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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보의 시세계(작가론)
삶 속에 농주처럼 잘 익은 시
김진광(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기
박정보 시인을 처음 안 것은 그가 척추수석회 회장으로 있던 수석전시실이었다. 그 후에는 돌밭이나 지역의 수석전시실에서 간혹 만나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금년 2월 필자는 중등학교 교장으로 만 62세, 그는 강원대 교수로 65세 정년퇴임을 함께 하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그는 근래에 시를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의 시를 찻집에서 보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만나 시와 돌(수석)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가 쓴 시를 10여 편을 놓고 함께 읽고 퇴고하며 시론을 펼치다 보면 몇 시간이고 족히 걸려서, 찻집을 나와 다시 식사를 하며 시에 대한 얘기가 펼쳐졌다. 어떤 때는 주인이 문을 닫는다고 하여 쫓겨나기도 하였다. 둘의 취미가 수석과 시라서 만나면 할 얘기가 끝이 없었다. 시는 내가 지도를 하는 입장에 있었고, 수석은 필자가 25여년 하였지만 그가 더 경력이 많아서 나에게 지도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시 경력이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모두 120여 편이 되었다. 그에게 시낭송 역사로 우리나라 다섯째 안에 손꼽히는 삼척의 두타문학에 들어와 활동을 하다가 시단에 등단하라고 권하였지만, 취미 생활로 한다면서 겸손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계간 <<시선>>의 정공량 주간이 나에게 놀러왔다가 찻집에서 그의 시와 서성옥 작가의 소설을 보고 추천을 할 만한 수준이라 하여 추천작품을 한번 보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금년 겨울호(2013년)에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추천을 받게 되었고, 시도 한권 분량이 넘기에 내친 김에 시집 발간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그는 나중에도 필자에게 취미 생활로 쓴 작품인데, 등단을 하고 시집을 세상에 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하면서 또 겸손한 심사를 두어 번 드러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대구이며, 직장을 따라 영주가 제2의 고향, 이곳 삼척이 제3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구의 명문중학교인 대구중학교에 다니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그 때부터 영화감상에 미친 듯이 빠졌다. 청구공전 5년제(영남공업전문대학)에 다닐 때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였고, 신춘문예에 보내기도 하고 영화감독에게 보냈지만 모두 희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 때 쓴 작품 「절규 絶叫」(1966년),「욕망慾望의 포로들」,(1967년)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부모님 말씀대로 먹고 살기위하여 공대 쪽으로 진학을 하였고, 공대교수와 어울리지 않는 예술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하였다. 수석 경력이 40여년,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달과 소나무 등을 주제로 한 한국화를 오랫동안 그려오고 있다. 삼척에 오기 전 근무지 영주에서 ‘소당小堂 박정보 동양화전’(1977년)을 한 차례 가진 바 있지만, 주로 자기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는 그 수준이 어느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근래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독백으로 대화가 가능한 예술 세계로 깊이 침잠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전공은 공업이지만, 예술의 기질이 넘쳐흐르는, 예절바르고 겸손한 그의 시세계를 쓰게 되어 기쁘면서도 그의 작품에 누를 끼치지나 않나하여 걱정이 된다. 작품을 살펴보는 순서는 ‘취미 생활과 문학’, ‘가족 사랑과 사회 사랑’, ‘정서의 풍경과 자성적 목소리’로 한다.
2. 취미 생활과 문학
앞에서도 언급을 한 바와 같이 박정보 시인은 취미 생활이 수석과 그림과 문학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이나 술자리나 잡기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요즘도 집에서는 수집한 돌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고, 밤에 잠이 안 올 때는 시를 쓴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한 밤중에 잠이 자주 깨는데 그 때 일어나서 글을 쓰는 것이 참 좋다고 한다. 그림처럼 번거롭지도 않고 종이와 펜 혹은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글을 쓸 수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정말 잘했다고 좋아했다.
