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한맥문학> 10월호에 실었습니다*
임플란트 유감
심양섭
오른쪽 윗어금니 하나가 통증이 심해 뽑아내고 임플란트(implant) 시술을 받았다. 1년간의 미국연수 일정을 고려하여 일찌감치 시술에 착수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출발하기 한 달 전쯤에 시술을 끝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임플란트 치아는 시술 후에도 상당기간 정기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한 달밖에 여유가 없어 조금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임플란트 치아 좌우에 끼기 쉬운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치실질을 하는데 그만 금으로 된 인공치아가 빠져버렸다. 치과에 가서 인공치아를 다시 끼운 다음에는, 인공치아가 빠질세라 치실질을 조심스럽게 했는데도 이번에는 인공치아가 빠지지 않는 대신 덜거덕거렸다. 치과에 갔더니 임플란트 치아로 이를 갈아보라고 한 후 고정시켜 주었다.
하지만 고정상태가 얼마나 갈지에 대해서는 그 치과의 접수담당 간호사조차 확신이 없었다. 그 시점에 나는 아내,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일주일도 안 돼 인공치아가 또다시 덜거덕거렸다. 치과진료보험(dental care insurance)을 따로 들지 않은 상태에서 치과에 가기가 겁났다. 한국의 그 치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덜거덕거리는 임플란트 치아를 그냥 두면 안 되니까 바로 치과에 가라고 했다. 잘못하면 인공치아를 지탱하는 임플란트 기둥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젠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즉시 치과에 가야 했다. 그러나 미국 치과에 가도 덜거덕거리는 현상을 바로잡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국의 그 치과의사를 철석같이 믿었다가 배신(?)당하지 않았던가. 임플란트 시술과정에서 신경을 건드린다든지 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 치과의사를 신뢰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왔을 뿐 아니라, 나의 충치를 뽑는 것에서부터 인공치아를 끼울 때까지 그의 시술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임플란트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그 의사를 자랑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구나.”
미국에서 와서도 인공치아가 덜거덕거렸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하늘 아래 완전한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 게 잘못이었다. ‘보이는 것’(what is seen)은 ‘보이지 않는 것’(what is unseen)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가 잊고 살았구나.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국치과의사도 믿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는 한인치과의 문을 두드렸다. 임플란트 시술을 하지 않는 치과에서 엉뚱한 검사로 돈과 시간을 낭비한 연후에야, 임플란트 시술 전문치과를 제대로 소개받아 찾아갔다. 40세 전후의 젊은 의사였는데 한국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역시 임플란트 치아로 이를 한 번 갈아보라고 하더니 바로잡아주고는, 한 가지 원인 — 이를 갈 때 한쪽으로 밀리는 현상 — 을 찾아냈는데 그것을 고쳤으니 이제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신반의하면서 몇 달을 지났는데 괜찮았다. 한국의 치과에 치료비도 청구해서 받았다. 그 후 다시 넉 달이 지났는데 이상이 없다. 임플란트 치아로 너무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을 씹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임플란트 치아라는 것이 단순히 그쪽으로 많이 씹는다거나 칫솔질을 심하게 한다고 해서 덜거덕거리지는 않는다. 임플란트 시술은 역사가 오래이며,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고가인 것만큼이나 믿을 만하다. 단, 임플란트는 위아래로 씹는 힘은 강하지만 옆에서 오는 압력에는 약하다. 이로 음식을 갈 때 옆으로 밀리는 힘 때문에 인공치아가 헐거워질 수 있다. 내 인공치아가 덜거덕거렸을 때, 한국과 미국 의사가 둘 다 임플란트 치아로 이를 갈아보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임플란트 시술은 꿈의 치료법으로도 불린다. 모양이나 기능은 자연치아와 같으면서도 충치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반영구적이며, 자기 치아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는 치과의사까지 있다. 그러나 맹신은 금물이다. 임플란트 치아는 옆에서 오는 힘에 약하므로, 주먹으로 그곳을 한 대 맞거나 잘못 넘어지면 빠질 수 있다. 자칫 치석이 생겨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만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중국혁명가 마오쩌둥(毛澤東)은 평생 이를 닦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치아관리에는 어지간히 뒤떨어진 사람이었다. 문제의 어금니가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한 수 년 전에야 나는 치아관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두메산골에서 양치질을 못하고 살면서도, 사탕이나 과자를 먹지 않아서인지 내 이는 튼튼했고, 나는 마흔이 넘어서까지 사랑니를 뺄 때 외에는 치과에 가 본 적이 없다. 치아관리라는 것을 몰랐다. 칫솔질도 제멋대로였다. 치아 하나가 탈이 나고서야 비로소 1년에 두 번씩 스케일링(scaling)도 하고 치실질도 하고 치간치솔도 사용하고, 양치질도 하루에 세 번씩 제대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샤워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이를 닦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임플란트 치아 하나가 나의 치아관리 습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잘못을 깨닫는 것은 어리석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 이는 문제없다는 과신(過信)과 오신(誤信)으로 인해 이를 함부로 사용했다. 그러면서 치령(齒齡)에 맞는 관리는 해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임플란트 치아와 더불어 살아간다. 요즘 내가 이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뒤늦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늦은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 뒤늦게라도 고치는 게 안 고치는 것보다 낫다.
내 치아관리의 가장 큰 숙제는 치석이다. 잠시만 방심하면 어느 순간에 치석은 끼고 두터워진다. 마치 알게 모르게 짓는 죄(罪)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쌓이는 것과 같다. 치아교정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던 시대와 환경 탓에, 들쭉날쭉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나의 치아에 치석이 끼는 속도는 무섭다. 그나마 팔년 전에 담배를 끊고 그 때부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것이 치아건강에는 천만다행이다.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이 나는데 사람의 몸인들 다를 바 있으랴. 서른 개에 가까운 치아 가운데 사십 년을 넘게 쓰고도 하나밖에 탈나지 않았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치아의 중요성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 어금니 역시 아직도 고장이 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문제의 어금니는 젊은 혈기에 병뚜껑을 이빨로 따던 바로 그 이빨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아들이 들을까 두려울 만큼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잘못의 대가는 반드시 치른다는 명제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한 때의 만용(蠻勇)과 남용(濫用)이 드리운 결과를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