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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두가>: 이 허두가 안에는 13편의 기존의 단가들이 개작·정리되어 있다. 이들 단가의
대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대관강산>: 4구 46행의 분량이며 등용되지 못함을 함하며 강산을 둘러보고자 하나, 그도
또한 쉽지 않음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②역대가>: 역대의 치란 흥망과 제왕이나 성현의 사적을 노래했다. 중국 상고시대부터 청나라까지의
사적을 읊는 것이 보통이고 우리나라의 역대사를 붙이기도 한다.
<③궁장가>: 일종의 도덕가이다. 공부자(孔夫子)의 집을 구경가자고 한 뒤 유교가 성립된 내력을
주나라 주공에서부터 시작하여 공문의 70제자까지 소개하고 있다.
<④역려가>: 역대 영웅 명기의 덧없음으로 시작하여 중국의 인물과 고적을 장황하게 읊고, 우리나라의
명산과 그곳의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⑤소상팔경>: 이것은 작가연대미상의 가사 <소상팔경가>가 단가로 불린 것이며, 현존
작품과도 동일하다. 19세기 명창 정춘풍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⑥고고천변>: 이것은 고종 대 명창인 송만갑이 잘 부른 단가이다. 이 작품은 원래 판소리 <수궁가>의
일부였으나, 신재효가 개작한 <토별가>는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부분에 <고고천변>
대신 명산과 그에 얽힌 고사를 나열한 것이다. 별주부가 수국풍경은 조석으로 보았기 때문에 산중을 찾아가
천봉만학을 편답한다고 설명하고는 역산(歷山)·도산(塗山)·태악(泰嶽)·이구산(尼丘山) 등 무려 35개의
산과 고사를 열거하였는데, 구절이 <천봉만학가>와 비슷하다.
<⑦새타령>: 이것은 신재효가 개작·정리한 다른 단가들과 마찬가지로 서사-본사-결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신재효는 원래 결사가 없는 기존의 <새타령>에 결사를 첨가했다. 서사에서는 간단히
뭇 새들이 짝 지어 날아든다고 하고는 바로 시들을 열거하는 본사로 들어간다. 총23마리의 새들을 4구식
맞추어 노래했다.
<⑧달거리>: 이것은 월령체를 취하여 그 달의 풍속과 사친의 정을 노래하여, <사친가>로도
불린다. 1월에서 7월까지는 비교적 상세하나 8월부터는 1행으로 간단히 나열했다. 그리고 12월령 뒷부분은
고적을 따라가며 고사를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⑨금화사가>: 이것은 다른 본에 전해지는 것과 비슷하며, 금화사를 찾아가는 내용과 금화사 안에
안치된 영웅과 미인들, 그리고 인생의 허망함으로 끝맺고 있다.
<⑩숭유가>: 이것도 현존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꽃구경을 가자고 한 뒤, 유가 즉 공부자의
꽃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창기를 꽃이라 하는 경박자들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⑪태평가>: 중국의 천지 창조부터 대명이 일어낫다가 胡人(청나라)이 끊어 놓은 것까지를 말하고
뒤이어 우리나라의 역대사를 읊은 후, 성군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것으로 결사를 삼았다. <⑫효도가>:
초당에 누워 평생을 돌아보다가 자신의 불초함을 깨닫는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젊은날 불효했던 것을 일일이 들어가며
후회한다. 결사에서는 다른 사람의 효성스러움을 칭송하고 자손들에게 효도하기를 당부한다.
<⑬북정가>: 만고영웅을 데리고 북정 가자는 내용이 서사를 이룬다. 본사는 중국의 영웅 장수로
군대를 구성하고 뒤이어 우리 장수 6인을 세웠다. 또한 중국 사적에 나온 장수들의 전법을 활용하여 호쾌하게
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결사는 태평했던 옛시절 다시 보기를 원하는 것으로 맺고 있다.
