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가운데서 일어나는 베드로
사도행전 1장 15절 - 19절 2014년 7월 9일 수요일 말씀지
아들 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나보고 열심히 예수 믿어 천국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삼위되신 하나님을 잘못 아는 자들입니다.
이미 하늘에서 택하셨고 (엡1:4) 성자의 영원한 구원을 입혀서 (딤후1:9) 열매 맺다가 생명역사를 하다가 첫째부활을 거쳐서 영광성에 들어오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계21:24)
그런데 그 영광에 합당한 열매도 한 생명 살리는 생명역사도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슥4:6-
왜? 구원해 놓고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시나요? 교만치 않게 하시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가나안 칠족과 같은 쑥 뿌리 같은 원죄를 두셨고 연약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의 유혹에 잘 넘어가기 때문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을 잘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택 자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연약한자로 우리의 힘으로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자로 가죽옷 입혀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신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이 어떻게 그 영광을 얻는가? 그것이 바로 복음과 진리인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밝히 분별케 하시는 사도행전입니다. 성경적이 아니면 잘못된 자들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 충만 받기 전 베드로가 앞서서 예수를 팔은 가룟 유다의 죽음 후에 맛디아를 제비뽑아 그 수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실상은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준비하셨는데 성령 충만치 못한 베드로가 또 앞서 행함으로 실수를 범하는 것을 나타내주십니다. 누구나 성령 충만한 생활을 매일하지 못하면 이처럼 베드로처럼 또 내가 앞서 행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15절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 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예수님 이후 열두제자의 10배가 넘는 숫자가 모이게 하셨습니다. 성령시대가 시작되어 복음을 알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데 다락이 얼마나 컸나요? 아마 복잡했을 겁니다. 그리고 더운 때입니다. 남녀가 10일 동안 불편했을 겁니다.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잠자는 것 등등 물론 집이 가까운 분들은 왔다 갔다 했겠지요.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하셨는데 그럼 잠도 안자고 기도만 했나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모여서 말씀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엡5:18-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나서 성령의 역사로 기도하고 일어났나요? 또 자기 열심이 앞섰나요? 결과를 보면 압니다. 제비 뽑힌 맛디아는 그 사역을 기록하시지 않음으로 영광성 문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혔는데 맛디아의 이름일까요? 사도 바울의 이름일까요? 계21:14-
베드로가 일어난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나타내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성경은 다 진리지요 그러나 거짓을 나타내시려 창세기에 뱀의 말, 가인의 말, 롯의 말, 심지어는 발람 때 나귀의 말,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의 말, 새 뱀인 바리새인들의 말을 나타내주신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면 누구나 거짓을 분별치 못하고 속아 넘어갑니다. 욥34:36-
16절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경 지식이 하나도 없는 베드로가 아니라 시편의 말씀도 잘 아는 베드로인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성경이 성령으로 기록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 것까지도 아는 자라난 베드로입니다.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죽은 일은 이미 다윗을 통하여 성경대로 이루신 역사까지 보고 있지만 앞으로 사울을 거꾸러뜨려 사도로 쓰실 그 일은 보지 못하는 베드로인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설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잘못배운 자들이 아가서에 예루살렘 여자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열심으로 설치는 것입니다. 아2:7-
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에 참여하여 이 사람 가룟 유다가 자기들과 같이 제자 된 이유를 밝히 보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도 택자요 영광 받을 자로 생각하였습니다. 마태 (마10:4)는 팔고 나서야 알았지만 사도 요한은 이미 밝히 보고 팔자라 나타낸 것입니다. 요6:64-
이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가룟 유다를 예수님은 제자로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베드로는 궁금해진 것입니다. 의심이 들어오면 기도가 잘 안 됩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의문이 있을 줄 알고 일어나 성경을 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기다리면 다 될 일을 나서서 하는 베드로인 것입니다. 사무엘 때에도 기다리면 다윗을 세워 주실텐데 백성들은 성급하였고 만류하는 사무엘을 뒤로 제치고 사울을 왕으로 세워달라고 고집하였습니다. 삼상8:5-
오늘날 시간마다 양식으로 부지런히 받으면 다 깨닫게 하시는데 성급하게 나서서 질문 하는 분들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꼭 베드로 같은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나 직분자 세우는 일에 인본주의로 성급하게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잘못 세운 직분자들로 인해 교회가 어려워집니다. 바로 베드로가 성령 충만 받기 전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는 성령이 충만하였으나 안디옥에 가서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내려오므로 먹지 않는 척하고 외식하였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갈2:12,13-
그때에는 베드로가 일시적으로 성령으로 충만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매일 계속적인 것입니다.
