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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간화선看話禪의 역사歷史
1. 연기緣起에서 무無로
앞에서는 세계 불교의 변천사 및 선사들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구도역정求道歷程들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표면적인 여행이었다면 이제 그 구도求道의 원리를 따라가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따라가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진화하여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화두를 매개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인도와 중국 불교사를 다시 모두 언급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오직 깨달음의 순간에 집중해서 논의하려고 한다. 불교의 새벽 싯다르타의 모습과 선종의 아침 조사들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다 더 선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1) 연기緣起의 발견
『남전南傳대장경』「소부경전小部經典」에 들어있는「자설경自設經」은 연기緣起의 법을 생각해 내는 과정을 이렇게 전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비로소 정각正覺을 나타내신 부처님은 우루벨라(優 樓毘羅) 네란자라(尼連禪)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한번 결가부좌한 그대로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후 초 저녁 경(오후 8시경)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기緣起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無明에 의해서 행行이 있다. 행에 의해 식識이 있다. 식에 의해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에 의해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에 의해 촉觸이 있다. 촉에 의해 수受가 있다. 수에 의해 애愛가 있다. 애에의해 취取가 있다. 취에 의해 유有가 있다. 유에 의해 생生이 있다. 생에 의해서 노老. 사死.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있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다.
(중략)
한밤 중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부처님은 삼매三昧에서 나와 다음과 같이 거꾸로 연기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증곡문웅增谷文雄(마쓰다니 후미오) 지음, 홍사성 옮김『근본불교의 이해』pp. 27~29.)
연기緣起의 법칙을 발견하고 정각正覺을 이룬 고타마 싯다르타는 당시의 감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일구월심日久月深 명사하던 성자에게
모든 존재의 근원이 밝혀지던 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연기緣起의 도리를 알았으므로.
당시 싯다르타가 직관直觀으로 정각正覺을 이룬 직후, 깨달은 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는 과정과 그 환희를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저녁 무렵 ‘순관順觀’의 연기법을 깨달았고 이어 한밤중에는 ‘역관逆觀’의 연기법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다. 이른바 모든 존재의 근원인 연기緣起의 도리를 발견하고 연기의 법칙을 확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향한 그의 열정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자, 불교라는 종교의 태동胎動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연기의 법칙은 나중에 불교학자들에 의해 ‘연기의 공식’으로 정리된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起故彼起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此滅故彼滅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그럼 인류를 구원하게 될, 그가 깨달은 연기는 과연 무엇인가? 지금은 익숙하게 된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인因과 연緣에 의지하여 생겨난다, 인의 직접 원인과 연의 간접 원인이 쌍생쌍멸雙生雙滅한다 혹은 간단히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이나 사건은 그 자체로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과 관계 속에서 임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일체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이다. 이를 ‘무명無明’에서 ‘노사老死’에 이르는 12개 존재양식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 십이연기十二緣起이다.
12연기설은 인간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과 그 원인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곧 중생으로서 고통 받는 정신적인 현실과 그것의 원인을 알고 극복한 부처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노병사老病死 등의 고통은 그 원인이 12개의 단계로 다음과 같이 깊은 원인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노.병.사 등 → 생(生, 태어남) → 유(有, 생존) → 취(取, 소유욕) → 애(愛, 애욕) → 수(受, 감수작용) → 촉(觸, 접촉작용) → 육입(六入, 여섯 감각기관) → 명색(名色, 심신일체) → 식(識, 의식작용) → 행(行, 정신작용) → 무명(無明, 근본번뇌). 곧 노병사는 그 원인을 추구해가면 근원적으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는 무명에 닿는다. (이태승,「불교란 무엇인가 - 연기」, 불교신문 2106호.)
‘생’하였기 때문에 ‘노사’가 있고, ‘생’은 또 ‘유’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는 또 ‘취’에서, ‘취’는 또 ‘애’에서, 등으로 소급해 올라가다보면 종국에는 밝음이 없는 상태, ‘무명(無明, ajnana)’에 이른다는 것이다. 밝음이 지혜라면 밝음이 없는 상태인 어둠은, 지혜가 없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상태인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인간 육신에 대한 싯다르타의 고뇌는 결국 무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란다왕은 ‘영원한 시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아가세나 존자는 십이연기의 법칙으로 이를 설명한다.
왕은 물었다.
『존자여, 과거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고, 현재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며,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과거 · 현재 ·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명無明(진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무명을 반연하여 행[行]이 생기고, 행을 반연하여 식별작용[識別作用 · 識]이 생기고, 식별작용을 반연하여 명칭과 형태[名色]가 생기고, 명칭 · 형태를 반연하여 여섯 가지 감관[六處]이 생기고, 여섯 가지 감관感官을 반연하여 감관과 대상과 식별작용과의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을 반연하여 느낌[感受 · 受]이 생기고. 느낌을 반연하여 갈애[渴愛 · 愛]가 생기고, 갈애를 반연하여 집착[執着 · 取]이 생기고, 집착을 반연하여 생존 일반[有]이 생기고, 생존 일반을 반연하여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반연하여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절망 등 이 생깁니다. 이 모든 시간의 과거의 궁극점[최초의 시작]은 분명히 인식 되지 않습니다.』
『잘 대답하였습니다. 존자여』(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p. 90~91.)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게 되어있다. 늘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은 없다. 모든 것은 변變하여 ‘고정 불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그러므로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다. 시간적으로는 무상無常이고 공간적으로는 무아無我인 것이 존재의 참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여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변화變化하는 현실을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생긴 것이다.
“소나여, 어찌 생각하느냐? 색(물질)은 불변하는 것이겠느냐, 변화하는 것이겠느냐?”
“대덕이시여, 변화하는 것입니다.”
“만약 변화하는 것이라면, 괴로움이겠느냐, 즐거움이겠느냐?”
“대덕이시여, 괴로움입니다.”
“만약 변화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관찰하여 ‘이는 내 것이다. 이는 나다, 이는 나의 본질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덕이시여,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22:49「륜루나輪屢那」, 漢譯同本,『雜阿含經』1:30「륜루나輪屢那」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 200).)