2. <성조가> : 원래의 성조가는 성주굿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고사 소리인 <성주풀이>의 형식을 취하여, 집 안팎을 관장하는 여러 신들에게 기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성조가>는 경복궁과 왕실에 대한 찬양과 축원의 성격이 강하다. 이와 같이 민간요의 내용을 개작하여 왕실에 맞게 ‘번안’하듯 개작한 것은 경복궁 낙성식에서 제자 진채선이 부르도록 하기 위해 신재효가 직접 지은 작품이라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 중건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불릴 노래이므로 단순한 집안이 아닌 왕실의 안과태평을 비는 내용을 담는 것으로 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여하는 좌상객의 신분을 고려하여 신재효 자신의 지식을 동원한 내용으로 꾸민 것이다. 진채선으로 하여금 경복궁 낙성연에서 부르게 한 노래는 이 <성조가>와 <방아타령>, <고사>이다.
3. <어부사> : 12가사의 하나로 전해지는 <어부사>는 그 기원을 고려에 두고있다. 작가 미상으로 <악장가사>에 수록되어 전해오던 12장의 장가 작품을 조선 명종 때에 이현보가 9장으로 개작하였다. 윤선도 역시 <어부사>를 썼으며, 이것을 가사창 곡조에 얹어 불러 12가사의 하나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어부사>의 문학적 답습은 계속 이어져 문학적 흥취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어부사>를 짓거나 습작용으로 베끼면서 그 맛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관습화 되었다. 신재효도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문식과 문재를 지닌 그가 <어부사>에 관심을 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가 남긴 <어부사>도 앞의 두 <어부사>와 다르지 않다. 단, 12가사의 <어부사>는 7언32구인데, 신재효본은 총 41구로 늘어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4. <호남가> : 이 노래는 호남 각 지방의 이름을 동음이의어가 갖는 묘미를 살려 나열하는 방법으로 지은 것이다. 신재효는 기존의 단가들이 가졌던 사설 창작의 원리나 관습을 따라 단가들을 창작했다. “함평천지 늙은몸이 광주고향 바라보니 제주어선 비러타고 해남으로 건너올제 흥양의 돋는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의 아침안개 영암에 둘러있고 태인하신 우리셩군 예악을 장흥하니‘로 시작하는 <호남가>는 명창 임방울이 잘 불렀던 단가이다.
5. <광대가> : ‘이론가·논평가로서의 신재효’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재효는 광대가 갖추어야할
4대법례를 이와 같이 단가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논했다. 그는 광대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고 광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 설명을 곁들였을 뿐 아니라, 판소리 명창들의 특징을 당송의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세계의 성격과 대비시키고 있다. 즉 판소리 명창들이 도달했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양반사대부들이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던 한문학의 대가들이 이룩했던 문학적 세계와 나란히 견주어서 품평을 했다는 점은 그가 판소리의
예술성을 매우 값지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6. <고사> : <고사>는 일명 명창축원이라고도 한다. 1868년(고종5년)에 있었던
경봉국 중건 기념 민족예술 큰잔치에서 신재효가 <성조가>·<방아타령>과 함께 지어
자신의 제자인 여류명창 진채선에게 부르게 한 작품이다. 전반부에서 국토의 형세와 한양에 도읍한 것을 찬양하고
전국의 명당과 지세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축원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손이 번성하는 명당을 들어 왕조의 무궁함을
기원하였다.
7. <단잡가>: <단잡가>는 <권유가>의 내용과 같은데 뒤에 <방아타령>이
붙어 있으며, 신재효 자신의 본관과 명·자호·생년으로 내용을 삼았다.
8. <치산가> : 신재효가 70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치산가>는 평균 4구
194구에 달하는 장편이다. 젊어서 방탕하여 ‘긔한 노인’이 된 자신을 비웃지 말라하며 사치하기 쉬운 ‘소년’들에게
경계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농사와 잠업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방법을 나열하여 치산하기를 권장
한 후 가세의 흥망이 모두 가모(家母)에게 달려 있음을 일깨우고 가모로서 해야 할 일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또한 노복(奴僕)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여야 심복한다고 하였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앞에서 말한 치산이 욕심에
의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부모님의 봉양과 형제간의 우애 위에서 치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부각시켰다. 후반부에는 다시 한번 제가(齊家)와 치산(治産)을 모두 이루는 방법을 나열하여 강조하였다.
