 보탠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의 뼛조각들
물마루 푸른 너머 허허바다 잠길 즈음
섬들은 뭍으로 자라 온갖 숲이 우거진다
허공에 흐르는 강
-낙동강․463
얘들아 놀러 가자, 할아버지 땅 샀단다
하 엘
강 리
하 베
는 이
수 터
직 안
의 에
강 서
할머니, 땅이 뭐예요?
손주 눈이 동그랗다
강둑 바위
-낙동강․540
샛강변 강둑길에 바위 하나 생뚱맞다
모눈종이 화공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줄자로 직선을 긋고 쇠망치로 깨려한다
길 가던 한 나그네 허공에다 말을 건다
길 한 폭 물려 돌면 운치 또한 더하리니
강물도 세상 감도는 굽잇길이 아니던가
바람 실은 갈대숲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결 실은 어리연은 어깨를 출렁이고
우듬지 텃새 몇 마리 낄까말까 망설인다
잎, 혹은 잎의 변주
-낙동강․489
강은 믿어도 물이랑은 못 믿느니
사람은 믿어도 마음은 못 믿느니
세상의 굴곡을 따라 흔들리는 잎이려니
부모
-낙동강․490
강물로 흐르는 일 혼자선 못하느니
천방지축 물줄기를 다독이는 강둑 있어
도도한 물굽이 하나 바다 향해 가느니
긴 강 감돌면서도 강둑은 못 보느니
하구를 맴돌 즈음 눈에 잡히는 먼 강둑
뒤돌아, 또 돌아봐도 물안개만 번지느니
새벽 무신호
-낙동강․493
새벽, 기차를 타고 창 너머 바라보면
겹겹 성벽이 되어 웅크린 산짐승들
긴 밤내 숨을 죽인 채 귀를 쫑긋 세웠다
산짐승 뿌연 입김 피어나는 검은 골짝
청동빛 갈기 사이 눈을 뜨는 탐조등이
빛살을 촘촘 엮어서 푸른 강에 던진 투망
그물에 칭칭 감긴 불면의 용 한 마리
물비늘 반짝이는 등대로 일어서서
무신호霧信號 길게 울리며 깊은 들을 깨운다
물팔매
-낙동강․537
딱따글 가문 날에 마른 밭에 물 뿌리면
메말라 더 단단해진 맨땅의 완고한 거부
흙먼지 또르르 말아 온몸으로 밀치느니
흠뻑 적시려고 물방울로 다가서지만
촉촉이 젖는 것에 익숙지 않은 마음
제 몸에 상처를 내는 팔매질로 여긴다네
메마른 가슴팍에 물 스미기 어렵느니
물방울 뿌리기 전 안개 먼저 피우시게
물에도 힘 들어가면 물팔매가 된다네
*물팔매 : 필자의 신조어
남
-낙동강․331
낙동강 하류에는 별의별 것 다 모이지만
모든 걸 한데 엮은 물길 하나 흐르데요
칠백 리 긴 인생길에 온갖 것이 섞이데요
처음엔 모른답니다
살다 보면 알지요
이 골 저 골 솟아 나온 낯선 물방울들이
긴 강에 함께 뒹굴길 상상이나 했겠어요
만나고 헤어지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멀리든 가까이든 결국은 한 줄기 강
한 생애 흐르다 보니 남도 남이 아니데요
강도 꽃을 피운다
-낙동강․356
거목 한 그루가
육지로 뻗어 있다
난바다 어드메쯤 깊숙이 뿌리박고
반도의 척추 따라 대륙을 향해 가다
태백의 젖꼭지에 우듬지를 담갔다
백두대간 아름드리 둥치에도
늘상 바람은 불어
일렁이는 파도 새겨 세월 껍질 두르고
가느다란 잔가지들 촉촉한 손길 뻗쳐
이 들판 저 산자락 휘돌아 감돌아
찰랑찰랑 넘치는 물꼬에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꽃망울로 매달렸다
서낙동강
-낙동강․452
서낙동강 물굽이는 가슴 폭도 저리 넓어
수수만년 함께 흐른 본류를 에돌아서
강서의 너른 들판을 넉넉하게 다 적신다
대저 수문 돌아들어 종종걸음 오십 리 길
샛강들 다독거려 이랑마다 눈길 주곤
조만강 물길 보듬어 모래섬도 쌓았다
치마폭 주름주름 강마을을 품은 모정母情
난바다 거친 파도 녹산 수문에 막아놓고
떠나는 발길 아쉬워 노적봉을 맴돈다
노인 예찬
-낙동강․535
인생을 되돌린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어요?
70회 내 생일날 자식들 묻는 순간
난 싫어. 안 돌아갈 거야. 그 고생을 왜 또 해!
몇 년 후 지금에도 그 생각 변함없다
젊은 날 숱한 고뇌 두 번 다시 겪기 싫다
이 좋은 태평성대에 원도 한도 미련도 없다
천방지축 구절양장 온몸으로 부딪친 길
끊어질까 뒤집힐까 아슬아슬 넘겨와서
이제야 푸른 강물에 윤슬 찰랑 빛나는데
年年歲歲花相似에 歲歲年年人不同이나*
해마다 또 피는 꽃 무슨 영광 있을까
단 한 번 누리는 인생 곳곳마다 꽃 아니랴
*유희이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시구에서 차용
나목裸木에 관한 명상
-낙동강․462
강의 뼈대가 되어 들판에 꼿꼿 섰다
가지 뻗고 뿌리 내린 아버지의 견고한 혼魂
꽁꽁 언 강의 몸피로 나무껍질 거칠다
긴 물길 끌고 오며 엮고 맺은 꽃과 열매
한 잎 한 잎 풀어헤쳐 훌훌 떨쳐내고
온몸의 물기도 말라 맥박 소리 앙상하다
마지막 몰아쉬는 이승의 된숨 소리
굵은 나무줄기 점점 기울어지다
저 나목 자리 눕는 날 새 강 두엇 열리겠다
채석강彩石江에서
-낙동강․330
풍랑에 절은 사연
온몸으로 새겼어도
켜켜이 쌓은 책이
돌로 굳은
시간의
벽
난해한
상형 앞에 서서
겉표지만 훑는다
서낙동강 물길
-낙동강․481
초선대를 지척에 두고 어찌 그냥 가리
함께한 천삼백 리 대동에 발끝 닿자
아쉬운 발길을 돌려 김해 땅을 파고든다
선암仙岩 바윗등에 칠점산 신선 불러
장군차 따르면서 시 한 수 읊은 여정
가락을 휘돌아 들자 오봉산이 외롭구나
옛 가야 물길 실은 조만강아 잘 있더냐
둔치도를 얼싸안고 장낙포를 돌아들면
노적봉 푸른 파도 너머 가덕도를 만나겠네
5%만 미치자
-낙동강․531
미풍에 출렁이는 물결만큼만 미치자
남실남실 물이랑에
어리연 노란 꽃잎
그 꽃잎 눈길 맞추는 갈대만큼만 미치자
멈춘 듯 숨을 죽인 밋밋한 물길 보면
비단길 펼쳐 놓은 유유한 물굽이도
강물에 비친 그림자 납덩이로 잠겼더라
바람 거칠게 부는 강둑에 올라서면
갈기갈기 찢긴 비단 솔기솔기 곤두서고
켜켜이 날 선 물이랑 춤사위도 칼이더라
납도 말고 칼도 말고
꽃물결로 출렁이자
갈댓잎 입에 물고 5%만 살짝 미쳐
한 송이 풀꽃을 꺾어 머리에다 꽂아보자
고목
-낙동강․476
상처도 곱게 아물면 예술이 되는구나
바람 물결 일렁이는 당산목 거친 몸피
겹겹이 제 살을 저며 추상화 한 점 새겼다
여울목 마디마다 세월의 옹이가 맺혀
살점이 패인 둠벙, 혹으로 솟은 둔덕
굽은 등 처진 어깨에 뭉개진 손등 발등
잎잎이 뒤척이며 속울음 삼킨 밤을
푸른 피 버무려서 목각으로 굳은 상징
촘촘한 곁가지들은 휜 등골 뜻을 알까
저 흉터 뒤집어보면 속살은 또 성할까
오래 살다 보니 나무도 강을 닮는지
파도를 칭칭 휘감아 허연 물길로 굽었다
구포역 소묘
-낙동강․497
모녀가 차창 너머로
손을 마주 흔든다
만면에 웃음을 띤 행복한 이별이다
기차가 움찔, 흔들리자 엄마 표정 굳어진다
서서히 미동하는 기차의 육중한 몸짓
엄마는 눈물 훔치며 빈손 흔들고 섰고
얼굴빛 해맑은 딸은 핸드폰에 취한다
기차는 당연한 듯 철길을 내달리고
강물은 당연한 듯 바다로 흘러들고
나 또한 당연한 듯이 시 한 수 긁적이고
행로
-낙동강․480
혼자
가려거든
물방울로
굴러가라
함께 가려거든
물줄기로 엮어 가라
끝까지 가고 싶으면 강물로 섞여 가라
문명인의 연애 양상 연구
-낙동강․468
1. 연구목적 및 방법
팽팽한 물길 삭아 수증기로 올라가듯
아랫도리 양기가 입으로 돋는 계절
색머리 돌돌 굴리려 연애 양상 탐구하다
영장류 연애 기법 샛강만큼 다기多技하여
부귀빈천, 싱글커플, 행위주체 분류한 후
층위별 심층분석으로 핵심 특성 추출하다
2. 양상에 따른 특성
왁자지껄 중년남녀 음담패설 육담연애
속닥속닥 호호하하 수다쟁이 쫑알연애
호젓한 카페에 앉은 청순남녀 눈빛연애
혼자 미친 짝사랑에 양다리 삼각연애
나 홀로 종합연주 손맛뿐 허방연애
초월한 구름 세상의 마음 비운 참선연애
꽃각시 숨겨놓고 맘 졸이는 시앗연애
황홀한 조명발의 옷만 벗긴 육탄연애
은근히 훔쳐보면서 침만 삼키는 꼴깍연애
조물주가 작심한 끼리끼리 동성연애
성인용품 기술연애 요상망측 뒷문연애
별의별 전개양상에 스와핑swapping도 선보이다
급변하는 시대상은 SNS 소통이라
인터넷 검색檢索연애 원거리 카톡연애
익명의 은밀한 강에 미끼 던진 낚시연애
3. 결론
허구한 연애 중에 고금동서 유일전통
복잡다단 절차 속에 온 세상 축복받는
전천후 종합연애 세트set 부부간 독점연애
까닭 모를 까탈 부려 속창도 뒤집지만
요리조리 자유자재 호흡도 딱딱 맞아
마누라 쌍돛배 타고 푸른 강물 흐르다
가을, 밤비 1
-낙동강․469
가을비 내리는 밤 마음은 촉촉시정詩情
낙엽 진 내 머릿속 앙상한 가지들도
뿌리에 촉수를 뻗어 물을 자아올리네
마른 강 시정들을 올올낱낱 풀어헤쳐
잎과 꽃 그릴 욕심 연필심 돋우는데
빈 가지 툭! 부러지며 강바닥을 메어치네
가을, 밤비 2
-낙동강․470
가을비 쫑알쫑알
도란도란 내리는 밤
앙상한 나무들이 속맘까지 다 주는지
마른 강 이 내 마음도 잎잎이 다 젖는다
내 맘은 젖은 낙엽
구멍 뚫린 송송낙엽
시정詩情 넘치는 강에 배 한 척 띄워 두고
이 세상 어느 여자든 쫑알연애 하고픈 밤
가을, 밤비 3
-낙동강․471
쫑알쫑알 오던 비가 우라당탕 왁자하다
고독 영혼 있나 싶어 외등을 밝혀 보니
늦가을 밤비 서정에 강줄기만 팽팽하다
이리 전전輾轉 저리 반측反側
검색檢索연애 한창인데
자던 아내 촉이 살아
‘안 자네. 지금 몇 시?’