『아함경阿含經』은 ‘연기를 보는 자, 법(法, 진리)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본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연기는 법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불교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불교의 새벽은 이렇게 밝았다.
2) 선종禪宗의 시작, 불식不識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대사는 말했다.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양무제는 다시 질문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달마대사는 말했다. “불식不識.”
양무제는 달마대사의 말을 깨닫지 못했다. 달마대사는 마침내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
양무제는 뒤에 달마대사와의 대화를 지공화상에게 말하자, 지공화상이 말했다. “폐하! 달마대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양무제는 말했다. “불식(不識; 모르겠습니다).”
지공화상이 말했다. “그는 관음대사이며,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사람입니다.”
양무제는 깊이 후회하고 마침내 사신을 보내어 다시 초빙하고자 하자, 지공화상이 말했다. “폐하께서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온 나라 사람이 모시러 가도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擧, 梁武帝, 問達磨大師, 如何是聖諦第一義, 磨云, 廓然無聖, 帝曰, 對朕者誰, 磨云, 不識, 帝不契, 磨云, 遂渡江至魏, 帝, 後擧問誌公, 誌公云, 陛下還識此人否, 帝云, 不識, 誌公云, 此是觀音大士, 傳佛心印, 帝悔, 遂遺使去請, 誌公云, 莫道, 陛下發使去取, 闔國人去, 佗亦不回, (圓悟克勤, 鄭性本 譯解,『벽암록碧巖錄』「제1칙 達磨廓然無聖 달마대사와 양무제」)
이 대화가 있기 전, 불법천자佛法天子 양梁 무제武帝는 먼저 자신이 이룬 공덕功德에 대해 묻는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중을 기른 것이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그러자 보리달마(Bodhidharma, 菩提達磨, ?~528 혹은 536)는 공덕이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자 다음 물은 것이 위의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질문이다.
공덕이랄 것이 없다면 ‘어떤 것이 제일 성스러운 진리’냐는 것이다. 달마達磨는 이에 대해서도 ‘텅 비어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에 양무제는 그럼 그런 ‘너는 누구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질문에 달마는 ‘불식不識’, 모른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뜬다. 달마는 충실히 대답하고 있는데, 정작 양무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종 첫 장, 선종의 아침은 이렇게 밝았다.
그런데 대화에 등장하는 지공(誌公, 418∼514)이 514년 입적한데 반해 달마는 520년에 중국에 오기 때문에, 양무제와 달마의 만남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이 만남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허구라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적인 만남은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가 창작한 작품으로, 가까이는 신수(神秀, 606?~706)의 귀족불교를 비난하기 위함이요, 멀리는 공덕功德에 사로잡힌 당시 불교계의 풍토를 비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누가 선어록을 작성하여 이렇게 양나라(502~557)의 무제(재위기간 502~549)와 달마(?~528 혹은 536) 대사를 서로 만나게 했는가? 야심에 찬 불여우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보리달마와 양무제와의 대화를 최초로 기록한 문헌은 하택신회(668~760)선사의『보리달마정시비론』이다.
그러니까, 이 달마와 양무제의 만남과, 무공덕無功德 운운하는 이야기는 남종선의 주창자인 하택신회(668~760 )선사의 창작적인 주장인 것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당시 장안과 낙양 두 수도의 법주이며, 세 명의 황제를 지도한 스승이며, 귀족불교를 대표하는 대통신수(606?~706)와 그 문하에 대한 비난인 셈이다.
즉, 당 왕조 제 4대인 측천무후(624~705)와 중종과 예종의 비호아래 공덕주의의 불교 신앙에 결합되어 있던 북종선(The Northern Chan Sect)에 대한 비난인 것이다. (석해탈 지음,『禪, 문밖에 나서다』p. 160.)
『임간록林間錄』의 저자인 북송北宋의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 선사는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70. 사실을 정확히 고증함 /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
설두雪竇스님은「조영집祖英集」과「송고백칙頌古百則」을 지은 일이 있다.
첫 편에서 ‘달마스님과 양무제의 뜻이 서로 계합되지 못함(初祖不契梁武)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國人追不再來, 온 나라 사람이 쫓아가도 다시 오지 않으리니
千古萬古空相憶, 천고만고에 속절없이 생각케 하네.
이 귀절은 양무제와 만나지 못한 것을 거듭 탄식한 말이다. 그런데 이 뜻을 모르는 자가 이 귀절 앞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달마스님께서 떠나버리자 금릉 보지(寶誌 : 418~514)스님이 양무제에게 물었다. ‘폐하는 이 사람을 아십니까? 관음보살의 응신應身입니다. 부처님의 심법(心印)을 전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어찌하여 예우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에 양무제가 뒤쫓아 가려 하니, 보지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설령 온 나라의 사람이 뒤쫓아 가도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지스님은 천감天鑑 13년(514)에 죽었고 달마스님은 보통普通 원년(520)에야 금릉에 왔다는 사실을 설두스님이 어찌 몰랐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 서술이 설두스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전사본傳寫本에는 합국(闔國 : 온나라)이 개국蓋國으로 잘못 쓰여져 있으니,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임간록林間錄 상上』「19. 참선과 깨침의 관계/달마達磨스님」 선림고경총서, 장경각 pp. 120~121.)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의 게송은 양무제와 달마가 만나지 못한 것을 탄식한 것이었는데, 후에 이것이 잘못 이해되어 엉뚱하게 각색되었다는 내용이다. 거기에 더해서 숭산 소림사少林寺에서의 9년 동안의 면벽面壁이나, 제자 혜가의 단비구법斷臂求法이나, 보리유지菩提流支와 광통율사光統律師의 질투로 독살되어 관에 신발 하나만 남긴 채 서천으로 돌아갔다는 일화 등등도 모두 허구라고 한다.(야나기다 세이잔/추만호·안영길 옮김,『선의 사상과 역사』p. 163.) 그렇다면 혜홍각범慧洪覺範 선사가 달마의 9년 면벽面壁에 대해 평한 천 년 전 해설을 다시 들어본다.
