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쿠바, 그 초록빛 바다
<셋째 날> 사회주의 나라 쿠바 그 안의 풍경
정말 죽은 듯이 잤다면 맞는 표현으로 깊은 숙면을 취하였다. 일운 역시 그러하였다 한다.
눈을 뜨기 무섭게 카텐을 젖히니 야자수 잎들이 이리저리 하늘 거리고 있었다. 바다 바람이 불고 아침이 아직 덜 깨어 있는 듯 하였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햇빛이 나는가 싶더니 스산한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였다. 온통 나무도 사람도 모두 흔들리고 햇빛이 사라진 하늘은 삽시간에 관광객들의 마음도 흔들리게 하였다.
오늘은 심한 파도 때문에 타려고 했던 요트를 못 타게 되었다. 스노콜링 연습도 못하게 되었다. 수영장의 수영도 썬텐도 못하고 모두들 삼삼오오 칵테일 빠나 오락실 혹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래도 수영복에 타올 한 장을 두르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함께 앉은 젊은 서양인은 캐나다 써리에서 왔다고 한다. 동향의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켈거리 경유 밴쿠버 발이니 모두가 캐네디언 인 셈이다. 그날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미국인이 아니라서 반갑다고. 자기들은 미국이 싫다고 했다. 현재 미국인은 쿠바 입국이 안 된다. 국민 모두가 미국을 적대시하는 감정이 깊은 듯 했다. 그런 탓인지 달러 가치가 하락한 탓인지 이들은 달러 받기를 반가워 하지 않는다. 자기들 돈 페소만 달라 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근로자 한달 평균 공식 수입이 250폐소라 한다. 그래도 그들은 웃으며 산다.
호텔 내 가게의 카드 판매대나 벽에, 검은 수염의 인상적인 카리스마의 청년이 웃고 있는 초상화를 볼 수 있다. 누구냐고 물으니 자기들의 영웅이라 한다. 그의 이름은 Che Guevara 다. 아르헨티나 출생이며 그는 불꽃 같은 혁명가로서 뿐만 아니라 시집을 끼고 다닌 로맨티스트이자 따뜻한 휴머니스트 였다 한다. 그랬을 것 같은 멋지고 아주 카리스마가 짙은 그의 사진 한 장쯤 책상 머리에 붙여 놓고 싶다 싶어지는 청년이었다. 1959년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에 동참한 후 여러 남미 혁명에 참가했으며 그는 볼리비아의 게릴라 전에서 숨진다. 그는 카스트로에 이어 2인자로 쿠바인의 추앙을 받던 사람이다. 그는 쿠바국민의 영웅으로 먼 미래에도 쿠바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콜럼버스 탐험 이후 쿠바는 현재 원주민과 스페인계와 그 혼혈들이 살고있다고 여긴다. 스페인의 식민지로 지배되었고 또한 미국의 경제지배 아래 그 이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혁명을 일으켜 함께 잘 살자고 공산주의를 시작하였던 것으로 안다. 내 짧은 쿠바 지식이다. 그들은 살사댄스와 삼바춤과 ‘관타나메라’ 를 즐겨 부를 줄 안다. 그러나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쿠바인들에겐 아직은 천혜의 휴양지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는 듯 하다. 쿠바 내국인은 관광지 출입이 제한 되어있다.
심한 바람과 날씨 탓으로 호텔 내부에서 놀아도 불편함이나 지루함이 전혀 없었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대 만족일 것이다. 각종 비싼 이름 모를 양주들이 줄비하게 대기하고 있었으며 하루 종일 주문해도 나무람이 없다. 우리 부부도 칵테일 한 잔을 시켜놓고 그 향을 음미하며 입술만 스쳐 보지만 그 재미도 여간 솔솔 한 짓이 아니었다. 꼬냑은 그 향이 기가 막혀서 일단 향을 음미하고 입술로 가져 간다고 한다. 그리고 혀 끝에 말아 목으로 깊숙히 넘긴다고 한다. 술을 못 먹는 우리에겐 손해 일 수도 있다. 술 값이 분명히 우리의 비용 중에 포함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녁은 See Food 만 한다는 식당으로 예약을 하니 벌써 오늘 저녁은 만원이라 한다. 내일 저녁으로 예약이 되었다. 이 식당은 저녁만 하며 예약을 하여야 한다. 취향 대로 먹거리를 찾아 다니는 것도 재미중의 하나다. 저녁 식사 때까진 시간이 있어 전망대에 올라가 흔들리는 바다를 보았다. 흔들리는 초록빛 바다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멀리 등대 앞에서부터 주루루 달려오는 물이랑은 바람부는 오월의 보리밭 같았다. 옥양목 한 필 후루룩 흔들 듯 흰 포말을 굴리며 달려와서 냅다 부딪침이 떡시루를 뒤 엎어 뿌림 같았다. 얼마를 부딪쳐야 저 토록 솟구칠까. 파도는 아파야 희여지나 보다. 희여지기 위하여 부딪치고 부딪쳐 가루가 되는 파도. 그것이 그의 숙명이다.