쾌재라! 독점연애 찬스
더듬으니
그새 자네
밀물처럼
-낙동강․521
강물도 여울지는
지금은 들숨의 시간
흙탕물 빨아들이는 물마루는 아득한데
난바다 멍든 허파는 어디쯤에 부풀까
날숨, 한 번 더 참고 부유물 들이키면
찰박찰박 드러나는 개어귀의 여린 속살
갯벌로 펼쳐 보이는 가슴 폭은 풍성하다
바람 잦은 물길 행로
칼 파도에 베인 상처
숨 한 번 들이키고는 잠시 멈춰보자
들숨이 깊어질수록 그윽해지는 푸른 눈빛
비꽃
-낙동강․483
강물에 비 내리면 만 평 꽃밭 출렁인다
쏟아지는 투명 살점
화답하는 강의 몸짓
물방울 활짝, 솟구쳐 피어나는 꽃잎꽃잎
살점의 무게만큼 패이는 수면 위에
넘실대는 꽃가루
출렁이는 꽃향기
흥건한 꽃잎 농익어 하늘 아래 물길이다
물이랑 기억
-낙동강․485
우리 사는 강은
그림자만 흐르느니
산이 솟았어도 뿌리 없이 잠겨 있고
소나무 우뚝 섰어도 일렁이는 어둠이리
우리네 숱한 기억은
한낱 물이랑일 뿐
그대가 바람이라면 강에는 바람 불고
그대가 또 구름이라면 구름 이는 강물이리
그림자 흐르는 강엔
생각만 잠겼으리
깊이를 알 수 없이 반짝이는 그을음은
물빛에 어른거리는 그대 만든 기억이리
우듬지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낙동강․510
가볍게 흔들려도
뜻은 천근이다
영광도 고통도 한 몸에 받으면서
시퍼런 의지 하나로 외롭게 솟은 깃발
곁가지 떨쳐내고 높이 세운 외줄기에
열매 맺을 꽃눈 대신 하늘 눈 듬성 달고
어둔 밤 별빛바라기로 먼동 빛을 찾는 나무
긴 강 도래샘에도
외로운 뜻 솟고 있다
풀 한 포기 범접 않는 영롱한 물방울로
물길을 밀고 또 밀어 강마을을 꽃피운다
뜻으로 일어서서 빛으로 길을 여는
불면의 푸른 깃발
부서지는 물머리
세상을 꿈꾸는 이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여의주
-낙동강․411
승천의 푸른 꿈을 방울방울 아로새겨
금빛 비늘 반짝이는 칠백 리 물굽이가
짙푸른 용틀임으로 일어서는 강의 하구
수평선 먼 하늘 향해 비상의 나래 펼쳐
치켜든 용의 머리 입에 문 진주 한 알
갯바람 파랗게 이는 푸른 낙원 을숙도
굽이와 고비
-낙동강․478
강물도 흐르면서 몸살을 깊이 앓는다
숱한 굽잇길을 유유히 감돌지만
뒹구는 물방울들은 고비마다 숨이 차다
바윗등 넘어서면 벼랑길로 떨어지고
가풀막 지나면서 자빠지고 또 소쿠라지고
물기둥 높이 세웠다 거품으로 가라앉고
한 굽이 넘어서면 또 한고비 마주치고
정말로 끝장일 때도 새로운 길을 만나는 삶
바다를 만나기 전에는 강의 끝이 아니다
시화詩畫
-낙동강․533
너 또한 영락없이
소리 없는 아우성
강둑길에 낭자한 ‘날 좀 보소’ 저 몸짓은
푸르른 강물을 향한 영원한 노스텔지어*
시정은 물결같이 코앞에 나부껴도
외로 걷든 떼로 걷든 무심한 상춘객들
눈길은 봄꽃 바라기 투명유리 스쳐 간다
맑고 곧은 푯대 끝에 펄럭이는 애수 한 장
꽃바람 물길 속에 이념은 조각나고
시심을 아로새긴 백로 날개마저 부러졌다
출렁이는 물길에도 물 한 방울 목마른 강
시대의 이 강둑에
아, 누구던가
애달픈 마음을 적셔 허공중에 매단 그는
*유치환의 <깃발>을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함.
고독 누리기
-낙동강․536
물길 속 낭창낭창 함께 섞여 흐르다가
세상에서 뚝, 떨어져
물방울로 웅크리면
날바다 검은 이랑 위 외로운 섬 되겠지
천지사방 휘저어도 망망대해 적막강산
잿빛 어둠 속에 돌돌돌 몸을 말 때
외로워 유유자적한 고독 한 번 누려보자
물방울 톡, 깨뜨려 석벽에 창을 열면
파도에 바람 실어 갯바위엔 꽃이 피고
물새는 목청 다듬어 머리맡을 맴돌겠지
몽돌끼리 도란도란
달빛에 호젓한 밤
옛 얘기 실꾸리를 올올 잣는 고치려니
명주실 다 풀릴 즈음 날개 한 쌍 달겠지
인생
-낙동강․513
뱃길은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뭍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
서낙동강 숨소리
-낙동강․539
누구는 말하기를
허파까지 뒤집혔다고
또 누구는 전하기를 막숨소리 거칠다고
물맛도 끝장났다고 흉흉하던 서낙동강
텃새들 다 떠나고 참조개도 흔적 없어
찢기고 뭉개지고 휘어진 등짝으로
긴 밤내 밭은숨 쉬며 가슴앓이 뒤척였지
강은, 깊고 긴 강은 앓으면서 흐르나니
이 세상 아픈 사연 함께 품을 물길이라
잎잎의 은빛 이랑은 흉터 자국 아니던가
윤슬로 반짝이는 불멸의 푸른 몸짓
긴 강변 갈댓잎들 춤사위 선율 맞춰
물굽이 낭창낭창한 진양조로 숨쉬네
*서낙동강 : 필자의 닉네임
강의 너테
-낙동강․479
강은 밤이 되자 깊은 시름에 잠겼다
세상은 그냥 자라고 싸늘한 눈빛인데
바람은 깨어나라고 마른 갈대를 흔든다
강변 갈대들은 앙상한 촛불을 살려
우우우, 입을 모아 함성을 지르지만
견고한 빙벽 앞에서 부서지는 잔파도
찌푸린 하늘에는 성깃한 별빛 몇 알
추수가 끝난 들판은 겨울잠이 포근한데
긴긴밤 온몸 뒤채며 얼다 녹다 지새운 강
갈대숲 강바람에 밤새 울던 겨울 산은
들판을 내려다보며 털을 세워 웅크렸고
강물은 몸살을 앓아 울퉁불퉁 일그러졌다
고향 아지랑이
-낙동강․507
물길 따라 흐르다
되돌아온 고향은
짧은 세월에도 뭉개지고 허물어져
아득한 상류 그쯤에 기억만 뭉쳐 있다
아무리 발돋움해도 거스를 수 없는 물길
있어도 없는 실체
없어도 남은 과거
고향은 물속에 잠긴 가슴 속 아지랑이
외양포 사람들
-낙동강․519
평생 밟은 내 땅 위에
내 집 한 칸 갖고 싶소
아직도 비극의 땅
가덕도 외양포는 100년 몸살 앓고 있다
토착민 울음 실은 대포 소리 잦아들어
푸른 바다 물결 따라 꽃구름 떴다지만
돌밭을 후벼내던 손가락 마디 닳고
묏기슭 오르내린 무릎관절 부서진 땅
국수봉이 보증 섰던 우리 삶터 아니던가
역사는 돌고 돌아 관광객 몰려와도
그 역사 그 관광은 다시 또 가시 되어
꽃구름 옛 파도는 갯바위에 부서질 뿐
쫓겨난 핏빛 울음 못 달래준 세월 속에
사람 사는 세상에도 주름 깊은 외양포
오가는 파도 위에 윤슬 조각 부서진다
누가 또
저 어진 눈빛을
글썽이게 하는가
꿈꾸는 물방울
-낙동강․464
그대 보았는가
꿈꾸는 물방울을
날개 없는 치어들의 반짝이는 비상飛翔으로
알알이 명멸明滅하는 꿈, 길을 찾는 물머리
빛과 빛 몸을 섞어 교직交織하는 꿈의 조각
외마디 추락으로 소용돌던 물길 엮어
직진의 유연한 질주
꿈의 입자粒子 보았는가
온몸 부서지는 숙명의 퍼즐 찾아
천만 길목 돌고 돌아 다시 펼칠 꿈의 종언終焉
그 모천母川 등지고 가는 연어의 길, 생명의 꿈
벼랑 끝에서
-낙동강․492
물줄기가 뚝, 끊어졌다
돌아서서 눈을 감았다
손톱 발톱 곧추세워
사
다
리
를
만
들
었
다
긴 강은 벼랑 아래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 땀
-낙동강․448
바다가 짠 까닭은
강이 흘린 땀 때문이다
땀은 노동의 꽃망울
강물은 유람하듯 흐르는 것이 아니다
앞산 솔잎보다 더 많은 실핏줄로
깊은 골 휘어 돌고 너른 들 굽어 돌아
땅 위 시든 풀잎, 땅 속 생채기에
제 살점 토막 내어 방울방울 스며든다
먼 길 갈수록 염도가 높아지는 강물
하류의 강둑에 기대어 허위허위 걸어가는
등 굽은 노인의 물마루가 시퍼렇게 짠 것은
긴 생애 쉼 없이 적셔온 푸른 노동
강물의 구릿빛 땀방울
녹아들기 때문이다
낙엽
-낙동강․505
휙,
날아온
엽서 한 장
한해 일지 목록이다
세세한
기록들을
낱낱이 읽어 보라고
