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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습작소설)
제목 : 백년보다 길었던 시간들
안 준 호
나는 한마디로 뭔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비감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가만이 눈을 눈을 감았다.
기획실장이 그날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냐고 나에게 넌지시 물었을때만 하더라도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실장이 몹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작 이젠 방관만 할 수만은 없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저께 나에게 물었던 '안형우씨, 뭔가 이번호에 독자들의 시각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고 물었을때만 하여도 나는 반신반의 하였다.
잡지 편집일이라는게 늘상 그래왔듯이 편집회의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고 필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해서 받고 원고를 마감하고 그리고 책이 나오면 서점에 깔리고 그 사이 자투리 시간은 조금 여유가 생겨 읽고 싶었던 책도 좀 읽고 주말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실장은 가뜩이나 월간잡지의 구독이 현저이 줄어 앞으로 이대로 가다가는 존립마쳐 위태롭다고 강경하게 아침 기획회의 때마다 말을 하여 우리 직원인 나를 포함하여 신출나기 들은 바짝 긴장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기획실장이 넌지시 나에게 전번에 타진을 하며 그것을 암시를 주었을때 마냥 거절만 할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차차 돌아서고 있었다고나 할까.
일주일 전 이었다.
잡지 편집회의가 끝나고 실내는 무겁게 정적이 가라 앉아 있었다. 여느때 같았으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김대리가 농담이라도 한마디 하여 사무실 분위기라도 한바탕 뒤집어 놓을 만도 한데 그렇지 못했다.
초상집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서로 말을 하는것조차 극히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외근으로 다 나가버리고 넓은 공간의 사무실은 공교롭게도 나와 김실장 둘 뿐이었다.
5명의 직원은 바깥에 취재를 가거나 아니면 인터뷰를 가거나 혹은 사진을 찍기 위해 출타중이었다.
인쇄문제로 나간 직원도 있었지만 뭔가 안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고 이러다가 스트레스로 혈압이 오를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들었다.
일이라는것도 어느정도 보편적인 기준 안에서 굴러갈때 상하관계가 원만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유연해 진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교정지를 들고 그놈의 오자와 탈자를 잡느라 눈을 부릅떠고 있었다. 오자와 탈자는 교정지에서 틀림없이 잡았다고 판단하여 안심하고 있으면 책이 나온뒤면 어김없이 발견되곤하여 나는 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도데체가 알 수 없는 게 이 편집 일이었다.
이제 겨우 수습 딱지를 때고 3년차 접어들고 있지만 뭐도, 3개월이면 풍월을 읇는다는 데 나는 솔직이 3년이 지났어도 여전이 실전에 대한 감각을 못찾고 허둥대고 때론 뭐가뭔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했으면 여일하게 한가지로 죽이되던 밥이 되던 밀고 나가야 그것이 많은 시간이 흘렀을때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매래 안정도 담보 할 수 있고 그것이 결과론적으로 금전적으로 보상이라는 현실이 자연 비례하여 따라오게 마련인데 어찌된 심판인지 나는 자꾸 첫단추를 바꿔 끼워대고 있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데 일이란게 내가 의도 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면 나란 인간은 어떻게 보면 운이 없다고 해야 할지 복이 없다고 해야 할지 아둔하였다. 지지리 박복이었다.
내가 오탈자를 잡기 위해 머리를 쳐박고 있을때 였다.
아침 회의 부터 부터 실장은 표정이 무거워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상하게 계속 등을 돌리고 창밖만 응시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갸냘픈 등이 오늘따라 더 나약하고 애처럽게 보였다. 그것도 시집을 못가고 오로지 잡지와 결혼 했노라고 큰소리치던 것이 문득 생각 나서 그런가.
유달리 그녀의 어깨가 나약하고 왜소 해 보였다. 좀더 극단적으로 표현 하면 금세 허물어 내릴듯 위태위태 하였다.