18절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재정을 맡았는데 그 재정에 손을 대고 물질만 탐하던 가룟 유다였습니다. 사도 요한으로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요12:6-
정직하고 성실하게 벌은 돈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물질이 되어 열매를 맺는데 생명역사에 쓰이지만 지나친 욕심을 부려 속이고 빼앗고 남을 해롭게 하고 벌면 불의의 삯이 되어 올무에 걸려 일만 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딤전6:9) 지금 구원파에 유병언은 목사가 아니라 돈에 환장한 기업의 회장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부하고 높은 자되게 위하여 목사라는 직분을 이용한 발람 같은 자입니다.
몸이 곤두박질쳐서 그것은 거꾸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온지라 물질 욕만 부리며 배를 신으로 삼다가 그물질 다 쓰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엘리야 때 아합 (백부) 왕은 죽을 때 병거에 피를 못에 씻을 때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게 하셨으니 개처럼 더러운 이를 좋아하며 창기처럼 살았다는 것이요 왕상22:38-
왕비 이세벨은 (고상함) 창문에서 던져져 개들이 그의 시체를 뜯어 먹게 하심으로 더러운 이를 탐하여 교활하게 행한 여자로 저주 받은 자인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왕하9:35-
19절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영적으로 1.그 몸을 성전 삼고 사는 자들이요 2.날마다 양식을 받는 자들이요 3.신부의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요 4.영광성에 들어가 영광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들은 불 택자를 통하여 이루신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 불 택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미리 아신 자가 있으면 아시지 않은 자도 있는 것입니다. 롬8:29-
② 불 택 자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이용되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마26:50-
③ 환난이 끝날 때까지 함께 불 택자도 공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④ 이미 말씀하신 대로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며 시41:9-
⑤ 불 택자들의 말로처럼 범죄자들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겔다마라하니 이는 곧 피밭이라 나그네의 묘지로 그 밭이 사용되었는데 나그네는 집이 없는 자들입니다. 모든 인생은 이 땅에 나그네로 왔습니다. (벧전1:17) 그러나 영광 받을 성도는 그 영광거리를 가지고 영광 집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가룟 유다는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육신이 죽음으로 무덤에 묻힌 후 끝인 것입니다. 불 택 자는 집 지을 때 사용하는 아시바와 같습니다. 집을 지을 때 아시바를 이용해서 건축 재료도 운반하고 작업도 하지만 집을 다 지은 다음에는 그 비계(飛階)(아시바리)는 다 치워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지 않음이 저에게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살면서 기쁨도 없고 고통만 당했으니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없는 자라는 것이지요. 왜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6:6-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것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나서 인간으로 기본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했습니다. 앞으로도 누구라도 신앙을 팔아먹고 믿음을 버린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심지어 예배당을 내 것처럼 팔아 상당한 유익을 보는 것은 생명역사에 손해를 주는 것이요 비참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주장하시며 교회의 머리십니다. 교회(성도)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성도) 에 손해를 주면 예수님께 손해를 준 것이 되고, 예배당(건물을 팔면서 교인까지)팔아먹으면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이 됩니다. 엡1:22-
이미 가룟 유다의 배신은 스가랴선지로 예언하신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슥11:12,13-
마태로는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마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