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良洞)은 그 자체가 마을이란 뜻이 들어있음에도 통상 '마을'자가 뒤에 붙어 '양동마을'이라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 마을은 15~16세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양반 마을로, 150여호의 크고 작은 고가들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경주에서 7번 국도로 북진하면 형상강을 건너면서 28번 국도를 만난다. 그곳에서 영천 방면으로 조금 가면 곧 〈양동민속마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산기슭을 따라 난 좁은 길로 접어드니, 곧 월성초등학교가 왼쪽으로 보인다.
북서쪽으로는 해발 163m의 설창산(雪蒼山) 동남쪽으로는 해발 108m의 성주봉 에 접한다.
예전에는 형산강(兄山江)과 안락천의 수량이 많고, 수심이 깊어서 포항쪽의 고깃배가 늘 왕래하였기 때문에 해산물이 풍부하게 공급되었다고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소작인들이 안강들에 별도로 형성된 소작인 마을인 '들마을'에 살면서 경작하였으나, 1991년 그래디스 태풍때 침수되어 주민들은 인근마을로 이주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마을의 주산(主山)인 설창산의 문장봉(文章峰)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물자형(勿字形)의 산곡(山谷)으로 내곡(內谷), 물봉곡(勿峰谷), 거림(居林), 하촌(下 村)의 4골짜기 사이로 마을이 구성되어 골짜기와 능선에 500여년의 전통의 향 기를 품은 150여호의 가옥과 초가집들이 펼쳐져 있는 큰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여강이씨(驪江李氏)와 월성 손씨(月城孫氏)가 문호를 이루며 유가의 법도와 선비기풍으로 500년을 지내오면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보기드 문 반촌(班村)으로 전통문화와 한국적 정취가 가장 완벽하게 살아있는 곳으로국보 제283호 '통감속편'을 비롯, 마을 전체가 주요 민속자료 제189호로서
민속체험 관람객들로 연중 북적인다.
이 마을은 손소(孫昭)·손중돈(孫仲暾)·이언적(李彦迪)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고장으로 유명하며, 보물이 3점, 중요민속자료 12점, 지방유형문화재 3점 등 문화재가 지정된 유서깊은 마을이다.
서백당(孫東萬氏 家屋)
월성손씨 종택이며"손동만 가"로 알려진 집이며 서백당은 그중 사랑채의 당호이다. 서백당은 ‘勿’자 형국의 양동마을에서 가장 뒤쪽, 그러니까 가장 배후에 있다. 이 동네에서 풍수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해당한다.
서백당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청룡과 백호가 여러겹 감싸고 있는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뒤에서 내려 오는 맥 역시 세겹의 맥이 파도치듯 힘있게 밀려 온다.
흔히 ‘서백당’이라 불리는 경주 손씨 대종택은 20대, 550년의 역사를 지녔다. ‘서백(書百)’은 ‘참을 인(忍)자를 100번 쓴다’는 의미인데, 10만명에 달하는 손씨 집안 대종택을 지키는 종손이라면 그만큼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가옥은 월성손씨 종택으로 양민공(襄敏公)손소(孫昭1433ㅡ1484)가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敦)과 그의 외손이자 동방오현중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다. 서백당(書百堂) 혹은 송첨(松詹)이라고도 불리운다. "ㅡ"자형의 대문채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는데 대청6칸, 안방3칸, 부억2칸이다. 아래채의 중심칸이 안대문이고 그 왼쪽은 2칸 마루 고방이며, 오른쪽은 큰사랑방과 사랑대청이다.
높은 돌기단 위에 있는 사랑 대청는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린 누마루이다. 사랑 대청 옆 정원쪽으로 짤막한 상징적 담장이 있으며 ,정원 위쪽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 초기 양반집의 일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가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큰 가옥이며 사랑 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골 중앙에 자리잡은 중요 민속자료 제23호인 서백당은 양민공 손소(襄敏 公 孫昭)공이 1454년경에 건축한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종가(宗家)집이다. 서백 당 또는 송첨(松詹)이라 부르며, 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忍) 자(字)를 백번쓴 다는 뜻' 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이다.
손소공이 집터를 고를 때 풍수가 '勿'字形을 이룬 문장봉의 혈맥이 뭉쳐있 다면서 위대한 인물이 3명 태어나리라 예언했다 하는데 청백리 우재 손중돈선생과 그의 생질이 되는 회재 이언적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한분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다하니 기대해 보자.
마당에는 수령 5백년이 넘은 향나무가 기품있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