근무를 하면서도 그렇게 느껴진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획실장이 나를 가만이 불렀다. 여전이 머리를 창밖을 향한체.
"안형우씨 ?"
나는 노처녀의 히스테리가 또 시작 되는구나 하고 속으로 볼멘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어째 둘이 있어 불안 하던차 였는데 나는 아연 긴장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실장님."
나는 실장님을 쳐다 보았다.
"고향이 어디라고 그랬지 .강원도라고 그러지 않았나?"
"삼척입니다."
"아, 맞아 안형우씨가 그랬지. 신상카드에 얼핏 본 기억이 나서 말이야."
여전이 나는 무슨 의도로 물어 보는걸까 핵심을 파악 하지못해 안절부절이었다. 그래 고향이 어쨋다는거냐, 하고 나는 속으로 실장을 비아냥 거렸다.
나는 정말이지 그놈의 고향을 잊고 산지 벌써 10년이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말이야. 그쪽이 동해안이 절경이니까. 여행기랄까 그런것 이번호에 특집으로 한 번 생각 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안형우씨 생각은 어때? 한번 검토 해 보라구. 내가 특별이 충분한 경비는 지원 할테니까 말야."
"알겠습니다. 한 번 검토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미적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고향 자체를 경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란 인간은 탸향을 살면서도 고향을 잊으려고 그렇게 모질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승옥의 소설을 보면 에잇, 지긋지긋한 서울, 고향에나 가버리자 하는 데목이 나오는 데 나는 어째서 정반대 였다.
서울이 나의 안식처 였고 내 영혼의 자궁이었다.
나는 고향 대한 기억을 씻고 싶어 하였고 고향과 관련된 하다못해 케이비에스에서 방송하는 전원프로인 6시 내고향이란 프로그램도 어쩌다 채널이 돌아가면 잽싸게 돌려 버리곤 하였다.
고향과 관련된 향우회도 나는 일절 나서지 않았고 관련 특산물에도 나는 등을 돌리고 나몰라라 하는 방관적 태도를 오래전부터 고수 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기획실장이 두 번째 채근을 하였을때 이미 결심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이번 일은 고향에 둘러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일 수 있고 그토록 과거와 화해 하지 못하고 있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기회 일수도 있다는 낙관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그래서 였다.
그래서 나는 이미 준비를 해 놓은 상태 였다.
예상 했던 대로 기획실장이 나에게 다시 물었다.
"안형우씨, 내가 일전에 회의에서 했던 애기 한 번 생각 해 봤어?"
"네. "
"그쪽은 풍광이 좋고 수려하고 빼어난 곳이 많으니까 여행기같은 것이 딱 맞을것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 듭니다. "
"그쪽에서 죽 성장을 했다니가 지형에 대해 잘 알테고 그렇다면 2박 3일 일정으로 한 번 다녀오는게 좋을 것 같군."
"혼자 입니까 아니면 사진기자도 동행입니까?"
"그건 안형우씨가 선택해. 여행기라는 것이 부담없이 혼자 일때 더 자연스럽고 좋은 글이 나오는다는군 그건 이 바닥에 불문율이라구. 자칫 동행 하면 그게 흠이 될 수 있거든. 한때 안형우씨도 사진동우회도 활동 했다니까 단독으로 가는 게 좋을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그럼 단독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잘라 말하였다.
"그래 그럼 당장 결재를 올려. 아마 내일이나 모래쯤 출발하는것으로 준비 하라구 ."
나는 그제서야 뭔가 후련하였다.
어쨋든 나는 10년 만의 귀향인 셈이었다.
단절된 그 기간이 너무 혹독하리 만큼 길었다.
그래서 소풍전날의 생도처럼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사실 고향의 발길을 끊은지 오래되고 보니 나의 뇌리에 남아 있던 고향에 대한 단층들이 나날이 파편화 되고 퇴색 되어 내가 정말 고향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을 제기 할 정도 였다.
다음 다음날 기획실장이 말한데로 나는 아침 고향으로 드디어 떠나기로 하였다.