19. 참선과 깨침의 관계/달마達磨스님
보리 달마스님이 과거 양梁나라에서 위魏나라로 가는 도중에 숭산嵩山 아래를 지나다가 소림사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주장자를 기대어 놓고 벽을 향하여 앉아 있었을 뿐이지 참선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은 그 까닭을 까마득히 모르고서 이 일을 가지고 달마스님이 참선을 하였다고 말들 한다. 선禪이란 여러 수행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어떻게 참선으로 성인의 도를 다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고, 역사를 쓰는 자도 덩달아 선승의 전기를 쓸 때면 마른 나무나 꺼진 재와 같은 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성인의 도가 선禪에 그치는 것도 아니지만 한편 선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역易이 음양에서 나온 것이지만 또한 음양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예이다. (『임간록林間錄 상上』「19. 참선과 깨침의 관계/달마達磨스님」 선림고경총서, 장경각 pp. 45~46.)
달마가 과거 양梁나라에서 위魏나라로 가는 도중 소림사에 잠시 머물렀고, 주장자를 기대어 놓고 벽을 향해 앉아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확대재생산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학자들의 학문적인 분석이 아닌 사건과 가까운 시기, 지금으로부터는 약 1,000년 전, 한 선사가 당시 이야기를 재구성해 들려준 따끈따끈한 이야기다.
한편 달마와 양무제가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 하는 것은, 그 진위여부를 떠나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역사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사상적인 측면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달마가 말하는 바는 종교적인 본질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세상의 가치나 역사적인 문맥에 의해서만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객관성만을 강조하여서는 안 되고 또한 성스런 체험만 강조되어서도 안 된다는 의견이다.
다소 장황하게 되었지만 달마에 대한 일화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500년간 배우고 익힌 불교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이라고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불교의 핵심 원리에 대한 중국식 해석의 한 단면인 것이다. 결국 둘의 만남이 애초에 성립될 수 없었으므로, 자주 회자되는 두 번의 ‘불식不識’이 대체 무슨 뜻이었는가라는 논의는 접어두자. 다만 그냥 글자 그대로 ‘불식’, 즉 ‘모른다!’에만 집중해서 살펴보자.
“그대는 누구인가?” “모른다(不識).” “그대가 그대를 모른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냐고?” 간단히 얘기하면 결국 “나는 누구냐!”라는 문제로 수렴收斂한다. 그리고 이 명제命題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세계화하고 있는 중이다. 모른다는 대답과 함께. “Who Am I?” “Where am I going?” “Only don’t know!”
여기서 달마는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보니, 혜능도 ‘오조五祖의 법을 계승한 것은 자신이 법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이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오직 모를 뿐이다. 여기에 이르러 양무제의 입장에 선 당신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말해보라. 말해보라.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①달마와 양무제」 법보신문 991호 (2009.03.23) )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에 대한 의혹을 지닌 채 진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대체 생로병사는 뭐고 거기에 고통 받는 나는 누구인가? 그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행한 끝에 그것이 ‘무명無明’임을 깨닫는다.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에 밝지 못하였고 진리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이다. 근본불교의 새벽 풍경이다. 달마는 법을 전하러 왔다가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불식不識’이라고 나투고는 발길을 돌린다. 선종의 아침 풍경이다.
그들이 깨달은 ‘무명無明’과 ‘불식不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표면적인 뜻은 같아 보인다. ‘밝지 못하다!’와 ‘알지 못한다!’라고 써 놓고 보면 더욱 더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의미적 측면에서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느껴진다. 달마가 한 ‘모른다!’는 진정 몰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먼저 깨달은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이 밝혀놓은 지혜智慧의 반석磐石 위에 쌓이고 쌓여 새롭게 세워진 찬란한 ‘모른다!’이기 때문이다.
3) 무명無明에서 해탈解脫로, 열반涅槃으로
연기의 법칙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처음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음 순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널리 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깨달은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설득시키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깨달았다고 하여, 열반에 도달하였다고 하여, 그 즉시 어떤 방편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갓 깨달은 싯다르타에게. 그는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능력이 그대로 구제救濟의 실현實現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보리수 밑에 앉아 다시 사색에 들어간다. 깨달은 내용(內證)을 널리 펴기 위해, 또 적절히 설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체계화體系化하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니까 싯다르타는 자기가 체득한 진리인 연기의 법칙을 그대로 설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구상構想하고 체계화한다.(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310~311.) 일종一種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표현해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면 나름의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깨달음의 사상적 내용인 ‘연기의 법칙’과 최초의 설법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던 ‘네 가지 진리(四諦)’를 비교할 때, 얼른 보아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겨우 설법할 결심이 서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향해 법을 설했을 때, 자기의 깨달음의 내용을 결코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그것은 주도한 배려에 의해 조직되고 체계화되어, 이른바 ‘네 가지 진리’로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런 조직은 언제 이루어졌던가? 그것 또한 보리수 밑에서의 명상 중에, 아마도 설법의 결의가 서고 난 다음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 45.)
그래서 개발된 이론체계가 부처님 가르침의 골격을 이루는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四聖諦’이다. 연기의 법칙과 최초의 설법인 사성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인 것이다. 다만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성제四聖諦는 후세 불교도들에 의해 정리된 것이고,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고 불리는 첫 설법에서는 <네 가지 성제聖諦(cattari ariyasaccani)>로 표현된다. 즉, 연기의 법칙은 ‘고苦의 성제’, ‘고의 발생(集起)의 성제’, ‘고의 멸진滅盡의 성제’, 그리고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 등 네 가지로 바뀌어 상세하게 설해지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생生은 고이다. 노老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죽음은 고이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이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이다.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함은 고이다. 뭉뚱그려 말한다면 이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후유(後有: 과보果報)를 일어나게 하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 욕망에 빠지는 것.)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 탐내는 생각을 일으켜 무엇을 욕구하는 것. 주로 성욕.)와 유애(有愛: 개체를 존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와 무유애(無有愛: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가 있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이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다. 마땅히 들어라.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道가 그것이니,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니라.”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59~60.)
