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지성인이자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하여금 영성의 문지방을 넘게 만든 딸 이민아의 아주 특별한 신앙 이야기
진지하고 열정적인 신앙인의 특별한 영성 이야기
지난 2007년 7월 23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평생을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사유 행위와 지적 작업에 매달려온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개신교 계열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뉴스가 중앙 일간지와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 속에서 과연 이어령 전 장관은 세례 의식을 주관하는 목사 앞에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평소 공공연하게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던 그여서, 그의 회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어령 전 장관의 회심의 중심에는 그의 장녀 이민아 변호사가 있었다. 이민아 변호사의 망막 손상이 심해져 실명 위기에 처하자, 이어령 전 장관은 아버지로서 평소의 딸의 간청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던 것. 그는 세례를 받을 즈음의 애절한 심사를 다음과 같은 절제된 시로 남기기도 했다.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기적을 내려달라고 기도드리지 않겠나이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의 별 지상의 꽃을 보는 것이,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는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땅끝의 아이들』은 지독한 이성주의자였던 이어령 전 장관으로 하여금 영성의 문지방을 넘게 만든 딸, 이민아의 신앙간증집이다. 저자 이민아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아버지로, 그리고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를 어머니로 두고 1959년 장녀로 태어났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할 정도로 수재였던 이민아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그의 첫 남편은 국민의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한길 씨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수료하고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되면서, 성공한 교포로서의 삶을 살던 그에게 크고 작은 시련이 닥쳐온다. 먼저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았던 것. 이민아는 책 속에서, 절대적인 사랑을 줄 것 같은 아버지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유년 시절과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의 상처였다면서 그토록 일찍 결혼을 했던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파경에 이르자 그녀는 크나큰 절망감에 빠진다.
1989년 두 번째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하고 다시금 안정적인 생활을 꾀하던 그녀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시련을 통해 그녀의 신앙을 시험한다. 1992년 그녀에게 갑상선암 판정이 떨어진 것이다. 암은 이후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 재발되면서 이민아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유치원에 들어간 둘째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판정을 받는다. 이때부터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의 아슬아슬한 전선을 오가며 그녀의 악전고투가 시작된다.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고 있던 그녀는 1992년에 정식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도 10년 동안은 그저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신앙심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2002년. 세례 받은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그녀는 책 속에 정확히 2월 20일이라고 날짜까지 적시하고 있다). 미국 교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셔서 부활하심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내가 그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할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
저자는 세례를 받은 이후 10년 동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주님이 되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그전까지는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에는 성령의 기름이 부어진다. 하지만 또다시 하나님은 이민아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긴다. 망막 손상이 계속 진행돼 2006년에 이르렀을 때는 거의 실명 위기에 처했던 것. 평소 하나뿐인 딸로부터 끊임없이 주님을 영접하라는 청을 들어왔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애끓는 부정으로 이 무렵 회심을 결정하고, 상기한 것처럼 2007년 7월 23일 세례를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시금 신은 잔인할 정도의 혹독한 시련을 안긴다. 이민아가 첫 남편 김한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 유진이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지고는 19일 만에 황망히 세상을 뜬 것이다. 그때 겨우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고 버클리대를 나온 밝고 명랑한 수재였다. 큰아들을 잃은 이민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나, 이민아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영원히 부활하시는 주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본문에 의하면 큰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이민아의 기도에 21일을 약속하신다. 하지만 큰아들은 19일 만에 세상을 뜬다.
나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어떤 성도의 딸이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이민아는 그 아이를 위해서 성심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성도의 딸은 21일째 되던 날 의식을 찾고 말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본문에서 이민아는 장남을 묻고 묘비명을 정하던 날 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이민아의 꿈에 나타나, “이 아이가 지금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 슬퍼하지 말아라. 지금 기뻐하며 잘 쉬고 있다”라면서 이민아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 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이민아는 아들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바꿨다고 담담히 기술한다. “유진 김, 1982년 7월 29일부터 2007년 9월 4일, 아버지 집에서 이제 편히 쉬고 있습니다(Resting in his Father’s house)” 이혼과 발병과 참척 등 그녀는 거듭된 시련과 시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 공부, 제자교육, Q. T 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성령 사역과 치유 사역 등 각종 사역을 수행한다. 2009년에는 목사 안수를 정식으로 받고 미국의 각 주와 호주, 푸에르토리코, 중국, 아프리카 케냐 등을 돌며 사역과 전도 활동에 헌신했다. 실명 위기에 처했던 이민아의 시력은 2011년 기적적으로 회복된다. 이 책은 그녀가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 그녀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게 한 하나님의 역사, 그녀가 보고 들은 놀라운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구술 형식에 의존해서 정리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땅끝의 아이들을 만나다
저자는 책 속에서 아이들 문제에 많은 관심을 드러낸다. 그녀는 하나님의 자신에게 명령을 한 사역의 포인트를 청소년 사역에 정조준하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필연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둘째 아들이 심각한 자폐아 진단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가정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비행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업무를 맡는 동안 그녀 안에 축적된 모종의 소신과 사명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이 어린 시절, 너무나도 바쁘고 유명했던 아버지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 가족 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 아이들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로서 청소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심각한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들었다.