정말 가슴이 고동쳤다. 그것은 전에 오랜동안 느낌과는 전혀 상반된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어느새 세월의 퇴적속에 마멸되고 깎이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란 말인가. 그건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개인 차량을 이용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 철저하게 이번엔 오리지날로 발품을 팔기로 하였다. 편리한 차량은 무조건 사양 하기로 하였다.
구석구석 누벼 볼 생각을 각오한지라 가급적이면 짐을 내려두고 간단한 색을 메고 있었다.
나의 집에서 나와 이른 아침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나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내렸다. 이른 아침 나와는 달리 출퇴근을 하는 셀러리맨들의 이리뛰고 저리뛰는 심리적인 압박감과 달리 나는 그들에 비해 한결 유연하고 여유가 있어 마치 한가한 산책객 같았다.
한때는 명절때마다 나는 시골에 갈때 으례 이곳 터미널을 이용한 단골 손님이었는데 어느 순간 술꾼이 전날 마신 술이 필름이 끊기듯 행로가 단절 되었다. 물론 외적인 이유때문이긴 하지만 .
여전이 고속버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붐비고 있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대해로 떠나 바다위에서 생활하다가 항구로 접안하는 어선들처럼 차량들은 종착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마침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 였기에 나는 대합실 구내매점에서 간단하게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아슬아슬한 초미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내 옆을 스치고 있어 나는 힐끗 거렸다. 그녀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내가 신문을 집어들고 읽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식성이 혼자 살다보니 그렇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어서 특별이 가리는 것은 없었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개고기도 나는 마다하지 않고 먹어치우는 식성을 과시 하여 직원들을 놀래킨적도 있다.
매점에서 햄버거로 요기를 간단이 하고 나서 주변을 기웃 거렸다. 그래도 명색이 여행이고 보니 챙길 것은 왜 이렇게 잡다하게 많은가.
차내에서 읽을수 있는 갓 잉크 냄새 나는 조간신문과 스포츠 신문을 구입하였다. 바삭바삭한 웨하스와 그물망에 든 귤도 샀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예매한 차가 출발하기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때론 고통을 수반하지만 나의 오늘의 시간, 아니 지금의 순간은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의미심장함으로 다가왔다.
평일이라지만 대합실은 여전이 붐비고 있었다. 나처럼 배낭을 매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도 있고 출장을 떠나는듯한 샐러리맨의 모습도 있었고 고향에 가는 촌로의 모습도 보였다. 그와 걸맞지 않게 술에 쩔어 비틀거리는 행색의 노숙자도 있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간은 금새 지나 출발 시간이 임박 해 있었고 급기야 삼척으로 나를 싣고 갈 옆구리에 사자모양의 역동적이고 사나운 문양이 그려진 고속버스가 마악 도착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매표원이 개찰을 시작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버스에 올랐다.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윗옷을 벗어 트렁크에 접어 올려놓고 느긋하게 자리에 기대 앉았다. 버스는 일반버스가 아니고 우등이어서 칸이 넓고 여유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 그렸다.
그래 정말 고향에 가긴 가는 걸까? 그런데 실감이 나지 않고 있었다. 실향민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오매불망 그리워하다가 남북의 문제가 화해 무드로 금강산 면회소의 꿈같은 상봉은 아닐지라도 나에겐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십년이란 세월은 흔히 강산이 변한다는 통속적인 표현이 있지만 나의 가슴은 그러나 고향을 증오하고 질시하며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종당에는 알게 모르게 나는 눈을 감으면 고향의 산천이 가슴에 애잔하게 스며들었고 그리하여 끝내 눈시울을 적시게 마련이었다.
이제 그 고향에 내가 다시 서게 된다고 생각하니 착잡함과 설레임이 교차 하고 있었다.
차창으로 번화한 도심의 거리를 그리고 밀집해 있는 강남의 아파트군을 드러내어 주고 있었다.