강물은 바람을 불러 책갈피를 뒤적인다
강물에 지은 죄
-낙동강․488
물빛이 다르다고 돌멩이 던진 죄
물맛이 낯설다고 침 뱉어 더럽힌 죄
근본이 개천이라고 손가락질로 모욕한 죄
원수에 대한 소고小考
-낙동강․329
물과 불 부딪히면 둘 중 하나 죽는다
태우고 꺼뜨리는 앙숙의 관계지만
물과 불 조음체계調音體系는 한 울타리 DNA
굳이 다르다면 양순음兩脣音의 성대聲帶 진동
유성음 무성음의 그 차이를 생각하며
깜깜한 강둑에 서서 불로 타는 세상을 본다
혁명
-낙동강․516
저기 저, 시위 보게
저게 바로 혁명이야
낡고 병든 물길 속에 온몸 함께 부서지며
뒤틀린 강의 가죽을 홍수로 벗기는 거야
강둑에 비켜서서 깃발만 흔들다가
상처 난 물방울들 난바다로 밀쳐낸 후
그 가죽 뒤집어쓴 건 혁명 아닌 반역이야
혁명의 물머리는 앞만 보고 가는 거야
꽃으로 필 물방울들 푸른 강에 남겨두고
제 한 몸 수평水平이 되는 그게 바로 혁명이야
무등산 낙동강
–낙동강․518
빛고을 망월동에 난해難解한 한글 비문
찢어진 지도 사이의 돌비석이 아프다
TV
-낙동강․499
이 세상 흙탕물길 올올이 다 끌고 와서
동아줄로 묶어 놓고 꼭두놀음 신명나는
허공에
일렁이는 물결
총천연색
혓바닥
도보다리 무성영화
-낙동강․527
물줄기는 없어도 강은 흐르고 있다
표정으로 이어지는 남북정상 벤치 대화
세기의 무성영화를 독해 중인 관람객들
혈육 간 담소인 듯 시대의 담론인 듯
행여나 어색할까 멧새 가끔 지저귀고
조팝꽃 하얀 미소가 신록으로 번진다
분단선 표지판은 민망해서 녹이 슬고
새파란 난간 따라 가슴으로 틔운 물꼬
한반도 '하나의 봄'은 총천연색 상영 중
색소 난청
-낙동강․502
참, 이상도 하다
저 소릴 못 듣다니
물굽이 몸부림이사
생떼라 치더라도
온몸을 던지며 우는
폭포 소리도 못 듣다니
흐르는 강줄기가
어디 단색이던가
청홍에 흑백도 섞여
강이 되는 것 아니던가
색깔이 나와 다르다고
소리마저 못 듣다니
강물 홀로 아리랑
-낙동강․522
제주도 앞바다에 물질하는 저 해녀야
이 세상 온갖 소식 한데 섞인 조류 속에
어머니 젖내음 배인 탯줄 하나 찾았느냐
갯바위 깊숙한 골 웅크린 여울목에
4․3도 6․25도 낱낱이 스며 있어
해삼도 소라 전복도 휘어감은 물줄기
한라산 제주에서 난류에 엮어 가다
태백산 낙동강물 너도 가자 칭칭 동여
백두산 두만강물을 독도에서 맞게 하라
남북을 오르내리는 동해바다 맑은 물에
헝클어진 머리 감고 맞손 잡고 일어서서
반도의 용오름 되어 아침해를 솟게 하라
악마의 손톱
-낙동강․457
아우슈비츠 철조망은 악마의 손톱이다
겹겹층층 철사줄에 짐승의 피가 흘러
애자礙子는 고압전류를 감고 허연 이빨로 웃고 있다
강철혈관 마디마디 꽃판으로 핀 손톱에
베를린도 베트남도 예멘도 잘린 허리
내 유년 낙동강 하류 관절關節도 할퀴었다
피도 흘러, 전류도 흘러 망각의 물길인저!
상처들 아물면서 흉터관광 성업인데
휴전선 손톱에는 여태
선지피 뚝, 뚝, 흐른다
*아우슈비츠수용소 벽에는 독가스 살해 당시 손톱자국 흔적이 고통으로 선명하다
다뉴브강의 6․25
-낙동강․459
푸른 다뉴브강이 최악의 범람이란다
붉은 물길 바라보며 기억나는 춘수의 시
한강은 저리 조용한데 왜 다뉴브는 범람인가
한강도 다뉴브강도 폭염 내리쬐는 2014년 7월 한여름
푸른 초목이 온 누리를 덮어 시원한 오후 무렵
뒤척이는 다뉴브강
맑고 잔잔한 요한 스트라우스 선율을 찾지 못해
고개 숙여 공수拱手한 <영웅광장>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죽음의 13세 소녀를 기억하며
장엄한 광장에 서서 반추하는 두 편의 같으면서 다른 춘수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자유 정신 원작 시와 반공 이념의 개작시
1957년 [사상계]에 발표한 66행 원작시의 기억으로
70년대 중반 국어 시간에 가르쳤던 49행의 개작시!
청년 교사였던 나는 유신 독재에 대한 두 번째 혼돈을 겪고 있었다
첫 번째 혼돈은 1972년 가을이었다
시골 중학교 초임 국어 교사였던 나는 10월 유신 홍보대사로 차출되었다
밤마다 마을을 돌며 집회소에서 연설을 했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앉은 동민 20여 명의 구석자리에 두 명의 사복경찰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박정희 독재’가 입에 익었던 젊은 교사의 언어 통제를 위해 교무주임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나의 안전과 자존심을 동시에 살리기 위해 국제정세를 논했다
우방국 대만의 UN 축출!
검은 칠판에 세계지도를 그렸다. 한국도 대만도 너무나 작은 땅덩어리
국제적 강국 대만의 쇠락을 통해 한국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우회적 유신 지지 연설
연일 받은 박수갈채, 놀라운 사실은
강연이 거듭되면서 어느새 내가 자기 세뇌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신 선포 무렵 학교를 옮기고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군대를 거쳐 다시 자리잡은 고등학교 선생
꽃의 시인 춘수를 국어교과서에서 만났을 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는
생뚱맞게도 다뉴브강의 6․25뿐이었다
억압에 저항하던 자유정신은 삭제되었다
20년 전 발표한 대표작 표제시를 왜 개작하였을까
자신의 자유 투쟁 의지 17행을 어디에 버렸을까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불면의 밤을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강요한 스물두 살 자유 청년 춘수는 어디로 갔는가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라던 확신은 쓰레기통으로 버렸는가
시대는 반공교육이 유신교육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반공정신으로 변절된 춘수의 자유정신
그때도
자유를 찾는 싹은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담담한 꽃을 피우고 있었을까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를 꽃피울 새벽닭은 울기나 할 것인가
닭은 죽고
살고 싶다던 스물두 살 춘수의 치욕이 회생하였을까
음악에도 세계지도에도 있는 한강의 기적을 움켜쥐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오기도 전에
동경 세더기야 감방의 불령선인 청년 춘수는 죽고 없었다
드디어 인과응보
70년대 번졌던 다뉴브 - 한강의 반공교육 독버섯은
5.18 이후 춘수의 황금배지로 활짝 피었다
개작 시인의 목줄에 걸린 유정회 국회의원의 찬란한 무궁화꽃!
꽃의 시인 김춘수가 ‘몸짓’을 버리고 ‘이름’을 얻었다
꽃들은 이름 없어도 몸짓으로 아름다운데
다뉴강에, 한강에, 그리고 6․25 최후의 전선 낙동강에
윤슬로 명멸하는 허망의 금빛 휘장
강물은 흘러 다시 30여 년
한강 물은 유유한데, 다뉴브강은 왜 저리 범람인가
유신을 안고 침묵하던 한강, 분한 저항을 행동하던 다뉴브강의
형상합금의 기억인가.
