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제철에 다녀와서>
김현숙
아침상을 차리느라 냉장고 문을 여는데, 어제 다녀 온 포항제철소 열연 공장의 그 불덩어리가 눈에 어른거린다. 날마다 수없이 여닫는 냉장고의 미려한 겉옷부터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될 천안함의 갑판재료까지 그렇게 뜨거운 가슴으로 일궈낸 것이라니! 내가 돈 주고 산 것은 당연히 내 것으로 알았다. 그것에 이의를 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철이 들었나? 내가 쓰고 있는 것들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마음이다. 이제까지 모두 남의 덕, 남의 힘으로 거저 살아 온 느낌이다. 포스코 역사관을 돌아 나오는 말미에 먼저 다녀간 견학자가 남기고 간 한 마디는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철들고 갑니다.”
“철과 사람이 만나는 곳, 그 곳에는 어디나 포스코가 있습니다.” 영상홍보실에서 자막으로 떠올랐던 글귀를 생각하며 견학차량에 올랐다.
116m고로가 4기, 300년 제철 역사를 바꾼 획기적 차세대 친환경기술이라는 파이넥스 공장이 둘이 있고 쇳물을 운반하는 용선차가 달리는 철로의 길이는 42.6km라고 한다. 수입한 원료운송벨트의 총길이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은 320km에 달한다는 설명을 듣는 사이, 방풍림의 길이만도 10km라는 야적장을 지났다.
일관제철소! 열연코일과 후판을 생산한다는 압연공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압연공장 견학자 통로로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쇠’하면 칼, 도끼와 대장간 대장장이, 거기다 감성을 곁들인다면 대장간의 합창을 연상하였던 게 고작이었던 나는 공장 안을 일별하는 순간 입이 벌어졌다. 그 너른 공간에 대장장이는 오간 데 없고 단지 쇠의 천지였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철모를 쓴 회색 작업복 차림의 역군들이 몇 사람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어디를 보나 쇳덩어리들 뿐이다. 저 엄청나고 빈틈없는 설비들이라니! 벌어졌던 입이 닫히기도 전에 ‘아!’ 신음같은 탄성이 절로 터졌다. 맞은 편 벽면 아래쪽, 사자 입 같은 구멍에서 거대한 직사각형의 불덩이가 주르륵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저게 쇳덩어리란 말인가! 쇳덩어리의 색깔이 저리 고울 수 있을까? 빼곡하게 들어찬 롤 위를 우르르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숨고르기를 하듯 잠시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압연기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마치 넓이 뛰기 선수처럼. 동시에 압연기 위에서 폭포같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았지만 그 붉은 몸은 여전하다. 다시 압연기 밑을 되돌아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롤 위에서 춤을 추던 열판은 다음 여정을 위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온 몸을 휘감는 열기는 쉬 사라지지 않는다.
저 붉은 몸은 바로 암울했던 그 시절,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황폐했던 시절, 제철보국의 꿈을 꾸던 그 가슴들 아닐까!
‘포스코의 혼’이 되었다는 ‘우향 우! 정신’
모두가 “안 된다!” 고, 신문마다 지면이 좁다고 반대하기에 열을 올렸던 대한민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 건립문제. ‘자본부족’ ‘기술부족’ ‘시기상조’ 가 그 반대하는 이유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그냥 수입해다 쓰자!’ 외국에서는 ‘그냥 수입해다 쓰라!’ 고 했단다.
그러나 꺾이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길만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확신했기에.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제철보국의 염원이 그렇게 뜨거웠을 것이다.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바꿈을 꿈꾸던 그 역사적 출발에는 당시의 나라 최고 지도자의 혜안과 결단이 있었고 그 결단을 온 몸으로 일구어 낸 지금의 박태준 명예회장이 있었다. 그는 온 몸을 불사르듯 뛰었다. 회사 가족들 역시 함께 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포스코를 있게 한 ‘우향우! 정신’ 때문이다.
“선조들의 핏값과 같은 자금! 만약......, 만약에 실패하면 우리는 선조들께 낯을 들 수 없으니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죽자!” 고 다짐했다 한다. 지금 이글을 쓰는데도 가슴이 메어온다. 역사관에서 듣던 고로 속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1500℃ 고로 속에서의 내열수명이 15년이라고 하는 내화 벽돌이 3기째라고 하니 포스코의 40 여 년 역사와 맞아 떨어진다. 고로 속의 열기, 그것은 바로 일관제철소를 건립해야 했던 절대 절명의 열기였으리라.
일찍이 철기문화를 이루었던 오래 전 선조들의 피가 오늘 포스코의 고로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 아닐까?
“어룡사에 대나무가 우거지면 포항의 30만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학자 이성지는 그렇게 읊었다고 하니 그는 신의 소리를 들었을까?