도시는 가로수가 일률적으로 서 있었고 한가하게 시민들이 그 거리를 산책 하고 있었고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거리가 잘 구획 되어 어수선함이나 무질서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이곳이야 말로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1번지 강남의 땅이라는 것을 깊이 각인 시키고 있었다.
아파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숲처럼 밀집 해 위용을 과시 하고 있었다. 똑 같은 형태 똑같은 창문 똑같은 색상 똑 같은 구조의 아파트가 줄지어 도열해 있었다.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자 의외로 속도가 붙으며 넓은 고속로로 이내 진입 하였다.
한 일자로 쪽 뻗은 고속도로 양편으로 푸른 녹색의 산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 왔다. 상큼한 청량감마져 느껴졌다.
나는 산소가 풍부할 것 같은 그 녹음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옆구리에 차고 있던 휴대폰의 발신음이 울었다.
나는 갑자기 당혹해 전화를 받았다.
"안형우씨 지금 어디지? 아직 서울? 아니면 외곽 ..."
"중부고속도로에 막 진입 했습니다."
"아직 톨이트를 벗어 나지 못했군. 그렇다면 아직 서울이네."
"그렇습니다 실장님. 곧 통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려했던 대로 날씨도 비온뒤 씻은듯이 개어 다행이야. 이건 하늘이 도운 거야. 그리고 앞으로 우리 잡지사가 어둠의 질곡을 뚫고 양양한 길로 나아갈것이라는 예감이 느껴져 기분이 아주 흡족해."
"저도 그렇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하동문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적절치 않군. 어쨋든 가서 큼직한 대어 한마리 낚아 올 수 있도록 바라마지 않겠어요 . 가서 많이 보고 좋은 취재 여행이 되기를 바랄께요."
"고맙습니다 실장님 .잘 다녀 오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정말 지독 하군. 그리고 철저해, 하고 나는 중얼 그렸다. 문득 프로의 세계는 다그런가 하고 나는 또 웃었다.
사실 나는 편집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아마추어 였다. 다양한 직종을 두루 거쳤지만 편집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힘도 들었지만 갈수록 새록새록 배워가는 재미가 꽤 쏠쏠 하였다.
그런데 이제 적응을 하고 있었고 알게모르게 재미를 붙여 가고 있다.
나는 한 동안 건강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정말이지 고향에 가게 되었는 사실을 깨닫고 부터 나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눈 앞에 고향은 심술사나운 시어머니처럼 돌아 앉아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라이터로 불을 댕겨 훅, 연기를 차창에 뿌렸다. 연기는 천천이 뭉쳤다가 거짓말처럼 슬금슬금 북한 전역에 살포되는 삐라처럼 흩어 지고 있었다.
그속에 흐릿한 기억의 편린이 또아리를 틀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세월의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미이라처럼 영원이 잠자고 있을것만 같은 미주의 얼굴이 퍼뜩 떠오른 것은 그때 였다.
잊고 싶어, 한때 그토록 몸부림 쳤던 여자 문미주. 그 시절 나는 그녀를 짝 사랑 하고 있었더랬다. 질풍노도의 그 시절 나는 한번 불이 붙으면 끝모르고 타오는 사랑의 화신이었다. 나의 내면속의 광기는 폭풍우처럼 거칠고 야만적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그 시절을 온몸으로 좌충우돌하며 견디어 내고 있었다.
그때 지방에서 꽤 이름난 학교 였던 읍내 공업전문학교에 시험을 치렀다가 나는 낙방을 하였다.
마을에서 친구녀석과 둘이 응시 하였으나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었다.
그 해 엎친데 덥친 격으로 나는 폐결핵으로 앓아 누워 장기간 치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읍내 천주교병원에 가서 약을 꼬박꼬박 약을 타 왔고 요양을 겸해 치료를 병행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호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무렵 나는 동네 한 여자 아이를 알게 되었다.