헝가리 아픈 분노는 이제 끝났지만
6․25가 진행 중인 한반도 깊은 강엔
춘수의 시가 뒤엉겨 황톳물 굽이진다
*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시구들을 활용함.
SNS
-낙동강․506
소나기 내리는 날은 강물이 들끓는다
보글보글 부글부글 바글바글 와글와글
세상의 손가락 끝이 물똥으로 왁자하다
대한민국 TV, 여덟 시 혹은 아홉 시
-낙동강․475
강이 미쳐버려 확! 뒤집히면 좋겠다
내장이 뒤집히고 세상이 뒤집힌 밤
황톳빛 강물 흐르다 말라버리면 좋겠다
메마른 강바닥에 푸른 하늘 은하수
그리움에 애태우던 견우직녀 다시 만나
밭 갈고 실 잣는 세상 새로 열면 좋겠다
대한민국 대선, 2012년
-낙동강․373
바다 건너 들려오는 성탄절 폭탄테러
선택이 다르다고 증오로 부딪는 강
이 땅의 몇 십 년 후도 남의 나라 얘기일까
환희와 아쉬움의 변증법은 간데없고
승자는 고소苦笑하고 패자는 얄미워서
앵돌아 흐르는 물길
불공대천의 원수지간
두물머리 세물머리 맞부딪는 강물에서
소용도는 휘몰이야 상생의 꽃판인데
이 나라 대통령선거는
숫돌강에 칼 갈기
강물 변증법
-낙동강․374
투표는 섞임이다
두물머리 만남이다
이 골 저 골 좌우 흑백, 숨결 거친 물길 모여
한 세상 함께 흘러갈 물머리를 찾는 거다
선거는 강물이다
둑을 따라 흐르는 거다
흑백으로 튀는 비늘, 청홍으로 솟는 물길
시위로 뒤틀리면서 한 몸으로 가는 거다
물머리는 끌어주고 몸통은 밀어주며
꽃 피고 바람 부는 평행의 강둑 사이
긴 세월 부둥켜안고 굽이지며 흐르는 거다
낙동강의 선물
-낙동강․359
낙동강 둑 하나가
귓속을 꽉 막았다
한 생애 물길 따라 하류쯤 다다르니
강둑 너머 들려오는 목쉰 소리 들을
이젠 그만 들으란다
해종일 풍덩이며 물에 살던 귀앓이로
귓속에 수십 년을 찰랑찰랑 흐르던 강물
고개 숙이면 사르륵사르륵 귓구멍에 구르는
병아리 솜털 같은 노오란 간지럼
어둠으로 굳어져 점점 멀어지더니
귓속을 꽉 채운 천근 적막
굽이지는 강물이 소리로 흐르더냐고
귓바퀴에 맴도는 적막을
난청難聽으로 들으란다
이슬방울 똑, 떨어뜨린 나뭇잎의 기지개
더러는 눕고 기댄 풀잎들의 부대낌
물병아리 발톱을 감은 어리연꽃 자맥질
강의 맥박으로 몸짓하는
저 묵음黙音의 주파수周波數를
청음聽音의
데시벨decibel을 넘은
적막으로 들으란다
디지털 영결식
-낙동강․498
친구 장례가 끝나자 핸드폰을 열었다. 전화번호 체크하고 삭제를 클릭했다. 한 방울 풀잎 이슬이 강물 위에 떨어졌다.
잠시, 흔들리던 가느다란 풀잎 한 장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끝에 몸을 섞고
강물은 그냥 그대로 출렁이며 흐를 뿐
가을, 잠자리 죽다
-낙동강․508
강가 버들가지 끝
잠자리 한 마리
날개를 반듯이 펴 쉬는 듯 죽어 있다
실바람 살풋 스치자 미동하는 엷은 영혼
가볍게 하늘 날며 반짝이던 한 생애가
죽어서 더 가볍게
떠나가는 하얀 날개
물결도 겹눈으로 일어 되비치는 가을 하늘
강의 기록
-낙동강․534
아직도 해독 못한
낙동강 물길문자
구포龜浦에서 구미龜尾까지 거북등에 아로새겨
누대의 삶의 역정이 켜켜이 일렁인다
바람에 돋은 양각
빗물에 패인 음각
석얼음 둥둥 뜨고 너테로 뒤엉겨서
난해한 상형문자로 굽어 내린 천년 물길
강물은 예나 제나 묵언으로 흐르면서
일고 잦는 세상사를 온몸으로 말하지만
사람은 그 뜻을 몰라 거품으로 부침한다
세모의 강
-낙동강․482
강도 한 해 동안 다사다난했나 보다
휘몰아친 길목마다 살점 뚝, 뚝, 떨어져
석얼음 둥둥 뜬 물에 성엣장도 널렸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논틀밭틀 감돌아들어 에움길 부대끼며
긴 여정 톺아 오느라 뒷굽마저 다 닳았다
햇살 바른 강둑 위에 펄럭이는 깃발 하며
달빛 어린 열 길 물속 얼비치는 손길까지
기억의 날줄 씨줄을 올올 엮는 세모의 강
맥맥히 일고 잣는 물이랑 갈피마다
금석문金石文 상징으로 아로새긴 인간사
온몸에 켜켜이 쟁여 흐르는 강이 있다
누에고치
-낙동강․465
저 명주실 죄다 풀면 몇 권 소설 될까
시간도 똬리 틀어
맴을 도는 요양병원
한 생애 긴 사연들이 고치로 돌돌 말렸다
뽕잎 이랑 물굽이에 절룩이던 종종걸음
아픈 무릎 웅크린 채 한 잠, 두 잠 허물 벗어
명주실 친친 감고 누워 꿈을 꾸는 번데기
후생엔 고운 날개 어느 하늘 날으실까
김해공항 비행기도 비껴 나는 낙동강
하얗게 이불을 덮은
이승의 황혼 무렵
종언終焉
-낙동강․366
긴 강도
바다에 들면
소리 없는 물이 된다
서귀포 생각
-낙동강․454
정방폭포 물길들은 그곳에 닿았을까
파도가 펼쳐 뵈는 하얀 전설을 찾아
수직의 벼랑 아래로 온몸 던지는 물방울
서쪽으로 가는 길목 서귀포 대로에는
붉은 그리움이 알알 맺힌 가로수들
머나먼 난바다 보며 먼 나무로 서 있고
한라산 서녘으로 햇살은 이우는데
서시徐市의 삼신산은 흔적도 바이없어
낙동강 물방울 하나 길을 몰라 서성인다
신호마을 사람들
-낙동강․515
서낙동강 끝자락엔
눈빛 깊은 사람들 산다
난바다로 사라지는 도도한 강물 보며
한 생애 쉼 없는 길도 끝매듭을 생각하고
밀물지고 썰물 들어 일고 잦는 앞바다에
채우고 또 비우는 순리의 갯벌 보며
사는 게 저와 같다고 그 물길을 닮아간다
삶
-낙동강․511
사는 건 한 줄기 강물 한데 섞여 흐르는 일
꽃노을 서정
-낙동강․461
나이 들었다고 사랑을 잊었겠는가
차가운 이불깃에 옆구리 허허한데
잠 못 든 베갯머리엔 칭칭 감긴 밤이 길다
나이 들었다고 외로움 없겠는가
해종일 벗삼아도 하염없는 전화벨
눈가에 그리움 맺혀 먼 데 산이 흐려온다
나이 들었다고 꿈마저 버렸겠는가
서산마루 바장이는 엷은 햇살 꽃노을은
한 생애 마지막 그릴 내 뒷모습 아니랴
단풍은 꽃이 되어 가을 산에 수를 놓고
윤슬도 꽃잎 되어 강 하류를 번지는데
나이가 든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겠는가
만수받이
-낙동강․353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강으로 나가 본다
바람에 부대끼는 속앓이 나무 되어
생각의 파편들이 잎잎이 파문 지면
조각난 마음 붙들고 강가에 나가 본다
아래로 흘러가는 순리의 물길 위에
샛바람 꽃샘바람 된바람 늘상 불어
편편이 저민 상처로 일렁이는 푸른 강
모롱이 굽이마다 맞부딪는 바람에도
햇빛 달빛 별빛 실은 가슴 조각 반짝이며
유유한 꽃물길로 가는 만수받이 강을 본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강으로 나가 본다
낙화, 그 후
-낙동강․495
비 그친 골목길에 꽃물결 낭자하다
아내는 비를 들고 쓸려고 하는구나
잊혀야 그리워지는
절정 지난 꿈이란다
바람
-낙동강․509
우리
사는 세상
바람 잘 날 있으랴만
바람은 어깨바람
바람 실은 바람만 불어
당신의 긴 강물에도
윤슬 가득 반짝이기를…
당신의 강
-낙동강․530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려고 하지 말게
물방울 뚝, 떨어진
석간수 한 점 생애
알몸의 오체투지로 강이 되어 흘렀느니
입술 부르트고 허리 휘어지도록
비바람 눈보라에 산을 깎고 들을 돌아
미완의 구절양장을 헤쳐 온 길 아니랴
등짝에 깊이 패인 굴곡의 흉터들은
은빛일 듯 금빛일 듯, 어쩌면 잿빛일 듯
실안개 뿌연 강둑에 나부끼는 물빛 상징
긴 강둑 되돌아보며 허허바다 섞여들면
물방울 강이 되고
그 강 다시 물이려니
마지막 물길 매듭을 알려고도 하지 말게
제3부 강江이 쓰는 시詩(제5집)
<2014. 세종출판사>
노인
-낙동강․399
초겨울 햇살 아래 마른 낙엽 졸고 있다
한 점 물기 없이 다 증발한 무심한 빛
늪으로 오도카니 앉은
허연 강의 빈 껍질
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린 눈은
한 생애 굴곡 굽이 어드메쯤 멈췄을까
담장 위 까치밥보다
더 작게 웅크린 강
