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보려했던 영화를 제때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맛이 처음 예상과는 다르다.
그 영화가 화제작이고 많은 사람들의 입살에 오르는 영화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5월에 나는 <시>, <하하하>, <브라더스>, <클래스>, <예언자>, <하녀> 등
몇 편의 영화를 보려고 했다.
그 중 개봉하면 바로 보려고 했던 영화가 <하녀>다.
하지만 어찌 하다보니 <하녀>는 다른 영화들을 거의 다 본
6월의 문 앞에서야 보게 되었다.
이미 내 귀는 <하녀>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로 시끄러워진 이후에....
임상수 감독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파격적인 시선으로 가족문제를 다룬 <바람난 가족>이다.
그리고 10.26 사태를 그린 <그때 그 사람들>,
페미니즘의 문제를 유쾌발랄하게 그렸던 <처녀들의 저녁식사>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눈여겨 보았던 영화는 <눈물>이다.
청소년들의 자아 정체성 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적인, 그러나 기성세대에겐 파격적인
내용들을 리얼리티하게 그대로 표현한 영화였다.
<눈물>을 보면서 임상수 감독에 대해
"아! 이 감독 참 세상을 보는 눈이 자기 틀 속에 갖혀 있지 않아 넓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든 임상수 감독은 사회성과 정치성이 짙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녀> 역시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영화 <하녀>를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경제적 논리에 따른 계급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당시로써는 현대식 가옥이었던 2층 구조의 공간에서
각각의 인물들을 이어주는 통로인 계단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통과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닮아 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닮은듯 다르다.
부자집에 하녀로 들어갔다가 안주인 몰래 주인 남자와 관계를 갖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기본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당대 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면서
피아노선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영화 내내 유지하는 스릴러 영화라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주인과 하녀의 계급적 충돌에서 오는 사회적 시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점에서 다르다.
임상수의 <하녀>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전작에는 없던 새로운 인물, 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의 등장이다.
임상수의 <하녀>에서 늙은 하녀 병식의 역할은
단지 젊은 하녀 은이의 선배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작품 전체의 맥을 쥐고서
인물들간의 관계를 연결하고 스토리텔링의 맥을 트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인 부부나 젊은 하녀 못지 않게 그녀에게 주목하여야 한다.
이혼한 후 친구(황정민)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일하던 은이(전도연)는
유아교육과를 중퇴한 학력 덕분에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은 틈틈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와인을 즐기며,
쌍동이를 임신한 아내(서우)와 여섯살 난 딸 나미에게
한없는 자상함을 보내는 남자이다.
그의 아내는 부잣집 마나님 특유의 안하무인과
자신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위협하는 사람에게 표독한,
부잣집 마나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전형적 인물이다.
눈덮인 겨울 밤, 깊은 산 속에 있는 주인집 가족 별장에 간 은이는
임신한 아내와의 섹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밤 늦게 와인잔을 들고 찾아온 주인 남자 훈이와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관계를 하게 된다.
( 이 부분은 주인 남자와 젊은 하녀의 육체관계가 단지 주인 남자의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주인 남자에게 이끌린 젊은 하녀의 은밀한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는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더라도
의도가 지나쳐 리얼리티가 떨어진 장면으로 여겨졌다.
젊은 하녀의 기다렸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개연성의 배치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늙은 하녀 병식이다.
늙은 하녀는 아들이 검사가 된 후에도 부잣집에서 하녀 생활을 계속한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생활을 해서 뼈속 깊이 하녀 근성이 몸에 밴 여자이다.
병식은 젊은 하녀 은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해서
안주인의 친정 엄마에게 알리는 메신적 역할을 한다.
또한 후반부에는 은이의 편에 서서 상류층에 저항하기도 한다.
주인남자와 여주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등
모든 것을 물질로 해석하는 상류층 집안과
은이로 상징되는 하류층 사이에 늙은 하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는 나이가 많고 그녀의 아들은 검사이지만
주인 부부에게 있어 그녀는 철저히 하녀에 불과하다.
늙은 하녀는 몸에 밴 하녀 근성으로 상류층을 모시고 살지만
은이를 통해 상류층에 저항하는 인간적 시선을 획득한다.
감독은 늙은 하녀를 통해 젊은 하녀를 보여 주고,
늙은 하녀의 시선으로 물질에 오염된 상류층 집안을 바라보게 하며,
안주인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물질 세계,
또한 주인 남자로 대표되는 돈 권력의 무서움을 드러낸다.
임상수 감독은 주인 남자와 그의 아내 등 상류층 사람들을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관계를 상징하는 전형적 인물들로 묘사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붙은 습관이다.
여자와 육체관계를 갖은 후 여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주인집 남자 훈은 수표를 몸에 밴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건네준다.