영주시 안정면의 해맑은 실개울/ 소백산 한 자락인 죽계천이 있다// 1975년 이른 봄날 내 수석 길의 첫걸음/ 찬 물속 헤매며 비료포대에 돌을 가득 채우고/ 자전거에 싣고 재를 넘던 퇴근길// 반년을 탐석해 곱게 진열하고/ 수석 선배 모셔 놓고 한 말씀하시랬더니/ 다 내삐리소!/ 공들이던 내 돌탑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형, 질, 색조차도 모른 채로/ 수석도 돌이라 생각만하고/ 저만하면 수석이지/ 동네 개울 죽계천에서 시작한/ 수석의 내 첫걸음은 시린 헛걸음이었다// 애시당초 수석 한 점 나올 리 만무한 곳/ 그래도 죽계천은 내 마음 속 수석의 고향이다
-「석수壽石입문」전문
수석인들은 꽃 다음단계로 분재, 그 다음 단계로 난, 그 다음 단계가 수석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석의 세계는 오묘하고 공부하기가 끝없이 넓고 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형(모양), 질(강도), 색(색깔)을 보고 우선 그 돌을 평가한다. 돌은 배우고 연구해도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탐석은 자연이 만든 작품을 돌밭에서 사람이 취미 생활로 찾는 일이다. 탐석과 수석 감상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위의 작품은 그가 퇴근길 영주 소백산 죽계천에서 반년을 탐석하고 수석선배에게 평가를 받았던 얘기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가 처음 탐석을 시작한 40여 년 전에는 수석에 관한 이론 서적이나 전문 수석 월간지가 거의 없던 시절인 것 같다. 처음 시작한 탐석이 선배의 한 마디에 반년동안 쌓은 공든 탑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필자도 배낭 짊어지고 탐석한 돌을 이사 갈 때는 한 차씩 버린 일들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탐석 지 첫 사랑이었기에 죽계천을 시적자아는 ‘수석의 고향’으로 잊지 못한다. 사람이 사는 것과 탐석과 돌 사랑도 비슷한 것임을 시를 통하여 넌지시 말하고 있다.
돌 배낭 삼십팔 년/ 빈 배낭이 지천이던 날/ 언제부턴가 맨 손도 무덤덤하더니/ 날이 갈수록 무덤덤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돌에는/ 섭섭이가 꽤나 많다/ 젊은 날 멀리 가서 빈 배낭으로 돌아오며/ 섭섭해서 데리고 온 놈들// 이름도 성도 없는 그냥 섭섭이/ 집에 와서도 푸대접에 또 서운했을/ 그렇게 끌려와서 늙어 가고 있는 그것들// 내 몸에도 세월의 때가 내려앉을 즈음/ 세월에 너도 익을 무렵/ 이제야 너를 찾아서 본다/ 푸른 날 다 보내고 서로 마주앉은 섭섭이/ 그날 거기서 내가 너를 처음 본 듯 지금 쳐다본다/ 섭섭이라는 그 이름표를 떼고 본다
-「섭섭이」전문
내가 만나 데려온 뭉실이는/ 병곡 바닷가 밤낮을 구르던 두루뭉실이/ 바다 삼킨 복어배로 천연덕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두루뭉실해/ 속없는 천하태평 넉살로 살고 있었다// 지금은 내 곁에서 뒹굴고 있는/ 묵은 내 친구 두루뭉실이//
-「두루뭉실이」일부
‘섭섭이’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어느 딸부자 집 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탐석을 갔다가 명석을 한 점도 못하는 날 빈 손으로 그냥 오기가 섭섭해 주어온 돌에게 박 시인이 붙여준 이름이다. 명석을 해오면 좌대를 하거나 수반 위에 놓고 기름을 바르거나 물을 뿌리면서 이름을 지어주고 수석인 들을 불러 자랑을 한다. 그러나 섭섭이는 마당이나 창고 구석에 자리를 한다. 돌들도 푸대접을 받으면서 이름처럼 섭섭했으리라. 그러다 ‘내 몸에도 세월의 때가 내려앉을 즈음/ 세월에 너도 익을 무렵/ 이제야 너를 찾아서 본다’ 수석인 박시인도 세월의 강가의 돌처럼 이끼가 내려앉을 나이에 섭섭이 돌과 마주 대하고 대화를 한다. <푸른 날 다 보내고 서로 마주앉은 섭섭이/ 그날 거기서 내가 너를 처음 본 듯 지금 쳐다본다/ 섭섭이라는 그 이름표를 떼고 본다> 나이가 들면서 명석이 아닌 마당가의 혹은 창고 속의 섭섭이 돌들과도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사물인 돌과도 대화를 하고, 좀 학식이나 지위가 떨어지는 사람들과도 만나고 어울려 대화를 하며, 그 동안 푸대접하던 ‘섭섭이’들에게도 그 이름표를 떼고 대하는 키를 낮춘 삶, 이시의 앞부분 그는 <돌 배낭 삼십팔 년/ 빈 배낭이 지천이던 날>처럼 욕심을 줄이는 삶을 시로 잘 형상화 하고 있다.