미주 였다. 미주는 나보다 두 살 연상 이었다. 미주는 마을에서도 고개 하나 너머에 있는 남애포구에 살았다. 병풍처럼 깎아지는 벼랑 한가운데 담요자락에 폭 쌓인 아기처럼 옹송 그리고 있는 포구, 남애포는 늘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크게 들뜸없이 그곳에 있었다.
포구 높은 언덕에 일본식 적산가옥이 한 채 있었다. 2층이었는 데 벽에 넝쿨장미가 움썩움썩 전체를 뒤덮어 고풍스러웠다.
그 마당에 구렛나룻의 덥수룩하고 늘 베레모를 쓰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늘 안락의자에 앉아 바다포구만 바라 보았다. 미주의 아버지 였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었는 데 육이오때 어찌어찌 해서 이곳에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그의 아련한 동공속에는 두고온 산하가 늘 그림자처럼 스며 있었다.
미주의 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한 그 시절에 꽤 덕망이 있는 인텔리였고 지역에서 이름이 나 있는 화가였다.
어느날 나는 그녀의 알수없는 그늘진 그 슬픔이 어려 있는 묘한 눈빛에 그만 감전되어 몰래 편지를 보내기 시작 하였다. 그녀가 나의 가슴속으로 굴렁쇠를 굴리고 그대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내 속에 질긴 새싹으로 발아 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썼고 부쳤다.
너를 사랑한다.
이유를 묻지 마라. 사랑에는 이유따위를 논하는 자체가 그건 진부한 이론이고 낡고 캐캐묵은 맑스시즘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게 뭐냐.
나는 지금 비록 보잘것 없고 집안은 가난하지만 너를 행복 하게 할 자신 있다. 두고 봐라.
그건 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문에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 길은 내 길이 아님을 깨닫고 애둘러 다른 길을 선택 하였다.
하지만 나는 원대한 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나는 챔프가 되고 싶다.
가난한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챔프가 되는 길이야. 나는 늘 성공을 그리고 있어. 나는 성공하고 싶다고 늘 자신을 강력하게 최면을 걸고 있지.
그리고 미주는 나의 사랑 나의 분신이 될 것이라고 언제나 확신해. 그럼 이 밤도 안녕!
....오늘도 나는 미주 너의 아롱진 눈빛에 잠을 못 이루고 장문을 편지위를 달리고 있다. 미주 넌 성공이란 뭐라고 생각 하니. 성공은 결코 먼 곳에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 해. 김태식이를 봐라. 그리고 김환진을 봐라. 그들은 챔프로 등극 하고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지 않았나. 나는 챔피언이 되어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금의 환양하고 싶다. 지금은 무슨말이든 하고 싶은 말이 무한 하지만 그때 가면 말을 하기 위해 지금은 가슴속에 가둬놓고 아낄 것이다.
그때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지켜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너무 장광설만 늘어놓았구나 . 지금 저 창 밖엔 무수한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영롱한 밀어를 끊임없이 주고 받고 속삭이고 있다.
저 별들의 밀어를 나는 듣기 위해 오늘밤도 불면속에서 너를 나의 가슴에 가둬 두고 그 비밀의 모르스부호를 염탐하고 있다.
두고 봐라 나는 그렇게 될 끼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읍내 체육관에서 땀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여고를 다니고 있던 무남독녀 미주는 어느 순간 나의 답장을 끊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마을에서 야밤에 고개를 넘어 그녀의 집에 갔다가 서성 그리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그 밤에 고갯길을 다시 넘어 왔었다.
며칠 뒤 다시 넘어 갔을때 나는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목격 하였다.
그녀의 집에 남학생이, 남학생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 캄캄한 절벽이라니. 그래 ,그건 불가항력의 절망의 또다른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미주가 나를 떠나고 있음에 나는 불안하고 절망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날 밤 미주의 집에는 읍내 남자친구가 와 있다는 것을 나는 목격 하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이건 배신이었다. 나는 폭풍우 같은 증오가 나를 휘어 감았다.