설법은 고와 고의 근원인 갈애渴愛, 그리고 갈애의 소멸과 소멸을 위한 실천 방법 등 네 가지 단계로 되어 있다. ‘네 가지 성제聖諦’인 사성제는 부처님이 그 제자들인 비구들에게 했던 설법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인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로 변주變奏되는데, 이는 이제는 익숙한 ‘무상인 것은 고다. 고인 것은 무아이다’라는 설법이다 그러면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무상anicca-고anicca-무아anattā>의 체계로 설법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제자들을 어디로 인도하려고 이런 설법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체계를 설명한 경전들의 결론부분을 먼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부처님은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59) 五比丘. 한역 잡아함경(2ㆍ2) 五比丘)에서 5명의 비구들을 위해 무상→고→무아의 체계에 관해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와 같이 관찰하고 색을 염리하고 수를 염리하고 식을 염리한다. 이렇게 염리하게 되면 탐욕을 염리하게 되고, 탐욕을 염리하면 해탈을 하게 된다. 해탈을 하게 되면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의 행은 이미 이룩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했다. 이제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되풀이하는 일은 없다’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여기서 존재(五蘊)의 무상→고→무아를 깨닫게 되면 그것이 염리(厭離)→이탐(離貪)→해탈(解脫)하게 되는 체계를 나란히 제시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무상→고→무아는 이론적 사상체계이고 염리→이탐→해탈은 행위적 실천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상체계는 실천체계로 연결되고 있으며, 이 가르침대로 관찰하고 깨닫게 되면 해탈과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增谷文雄 지음, 홍사성 옮김,『근본불교 이해』 p. 127.)
잡아함「염리경厭離經」은 ‘색色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我]가 아니며, 내가 아니면 또한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하였고,「무상경無常經」은 오온의 무상함을 바르게 관찰하면[正觀],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生厭離], 이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喜貪盡]고 하였다. 색(수·상·행·식)이 무상하다는 것을 바르게 관찰하면 고-무아(비야非我)에 이르고, 다음 염리→이탐하게 되어 인간의 굴레인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무상→고→무아>라는 이론적 사상체계는 <염리厭離→이탐離貪→해탈解脫>이라는 행위적 실천체계로 연결된다. 종국에는 나(我)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다고 하는 <무상→고→무아>의 가르침대로 관찰하고 깨닫게 되면, 염리하게 되고 염리하게 되면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염리→이탐→해탈>로 단순하게 정리한 것이다. 무상無常으로부터 시작하여 무상→고→무아(비아)→염리→이탐→해탈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모든 과정은 고뇌,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을 얻기 위함이다. 해탈은 불교의 최고 경지, 일체의 번뇌를 해탈한 최고의 경지, 열반涅槃(니르바나Nirvana)에 이르기 위함이다.
열반이란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격정의 불꽃이 꺼진 상태다. 지혜의 바람으로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꺼버려,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消滅’된 상태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체계를 바로 깨달아 수행을 통해 진리를 체득하고, 그러므로 해서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붓다가 열반을 말씀할 때, 결국은 이런 예속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공적 무위空寂無爲의 소극적인 경지라고 할 수 없다. 거기서 불이 꺼지듯이 소멸되어야 하는 것은 갈애이다. 그리고 번뇌의 불꽃이며,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일 뿐이다. 인간 자체가 여기에서 “소멸하여” 어딘가에 가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여기 이 땅에 있는 것이다. 그를 예속하던 갈애가 소멸됨으로써, 그는 완전한 자유와 안온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다. 진리의 길, 평화의 길을. 그리고 그것이 열반이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185~186.)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직후에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제안을 받는다. 환속하여 마가다국에 봉직하면 막대한 재산을 주겠노라고. 그러자 부처님은 말한다. “왕이여 저는 출가한 사람입니다. (출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수타니파타 423)
4) 불식不識에서 해탈解脫로
달마가 소림사에서 벽관壁觀에 잠겨 있을 때, 40세의 혜가(慧可, 487~593)는 달마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가르침을 청한다. 그러나 달마는 응답이 없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하얀 눈은 내려 새벽이 밝아올 무렵에는, 눈이 허리 위에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제야 달마는 “그대는 무슨 까닭에 나를 찾아 왔는가?”라고 묻는다. 혜가는 “법의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팔을 잘라 비장한 자신의 각오를 보이며 말한다. 그리고 말한다, “제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달마 대사께서 벽을 향하여 앉아 계시는데, 2조 혜가가 눈 위에 서 있다가 팔을 끊어 올리며,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오니 바라건대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달마 대사께서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대를 위하여 편안하게 해 주리라.”라고 하시니, 2조가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달마 대사께서 “그대를 위해 마음을 편안하게 했노라.”라고 하셨다. (무문혜개無門慧開,『무문관無門關』「제41칙 달마안심達磨安心」, 達磨面壁, 二祖入雪. 斷臂云. 弟子心未安, 乞師安心. 磨云, 將心來, 爲汝安. 祖云, 覓心, 了不可得. 磨云, 爲汝安心竟.)
이것이 그 유명한 달마의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달마의 제자 담림曇林의『약변대승입도사행略辯大乘入道四行』서문에 보면 ‘이입理入이란 안심安心이며, 안심이란 벽관壁觀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달마와 혜가의 ‘안심문답安心問答’은 벽관의 실천으로 얻어진 경지다. 벽관이 안심으로 들어가는 실천법인 것이다. 그러나 실천 법은 실천법이고, 달마는 편안한 마음을 바라는 혜가에게 마음이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보여준다.
불편한 마음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혜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굴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달마가 혜가에게 편안한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혜가는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없는 자유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달마는 교학敎學과 번잡한 불교수행의 체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고苦의 자각과 동시에 안심입명安心立命 할 수 있는 지혜를 전달한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지혜의 등불을 중국인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선종 전등계보傳燈系譜의 첫 테이프를 끊는다.
