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가면
김은영
남편과 내가 월요 여행이라는 짧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은 통영과 예천이다. 예천은 내가 좀 더 좋아해서 자주 가는데 특히 가을에 가야 제 맛이다. 남편은 통영을 좀 더 좋아한다. 다녀온 지 좀 되었다 싶으면 마치 약속이라도 잡아 놓은 듯 ‘아, 통영을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하고 혼잣말을 하고는 한다.
봄에 작은 딸이 귀국하고 잠간 집에서 머물 때 다녀온 후 지난 여름부터 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월요여행이 중단되었다. 가을이 들면서부터 통영을 한 번 다녀오자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해 왔지만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 미루어오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날 다녀왔다.
통영과 거제는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답지만 겨울은 특히 색다른 매력이 있다. 우선 남편은 시장에서 펄떡이는 생선으로 회를 떠서 같이 일하는 동생들에게 대접할 생각에 무척 들떠 있었다. 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계절 통영에서 먹는 굴은 괜찮다고 하며 좋아라 한다.
달아 공원에서 해 지는 것을 보자고 하며 오전 수업을 마치고 떡국 한 그릇을 사먹고 출발했다. 그 떡국 한 그릇 때문에 그만 간발의 차이로 해 지는 광경은 놓치고 붉은 기운만이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끝자락처럼 하늘에 남아있었다.
늘 묵는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지난 여행에서 단골로 점찍은 횟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주인아저씨의 장난기 있는 농담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뻣뻣했던 남편과 나의 관계가 풀어졌다. 크게 티내지 않지만 뭔가 많이 편안해하고 상황을 즐기는,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남편의 모습에 나 또한 은근히 놀랐고 흐뭇해졌다.
다음 날 아침은 조금 서둘러 준비해서 아침시장인 서호시장으로 갔다. 주차장 건너편에서 시락국으로 아침을 먹고 본격 시장 구경을 했다. 그 곳 현지인에게 듣기만 했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관광객 상대의 중앙시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복잡하고 흥청대지는 않지만 알뜰살뜰 사두고 싶은 해물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설 명절용 조기를 사고 남편은 그렇게도 소원했던 횟감으로 커다란 방어와 엄청 큰 자연산 광어를 골라 손질해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꽤 큰 금액인데도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계산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남편은 주머니를 비우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저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열고 회들을 꺼내 놓으면 군침을 흘릴 아는 동생들 모습을 떠올리니 그저 신이 나는 모습이다.
볼일은 끝이 났고 거제도를 그냥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날이 너무 좋아 햇살이 은빛으로 바다 수면 위에 가득 부서져 내렸다. 여차홍포 해안 전망대를 처음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아직 덜 개발되어 오르는 길이 조금 털털거렸으나 오르고 보니 탁 트인 바다와 그 햇살을 사진 프레임에 다 담을 수 없음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찾는 이라고 우리 부부와 자매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여성 커플과 반려견이 다여서 더 한적한 맛이 있었다.
장승포 항에서 수요 미식회에 나왔다는 노포 중국집에서 심심하고 묘한 맛의 삼선짬뽕 한 그릇을 먹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통영에 갈 때마다 꺼내는, 대학 시절 자기를 따라 다녔다는 여자 이야기를 또 한다. 몇 백 톤의 배를 가진 선주의 딸이었다는 부잣집 딸. 결혼 30년 동안 종종 듣는 얘기지만 할 때마다 약간씩 윤색이 되어간다. 그 여자네 배가 몇 톤이 불어나고 너무 못 생겼다던 외모가 그래도 봐 줄만 했다하는 정도로. 통- 영- 모를 일이지만 왜 통영에 가면 그
얘길 하는 것인지.
또 알 것도 같다. 그런 이야기를 흥분하지 않고 받아 줄 아내처럼 통영이 자신의 긴장을 풀어놓을 여백의 공간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