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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국민강좌]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과 정신
이종호 | 과학저술가, 프랑스 과학국가 박사
우리의 유산 중에는 과학성이 증빙될 수 있는 유사보다는 풍수지리나 제사, 사주팔자나 부작, 장승이나 솟대, 도깨비 등 정신적인 문화유산의 경우 과학성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많다.
과학기술연구소에서 미국 LA의 항구입구에 세워진 ‘우정의 종’을 만들기 위해 에밀레종을 복제하면서 '이 종을 만들 당시의 선조들은 컴퓨터나 크레인, 자동주물 주입기 등 기계설비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선조에게는 무언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우리문화유산의 과학성을 연구하며 각 국의 국립박물관을 볼 때면 새로운 세계에 감명을 받곤 했다.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이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세계를 압도할 만한 과학으로 뭉쳐진 우리문화유산이 많다는 느낌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문화유산은 과학성도 없이 초라하기만 하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제작방법이라든가 작동 방법 등 과학적인 설명을 구체적으로 적은 자료가 거의 없다. 기술적인 내용을 기록한 것일지라도 그림도 많지 않고 띄어쓰기가 없는, 한자로는 실물이 없는 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수많은 자료들이 전란이나 관리 소홀로 거의 파손되거나 멸실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 자료를 파괴하거나 훼손 한 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조선 왕조는 정권을 잡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그리고 36년 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시킨 것은 물론, 중요한 유산들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 남아 있어 당초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것과는 전혀 다른, 왜곡된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들은 물론 소소한 과학적 기구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는 유산 자체가 우수한 이유도 있지만, 우리 것에 대한 기술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의 문화는 과거부터 많은 연구가들의 분석 자료로 많은 정보가 곧바로 유입되었으므로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영국에 있는 거석인 스톤헨지와 같은 돌들이 갖고 있는 과학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만 전 세계의 2/3에 달하는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있으며, 세계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매우 큰,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우리나라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보 부족이 과학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과학성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우리는 과거를 잘 잊는 것에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설화의 시작을 보면 ‘옛날,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 ????’ 로 시작된다. 이것부터가 문제이다. 호랑이는 오래 전, 6천만 년 전에 지구에 태어났다. 그러나 담배피던 시절은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부터이니 우리나라에 아무리 빨리 들어온다고 해도 450년을 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500년 이상 된 과거는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보릿고개를 면한지 2-30년 밖에 되지 않았고 먹고 사는데 급급해서 우리 것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으나 5백 년 전에도 선조가 있었고 5천년 전에도 선조는 있었다. 그 선조들의 과학성은 무엇인지 눈여겨보아야 할 일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자체가 과학이다. 과학성이란 포석정이나 아름다운 에밀레의 종소리처럼 수학으로 풀 수 있어야 되고 수학으로 풀리지 않더라도 계나 부작, 판소리, 고스톱 등 인문과학, 정치과학, 경제과학이란 제도와 틀로 풀 수 있어야 과학성이 있다고 본다. 인간 탄생 이후, 이빨을 쑤신 흔적이 발견 된 것으로 보아 200만 년 전 인간 최초의 과학발명품은 이쑤시개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채식을 하다가 육식을 하고부터, 동물과는 이빨의 구조가 다른 인간의 치아에서 찌꺼기를 제거해야 했던 것처럼 인간의 불편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불편을 개선하는 과학의 힘으로 제일 이로운 것은 스스로 믿는 신념의 피그말리온 효과와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이 효과는 약보다 더 잘 듣는다는 보고가 있다. 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심리치료제 역할을 과학으로 볼 때, 미신이라 일컫는 장승이나 솟대도 엄연히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승이나 솟대의 기원은 약 3천년으로 본다. 시베리아의 오르도스 지방은 지금도 장승과 솟대나 성황당이 그대로 전해 오고 있다. 장승과 솟대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10-20년마다 다시 만들어 세워야 했다. 20년을 주기로 다시 만든다고 가정할 때 3천 년간 150여회의 제작을 하며 사람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면 긴 세월 전해 왔겠는가? 서양인들이 미신으로 본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이로움을 주고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문화로 편안함을 주었다면 그 제도는 과학이고 우리 문화유산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으로 보존되어 온 족보는 친척의 이름자만으로도 금방 순위를 알아볼 수 있는 대단한 문화이고 자부심을 높이는 과학의가족제도이다.