이 안심법문은 禪宗의 종교적인 색채를 표명하고 있으며 달마대사와 慧可사이에 以心傳心으로 法을 전하게 되어 선종의 傳燈系譜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安心法門의 내용을 살펴보면 瞑想과 실천을 통하여 安心立命의 가르침을 전하신 석존의 가르침의 본질이 들어 있다. 佛性의 自覺을 통하여 日常性과 主人公의 삶을 강조하는 祖師禪에서는 더욱 중요한 요소이다.
석존의 가르침은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 문제’는 그 원인을 認識함으로 인하여 해결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며 그 해결된 것이 安心이며 解脫이다. 佛性이나 卽佛의 의미와 함께 궁극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된, 해탈된 상태인 안심의 추구는 매우 중요하다. 보리달마의 壁觀安心은 般若思想을 중심으로 여타 敎學思想을 아우르고 또한 번잡한 불교수행의 체계를 단순화 시켜 부처님의 전하고자 하였던 苦를 자각하고 安心立命하는 삶을 중국인들에게 전달하였다. (김진일묘경,「菩提達磨의 安心法門에 대한 一考, A Study on Dharma Talk for the Peaceful Mind to Get Enlightenment(安心法門) by Bodhidharma(菩提達磨)」 보조사상 34권 pp.165~193, 보조사상연구원 (2010).)
물론 면벽이나 단비구법 등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온갖 학설로 복잡해진 불교사상을 관통하여 초기 부처님의 전하고자 하였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가르침을 단순화하여 상징적으로 그리고 대단히 성공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이 구조는 다음 2조 혜가와 3조 승찬(僧璨, ?∼606)의 대화에도 반복적으로 응용된다.
3조 승찬 대사가 2조 혜가 대사에게 물었다.
“제자가 몸에 풍병을 앓고 있으니 청컨대 스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게 하여 주십시오.”
혜가 대사가 말하였다. “그대의 죄를 가지고 오라. 참회시켜 주리라.”
승찬은 한 동안 생각에 골몰하다가, “죄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다 참회되었다. 앞으로는 불·법·승 삼보三寶에 의지해서 안주하라.”
“지금 화상을 뵈옵고 승보僧寶임은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佛寶·법보法寶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傳燈錄 卷3, (大正藏51, p.220下).)
달마와 혜가의 문답과 비슷한 구조이나 여기서는 마음대신 ‘죄’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실체 또한 규명하고 있다. 이는 3조 승찬과 4조 도신(道信, 580∼651)의 대화로도 이어진다.
“어떤 것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너의 마음은 지금 어떠한가?”
“저는 지금 무심無心합니다.”
“네가 무심하다면 부처에게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스님, 제에게 해탈의 법을 일러주십시오.”
해탈 법문을 일러달라는 어린 사미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대사가 물었다.
“해탈이라니 누가 너를 묶었더냐?”
“아무도 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묶은 이가 없다면 너는 이미 해탈인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도신은 이 한마디에 크게 깨달았다. (傳燈錄 卷3, (大正藏51, p.221下).)
부처의 마음을 묻는 도신에게 승찬은 ‘너의 마음은 어떠한가?’라고 되묻는다. 네가 부처인데 왜 따로 부처의 마음을 묻는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 못한 도신은 ‘나는 무심無心하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승찬은 ‘네가 무심한데 부처는 무슨 마음이 있겠는가, 부처도 무심하다(마음이 없다)’라고 설파한다. 달마의 벽관壁觀이 무심無心이 된 것이다. 또 해탈解脫의 법을 묻는 도신에게 ‘무심하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지 따로 해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설파한다. 구하려고 하지 마라, 구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해탈이니라. 도는 쫓아다닌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혜가의 불안한 마음, 승찬의 죄, 그리고 해탈을 원했던 도신의 생각이 실체가 없음을 통찰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생로병사로부터 해방된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 생로병사의 실체는 없다. 다만 연기할 뿐이다. 답은 스스로 가지고 있었고, 그 근본에는 마음이라는 실체와 그리고 그 마음의 주체인 나에 대한 탐구가 깔려있다. ‘마음이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인 것이다.
위에서 승찬과 도신의 문답은 달마와 혜가의 안심문답과 동일한 구조를 이룬다. 중심이 되는 미해결 과제는 혜가의 경우 불편함이고, 승찬의 경우에는 죄의 문제, 도신은 해탈의 문제이다.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든지 부딪히는 과제이다. 종교에 따라서는 죄를 자기의 본질적 문제로 간주한다. 이런 경우에 먼저 죄인이여야 하고 그 다음엔 구원의 길이 열린다. 처음부터 죄가 없다면 구원의 문제는 허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중략)
생각은 스스로 자성을 갖질 못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우리는 굳어진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지만 바꿀 수가 있다. 이런 작업은 인지치료의 핵심된 기술과 유사하다. 우리의 죄책감, 좌절, 우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의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바뀐다면, 우리의 감정은 바꾸어진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⑤죄와 해탈」 법보신문 995 호 (2009.04.20).)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일반적으로 중국선종은 보리달마를 초조初祖로 하여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으로 선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육조혜능六祖慧能이후 완성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좀 있다. 더구나 혜능이 6조의 지위를 얻는 것도 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이고 그 이전에는 한 때 대통신수(大通神秀, 606?~706)가 6조로 불리기도 하였다.
어쨌든 ‘무명’이 해탈의 경지인 니르바나에 이르고, ‘불식’에서 시작된 여정이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하였다. 사실은 그렇게 구분하니 그런 것이지, 무명을 아는 순간이 니르바나요 불식을 아는 순간이 또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과연 싯다르타와 조사들이 경험한 해탈 체험을 몸소 재현하려면 어떠한 수행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4) 팔정도八正道와 불방일不放逸
“사리푸타(舍利弗)여, ‘열반, 열반’ 하고 말하지만, 대체 열반이란 무엇인가?”