저자는 가족 구성원 간의 진정한 사랑과 커뮤니케이션은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마약이나 알코올, 폭력에 사로잡히는 아이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많은 부모들에게, 댁의 자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전하라고 하면서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부모 혹은 아이가 받은 상처를 당사자처럼 같이 아파하고 기도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선도하는 것을 직업적 소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린 영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여 폭력과 범죄와 마약에 빠져 신음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한다. 목회자로서 본격적인 청소년 사역을 벌인 것이다. 고가의 상담 비용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무료로 상담과 선도에 나서기도 한다. 책 속에는 이 아름다운 사역을 실천하는 동안의 저자의 열정과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그녀는 모든 사역에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중심에 놓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통해서 그 아이에게 전해질 때에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어요. (……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말라기서 4장 6절 말씀, 엘리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예언의 영,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는 영, 그 영이 가장 강하게 왔던 분이 예수님이시죠. 엘리아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오셨던 분입니다. 그 엘리아의 영이, 성령이 똑같이 우리에게도 임하면 그때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돌려지고,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돌려진다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 말씀이 저의 사역의 중심이 되는 성경 구절이 되었어요.”
책의 제목 ‘땅끝의 아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알지 못하는 가정의 아이들, 무관심과 단절 속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만 키워가는 아이들, 사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주길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희망과 관점이 담겨 있다. 아울러 ‘땅끝의 아이들’은 비단 청소년 혹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한에는 모두가 땅끝에 내몰린 아이들과 같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본문에서 아무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땅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땅끝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가 없는, 그래서 자기만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갇혀버린 사람들, 그들이 바로 땅끝에 선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저자는 이제 땅끝에 선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뜨거운 영의 언어를 통해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여타의 신앙간증집과 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간증집들은 저자 개인이 겪은 이적이나 기적의 부각을 통해 신의 소용을 개인적 구원이나 기복에만 한정시키지만 이 책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사역을, 자신의 이기와 편의를 희생해가며 실천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저자가 이 책에서 또한 공을 들여서 할애하고 있는 부분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 세례를 받고 미국에 있는 교회를 섬기면서 영적 생활을 해온 이유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한국 교회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많은 젊은 친구들을 세상에 빼앗겼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 말씀에 나오는 맹인 구걸자 바디매오의 믿음을 비유 삼아 한국 교회의 회복과 치유를 소망한다. “저는 교회가, 지금의 사역자들이 예수님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 그 사람들이, 믿음의 고백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를 보여주시는 베데스다 연못의 예수님 같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바디매오가 소리 지를 때, 멈추어 서는 예수님과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네가 나아가서 빛이 되어서 어둠에 가서 저들을 빛으로 사랑으로 이겨라 하고 세상을 향해서 걸어 나가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9장, 마지막 추수 소리)
다시 말해 저자는 한국 교회가 지나친 외형적 발전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바디매오처럼 가난하고 천하지만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진 이들을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 교회에 임해, 진실로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책속으로
“아버지가 굉장히 저를 사랑하셨지만 스킨십이나 안아주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유교 가정에서 자란 분이시고 점잖으신 분이시니까 사랑 표현을 잘하지 못하셨어요. 저는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는 애였는데요. 따뜻함이 그리웠어요. 아버지가 큰 팔로 저를 꼭 안아주시면 그 따뜻한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항상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어렸을 때 제가 시도를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안아달라고 아버지한테 몇 번 엉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귀찮게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몇 번 밀어내셨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것이 일생 동안 저를 공격하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어요.
아버지에게 안기고 싶고, 아버지와 몸이 닿고 싶어서 무릎에도 앉으려고 아버지를 끌어 잡아당기기도 하다가 밀려나면서 저에게 ‘이 아버지의 사랑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항상 주는 완전한 사랑이 아니구나’ 그런 거부당한 느낌을 몇 번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를 이렇게 사랑하면 안 되겠다 하는 당돌한 결심을 어렸을 때 했었나 봐요. 아빠를 너무 사랑하니까 상처가 된 거지요. 하루 종일 아빠가 보고 싶은데, 아빠가 오면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가 자기가 놀고 싶으실 때는 놀아주시는데요, 바쁠 땐 안 놀아주시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너무 아빠랑 있고 싶은 거예요. 아빠와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해야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다가 벨 소리가 나면 ‘아빠!’ 하고 팔을 들고 뛰어가서 매달리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돈 걱정이나 장래에 대한 불안 등 당신이 겪었던 두려움을 아이들에겐 안 주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사랑의 표현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직업을 세 가지나 가지고 계셨어요. 작가, 교수, 논설위원,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셨던 분이어요. 제가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 셋이 서로 관심을 끌려고 매달리면 너무 힘들어서 저도 아이들을 밀어내고 나서야 ‘그때 아버지가 이러셨구나’ 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 하는데 아버지는 시장하고 피곤하셨기 때문에 ‘저리 가, 저리 가. 아빠 밥 좀 먹고!’ 저의 아버지가 음성이 좀 크시거든요. 아버지는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데 저한테는 그게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 아빠가 나를 안 사랑하나 봐, 하는 거짓말이 저에게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실망해서 내일부터는 절대로 아빠한테 매달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어요. 이런 마음의 상처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예배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딸들, 딸들의 아버지에게」에서
아무도 다다를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땅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땅끝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항상 이 세상에서는 안식처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나 세상에서 원하는 기대치와 달랐기 때문에 제가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저를 잃어버렸어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 자신이 싫고 그래서 사랑을 받을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는 완전히 자기만의 방안으로 들어가서 갇혀버린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이 땅끝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땅끝에 있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곳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사람이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을 할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쟤가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지금 이 세상에서 소외되어서 자신만의 동굴 안에 혼자서 숨어 있는 그런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이 아이들이 자살까진 하진 못하죠. 그러면 그 아이를 묻어두고 어른이 되죠. 어른이 되는데, 진정한 사랑이라든지 어떤 창조력이라든지 이런 것을 거기다 같이 묻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지옥이라는 곳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단절되다가 나중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되는 그 장소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고 땅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땅끝에서 만난 하나님의 아이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