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南民)은 당나라 문관 출신의 신라인이며, 영양(英陽) 남씨(南氏)의 시조이다.
본래는 당나라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사람 김충(金忠)이다. 755년(신라 경덕왕 14)에 당나라 의 안렴사(按廉使)로서 일본에 사신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盈德)의 죽도(竹島) 혹은 축산도(丑山島)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신라 에서 살기를 원하였다. 이에 경덕왕 이 이러한 사실을 당나라 현종(玄宗)에 알리고 허락하였다. 경덕왕 은 그가 여남 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이로써 남씨(南氏)의 시조가 되었다. 남씨라는 성(姓)은 그가 남쪽으로부터 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아들 남익(南翼)은 검교 태자첨사(太子詹事)로 영양군(英陽君)에 봉해졌다. 후세에 안동(安東)으로 옮겨 살면서 대대로 벼슬이 이어지고 배씨(裵氏)와 더불어 가문이 창성하였는데, 남씨는 무반(武班) 관료를 많이 배출하고 배씨는 문(文)으로 이름을 날려 당시에 ‘남무배문(南武裵文)’이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
1689년(숙종 15) 기사년에 세워진 경상도(慶尙道)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