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아시아 국가) [Iraq] 지도
국기 지도
|
국가 IRAQ國歌악보♬ 정부홈 | 대사관 | 현지시간 | 날씨정보 | 비자발급 | 여행정보 | 주요공항 | 전화거는법 | 사용전압 | 공식명칭 : 이라크공화국(Republic of Iraq)
인구 : 28,513,000
면적 : 434,128㎢
수도 : 바그다드
정체·의회형태 : 과도정권,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 아랍어·쿠르드어
독립년월일 : 1932. 10. 3
화폐단위 : 이라크디나르(Iraqi dinar/ID)
국가(國歌) : Watanum Mede, al alufqi janalia
("A homeland which extended its wings over the horizon")
페르시아 만 북서쪽 끝에 있는 중동 국가.
|
TV방송시청ㅣ이라크=alforattvㅣ이라크-alsharqiyatvㅣ
개요1922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중립지대를 제외한 면적은 924㎢의 내해(內海)를 포함해 43만 5,052㎢이며, 수도는 바그다드이다. 북쪽에서 남쪽까지의 최장거리는 1,390km,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1,250km이다. 북쪽으로 터키와 인접해 있으며, 동쪽은 이란, 남동쪽은 페르시아 만, 남쪽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시리아 및 요르단과 경계를 이룬다. 인구 28,513,000(2003 추계).
자연환경주로 저지대로 이루어진 이라크는 고도가 300m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450m를 넘는 지역은 전국토면적의 15%가 채 안 된다. 지형적으로는 이라크 중부와 남동부에 걸쳐 있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부에 자리잡은 알자지라 고원지대, 서부와 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국토의 거의 1/3을 차지하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는 기복이 적으며, 자연 배수가 잘 안 되어 소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원 북쪽의 메마른 고원지대 알자지라에는 높이가 1,500m 이상인 신자르 산맥이 있다. 이라크 서부와 남부 지역은 전체가 광대한 사막지대로,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한다. 서부 사막은 와디야라고 하며, 고도는 485m를 넘어선다. 남부 사막의 서쪽에는 와디·언덕·침강지대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덤불식물로 뒤덮인 모래사막이 있다. 국토의 약 1/5을 차지하는 북동부 고원지대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저지대 사이의 점이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강수 유형도 지형과 마찬가지로 북서부 유형과 남동부 유형으로 나누어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연간강우량이 약 400㎜에 이르는 반면, 남서부 사막은 100㎜ 미만에 그친다. 고원지대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연간 강우량이 1,000㎜가량 된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여름에 매우 더우며, 강 부근 지역은 다습한 기후를 나타낸다. 삼림지대는 무제한적인 방목과 집중적인 벌목으로 전국토면적의 1/20로 줄어들어 대부분 강 주변에 있다. 산악지대 남서쪽에는 다년생 덤불과 키 작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가 있으며, 건조지대로 갈수록 가시나무나 다른 내염성 식물들이 눈에 띈다. 강 하류 부근의 알쿠르나 아래쪽에 있는 소택지에는 갈대, 키 큰 목초, 사초(莎草) 등이 우거져 있다. 이라크는 석유매장량이 세계 제2위의 국가로 이란-이라크 전쟁과 페르시아 만 전쟁(1990∼91) 전인 1980년에는 세계에서 제2위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이었다. 페르시아 만 부근에도 유전이 있지만 주요유전은 북부지역에 위치하며, 천연 가스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국민아랍인과 아랍화된 주민들이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전체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인구의 1/5가량으로, 여전히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북동부 고지대에서 거주하고 있다. 터키인들과 투르크멘족들은 지역 아랍인들과의 혼혈로 인해 아랍화되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슬람교도 가운데서도 시아파가 대다수를 이룬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시아파가 대다수를 이루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라크의 시아파는 아랍인과 소수의 투르크멘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슬람계 주민 가운데 나머지를 흡수하는 수니파는 아랍인·터키인·투르크멘족·쿠르드족으로 이루어진다. 그밖에 그리스도교·야지디교·만다야교·유대교·바하이교 같은 종파도 있다. 출생률은 중동에서도 높은 편인 반면 사망률은 비교적 낮다. 인구 가운데 45% 이상이 15세 미만이며, 인구의 약 7/10이 크고 작은 도시에 거주한다.