9. <십보가> : ‘예의동방 죠흔나라에 삼강오륜 없어’진 세태를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한 <십보가>는 <괴심한 사영되놈>과 함께 신재효의 구국사상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구구가>와 마찬가지로 숫자 어희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한 걸음에서 열걸음까지 단락을 구분지어 치란 흥망과 중국 사적에 관련된 성어를 나열하기도 하고, 뜬끔없이 ‘오만돌변 다난대도 오입부디 하지마소’ 하면서 신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름의 의식을 드러내려 하였으나 숫자 어희요가 갖는 말의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희작으로 흐른감이 없지 않다.
10.<권유가> : 이 노래는 ‘에라만수 에라태신’으로 시작하는 민간의 <성주풀이>에 , 신재효가 고금사의 영웅호걸과 절대가인의 죽음을 일일이 나열하고는 ‘부유갓튼 우리인생’이니 ‘주야장상 논다한들 다놀고 도라갈까 놀고놀고 놀아보세’라고 하며 인생무상의 회한을 읊은 것이다.
11.<오섬가> : 오섬가는 신재효가 지은 가사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을 가진 작품이다. 또한 그 구성의 독특함으로 인해 다른 가사 작품들에 비해 일찍 주목 받았다. 서두에서 서술자가 앞으로 진행될 사설이 황당하게 들릴 수 있으나 속뜻을 알면 그렇지 않다라고 하며 금오(金烏, 까마귀)와 옥섬(玉蟾, 두꺼비)을 소개한다. 마치 판소리 초두에 창자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것과 같다. 본사에 가면 소년부부인 금오와 옥섬이 자신들이 본 역대사 중에서 사랑 애(愛)자와 슬픈 애(哀)자에 얽힌 것을 말해 보자고 한다. 이 부분에서 창자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서술자는 금오와 옥섬으로 왔다갔다하며 사설을 전달한다. 사설의 내용이 완전한 하나의 서사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하고 독립적인 삽화와 이야기가 愛와 哀라는 공통된 인간의 정을 중심으로 얽혀져 나가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다.
12.<방아타령> : 방아타령은 본래 하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민중의 노래이다. 특히 방아라는 것이 갖는 비유적 의미가 남녀간의 성생활과 관련이 있어서, 문학사에서 주로 육담을 담는 형식으로 사용되어 자유롭고 발랄한 성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신재효 작 방아타령은 성조가와 함께 경복궁과 왕실에 대한 찬양과 축원의 성격이 강하다. 진채선으로 하여금 경복궁 낙성연에서 부르게 한 노래는 이 <방아타령>과 <성조가>, <고사>가 있다.
13.<도리화가>: 이 노래는 신재효가 59세 되던 1870년(고종7년)에 경복궁 낙성식 이후로 서울에 있는 24세의 여제자 진채선에게 보낸 것으로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와 35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재효가 자신의 연정을 담았다 하여 중세 서양문학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연애문학으로 평가받았다. 또 관습에서 벗어난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하여 그것을 다시 관습화된 문학적 표현을 통해 합리화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노래는 명창이 된 채선이 공연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 본 공연과정이 숨어 있으며, 절대가인의 풍류가 없었던 것을 한하고 여창자를 역대 풍류가객과 견주어 보려는 신재효의 긍지가 나타나 있다.
14.<구구가> : <구구가>는 일종의 어희요로 구구단에 맞추어 말장난(fun)을
하는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전해지는 동요와 그 내용이 같다. <구구가>는 구구셈을 하는
앞부분과 끝말의 동음어를 이어 문장을 자는 뒷부분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