‘병곡’이란 지명은 경북에 있는 해석(海石)이 나는 곳이며, ‘두루뭉실이’ 또한 박 시인이 돌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둥근 환석에 가까운 돌이지만, 확실한 환석은 못되지만, <바다 삼킨 복어배로 천연덕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두루뭉실해/ 속없는 천하태평 넉살로 살고 있었다> 시인은 돌이 복어배처럼 생겼고 천연덕스럽고 천하태평 넉살이 좋다고 하였다. 돌을 인격화하여 매타포로 익살스럽게 잘 표현하였다. 이 돌은 앞의 시 ‘섭섭이’와 달리 수석인의 곁에서 오래된 친구가 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함께 시집에 실린 「조우 遭遇의 순간」은 돌을 찾는 순간을 ‘갓 잡은 물고기’와 <오늘은 왜 이리 눈이 부신가/ 돌멩이 찾은 이 봄빛은>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조약돌」에서는 <산다는 건 견디는 것/ 견뎌내는 거라고/ 세상 한 모서리 부딪히며/ 구르는 거라고> 얘기하며, 그리고 <헤아린 세월보다/ 깎이고 덤도 주고/ 해 설피 웃고선/ 바래진 그림자/ 어머니>라는 시적 표현은 돌을 통하여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좋은 작품이다. 앞에서 말한 돌에 관한 박 시인의 시를 통하여 사람이나 수석탐석이나 돌 사랑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아님을 알 수가 있겠다.
내 그림 속에는 없다/ 명품송 천년송 미인송은/ 동구 밖 옹기종기 서 있거나/ 도래솔 같은 나무들이다// 슬퍼도 기뻐도 찾고/ 지치면 그늘에 쉬기도 하는/ 속편한 그저 그런 나무// 이름값 하는 소나무는/ 줄 하나 쳐 놓고 사람이 막는다/ 몸이 멀면 마음도 갈 수 없듯/ 나무인들 외로움이 사람과 다를까// 살이 트도록, 등 붙이고 살다가/ 도래솔 발밑에 묻혀/ 그 너머 생生도 /그림처럼 같이 살라한다
-「내 그림 속 소나무 」전문
박 시인이 취미로 오랫동안 작업하고 있는 한국화 얘기를 소재로 쓴 작 품이 몇 편 있는데, 본 시집에 게재된 그림에 관한 글은 위의 작품이 한 편 실려 있다. 「내 그림 속 소나무 」는 명품송이 아닌 무덤 근처에 둘러선 도래솔이나 동구 밖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함께 어울려 사는 평범한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시인은 체질적으로 명품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무도 그렇다. 그래서 <슬퍼도 기뻐도 찾고/ 지치면 그늘에 쉬기도 하는 / 속편한 그저 그런 나무>를 찾는다. 그리고 명품인 사람이나 나무는 외롭다. 그래서 <살이 트도록, 등 붙이고 살다가/ 도래솔 발밑에 묻혀/ 그 너머 생生도/ 그림처럼 같이 살라한다>는 시적자아가 사후 내세(來世)에서도 그림의 소재로 즐겨 그리는 도래솔 발밑에 묻혀 그림처럼 살겠다는 욕심이 없는 소박한 삶을 표현한 작품이다.
돌 하나 손에 들고/ 설산노송 그림을 보았다.// 산은 가득 눈雪에 묻혀/ 더 이상 오를 길이 없다/ 산 중턱에 우뚝 선 노송/ 오래된 눈 속에 겨우 서 있다/ 가지도 머리도 눈을 이고 휘었다/ 기개氣槪도 가득 몸에 지고 서 있다// 밤이면 하얗게 달이 차올라/ 달빛도 짐인 듯 노송 위에 내려앉는다// 하얀 머리 우리 아버지를 따라/ 비탈길 짐을 지고 오르던 길/ 눈 속에 갇혀서 지나온 시간마저 아득하다
-「 설산노송도雪山老松圖 」전문
위의 시는 그림은 아니지만, 탐석을 하다가 돌 속에 「설산노송도雪山老松圖 」가 그려진 문양석(文樣石)을 찾아 시인은 붓이 아닌 언어로 그림 한 폭(word picture)을 그렸다. 화가가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신(神)이 내린 명석이다. 눈앞에 이미지가 뛰어난 동양화 한 폭이 펼쳐진 서정시이다. 그 그림 속에는 눈이 쌓여서 더 이상 산길을 오를 수 없다. 산 중턱에 눈을 온 몸으로 이고도 기개가 있는 노송이 한 그루가 우뚝 서있고, 밤이면 달빛이 노송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가 걷던 비탈길을 돌 속에서 회상한다. <하얀 머리 우리 아버지를 따라/ 비탈길 짐을 지고 오르던 길/ 눈 속에 갇혀서 지나온 시간마저 아득하다>
날선 칼 연어의 꼬리같이 퍼득인다/
섬뜩한 날이 없다면 시가 될까//
작은 바람에도 날을 세우는/
댓잎의 모서리/ 양팔저울의 경계에서/
혹은 곡예사의 외줄에 서서//
연어의 꼬리같이 퍼덕이며……
-「시 」전문
박 시인 나름의 시의 정의를 내려 본 것이다. 시인은 시를 <날선 칼 연어의 꼬리같이 퍼득인다>, <작은 바람에도 날을 세우는/ 댓잎의 모서리>, <양팔 저울의 경계에서/ 혹은 곡예사의 외줄에 서서> 라는 신선하고 참신한 비유로 표현을 하였다. 그리고 ‘섬뜩한 날이 없다면 시가 될까’하고 시인은 사회의 어두운 면과 약한 자들의 대변과 시의 예리한 감각을 떠올려야함을 말하고 있다. 그의 시는 ‘연어의 꼬리같이 퍼덕이며……’ 계속 전진할 것이다.