경제이라크 경제는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으며, 대체로 국유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인당국민총생산(GNP)은 다른 중동 국가와 비교해볼 때 낮은 편이다. 실질적인 연간 GNP 성장률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전에는 9% 이상이었으나, 1980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 주로 석유 수출에 의존했던 GNP의 규모가 크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전국토면적 가운데 약 1/8을 차지하는 경작지는 대부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약 1/3이 관개된다. 대부분의 관개지에서는 농토의 염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1/5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1/8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경작지의 4/5가량 되는 지역에서 채소와 곡류가 재배되며, 밀·보리·수박·토마토·포도·대추야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국토면적의 1/10가량에 해당하는 목초지에서는 양·염소·소를 사육한다. 광업 부문은 GDP의 1/10 이상을 차지하나, 노동력은 총노동인구의 2% 미만이 고용되어 있을 뿐이다.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 가스이다. 원유생산량은 전쟁 피해와 노동자 태업 등으로 인해 1980년 이후 많이 줄어들었으며, 석유와 함께 생산되는 천연 가스의 대부분이 계속 타서 고갈되고 있다. 그밖에 황·인회암·석고·암염 등이 생산된다. 제조업은 GDP 가운데 약 1/10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4이 고용되어 있다. 주요공산품은 정유제품, 공업용 화학약품, 철과 조강(粗鋼), 질소비료, 원당(原糖), 면직물, 모직물, 양탄자 등이다. 사용되는 전력의 대부분이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고 나머지는 수력발전으로 충당된다. 건설업은 GDP의 1/1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1/8이 종사하고 있다. 석유 수출로 재정이 확보되면서 정부는 정유와 전력생산 능력을 늘리고, 댐을 세워 관개망을 건설하며, 교통·통신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중요한 공사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라크는 식품가공·전통공예·교역·요식업·관광업·호텔업 및 소규모 제조업 등을 제외한 다른 산업들, 즉 석유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 부문과 금융계, 교통과 통신 시설 등을 국유화했다. 국영화되지 않은 민간 부문이 이라크 산업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통제를 받으나 제한된 범위의 단체협상은 허용된다. 이라크는 계속적으로 숙련공과 농업 노동력의 부족을 겪어왔으며, 많은 건설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투입시키고 있다. 국영 이라크 철도는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가는 노선과, 바그다드에서 북쪽의 모술과 시리아 국경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 도로망은 4/5 이상이 포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원양 항행선이 다닐 수 있는 아랍 강의 수로 137km를 포함하는 950km의 내륙수로가 있다. 주요항구로는 바스라·움카스르·알파우가 있다. 바스라 항은 이란군의 폭격이 있은 후 1981년말에 폐쇄되었다. 바그다드와 바스라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수출품은 석유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량의 대추야자 열매와 채소가 수출된다. 전기 기구와 기계류, 항공기를 비롯한 차량, 소비재 상품, 화학제품과 약품, 식품 등을 수입하며, 주요 교역상대국은 일본·프랑스·독일·미국 등이다.
정치·사회이라크는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이 지배하는 다당제 국가이다. 혁명위원회(The Revolutionary Command Council/RCC)에서 법률을 제정·선포하며, RCC 의장이 대통령·총리·군총사령관을 겸임한다. RCC 위원들은 바트당 지역본부 위원을 겸임하며, 정부의 행정기능을 수행할 내각의 각료를 임명한다. 명목상의 입법기관은 5년에 1번씩 선거를 통해 선출된 2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국회이다. 최고 사법권은 1970년에 채택된 임시 헌법에 따라 대법원에 부여된다. 헌법에서는 조직적인 정치 저항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반군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수니파로 구성된 지도층과 무장한 시아파 이슬람교도 및 쿠르드족 저항군들과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무료 실시를 규정한 이라크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어린이들이 6년제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실제로는 시설이 부족하여 농촌의 경우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많다. 초등학교 졸업생은 중학교와 예비학교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6년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문맹률이 중동지방에서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이라크 정부는 1970년대말부터 정부 주도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언론은 정부에서 소유·운영하며, 1차적인 임무를 집권당인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의 이익 증진과 선전에 두고 있다.