강江이 쓰는 시詩
-낙동강․415
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굽이마다 시 아니랴
긴 물길 두루마리에 바람으로 시를 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신新 ․ 며느리밥풀꽃*
-낙동강․398
터널 지나 다리 건너
먼 물길 거슬러 와
보따리 풀어놓으며
한숨 섞인 한 소리에
시어미 등 뒤로 돌아
며느리가
쏙,
내민 혀
*원래 ‘며느리밥풀꽃’은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굶어 죽은 며느리에서 유래가 된 이름
장작을 패며
-낙동강․375
1자一字로 쪼개지는 장엄한 순직殉職을 본다
도끼, 무딘 날 끝에
꼿꼿이 선 저 뼈대
시대時代의
휘어진 강에서
조선 선비 지조를 본다
장작불을 지피며
-낙동강․378
강과 철길이 겹한 강마을 저녁답은
서산에 사위어가는 불티 한 점 댕겨와서
남정네 장작 지피는 아궁이에서 시작된다
장작불 잘 피우는 건 사내들의 자존심
무덤덤한 문을 열고 불길을 보내지만
여인네 무쇠 달밑*은 좀체 달지 않는다
덤벙대면 꺼지는 불, 탑을 쌓듯 몸을 태워
구들장 깊은 곳을 붉은 혀가 빨려들면
그제야 불타는 뼈를 아궁이가 깨문다
젖꽃판 달아올라 소댕꼭지 곧추서고
땀방울 송글송글, 가슴 팽팽 부풀면
뚜껑이 들척거리며 기적소리 들린다
강과 철길이 겹한 강마을 남성男性들은
산자락 끌어 덮은 따끈한 온돌에서
밤마다 기적소리에 장작불로 기립한다
*달밑:솥의 아래쪽 불룩한 배 부분
가락駕洛 대보름
-낙동강․300
상쇠는 채 들어라, 쟁글쟁글 쇠를 쳐라
금정산 상봉上峰에서 오봉산에 기별 왔다
옛 가야 둥근 달이다, 달맞이 불 댕겨라
수심 많은 고운님들 저 달을 그리면서
말 못할 설운 사연 올올 적신 무명옷을
손 시린 이 강물에다 또 얼매나 행궜을꼬
울리는 농악 따라 달집이 훨훨 타면
조만강 푸른 물에 붉은 달빛 녹아들어
우리네 숱한 시름도 불티 되어 흩어지리
달무리 넉넉하니 올해도 풍년일세
둥글게 맴을 도는 학춤에 흥이 겨워
강물도 보름달 띄워 제 자리에 출렁인다
*가락駕洛:서낙동강변의 지명, 가락오광대를 연희演戱
폭포瀑布
-낙동강․437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어찌 강이 되겠는가
사람의 마음
-낙동강․428
실체도 없는 것이 온갖 형상 흉내낸다
다잡아 먹을 때야 단단히 벼르지만
태풍에 널문 놀 듯 열고 닫고 열고 닫고
코흘리개 과자 먹듯 주고 뺏고 주고 뺏고
맞았다 틀어지고 굳혔다가 돌변하고
금석같이 정해놓고 잎새 먼저 흔들리고
잡았다가 놓았다가 있다더니 금세 없고
여리다 이내 굳어 앞서다 돌아서고
고왔다 거칠었다 약하다가 강하다가
좋다가 나쁘다가 비웠다가 채웠다가
깃털로 가볍다가 납덩이로 무겁다가
싸늘하게 식었다가 펄펄 끓어 뜨겁다가
꽁꽁 얼어붙다 봄눈 녹듯 풀리다가
좁았다 넓어지고 느긋하다 급해져서
굽이치는 골짝물로 풀리다가 또 맺히는
마음은 흔들비쭉이
물에 비친 다이아몬드
매화 꽃봉오리
-낙동강․416
한겨울 강언덕에
소풍 나온 요정들이
살얼음 보자기에
햇볕을 곱게 싸서
봄 되면 풀어보라고
빈 가지에
매단
선물
낙동강 모래섬들
-낙동강․446
유유한 낙동강은 붙임성도 참 좋아서
천리길 방방곡곡 온 마을을 다 적시고
이별의 나들목에선 모래섬을 쌓는다
을숙도 일웅도에 사람들을 모으더니
장자도, 신자도, 진우도를 품에 안고
대마등, 맹금머리등, 도요등도 어르고
난바다 푸른 저쪽 물마루를 향해가다
물머리 다시 돌려 백합등을 또 다듬어
마지막 남은 인정을 알알이 다 쏟는다
낙동강 혈육들이 오손도손 모인 하구
푸접 좋은 모래섬이 또 풀등을 만드는지
허허한 물낯바닥에 갈대 한 촉 올린다
봄의 향연
-낙동강․443
봄은
빛으로 와서
향기로 피어난다
꽁꽁 언 강물 녹여
조각보 펼쳐 뵈면
물새는
목청을 돋워
음향 하나 더 보태고
진우도
-낙동강․447
물길 맴도는 땅 천삼백 리 낙강 하구
인적 바이없는 진우도 모래톱엔
물새들 발길 더듬는 잔물결만 분주하다
신자도 갯바람은 가덕도로 몰려들고
눌차도 갈매기는 장자도로 날아들어
누천년 오간 흔적이 한데 엉긴 모래등
켜켜이 쌓인 알알 층층이 톺아보면
6․25 슬픔에서 사라호 아픔까지
우거진 갈숲 솔숲에 숨은 내력 다 찾을까
물길은 푸르러서 고금古今이 한 빛인데
물 건너 산업단지, 거가대로 낯이 설어
구멍 속 엽낭게들이 두 눈알만 내민다
*진우원: 섬이름의 유래가 된 방수원 목사의 6․25 고아원. 사라호 태풍에 유실
쉿, 조용!
-낙동강․364
강 상류 실개천엔
겨울뱀이 누웠는데
겹매화 속적삼에
벌 한 마리 애가 탄다
봄볕아,
신방 차리고
남풍 불러 병풍 쳐라
낙화
-낙동강․425
어쩔거나, 저 동백
꽃으로 그냥 지네
하늘 향한 눈망울 노랗게 이냥 뜬 채
꽃울음 빨갛게 울어 한 목숨 떨어지네
천 길 벼랑 틈에 까만 발톱 딛고 서서
허연 파도 거품 위에 꽃으로 붉게 피어
꽃봄이 내일 모렌데 속절없이 꽃이 지네
그대, 설운 꽃잎아
그대 그린 꿈의 지평地平
모래톱 저 굽이 지나 조각보로 펼칠 것을
종소리 붉게 토하며 봄빛 먼저 동백 지네
너덜겅 세상
-낙동강․418
단단한 물방울들이 산기슭에 박혀 있다
제 몸 터뜨리지 못해
굳어버린 마음들이
마른 강 물길이 되어 돌덩이로 갇혀 있다
낙동강 제방
-낙동강․302
공항로 강둑길은 명지부터 꽃빛 사태
은빛 금빛 강물 적신 삼십 리 꽃물결이
강바람 파랗게 실어 조각보를 펼쳤더라
맥도마을 벚꽃길에 키 낮춰 눈길 주면
씀바귀며 민들레며 절로 자란 꽃네들도
젖먹이 옹알이 같은 풀꽃웃음 건네더라
한데 섞여 사는 길에 꽃잎만 꽃이랴고
생태공원 갈대숲엔 개개비비, 뜸뜸북뜸북
뻐꾸기 아련한 소리도 꽃물결에 잠기고
소쩍새 외로운 밤 가로등이 꽃을 달면
대저마을 시비詩碑 너머 층층이 핀 채송화꽃
해종일 버거운 삶도 도란도란 꽃을 피워……
강이사 무심한 듯 그냥 저리 흐르지만
세상사 기쁨 슬픔 꽃빛으로 엮은 물길
그 강둑 걷는 사람도 형형색색 꽃이더라
마음에 물길 하나
-낙동강․410
물길 흐르는 것이 인연 아니겠어요
그대 눈길 닿아 숨결 머문 그 언덕을
마음도 한 조각 접어 종이배로 띄우세요
유리 조각 같은 삶도 강물에 비춰보면
은빛 금빛 반짝이는 미소 아니겠어요
물길은 마주보라고 강둑까지 앉혔네요
흉터
-낙동강․376
상처는 아물어도
기억은 생생해서
아차! 헛디디면
천 길 물속 빨려드는
한겨울
꽁꽁 언 강의
눈 부릅뜬 숨구멍
거북, 붉은 강을 헤다
-낙동강․303
구포龜浦에서 구미龜尾까지 거북 등을 타고 가면
경상북도 경주시 월명리月明里 낭산狼山 아래
뎅그랑, 목이 잘려난 천년 신라千年新羅 거북 한 쌍*
뚝, 뚝
선지피는 목줄띠에 방울지고
잃어버린 머리 찾아 네 발 엉버티어
서라벌 옛 땅바닥에 핏빛 함성 번져난다
천년 사직社稷인들 고난이 없겠으리
도솔가篼率歌 한 곡조로 세상사를 구원하던
월명사月明師 피리 소리가 은은히 번지던 땅
사천왕사四天王寺 초석礎石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거북 등에 새긴 염원念願
빗돌마저 묘연한 채
동강난 당간지주幢竿支柱만 잡초 속에 허허롭다
웃자란 잡초밭을 역사歷史도 헤매는지
수로왕 가야 거북
수로부인 강릉 거북
긴 강물 백두대간의 흔적 없는 거북들
숱한 거북님들 어디로 가셨을까
넘치는 영웅 세상 스스로 떠났을까
시절이 늘 태평이라 물속 깊이 숨었을까
낙동강 수수만년 굽이친 세월 속에
구미에서 구포까지 한恨 많은 물길 따라
황톳물 역사가 되어 현해탄을 건넜을까
세상은 예나 제나 태평가를 그리는데
머리를 잃어버린 반도半島의 거북 한 쌍
오늘도 피를 토하며
붉은 강을 헤고 있다
얼레
-낙동강․395
그대, 알잖아요
인연은 당신 손길
아주는 아니고요, 조금만 섭섭하게
풀었다 감아주시면 우린 늘상 마주 보죠
강이사 바람 잦아 팽팽한 연이련만
더러는 안개 짙어 물길 알 수 없잖아요
튕겨도 잠시 풀었다, 이내 감아주세요
마음
-낙동강․350
강기슭 논어귀의
작은 옹당이
얼굴 붉힌 날
강 건너 비바람까지 불러