나는 그날밤 밤바닷가에 나가 상한짐승처럼 울부짓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른지 바다는 시침을 떼고 입을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납덩이러처럼 함구 하고 있었다.
새벽에 나는 끝내 이성을 잃고 창고로 들어갔고 그 속에서 농약병을 쥐고 입안에 들이부었다. 도저히 실연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죽음만이 나를 고통에서 건져 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것은 읍내 도립병원에서 였다.
나는 응급실에 실려와 있었고 희미하게 어머니가 보여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놈의 자슥 ,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시간적인 감각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한달이 아니, 1년이 아니, 백년이 지나가 있는듯한 세월의 엄청난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보여지는 사물에 희미하게 감응 하면서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비로웠고 눈이 부셨다.
갓태어나는 신생아처럼 .
나는 그새 한 달이란 세월이 지나갔음을 어머니를 통해 알고 있었다.
늦게 어머니에 의해 발견 된 나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의식이 없었다고 하였다.
검사를 한 의사는 내장이 전부 파열되어 형체를 알아 볼 수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열흘쯤 시간이 지났을때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가늘게 산소 흡입기를 떼는 게 좋겠다고 급구 말씀을 하였으나 바락바락 악을 쓰고 우기며 살신성인의 정신의 어머니의 간호 덕택에 나는 끝내 신의 순리를 역행하고 한 달만에 의식이 회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3년뒤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 하며 서울로 떠났었다.
그 상처와 아픔은 주홍글씨 처럼 나의 가슴 한켠에 깊이 새겨져 나는 치유불능의 절망으로 때론 자학으로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떠 돌았고 봥황 하였다.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종착점에 머물러 한 발도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늘 그곳은 제자리 였다.
그리고 출발점 이었다.
나는 이틀동안 동해안 삼척 지역을 구석구석 발로 걸으며 취재를 하였다.
가급적이면 많이 알려져 인터넷이라든가 책에 소개가 된 곳보다 알려지지 않은곳 내가 아니면 전혀 숨겨져 있는 어촌이나 산천을 발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였다. 나는 많은 컷을 사진을 찍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모든 자료는 끝이 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한때 내가 존재 했던 읍내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마치 쌍끌이로 훝듯이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늘 푸른 오십천의 강물, 늘 잿빛 연기를 피워내던 세면트공장, 체육관이었던 자리에 서 있는 식당, 천주교 병원 고지대에서 보면 늘 오십천 철교를 건너 굴속을 지나던 터널, 내가 입원했던 도립병원, 늘 어디론가 떠나고자 해서 서성거렸던 시외버스 터미널, 수산물 시장, 기암괴석으로 여전이 세월의 풍상을 견딘 죽서루, 번개시장, 정라진항, 새로 생긴 새천년 도로 그리고 조각공원, 밤에 달이 무성한 숲위에 걸려 떠 있던 엑스포 광장,여전이 어물전에서 아낙들이 생선의 아가미를 벌려 보이며 신선도를 가늠하는 어판장 여인들은 악다구니들 속에 질퍽대고 있었다.
나는 밤 버스를 타고 다시 면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리 입구에서 내려 휘적휘적 덕산이 아닌 반대쪽으로 걸어 갔다. 주변은 캄캄 하였다. 드문드문 주택이 있고 왼쪽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개천 건너에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흐릿한 실루엣 속에 옛자취를 더듬게 하였다. 졸졸,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10분쯤 걸었을까 .
작은 세맨트 다리를 건너자 곧 마을이 나타났는데 뛰엄뛰엄 불빛이 가물가물 촌락임을 나타 내주고 있었다. 나는 마을 입구 점포에 들어가 담배를 한 갑 사면서 물었다.
여기, 안평수씨댁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상세하게 가르켜 주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안평수댁은 나의 6촌 형이었다. 형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형수님 혼자 살고 있었다.