“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
“그렇다면 벗이여, 그 열반을 실현할 방법이 있는가? 거기로 갈 길이 있는가?”
“벗이여, 이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그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즉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相應部經典』38:1 涅槃 175.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 175.)
연기로부터 시작하여 <무상-고-무아>로 연결되는 사상 체계는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 골격이다.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세 가지 특징을 <삼법인三法印, ti-lakkhaxa>이라고 하는데, 이 삼법인 <무상→고→무아>를 바르게 관찰하면 <염리→이탐→해탈>로 이어져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명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되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후에 하나를 추가하여 <사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하는데,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 이들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실천방법이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이다. 그 첫 단계인 정견正見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제 1 항목의 정견正見으로 보인다. 과거의 불교인들도 이것을 팔정도의 ‘기체基體’라고 불러 이것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견’이란 관찰하고 선택한다는 뜻을 지닌 불교 용어로서 결국 인간의 오성悟性의 작용이라고 하겠으나, 그것이 실천을 재촉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정견은 다른 일곱 가지 정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부터 바른 행위가 흘러나오고, 바른 생활 태도가 선택되며, 바른 수행이 선택되는 까닭이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 154.)
그러나 정견, 바르게 보는 것도 어려운데 바른 행위(정사, 정어, 정업)나 바른 생활(정명), 거기에 바른 수행(정정진, 정념, 정정)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른(正)’이 무엇인지 규정짓기조차 어렵다. 과연 어떤 것이 ‘바른’ 것인가?
‘정’의 첫째 조건은 “망령됨을 떠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망령됨(妄)이란 명석하지 않고 여실如實하지 않음을 이름이다. 이것을 ‘견見’에서 말한다면 허망한 관찰, 허망한 분별이 ‘망견妄見’이다. 또는 ‘어語’에 관련시켜 말한다면 진실에 어긋나고 명확하지 않은 발언이 ‘망어妄語’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런 망령됨이 생겨나는가? (중략) 사람의 마음이 탐욕으로 어지러워진다든지, 노여움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든지, 또는 어리석음이나 의심으로 덮여있다든지 할 때에는 무엇이거나 여실히 명석하게 관찰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경에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었다. 이것을 더 추상적으로 나타내면 객체와 주관 사이에 여러 잡스러운 요소가 개재함으로써 ‘망령됨’이 생기는 것이어서, 그것을 불교에서는 복(覆; 덮는 것) 또는 애(碍; 장애가 되는 것)라고 일컫는다.
‘바른 것’의 둘째 조건은 “전도顚倒를 떠나는 일”이다. 여기서는 ‘정견’이 기초가 되므로 그것에 적용시켜 말한다면 “전도의 견見이 아닌 것을 정견이라 한다.”고 할 수 있다(『승만경』). 전도란 관찰과 판단에 임해서 그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놓치는 일이다. 대大와 소小를 거꾸로 아는 것도 그것이요, 미와 추를 잘못 판단하는 것도 그것이다. 또 변화해 마지않는 것을 마치 영원불변한 듯이 착각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것이 바른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는 자칫하면 “비법으로 이익을 얻는 일”에 몰두하기 쉽고, “지혜가 적으면서 명성이 높기”를 바라기 일쑤이다. 그리하여 이런 전도된 사고방식은 인생의 모든 영역을 채워 버려서 사람들을 미망과 죄악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사전도’라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입장에 서서 인간이 빠지기 쉬운 잘못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첫째, 상常전도 - 이 무상한 존재를 영원한 것인 양 잘못 생각하는 것.
둘째, 낙樂전도 - 고苦라고 보아야 할 이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셋째, 정淨전도 - 이 부정한 인간 존재를 청정한 것인 듯 잘못 생각하는 것.
넷째, 아我전도 - 이 무아無我인 존재를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런 전도가 생기는 이유를 추궁할 때, 결국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셋째 조건이 되는 것은 “극단을 떠나는 일”이라고 지적된다. 한역 경전의 표현을 따른다면 “가를 떠나 한 가운데에 서는 일(이변처중離邊處中)”이다. 앞에서 인용한 첫 설법에 “비구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두 극단을 피해야 하느니라.” 고 나와 있던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극단’이라고 번역한 것은 팔리 어로 말한다면 anta(끝, 가)인바, 한역에서는 편偏 또는 변邊, 단端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변’을 떠나 ‘중中’에 서는 곳에 ‘정’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략)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 설 때 바른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이 불교의 실천의 핵심이 되는 이른바 ‘중도’의 가르침이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155~159.)
다소 길지만 매우 핵심적인 내용이라 인용하였는데, 팔정도에 추가해서 부처님이 강조하신 것이 ‘불방일不放逸(appamada)’이다. 불방일이란 자제自制함이 없이 온갖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것으로, 자제自制와 집중集中, 그리고 지속持續을 뜻한다.
불방일(不放逸)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 중에서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가을 하늘에 한 점의 구름도 없을 때, 해는 하늘에 떠올라 일체의 어둠을 쓸어버리고 눈부시게 시방(十方 ; 동서 남북과 동북, 동남, 서북, 서남, 상, 하)에 빛을 던지지 않느냐? 그러기에 가을 하늘에서 해는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어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여러 가지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온갖 착한 법 중에서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 [相應部經典] 45:146 月. 147 日.)
부처님은 ‘불방일하기만 하면 그 비구는 반드시 팔정도를 익히고, 그것을 반복하여 닦는 중에 마침내는 열반에 도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도 불방일이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나타낸다면 붓다가 설하신 것은 결국 자기 형성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형성의 길에는 이것이면 그만 이라는 따위의 한계는 없는 것이므로, 우리는 자제와 집중과 지속을 가지고 일생 동안 걸어가야 하는 것뿐이다. 저 사라쌍수 밑에 누워 장차 크나큰 죽음(대반열반)에 들려던 붓다가 그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말씀은『대반열반경』속에 다음과 같이 전해 온다.
“그러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하여 정진하도록 하라.”
