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장경각의 과학성
국보(제32호, 八萬大藏經)를 보존하는 국보 제52호 해인사장경판고(海印寺藏經板庫)는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로서, 고려 대장경판(국보 제32호) 8만여 장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法寶殿)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해인사에서 만든 판을 보존하는 작은 규모의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이 있다.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398년에 현재의 대장경판을 옮겼다고 하니 그 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 3년(1457)에는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여 칸의 대장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는데, 건립 후 한 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으로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쥐나 날짐승은 물론 좀 벌레도 들어가지 않는 매우 신비스런 건축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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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내부를 간결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판을 보관하는 데 필요한 기능만을 충족시켰을 뿐 장식적 의장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외벽에 붙박이살창을 만들었는데 벽면의 아래와 위의 살창, 그리고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 하여 서로 엇갈리게 한 데 대해서는 그 지역의 바람이나 기압까지를 고려하여 공기가 실내에 들어와서 아래위로 돌아나가도록 하기 위한 설계로 분석되고 있으나 그 이상은 풀지 못하고 있다. 건물의 바닥은 맨 흙바닥으로 되어 있고, 천장도 반자(지붕 밑에 편편하게 막는 시설) 없이 지붕구조가 드러나 보이는데, 이는 습기가 바닥과 지붕 밑에서 자동으로 조절이 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원활한 통풍, 적절한 온도, 알맞은 습도가 맞추어지도록 설계하고, 판을 꽂아 놓는 판가(板架)도 이런 원리가 제대로 작용되도록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으로 배열하였음은 물론, 사시사철 문을 열어 놓아도 쥐새끼는 물론 날짐승 한 번 들어온 적이 없으며, 천정에는 거미줄도 쳐지지 않고, 좀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그 신비한 건축기술 때문에 중요한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경판고는 유난히 습기가 많은 가야산 계곡에 너무 습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건조해서도 안 되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을 동시에 해결하였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건축이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경판이 부식하게 될 것이며 너무 건조하면 나무가 뒤틀려 인경(印經)기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적당히 습한 상태’를 유지해야 경판의 변형을 막을 수 있다는 어려운 과제를 푸는 데 있어서 신라시대 이래 검증받은 경판보존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큰 몫을 차지하였으며, 이처럼 확고한 바탕 위에서 오로지 경판보존기능에로만 집중된 이른바 합목적적(合目的的)인 건축의 지혜는 실로 놀랄만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도 ‘기가 막힌 구조’라고 연거푸 탄성을 발할 정도이다. 이를 주거로서의 건축에 대입(代入)을 시키면 그 보존대상이 사람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시쳇말로 인간공학(人間工學)이다, 인체공학이다 하는 첨단적인 과학을 무색케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의 진수(眞髓)가 바로 여기에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기둥 하나를 세우는데도 주춧돌마다 밑의 땅을 1평 넓이에 6자 길이로 파 숯을 넣고 다져 습기를 흡수하게 하여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에 따라 땅 표면의 오르내림을 막아주고 있다. 또는 지세(地勢)에 따른 광선의 조도(照度)․풍향․풍속 등을 감안하여 서남향으로 앉힌 건물의 배치하며, 남북면 양쪽 벽에 아래위로 낸 살창문은 통풍과 방습에 완벽한 배려를 한 이 건물 최대의 특징이다. 벽마다 8개식 뚫린 이 살창문이 남향 벽에서는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북쪽 벽에서는 반대로 위가 크고 아래가 작게 설계되어 있어 경판고 안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후조절기능이 8만여개의 경판 하나하나에 예외 없이 골고루 미치게 하기 위해서 경판자체의 구조부터 그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다. 경판 하나의 규격은 길이가 64㎝, 폭이 22.7㎝인데 그 양곁에 붙어있는 마구리(목 3.8㎝, 길이 24.7㎝)에 입힌 놋쇠와 본판보다 2~3㎜ 두꺼운 턱이 부식과 파손을 막는데 전문용어로 말하면 장력완충(張力緩衝)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판을 비스듬히 또는 홑으로 세우거나 겹으로 쌓아두면 습기가 잘 타기 때문에 반듯하게 직각으로 두개를 세로로 이어 세워 배열함으로써 본판과 마구리 사이의 턱이 굴뚝 현상을 이루어 일종의 통풍로 구실을 하게 된다는 아주 치밀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기후조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곤충 등 각종 벌레나 곰팡이 등 미생물에 의한 피해를 막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경판의 재료인 나무선택에서부터 벌레가 덜 타면서 각자(刻字)에도 어려움이 적은 수종을 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자작나무로만 알려졌던 주 수종은 우리나라 산에 많이 자생하는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종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경판 표면에는 옻칠을 하여 벌레의 좀 피해를 막고 미생물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끼리 먹이사슬로 엉켜 도태(淘汰) 순환시킴으로써 현상태에서 자연적인 균형을 깨뜨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피해를 극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를 무리하게 제거할 때 요즘 사찰건축에 많이 들여와 쓰고 있는 외국 목재에 묻어 들어오는 미생물이 기존 미생물계의 힘의 공백을 이용하여 번식을 촉진시킴으로써 경판부식을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이태영(李泰寧) 박사(86. 전 서울대 師大化學科 교수)는 경고하고 있다.