가끔 외국 사람들로부터 제일 먼저 질문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세계를 상대로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사람마다 선정 기준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항상 석굴암, 포석정, 산삼이라고 대답한다.
석굴암은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해발 565미터에 있다. 신라의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735년에 세운 것으로 40개의 불상이 있었으나 앞의 좌우 첫 번째 감실 2개의 불상을 일본인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현재 불상의 수는 서른여덟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높이가 3.4미터에 이르며 대좌까지 합치면 5미터나 되는 큰 불상이다.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부드럽고 세련된 솜씨의 석굴암은 세계 문화유산에 들어있다. 신라의 석굴암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신라 사람들이 지혜와 재능을 짜내어 만든 종합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수많은 조각상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고 실제처럼 아름다운 옷 주름이나 동남아의 수많은 불상, 불탑과 정교한 인물상들의 조각을 보고 대단한 유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재료는 진흙과 같은 석회석으로 조각하기가 쉬운 것이지만 석굴암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다이아몬드의 강도가 10이고 화강암의 강도가 7이니 그 단단함을 짐작할 것이다. 거기다가 화강암은 결대로 쪼개지는 습성이 있어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 돌이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제작 과정을 거쳐서 완벽한 배율과 아름다움이 갖추어진 석굴암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세계 어느 문화재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인도의 불상들이 동굴 안에 많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그 지역의 기후가 더워 땀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기원전 1세기경의 신라는 불상을 인위적으로 동굴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석굴암은 건축물이라는 특징도 있다.
포석정도 경주를 직접 찾은 사람들은 매우 실망한다. 규모가 너무나 작다는 뜻이다. 원래 포석정이란 고래 모양을 따라 만든 수로로 물을 흐르게 한 후, 물위에 띄운 술잔으로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도록 만든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회전식 초밥테이블과 같다. 술잔이 자기가 앉은자리 앞으로 오면 옆에 놓아 둔 술을 술잔에 따라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짓는데 시간이 늦거나 제대로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셨다고 한다. 포석정의 측벽은 다양한 크기의 63개 석재를 이용해 만들었는데 높이는 20센티미터 정도인데도 폭은 15센티 정도로 매우 안정된 구조로 미세한 경사까지 설치하여 흘러나가게 되었다. 특히 이포석정은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술잔이 사람 앞에서 맴돌도록 설계되어 잔이 흘러가다가 어느 자리에서 맴돌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체역학적으로 와류(渦流:회돌이)현상이 생기도록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이 회돌이도 구조가 다르게 만든 것은 신라의 선조들이 유체이동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현대 과학으로도 공학적인 면에서는 가능한 한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회돌이 현상을 오히려 역으로 자유롭게 나타나도록 설계하였다는 점은 포석정에 대해 아무리 과찬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조들의 이러한 과학적인 업적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매년 봄이 되면 고가의 산삼을 캤다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한다. 수백만 원에서부터 심지어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산삼은 고사리과 식물과 같이 은생식물(隱生植物)로 보통 백년 이상 된 것을 산삼이라고 칭한다. 산삼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산삼도 보통 작물과 마찬가지로 초본식물이지만 수백 년을 살 수 있어서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삼은 1981년 백두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500년가량 되었다고 추정하며 북경의 인민대회당에 전시되어 있다. 산삼이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수백 년을 사는 동안 환경이 좋지 않으면 잠을 자면서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잎이나 줄기가 없이 뿌리만 땅속에서 수 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것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땅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이다. 산삼의 특성은 재배적지에 대한 선택이 강하여 기후나 토질 등 자연 환경이 적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산삼을 재배하는 일이 아주 어렵다. 재배 인삼의 경우도 생산지에 따라 인삼의 형태, 품질, 약효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유독 몇 백 년을 생존할 수 있는 한국 산삼이야말로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학작품에서의 과학성