바라보이는 것은 모래 뿐, 온 몸을 휘감고 할퀴는 것은 바람뿐이던 포항에 주ㅡ욱 죽 하늘로 솟은 포스코의 굴뚝이 대나무가 되어 그 예언을 훌쩍 뛰어 넘는 현실을 이루었다.
이제는 인구 52만 포항의 자랑이요, 포항시민의 삶 그 한 가운데에 포스코가 서 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 그 철강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포스코는 우리나라의 긍지요, 소리없는 변화를 주도하며 세계 철강 산업의 중심에 서 있음을 본다. 세계 제1, 제2의 제철소로 태어난 포스코는 이제 세계인의 것이다.
아울러 문화기여에 주력하고 사회와 함께 가기를 꿈꾸며 실천하는 포스코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견학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글자판이 포스코를 소리없이 웅변하고 있다.
STEEL ㆍ NATURE ㆍ PEOPLE
<나그네의 마음>
44대 미대통령 오바마의 취임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흩어진 쌀알들을 줍고 있다.
서랍에서 계량스픈 다발을 꺼내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던 13개월짜리 손자가 아장거리며 달려가 문을 연 곳은 쌀통이었다. 식사준비 할 때마다 그 손자와 작을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쌀을 만지고 흩뜨리는 것을 아주 즐거워하던 아기로선 꽤 좋은 생각과 기회를 얻은 것이리라. 쌀을 퍼내기에 알맞은 도구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쌀은 사정없이 흩어지고 내게 군일이 되었지만 궁리하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그 군일이 싫지 않았다. 원, 이런.......! 저 어린 머리로도 그릇의 적당한 용도를 생각하건만 우리는 어떠한가? 자신들의 크고 작은 살림들을 맡을 그릇 선택에 저 어린 지혜에도 못 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튀어 오른다. 우리는 번번이 속은 것 같아 안으로는 자책과 실망을, 밖으로는 비웃음과 모멸을 감내해야 했다.
미국 국민은 이제 이 절박하고도 아찔한 시대의 그릇으로 오바마! 그를 선택한 것이다.
1862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부터 여기까지 147년. 가죽채찍으로 온 몸에 문신을 당해도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스크린을 덮었던 켄터키의 그들. KKK단의 백인우월주의의 횡행, 흑백갈등의 심화는 말틴 루터 킹을 일으켰고, 말콤 X를 탄생시켰다. 그 자체로 당장의 결실은 없었지만 대설원에서 서서히 녹아 흘러내린 생명의 물줄기처럼 그렇게 흘러내렸나보다. 1964년, 미국유학을 마치시고 모교의 우리교실의 로 돌아오신 어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 저 밑에 남아 있다.
‘언젠가는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그 후 ‘언젠가는’이 ‘머지않아’로 다가섰다. 길고도 치열했던 선거전 벽두에 그는 혜성처럼 나타나 TV화면을 통해 세계인의 안방에 드나들었다. ‘설마 저 흑인이......?’ 하던 것이 ‘혹시?’로 그 혹시가 ‘아마’로, 아마는 ‘확실시’의 수순을 거쳐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섣부른 저울질이 필요 없는 지지율 80%를 이끌어내면서. 전 세계인의 이목이 한 몸에 쏟아지던 그 시간, 그는 어색하지도 생소하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섰다’는 그는 당당하기만 했다. 그 색깔로 인해 슬픔을 안겼던 검은 색은 오히려 믿음의 무게를 더해 주는 것 같다. 노구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의 뒤에 둘러섰다. 나그네의 마음에는 일단 선거 결과에 승복하며 축하의 대열에 선 그들은 정적이 아니라 막강한 후광으로 보였다.
이 나라의 정치에 식견이 없는 사람, 더구나 나그네 이국인에게 그 취임식 광경은 그저 잠깐의 구경거리뿐일 수 있다. 코끼리 더듬는 것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겠다. 하지만 느낌만은 어쩔 수 없다. 일련의 부러움이랄까, 자성이랄까? 저들은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사람을 키워내고 있구나! 나아가 일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일구어나간다는 것, 아무리 못해도 그릇이 깨지도록 흠집 내지는 않는다는 것 등의 느낌과 생각이다. 그것이 고도로 계산된 것인지 길들여진 국민성인지 아니면 개인적 품성인지 분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나그네 길의 도리임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사랑하는 기술을 익힌 사람들인 것 같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함께 가꾸어낸 아름다운 한 그루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색깔에 의해 나누어진 승패가 아니매 이제 저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키워나갈 것이다.
저들이 선택한 오바마, 그의 취임 연설은 ‘화해, 경고, 책임, 봉사’로 요약된다고 한다.
그의 호소에 청중들은 환호하고 열광하였다.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이 노래말은 켄터키의 옛집을 그리던 그 옛날의 검은 얼굴들이 아니라, 이 지구 위의 우리 모두가 함께 불러야 할 영가가 되어버린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들이다.
약력
광주문예연구회 부회장
전 초등학교 교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