시를 소재로 한 시가 3편 더 있다.「멸치 반찬과 시」는 어제도 오늘도 먹는 멸치조림의 멸치의 눈과 시적자아의 눈이 서로 외면하다가, 어제도 오늘도 써야하는 시를 생각하고 밀쳐둔 멸치 반찬을 다시 끌어당기는 시 쓰기의 운명을 형상화하였다.「조청 」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작품이며, <날마다 뒹구는/ 머릿속 상념들/ 가마솥에 쓸어 담고/ 졸이고 졸이면/ 조청 같은 말言이 되어/ 시 한 줄 써질까>하고 시 쓰기를 할머니의 조청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한 참신한 시이다.
3.가족 사랑과 사회사랑
시집에 실린 가족 사랑과 관련된 시는 어머니 사랑을 주제로 한 시가 4편, 아버지 사랑을 주제로 한 시가 3편, 아내의 사랑을 주제로 혹은 아내를 소재로 한 시가 4~5편정도 된다. 그러한 작품들은 향수의 이미지가 대부분 드라마의 배경처럼 깔려 있다.
투박한 손에 들고
눈빛으로 쥐어 주신 어머니 손길
굴비 한 손에 배인 정情이
소태처럼 절어있다
짠물 같은 세상이라지만
짜디짠 너의 맛이 뭉클하다
더운밥 한 술 한 술
굴비 뜯어 얹어 주신 비렸던 어머니 손
굴비를 보니 눈물겹다
산수화처럼 아득한 옛 고향집
어머니 차려주시던 밥상이 떠오른다
-「굴비 1 」전문
길을 가다가 누군가 “어머니!”하고 부르면 모든 사람들이 돌아본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의 고향이요, 향수요, 출발점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난다. 박 시인도 마찬가지이리라. 어머니가 투박한 손으로 굴비 한 손을 아들에게 건네면서 시의 씨앗이 눈을 뜬다. <굴비 한 손에 배인 정情이/ 소태처럼 절어있다>는 표현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간으로 배인 소금에 비유되었고, 나아가 <짠물 같은 세상이라지만/ 짜디짠 너의 맛이 뭉클하다>로 시가 발전한다. 2연에서는 굴비를 보며 유년시절 <더운밥 한 술 한 술/ 굴비 뜯어 얹어 주신 비렸던 어머니 손>을 만난다. 그 배경으로 <산수화처럼 아득한 옛 고향집/ 어머니 차려주시던 밥상이 떠오른다> 시각과 미각의 공감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그림을 보는듯한 회화적인 작품이다. <해종일 일만하는 엄마 등에는/ 낡은 적삼이 배춧잎으로/ 소금에 절여지고 있었다>는 소금의 이미지의 시로는 「어머니」가 더 있다. 그리고 할머니 사랑의 시가 한 편 있는데 제목은 「밤을 깎으며」이다. 할머니 제삿날 밤을 예쁘게 깎으려고 하다가 대추보다 작아진 밤을 보며, <할매 미안합니더 쪼매해도 이쁜 게 더 좋지예?>하고할머니 앞에서 환갑이 지난 손자가 아양을 떠는 모습이 정겹고 재미있다.