5) 심불기心不起로부터 <무無>까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지만, 선종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이 ‘심불기心不起’의 무심無心, 무념無念, 무無 등이다. 물론 유무有無에 대한 개념은 부처님 시대로 까지 소급 될 수 있지만, 이는 중도中道를 설하기 위함으로 선종에서의 유무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는 단지 중도를 말하기 위해 유와 무를 예로 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무는 논쟁의 좋은 소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입장에 의거하고 있다. 그것은 즉 유와 무이다. 만약 사람이 바로 지혜를 가지고 세간의 출현을 여실히 관찰한다면, 세간에 있어서 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사람이 바른 지혜를 갖고 세간의 소멸을 여실히 관찰한다면, 세간에 있어서 유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있다(유)”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극단설이다. “모든 것이 없다(무)”고 한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극단설이다. 인격을 완성한 사람은 이 양 극단설에 접근하지 않고 중도中道에 의하여 설법한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198~199.)
선종 초기 승조(僧肇, 384~414)는 광범위하게 ‘유무有無’에 대해 논의하였고, 달마는 심불기心不起의 벽관壁觀으로, 그리고 3조 승찬은 ‘일심불생一心不生 만법무구萬法無咎’ 등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앞서 보았던 3조 승찬과 4조 도신의 대화에서는 ‘무심無心’으로 나타난다. 무심無心은 다시 5조 홍인(弘忍, 601~674)에 이르면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좌선의 실천과 ‘수심설守心說’로, 육조 혜능(慧能, 638~713)과 신회神會를 중심으로 한 남종선의 핵심 사상인 ‘무념無念’ 등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선사에 의해 ‘염불기念不起’의 ‘삼구설법三句說法’으로도 이어진다.
신회의 선을 이어 받은 화엄의 징관(澄觀, 738~838)이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신수(神秀, 606~706)를 중심으로 한 북종선北宗禪이『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주장하는 이념離念(생각을 여읨)을 자신의 입장으로 삼았던 것에 비해서, 혜능의 남종선南宗禪은 무념(본래 여의어야 할 생각조차 없다)을 주장한다. 또 우두종牛頭宗의 창시자 법융(法融, 594년~658년)은 반야주의를 받아들여 ‘무심無心’을 주장하였는데, 그는『절관론絶觀論』『심명心銘』그리고『무심론無心論』등의 저술을 통하여 사상적으로 복종이나 남종에 대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야나기다 세이잔/추만호·안영길 옮김,『선의 사상과 역사』p. 202. 인용 수정.)
무상이 항상 설했다고 하는 三句를 들 수 있다. 삼구는 無憶 ․ 無念 ․ 莫忘으로서, 그 의미는 이렇다. ‘무억’은 일체 지나간 일을 생각지 말라는 것이요, ‘무념’은 현재의 일체분별과 잡념을 하지 말라는 것이요, ‘막망’은 미래에 대한 망상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무상에 의하면 이 삼구가 바로 계․정․혜에 해당된다고 한다. 무상이 삼구를 설하는 과정에서 전후의 맥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무상이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삼구를 사용하였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전체 수행과정인 계 ․ 정 ․ 혜를 갖다가 무상은 이를 다시 삼구라는 표현으로 압축시켜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수십 가지 계율을 지키고, 여러 가지 관법을 동원하여 선정을 닦고, 지혜를 연마하는 복잡하고 오랜 과정을 무억 ․ 무념 ․ 막망이라는 간단한 세 마디로 대치시켜 버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무억 ․ 무념 ․ 막망의 상태만 된다면 계 ․ 정 ․ 혜 전체가 완성됐다고 보는 셈이다. 역대법보기 무상조 끝부분에 보면 삼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계율문이요, 상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선정문이며, 상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지혜문이다(念不起是戒門 念不起是定門 念不起是惠門)’라 하여 상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念不起)은 계 ․ 정 ․ 혜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설해지고 있다. 결국 ‘念不起’는 三學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삼학을 ‘念不起’라는 한마디로 압축시켰다는 측면에서 무상의 선사상은 돈오법으로 인식된다. (조용헌趙龍憲,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 박사과정 수료. 동양종교학과 강사. 「淨衆無相의 楞嚴禪 硏究」.)
이념離念, 무심無心, 무념無念 등 당시 염念(생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을 제어制御하는 것이 수행의 요체要諦임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수개월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었던 일본 승려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생각 버리기 연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생각을 여의는, 이념, 무념은 지금까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영원불멸永遠不滅의 명제命題인 것이다.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은 예로부터 무념無念으로 먼저 종宗을 삼아 내세우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나니;
무상無相이란 상相가운데서 상相을 여의는 것이요
무념無念이란 염念, 즉 생각 가운데서 생각이 없는 것이며
무주無住란 인간의 본성이니 세간 속에서 착하고 악한 것, 좋고 궂은 것, 내지 원친寃親간에 말로 따지고 기만커나 우롱하며 다툴 제, 양편을 다 헛것으로 돌려 해害로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니라.
염념念念가운데 전前의 경계를 생각지 말지니 만일 이전以前 생각과 지금 생각과 이후以後 생각이 그 순간순간마다 이어져서 단절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계박繫縛, 즉 얽매임이요, 모든 법에 있어서 그때그때마다 머무르지 아니하면 매임이 없을 것이라, 이것이 바로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는 것이니라. (善知識아 我此法門은 從上以來로 先立無念하여 爲宗하고 無相으로 爲體하고 無住로 爲本이니 無相者는 於相而離相이요 無念者는 於念而無念이요 無住者는 人之本性이니 於世間善惡好醜와 乃至寃之與親과 言語觸刺와 欺爭之時에 竝將爲空하여 不思酬害니 念念之中에 不思前境하리니. 若 前念 今念 後念이 念念이 相續不斷하면 名爲繫縛이요 於諸法上에 念念에 不住하면 卽無縛也니 此是以無住로 爲本이니라. (무비스님의 육조단경六祖壇經 강설 (상)))
한편, <무념법無念法>에 대한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와 그의 제자의 대화를 보면 무념을 넘어 유有와 무無에 대한 문답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유有 ․ 무無에 대한 문답은 후에 등장하는 <무無>자 공안에 대한 문답들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념법에서의 유 ․ 무에 대한 접근이 <무無>자 공안의 참구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 ․ 무에 대한 그들의 대화를 보자.
