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청춘의 강 / 전 성훈
피가 펄펄 끓기도 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말, 그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뭉클해지는 말, 청춘(靑春), 젊음의 탄식이 절망이 되어 온 몸을 감싸 안았던 그 때, 다시는 맛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그 시절, 청춘의 뜨거운 감정을 길 잃은 철새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영혼이 탈진한 올빼미라고 해야 할까, 달콤한 향내가 풍기는 감미로운 봄 딸기처럼 싱그러운 청춘의 시작은 풋내가 풀풀 나기도 하고 설익은 자두 냄새가 묻어난다.
스스로 원했던 원하지 않던 간에 세상에 태어나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강을 만나게 된다. 인생의 여로에는 고요한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흐름도 있고 세차게 흐르는 여울도 있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넓은 폭포도 있다. 부모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는 뗏목을 타고 어린 시절을 보내다보면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청춘의 강에 도달한다. 청춘의 강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청춘의 강은 저마다 다른 모양의 냄새와 물결로 출렁거리며 흐른다. 어떤 이에게는 펄펄 끊는 용광로처럼 다가오고, 누구에게는 남극의 얼음덩어리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또 다른 이에는 더운 물과 찬물을 섞은 미지근한 물처럼 밍밍한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기도 한다.
청춘의 강을 건널 때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방향이나 목표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꿈과 뜻을 세우도록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청춘의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은 부모나 형제 그 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고여 있는 듯 소리도 없이 흐르는 냇물처럼, 장마철에 급격히 불어난 물같이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도도히 흐르던 강물처럼 지나왔던 십대 말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세월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중고등학교 시절 당일치기 가출을 몇 번 했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던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을 중도에서 그만둘 때부터 아버지와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육사 입학시험은 이틀에 걸쳐서 치렀다. 첫날 시험은 정상적으로 보았다. 둘째 날에는 시험 첫날 배부해 준 신원진술서를 제출해야했다. 신원진술서 양식에 본관(本貫)을 기록하는 항목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우리집안의 본관을 몰랐다. 연락을 받고 밤늦게 집에 오신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본관도 모른다고 심하게 꾸중을 하셨다. 다음 날 아침, 도저히 시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둘째 날 시험을 보지 않았다. 시험을 거부한 아들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육사 입학시험 중단 후 모대학교 사학과에 가려고 했으나 입학원서를 쓸 때 아버지께서 반대하셨다. 그 때는 학교에서 써주는 추천서에 반드시 부모동의가 필요했다. 결국 어느 대학교 경상계열에 시험을 쳤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후기 대학교도 아버지께서는 또 다시 경상계열에 원서를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없어 대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아들과 남편의 의견 대립으로 매우 힘드셨던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로 아버지께서는 마지못하신 듯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옷차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새내기 신입생이라면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멋도 내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옷에 관심을 갖지 않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어머니께서 여름 교복의 저고리 깃을 빳빳하게 다려주시면 그게 싫어서 일부러 꾸깃꾸깃하게 만들어 입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괴팍한 버릇과 연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있던 아버지 군복에 검정 물감을 들여서 입고 다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도 물들인 군복을 입었더니 동기생이 ‘재수했냐’고 물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된 어느 비 오는 날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 학교에 갔다. 주변에서 이상한 아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들인 군복 아니면 청바지를 늘 입고 다녔다. 어쩌다 어머니께서 사 주신 멋진 옷을 입고 학교에 갔더니 한 여학생이 ‘그동안 너희 집이 무척 가난한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옷차림에 무관심한 채 문학서적과 심리학 그리고 역사책을 가까이 했다. 책을 가까이 했으나 영어나 전공 공부를 파고든 것도 아니고 그저 단 한번뿐인 젊음을 고민하고 아파하기만 했다. 그 탓에 대학 2학년 여름방학에는 ‘썸머스쿨’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담배를 배웠고 술은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본전을 뽑듯이 정신없이 마셨다. 술을 잘 마시는 체질도 아닌데 그냥 마구 마셔 정신 줄을 놓기도 했고 가끔 술을 마시고 울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고 친구들에게 흰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그렇게 청춘의 강을 건너며 술과 어울려 방황하고 배회하며 보냈다.
화학 장교 출신이셨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사병이 아닌 장교로 군생활을 하기 위하여 3학년 때 ROTC에 입단하였다. 3학년과 4학년 때는 ‘유신체제’에 대항하는 학생 데모가 만연하여 학교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다. 세월에 쫓기듯이 ROTC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보병장교로 임관되어 전라남도 광주에서 기초군사반 훈련 과정을 마치고 강원도 화천 철책선에서 근무하였다. 28개월간의 군대생활을 끝내고 제대하여 3개월 정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갔지만 직장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첫 직장은 입사 1년 만에 망하여 다른 회사에 합병되었다. 합병회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기존 사원들의 텃세가 심했고 ‘스카이’대학 출신 장벽이 엄청 높았다. 승진 때마다 누락되거나 쓰디쓴 물을 먹었다. 그렇게 어느 덧 청춘의 강은 팔팔한 젊음의 30대를 지났다.
불혹의 나이를 맞이하여 전형적인 샐러리맨 생활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했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 40대의 그 진정한 맛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무기력하게 세월만 보냈다. 우리 국민에게 비극적인 고통을 주었던 IMF를 당하면서 겉으로는 담담한 모습이지만 맘속으로 찝찝하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회사 생활을 견디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다고 지구촌 여기저기서 야단법석을 부리던 2000년 봄, 50세를 눈앞에 두고 명예퇴직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 당한 이후 한동안 직장을 구하거나 장사를 한다는 것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낙심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그 대신 직장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성서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더니 슬슬 무료함과 갑갑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몸을 풀어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아는 분이 운영하는 작은 가구회사의 점원생활을 하며 사무실이나 집까지 가구를 지고 나르는 막일꾼도 해보았고, 어느 성당의 사무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직업전문학교에서 보일러취급 및 위험물취급 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수 년 동안 의정부 소재 모회사 건물 지하 보일러실에서 여름과 겨울에만 일하는 ‘계절공’(계절 공돌이)노릇도 했다. 직장에서 출세하여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사업을 하여 돈을 엄청 벌던가, 문화예술계에 발을 내딛어 부와 명예를 쌓는 일을 인생의 성공이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그러한 성공의 그림자조차도 밟아보지 못했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때에 승진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낙오자였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려고 서울 주변의 산을 자주 찾고 술도 많이 마시며 가끔은 세상을 원망하고 무능한 내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무겁고 버거웠던 지난한 세월도 덧없이 흐르고 흘러 내년이면 70세이다. 노년의 나이가 되어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지금의 내 삶은 정말 감사하다. 학창시절부터 꿈이었던 글 쓰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는 편이다.
더하여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며 각자의 길을 무난하게 걷는 자식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녀와 손자 재롱에 하루하루의 삶이 기쁘고 행복하다.
이제는 무엇을 해보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자리에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아아, 오늘도 할 일이 있구나, 얼마나 좋은 일인가하고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202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