여섯 살 나를 바지게에 지고 / 논둑을 걸어 집에 오는 길/ 처음 노래를 배웠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육십 년 보내 놓고/ 내가 아버지를 업는다/ 안 된다 애비야 허리 다칠라/ 아흔 세월도 자식 걱정 삭지 않고/ 나비 같으신 가벼움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저녁 마당 돌면서/ “아버지 목소리 옛날과 똑같은 데요”/ 등 울리는 아버지의 / 가는 숨소리/ ‘해는 져서 어두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하얀 머리 위에/ 저녁달도 하얗게 비친다
-「아버지」전문
어머니와 자식과의 사랑은 누구나 가슴이 울먹이도록 진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식 사랑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겉으로 잘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 감추는 성격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된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바지게에 지고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는 ‘해는 져서 어두운데……’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후 60년 뒤에 자식이 아버지를 업고 아들이 그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 연 <아버지와 아들의 하얀 머리 위에/ 저녁달도 하얗게 비친다>에서 아버지와 아들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하얗게 머리에 서리가 내린 부자의 사랑이 담긴 시청각의 이미지의 가슴 따뜻한 시이다. 「아버지의 손」은 어린 시절 학교를 안 가고 중간에서 놀아버린 날, 아버지의 엄한 벌과 잠결에 몰래 다리를 주물러주던 일, 졸업 후 취직 인사를 드리고 한 밤중에 돌아온 풀이 죽은 자식에게 말없이 등을 다독여주던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굵은 선으로 시화를 하였다. 「늙은 소나무」는 동네 앞에 말없이 서있는 소나무를 아버지와 할배 같은 나무로 인식한다. 소나무가 아버지와 할아버지 대신 의인화 되어 말한다. -<종알종알 어린 자식 어느덧 제 집 꾸려 다 떠나고 /문득 반백半白으로 마주 보는 늙은 저 소나무/ 내게 말하기를/ “백년도 힘이 들지?”>������
두 날을 묶었던 가위의 나사가 망가졌다/ 싸우다 등을 돌려버린 우리 부부 같다/ 떨어진 가윗날 두 개, 날은 섰지만/ 홀로는 가위가 될 수 없다// 좁쌀 같은 말言이 부딪쳐/ 침묵하는 우리 부부/ 꼭, 제 입만큼만 베어 무는/ 가윗날의 절제와 지혜를 보지 못한다/ 부딪칠 듯 슬며시 비켜 주는 슬기와/ 지퍼같이 맞무는 고운 입술을 보지 못한다// 서로 바라보는 작은 행복조차 놓치지 않는 가위/ 언제나 부둥켜안고 있어도 아쉬워만 한다/ 두 몸이 곧 하나/ 함께 떠남을 알기에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 마주 보며, 살아 있음에 늘 감사한다/ 있을 때 잘해 가위가 날刃 세워/ 나를 나무란다
-「가위 」전문
가위를 부부에 비유한 발상이 참신한 시이다. <두 날을 묶었던 가위의 나사가 망가졌다/ 싸우다 등을 돌려버린 우리 부부 같다> 는 발상으로 시의 실마리가 풀린다. 좁쌀 같은 작은 말이 부딪쳐 침묵하는 부부지만, <부딪칠 듯 슬며시 비켜 주는 슬기와/ 지퍼같이 맞무는 고운 입술을 보지 못한다>는 가위와 지퍼의 지혜를 시인은 발견한다. 그리고 가위가 있을 때 잘 해 하고 날刃 세워 나를 나무란다. 사물인 가위를 통하여 부부가 함께 잘 소통하고 사랑하고 사는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읽는 독자에게는 체험의 공감의 기쁨을 나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부부 」도 젊은 나이가 아닌 노년의 부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너 없으면 죽네 사네 하는 사랑 타령/ 한 삼십 년 붙어살다 보니/ 그 좋던 사랑이란 놈은/ 어느 방구석에서 말라 죽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어디서 어떻게 생긴 건지/ 정情인지 뭔지 하는 놈 온 집안에 널브러져/ 이리 밟히고 저리 채인다>는 표현으로 노년의 부부 사랑의 현실과 문제점을 들추어 시로 형상화한 비교적 산문적인 장시이다. 「아내」에서 <우리네 눈과 귀는 / 난 잎처럼 뾰족이 자라서/ 가을철 나뭇잎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 잠결에도 끝없이 끊임없이 들려온다>는 아내를 걱정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노년이 된 요즘이다가 보니, 노년으로 바라보는 아내를 시적 카메라에 주로 담은 것이리라.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젊은 날 사랑하던 아내를 노년과 함께 떠올려보는 작업도 필요하리라.
