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2장
불자님들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섭게 몰아치던 한파에 더욱 힘든 것은 가족 간의 갈등입니다.
특히 부부간의 갈등은 이 겨울을 더욱 길게 만듭니다.
오늘은 부부간의 갈등에 대한 주제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며칠 전 어떤 보살님이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불자님들 이 추위에 먼 길을 오시느라 매우 고생이 많습니다.”
“스님 저희들은 김포에 있는 어떤 보살님의 소개로 상담 받으러 왔습니다.
저의 둘째아들 문제로 상담하고 싶습니다.”
“ 네, 아드님이 몇 살인가요?”
“ 32살 닭띠입니다.”
“ 아드님의 결혼 문제인가요?
“ 네 둘째 아들이 형보다 먼저 결혼을 했는데 부부사이가 나빠 지금 합의이혼을
신청해서 법원결정이 났습니다. 이제 구청에 신고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인데
접수기일 2주정도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왔습니다.”
“ 보살님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혼한다고 합니까?”
◇ “ 아이들이 결혼한지는 삼년이 다되어갑니다. 그런데 사실 결혼 전부터 서로 자기주장들 이 강해 계속 다투어 왔는데, 이제 한계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아드님이 무슨 일을 하십니까?”
“네, 인내심이 부족해서 직장은 다니지 못하여서 지금은 24시 편의점을 하나 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아드님의 불만은 무엇이라고 하든가요?”
“아들은 며느리가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지 않고 가식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는 성격이 매우 직선적이고 감정표현을 잘합니다. 애교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아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이 편의점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스스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집에서 살림만 살고 돈은 남편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자기도 좀 쉬면서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데 며느리가 도와주지 않아 많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알바를 쓸 수 있지만 아들은 매우 검소하고 알뜰한 편인데 며느리는 사치를 즐기며 돈도 기분 내키는 대로 쓴다는 것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이혼을 결정하게 된 직적접인 동기는 무엇이라 하던가?”
“네, 1년 전 아들부부가 자동차로 여행을 갔는데, 24시 운영하느라 피곤하니까 아들이 계속 운전하지 말고 며느리가 운전을 교대로 하라고 내가 부탁을 했는데, 며느리가 운전교대도 해 주지 않고 가면서 계속 카톡이나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운전교대하기를 부탁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카톡 내용이 결혼 전 남자 친구라는 것을 알고 아들이 격분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다투다가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네, 그렇군요. 아드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며느리는 왜 이혼한다고 하는가요?”
“아들이 자기 고집만 피워 대화가 잘 되지 않으며, 특히 결혼 후 1년부터 아들이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왜 그렇게 하였는가했더니 진정으로 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가식적으로 하는 것 같아 안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 며느리 입장에서도 보면 참으로 힘든 상황이 되었군요. 이혼 사유가 될 것 같군요. 보살님이 그 상황을 지켜보느라 매우 힘들었겠습니다.”
“스님, 그런데 아이들이 지금도 서로 만나 식사도 합니다만 결혼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서로 고집을 피웁니다.”
◇ “ 보살님, 그러면 아드님의 경우 며느리가 어떻게 하면 결혼생활을 다시 하고 아내로서 받아드린다고 합니까?”
“ 우리 아들은 며느리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굽히고 들어오면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 그러면 며느리 입장에서는 아들이 어떻게 하면 결혼생활을 다시 할 수 있다고 합니까?”
“ 아들이 마음을 열고 자질구레한 것을 가지고 집착하고 따지지 않으면 다시 결합할 용의가 있는데 남편이 너무 옹졸하고 폭이 좁아 실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님 ”
◇ “ 보살님 잘 알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철이 든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이 다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철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드님이 나이 32살이 되고 며느리가 31살이 되었다하더라도 철부지 중의 철부지라 하겠습니다. 구급환자를 실은 자동차가 외길에서 만났을 때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결국 환자는 치료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누군가 뒤로 물러나 양보를 해야 합니다.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만일 위와 같이 아드님이나 며느리가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피운다면 몇 번을 결혼해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이들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부란 서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대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아만심에 가득차서 자기감정 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안타깝게도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늘 1등을 강요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것만 학교나 가정에서 배워 왔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사회와 부모들이 이런 아이들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겠습니다.”
“ 스님,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보살님, 다행히 구청 접수기간이 2주 남아있다고 하니 그 전에 아들부부를 정토사에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깨우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가야 결혼생활은 물론 이 세상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일깨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스님. 결국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네요.
스님 감사합니다. 조만간 아들부부를 데리고 다시 스님을 찾아뵙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자신의 잘 못은 잘 보이지 않고 상대의 잘못만 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사실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의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나쁜 사람으로 치부를 해버립니다.
그러나 이 우주 속에 그 어떠한 것도 이유 없는 것이 없습니다.
태국의 영적 스승인 아잔차의 제자 아잔브라흐마 저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잔브라흐마의 젊은 시절 가난한 스님인 아잔브라흐마는 스님들이 거처할 절을 손수 짓습니다. 그래서 벽돌 쌓는 기술을 먼저 익힌 후 한 장 한 장을 정성을 다해 벽돌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 듯 벽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스스로 감탄하여 그 벽을 바라보는 데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게 놓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 2장의 벽돌을 쳐다보는 순간 벽전체가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시멘트가 굳어버려 도로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벽을 헐어버리고 다시 짓고 싶은 생각이 들어 주지 스님에게 그 내용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으며 벽돌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절을 완성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절을 방문하게 되면 그 스님은 벽돌 2장이 신경이 쓰여 괴로웠습니다. 벽돌 2장을 자기가 스스로 막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방문객이 절 안을 거닐다가 하필이면 그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무심코 한 마디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벽이군요!”라는 말을 하자 그 스님은
놀라서 “선생, 혹시 안경을 차에 두고 오셨나요? 아니면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 보이지 않나요?”라고 말하자 그 남자가
“ 물론 내 눈에도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한 998개의 벽돌들도 동시에 보입니다.”말했습니다.
그 순간 아잔브라흐마 스님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벽에 대한 자신의 시각이 잘 못되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스님은 많은 정신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의 시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늘 두 개의 잘못된 벽돌이 눈에 들어와 그 벽을 바라보기만 해도 폭파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훌륭하게 쌓아올린 다른 벽돌을 함께 바라볼 수 있으니 그 벽은 흉한 벽이 아니라 아름다운 벽으로 변해보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잔브라하마는 ‘2장의 벽돌이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나머지 99%의 잘된 벽돌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프게도 잘못된 2장의 벽돌을 바라보며 자신을 비하하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보다 아내의 잘못된 부분이 눈에 들오옵니다. 아내는 남편의 잘못된 부분만 크게 확대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서로 상대의 허점을 비난하고 골몰하다가 결국 이혼이란 파탄의 길로 들어갑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잘 못을 반성하되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남의 장점을 자꾸 생각해내고 칭찬을 하며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면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2장의 잘못 쌓은 벽돌보다 998장의 더없이 훌륭한 벽돌을 생각하며 이세상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정토사(개운선원)
정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