흙탕물 뒤엉기더니
물낯바닥 곱게 펴니 뭉게구름 동동 뜨고
하늘 향해 발돋움한 물여뀌 촉수 사이
소금쟁이 발톱들이 은쟁반을 타고 논다
내 안에
일고 또 잦는
내가 만드는 옹당이
강둑
-낙동강․352
낙동강 하류에서
이제사 보았네요
저절로 흐르는 것이 강물 아니라
강둑이 두 팔로 안아
가지런한 물길로 보내는 것을요
헤쳐온 이 길도 내 발길 아니라
한길 닦아놓은 숱한 사람들 발자취인 것을요
바다가 보이는
낙동강 하류에서, 이제사
긴 물길 감싸고 있는
먼 강둑이 보이네요
바다
-낙동강․400
바다는 강의 무덤
수평水平의 공원묘지
한 생애 흘러온 강이
단단한 몸을 풀면
파도는 푸른 수의壽衣로
지친 육신을 감싼다
노적봉
-낙동강․305
낙동강 굽이굽이 천릿길 푸른 물이
바다와 몸을 섞어 질펀히 퍼진 갯가
낟가리 층층이 쌓아 노적봉露積峰이 솟았다
봉우리에 발 돋우어 바람에 귀를 열면
옛 가야 말굽 소리, 조선 수군 함성들이
도도한 깃발이 되어 강물 위에 펄럭인다
굴곡진 시절 탓에 본류 지류 바뀌어도*
태백에 뿌리 적신 정갈한 물빛으로
누천년 함께 흘러온 백의白衣의 맥 아니랴
낙동로, 공항로 드넓은 길을 따라
강변에 쌓여가는 새 역사를 지켜보며
하구의 물너울 앞에 갯바람을 막고 섰다
*노적봉:서낙동강 하구 독뫼산, 임란 때 곡식을 쌓은 것처럼 위장하여 왜군을 격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기 전에는 서낙동강이 본류本流였다고 한다.
부나비
-낙동강․402
강이 생명이라며 강가에 살면서도
무지개빛 현수교懸垂橋에
불꽃 잔치 펼쳐 놓고
물길을 갈가리 찢어 유람선만 만든다
낙동강
-낙동강․304
오호라, 저 용틀임!
낙동강洛東江이 일어선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람물결 비늘 세워
오대양 육대주를 향해 용龍 한 마리 꿈틀인다
태백太白에 솟은 샘물
굽이굽이 흘러내려
금수강산 꽃길 따라 구미龜尾, 구포龜浦 휘돌아 와
남해와 백두대간의 생명줄을 잇는 강
아침 저녁 은빛 금빛
밤이면 별빛 달빛
봄 가을 여름 겨울 청홍흑백靑紅黑白 물빛으로
산자락 낮은 어귀엔 강마을을 알[卵]로 품고……
서낙동강 품에 안긴 황금벌판 용머리에
칠점산七点山, 덕도산德島山을 눈알로 반짝이며
을숙도 푸른 갈숲을 여의주如意珠로 굴리는 강
순백純白의 두루마리
도도滔滔한 깃발 되어
가덕도 용뿔 세워 승천하는 반도半島의 용龍
낙동강 천삼백 리가 몸을 틀며 일어선다
여름 한낮
-낙동강․449
팽나무 우듬지에 꼼짝 않고 조는 해님
할머니 부챗살에 강바람 다 모이자
매미는 햇살로 엮어
그넷줄을 흔들고
선잠 깬 강물 위에 반짝이는 조각 윤슬
쇠물닭 노란 부리가 어리연을 콕콕 쪼니
물길도 심심한가 봐
갈대 허리 툭툭 치고
이팝꽃
-낙동강․381
강마을
보릿고개에
목이 메던
팝콘 허기
독도
-낙동강․362
참, 금실도 좋아라
동서東西로 마주한 섬
행여나 멀어질까, 혹여나 떠밀릴까
난바다 저 풍랑에도 애틋한 정이 한결같다
참, 다복多福하여라
무릎 아래 노는 식솔
아들 딸 손자 손녀, 여든아홉 한데 얼려
파도는 재롱을 감아 옥구슬로 뒹군다
오지랖은 또 넓어서 망망대해 펼쳐놓고
맞부딪는 갯바람도
소문所聞 섞인 강바람도
무명천 옷자락 폭에 쪽빛으로 다 받는다
누가 그댈 두고 외롭다 노래하리
화목한 대가족에 바다 있고 새들 있고
뭍에서 오는 마음도 일 년 내내 따뜻한 것을
*독도는 동도, 서도 외 89개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망월동 아리랑
-낙동강․380
달하, 높이 돋으샤 멀리곰 비추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물길 따라 노를 저어
서라벌 처용랑께서 빛고을에 마실 왔다
무등산도 우리 산, 낙동강도 우리 강*
이름이 낙동洛東이라 서쪽 벌은 남이랑가*
무등산 달빛 푸른 밤 낙동강은 낮일랑가
망월望月이라 부른대서 노상 달만 띄울랑가
처용랑 발걸음이 동서남북 쏘다니면
아리랑 골짝골짝에 밝은 햇살 비칠랑가
망월동 밝은 달에 밤 들이 노니다가
낙동강 물빛 보니 가랑이가 또 엉겼네
어긔야, 아으 다롱디리
우리 가는 데 졈그를세라
*망월동 입구 돌비석에 새겨놓은 문구
*‘우리가 남이가’ : 어느 국회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경상도 표의 결집을 호소한 말
인터넷internet 풍문風聞
-낙동강․377
아마도
강 저쪽에 무슨 일 있나보다
바람의 발자국이 무수히 건너가고
갈대도 두 손을 모아 우우우 합창을 한다
물길 도는 강마을에 안개야 없으랴만
글로벌global 광역통신, 굴뚝 없는 온 세상을
전파電波는 공중 가득히 연기 되어 흩날린다
눈빛은 오직 외곬
커서cursor에 꽂아놓고
손톱은 송곳 되어 자판기만 찍어대며
익명匿名의 컬러화면을 떠다니는 영혼들
발[足] 없는 소문들이 몰려간 강둑에는
민들레도 제비꽃도 잎잎이 뭉개지고
강물은 모로 누운 채 긴 밤 내내 뒤척인다
가덕도 안개
-낙동강․367
아직, 가덕 등대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신항만, 녹산공단, 거가대교 공사장의
타워크레인 철탑 아래 힘겹게 일어서는
가덕도의 아침
이미 디지털로 프로그래밍 된 100년 등대는
안개 속 무신호霧信號로
어디로든 다들 떠나라고 뿌우-뿌우-
자동自動의 에어사이렌을 쉼없이 울리는데
개발에 밀려나는 강마을 사람들
뿌연 어둠으로 덮여버린 마음들은
어딘가로
물방울로 흩어지며 가기는 가야하는데
거제도도 다대포도 김해벌도 보이지 않는 안개
그랬지, 금바다 김해金海
금빛 찬란했던 낙동강 하구의 바닷물은
장마 탓인가, 흙탕물로 흐르는데
통-통-통
안개 속을 달리는
아날로그 저 뱃소리
방패연
-낙동강․393
멀리 떠나고 싶어
팽팽히 맞서지만
그대, 놓쳐버리면
추락하는 날개이기에
가슴에 구멍을 뚫어
강바람을 당긴다
사초史草
-낙동강․382
강은 사마천이다
조선왕조 실록이다
높낮이를 두지 않는 공평한 붓끝으로
먼동빛 수평을 찾는 도도한 몸짓이다
고요한 불립문자不立文字 백지白紙로도 흐르지만
바람이 세찰수록 굵고 큰 글로 적고
회오리 이는 날이면 난해한 글을 쓴다
해서체로 행서체로 때로는 초서체로
세상일을 다 적으며 유유히 흐르는 강
역사의 두루마리를 굽이굽이 펼쳤다
행로行路
-낙동강․383
강은
따로 흘러도 같은 하구河口 다다르고
길은
한 길로 가도 갈림길 마주치고
인생은
만남도 이별도
알 수 없는 소용돌이
내시경內視鏡 청문회
-낙동강․384
어이쿠! 들켰구나
기어이 탄로났네
열길 물속보다 더 깊이 감춘 속내
검붉은 온갖 용종들 모두 들켜 버렸네
위장胃腸으로 위장僞裝하여 뱃속에 눌어붙은
돈용종 명예용종 불법용종 편법용종
컴퓨터 환한 화면畵面에 오뚝이로 앉았네
세월도 굽이지고 인심도 휘어진 세상
반백년 긴 생애를 더불어 살다보면
외줄기 청정수淸淨水 삶이 쉽기야 했겠으랴
눈 부라린 기회마다 온갖 오물 빨아들여
강바닥 깊이 묻고 맑은 물로 꾸민 연극
내시경 촉수 더듬이에 밑바닥이 들통났네
참매미 소리
-낙동강․369
땡볕이 무서워서
앙버티는 초가을을
햇살 올올 엮은
동아줄로 끌어와서
강언덕
미루나무에
칭칭 동이는 질긴 선율旋律
만어사
-낙동강․417
낙동강 물고기가 산에는 왜 앉았을까
강이 올렸을까
산이 끌었을까
스스로 목어木魚 되려고 비늘 세워 올랐을까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산 너덜겅에
눈 감고 귀도 닫고 입도 다문 물고기들
산 아래 강물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있다
종각鐘閣을 휘어돌아 메아리로 이는 바람
운판소리 법고소리에 온 산이 기우는데
범종梵鐘이 얼마나 울어야 사람들은 종鐘이 될까
강은 먼 빛으로 안개 속을 흐르는데
산으로 헤엄쳐 온 물고기 종석鐘石들이
청동靑銅 빛 울음소리로 산자락을 더듬는다
*만어사萬魚寺 : 밀양 만어산의 고찰, 물고기 형상의 종석 너덜겅이 있다.