정보부족이지만 우리의 신화나 전설 또는 문학작품에도 과학성이 깃든,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이나 과학적 관찰력을 엿보이는 내용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미래에 대한 식견이나 과학적 사고 없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흥부전』을 보자. 흥부의 집에 둥지를 튼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에 의해 제비 새끼가 다리를 다치자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다. 흥부에 의해 치료가 된 제비는 강남으로 가서 다음해에 박씨를 물고 오고 흥부는 졸지에 부자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샘이 난 놀부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리면서 자신에게도 박씨를 갖고 올 것을 기대한다. 결론은 놀부가 파산하고 벌을 받는다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한국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부전』의 작가는 매우 놀라운 과학적 지식을 갖고 소설의 플로트를 구성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렸는데도 다음 해에 자기 집에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비가 다음해에도 똑같은 장소로 되돌아온다는 귀소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비는 인간과 매우 친하여 자신이 태어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은 정확한 관찰력의 소산이다. 춘삼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나서 반드시 조개껍질 두세 쪽을 물어다가 집에 놓아둔다. 이는 어린 새끼들을 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옛날 사람들이 업구렁이라 하여 보호하던 능구렁이는 우리가 전봇대에 손톱을 긁을 때 몸서리치는 것처럼 조개껍질과는 상극이다. 이를 잘 아는 제비가 먼 바다로 가서 조개껍질을 물어오는데 바로 그러한 상황을 관찰한 작가가 하얀색의 조개껍질 대신에 하얀 박씨를 물고 온다고 변환시킨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거의 모든 초가집 지붕에 박을 심었으므로 박씨에 의해 열리는 커다란 박을 행복과 불행을 가져오는 소도구로 삼았다는데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쥬라기공원〉에서 공룡 복제를 내놓아 일반인들로 하여금 동물 복제에 관심을 갖게 한 이래, 복제 관련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양이나 원숭이, 소나 돼지 등의 복제는 이제 상식이 되었고 인간이 복제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기술이 총 결집되었다는 인간복제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예견하고 작품에 사용하였다. 『옹고집전』이 바로 그것이다.
황해도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묘한 곳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격이 고약해서 매사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물론 인색하여 팔십 노모가 냉방에 병들어 있어도 돌보지 않았다. 학대사가 어린 중과 옹고집의 집에 시주를 구하러 왔다가 매를 맞는 등 수모를 당하자 원출봉 비치암의 도사는 옹고집을 징벌하기로 한다. 그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부적을 붙이니 옹고집이 하나 더 생겼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의 집에 가서 둘이 서로 진짜라고 다툰다.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이 나섰으나 누가 진짜 옹고집인지를 판별하지 못해 관가에 고소를 하지만 가짜 옹고집이 승리한다.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쫓겨나 거지가 되며 가짜 옹고집은 집으로 들어가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살고 아내는 아들을 몇 명이나 낳기까지 한다. 거지가 된 옹고집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드디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 후 산 속으로 들어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 이때 도사가 나타나 부적을 주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 그 부적을 던지니 그동안 집을 차지하고 있던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하고 아내가 가짜 옹고집과 관계해서 낳은 자식들도 모두 허수아비였다. 그 후 옹고집은 새 사람이 되어 착한 일을 하는데, 여기서 옹고집이 두 사람이 있다고 설정한 것 자체는 복제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도깨비감투』도 있다. 머리에 쓰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술적인 내용으로 몸에 등거리를 걸치거나 풀잎을 지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자못 해학적이다. 옛날에 갓을 만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영감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갓을 만들어 팔았지만 늘 생활이 쪼들리므로 ‘갓 만드는 짓을 언제 면할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평소와 같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늙도록 갓만 만드니 화가 날만하다고 웃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곳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까만 도깨비가 서 있었다. 놀랍게도 도깨비는 영감의 소리를 듣고 돕겠다며 회색 감투를 그에게 주었다. 감투를 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영감을 볼 수 없으니 영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날 밤부터 영감은 감투를 쓰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나왔다. 도둑 때문에 마을이 온통 소동이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감이 감투를 벗어 놓고 담배를 피우다가 실수로 담뱃불에 감투 한 쪽을 태워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마침 붉은 헝겊 밖에 없어 그것으로 감투를 기웠다. 그는 빨간 헝겊이 보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감투를 계속 쓰고 남의 집 물건을 훔쳤다. 마침내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헝겊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소금 장수 집에 들어가서 지게에 얹어 놓은 소금을 지고 나오는데 주인이 몽둥이로 후려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 왔다. 아내는 영감을 자리에 뉘면서 공연히 딴 생각 말고 부지런히 갓이나 만들어 팔자면서 도깨비감투를 불살라 버렸다."