여기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 절은 사랑의 노래가 박혀 있고/ 이별의 슬픔마저 춤사위로 잠이 들어있다/ 거친 초원에서 피어나는 살아 있는 꽃들// 어느 사냥꾼의 거친 손과/ 고동치는 심장으로 토해내는 소리
-「암각화 」일부
슬그머니 내민 도시락에 어리둥절하고/ 돌려받은 빈 도시락에서 눈물 가득 보았다// 아내가 말없이 아침마다/ 자전거에 달아 준 도시락 두 개/ 반년을 따로 쌌던 그 아이의 도시락
-「그 아이 」일부
세상엔 감출 게 많다/ 은행통장, 이메일, 대문열쇠, 휴대폰 또, 뭐 뭐/ 번호들과 그 비밀번호(중략)// 비밀번호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는 없을까
-「비밀번호 」일부
5천여 년 전 그려진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296점 중 58점이 고래 그림이라며, 근래에 신문 방송에 나왔다. 고대인들의 삶이 살아 있는 텔레비전 생방송이다. 글자가 없던 시절 자신들의 삶과 축제를 그림으로 돌에 새겨 표현한 작품으로, 어느 연구가는 남자들의 사냥의 안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여인들이 그린 것일 것이라고 하였다. 사냥은 혼자서 하기보다 집단으로 한다. 가족과 집단의 사회화의 과정을 그린 암각화를 통하여 시인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 아이 」는 박 시인이 젊었던 교사시절에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하여 쓴 작품으로, 가난하여 도시락을 못 싸오는 제자에게 박 시인과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스승은 지금도 그 아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며, 가정 사랑에서 사회 사랑으로 확대된 것을 볼 수 있다. 「비밀번호 」는 예전에 낮은 토담에 문 활짝 열어놓고 오가며 살던 시절 그리움의 향수와, 요즘 시대의 서로 감추고 살아가는 비밀번호가 많은 현실의 아픔을 고발하며, 비밀번호가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시화한 사회 비판의 시로 볼 수 있겠다. 박 시인은 부모, 아내 사랑에서 사회의 사랑과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사랑하는 쪽으로도 관심이 많음을 볼 수 있다.
4.정서의 풍경과 자성적 목소리
황혼의 강은 더욱 아름답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곧 어둠이 내리면/ 가던 길도 이내 멈추어야만 한다// 어릴 적 작은 걸음으로/ 조그만 개울을 따라 길을 찾아서/ 휘돌고 휘돌아 금방 온 것만 같은데/ 정든 강가 오늘 다시 거닐며/ 문득 황혼을 생각한다// 거꾸로는 흐를 수 없는 강물의 길/ 내가 걸어온 길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살아오며 스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두운 강가에 앉으면/ 침묵으로 펼쳐지는 지난날의 푸른 기억들// 하늘은 오늘따라 더욱 붉고 푸르며/ 강물은 더 넓은 물길이 된다/ 무슨 미련 이다지도 많은지/ 강물은 더욱 느린 걸음으로/ 내 마음과 함께 흐르고 있다
-「강가를 거닐다 」전문
이 작품은 ‘황혼의 강’을 거닐며, 황혼으로 아름답게 늙어가는 자신의 삶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여 쓴 인생의 의미가 녹아 흐르는 시이다. 황혼의 강은 왜 아름다운가! 곧 어둠이 내리고 얼마지 않아 바다에 닿아 강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 자신이 죽는 걸 모른다. 시적자아는 강물처럼 내가 걸어온 길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두운 강가에 앉으면 지난날의 푸른 기억들이 떠오른다. 강은 하류에 오면서 걸음이 느려진다. 시인은 황혼의 강에 서서 미련이 많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성하고 있다. 정서의 풍경에 관련된 글들이 여러 편 있지만 두어 편 살펴보면, 「정선가는 길 」은 굽이굽이 물처럼 돌아가는 고운 길에 낮게 물처럼 흘러들어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정선아리랑 곡조에 담아 시로 빚어내었다. 그 일부를 감상해보자. <굽이돌아서 오른/ 저 아래 고갯길/ 골마다 낮게 엎드린/ 물처럼 흘러든 사람들// 서방은 백봉령 너머/ 강릉 삼척으로 소금 사러 떠나고/ 밭이랑에 앉아 밭이나 매는 아낙/ 빛과 그림자로 얼룩 삶을 노랫가락에 싣는다/ 낮고 느린 아리랑 한 곡조에/ 구슬픈 내일의 목젖만 아프다> 다음은 「북평 장날」의 일부이다. <내 눈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날/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괜스레 넉넉하다/ 아귀 같은 장사꾼도, 볼멘 손님도 없는/ 그냥 덥석 베어 물어도 좋을/ 그런 물건 그런 얼굴들// 낯익거나 혹은 낯선 수백 수천 등장하는/ 주연 없는 연극 한 편/ 나도 출연하고 돌아오는/ 기분 좋은 날>‘북평 장날’은 재래시장으로 옛날 삼척군이었다가 셋으로 갈라진 삼척시와 동해시 태백시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곳이다. 삼척 근덕이 1일과 6일, 삼척이 2일과 7일, 북평이 3일과 8일, 도계가 4일과 9일, 원덕이 5일과 10일 이렇게 장꾼들이 돌아다니며 장이 선다. 박 시인은 북평장 구경을 열심히 다니는 편이다. 민속품 경매장에 가서 민속 물품을 구경하고, 장구경하다가 배가 출출하면 국수나 메밀묵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을 하는 시골 장날의 정서가 잘 익은 막걸리 냄새로 풍긴다. 북평 장날은 그래그래 <주연 없는 연극 한 편/ 나도 출연하고 돌아오는/ 기분 좋은 날>이 된다.