범종 앞에서
-낙동강․422
새는 몸통을 버려 운판으로 훨훨 날고
짐승은 뼈대를 버려 법고로 둥둥 울고
고기는 속을 텅 비워 목어로 눈을 떴다
사람이 무얼 버리면 여운 깊은 범종 될까
머리, 가슴 다 비우면 천만근千萬斤 범종 될까
천 년을 엎드린 후에 먼지 모여 범종 될까
산안개 번진 골짝
목청 깊은 범종 소리
굵은 물줄기로 산기슭을 내려가서
흐르는 강의 꼬리를 팽팽하게 당긴다
걸립乞粒치기․1
-낙동강․388
꽹사*들 다 모여라, 농깃발 앞세워라
상쇠는 채를 들고 화동花童은 고깔 써라
신묘년辛卯年 지신밟기다, 가가호호 기별해라
부포상모* 끄덕이는 꽹과리 장단 맞춰
징과 북 장구 소고, 포수 광대 마당 돌며
성주상 차려 올리소, 안택安宅굿을 하러 왔소
술과 돈 올린 상에 쌀 담고 양초 꽂아
여루여루 성주야 이 성주가 누 성주고
대청도 신이 났는지 마루짝이 들썩인다
이 댁에 대주大主 양반 소원성취 하시라고
부엌의 조왕님께, 우물의 용왕님께
장독대 고방을 거쳐 뒷간에도 풍악風樂이다
집 안 곳곳 빌던 축원祝願, 대문굿 하직할 즘
소복단장 안주인의 소지燒紙 올린 비손 끝에
한 무리 기러기 떼가 선회하는 강마을
긴 강둑 거리굿에 동네방네 흥청일 때
황혼에 먼저 취한 김해벌 샛강물도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깃발 되어 일렁인다
*꽹사:농악 걸립패 단원들
*부포상모:깃털을 단 상쇠의 상모
걸립乞粒치기․2
-낙동강․389
농사꾼 떠난 들판 상전벽해 강마을은
고공의 아파트촌 태평성대 아닐런가
걸립패 한마당 굿판 흐드러지게 벌여보세
채쟁 두둥 부왕 궁덕, 도동 타탕 얼쑤 좋다!
꽹과리 북 징 장구, 소고 포수 화동花童 양반
낙동강 일천삼백리 꽹사 한량 다 모였네
마당굿 자리 없어 현관부터 활짝 여니
훈훈한 거실 안쪽 속옷 차림 저 성주님
뒷간을 마주한 채로 소파에서 느긋하다
조심스런 지신밟기, 성주풀이 축원하고
씽크대 조왕님께 수도곡지 용왕님께
냉장고 장독굿 후에 통장通帳 펼쳐 고방굿이다
안주인 인심 보니 올해 축원 영검일세
이 집의 내무대신 돈 바리로 호강하소
넉넉한 음복주飮福酒 돌려 걸립패도 흥이 난다
성주님도 조왕님도 시절 따라 사시는지
빼곡한 공장 사이 쏜살같은 찻길 닮아
공자工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앞강물도 바쁘다
삶
-낙동강․409
시간은 아날로그
강물도 아날로그
시간 속 물길 따라
인연으로 엮인 삶은
점점이 매듭지어진
디지털digital 금목걸이
비무장지대․1
-낙동강․438
무장지대 벗어나니 비무장非武裝이 더 무섭다
마른 강에 빠져죽은 물귀신이 노려보나?
통일로統一路 골 깊은 등짝
식은땀이 흐른다
비무장지대․2
-낙동강․439
파도가 일지 않는 푸른 강 하나 있다
강폭 4킬로미터
길이 155마일
총구도 총검도 없는 세계 유일 지상낙원
꽃피는 지뢰밭의 팽팽한 적요寂寥 속에
숨죽인 바람, 바람
나무들 부동자세
강물도 파랗게 질려 화석化石이 된 평화의 땅
명태를 다듬으며
-낙동강․412
골첩첩 겨울 산촌에 명태가 올라왔다
동해 북단 어촌에서 지인知人이 보낸 택배
꽁꽁 언 동태상자가 마음만큼 따습다
입김 서린 온기溫氣 덜어 삼이웃네 다 녹인 후
냇가에 퍼질러 앉아 배를 쫙 갈라보니
청홍색靑紅色 바닷물빛이 한데 얼려 들앉았네
한겨울 어로한계선漁撈限界線 서슬 퍼런 난바다에
난류 한류 맞부딪쳐 파고波高 높은 명태 어장
낙동강 두만강 물은 어떻게들 섞였을까
꼬챙이로 배를 꿰어 햇볕에 내다 널어
코다리로 말려보고 북어로도 걸어두고
몇 마린 토막을 내어 동태탕을 끓이자
곧추선 남북 물길 맵고 짠 입맛 맞춰
파란 고추 칼칼칼 썰고 빨간 고추 총총총 다져
큰 솥에 물 그득 붓고 시원하게 무도 넣자
이글이글 장작불에 와글바글 국 끓으면
산천초목 모셔놓고 짐승들도 죄다 불러
숟가락 맞부딪히는 저녁 한 끼 먹어보자
구조조정
-낙동강․429
평일 낚시꾼은 체면을 미끼로 쓴다
어정쩡한 나이들이 줄을 친 샛강변에
빽빽한 소나무들도 할 일 없어 그늘[陰]이다
내일은 무슨 핑계로 또 여기 출근할까
찌를 노려보며 마른 빵을 씹을 즈음
회사는 늘 그랬듯이 저들끼리 구르겠지
문득 가지 하나
툭, 하고 떨어진다
고개 들어보니 흔들리는 소나무
가슴엔 마른 가지를 한 아름이나 품고 있다
제 살을 도려내는 나무의 구조조정!
말라죽은 가지 사이 아련한 하늘빛이
강물에 파랗게 내려 한 굽이로 흐른다
퓨전fusion 탐조探鳥
-낙동강․435
철새들 머문다는 을숙도乙宿島를 출발하여
물길 거슬러 올라 주남지에 접어들면
오리는 못에서 넘쳐 길목에도 진을 쳤다
풀덤불 막사에서 눈요기로 위장하곤
불판에 둘러앉아 생오리를 구울 즈음
바람은 방향을 잃고 빙판 위를 뒹굴고…
강둑에 서서 보니
-낙동강․405
물줄기 흐르는 것이 절로는 아니더라
굽이진 굴곡 따라 물머리가 이끌더라
인생도 인연길 밟아 내가 끌고 가더라
취흥醉興
-낙동강․414
술을 마셔야만 취하는 건 아니다
저녁놀 곱게 번진 들녘에 섰노라면
한 생애 제멋에 겨워 붉게 취한 강을 본다
어리연 노란 꽃잎
논병아리 까만 발톱
가슴으로 기른 것들 재롱 삼아 띄워놓고
갈대숲 허리를 안고 바람 불러 춤도 추고
강둑 넘어 전해오는 세상사 숱한 사연
이웃들 아픔에도, 화면畵面 속 슬픔에도
콧잔등 찡해지는 맘
촉촉 젖는 눈망울
함께 흐르는 굽이 어딘들 강 아니랴
따뜻한 눈길 주며 출렁이는 물길 보면
술잔을 주고받아야 취하는 건 아니다
포도를 먹으며
-낙동강․413
강둑을 스쳐가는 추억의 물방울들
한 알 한 알 건져 올려
톡, 하고 터뜨리면
물무늬 엷게 번지는
새콤달콤
자줏빛 향
촛불 강
-낙동강․354
강의 뼈다귀가
들판을 가로누웠다
누가 흐르는 강을 뼈대로 만드는가
영상零上의 기후에도 빙판氷板으로 견고한
목뼈 굳은 자의 하얀 어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1급수 송사리들이 모였다
두 손 모아 송이송이 피우는 꽃
칠흑을 밀어 올리는 채송화 꽃무더기
꽃길은 용암이 되어
얼음강을 덮는다
봄, 꽃사태沙汰
-낙동강․419
저런!
저 산골짝!
산사태 났나보다!
간밤 그 봄비에 황톳물 넘쳐나네
활짝 핀 철쭉꽃들이 다 휩쓸려 가나보다
초요기
-낙동강․440
섬
가덕도가
깃발로 일어선다
댓잎 조각으로 난바다를 떠돌던
임진년 푸른 물길들 모두 모여든다
오늘, 2012년 10월 4일
제1회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 대제!