늙은 하녀의 아들이 검사로 임용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그들은 두툼한 봉투로 축하를 한다.
젊은 하녀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도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억 단위의 거액을 제시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풀어가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임상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천민자본주의의 역겨움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물질로만 생각하는 상류층의 죄의식 없는 범죄를 고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 이상의 저항을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하층민의 분노를 표현하자는 것이다.
젊은 하녀 은이의 비극적 결말 속에는
돈과 돈으로 인한 권력의 공고성을 보여주면서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이 시대 대중들의 무기력함과 분노가 숨어 있다.
은이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낙태와 출산을 둘러 싸고 전개되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긴장관계는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젊은 하녀의 뱃속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은이를 2층에서 떨어지게 만든 안주인의 친정 엄마,
유산시키기 위해 독이 든 한약을 은이가 먹도록 하는 안주인,
피를 토하는 은이를 보고도 귀찮은 듯 어이없어 하는 주인 남자,
그들에게 있어 하녀와 하녀의 뱃속 아이는
사람이 아닌, 언제든 돈으로 보상해버리면 되는 장난감 같은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 낙태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돈에 빌붙은 소위 인테리들의 천박, 그 자체를 보여준다.)
신분제는 중세 이래로 점차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진 지 수백년이 넘은 신분제가 현대사회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돈이라는 권력을 쥔 채
더 엄밀하게 더 지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점점 더 고착화되어 갈 뿐.....
이 영화의 메세지 마지막에 있다.
그것은 지극히 안타깝지만 현실적이다.
젊은 하녀가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저항했고
늙은 하녀가 하녀 근성을 버리고 그들에게 저항했지만
그들은 또다른 하녀들을 거느린 채
외국 또는 외국어를 쓰면서 아이의 생일 파티를 즐기고 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하녀들의 저항이란 일회적인 것이며,
그들은 언제든지 제2, 제3의 하녀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의 극치,
사대주의를 통한 자기 올리기, 또는 자기 돋보이기.
한국 사람들뿐인(하녀들조차 모두 한국인인), 외국어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공간에서
외국문화를 모방하면서
굳이 외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어로 노래를 하는
2010년 이 땅 부자들의 잘못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강렬함 대신 모더니즘적 사고를 보여주고 있지만
전작과는 또다른 사회적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는 영화가
임상수 감독의 <하녀>이다.
에필로그
<하녀>는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하녀>는 강렬함도 분명함도 없다.
그렇다고 모더니즘적이지도 않다.
감독은 무엇이 모더니즘인지 모르거나
알았다면 캐리턱 설정을 잘못했거나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연기를 잘못했거나 한 것 같다.
<하녀>의 광고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문구,
'강렬한(?) 배드신과 선정적인 대사로 18금',
하지만 영화에는 강렬함도 없고 선정적이지도 않다.
주인남자에게 은밀한 성적 욕망을 느낀다고 하지만
은이의 모습은 내면에 은밀한 성적 욕망을 가진 여자라기보단
그저 멍청하게 착하기만 한, 그러면서도 착하지도 않고 멍청하지도 않은
이도저도 아닌 두리뭉실했다.
복수를 한다고 분신자살했지만
아이를 강제로 유산당하고 복수하는 여자의 모습은 아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할만큼의 당위성을
영화는 그 이전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은이의 자살이 되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연기 잘하는 배우 전도연의 연기가 영화 속 캐릭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안주인 서우는 나름 연기를 잘하려고 했지만
그녀 역시 잘못 캐스팅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우의 연기가 잘못이라기보다는
그 캐릭터에 서우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자집 여자로서의 안하무인과 싸가지 없음은 어울렸지만
유치원생 딸아이를 두고 쌍둥이를 임신한 여자의 모습으로는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전체적으로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가 표현되어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는
비극도 스릴도 감동도 공감도 부족하다.
최상류층 사람들의 럭셔리한 삶의 모습을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는 잘 드러냈지만
칸에서 각본산이나 황금종려상, 주연배우상이나 감독상을 타기에는
좀 부족한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비록 우리 영화지만은.....
첫댓글 저는 하녀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불편하더라구요. 뭔가 부족한 느낌.... 안보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마음이 들데요.
비판적인 시선도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우리 영화가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꾸 발전해 나가겠지요.
벼르기만 하고 못 봤는데 다들 별로 추천할 마음이 없다고 해서 걍 통과~~
하녀를 보고 저는 토론을 하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했는 데,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감상문을 써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돈과 돈으로 인한 권력의 공고성을 보여주면서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이 시대 대중들의 무기력함과 분노가 숨어 있다"는 말씀에 동감이 갑니다. 저도 그런 분노를 느껴본 적이 있으니....