거대한 고가도로가 마을을 한가운데를 관통 하면서 이주비를 받아 산기슭에 아담한 양옥을 지어 살고 있었다.
집이 현대식 주택이었다. 거실도 훤하였다.
내가 열려진 대문을 그대로 통과 해 마당에 지척지척 들어서자 줄에 묶혀 있던 송아지만
한 크다란 개가 컹컹 짖었다.
마당에는훤히 불을 밝혀 놓고 있었다.
나는 마당 출입문 입구에 섰다.
잠시후에 인기척이 느껴지고 출입문이 열렸다.
형수였다. 머리칼이 듬성듬성 힌 머리칼이 보였다.
"이게 누구요. 아제 아닌가?"
"네. 형수님 안녕하세요. 접니다. 형우 입니다. "
나의 일가친척 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6촌형수 였다. 아이들은 다 결혼 시켜 도회지로 내보내고 텅 빈 집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아이구, 얼른 들어와. 아제, 참말로 오랜만이네. 그래 여긴 어쩐일인고."
"회사 일로 출장 왔습니다. 그래서 궁금해 들렸어요."
"오,그래 잘왔네."
형수님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나는 뭔가 형수님과 술을 한 잔 하고 싶었다. 이내 가게를 가기 위해 나왔다.
그런데 마당을 나서니 캄캄하였다. 숫제 이건 암흑 천지 였다.
뱡향을 가늠 할 수 조차 없었다. 길이 이곳저곳 거미줄처럼 나눠져 있었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렸다.
밭가에 무성이 자라 있는 참깻잎을 한웅쿰 뜯어 길에다가 드문드문 뿌려 놓았다.
마을에는 가게가 없어 어차피 버스 정류소 있는 시내로 나가야 만 하였다.
나는 영흥 슈퍼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카운터에 앉아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머리를 자꾸 가늘게 흔들고 있었다. 아하,속으로 신체가 어딘가 불구 이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 어딘가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문득 생각 나는 기억이 있었다. 틀림없었다.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인가 그랬다.
과제물을 가져 오지 않아 교문밖으로 나와 준비물을 사오곤 하였다.
나는 정문으로 나가면 거리가 멀어 으례 학교 개구멍을 나와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 영흥문구사로 갔다. 시내는 정문밖에 있는 덕흥문구사와 영흥문구사 두 군데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흥문구사는 늘 한복을 곱게 입은 아줌마가 물건을 팔았다.
늘 홧사한 미소를 자애롭게 뛰우고 있었다.
옷차림도 변함이 없었다. 그때 느꼈던 아주머니가 호호 백발의 할머니로 변모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는 불변이라고 가정할 때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주머니가 할머니에서 정신적으로 노망끼가 와서 자꾸 고개를 흔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앞에서 세월의 엄청난 흐름에 경건해 지기 까지 하였다.
내가 막걸리와 안주 등속으로 비닐주머니에 넣어 집에 다시 돌아 왔을때 형수는 반색을 하였다.
"그래도 용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왔네. 늦길레 집을 못찿는가 했네."
"그러잖아도 긴가민가 했습니다. 어둠이 아주 완벽 하더군요. 늘 휘황한 불빛의 도심에 살다가 오니 정신이 멍 해지고 아무 생각이 않나는 것 있죠."
"그런데 아재는 아직 결혼 안했제. 얼른 장가 가야할텐데."
형수는 나를 힐끗 보면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완연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이빨도 드문드문 빠져 있었다.
술을 따라 마셨다.
시골 막걸리는 맛이 그런데로 괜찮았다. 형수가 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독한 소주보다 막걸리가 좋을 것 같아서 사왔다.
나는 형수에게 영흥문구사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았다.
"차포에 영흥슈퍼 할머니 치매 온 것 같애요. 젋은시절 예뻤는데 그리고 학교 다닐적 자주 물건 사러 갔는데 말이우."
"아들이 애를 났는 데 뇌가 문제가 있는 장애아를 낳았지. 며느리가 결국 도망가고 아들이 자살 했지. 그래서 그 할매가 손자손녀를 다 길렀어."