서남향으로 앉은 경판고의 좌향과 살창문의 비대칭적(非對稱的) 배열 등은 실내 온도와 습도의 조절기능 이외에도 햇빛(照度)이 돌 때 경판에는 직사되지 않고 건물둘레만 삥 돌게 하여 실내에 생길 우려가 있는 결로현상을 미리 막는 구실도 한다. 심지어는 건물 둘레에 파놓은 배수구에 이르기까지 습도조절과 관계없이 건성으로 파놓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1993년경 갑자기 경판고 밑창에 창태(蒼苔, 푸른 이끼)가 끼는 현상이 나타나 경내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배수구를 정비한다고 시멘트를 처발라 매끈하게 다듬어 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면과 차단, 밀폐되는 바람에 빨대식의 사이펀(Siphon) 현상으로 물이 넘쳐 그 습기가 건물 밑둥을 침윤(浸潤)하여 나타난 현상임이 밝혀졌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기(禁忌) 중에 흙이나 오래된 물건, 건조물에 함부로 손을 대면 동티(地神을 노하게 하여 재앙을 받음)가 난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 이박사는 현대과학(化學)을 전공한 국제적인 학자이다. 그런 그가 현대과학이 원리적으로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보존에 에어컨처럼 위험천만한 것은 없다고 그 단점 또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전, 문의 여닫기, 전기불 한 등을 껐을 때의 온도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일견 미세할 것 같지만 그 연대에 비례해서 가중(加重)되기 마련인 피로도(疲勞度)를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판고 신축논쟁이 있을 당시 해인사측과 이박사 등 일부 학자들의 반대이유 가운데 현경판고의 설계 또는 건물배치의 완벽한 규명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바 있는데 지난 ’93년 이박사를 중심으로 구성, 발족된 ‘팔만대장경 보존을 위한 기초조사연구팀’의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팔만대장경과 경판각의 7백년 비밀의 장막을 아직 완전히 벗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자연친화적인 설계는 ‘자연에 순응하는 대목(大木)과도 같은 넉넉한 허용량’으로 곧잘 표현되는 우리건축의 특성인데 현대의 선진국 과학자들도 도저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서 우리 선조들의 높은 지혜와 우주에너지를 이용하는 ‘한 사상적=신과학적’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이런 놀라운 건물구조이므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건물 하나에도 수백 년을 내다보며 자연과 하나됨을 이룬 우리 선조들의 이런 놀라운 지혜와 설계 능력을 깨우치고 되살려 후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미래 인류사회에 도움을 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반면 이 판전에 보관된 81,258장의 대장경판의 글자 수는 무려 5천 2백만여 자로 추정되는데 이들 글자 하나하나가 오・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여 중국, 일본은 물론 유럽에까지 알려져 불교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아직 세계문화유산으로는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가능성을 점검하고 준비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그 바로 곁에는 1973년 신축된 오차(誤差) 제로의 최첨단시설을 갖춘 시멘트조 현대식 경판고가 지금은 그 본래 목적과는 달리 스님들의 수도처인 선원(禪院)으로 쓰이고 있다. 이 기이한 광경은 우리 고유건축과 현대건축의 우열(優劣)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험장이라고 이를만하다.
대체로 문화제가 마멸되는 이유로는 물리적인 작용, 화학 반응에 의해서, 또 생물학적인 영향 등 3가지가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수분의 촉매작용(觸媒作用), 즉 습기(濕氣)와의 싸움이다. 그렇다고 습기 하나만을 뚝 떼어가지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기온과 풍향(風向)․풍속․광선(光線)․좌향(坐向) 등이 상호 작용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종합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변화를 덜 주고 그저 그 자리에 그냥 놔두는 것 이상의 확실한 보존 방법은 없다’는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태영(李泰寧) 박사(86. 전 서울대 師大化學科 교수)는 석굴암 보수와 경판각 신축공사를 반대한 유일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1973년 봄. 경판고 신축계획을 둘러싸고 불붙은 찬반논쟁은 장장 5개월여나 계속 되었다. ‘화재에 약하다’는 이유로 당시 문화공보부가 앞장서 추진한 경판고 신축계획에 대해서 불교계와 이박사 등이 백지화를 요구한 이유는 ▲ 문화재의 보존은 현상불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일반원칙과 ▲ 콘크리트 건물은 벽면에 생기는 알칼리성 미립자 때문에 목질 등 섬유질 문화재의 보존에 치명적이며 ▲ 콘크리트 벽면에 생기는 많은 습기 때문에 실내의 습도가 높아질 우려가 크고 ▲ 실내습도의 기계적 조절은 습도계의 잦은 고장과 한계 때문에 난점이 있다는 것 등이었다. 이와 같은 반대이유는 건물이 완공된 뒤 그대로 적중하여 신축 건물로 경판 한 장 옮겨보지도 못한 채 당시로서는 거액의 예산(1억 8,000만원)만 낭비한 꼴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