『도깨비감투』는 서양의 투명인간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었음에도 남을 해치거나 감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정권을 잡으려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잔치 집이나 제사 집 음식을 훔쳐 먹는 정도이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거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로써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나라 민족이 도깨비를 창안했다는 점이다. 중국에도 도깨비와 유사한 것이 있지만(망량이나 이매 또는 독각자(禿脚子)) 이들은 사람을 흘리는 정체불명의 요괴이고 일본에도 오니나 천구(天狗) 등은 신이나 귀신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지만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노선을 걸어 온 창작품이다.
독창적인 과학 문화유산
우리 민족은 쌀 위주의 식생활에 채소를 즐겨 먹지만 삼한사온의 기후는 계절 변화가 뚜렷하여 겨울에는 채소 생산이 불가능하다. 겨울철에도 채소를 먹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농기법이 필요한데 놀랍게도 겨울철에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는 온실 건설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순의(全循義)라는 의관이 세종 때인 1450년대에 편찬한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온실 건설에 대한 기록이 2001년에 발견되었다.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온실을 만들어 겨울철에 신선한 채소를 생산했다는 동절양채(冬節養菜)의 요령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세계 최초로 알려졌던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극히 초보적인 온실보다 우리나라의 『산가요록』에 나오는 온실은 연대순에서 무려 170년이나 앞선다. 세계최초의 온실을 우리들의 조상이 건설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정부의 후원 하에 2002년 2월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에 세계최초의 과학영농 온실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성은 건강분야에 있어서도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0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다는 것은 역으로 한국인들이 매우 축복 받은 민족임을 알려주는 지표이며 고령화 사회란 그만큼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수하는 비결 3가지를 든다면 치매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 장수유전자를 갖고 있고 3대 양념인 간장, 된장, 고추장과 김치, 장, 막걸리를 비롯한 발효식품의 식단과 합리적인 난방법인 초가집과 온돌이 장수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식단문화의 장을 만드는 재료 콩의 원산지는 원래 우리나라이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지역이면서 야생콩과 중간콩, 재배종 콩이 가장 많은 곳으로 추정할 수 있고 이런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이 만주 남부이다. 만주 남부는 본래 맥족의 발생지이며 고조선의 옛 영토이다. 1997년에 발견된 대동강 유역의 삼석구역 표대유적에서는 벼와 콩이 발견되었는데 이 곡물은 단군 조선 초기, 즉 기원전 3000년경으로 추정한다. 또한 막걸리도 술이면서 건강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소화가 잘 안 될 때 막걸리를 마시면 좋다고 한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한국의 자랑스런 과학 유산으로는 고인돌과 고인돌의 별자리, 한지, 온돌, 8만대장경, 금속활자, 물시계, 첨성대는 물론 에밀레종,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고려청자, 겨울에 알음을 캐서 6개월간 90Kg을 저장할 수 있는 대단한 기술의 석빙고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화약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최무선은 대포를 세계 최초로 군함에 장착하여 진포(현재의 군산)왜구를 물리쳤다. 함포를 사용한 최무선의 해전은 유럽의 레판토 해전보다 무려 200여 년을 앞섰다. 조선의 화약무기는 계속 발전하여 로켓무기인 신기전, 수류탄으로 볼 수 있는 진천뢰, 비거(비행기) 등이 개발되어 임진왜란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신석기시대에 그려진 울산 대곡리의 바위그림은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고 금관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제조 기술이 앞서 있었다. 들것으로 사용한 지게, 상여는 물론 장독대에 올라있는 옹기, 장승, 솟대, 족보, 판소리, 민화, 종묘, 수원화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