갯바위를 치며 향으로 피어올라
천성진성 허물어진 옛 돌담을 휘어 감는
백의白衣의 연기들
무너져 내리는 조선에도 새벽을 여는 닭은 있어
내일이면 청천하늘에 해가 뜨리라
함성으로 진군하던
1592년 10월 5일, 부산대첩
역사의 물길 살아 바람은 다시 일어
연대봉 봉수대에 펄럭이는
장군의 깃발 보면
가덕도는 이제 섬이 아니다
가덕은
충무공이 흔드는
대한민국의 초요기招搖旗다
하구에서
-낙동강․427
을숙도에 오시거든 강물일랑 잊으세요
궂은 일 슬픈 일
지난날은 모두 잊고
수평선 아득한 저쪽 먼 바다만 보세요
강은 둑으로 막아 제 물길로 흐르면서
이골 저골 겪은 일들
줄줄이 끌고 오지만
바다는 둑을 허물고 서로 엉겨 있잖아요
말[言]
-낙동강․431
가벼운 낙엽이라고
강물에 던졌더니
그것이
때로는
돌팔매가 되었던가
강바닥
깊이 갈앉은
검은 나뭇잎 한 장
시인들의 묘비
-낙동강․392
삐이삐- 배뱃종뱃종!
멧새들 다 모였네
복사꽃 흩날리는 금잔디 시인 마을
주인의 시정詩情을 담은 묘비들이 다채롭다
아직도 빨래라며 두 팔 벌린 묘비하며
이끼 핀 화강석에 이름 석 자 꼿꼿한 이
영롱한 이슬방울이 알알 맺힌 묘비도 있다*
청동판靑銅版 묘비 곁에 목비木碑 몇 삭아가고
대리석 시비詩碑들을 칭칭 두른 무덤 저편
이름도 부질없는 듯 알무덤이 동그랗다
삶이 시가 못 돼 거꾸로 선 묘비가 있고
고꾸라진 고주망태 청석靑石 너머 오석烏石 하나
감투가 너무 무거웠나, 목이 뎅강 잘렸네
개울은 옥을 갈아 서정抒情 낭랑朗朗 구르는데
오리목 속잎 피는 자줏빛 바위 사이
청노루 한 마리 앉아 두루마리를 뽑고 있다
물길은 예나 제나 시편詩篇들로 반짝이고
마을을 휘돌아 감돌아 세상 속을 스미는 강
유유한 물굽잇길에 꽃잎 동동 띄웠다
*작고한 시인들(1연:박두진, 김소월/2연:김관식, 조지훈, 김영랑/3,4연: 생략/5연:이병기, 박목월 등)의 이미지를 원용함
잠버릇
-낙동강․385
깊은 골 무덤들은 잠버릇도 갖가지다
생전의 일상들을 떨칠 수 없었는지
잠자는 모습을 보면 지난 일을 알 것 같다
소나무 빼곡한 아랜 벌목꾼이 자나 보다
스멀대는 뿌리들의 간지럼을 참으면서
이담에 쓸 나무들을 제 품에 잔뜩 안았다
찌그러진 봉분 받쳐 주정꾼도 한잠이다
오일장 다녀오다 소주 몇 잔 걸친 날은
알뜰히 다 작살내어 성한 세간 남았을까
서러운 이국異國 생활 원폭 피해 가족도 있다
버섯구름 뒤집어 쓴 아픔을 견디다 못해
제 누운 가장자리를 몸부림치며 깎았구나
낙동강 뱃사공도 여기 잠시 누웠나 보다
무덤째 끌고 달려 도랑 패인 흔적 보면
소나기 쏟아지던 날 냇물 되어 갔을 게다
흐르는 물길 따라 어기여차, 노 저으며
깊은 골 잠든 이의 잊혀진 옛 소식을
푸른 강 두루마리에 올올 적어 펼칠 게다
길
-낙동강․436
마주친 바람살에
물결
어지러운 날
강가에 나와 앉아
길을
묻노라니
장강長江은
하늘을 담아
물길로만 굽이지네
물방울 인생
-낙동강․441
똑, 똑, 똑
떨어진 후에
사노라면
독獨
독獨
독獨
강처럼 흐르기
-낙동강․432
강물에 화가 나면 돌 하나만 던지자
풍덩!
물방울 튀고
번져나는 엷은 파문
복수도 아름답게 하면 꽃이 피고 미소가 된다
죽기 연습
-낙동강․386
산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아늑하다
이미, 잎들 다 져 나무도 편안해졌고
하늘은 파란 수의壽衣에 구름 몇 점 띄웠다
동그란 무덤 사이 팔을 베고 누워보니
수직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빛의 화살
따뜻한 낙엽을 모아 봉긋하게 덮어준다
스르르 감긴 눈에 내 물줄기 일렁인다
한 생애 쉼없이 흘러 이랑이랑 굽이진 강
저만치 홀로서기 한 샛강물도 보인다
살다가 죽는 일은 옷 한 벌 갈아입기
수의보다 더 가벼운 햇볕 아래 물[水]이려니
이대로 그냥 잠들면 참말로 포근하겠다
겨울강
-낙동강․357
흐르는 빙하氷河를 보니
겨울강도 강이겠구나
천길 두터운 벽, 빙하도 흐른다는데
까짓 낙동강의 얄팍한 얼음쯤이야
수수만년 빙하로 덮인 뉴질랜드 마운트쿡
그 얼음덩이 시시로 흘러내려
청옥빛 선녀의 깔개를 데카포호수에 펼치고는
날개 접고 눈 감아도 마냥 행복한 새
키위Kiwi 같은 순둥이들을 어우러지게 하였다
천길 두터운 벽, 빙하도 흐른다는데
까짓 낙동강의 얄팍한 얼음쯤이야
강시僵屍 같은 율법律法 지하에서 껑충 되살아
손가락 끝에 입력된 표적들 쫓겨나고 잡혀가고 불타죽는
얼음 산성山城의 코리아 소식은
다시 한겨울
천길 두터운 벽, 빙하도 흐른다는데
까짓 낙동강의 얄팍한 얼음쯤이야
물 얼어 얼음 되고 얼음 녹아 물이려니
낙동강 일천삼백리가
겨울인들 강 아니랴
복수
-낙동강․433
아무리 화가 나도 침은 뱉지 말자
강물도 흐르고
나도 흐를지니
둥둥 든 허연 피멍만 내 혀끝에 맴돌 뿐…
뱃놀이
-낙동강․430
컴퓨터 화면 위에 바다가 펼쳤구나
마우스mouse 밀고 당겨
어기여차! 배 띄워라
난바다 물너울 저쪽 계절풍이 새로 인다
물마루에 두둥실 뜬 아이콘icon에 창槍을 꽂아
클릭click, 클릭으로 겹겹의 문을 열면
광속光速의 모래시계는 순간이동 쌍돛이다
검푸른 시간 너머 스쳐가는 숱한 별들
몇 억 광년光年 먼 강둑에 닻을 내려 눈길 주면
링크link된 항성恒星, 행성行星이 손짓하며 반기는 곳
커서cursor로 노를 저어 은하수를 찾아드니
이웃 성단星團 혹성惑星에서 방금 보낸 메일mail 한 통
‘이 순간 그대 눈빛이 이 우주宇宙의 새 별일세.’
뒷모습 만들기
-낙동강․434
떠나는 뒷모습은 붉게 젖어야 한다
넉넉한 강폭에 실려 바다에 잠겨들어
눈시울 촉촉 적시는 황혼으로 가야 한다
강의 꿈
-낙동강․355
먼 길 흐르면서
강은 꿈을 꾼다
바다는 강의 꿈이 아니다
굽어 천리, 휘어 만리
손발 부르트도록 낮밤 걷고 달려
마지막 닿는 곳이 바다라 할지라도
강의 꿈은 바다가 아니다
바다는 강의 깻묵일 뿐이다
첩첩산골 바위틈의 깨알 같은 물방울들
손에 손 잡고 휘돌아 감돌면서
이 땅 어느 곳인들 꿈 아니랴
어화둥둥 내 사랑아
제 몸 터뜨려 짜낸 땀방울로 피운
아름다운 열매들이 강의 꿈이다
칠백 리
강마을 생명이
낙동강의 꿈이다
가을 구포둑
-낙동강․451
구미, 남지, 원동 지나 구포쯤 다다르면
코끝에 스며드는 짭짤한 갯내음에
강물도 주춤거리며 뒤꿈치를 밟는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눈빛이 깊어진 강
멀찍한 강둑만큼 넓어진 가슴 폭에
물결은 노을을 실어 낙엽으로 일렁이고
강둑을 스쳐가는 경부선 고속열차
소린 듯 바람인 듯 등짝을 떠미는데
물길은 쉬다 가자고 을숙도를 안고 돈다
하구河口에 노을 들면
-낙동강․406
샘물도
시궁창 물도
황혼으로 빚은 일색一色
가슴 속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있으랴
-낙동강․442
강도 가슴 깊이 흙탕물을 품고 산다
첩첩계곡 낭떠러지
내리막길 돌부리에
상처 난 붉은 물길을 다독이며 흘러간다
윤슬로 반짝이며 유유히 굽이져도
밑바닥에 가라앉아
흉터가 된 흙찌꺼기
행여나 뒤집힐까 보아 안 그런 척 품고 간다
발비*
-낙동강․445
시간의 물방울들
타닥타닥 떨어져
꽃으로 피어나는
하얀 앞마당에
또 하나 물줄기 되어
흘러가는 시간들
어느 억겁 세월
흘러간 훗날이면
나는 또 오늘 이 시각
이 하얀 앞마당에
한 떨기 꽃으로 피는
물방울로 떨어질까
*발비 : 발[簾]을 드리우듯 한 굵은 빗줄기, 주로 소나기 초입에 쏟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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