꿈은 꿀 수 있어도 그냥 꿈일 뿐/ 그래도 꿈은 크게 가지고 싶다/ 뒤돌아보면 인생이 꾸다만 미완성품의 꿈//(중략)// 이젠 시간이 없다 곧 셔터를 내려야 하고/ 꿈조차 꿀 수 없는 퇴근시간/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간다/ 창밖은 또 다른 세상/ 꿈은 버스에 실려 제 멋대로 달린다/ 먼 또 다른 지구에서 태어나길 바라며
-「낮잠」일부
풀 바른 문짝에 새 문종이 얹어서
쓱쓱 빗질 몇 번 한 해 목숨 또 잇는다
한나절 햇살로도 팽팽해진 얼굴
살짝 치는 손끝에도 장구소리로 대답을 한다
-「창호지를 바르며」일부
시인은 꿈과 상상을 먹고 산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는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때는 시인을 동참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은 꿈조차 꾸기 힘든 현실에서 탈출하여 먼 또 다른 지구에서 태어나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낮잠을 통해서 꿈을 시도한다 - <꿈은 꿀 수 있어도 그냥 꿈일 뿐/ 그래도 꿈은 크게 가지고 싶다/ 뒤돌아보면 인생이 꾸다만 미완성품의 꿈> 「하현달과 나」에서 그의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만난다. <하늘 다 어둠에 묻혀도/ 저 혼자 등불이 되는 달/ 세상 다 어둠에 묻히고/ 혼자 남은 내가 빛을 역주행한/ 길 끝에서 마주친 우리 사이// 역주행한 시간/ 기억 속의 낯익은 역에 내려/ 팽팽한 손으로 희미해진 그 손/ 생생하게 잡아 보고 싶다>
「창호지를 바르며」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도 창호지를 한 해 한해 새로 바르고 한 해씩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한나절 햇살에도 팽팽해진 얼굴/ 살짝 치는 손끝에도 장구소리로 대답을 한다>는 아름다운 삶을 비유한 참 좋은 표현이다. <등껍질 같은 두 손등이 문짝을 걸면/ 한가윗날 떠오를 보름달빛/ 한 발 더 방안에 성큼 들어선다>에서 달님에게 가슴에도 살림에도 환희 밝혀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시「행복」은 <웃고 살다보면/ 행복은 바로 코밑에서 보여요/ 멀리 있지 않지요>하고 말하며, 시「불두佛頭」에서는 집에 간직하고 있는 작은 불두를 통해 평화를 느끼고 자기 허물을 보고 있는 부처로 보고 있다.<반쯤 감은 눈으로/ 내 허물도 반만 보실까// 마주 앉아 바라보는 저 평화/ 작은 바람에도 피는 꽃이다>
우연히 읽은 사자성어 중 두 글자/ ‘탄비’/ 살다보면 어찌 슬프고 탄식할 일 없을까/ 늙고 병들어 마침내 죽는 건 자연의 섭리/ 부끄러워할 일 아니다/ 두 글자의 훈계는 ‘늙어 망령 떠는 일’/ 부끄러운 것에 부끄러운 줄 모른다면/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걸어온 길에도 거짓 없을 수는 없고/ 내가 내뱉은 말이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을 것이다/ 내 모자람은 내 스스로가 더 잘 아는 일/ 돌아보면 오만이 높은 산이 되고/ 부끄러움은 강으로 흐른다// 어쩌랴, 이미 저지르고 만 일/ 잘 산다는 건/ 하나같이 어려운 일 /그러나 인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대가를 치러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다
-「탄비 歎悲」전문
「탄비 歎悲」는 사자성어를 소재로 하여 자신의 삶에 비추어 시로 형상화한 그의 시 쓰기에서 소재를 확장 시킨 좋은 작품이다. <늙어 망령을 떠는 일>, <내가 내뱉은 말이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오만이 높은 산이 되고/ 부끄러움은 강으로 흐른다>(은유) 등의 시 구절에서 시인이 살아온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성(自省)이란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함을 뜻한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는다. -<어쩌랴, 이미 저지르고 만 일/ 잘 산다는 건/ 하나같이 어려운 일 /그러나 인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 ‘대가를 치러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다> 그의 다른 시에서도 자성적 목소리의 시를 여러 편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말」과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명언名言이 회자되어 끝없이 돌 듯/ 허언虛言도 식언食言도 맨 얼굴이 되면/ 연어처럼 혀끝에 돌아와/ 혓바늘을 산란한다// 용서는 멀어지고 망각도 어려워/ 말言은 그대로 비석이 되어/ 돌팔매를 맞는다>(「말言」일부)에서는 허언과 식언을 연어로 비유하여 혀끝에 돌아와 산란을 하는, 다시 말이 비석이 되는 참신한 생각이 이 시의 삶의 철학을 돋보이게 한다. 이 시 역시 자성적 목소리와 관련된 시이다. <내 귀도 조금 죽었다/ (중략) // 텔레비전은 그림으로 듣고/ 가수의 노래는 입술로 듣고/ 아들의 말은 눈으로 듣는다/ 아내는 손뼉으로 나를 부르고/ 나는 눈으로 대답한다// 귀가 입이 되는 줄 예전엔 몰랐다/ 귀가 조금 죽으니/ 입도 고만큼 따라 죽었다> (「조금 죽은 귀」일부) 박 시인과 이따금씩 찻집에서 만난다. 그럴 때면 내 목소리가 자꾸 커져서 다른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나 대화에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시를 얘기할 때나 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찻집의 구석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어 서로 써가며 얘기를 한다. 단 우리 집에서 돌을 놓고 얘기를 할 때는 예외가 되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나이가 들면 귀도 눈도 조금씩 어둡게 한다. 그 것은 아마도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처럼 잘 나가지도 못하는데 너무 귀와 눈이 밝아서 무리하게 달리지 말라는 조물주의 뜻이라 생각된다. 귀가 어두운 삶을 통하여 경험한 일상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귀가 입이 되는 줄 예전엔 몰랐다/ 귀가 조금 죽으니/ 입도 고만큼 따라 죽었다>는 이 시의 끝부분이 절창이다.