"그렇군요."
"그리고 아제요 , 소문 들었소? 덕산 홍기네 주인 양반이 돌아가셨다는 거이 말이네."
나는 문득 먹먹 해 짐을 느꼈다. 가만 그렇다면 미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가 아닌가.
"어디에 있대요?"
"포항인가 있는데 아마 장례를 치르고 내일 유골상자를 안고 와서 가족들이 이곳에 뿌린다는 소문이 있다우."
"그건 금시 초문인데요."
나는 문득 아득해져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일 잘하면 미주라는 여인을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퍼뜩 생각이 스쳤다.
내일 가려던 일정을 나는 하루 더 연장 하기로 하였다.
사무실에 피치못한 일이 고향에서 생겼다고 전화를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큰댁에서 아침밥을 얻어 먹고 덕산리를 향해 걸었다.
면에서 둑길을 걸어 갔다. 길이 세갈레 있었다. 신도로와 그리고 구도로 그리고 방죽길이 있었다.
내가 방죽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갈때 앞으로 지나치려던 오토바이가 주춤 거리며 급부레이크를 잡으며 멎었다.
그리고 대뜸 나를 향해 말하였다.
"아니, 안형우 아니냐. 야아 이거 정말 오랜만이네. "
녀석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어디 있냐?"
"서울. 서울에 있어"
"그래 너하곤 중학교 한 반이 이었지. 나도 널 보니 금방 앍겠다. 크게 변하지 않았군.
그래 얼굴이 많이 글을려 보이는 걸보니 농사 짓는가 보구나."
"특용작물 하고 이것저젓 논농사 하고 그렇게 있지."
우리는 인사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어느새 마을 동구밖이었고 마을이었다.
마을은 새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팬션과 새 주택이 즐비 하였다. 나는 마을고향 사람들과 잠간 만나 인사도하고 애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주변 바다도 보고 둘러보았다.앞동산과 그리고 교회당은 그데로 표현히 서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 둑길 질펀한 도로에 면 쪽으로 걷고 있을때 였다.
장의 버스가 막 콘크리트 긴 다리를 건너 오더니 멈추었다.
그리고 차에서 상주들이 마악 아래로 내리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상복을 입은 일행들이 대열을 정비해 이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청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영정을 품에 안고 있었고 뒤에 있는 아이가 화장한 유골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뒤에 검은양복을 입은 장정 여럿과 그리고 모시옷의 상복에 머리에 베 쪼가리를 꼽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이 홍기,즉 문홍기 였다. 화가 문홍기. 말하자면 미주 아버지 였다. 미주의 아버지의 유골을 보게 되리라는 건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나는 그자리에 우뚝 멎은체 착잡한 감회에 잠겼다.
나는 반대로 걸어 가고 있었고 그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엇갈리는 순간 이었다. 맨 뒤에 쳐져 손수건으로 조금씩 눈물을 훔치는 건 분명이 미주였다.
문미주. 얼마나 아득한 시간의 회랑속에서 흐느적 거렸던가. 나는 그때 숨이 콱 멋는 것을 체험 하였다. 심장이 터질듯 꽉 가슴을 조였다.
미주가 엇갈려 지나가는가, 싶어 힐끗 뒤 돌아보니 미주 고개를 뒤로 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뭔가 털어버릴듯이 강하게 도리질을 하였다. 그래 이제야 말로 모든것을 내속에 털어버릴때가 왔구나. 그래 부디 잘가렴 .
한 시대가 망각의 강으로 침몰 하고 있었다. 곧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새 술은 새부에 담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반대길로 뚜벅뚜벅 걸어나아기 시작 하였다.
갑자기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가다가 내려 놨을때 처럼 온몸이 날아갈듯 개운하였다. 그러나 절대 뒤는 돌아보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내 걸음을 빨리 하여 뛰듯이 걷기 시작 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