문화■
역사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로 알려져온 이라크는 세계 최초로 문자기록 및 도시형성이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기름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역사는 고대 문명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주 지역에 나타난 시기는 BC 3500년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개발하고, 우르·우루크·라가시·키시 등을 포함하는 도시국가연합을 형성했다. 이 도시국가들은 BC 2350년경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 되었다가 아카드인들이 쇠퇴하면서 2개의 새로운 중심세력, 즉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아시리아인들은 BC 7세기에 고대 중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대한 제국을 세웠으나, BC 609년에 무너졌고, 그후 칼데아인을 중심으로 신(新)바빌로니아가 일어났으나, BC 550년경 이들을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전체가 페르시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시아인들은 BC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으며, 그의 사후(BC 323)에는 BC 141년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파르티아와 로마, 곧이어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시달렸으며, 계속된 전쟁으로 쇠약해진 사산조 페르시아가 AD 7세기에 침략해온 아랍 이슬람교도들에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정복되면서 이슬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는 칼리프 자리를 놓고 싸우는 여러 세력들간의 싸움으로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8세기에 아바스 칼리프 왕조가 수립되면서 바그다드가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1258년 아바스 왕조가 몽골족에게 멸망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 이라크는 16세기에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여러 세기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내부적인 반란과 이란을 비롯한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 17세기 중반에 페르시아 만 지역과 유럽의 교역이 시작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와 그 교역량이 더욱 늘었다. 1899년 오스만인들이 독일인들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점령했다. 1921년 영국의 보호를 받는 군주국이 세워졌고, 1925년 헌법이 승인되었으며, 1932년에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중 친(親)독일정책을 고수해 1941년 영국에 재점령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정치 소요가 계속되었다. 1958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군사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다가 1968년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1970년대부터는 바트당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의 통치 아래 국가의 산업화와 사회복지 개선에 막대한 석유 세입을 사용했으나, 1980년에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과 진퇴양난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휴전으로 중단되었다. 곧이어 1990년 8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이듬해 1월 시작된 페르시아 만 전쟁에서 이라크는 국제연합(UN)의 지원을 받은 반(反)이라크 연합군에 패했다. 전쟁의 포화로 이라크 내의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이라크군도 막대한 전력손실을 입었다. 패전 후 이라크 내 쿠르드족·시아파 등 주요 소수민족과 종교집단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게 달아올랐으나, 연합군의 철수로 여력을 회복한 이라크 정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라크가 미국에 반감을 갖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보유하려고 하며,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UN 안전보장이사회는 2002년 11월 이라크에게 무기사찰단 입국을 허용하고 이전의 모든 결의안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 1441호를 발표했다. 이라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부시와 블레어는 이라크가 계속해서 금지된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UN의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다. 4월 9일 수도 바그다드가 점령당했고 4월 말에 주요 전투가 끝났다. 바트당이 붕괴한 후, 이라크의 통치는 미국의 고위 외교관을 수반으로 한 연합군 임시행정처(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CPA)가 맡게 되었다. CPA가 임명한 이라크 통치위원회는 한정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사담 후세인은 2003년 12월 13일 티크리트 근방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혔다.
한국과의 관계1981년 7월 바그다드에 한국의 총영사관이 설치되었고 1989년 7월 9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했으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적인 제재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이름해 1월 한국 정부는 이라크 내 공관을 잠정폐쇄했다.1994년 5월 주한 이라크 대사관도 잠정폐쇄되었다. 북한과는 1968년 1월 30일 수교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북한이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980년 10월 단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