5. 나가면서
박정보 시인이 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근래이지만 참으로 집중적으로 열심히 써서 책 한 권 분량이 훨씬 넘는 120여 편이나 되고, 5년제 영남공업전문대학 시절에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동양화를 오랫동안 그려오고 있으며, 수석 분야에서도 40여 년 취미 생활을 해오고 있는 예술인이다. 그 동안 이러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 창작 기간이었지만, 예술의 눈과 귀와 감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감이 없지 않았다. 박정보 시인의 시를 놓고 지도 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느낀 그의 장점은 무척 시 쓰기에 열정적이며, 시를 쓰는 예술 감각이 발전되어 있고, 살아온 날이 많아서 오랜 많은 경험을 통한 삶의 철학이 농주처럼 잘 시 속에 녹아 익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시어사용이나 생각이 옛 투이어서 젊은 독자에게는 신선한 감이 좀 떨어지며, 이번에 발간하는 시집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시조에 더 소질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는 시와 시조 쓰기를 함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해도/ 그래도 나는 입고 싶다/ 남의물건을 탐내듯 두려운 마음에/ 몹시도 부끄러운데/ 몰래 이웃 정원에 발을 들여 놓는/ 알 수 없는 묘한 마음/ 그래도, 나는 그 정원에/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 가보지 못한 세상으로 길을 나서는/ 스스로 박수칠 용기도 없이,/ 무작정 신발 끈을 묶는다/ 이 무모한 여행의 끝은 어딘지/ 룰도 잘 모르고, 등번호 없는 선수로/ 선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白紙트랙을 더듬더듬/ 가다가 서다가/ 시의 향기에 비틀거릴 뿐이다
-「시詩의 나라로」전문
박 시인이 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초기에 시 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비유하여 쓴 작품이다. 시 쓰기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도 그래도 입고 싶다고 한다. 몰래 이웃 정원에 발을 들여 놓는 알 수 없는 묘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그 정원에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고 한다. 이 무모한 여행의 끝은 어딘지 룰도 잘 모르고, 등번호 없는 선수로 선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白紙트랙을 더듬더듬 가다가 서다가 시의 향기에 비틀거릴 뿐이라고 한다. 박시인의 겸손한 마음이 묻어 있는 작품으로 어찌하였던 시의 정원에 꽃 한 송이 피우고 싶고, 룰도 잘 모르고 등번호도 없는 선수지만 그는 이미 시의 향기에 취하여 있다. 이러한 초심의 겸손한 마음으로 늘 좋은 작품을 빚어내기를, 좋은 시를 많이 읽고, 과감하게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형태의 시에도 도전해보고, 자신이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돌과 그림에 관한 시도 깊이와 폭을 더하여 작업을 해보는 것도 어떨까?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시의 향기에 늘 취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시집에는 더욱 발전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작품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 길이 : 원고지 86장, 10point 10페이지)
☎ 축!^*^ 종합문예지 <<시선>>겨울호에 박정보(시), 서성옥(소설)당선 - 삼척문인들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첫댓글 선생님께서 박교수님 첫 시집에 쓸 평론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 박교수님을 뵈면서 정년퇴직에 이르기까지 젊었을 때 품었던 열정을 고이 간직하고 계시는 것은 물론 지금도 그 섬세한 감성을 유지하고 계심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는 김진광 선생님께 거듭 감사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