장연공이 물었다. “선사께서는 일상으로 무념법을 설하시며 수학할 것을 권하시는데 무념법에서 유有와 무無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답한다. “무념법에서는 무도 말하지 않고, 유도 말하지 않습니다.”
묻는다. “왜 무념법에서 유와 무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답한다. “만약 유라 하면 세간의 유와 다르고, 만약 무라 하면 세간의 무와 다릅니다. 이 때문에 무념법에서 유와 무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묻는다. “(그렇다면 무념에서는) 어떠한 것을 칭합니까?”
답한다. “무엇이라 칭하지 않습니다.”
묻는다. “죽을 때에 짓는 것이 있습니까?
답한다. “또한 일물一物도 짓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무념은 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설하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종내 언설이 없게 될 것입니다. 비유컨대 밝은 거울에 대상이 없으면 거울 가운데 종내 상이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지금 상이 드러난다고 한 것은 사물에 대對하는 까닭이고, 그래서 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묻는다. “만약 상을 대對하지 않으면 비춥니까? 비추지 않습니까?”
답한다. “지금 비춘다고 한 것은 대對와 부대不對에 관계없이 두 경우 모두 항상 비추는 것입니다.”
묻는다. “이미 형상이 없다면 다시는 언설이 없을 것이며, 일체의 유무有無를 모두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비춘다는 것은 또 무엇을 비추는 것입니까?”
답한다. “지금 비춘다는 것은 거울이 밝은 까닭이며, 자성自性이 비추는 것입니다. 만약 중생심이 청정하면 자연히 대지혜 광명이 있어 남김없이 모든 세계를 다 비춥니다.”
묻는다. “이미 그러하다면 어떠한 때에 (비춤을) 얻습니까?”
답한다. “단지 무無를 봅니다.”
묻는다. “이미 없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본다는 것입니까?”
답한다. “비록 보지만 어떠한 것이라 칭함이 없습니다.”
묻는다. “이미 어떠한 것이라 칭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답한다. “없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진견眞見이고, 상견常見(영원히 변치 않는 견見)입니다.”
(박건주 역주,『하택신회선사 어록』「남양화상문답잡징의南陽和尙問答雜徵義」 pp. 196~198.)
‘단지 무無를 봅니다.’는 <무無>자 공안의 핵심 참구법이다. 내용이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무無를 보는 것’과 ‘없는 것(無)을 보는 것’은 이미 후대에 등장하게 될 <無자> 공안에 대한 논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조주 화상의 <無자> 공안이 신회와 그의 제자의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출발은 다르지만 무無에 대한 의구심은 <無자> 화두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 수행의 초기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이상의 논의는 뒤로 미루고, 하나 지적할 것은, 무념 사상은 마조도일에 이르면 앞서의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고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의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종래의 형이상학적인 논리나 신비에서 벗어나 ‘물 나르고 땔감을 운반하는’ 일상사에서 찾게 된 것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따로 수행할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무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도道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汚染하지 않도록 하라. 오염이란 무엇인가? 生死의 마음을 일으키고 조작하여 취향하려는 것은 모두 오염이다. 만약 곧 바로 그 道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바로 道(平常心是道)이다. 平常心이란 조작이 없고 是非도 없고, 取捨도 없고, 斷常도 없으며, 凡聖의 분별심이 없는 그 마음이다. (정성본 역주,『임제어록臨濟語錄』p. 485.)
이는 다시 임제 선사에 이르면 번뇌煩惱 망념妄念이 없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구체화 된다. 부연하면 ‘막수만물莫隨萬物, 만물에 따르지 말라’, 즉 일체의 경계에 집착하거나 끄달리지 말라고 역설한다. 중국선종사는 무심無心, 무념無念,......., 나아가서는 ‘무無’에 대한 끝없는 변주곡變奏曲인 셈이다.
당나라 이후에는 방대한 어록 문학 들이 등장하는데, 스승과 제자간의 대화를 기록한『전등록傳燈錄』등 선어록으로 발전하였고, 거기 등장하는 선문답은 나중에 공안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이는 간화선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의 창시자 대혜종고大慧宗杲는『서장書狀』부추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만약 한적한 곳을 발견하고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를 얻게 되면 그것을 최상의 평화와 축복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단순히 돌에 눌려 있는 풀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대전환의 체험이 필요한데 그것은 풀을 돌로 누르는 것처럼 단순히 우리의 문제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 풀을 뿌리 채 뽑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간화선의 입장에서 묵조선을 비판할 목적으로 쓰인 글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무념無念을 그냥 유지하는 것보다 조주의 <무無자> 공안을 참구하므로 서 생각의 뿌리까지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無자> 화두 하나에 집중하므로 서 다른 생각이 떠오를 여지를 없애, 아무 근심이 없는, 혹은 아무 생각이 없는 무념 실현은 물론, 화두 <無>의 지혜까지 체득하여 망념의 뿌리까지 뽑아버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 무념을 추구하는 것보다 오직 한 생각 무無!로 무념을 대신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승조 등의 사념처법이나 천태의 지관止觀을 뛰어 넘는 달마의 ‘벽관’으로 시작된 선종 수행이 ‘무심’ ‘무념’을 넘어 ‘무’에 이르고, 그 무가 한 차례 도약跳躍하여 화두 <無>로 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無>는 그냥 무가 아니고 이런 과정, 부처님 이래 대승불교를 통해 이론적으로 심화되고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정제精製되고 단련鍛鍊된 <無>인 것이다. 그러므로 <無>자 화두는 무념, 무심으로부터 온 내면적인 ‘무’와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뜻의 외면적인 ‘무’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생각 없음(無)’과 ‘불성 없음(無)’의 두 가지 ‘무’가 연주하는 “<無>의 협주곡concerto”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