칠흑 어둠 속에서도 몰려와/ 부서지는 몸부림으로 달래야 하는 그는/
천의 얼굴로 떠오르는 파도/ 그러나 그는/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성급한 물이/ 결을 다투어 비켜가 쓸어지고/
충돌하는 격랑 속에서/ 나누어지는 숨소리들/
덧없이 소멸되고 다시 일어서는 몸부림으로/ 그는 생을 엮는다//
밤바다/ 별이 내려와 몸을 담그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없어지지 않는 무대 뒤로/ 잠시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소멸될 수 없는 얼굴로/ 부서지며 또 일어선다.
ㅡ꽃비가 되어 흐르네 시집 중 ’파도’ 전문ㅡ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파도 속에 잠겨있는 모습이 취한 듯 재미있다 웃는 일운을 따라 어둠이 내리는 전망대를 내려오니 배가 고픔을 느꼈다.
벌써 식당 안은 빠른 라이브의 리듬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 뷰폐에서 나는 생 새우 구이 한 접시와 토마토를 곁들인 야채와 찐 호박과 애기 돼지 요리를 가져왔다. 또 2차로 생 새우 구이를 더 가져 다 먹었다. 큰 일 났다. 머리 속에선 운동 더 하면 될 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케익으로 후식을 먹을 생각은 모질게 참아내어야 했다. 지난 유럽 여행 시 특히 포르투갈에선 먹거리가 영 마땅치 않아 가져간 고추장 버무린 오징어를 들고 다니며 아껴 먹던 생각이 나서 이번에도 만만의 준비를 하였는데 다행히도 여기선 야채가 많아 아예 김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먹거리만 잘 있어도 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식사 후 10시부턴 극장 무대에서 밤마다 쇼 공연이 있었다. 화려한 의상과 조명으로 즐거운 밤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정열의 나라 쿠바는 샬사와 삼바춤을 추며 ‘관타나메라’ ‘아나콘다’ 등과 같은 빠른 템포의 열정적인 리듬으로 듣는 이들 모두를 어깨 덜썩이게 하는 전염을 준다. 남국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잠을 잃은 그들은 눈을 뜨고도 흔들리는 꿈을 꾼다.
한 곁엔 이곳의 풍물들을 진열한 간이식 야시장도 함께 선다. 쌀랑한 밤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잠을 잃은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들이다.
내일은 바람이 자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바닷가 사람들이 바람 신에게 제사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 간다. 일년에 특히 여름이 되면 헤리케인이 30여 차례가 지나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깨끗하여 초록빛 바다가 되었나 싶어진다.
아침에 1페소(쿠바 화폐 단위)를 놓고 나왔더니 잘 정돈 된 침대 위에 흰 타올로 마주보는 백조 한상을 접어 올려 놓았다. 놀라웠다. 이런 윗트를 발할 줄 아는 청소부 아줌마가 사랑스럽다. 샤워를 하고 TV를 켜니 군복 입은 카스트로가 무언가 열심히 연설 중이시다. 저녁마다 그러고 있다. 원칙적인 공산주의 길을 걷는 그는 아직도 국민들의 영웅이다. 다 같이 잘 살자고 고루 배급으로 사는 사회주의나라 쿠바. 내가 듣기로 그런다는데 정말 카스트로도 같은 배급으로 사는지 몹시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